1980∼1990년대 컴퓨터의 연산능력이 향상되고 대용량 저장매체의 수요가 늘면서 보조저장장치는 플로피디스크와 집 드라이브, USB 토큰을 거치며 빠르게 변화했다. 지금은 클라우드 서비스가 보편화되며 파일을 저장하는 공간이 아예 온라인으로 넘어갔다. 게티이미지뱅크
■ 지식카페 - 기술이 지나간 자리 - (22) 집 드라이브
대용량 저장매체 수요 늘자 100MB ‘집 드라이브’ 등장… 별도 연결장치 필요해 휴대성에선 약점
USB 개발로 편의성 확대, 용량도 대폭 증가… 모바일 결합 클라우드 시대 맞아 저장장치 존재감 약해져
도서관은 ‘책’만 보관하는 곳이 아니다. 정보를 담은 모든 것이 도서관의 소장 자료가 될 수 있다. 특히 역사가 오랜 도서관들일수록 다양한 형태의 자료를 보관하고 있다. 그 자료들을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자료 성격에 맞는 다양한 장비들이 필요하다. 책이야 손으로 넘겨 보면 되는 것이지만, 음성 자료를 열람(청취)하기 위해서는 오디오 장비가 필요하고, 마이크로필름을 보기 위해서는 마이크로필름 판독기가 필요하다.
20세기 후반이 되면서 사정이 더욱 복잡해졌다. 컴퓨터 산업의 출현 이후로 디지털 자료가 급증했는데, 컴퓨터 기술의 교체 주기는 점점 짧아졌으므로 다양한 장비들이 시장에 출현하고 도태되기를 거듭하였다. 하지만 이들 장비에 맞춰 생산된 디지털 매체는 도서관의 보존 대상이 되었으므로, 도서관은 이들 자료를 읽고 활용하기 위해 필요한 장비를 모두 갖추게 되었다. 해외의 규모가 크고 오래된 도서관들은 지금은 구하기 어려운 저장매체에 담긴 자료들을 읽으려는 이용자들을 위해 홈페이지에 ‘장비 대여 및 활용’에 대해 자세히 안내하고 있다. 자기 테이프 리더, 플로피디스크(3.5인치와 5.25인치) 드라이브, 여러 회사에서 서로 다른 형태로 개발한 각종 메모리 카드 리더, 시디롬(CD-ROM)과 디브이디롬(DVD-ROM), 레이저디스크(LD) 등의 재생장치, 집 드라이브(Zip Drive) 등 종류가 무척 다양하다.
이렇게 다양한 장치를 갖추고 항상 이용 가능한 상태로 유지 보수하는 것은 상당히 품이 많이 드는 일이다. 더욱이 대부분의 정보가 인터넷에서 공유됨에 따라 이런 구형 매체에 담긴 정보를 찾는 이도 점점 줄어들었다. 그러다 보니 2007년 한 신문에는 “대학도서관이 누가 찾을지도 알 수 없는 음식들을 구색 갖추기로 메뉴에 잔뜩 올린 동네 식당과 같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서의 불만 섞인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과도기란 그 당시에는 무척 혼란스럽게 보이지만, 지나고 나면 또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쉽게 잊히기도 한다. USB 토큰을 지나 클라우드가 대세가 된 현재는 쉽게 느끼기 어렵지만, 불과 30여 년만 시간을 되돌려 보면 1980∼1990년대에 우리는 무척 빠르고 급격한 저장매체의 변화를 겪어 왔다. 위에 소개한 ‘집 드라이브’도 그중 하나다.
◇개인용 컴퓨터의 보급과 보조기억장치
컴퓨터의 구조에서 ‘보조기억장치’란 ‘주기억장치’에 대비되는 개념이다. 주기억장치는 중앙처리장치(CPU)에서 처리하는 내용을 담아두는 것이고, 보조기억장치는 CPU에서 필요할 때 읽어들일 수 있도록 별도의 매체에 필요한 자료를 저장해 둔 것이라 할 수 있다. 1945년 존 폰 노이만이 입력장치-처리장치-저장장치-출력장치라는 컴퓨터의 기본 구조(‘폰 노이만 구조’)를 고안한 이래로 저장장치는 컴퓨터의 필수 요소 중 하나로 발전해 왔다. 그리고 컴퓨터의 연산 능력이 향상되고 사람들이 컴퓨터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감에 따라, 파일의 크기는 점점 커졌고 저장장치도 더 큰 용량이 필요하게 되었다.
