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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호주 정착기(상)
“포트 더글라스야~우리가 왔다!!!”
결혼 3년차이지만 한국을 떠나 호주라는 새로운 땅으로 오니 우린 아직 너무나도 어린 존재였다. 하지만 우리는 혼자가 아닌 둘이기에 힘든 일도 잘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아자아자 화이팅!
- 다정한 부자의 모습. 해변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해안선을 따라 단단한 모래사장 위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좋은 사람과 함께라면 그 즐거움이 배가 될 것이다.
port douglas란?
케언즈에서 차를 타고 북쪽으로 1시간 정도 나오면, 작지만 아름다운 항구 도시인 포트 더글라스를 만나게 된다. 마을 자체도 예쁘지만, 마을 동쪽에 있는 4마일 비치는 포트 더글라스의 대표 관광지이다. 아름다운 해변을 따라 야자수가 있고, 이따금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기 때문에 산책을 하다보면 가슴속까지 상쾌해지는 곳이다. 4마일 비치를 따라 고급 빌라와 호텔이 줄지어 서 있는데, 아름다운 해변과 함께멋진 풍경을 연출해낸다. 포트 더글라스를 찾아갈 예정이라면 주말시장이 열리는 일요일 오전에 찾아가자. 매주 일요일 북쪽 해변에 있는 안작 파크에서 열리는 시장의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지만 아기자기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수공예로 직접 만든 기념품과 지역 특산품 등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공원 의자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직접 갈아 만든 생과일 주스를 마시는 여유로움을 누려보자.
- 전망대 위에서 바라본 포트더글라스 4마일 비치. 호주는 남반구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와는 반대로 남쪽이 춥고 북쪽이 따뜻하다. 호주의 최북단에 위치한 이곳은 지금(7월)이 한 겨울이지만 따뜻해서 추위를 피하기 위한 관광객으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그의 이야기
“다시 케언즈로 돌아가시는 게 좋을 거예요”
이곳 포트 더글라스(port. douglas)에서 처음으로 만난 한국인이 우리에게 한 말이다.
“여기 성수기라는 소문 듣고 왔는데요... 제가 잘못 들은 건가요?”
“성수기는 맞는데, 지금 한국인들이 너무 많이 몰려와서 일구하기 힘들 거예요. 제가 아는 사람도 2주 넘게 일을 못 구해서 다른 곳으로 갔어요.”
이틀 동안 열심히 달려왔는데 이게 무슨 말인가! 초장부터 이런 불길한 소리를 들으니 기운이 빠진다. 어쨌든 오늘은 시간이 꽤 늦었으니 걱정은 뒤로 미루고 잠잘 곳을 찾기 위해 백팩커스를 찾아간다. 처음 찾은 더기스(dougies) 백팩커스에서 장기 투숙이 가능한지 물어보니, 이미 자리가 꽉 찼다고 한다. 그 후 두 군데를 더 돌아다녔지만, 예약을 하지 않았으면 묵을 수 없다는 말에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더 이상의 백팩커스는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방을 구할 수 없으니 오늘은 어쩔 수 없이 텐트를 쳐야겠다는 생각에 다시 더기스로 발길을 돌린다.
“오늘 밤 여기서 캠핑을 하고 싶은데요.”
“텐트 크기가 어느 정도나 되죠?”
“그렇게 크지는 않아요.”
“한번 따라와 보세요.”
직원의 안내에 따라 도착한 캠핑장의 이색적인 모습에 나는 깜짝 놀란다. 어마어마한 수의 텐트가 좁은 공간 안에 밀집되어 있는 모습을 보니 내가 마치 벌집 속에 들어 온 듯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게다가 그곳에 묵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풍기는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 화려한 피어싱과 온몸을 둘러싼 문신, 그리고 손에 들고 있는 술병을 보니 마치 할렘가에 들어선 기분이다. 낯선 분위기 속에서 약간 긴장한 상태로 서성이는데, 저 멀리서 나를 부르는 직원의 손짓이 보인다. 그녀를 따라 텐트 칠 장소에 도착했지만, 그곳은 우리의 텐트를 설치하기에는 벅차 보인다. 도저히 그곳에는 텐트를 칠 수 없었기에 다른 곳을 안내해달라고 부탁했지만, 이곳이 유일하게 하나 남은 공간이라고 한다. 아쉬워하며 발길을 돌리지만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정뱅이들이 술병을 치켜들며 나에게 건배를 연달아 외친다.
