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화평을 선언하라
신 20:10-20
10 네가 어떤 성읍으로 나아가서 치려 할 때에는 그 성읍에 먼저 화평을 선언하라
11 그 성읍이 만일 화평하기로 회답하고 너를 향하여 성문을 열거든 그 모든 주민들에게 네게 조공을 바치고 너를 섬기게 할 것이요
12 만일 너와 화평하기를 거부하고 너를 대적하여 싸우려 하거든 너는 그 성읍을 에워쌀 것이며
13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네 손에 넘기시거든 너는 칼날로 그 안의 남자를 다 쳐죽이고
14 너는 오직 여자들과 유아들과 가축들과 성읍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을 너를 위하여 탈취물로 삼을 것이며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적군에게서 빼앗은 것을 먹을지니라
15 네가 네게서 멀리 떠난 성읍들 곧 이 민족들에게 속하지 아니한 성읍들에게는 이같이 행하려니와
16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이 민족들의 성읍에서는 호흡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지니
17 곧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네가 진멸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명령하신 대로 하라
18 이는 그들이 그 신들에게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을 너희에게 가르쳐 본받게 하여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게 할까 함이니라
19 너희가 어떤 성읍을 오랫동안 에워싸고 그 성읍을 쳐서 점령하려 할 때에도 도끼를 둘러 그 곳의 나무를 찍어내지 말라 이는 너희가 먹을 것이 될 것임이니 찍지 말라 들의 수목이 사람이냐 너희가 어찌 그것을 에워싸겠느냐
20 다만 과목이 아닌 수목은 찍어내어 너희와 싸우는 그 성읍을 치는 기구를 만들어 그 성읍을 함락시킬 때까지 쓸지니라
신 20:10-20 / [작전 규범] 여러분이 어떤 성읍에 접근하여 공격하게 되면 반드시 먼저 그 주민들과 협상을 하여 평화적인 항복을 제안하십시오. 11) 만일 그 주민들이 평화적으로 항복하겠다고 여러분에게 대답하고 성문을 열어 주면 그 성안에 있는 모든 주민들이 부역꾼들이 되어 여러분을 섬기게 하십시오. 12) 그러나 만일 그들이 여러분의 제안을 거부하고 여러분과 싸우려고 하거든 여러분이 그 성읍을 포위하고 공격하십시오. 13) 그리하여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여러분의 손에 넘겨 주시거든 그 성읍의 남자들을 모조리 칼로 쳐죽이십시오. 14) 그러나 여자와 어린아이와 가축과 그 성안에 있는 모든 것들은 여러분이 전리품으로 차지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원수의 물건을 빼앗아다가 써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것입니다. 15) 그러나 여러분이 사는 곳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성읍들에서만 그렇게 하고 여러분이 살 곳의 성읍들에서는 모든 족속을 전멸시켜야 합니다. 16) 곧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여러분에게 상속 재산으로 주실 그 땅의 성읍들에서는 어떤 사람도 살려 두어서는 안 됩니다. 17)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여러분에게 명령하신 대로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은 깨끗이 진멸시켜야 합니다. 18)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여러분을 유혹하여 여러분이 그들의 신들을 섬기는 흉악한 일을 저지르게 하고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 죄를 짓게 할 것입니다. 19) 여러분이 어느 성읍을 공격할 때에 오랫동안 포위하고 있게 되거든 도끼로 그 주변의 과일나무들을 자르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그 과일을 따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들녘의 나무들과 싸우려고 출전한 것이 아니니 과일나무는 자르지 마십시오. 20) 다만 과일을 맺지 않는 나무들은 잘라서 포위망을 설치하는 재목으로 써도 됩니다.
약속으로 받을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과정에서 만나는 다른 민족들과 성읍들을 처리하는 방법을 말씀하십니다.