개인용 컴퓨터(PC) 시대 초창기를 대표하는 보조저장장치는 플로피디스크(디스켓)였는데, 5.25인치 플로피디스크의 용량은 1976년 110킬로바이트(KB)에서 1980년대 360KB까지 늘어났고, 이보다 작고 단단한 케이스에 들어서 휴대가 간편한 3.5인치 디스켓은 1982년 264KB로 시작하여 1984년에는 720KB, 1987년에는 1.44메가바이트(MB)까지 용량이 늘어났다. 요즘의 눈으로는 터무니없이 작은 용량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1.44MB는 144만 바이트이고, 순수한 문자 정보만 담는다고 하면 로마자 계열은 144만 자, 동아시아 문자도 72만 자를 담을 수 있다. 웬만한 책은 여러 권을 너끈히 담을 수 있는 분량이고, 1980년대의 PC 게임들도 코드가 이 길이를 넘지 않게 만들 수 있었다. 방대한 세계관을 그려낸 당시의 ‘대작’ 게임들도 서너 장의 플로피디스크에 모든 코드를 담을 수 있었다. 물론, 글자만 담을 때의 이야기다.
◇대용량 저장매체에 대한 수요
하지만 1990년대로 들어오면서 컴퓨터 환경은 크게 변화했다. 컴퓨터 성능이 향상되면서 그림이나 소리를 다룰 수 있게 되고, 문서도 다양한 형태로 꾸밀 수 있게 된 것이다. 멀티미디어의 시대로 들어서면서 일반 사용자들이 생산하고 주고받는 문서의 크기도 이전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지기 시작했다. 1990년대의 사용자들은 문서작성기 프로그램의 최신 기능을 활용하여 긴 문서를 예쁘게 꾸미고 그림 등을 삽입하면 용량이 1.44MB를 훌쩍 넘어가는 일을 자주 경험하게 되었다. 파일 하나의 크기가 디스켓 한 장의 용량을 넘어가 버린 것이다. 이에 대응하여 1990년대의 압축 프로그램에는 큰 파일을 1.44MB 아래로 쪼개어 여러 개의 파일로 압축해 주는 기능이 탑재되기도 했다. 또 파일 용량이 커지면서 여러 장의 디스켓을 들고 다니는 일이 흔해졌다. 대학생들은 여러 과목이나 주제를 구별할 수 있도록 색색깔의 디스켓에 자료를 저장하고, 그것을 외부 충격이나 먼지에서 보호할 수 있도록 명함첩과 비슷한 디스켓 케이스에 넣어 다녔다. 대학마다 자기 학교의 휘장을 그려 넣은 디스켓 케이스를 기념품으로 팔기도 했다.
하지만 한번 1MB의 벽을 뛰어넘은 파일 용량은 금세 10MB를 넘고 100MB에 육박했다. 플로피디스크에 쪼개어 압축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으므로 대용량의 차세대 보조기억장치를 둘러싼 경쟁이 치열해졌다. 1994년 아이오메가(Iomega) 사가 출시한 ‘집 드라이브’와 ‘집디스크’도 그 후보 중 하나였다. 집디스크는 외형상 플로피디스크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수백 MB가 넘는 대용량을 자랑했다. 초창기에는 100MB로 출발했지만 나중에는 750MB까지 발전했다. 플로피디스크만큼 휴대가 편하지만 용량은 훨씬 컸고, 시디롬과 비교하면 몇 번이고 읽고 쓰고 지울 수 있어 더 편리했다. 다만 별도의 드라이브까지 구입해야 했으므로 비용 부담이 있었고, 이동하려는 곳의 컴퓨터에 집 드라이브가 장착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아 결국 집 드라이브와 케이블까지 들고 다니다 보면 외장 하드디스크를 들고 다니는 것과 휴대성 면에서도 큰 차이가 없어지고 말았다.
