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독자에게 유쾌함을 선사해주시는 스피노자님의 ‘노래방에서 살아남기’ 시리즈의 연재가 중단된 지도 벌써 여러달이 되었다.
끊임없이 딴지를 걸어오는 후학에게, 날카로우면서도 너그러운 댓글로 늘 친절하게 호응해 주시는 스피노자님께서 ‘다음 글인 조바꿈 편을 이어서 완성하라’고 하신 분부(?)를 핑계삼아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반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버렸다.
그 당시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글을 완성해서 카페에 등록하려다가 경험 부족으로 인해 날려버린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덕분에 구글 Docs를 이용하기 시작했고, 듀크님이 글쓰기를 중단하신 틈을 타서 카페 데뷔작(?)인 ‘정상의 추억’ 시리즈를 대신 올리게 되었지만, 아직도 마음 한 켠에 그 글을 날려버린 아쉬움이 남아 있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원문을 되살리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사실 그 글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고음불가라고 기죽지만 말고 노래방 마이크에 장착된 높낮이 조절 버튼을 잘(!) 이용해서 본인 목소리에 맞게 반주를 조옮김(흔히들 조바꿈이라고 하는) 하면 된다.
이곳에서 장황하게 조바꿈과 조옮김의 차이점에 대해서 설명해 봤자 대부분의 독자들은 스킵할 게 뻔하고 남녀 별로 각기 다른 음역대를 분류하는 이론도 아는 사람은 이미 알고 모르는 사람은 계속 모르고 싶을테니 쓸데없는 시간낭비에 불과할 것이다.
사실 노래방에서 살아남기에 필요한 모든 테크닉은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인실ㅈ’ 이라는 말로 대신할 수 있겠다. 글이나 동영상을 통해 배운 이론 보다는 실전을 통해 갈고 닦은 진짜 실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각설하고, 애당초 원글을 복구해 보려고 하다가, 음악적 일가를 이루신 스피노자님 마저도 헷갈리게 만드는 조바꿈과 조옮김의 차이점에 생각이 미치자 ‘왜 사람들은 이 둘을 혼동하는 것일까?’라는 문제에 초점을 맞춰 보기로 했다.
영어로는 조바꿈을 ‘모듈레이션(Modulation)’, 조옮김은 ‘트랜스포지션(Transposition)’이라고 한다.
여러 다른 분야에서 조금씩 다른 의미로 쓰이는 용어인 모듈레이션은 전자공학/통신 분야에서는 FM(Frequency Modulation), AM(Amplitude Modulation), 그리고 인터넷 초창기에 많이 쓰이던 모뎀 (Modem - Modulation/Demodulation) 등으로 활용되며 무엇인가를 새로운 모습으로 바꿀 때 자주 쓰이는 개념이다.
이와는 달리 트랜스포지션은 다른 분야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고 빙세기님이 전공하신 인류학 분야 등에서 유목민처럼 사는 장소를 옮겨 다니는 것을 표현할 때 쓰이는 정도인 것 같다.
모듈레이션과 트랜스포지션을 우리말로 번역한 ‘조바꿈’과 ‘조옮김’이라는 단어들에서 ‘조’라는 개념을 뺀 ‘바꿈’과 ‘옮김’은 좀 더 흔하게 쓰이는 단어들이다. 이런 단어들이 대개 그렇듯이 적확한 의미 파악은 그 때 그 때 쓰이는 상황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 역이민을 주제로 한 카페에 올리는 글인만큼, 이 두 단어가 주는 음악적 혼동의 근원에 대한 탐구는 잠시 접어두고 역이민이라는 관점에서 고찰을 해 보기로 했다.
