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트 앵글이 지난 8월 25일 WWE에서 해고된 후 많은 이들은 충격과 아쉬움에 휩싸였습니다. 그 후 약 1달 뒤, 최근 앵글은 놀라운 소식을 전했습니다. 바로 MMA에 진출한다는 것이었지요. 커트 앵글의 에이전트인 데이비드 호크는 최근 팬들에게 보낸 메시지를 통해서 앵글이 MMA에 진출할 수도 있음을 알렸습니다. 하지만 이 결정이 최선인지는 다소 아쉬움이 남습니다. 게다가 이게 다시 한 번 WWE의 시선을 끄는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들어온 정보들을 종합한다면 격투기 쪽이 더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현재 앵글은 최고의 프리에이전트
현재 앵글은 프로레슬링과 MMA를 통틀어서 최고의 프리에이전트입니다. 지금 분위기만을 놓고 본다면 사상 최고의 구애를 받는 선수로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라면 WWE에서 받던 금액을 가볍게 뛰어넘는 수준으로 벌수도 있어 보입니다. TNA, ROH, 일본의 프로레슬링 단체 등은 금액을 맞출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생각은 갖고 있고 MMA 간판 단체인 UFC나 PRIDE, HERO'S는 물론이고 WFA, 보독 파이트, WAMA, 스트라이크 포스 등 생소한 단체들도 주판알을 튕기는 분위기라고 합니다. 아무래도 금액을 생각한다면 MMA가 더 합리적인 선택일 겁니다.
사실 앵글은 가벼운 스케줄로 일하면서 다른 프로레슬링 단체에서 뛸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큰돈은 MMA에서 나오는 상황이지요. 최근 UFC의 메인이벤트 같은 경우는 PPV에서 일부 수익금을 얻는 계약을 맺었다면 100만 달러 이상을 받을 수 있기도 합니다. 앵글의 이름값이라면 60만 가구 이상 구매하는 것이 충분하므로 100만 달러 이상을 넘길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WWE는 PPV의 이름이 더 크므로 수당이 덜 돌아오는 편이나 UFC는 선수의 이름값에 흥행이 좌우되는 편이 큰 터라 권투와 비슷하게 선수에게 돌아오는 몫이 큽니다. 물론 오프닝 선수는 비참할 정도로 적게 받지요)
사실 이는 돌아보면 지극히 슬픈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앞으로 10년 뒤에, 이미 세상을 떠난 커트 앵글이 2000년대 중반, MMA에 갔다는 말을 할지도 모를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미래는 현재 유명 단체들이나 커트 앵글 본인에게는 큰 의미가 없나봅니다. 앵글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했고 WWE에서 최고 스타중 하나로 자리잡아왔기에 인지도가 매우 높은 편입니다. 게다가 90년대 후반 PRIDE의 제안을 거절했던 경험도 있는데 이 시기엔 앵글보다 아마추어 레슬링에서 확실히 아래로 평가되던 마크 콜맨이나 마크 커가 강자로 군림하던 시기라 충분히 PRIDE를 주름잡았을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러니 상품성도 충분할뿐더러 본인으로서도 격투기에서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하나봅니다.
이런 앵글의 장점을 활용할 분위기도 형성되어있습니다. 최근 미국의 MMA 사상 최고 흥행 분위기에서 UFC는 나름대로 1위를 다지기 위해서, 나머지 단체들은 UFC를 따라잡기 위해서 앵글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지요. 앵글은 사람들의 인지도만으로 따질 때, 미국 내에서는 모든 종합격투기 선수들보다도 앞섭니다. 만약 10여 전인 96년 이후라면 감히 따라올 사람이 없을 정도로 대단한 인지도였지요. 최근 K-1 HERO'S 진출을 발표한 브록 레스너도 큰 스타이긴 하지만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WWE에서 더 많은 위업을 쌓았던 앵글보다는 약한 스타임이 분명합니다.
최근 앵글에게 가장 큰 관심을 표명한 단체는 UFC입니다. 프로모터 데이너 화이트도 앵글이나 브록 레스너(K-1 HERO'S와의 경기 후 다음엔 미국의 신흥 단체인 보독에서도 경기를 할 예정이라고 합니다)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하네요. 이미 물밑 작업이 진행 중이라는 설도 있지만 확정된 발표가 나오기 전까지는 뭐라고 단언하긴 어렵습니다.
WWE가 왜 앵글을 놓은 것일까?
