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영은 20대 젊은 남자가 수용소 천막으로 들어와 운전 기술을 가진 사람을 찾는다는 말을 듣고서야 새삼 자기가 운전면허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머리에 떠올랐다. 고진영이 집업적으로 운전을 한 경험은 없다. 도바시 상사로 옮겨왔을 때 군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은 운전이 필수라는 도바시 대좌의 지시에 따라 배웠다. 그후 업무 관계로 승용차를 운전하고 중국 각지를 다녔다. 이것이 고진영 지닌 운전 기술과의 인연 전부였다. 젊은 남자가 10분쯤 서 있었지만 운전 기술을 가졌다고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운전수라? 내가 직업적인 운전수가될 수 있을까?. 고진영은 자기가 직업적인 운전수가 될 수 있다는 자신이 없었다. 고진영이 아는 건 상거래와 경제적인 특수 모략 전술뿐이다. 옆에서 아기가 칭얼대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렸다. 올해 스무 네 살인 아내 신현주와 아내 품에 안긴 생후 6개 월인 아들 광식의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조선에 친척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별 다른 연고도 없고 재산도 없는 고진영은 앞으로 살아 갈 일이 막연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언제까지나 귀환동포 수용소 신세를 지며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귀환동포 수용소가 영원히 자기들을 돌보아 주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아침저녁 날씨가 싸늘해 가기 시작한다. 운전 기술 가지고 계신 분 없습니까? 젊은 남자가 다시 한번 물었다. 나서는 사람이 없다. 젊은 남자는 다른 천막으로 가려는 발길을 돌렸다. 순간 운전 기술자 여기 있습니다 고진영은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소리 쳤다. 나가려던 남자가 돌아서 고진영은 바라보았다. 고진영이 남자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런 고진영을 아내가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운전하십니까? 남자가 물었다. 예 갑시다 예? 일은 내일부터 하게 됩니다. 오늘은 나하고 같이 가 집이나 알아두시지요 예 고진영은 아내를 한번 돌아다 본 다음 남자를 따라 나섰다. 천막밖에 네 사람이 서 있었다. 모두가 10대 청소년이 아니면 20대 초반의 젊은 남자였다. 남자가 말없이 수용소를 벗어나 큰 거리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모두가 뒤를 따랐다. 고진영은 지금 자기를 대리고 가는 남자가 이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집에서 일할 사람을 고를 때 이름 나이 고향 과거 경력을 묻는 게 상식이다. 특히 귀환동포 수용소로 일할 사람을 찾아오는 경우는 필요 이상 꼬치꼬치 묻는다. 고진영은 자기 과거를 밝히기 싫었다. 일본 육군 위장 특수기관에서 일을 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특히 자기가 순수한 상거래만 한 것이 아니라 경제 관련 특수 모략 전에 직접 관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게 싫었다. 그런 기관의 경제 관련 특수 공작원이였다.는 사실이 해방된 조국에서 알려 졌을 때 좋은 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진영은 그런 자기 과거가 밝혀지는 게 싫어 수용소로 사람을 구하러 오는 사람이 있을 때마다 나서지 않았다. 남자가 극락장의사 간판이 붙은 집 앞에 섰다. 여기가 내일부터 일 할 집입니다 남자가 간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때야 고진영은 이 남자가 장의사에서 온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 영구차를 운전하게 됩니까? 