힘들게 왔는데 침대는 고사하고 텐트마저 칠 수 없다니! 내가 그렇게 가자고 졸라서 여기까지 왔는데, 아내에게 미안하다. 이틀간 고생했는데 편안한 잠자리마저 구하지 못하다니…. 슬쩍 아내의 동태를 살펴보니 표정이 썩 좋지 않다. 나의 동물적인 감각이 빠른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다행히 멀지 않은 캐러밴 파크에서 텐트 칠 곳을 발견하여 그곳에 우리의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 조금 비싼 가격을 지불했지만 말이다. 텐트를 설치하고 밥을 먹기 위해 나서니 옆에 반가운 모습이 보인다. 자전거와 트레일러 그리고 작은 텐트, 누가 봐도 자전거 여행자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닌가? 반가운 마음에 그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혹시 자전거 여행 중 이신가요?”
“네 어떻게 아셨어요?”
“하하~ 저희도 자전거 여행 중 이거든요!”
그들은 젊은 호주인 커플로 휴가차 이곳으로 와서 자전거 여행을 하고 있단다. 추위를 피하기 위해 계속 북쪽으로 올라가고 있는 중이라고 하는데, 같은 길을 여행하고 있는 자전거 여행자를 만나니 내심 안심이 되면서 용기가 난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일의 일정을 물어보니 그들은 스쿠버 다이빙을 하러 간다고 한다.
“내일 뭐하세요?”
“저희 내일 스쿠버 다이빙 하러 가요”
“우와~ 저희도 정말 해보고 싶은데~ 비싸다고 들어서 고민중이예요.”
“아무래도 가격은 좀 비싸지만, 여기서 지금 해보지 않으면 언제 해볼 수 있을까요?”
이 말을 듣는 순간 무언가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그래서 바로 다음날 스쿠버 다이빙 투어를 신청했다. 덕분에 통장 잔고는 급격히 줄었지만 말이다.
- 더기스 백팩커스 내부의 텐트사이트. 이 곳 사람들의 분위기는 상당히 불량해 보인다. 밤에는 사진이 잘 나오지 않기 때문에 사람이 없는 오전에 사진을 찍었다. 해질 무렵이 되면 이곳은 매일같이 축제다. 그들의 텐트 안에는 TV와 냉장고까지 갖춰놓은 사람들도 있다.
-스킨스쿠버 안내 브로슈어. '톨라룩(Tallarook)'이라는 배를 타고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로 스킨 스쿠버 다이빙 투어를 떠났다. 우리가 신청한 투어 상품은 가장 저렴했던 것으로 1인당 $145+스킨스쿠버, 스쿠버다이빙 1회 50달러, 총 195달러의 비용이 들었다. 다른 지역에 비해서 비싼 편이지만 지금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은 생각에 바로 예약을 했다.
Great Barrier Reef란?
우리나라말로 대보초라고 일컫는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는 1981년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세계 최대의 산호초 지대이다. 뉴기니 남부의 플라이 강에서 퀸즐랜드 레이디 엘리엇까지 길이만 해도 2000km에 이른다. 이렇게 규모가 크다보니 대륙을 제외하고 위성에서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지구의 유일한 자연물이다.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에는 400여종의 산호가 있으며, 5000~6000종에 이르는 다양한 해양 생물이 살고 있다. 그 중에는 멸종 위기에 있는 초록 거북과 듀공(Dugong)도 있어서 학계의 관심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형형색색의 화려한 빛깔을 자랑하는 산호초와 1000여 종의 열대어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장관을 연출하기 때문에 1년 내내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배를 타고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를 향해서.
그녀의 이야기
‘Great Barrier Reef Tour(그레이트 베리어리프로~~)’
남편이 웬일로 스쿠버 다이빙 투어를 가자고 한다. 내가 가자고 할 때는 콧방귀도 안 뀌더니 외국인들과 대화 하면서 뭔가 심경의 변화가 생겼나보다. 때는 이때다 싶어 남편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얼른 투어를 신청하러 달려간다. 캐러번 파크 리셉션(reception)에 붙어있는 각종 투어광고들을 유심히 살펴보지만 그 종류가 너무 많아 고르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스쿠버 다이빙 투어 만 해도 10가지도 넘기에 어떤 배를 타고 갈까 유심히 살펴보다가 결국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서 가장 저렴한 것으로 예약을 한다.
