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읽는 삼국지 4
관우에게는 청룡언월도가 없었다
[삼국지연의]의 제1회에는 유, 관, 장이 도원에서 의형제를 맺는다. 생사를 함께 하며 서로
협력해 위기에 대처하고, 위로는 나라에 총성하며 아래로는 백성을 재난에서 구할 것을 맹
세하는 것이다.
그 후 우선 준마를 사고, 유비는 도공에게 명해 쌍고검을 만들었으며, 관우는 무게 82근의
긴 자루가 붙어 있는 반달 모양의 큰칼인 청룡언월도(별칭 냉염거)를 만들었다고 쓰여있다.
20여 년에 걸쳐 계속되는 정벌의 과정에서 사람들은 관우의 이 청룡언월도에 대해 강한
인상을 받게 된다.
용맹한 관우는 평생 전장을 누볐다 청롱언월도에 의해 안량과 문추가 목숨을 잃었고, 다
섯 관문을 지나는 장면에서는 조조의 부하 장수 여섯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밖에도 청룡
언월도에 희생된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민간전설에 나오는 청룡언월도는 더욱도 그럴 듯한 치장이 되어 있다. 전설에 의하면 관
우는 마음에 드는 무기를 손에 넣기 위해서 도검 제작의 명인 몇 명에게 부탁해, 두 달에
걸쳐 강철을 담금질해서 겨우 푸른빛의 큰 칼을 만들었다고 한다. 장인들은 이것으로 다 되
었다고 생각했지만, 관우는 만족하지 못하고 더욱더 담금질을 하게 했다는 것이다.
담금질은 다시 한 달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달이 하늘에 높이 뜨던 날, 장인들이 불 속에
서 그 칼을 꺼내어 담금질하려고 하자 칼에서 하늘을 향해 한 줄기 빛이 솟았고, 바로 그대
하늘에서 한마리 청룡이 내려와 빛에 맞았다. 용의 피가 칼 끝에서 방울방울 떨어지며 우레
와 같은 소리가 났다. 사람들은 놀라서 도망쳤다.
관우가 다가가서 보니 맑고 투명해 마치 보석처럼 보이는 칼이 땅 위에 세워져 있었다.
바로 이 칼이 반달을 닮았고 청룡의 피로 담금질해서 완성된 것이라 하여, 청룡언월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것이다
민간에는 또 이런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관우의 오른팔인 주창도 청룡언월도 한 자루를 가지고 있었는데, 관우의 칼이 이미 망가
져 버렸기 때문에 관우는 주창의 청룡언월도를 얻기 위해 주창의 사소한 과실을 문제삼아
그에게서 청룡언월도를 받아냈으며, 그 이후 주창의 수중에서는 청룡언월도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설가의 민간전설 모두 그냥 믿어버리기에는 어딘가 어색하다.
그럼 관우는 정말 청룡언월도를 사용했을까?
이에 대해서는 진수의 정사나 다른 역사책에도 명확한 언급이 없다. 정사에서는 두 곳에
서 관우의 무기에 대해 언급을 하고 있는데, 그 하나는 <관우전>에 나오는 안량을 벤 대목
이다.
"관우는 안량의 깃발과 수레를 멀리서 바라보더니 말을 채찍질해 다가갔다. 원소의 대군
이 보는 앞에서 안량을 찌르고 그의 목을 베어 돌아왔다. 원소의 여러 장수들은 너무나도
강력한 관우의 위력에 두려움을 느꼈다. 그래서 그들 중에 관우를 상대하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또 하나는 <노숙전>에 나오는데, 관우와 노숙이 익양에서 회견하는 단도부회(한 자루의
칼을 지니고 회담에 나아가다)의 부분으로 여기에서는 '대도, 칼'등으로만 표현되어 있다.
양나라의 도홍경이 저술한 [고금도검록]에도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관우는 유비에게 총애를 받아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몸소 도산의 철을 캐서 칼 두 자루
를 만들고 '만인적'이라는 이름을 새겼다. 그러나 전투에 패하자 그는 칼을 아끼는 마음에
물 속에 던졌다."
이상의 기술에서 관우가 사용한 무기는 확실히 칼이다. 그러나 그 칼이 자루가 긴 대도였
는지, 아니면 청룡언월도라 불리우는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성도 무후사 박물관의 담량소는, "관우의 칼은 청룡언월도가 아니며, 관우는 청룡언월도
따위는 본 적도 없었다"고 말한다.
고대의 병기는 크게 장단(길고 짧은 무기), 원사(멀리 쏘는 무기), 방구(방어용 도구)등의
종류로 나뉜다.
예를 들면 검이나 박도(자루가 짧고 폭이 좁은 장도), 비수 따위는 단병기이고, 여러 종류
의 창은 장병기이다. 활은 주로 멀리 쏘는 무기이고, 방패와 갑옷은 방어도구이다.
삼국시대에는 긴 자루가 달린 칼은 출현하지도 않았다.
주위가 지은 [중국병기사고]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현대에는 극(끝이 두 가닥으로 갈라져 있는 창)의 제작이 성행했고, 모(자루가 긴 창)가
그 다음이었다."
곧 당시의 장병기는 극과 모였다는 것이다.
[후한서]나 [삼국지]에는 긴 자루가 달린 칼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없다. '장극백만(긴 극이
무수히 많음)'이라든가, '극을 얹어서 모를 잡는다'와 같은 기록만이 있을 뿐이다. 한대 유적
지에서도 긴 자루가 달린 대도는 출토되지 않았다. 창이나 대도가 장병기가 된 것은 당대부
터이기 때문이다.
그럼 사서 속의 관우가 사용한 칼은 어떤 무기인가. 항상 몸에 지니고 있었던 것은 단도
이고, 안량을 찌른 무기는 당시 유행하던 '모'일 것이라고 담량소는 보고 있다.
첫댓글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