그 생각을 하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나온 말이다. 영구차는 싫습니까? 남자가 난처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고진영은 잠깐 망설였다. 자기가 영구차 운전을 하게될 것이라는 건 상상도 못해 봤기 때문이다. 갑자기 아내와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아니..뭐..그런 건 아닙니다만 난 또 영구차는 운전은 싫다는 줄 알고 깜짝 놀랬습니다 영구차 운전을 해 본이 없어서.... 아. 네 분은 가셨다가 내일 아침 일찍 오시고 남자는 거기서 말을 끊고 고진영을 바라보았다. 예. 고진영이라고 합니다 나는 박억조라고 합니다. 고 선생은 차도 보아야할 거고 주인하고 만나서 인사도 해야 할 테니까 같이 들어가시지요 예 네 젊은 남자가 박억조에게 절을 꾸벅하고 수용소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지금까지 운전수가 없었습니까? 내가 운전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일하고 계십니까? 운전수냐는 뜻이다. 들어가시지요 박억조는 대답없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오꾸조 당신이예요 시즈요가 나오며 말했다. 어머나. 손님하고 같이 오셨군요 시즈요. 내일부터 우리 집에서 일하게된 고진영 씨야! 박억조가 일본말로 고진영을 소개했다. 그렇습니까?. 시즈요올시다. 잘 부탁합니다 여자가 일본말로 인사를 했다. 고진영입니다 고진영은 혼란을 느꼈다. 남자는 조선 사람이고 여자는 일본 사람이다. 말하는 투만 놓고 보면 부부 같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여자 쪽이 한 두 살 더 먹은 느낌이다. 여자는 굉장히 세련되어 있어 보인다. 반대로 남자 쪽은 여자에 비해 어딘가 촌티가 느껴진다. 우선 좀 앉으세요. 고맙습니다 고진영이 처음으로 일본말을 했다. 어머나. 일본말이 매우 유창하시군요. 하지만 일본에서 오신 것 같지는 않은데...... 예. 중국에서 왔습니다 고진영은 대답을 하면서 내가 일본에서 오지 않았다는 걸 저 여자는 어떻게 알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가족이 많으신 가요? 아내하고 6개 월된 아이가 하나 있습니다 부인과 어린아이가 수용소에서......고생될텐데.......... 우리 가족만 겪는 고생이 아니니 참아야지요 오꾸조. 고 선생만 좋으시다면 우리 이층으로 옮겨와 있게 하면 어떨까요? 그것도 좋겠군 저...우리 이층에는 방이 셋 입니다만 모두 비어 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그 방을 쓰도록 하시지요 시즈요의 말을 듣는 순간 고진영의 가슴 저 아래에서 뜨거운 것이 밀려오는 걸 느꼈다. 이 부부는 참으로 선량한 사람들이구나 그렇게 신세를 ... 신세라니요. 어려울 때일수록 서로가 도우며 살아야지요. 다른 생각 마시고 내일 옮겨오세요. 제가 방을 치워놓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돌아가 아내하고 의논하겠습니다 물론 그래야겠지요 일은 내일부터 바로 하게 됩니까? 지금은 차가 한 대 뿐이라 부산 지리를 익힐 때까지는 나하고 같이하게 되겠지만 며칠 후에 새로 차가 오게 되면 한 대는 고 선생이 맡아 해야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아침에 뵙겠습니다 고진영이 출입문 쪽으로 향했다. 부인과 의논해 아침에 옮겨오도록 하세요 시즈요의 말이 등뒤에서 들렸다. 고진영이 문을 열고 나갔다. 오꾸조. 고 씨는 전에 무엇을 하던 사람이래? 운전수 했겠지? 자기 입으로 그랬어? 아니 물어 보지 않았어. 운전 기술 가진 사람 없느냐고 했더니 나왔어. 그래서 운전수 노릇한 사람인줄 알았지? 아니야. 고 씨는 직업적인 운전수가 아니야? 그걸 어떻게 알아? 사람 몸에서 풍기는 체취야. 인텔리 냄새가 강하게 풍겼어. 그래서 손을 유심히 살펴봤지. 힘든 일을 한 사람 손이 아니 였어. 어쩌면 아주 좋은 사람 하나 구했는지도 몰라 박억조가 놀란 눈으로 시즈요를 바라보고 있었다.
첫댓글 즐감 ~~~~~~~~
사지요는 사람보는 눈이 있군....박억조와 같이 잘 만났다....나라가 다르지 다 같은 인간이다...잘 도와 줘
잼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