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소가죽 구두 -김기택.
소가죽 구두
ㅡ김기택(1957~ )
비에 젖은 구두
뻑뻑하다 발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
신으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구두는 더 힘껏 가죽을 움츠린다
구두가 이렇게까지 고집을 부린 적은 없었다
구두주걱으로 구두의 아가리를 억지로 벌려
끝내 구두 안에 발을 집어넣고야 만다
발이 주둥이를 틀어막자
구두는 벌어진 구두주걱 자국을 천천히 오므린다
제 안에 무엇이 들어왔는지도 모르고
소가죽은 축축하고 차가운 발을 힘주어 감싼다
* 출근 준비 중이다. 구두에 발이 안 들어간다. 주걱으로 억지로 벌려 신는다. 출근을 한다. 이게 다인가. 아니, 어제 나는 빗길을 오래 걸어야 했다. 구두가 나 대신 깊이 젖었다. 그걸 신고 또 나가야 한다. 오늘은 무슨 비가 내리려나. 모른다. 구두에게 맡기자. 구두는 나를 태우고 나와 함께 가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이영광·시인·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