먼저 화평을 선언하라(10-15) 하나님께서 약속한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지금 서 있는 “어떤 성읍” 즉 가나안 족속이 아닌 다른 족속도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때에 이들에게는 선전포고를 하기 전에 먼저 화친을 제의하여 평화를 도모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자신의 힘으로 무조건 전쟁부터 벌이면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멸족을 허락한 가나안 종족은 그 이유가 있습니다. 그들의 죄가 가득차고 심판을 받을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른 민족들은 아직 죄가 가득 찬 때가 아니기에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처리방법을 진멸이 아니라 우선 평화를 택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거부하고 대적하여 싸우려 하면,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것이니, 진멸하여야 합니다. 물론 이를 처리하는 방식 또한 하나님의 방식대로 남자는 죽이고 전리품을 취하면 됩니다. 멀리 떨어져 있어 이스라엘 백성에게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성읍의 백성도 동일하게 처리하라고 하십니다.
호흡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지니(16-18)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기업에 대하여는 철저히 멸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이에 대한 이유를 그들이 섬기고 있는 신들을 이스라엘이 섬기는 우상 숭배의 죄를 지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우상 숭배 그 자체도 하나님께서는 싫어하시는 것이지만 가나안 족속의 멸망의 이유가 우상 숭배 때문인데 이 길을 이스라엘이 동일하게 걷는 것은 안됩니다. 같은 우상 숭배의 죄로 자신의 백성이 멸망하게 되는 것을 하나님은 원하지 않으십니다. 죄의 원인이 되는 것은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철저히 제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우리의 감정이나 생각이 들어와서 왜곡해서는 안됩니다.
도끼를 둘러 그 곳의 나무를 찍어내지 말라(19-20) 아무리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과정이 전쟁을 치러야 하는 일이라도 지체할 부분이 있습니다. 승리 이후에 남은 땅이 황폐한 땅 뿐이라면 이루어진 하나님의 약속이 허망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하나님은 그 땅의 유실수들을 보존하라고 하셨습니다.
적용: 하나님의 약속하신 땅을 정복해 나아가는 과정 속에서의 방식을 말씀하여 주십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과정 속에서 철저히 하나님의 방식을 따라가고 있습니까?
마음에 공허함과 슬픔을 가진 분이 계십니까? 집 안에 원인도 모르게 갖가지 재앙이 임하는 분이 계십니까? 그러면 이것이 영적인 싸움임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담대히 나가 싸우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수 없는 모든 거짓과 비열함과 야비함과 사기와 악독과 시기와 다툼과 미움을 버리고 거룩함에서 나오는 담대함과 용기를 가지고 나가서 싸우면 우리의 싸움이 백전백승이 될 것입니다.
< 설 교 >
주의 복음으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며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소서
신명기 20:10-20
시작 기도
주님, 오늘도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게 하시고 생명을 연장시키시니 감사합니다.
늘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지만 새로운 힘을 얻는 삶은 쉽게 주어지지 않음을 고백합니다.
세상의 힘과 능력으로 살아가려는 것은 힘들고 고달픈 일이며 쉼이 없는 삶임을 발견합니다.
오직 주님 안에서만 참 된 안식이 있으며 새로운 힘을 공급받습니다.
오늘도 주 안에 거하는 은혜로 하루를 시작하게 하시고 새 힘을 얻게 하옵소서.
죄와 부정함으로 더러워진 마음과 영혼을 주의 보혈로 정결하게 씻어 주시고 새 영과 마음으로 주의 보좌로 나아가는 자 되게 하옵소서.
날마다 베푸시는 은혜를 깨닫고 안식과 소망을 갖게 하옵소서.
함께 하시고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족속이 아닌 다른 민족과 전쟁하기 위해 성읍을 공격할 때에는 먼저 그 성에 화평을 선언하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하나님께서 세상에 화평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을 상징하며 그리스도를 통해 선포되는 구원의 메시지를 의미한다.