다음날, 들뜬 마음으로 배에 오른다.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해서 ‘좀 이상하진 않을까?’ 내심 걱정했는데 막상 배에 오르니 배도 예쁘고, 선원들도 친절히 대해줘서 즐거운 투어가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드디어 돛이 올라가며 힘찬 출발! 우리는 지금 빠르게 물살을 가르며 세계최대의 산호지대인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로 향한다.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쪽빛 바다 한가운데를 멋진 배를 타고 가는 모습이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 같다. 가오리도 신이 났는지 우리 배 주위를 맴돈다. 사람들은 손에 시원한 맥주를 들고 음악소리에 맞춰 춤추고 노래도 부르면서 흥겨운 분위기를 돋운다. 그렇게 2~3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도착한 것인지 사람들이 하나둘 수영복으로 갈아입기 시작한다. 스킨스쿠버다이빙을 신청한건 우리 둘 뿐이었기에 전문 다이버 한명이 따로 설명을 해주었다. 우리 둘 다 이번이 처음이라 최대한 집중하면서 설명을 빼놓지 않고 들으려 애쓴다. 다이버 복을 입고 무거운 장비들과 함께 물에 들어갈 준비를 하니 약간 무섭다. ‘이런 바다 한가운데 들어가는 게 처음이니 주춤거리는 것이 이상한 건 아니겠지?’ 라고 생각하기가 무섭게 무거운 스쿠버다이빙 장비 덕분에 물속에 빨려 들어가고 만다.
역시나 나에게 스쿠버다이빙은 어려운 존재였다. 깊은 물속으로 들어간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수영도 잘 못하는 내가 점점 바다 밑으로 내려가니 겁이 나서 자꾸 물위로 올라오기 일쑤였다. 그렇게 물 밖으로 나오면 밖에서 보고 있던 남편이,
“지금 안하면 평생 못할지도 모르는데 왜 자꾸 나와~ 빨리해~~ 들어가~~”
라며 애타게 소리친다.
호흡을 가다듬고 괜찮은 척 손으로 ‘ok’싸인을 보내며 다시 다이버를 따라 내려간다. 머릿속은 온통 ‘안괜찮은데...안괜찮은데...’라는 생각뿐이지만, 괜찮은척하며 마음을 다잡고 물속으로 조금씩 내려간다. 전보다 조금 많이 내려가나 싶더니 갑자기 귀가 너무 아프다. 아까 설명을 듣기로는 수압 때문에 귀가 아플 수 있으니 그럴 때는 코를 잡고 입을 다물고 숨을 내쉬라고 했던 게 생각나서 시도를 하지만 물안경에 물이 잔뜩 들어오는 바람에 입으로 숨을 쉬어야 하는 걸 잊어버리고 코로 숨을 쉬고 말았다. 바닷물을 잔뜩 들이마시고 너무 겁이 나서 다이버의 손을 뿌리치고 헐레벌떡 물위로 올라온다.
나는 분명 깊은 곳에서 죽다 살아나온 기분인데, 배에서 지켜보던 남편이
“바로 앞에서 혼자 뭐해?”
라면서 웃어댄다. 괜찮냐는 말은커녕 편히 갑판대위에서 날보고 웃는 남편을 보며 속으로 ‘얼마나 잘하는지 두고 보자고!’라며 씩씩댔다.
이쯤에서 스쿠버 다이빙은 포기하고 스노클링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처음해보는 것이기도 하고 생각보다 겁을 많이 먹어서 아무래도 이번엔 이 정도로 그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음은 남편 차례, 내가 제대로 못했기에 남편이라도 내 몫까지 잘 하고 오길 바라며 바다 밑으로 내려가는 남편을 바라본다. 다행히 평소에 운동을 즐겨하던 남편은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바다 밑 세상을 모두 보고 온 듯 얼굴에 함박웃음이 가득하다.
“그렇게 좋아?”
라고 묻자 다이버와 같이 “nice~good!!!!” 을 연달아 외친다.
내가 직접 보진 못했지만 스쿠버다이빙을 무사히 마치고 온 남편의 말을 듣자니 물속이 정말 아름다울 것 같다. 수 십 마리의 열대어들과 함께 헤엄치고, 형형색색의 산호초들이 바다 속 깊은 곳에서 그 자태를 뽐내고 있다하니 다음번엔 꼭 나도 성공해서 그 광경을 보고 싶다.
