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시킨 초상화. 오레스트 키프렌스키
역병 창궐 이후 사람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가장 빈번하게 주고받은 문장이 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This too shall pass.)
지금은 모두가 힘들지만 이것 또한 지나가게 되어 있으니 조금만 참고 견뎌내자는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다.
물론 돌림병 전에도 사람들은 이 명구를 반지에 새기거나 노트에 써놓고 인생의 금언으로 삼았다.
인터넷 검색창에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입력하면 미국 시인 랜터 윌슨 스미스(Lanta Wilson Smith, 1856~1939)의 이름이 나온다. 랜터 윌슨 스미스의 시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오래전부터 회자되었다. 4연으로 된 이 시는 각 연마다 후렴구처럼 "이 또한 지나가리라"가 나온다. 그중 2연을 감상해본다.
끝없이 힘든 일들이 / 네 감사의 노래를 멈추게 하고 /기도하기에도 너무 지칠 때면 / 이 진실의 말로 하여금 / 네 마음에서 슬픔을 사라지게 하고 / 힘겨운 하루의 무거운 짐을 벗어나게 하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런데 정작 이 시인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게 없다. 인터넷을 뒤지면 아주 흐릿한 흑백 사진의 여성이 등장한다. '랜터'가 미국 여성 이름이었나? 위키피디아 영어판에 들어가 Lanta Wilson Smith를 입력하면 아무것도 검색되지 않는다. 이 정도로 유명한 시를 쓴 시인이라면 최소 몇 줄이라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 구절의 출처는 어디일까. 성경 속에 나오는 구절이라는 말도 있지만 확실하진 않다.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이 문장의 출처에 관한 질문이 수십 개 올라와 있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그렇지만 어느 것도 속 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한다.
母系는 아프리카 흑인 노예
이 구절과 관련 떠오르는 시인이 알렉산드르 푸시킨(1799~1837)이다. 그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는 전국의 둘레길에 가장 많이 게시되어 있다. 4연으로 된 이 시에서 각 연의 마지막에 '이 또한 지나가리라'와 비슷한 구절이 반복된다.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다시 그리워지나니>
한국인이 러시아 시인의 시 몇 구절을 암송하는 것처럼 푸시킨이 세계인의 정신사에 끼친 영향은 광대하다.
푸시킨의 친필 원고와 푸시킨의 자화상.
그는 모스크바에서 태어났지만 인생의 절반 이상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보냈다. 푸시킨 초상화나 푸시킨이 직접 그린 자화상을 자세히 보라. 바이킹의 피가 흐르는 슬라브인의 전형적인 얼굴과는 거리가 멀다. 곱슬머리에 피부는 까맣다. 푸시킨의 외증조부는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의 왕족이었다. 전쟁에 패하면서 노예로 전락했다. 노예로 떠돌다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 주재 러시아대사의 수중에 들어간다.
러시아대사가 본국으로 귀환하면서 이 노예를 표트르 대제에게 시동으로 상납했다. 이 흑인 시동이 표트르 대제의 눈에 들었다. 표트르 대제는 부지런하고 총명한 시동을 총애해 그에게 아브람 한니발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고 귀족 품위까지 주었다. 한니발은 러시아 여성과 가정을 꾸려 자식을 낳았다. 한니발의 손녀가 바로 푸시킨의 어머니다.
귀족기숙학교 복도 창문에서 바라본 예카테리나 궁전⁵
푸시킨은 괴테에 버금가는 부유하고 지적인 가정환경에서 성장했다. 친가에 문재(文才)가 있는 사람이 여러 명 있었다. 아버지는 나폴레옹 전쟁에 참전해 무공을 세운 무관이면서 시인이기도 했다. 아버지는 반려견이 죽자 반려견을 애도하는 장문의 시를 쓴 사람이다. 푸시킨은 외할머니로부터 러시아 읽기와 쓰기를 배웠다. 외할머니는 푸시킨이 귀족기숙학교에 다닐 때 유려한 문장의 편지를 보내 친구들을 감동시켰다.
푸시킨의 인생에서 중요한 시기는 차르스코에 셀로(황제의 마을)귀족기숙학교에서 보낸 7년(1811~1817)이었다. 학교는 아름다운 궁전과 정원, 호수로 둘러싸여 있었다. 비범한 감수성을 타고난 소년은 이런 환경에서 7년을 보냈다. 기숙학교 시절이 중요한 것은 또 한가지 이유는 여기서 자유주의 사상이 싹텄다는 사실 때문이다.
