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야근을 마치고 오후 늦게까지 자고 일어났더니 희소식이 날아와 있네요.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이 불매운동을 시작한지 하루만에 <광동제약>이 ‘조중동 편중광고’ 시정을 약속했습니다. 매우 발빠른 조치에 다소 놀랍네요. 소비자의 힘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보여준 쾌거라고 보여집니다.
어제 <광동제약> 관계자와 통화했을 때 사실 좀 긍정적인 예감이 들긴 했습니다. 의외로 쉽게 해결될 것 같은 분위기가 느껴지더군요. 제가 인터뷰 요청 전화를 처음 드렸을 때, 절 피하기만 할 줄 알았는데, <광동제약> 관계자는 오히려 친절하게 전화를 받으며 “내일 당장 언소주 관계자를 만나 협의하겠다”고 말하더군요. “어떤 이야기든 일단 듣고 그 분들이 바라는 것을 최대한 협의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의외였습니다. 제가 전화 했을 때, 광동제약은 이미 회장과 임원들까지 참석한 비상회의를 세 시간 넘게 갖고 입장정리를 한 듯 보였습니다.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이 <광동제약>을 선정한 것은, 광동제약이 지난 4/4분기부터 올해 5월까지 <한겨레>에 비해 조중동 등에 12배 가량 많은 편중광고를 했기 때문입니다. 광동제약은 “조중동의 열독률이 월등히 앞서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입장이었지만 언소주 대표를 만나 결국 “편중광고를 중단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게다가 액수까지 동일하게 맞추겠다고 약속했다고 하니 <광동제약>으로서는 어려운 결심을 한 듯 보입니다. 사실 광고업계에서는 조중동의 광고 단가와 <한겨레> <경향>의 광고 단가 기준 자체가 다릅니다. 이를 맞춰주겠다는 건 광고업계의 관행 자체를 거스르겠다는 것이거든요. 이런 결정을 내린 <광동제약>에 격려해주고 싶습니다.
아래는 광동제약 홉페이지와 이례적으로 대표이사가 직접 언소주 쪽에 전달한 공문입니다.
그런데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이 <광동제약>과 맺은 협의 결과를 두고 ‘언소주’내에서는 찬반 양론이 팽팽한 듯 보이네요. ‘조중동에 광고를 싣지 않겠다’는 기업의 약속을 받아내지 못한 것은 애초 ‘조중동 폐간’을 목적으로 한 언소주의 입장과 다르다는 회원들의 항의글이 빗발치고 있네요. 반면,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며 ‘편중 광고 중단’을 이끌어낸 것도 성과라는 현실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전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언론계에 몸담고 있기 때문에 일개 기자인 제가 ‘조중동 폐간’을 주장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나중에 언론노조 위원장이라도 되면 당당하게 폐간 외치다가 사멸하겠습니다.^^) 소비자 운동으로 조중동 폐간이 이뤄진다면 언론사에 길이 남을 업적이 될 수도 있겠지만, 조중동이 폐간된다고 해서 언론계의 고질적인 문제들. 그러니까 권언유착이나 기업과 언론의 유착 문제가 해결되진 않을 것 같습니다. 조중동 아닌 문화일보는 좋은 신문인가요? 그래서 또 문화일보 잡으면, 그 다음은요? ‘조중동 폐간’은 상징적인 목표는 될 수 있어도 단기적으로는 무리한 목표인 것 같습니다. ‘조중동 폐간’은 자본주의는 비민주적 체제니까 당장 혁명을 하자는 얘기와 같은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시스템을 바꾸는 운동이 필요한 게 아닌가 합니다. 상징적인 언론사 몇개 잡아 족친다고 언론 소비자 운동이 승리하는 것이라고 보긴 어렵겠지요. 언론이 언론답지 못하게 만드는 시스템을 바꿔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조중동 편중 광고 기업 불매운동'은 그런 시스템을 바꾸는 데 기여할 것 같습니다.
아무튼 <조중동>에만 집중 광고하는 기업들의 편중광고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언소주’의 이번 성과는 매우 큽니다. 사실 조중동에 광고를 내린다고 해서 기업들이 <한겨레,경향>에 광고를 더 주는 건 아니었거든요. 바람직한 언론 소비자 주권 운동이 뜻하지 않게 신문광고시장 자체를 위축시켜 저희들도 시름시름 앓게 만들어 온게 사실이었습니다. 이젠 저희 <한겨레>도 살고, 언론소비자주권도 한 걸음 내딛게 된 것 같아 기쁩니다.
‘언소주’는 이제 두번 째 불매운동 기업 선정에 착수했습니다. 두 번째 기업은 어디가 될까요.
기업들은 선택해야 할 것 같습니다. ‘조중동에 광고를 내리거나’,‘한겨레.경향에 동등하게 광고를 싣거나’.
조중동도 이제 선택해야할 것입니다. ‘재벌,친정부적 기사만 쓰거나’ 아니면 ‘언론 본연의 자세로 돌아오거나’.
더 이상 기업들이 대놓고 당신들 편들기 힘들어질 수도 있습니다.
#덧글.
언론소비자주권운동의 감시에서 저희 <한겨레>라고 예외는 아닐 겁니다. '언소주'의 몇몇 분들은 “한겨레, 경향에 기업들이 광고하게 하는 게 우리의 운동 목표였냐”고 꾸짖으시더군요. 맞는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 <한겨레> 역시 긴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부터 잘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