스노클링과 다이빙을 끝내고 올라오니 선상에 뷔페가 한가득 펼쳐져있다. ‘얼마 나 오래간만에 먹어보는 진수성찬이냐’ 라고 생각하며 접시 하나 가득 담아서 먹으려는데 배가 출렁이고 동시에 내 배도 울렁거린다. 그 덕분에 진수성찬은 그림의 떡이 되고 과일 몇 조각만을 간신히 먹고 시체처럼 누워있어야만 했다. 이제야 아침에 사람들이 왜 그렇게 멀미약을 먹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난 배 멀미 같은 건 안 하는데?’라고 생각하며 무심히 지나쳤더니 덕분에 제대로 앉아있지도 못하고 누워있어야만 했다. 나중에 정신없이 남은 약을 챙겨먹었지만 이미 뒤집어진 속을 달래기엔 늦은 후였다.
그렇게 혼자 갑판위에 드러누워 휴식을 취해보지만 오가는 사람들마다 너무나 친절히 괜찮냐고 물어보는 통에 잠도 못자고 연신 "thank you!"만 외쳐댔다. 그래도 이마저도 이 순간 행복한 추억으로 느껴진다.
다시 육지로 돌아가면 해결해야 하는 어려움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모든 고민거리를 바람과 함께 날려버리며 남편의 넓은 어깨에 기대어 지는 석양을 바라본다.
- 스킨스쿠버다이빙을 마치고, 남편은 스쿠버 다이빙에 성공한 것이 너무 기쁜지 '나이스굿'을 연발 했다.
-뷔페식 점심 식사가 제공되었다. 생각보다 빈약했지만, 새우와 소시지를 마음껏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캐러번 파크에서 만난 귀여운 꼬마 숙녀 랠리. 분주하게 저녁식사를 준비 중이던 내 앞에서 귀여운 나비 원피스를 입고 춤을 추며 다가왔다. 아이들이 워낙 예쁘고 나를 잘 따라서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 포트더글라스의 타운 풍경. 타운은 걸어서 20분이면 한 바퀴를 다 돌만큼 규모가 작다. 하지만 고급휴양지답게 구석구석 볼거리가 많다.콜스coles(대형할인마트)를 중심으로 비치웨어와 같은 패셥 잡화를 파는 상점들이 주류를 이루고, 그밖에 투어회사, 기념품판매점, 음식점 등이 있다. 마을 전체가 휴양지이기 때문에 물가는 조금 비싼 편이다.
- 피시 앤 칩스. 서양의 일반적인 요리 중 하나로써 호주에 오면 꼭 먹어봐야 하는 음식 중의 하나! 생선 튀김과 감자칩이 전부지만 호주에서도 인기가 많다고 한다. 음식점마다 가격과 양이 다르지만 보통 1인당 $10 전후이다. 바삭바삭 구워진 생선튀김위에 레몬즙을 뿌려서 먹는 맛이 그만이다!
그의 이야기
‘일자리를 구하라!’
환상적인 투어를 다녀왔지만 아침에 좁은 텐트에서 눈을 뜨니 다시 현실의 압박감이 강하게 나를 조인다. 여기서 일을 구하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간다면 이동을 하고 또다시 일을 구하는 사이에 경비가 너무 많이 들기 때문에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력서를 돌리러 텐트를 박차고 나온다.
한국에서는 주로 인터넷을 이용해 일자리가 생겼을 때 구인광고를 내는 반면 이곳에서는 직접 작성한 이력서나 미리 준비되어 있는 이력서 양식에 맞게 작성하여 제출하면 일자리가 생겼을 때 그 이력서를 보고 연락을 주는 방식이라 이리저리 발로 많이 돌아다니는 사람에게 유리하다.
그래서 일단 주변의 한국인들에게 물어물어 이력서를 낼만한 곳의 위치를 지도에 표시해놓고 첫날은 경험삼아 한군데만 내보기로 한다. 그렇게 처음 찾아간 리조트에서 일자리가 있냐고 물으니 친절하게 이력서 양식을 건네준다. 혹시라도 문전박대 당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무사히 이력서를 제출하고 나중에 일자리가 생기면 연락을 준다는 대답을 들었다. 내친 김에 한군데 이력서를 더 제출하고 이튿날도 이곳 저곳 계속 이력서를 돌렸다.