학교 졸업 후 외무성 관리가 된 푸시킨은 데카브리스트 당원들과 어울렸다. 이즈음 '자유'라는 제목의 시를 쓴다. '자유'는 청년들에게 인기를 끌었고, 특히 전제정치에 반감을 품은 청년들에게 경전처럼 암송되었다. 급기야 '자유'는 반체제 운동의 아이콘이 되었다. 불온한 시를 쓴 시인 푸시킨이 귀족학교 출신의 외무성 관리라는 사실에 차르는 분노했고, 푸시킨은 유배를 당한다.
1825년 12월14일, 상트페트르부르크에서 '데카브리스트 반란'이 일어난다. 일단의 장교들이 병사 3000명을 이끌고 광장에 모여 정치개혁을 요구했다. 푸시킨의 친구들이 주동이 된 '데카브리스트 반란'이 일어났을 때 그는 다른 곳에 있었다. 알리바이가 완벽했지만 이후 푸시킨은 차르 권력으로부터 지속적인 감시를 받는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푸슈킨이 배후로 의심받았다.
푸시킨의 신혼 시절 모습.
1830년, 서른한 살의 시인은 열일곱 살 곤차로바와 약혼을 한다. 그전에도 두 번 결혼하려는 여성이 있었지만 결혼이 성사되지 못했다. 그가 좋은 집안에 유명 시인이긴 했지만 권력층과 불편한 관계라는 점을 여자 집안에서 부담스러워했기 때문이다.
콜레라 창궐로 3개월간 갇혀
결혼을 앞두고 그는 아버지로부터 볼지노 영지(領地)를 물려받는다. 영지의 새 주인이 된 그는 3주 예정으로 볼지노를 방문한다. 그런데 볼지노 영지에 들어간 직후 주변에 콜레라가 창궐한다. 당국은 즉각 주변 지역에 대한 여행금지 조치를 내렸고, 그는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다. 여행금지 조치가 해제될 때까지 3개월 동안 영지에 갇혔다.
콜레라 창궐을 누가 예상이나 했겠나. 시인의 모든 일정이 엉망이 되었다. 그런데 때때로 행운은 불운의 얼굴로 다가온다고 했던가. 대자연 속에 파묻혀 지내면서 시인은 생각지도 못한 영감을 얻었다. 찾아오는 사람이 없는 완벽한 고립과 고독 속에서 시인은 오로지 집필에만 몰입했다. 3개월의 강제된 격리 속에 태어난 작품이 '예프게니 오네긴' '벨킨 이야기'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다.
'예프게니 오네긴'은 운문 희곡이다. 출간하자마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차이콥스키가 이 작품에 곡을 붙여 오페라 '예프게니 오네긴'이 탄생한다. 서울 예술의전당에서도 몇 번 공연된 적이 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지난 3월 코로나 사태로 인해 예정된 모든 공연을 취소하면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공연한 작품들을 선별해 인터넷 무료 감상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중 3월23일 프로그램이 바로 '에프게니 오네긴'이었다.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역시 운문 희곡이다. 모차르트의 삶을 경쟁자였던 살리에리의 시각으로 조명한 작품이다. 150년이 흐른 뒤 영국 극작가 피터 셰퍼가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를 가치를 알아봤다. 희곡으로 각색해 '아마데우스'라는 제목으로 런던의 극장가 웨스트엔드 무대에 올렸다. 연극 '아마데우스'는 웨스트엔드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예술의광장에 서 있는 푸시킨 동상.
'아마데우스'가 연일 매진 행렬을 기록 중일 때 체코 출신의 영화감독 밀로스 포만(1932~2018)이 런던을 방문했다. 포만 감독은 이미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명감독이었다. 처음엔 진부한 모차르트 이야기가 아닐까 하고 내키지 않았지만 연극을 보고 포만 감독은 충격에 빠진다. 모차르트가 전혀 새롭게 다가왔다. 포만은 영화로 찍기로 했고, 1984년 '아마데우스'를 세상에 내놓았다. 1985년 '아마데우스'는 아카데미상 11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8개 부문을 수상했다.
위대한 음악가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가 제법 나왔다. 베토벤을 다룬 영화 '카핑 베토벤' '불멸의 여인'이 있었다. 그러나 '아마데우스'처럼 강렬한 인상을 남긴 영화는 찾기 힘들다. 경쟁자의 천재성을 시기하고 질투한 살리에리의 눈에 비친 모차르트를 그렸기 때문이다.
영화 '아마데우스'를 탄생시킨 오리지널 작가는 푸시킨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원저작권자가 푸시킨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서울 을지로 롯데호텔 정문 옆에는 푸시킨 동상이 세워져 있다. 롯데그룹이 러시아작가동맹으로부터 기증받아 2013년에 세웠다. 서울 한복판에 푸시킨 동상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도 많지 않다. 시인은 지금 말하고 있다.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다시 그리워지나니."
조성관 작가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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