우선 ‘바꿈’하면 한 때 유튜브에서 즐겨 보았던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라는 강연 프로그램이 먼저 떠오른다. 만일 제목이 ‘세상을 옮기는 시간’이었다면 ‘일런 머스크의 화성 식민지 건설’에 관한 얘기를 다루는 프로그램인가 싶었을 것이다. 우리에게 세상을 옮긴다는 것은 그만큼 익숙하지 않은 개념이다. 유목민과 달리 쉽게 사는 곳을 옮길 수 없었던 농경민이 살기 힘든 세상을 변화시키는 방법은 ‘옮김’ 보다는 ‘바꿈’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70년대 이후 이민자가 늘어나면서 국적을 바꾸는(세상을 옮기는) 일이 흔해졌다. 그 후 강산이 여러번 바뀌고 나니 고국으로 돌아가는 역이민자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바야흐로 코로나 시대를 맞아 급물살을 타는 느낌이다.
역이민이라는 것은 한 번 이민을 떠났던 사람들이 원래의 국적을 회복하거나 또는 국적은 그대로 유지한 채 거주지역을 본래에 속했던 국가로 옮김으로써 자신이 처한 환경을 다시 한 번 바꾸는 행위이다. 여담이지만 역이민의 원조는 미국에서 재회한 필자의 친구 아버지이신 것 같다. 수차례 미국과 한국을 오가다가 결국엔 미국에 정착하신 것으로 기억한다.
이렇듯 바꿈도 옮김도 어느 정도 자유로운 이민자, 특히 역이민자의 관점에서 볼 때 조옮김이나 조바꿈이 거기서 거기인 것 같다고 느끼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 수 있겠다. 조바꿈은 일시적인 것이고 조옮김은 곡 전체를 관통하는 것이라는 음악적 전제가 바꿈과 옮김이 혼재된 삶을 살아온 이들에게는 잘 와닿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 카페에는 복수국적자 혹은 대기자로서 미국과 한국 등의 장소에 고루 거처를 두고 계신 제주아톰님과 CA Yoon님을 비롯해서 소라게(또는 집게, 영어로는 Hermit Crab)처럼 집을 등에 짊어지고 (때론 탈피를 하면서) 계속 옮겨 다니시는 로변철님 같은 분도 계신다. 이 분들이야말로 바꿈과 옮김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이민자들로서 ‘역이민자’라는 호칭보다는 ‘무한궤도 이민자’ 또는 ‘21세기형(形) 유목민’이라는 호칭이 더 어울릴 듯 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세계로 뿔뿔이 흩어져서 살아가는 모습에서 유래한 디아스포라(Diaspora)로 일컬어지는, 역마살이 제대로 낀 이민자들에게 있어서, 삶이란 끊임없는 바꿈과 옮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조바꿈으로 흔히 혼동되는 조옮김이 노래방에서 노래를 잘 불러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듯이, 우리네 삶에 있어서의 바꿈과 옮김도 모두 보다 나은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선택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국적을 가지고 어디로 옮겨 다니던,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려는 노력은 가치가 있다. 어느 곳에 살던, 지구별이라는 곳은 우리의 후손들이 영원히 뿌리 내리고 살아갈 행성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런 지구별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속한 나라의 지도자를 잘 뽑아야 한다는 생각이 요즈음 미국 선거철을 맞아 더욱 절실해진다.
첫댓글 본문내용이야 옮기던지 바꾸던지 상관없이 저의닉을 거론해 주셨으니 저도 추천 꾹-으로 보답을..ㅎㅎㅎ
저는 이제 출발! 고향앞으로를 두손으로 count down을 시작합니다. 10부터 시작해서 내일은 9로....
역시 윤선배님의 댓글 답습니다. ㅎㅎ 첫댓글과 추천 감사드려요.
먼저 가서 길 닦아 놓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인류의 정주민 역사는 유목의 역사와 비교해보면 아주 짧은 시간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요. 신 유목민의 시대가 도래하는가 하더니 역병이 창궐하여 주춤한듯 하지만, 일시적인 상황이라 여깁니다. 간만에 만나는 Myst님의 글을 읽는 재미에다 반가움이 더해집니다!