◇USB토큰을 넘어 클라우드로
차세대 보조기억장치들이 다소 혼란스러운 경쟁을 이어가고 있던 1994년, 인텔 등 7개 회사는 ‘범용 직렬 버스(Universal Serial Bus)’라는 새로운 규격을 공동 개발하기로 합의하였다. 몇십 년에 걸쳐 많은 이들의 발명을 받아들여 컴퓨터 기술이 성장하면서 기기 사이를 연결하는 단자의 규격이 난립하고 있던 것을 정리하기 위한 시도였다. 인텔의 주도 아래 1996년 USB 1.0 규격이 발표되었고, 이후 키보드, 마우스, 프린터, 카메라 등 여러 가지 주변기기들이 모두 USB 단자를 이용하게 되었다.
보조기억장치도 이 흐름에 따라 연결 단자를 통일하게 되었다. 1990년대 말이면 집 드라이브건 외장 하드 디스크 드라이브건 외장 시디롬 드라이브건 모두 USB 단자를 사용하게 되었는데, 그 결과 용량 면에서 압도적 우위를 자랑하던 외장 하드 디스크 드라이브가 다른 기기들보다 앞서 나가게 되었다.
하지만 용량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편의성인데, 여기에서 강력한 새로운 경쟁자가 출현하게 되었다. 2000년 싱가포르의 트랙 테크놀로지라는 회사는 ‘섬드라이브(ThumbDrive)’라는 신제품을 선보였는데, 이것은 플래시메모리 칩을 USB 단자와 일체형으로 만들어서, USB 포트에 꽂기만 하면 보조기억장치로 쓸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플래시메모리는 1984년 개발되어 여러 용도로 쓰이고 있었지만, USB 규격과 결합함으로써 개인 사용자에게도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 USB 토큰 형태의 플래시메모리는 2000년 시판 당시에는 용량이 8MB에 불과했지만, ‘황의 법칙’으로 대변되는 기술의 급격한 발달에 따라 2020년대에는 수백 기가바이트(GB)가 넘는 넉넉한 용량을 자랑하게 되었다. 더욱이 반도체 기반의 저장매체이므로 플로피디스크나 하드디스크처럼 자성체의 물리적 손상에 따른 고장을 걱정할 필요도 없어졌다.
플래시메모리가 보조기억장치 시장을 평정하면서, 집 드라이브와 같은 과도기적 기술들은 빠른 속도로 우리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갔다. 과거의 자료를 보존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는 도서관 같은 곳이 아니면 이제는 수요가 거의 없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오늘날의 정보기술 사용자들은 손가락만 한 USB 토큰조차도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세상으로 접어들고 있다. 모바일 기술과 결합한 클라우드 서비스가 보편화되면서 파일을 저장하는 공간이 아예 온라인으로 넘어간 것이다. 어찌 보면 이제는 ‘저장매체’나 ‘보조기억장치’라는 말 자체가 물리적 실감을 상실하고 존재감이 흐릿해지고 있다. 다양한 기기의 사용 환경이 매끄럽게 연결되면서, 이제는 ‘기술이 지나간 자리’도 표가 잘 나지 않는 세계가 되어가는 것일 수도 있다.
김태호 전북대 교수
■ 용어설명 - 황의 법칙(Hwang’s Law)
반도체 메모리의 용량이 1년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이론이다. 삼성전자의 황창규 사장이 발표한 ‘메모리 신성장론’이며 그의 성을 따서 ‘황의 법칙’이라고 한다. 1960년대에 반도체 시대가 시작되면서 인텔의 공동설립자인 고든 무어(Gordon Moore)는 마이크로칩에 저장할 수 있는 데이터 용량이 18개월마다 2배씩 증가하며, PC가 이를 주도한다는 이론을 제시하였다. 이를 ‘무어의 법칙’이라고 한다. 황창규는 2002년 국제반도체회로학술회의(International Solid Sate Circuits Conference; ISSCC)에서 이를 계승하여, 반도체의 집적도가 2배로 증가하는 시간이 1년으로 단축되었으며 무어의 법칙을 뛰어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후 삼성전자는 실제로 이 주기에 맞추어 새로운 메모리를 선보였고, 이로부터 이 경향을 ‘황의 법칙’이라고 부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