그럼 WWE가 왜 앵글을 놓은 것일까요? 원래는 서머 슬램에서 ECW 타이틀 경기에 투입될 예정이었지만 급박하게 계약해지를 하고 말았습니다. 더군다나 그 태도는 논란의 소지가 있을 정도였지요. 최근 WWE는 핸드폰 모바일 서비스를 통해서 팬들에게 자사의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WWE 홈페이지에 올라갈 내용이 몇 시간 뒤 팬들에게 문자로 전송될 정도로 그다지 의미가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커트 앵글에 대한 소식을 다루는 경우는 조금 달랐습니다. WWE는 팬들에게 보낸 문자에서 앵글이 WWE와 협상을 하는 동안 그 분위기는 매우 격앙되었고 상호 대립적이었으며(Heated and confrontational) 앵글은 감정적으로 이미 무너진 상태로 거의 폐인과 다름없다고(emotional wreck)표현했습니다. 이는 그간 스타들을 다루던 태도와 상반된 것으로 앵글을 재협상으로 불러오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간 앵글은 WWE와 결별한 뒤에도 메인이벤터급 동료 선수들에게 연락해서 임직원들의 마음을 바꾸게 할 것을 설득했고 심지어 빈스 맥맨에게 친필 서명을 보내서 내년 레슬매니아에의 메인이벤트에 자신을 투입한 후 보일 시나리오를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어이없지만 다르게 생각한다면 눈물이 나도록 치열한 열정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WWE의 반응은 냉담했고 이에 앵글은 팬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에서 MMA 진출설을 흘렸습니다.
WWE에서 해고된 선수들은 일반적으로 90일 정도 경쟁단체에 갈 수 없다는 규정을 소급 받게 됩니다. 그러나 이는 중간급 선수들의 경우이지요. 메인이벤터들의 경우는 좀 더 그 기간이 깁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커트 앵글은 약 6개월 정도가 소급되므로 내년 2월 말 정도까지 다른 경쟁단체에 갈 수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현재 WWE가 겉으로는 인정하고 있진 않지만 내부적으로는 매우 경계하는 TNA는 분명히 경쟁 단체에 포함되었으리라고 봅니다. ROH의 경우는 좀 더 지켜봐야 하며 MMA 단체도 아직 뭐라고 답하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UFC도 가능성이 크지만 빈스 맥맨이 UFC의 약진을 아무런 방해없이 그대로 두고 지켜본 적도 있는 터라 100% 장담하긴 어렵네요. 계약의 세부 내용은 양측이 알고 있을 것이므로 앞으로 진행되는 상황을 지켜봐야만 합니다. 만약 MMA 단체까지 포함한다면 앵글은 향후 5개월 정도 계속 훈련에 임할 수밖에 없지요. 차라리 이게 앵글에게는 더 나은 결과이리라고 생각됩니다.
정말 나쁘게 말하자면, 에디 게레로가 사망한 뒤, 여론이 나빠지는 것을 우려한 WWE가 심장마비 가능성이 높은 앵글에게 재활을 요구했다가 거부당하자 아예 큰 일이 생기기전에 놓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폭탄돌리기라고 볼 수도 있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입니다.
팬들에게 보낸 메시지
앵글은 최근 팬들에게 보낸 메시지의 말미에서 MMA 진출에 대한 가능성을 매우 높게 던졌습니다. 이게 WWE로 돌아가지 못할 상황에서 나온 발언인지 아니면 진의가 담긴 것인지는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WWE가 앵글을 재활치료기관에 보내려고 했지만 실패하자 결국 계약 해지를 했다는 것이고 현재 커트 앵글은 MMA에 진출한다면 단기간으로는 WWE의 수입보다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장기간을 보면 어떻게 될까요?
앵글은 현재 만으로 37세입니다. 이미 현역 레슬러로 뛴 지는 10년이 넘은 상태이지요. 본인의 의지는 매우 강하지만 이미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지난 번 팬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도 목이 두 차례 부러지고 목 수술을 두 번 받았으며 갈비뼈, 골반, 미골, 손가락, 발가락 등 셀 수 없는 뼈가 부러졌고 심지어 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에도 진통제를 사용한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메시지에서는 건강이 괘 많이 호전되었으며 곧 MMA를 준비한다는 갑작스러운 소식을 던졌지요.
MMA에서 과연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그럼 앵글은 격투기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요? 사실 매우 어려운 질문입니다. 격투기는 지난 인류가 지구를 지배한 시간 동안보다 최근 13년간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했습니다. 1900년대 중반엔 프로레슬러 루 테즈가 세계 최강이라고 불렸습니다. 이는 일본의 종합격투기 계보를 봐도 크게 무리가 없는 주장입니다. 루 테즈, 칼 고치, 빌 로빈슨 등이 바로 일본 격투기의 맹아를 퍼뜨린 인물들이지요. 하지만 지금은 2006년입니다. 앵글은 30대 후반이고 96년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였을 뿐, WWE에서 이미 몸은 만신창이가 된 상태입니다.
만약 90년대 후반에 커트 앵글이 PRIDE에 있었다면 거의 이변이 없는 한 링을 지배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인류가 지상을 지배했던 이후 최강이라고 불러도 무방한 효도르가 군림하고 있습니다. 루 테즈가 한 때 인류 최강이라고 했지만 이제 그들이 공유하던 캐치 레슬링의 후계자인 조쉬 바넷은 효도르를 이기기는 어려운 사람입니다. 루 테즈의 전성기라고 하더라도 효도르에게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됩니다.