여기 주춤한 신유목민 하나 추가입니다. ㅋㅋ
두 분 건강하시지요? 빨리 사태가 진정되어서 다시 만나 뵐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인간은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다, 그리고 그 사이에 옮겨다닌다(migrate)" 고 합니다.
역이민의 관점에서 본 바꿈과 옮김 재미있습니다.
저도 노래를 듣기만 하고 노래 부를 일이 별로 없다보니 점점 고음불가 ㅠㅠ
선생님이 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들에게 문제를 냈다
술에 취해 거리에서 큰 소리를 지르거나
노래를 부르는 것을 사자성어로 무엇이라고 하는가?
"( )( )( )가"
아이들의 답이 제 각각이었다
“고음불가”
“이럴수가”
“미친건가”
그런데 한 아이의 답에 모두가 뒤집어졌다. .
“아빠인가” ㅋㅋㅋ
언젠가 한국에 역이민 하게되면 미스트님과 노래방에서 제 18번을 부를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https://youtu.be/kKlF7evK0nI
PLAY
"아빠인가"에서 현웃 터졌습니다. ㅍㅎㅎㅎ
아이들의 천진난만하고 비판적인 시각은 늘 신선합니다. (http://egloos.zum.com/mirzstar/v/10321507)
빙세기님의 18번 저도 좋아하는 노래입니다. 저라면 3도 정도 아래로 조옮김해야 간신히 부를 수 있을 듯...
그런 날이 생각보다 빨리 왔으면 좋겠네요.
전 이 노래를 연습해서 화답해 보겠습니다.
https://youtu.be/gZWRW1oK9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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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끊임없는 바꿈과 옮김" 이런것도 게으른 사람들은 하기 어려운 일들인거 같습니다.
이 역병의 창궐으로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삶이 예상이 드네요. 감사합니다.^^
이제 어려운 줄도 잘 모르겠습니다. 늘 귀찮긴 하지만... ㅎㅎ
건강히 잘 견뎌내시고 계획하신대로 이루시길 바랍니다.^^
조 옮김이 맞군요.
"나와 논쟁하고 싶은가? 그럼, 먼저 당신의 용어를 정의하고 시작하라. 소크라테스"
윤상의 노래 한 곡 정도는 제 애창곡에 들어있고 당연히 4개의 반음을 떨어뜨려야합니다.
이 노래도 그 노래의 비슷한 분위기이네요.
우물쭈물 흐느적거리는 듯한 노래의 흐름을 저도 좋아합니다.
새로운 노래 소개해주셔 감사.
사실 애매한 경우도 좀 있더라구요. 이런 (https://youtu.be/V_ShrEDlVCc?t=86) 경우엔 조옮김 같은 조바꿈이라고 해야 할 듯... 노래방에서도 가끔 일어나는 현상이죠. 노래 부르는 도중에 음역이 안 맞는 것 같아서 몇 도 이동하는...
윤상 노래 좋아하시면 Spotify에 윤상 베스트 앨범이 있습니다. (https://open.spotify.com/album/5oerE9XQ8PhB5nlZwk7Itd)
표절판정을 받은 로라(윤상 곡, 변진섭 노래)의 원곡으로 알려진 노래:
https://youtu.be/i1oqXsaCu_c
PLAY
바꿈과 옮김의 차이가 사실 다른 듯 비슷한 듯 합니다. 옮기면 바뀌고, 바뀌면 또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으니 말입니다.
어디를 가든지 어느 곳에 살든지, 또 무엇을 하든지 결국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다소의 차이(문화적, 가치관적 차이)가 있으나, 그래도 인간이라는 큰 틀에서 보면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 지구별에 살고 있는 영장류 최고봉의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좋은 글 마음 속에 담고 갑니다. 건강하십시오.
옛날 어느 스님의 말이 떠오릅니다. '저 깃발이 아니라 네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다...' 에릭손님도 좋은 글 계속해서 많이 쓰시고 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