그렇게 일자리를 구하던 어느 날 아침, 텐트 안의 습기와 벌레들 때문에 잠을 설치고 있던 우리에게 전화가 한통 걸려온다.
“이성종씨 핸드폰이죠? 일자리 구하고 계시죠? 내일 아침에 뵐 수 있을까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드디어 취직이 된 것이다! 그런데 ‘나만 취직이 된 건가? 왜 나만 오라고 한 거지? 그래도 일자리 구한 게 어디야?’ 라고 생각하는 순간 또 한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손지현씨 핸드폰이죠? 내일 아침에 뵐 수 있을까요?”
우리 둘 다 취직이 된 것이다! 그것도 같은 곳에 말이다. 우리는 리조트를 청소하는 업체에 취직이 되어 하우스키핑이라는 일을 하게 되었다. 사실 여기오기 전 까지만 해도 이런 일이 존재하는지 조차 몰랐기에 앞으로 잘 해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지만, 분명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긴다.
일자리를 구한 기념으로 이곳에서 알게 된 한국인 커플과 함께 저녁 만찬을 준비했다. 이날의 저녁은 호주에 온 이후로 처음 맛보는 정말 맛있는 저녁이었다. 그 이유는 분명 음식 보다는 취직의 기쁨 때문일 것이다.
- 칠레친구 로레나(lorena)와 함께! 약 2주정도 우리와 함께 일을 했던 로레나. 우리가 한국의 전통춤이라며 탈춤을 알려주었더니 칠레의 전통춤을 열정적으로 가르쳐줬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다시 고향인 칠레로 돌아갔는데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다시 칠레에서 만나고 싶다.
그녀의 이야기
‘PORT SEA 첫 출근!’
이력서를 돌리고 이틀 만에 취직이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한 일이다. 호주에서 일을 구한 것이 처음이어서 긴장도 되고, 외국인들과 함께 일할 생각에 들뜬 기분으로 첫 출근을 한다. 그런데 오피스 문을 연 순간, 상상과는 달리 거의 대부분이 한국인이다. 내심 안심이 되면서도 무언가 아쉬운 설명하기 힘든 기분이었다. 호주에 한국인들이 많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설마 이런 외진 곳까지 많을 줄은 몰랐는데 직원의 70~80%가 한국인이다.
일단 이틀간 트레이닝을 받기로 해서 이것저것 배우는데, 생각보다 쉽지는 않은 일이다. 단순하게 청소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이것저것 꼼꼼히 신경 써야하는 부분이 너무 많다. 그리고 사용하는 청소용액도 5~6가지 종류가 있는데 사용법도 다 다르고, 화학약품이라서 신중히 사용해야만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일도 익숙해지고, 외국인과 함께 일하면서 영어로 대화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더운 날씨에 시원한 리조트 안에서 예쁜 풍경을 보며 일한다는 점이 매우 마음에 든다.
이제 좋은 일자리도 구하고 일도 손에 익어가지만, 계속되는 텐트 생활이 나를 괴롭힌다. 여행 중에 하루하루 새로운 곳에서 머무는 것과 달리 보름 넘게 한 자리에서 계속 텐트를 치고 있자니 여간 고역이 아니다. 부동산에 가도 9개월 이상 살지 않으면 방을 빌려줄 수 없다는 말 뿐이고, 백팩커스의 도미토리 자리는 예약을 해놓았지만 언제 나올지 알 수 없으니 답답할 뿐이다. 남편은 지금은 어쩔 수 없으니 좀 더 참아보자고 말하지만 매일같이 늘어나는 나의 짜증을 받아주기엔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매일같이 근처 대형할인마트(COLES) 게시판으로 달려가 쉐어룸을 찾아보지만 한창 성수기라서 방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만 있을 뿐 방이 있다는 글은 찾기 어려웠다.