MMA의 진보는 그야말로 눈부십니다. 아마추어 레슬링, 유도의 정상급 선수들도 MMA에서 효도르를 이기지는 못했습니다. 사실 효도르가 문제가 아닙니다. 정상급 MMA 선수와 과연 대적할 상태인지도차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결국 돈인가? 아니면 의지인가?
얼마 전엔 WWE에서 앵글에게 ‘기무라’를 성사시켰던 데니얼 퓨더에게 재대결을 하자는 제안이 던져졌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하지만 앵글의 실전 능력이 아직 검증되지 않았기에 약한 상대가 주어질 수 있다는 말도 있습니다. 사실 퓨더에게 당했던 이유는 먼저 상대했던 크리스 노라키에게서 앵글이 부상을 입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금메달리스트의 자존심이 여지없이 무너진 것은 분명했습니다. 후일 쉘턴 벤자민이 따로 퓨더를 불러서 시멘트 경기를 펼쳐서 완벽하게 제압했다는 일화가 있긴 하지만 이를 바꿔 생각해본다면 WWE내에서도 앵글이 벤자민이나 바비 래쉴리를 꺾을 수 없다는 말로도 볼 수 있는 상황입니다.
개인적으로 볼 때 앵글은 안 좋은 선택을 했습니다. 물론 기적처럼 선수들을 하나 둘씩 꺾으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지만 현재 나이나 몸상태로는 너무도 어려운 일입니다. 아무래도 초기의 몇 경기만 큰 대전료를 보장 받을 뿐, 이변이 없는 한 금메달리스트의 명예를 팔아먹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 예상이 섣부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있어서 맞아들어갔습니다. 오히려 프로레슬링보다는 격투기 결과 예상이 훨씬 쉬운 편입니다. 최홍만 선수가 K-1으로 갈 때 많은 이들은 망신을 우려했지만, 현대판 자이언트 바바가 될 수 있으므로 K-1에서 함부로 쓸 이유가 없다는 정보를 들은 터라 저에게 물어보신 분들께는 최홍만 선수의 약진을 말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날까지 이르렀습니다. 이태현 선수의 경우는 역시 PRIDE가 스타로 만들 계획이 있었지만 사실 쉽게 이기라고 준 상대에게 무너진 안타까운 경우였습니다. 사실 이런 패배는 주최측이나 예비 스타에게는 치명타가 될 수 있는 반면, 이긴 선수도 스타가 되긴 어려우므로 그다지 환영받는 결과는 아닐 겁니다.
물론 앵글도 초반엔 쉬운 상대들이 주어질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관심을 끄는 스타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앵글이 MMA에서 강자들을 연파할 것이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습니다. 제가 틀렸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앵글이 그렇게 증명해주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슬프게도 저는 현재 캔 섐락의 모습이 앞으로 커트 앵글의 종착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티토 오티즈와의 두 차례의 경기가 PPV 구매율을 높이긴 했지만 승부는 뻔했고 이변이 나지 않았습니다. 다음 경기도 있지만 승부는 뻔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앵글이 만약 20대 후반만 되었더라도 이렇게 부정적인 말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약 건강이 좋았더라면 적어도 34세에 데뷔했던 랜디 커투어보다 더 잘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과장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10년 동안 현역 레슬러가 아니었습니다. 이미 WWE에서는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고 진통제 남용으로 해고가 되었습니다. 이러다가는 제 2의 마크 커가 되어서 다큐멘터리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차라리 브록 레스너가 훨씬 더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려했던 길로 가고 있다
제가 지난 번 글에서 열거한 전설의 프로레슬러들인 릭 루드, 커트 헤닉, 브라이언 필먼, 에디 게레로 등은 지금 현재 커트 앵글과 별반 다른 길을 가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앵글은 심장병 병력이 있는 집안 출신으로 누나도 40대 초반에 심장마비로 운명을 달리했습니다. 30대 중반에서 40대 사이에 빈번하게 발생하는 레슬러들의 심장마비, 제발 앵글은 이런 비운을 피해갔으면 합니다. 그런 가능성을 줄이는 길은 은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프로레슬러들이나 격투기 선수들에게 차라리 마약보다 안 좋은 것이 진통제라는 사실, 이미 검증된 것입니다. 최근 브라이언 필먼의 DVD가 WWE를 통해 나왔습니다. 10년 뒤, 커트 앵글의 DVD가 이런 식으로 나오지 않았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앵글의 명을 재촉하는 사람들은 자꾸 늘고 있습니다. 어쩌면 팬들도 그 중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아내가 애타게 말리고 있지만 정작 안 좋은 길로 가는데 있어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은 커트 앵글, 본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첫댓글 성민수님 칼럼을 자주 보다보면 성민수님은 WWE만큼이나 MMA도 그 특유의 폭발적인 지식을 갖고 계신것 같네요. 둘간의 사이는 어머니와 자식사이긴 하지만. . .
와~
성민수님이나 천창욱님 같은 분들 글 보면 확실히 글의 깊이가 달라보이죠 ㅇ_ㅇ;;
성민수님도 이제 MMA 전문가라고 불러드려도 손색없겠네요... 좋은 글 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