그렇게 며칠간을 찾아간 끝에 드디어 한 장의 쪽지를 발견한다. 다른 사람들이 볼까 냉큼 쪽지를 주머니에 넣어 집까지 가져온 뒤 급하게 연락을 한다. 상대방이 호주 현지인이어서 전화로 의사소통하는데 조금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무사히 약속날짜를 잡고 집을 보러 가게 된다. 그렇게 집주인을 만나고 집을 둘러보니 깨끗하고 넓은 게 아주 마음에 든다. 그러나 비싼 가격과 직장에서 멀리 떨어진 위치가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집이 아주 좋네요. 그런데 일주일에 $200은 좀 비싼 것 같은데 깎아주실 수 있을까요?”
(참고로 town쪽 시세는 1인당 1주일에 $80~90 정도였기에 비싼 편이었다.)
“이 가격에 이런 집 만나기 힘드실 텐데요.”
“그런데 저희 직장이랑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요, 좀 깎아주세요~~.”
라며 애교를 부려본다. 한참을 생각하던 집주인은
“그럼 좀 깎아드리죠. $165 어때요?”
사실 좀 더 깎고 싶었지만, 텐트로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하니 눈앞이 깜깜하다. 그래서 집주인의 마음이 바뀔까봐 얼른 대답한다.
“좋아요! 그렇게 하도록 하죠. 내일 바로 입주 가능할까요?”
그렇게 우리는 호주 노총각 아저씨와 함께 셋이서 한집에 살게 되었다. 이제 일자리도 있고, 집도 구하고 호주 생활에 점점 익숙해지는 것 같다. 앞으로 아저씨와 지내게 될 하루하루도 무척 기대가 된다. 호주에 오니 처음 겪는 일들이 많아 항상 모험의 연속인 기분으로 지낸다. 늘 즐거운 모험만이 기다리는 것은 아니지만 젊은 날의 소중한 추억이기에 행복하다.
- 출근길모습. 편도 7km정도의 거리를 매일같이 이렇게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고 있다. 입고 있는 옷은 하우스키핑 유니폼이다. 이 지역의 리조트들은 거의 같은 청소용역업체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출퇴근 길에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 위험! 악어 출몰 지역! 절대 인적이 드문 곳이 아니다. 매일 같이 출퇴근 하는 길목에 있는 곳 이다. 물론 여기서 악어를 본적은 없지만 이곳에만 오면 나도 모르게 자전거 속도가 빨라진다. 비가 많이 내리던 어느 날 악어가 리조트 수영장까지 흘러 들어왔었다고 할 정도로 포트더글라스에는 악어가 많다고 한다.
- 바이크 샾 앞에 전시 되어 있는 탠덤 자전거. 우리도 여행준비 초반에 탠덤 자전거를 생각했던 적이 있었지만 각자의 개성을 살리자는 쪽으로 의견을 맞추고 포기하였다. 하지만 가끔 탠덤을 타고 여행을 해보고 싶은 생각도 든다. 여자가 편하다는 얘길 많이 들어서.....^^
포트더글라스의 자전거 문화
이곳에는 자전거의 교통 분담율이 상당히 높다. 자전거 도로도 잘 되어 있고, 동네가 크지 않아 어디를 가든 자전거로 20분이면 다닐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덕분에 자전거도로에서 다양한 종류의 자전거를 만날 수 있다. bmx를 타는 아이들과 멋진 로드 싸이클을 타는 아가씨, 그리고 아이를 트레일러에 태우고 다니는 가족과 탠덤 자전거, 그리고 패니어에 짐을 잔뜩 싣고 여행을 떠나는 자전거 여행자를 만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미니벨로는 이곳에서 찾아보기가 힘들다. 덕분에 우리의 자전거가 주목을 받긴 하지만 말이다.
여기는 횡단보도나 교통 신호가 하나도 없지만 교통이 혼잡하지 않기 때문인지 길을 건너기 어렵다거나 자동차 크락션 소리를 듣는 일은 흔치 않다. 그러나 저녁에 자전거를 타는 일은 매우 위험하다. 해가 지면 가로등도 없고 차들도 워낙 빨리 달리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가 이곳에 온지 얼마 안 됐을 때 한국인 여학생이 아주 늦은 밤에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차에 치여 안타깝게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 여학생의 잘못보다는 어린 운전자의 과실로 밝혀졌지만 그만큼 이곳에서의 야간 라이딩은 매우 위험하다. 모두들 안전을 생각하여 야간에는 꼭 안전등과 헬멧을 착용하고 방어운전을 하도록 해야겠다.
- 포트더글라스의 풍경.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이다. 마치 엽서 속에 들어간 기분이다.
작성자 이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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