만일 그 성읍이 화평하기로 화답하고 성문을 열면 그들은 이스라엘에게 조공을 바치고 섬기도록 할 것이며 화평을 거부하고 싸우려 하면 성읍을 에워싸고 남자들을 다 죽이라 명령하신다.
다만 여자들과 아이들과 가축들과 성읍에 있는 모든 것은 탈취물로 삼고 적군에게서 빼앗은 것을 먹도록 하셨으며 이 명령은 가나안에 속하지 않은 성읍에 대한 것임을 말씀하신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기업으로 주시는 가나안 민족(헷, 아모리, 가나안, 브리스, 히위, 여부스)의 성읍에서는 호흡이 있는 모든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고 진멸하라고 명령하신다.
그 이유는 가나안 족속들이 우상을 섬기며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르치고 본받게 하여 하나님께 범죄하도록 만들 수 있기 때문임을 밝히신다.
그리고 전쟁하여 성읍을 에워싸고 점령할 때에 도끼를 가지고 사람을 진멸하듯이 그 지역의 나무를 베지 말라고 말씀하시고 과목이 아닌 수목은 성읍을 치는 무기에 사용하도록 명령하신다.
나의 묵상
하나님은 가나안 이외의 민족들과의 전쟁에서는 먼저 화평을 선언하도록 말씀하시는데 이는 복음 선포와 관련하여 복음이 화평의 메시지임을 드러내는 것과 같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2명씩 짝을 지어 복음을 전하게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5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6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의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7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 8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놓는 것을 먹고 9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10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거리로 나와서 말하되 11 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버리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하라 12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 날에 소돔이 그 동네보다 견디기 쉬우리라(눅10:5~12)
복음은 우선적으로 화평의 메시지임을 보여주며 화평의 복음을 전함으로써 그에 따라 얻는 것은 복음 전파자에게 주시는 보상임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의 전쟁은 2가지로 구분될 수 있는데 하나님의 화평을 거부하는 자에 대한 전쟁과 하나님의 심판으로써의 전쟁이다.
가나안에는 하나님의 심판으로써의 전쟁을 해야 했으며 가나안 이외의 민족과의 전쟁은 화평을 거부하는 자에 대한 전쟁을 보여준다.
그러나 하나님의 본질적인 목적은 화평을 위한 것이었으며 이스라엘 백성은 이 화평을 전하는 자로 세움 받았고 복음을 전하는 자들도 동일한 목적을 가져야 함을 드러낸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심도 그를 통해 멸망하지 않고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며 영생을 얻게 하시기 위함임을 분명하게 선포하셨다.(요3:16)
그러나 하나님과의 화평을 거부하는 것은 절대적 파멸과 심판을 당하게 되며 하나님은 이것을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선명하게 드러내고 계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의 사명은 먼저 화평을 선포하는 것이며 화평을 거부하면 심판을 선포하는 것임을 기억하고 그대로 선포하는 모습을 가지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하나님의 복음의 메시지는 바르게 선포되지 못하고 복음을 거부하며 하나님과 화평하지 않는 자들에게 심판이 아닌 부귀영화를 선포하는 모습이 많다.
복음을 통해 화평을 누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행위를 통해 하나님의 복을 누릴 수 있다고 오해하고 전하기 때문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우리가 화평을 누리게 되었음을 선포한다.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롬5:10~11)
복음을 통해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면 그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과 화평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열심과 의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려는 시도는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지난 날 복음이 아닌 인간의 열정과 노력, 수많은 종교적 행위에 가치를 두고 그것으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수 있다고 전했던 무지함의 모습이 얼마나 많은 문제를 가져왔는지 깨닫는다.
그러나 복음으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때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을 누리며 평안으로 살게 하시는 은혜를 경험하게 만드신다.
영적 싸움은 복음을 바르게 선포함으로써 승리를 얻을 수 있으며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것들을 누릴 수 있게 만든다.
오늘도 복음으로 영적 싸움에서 승리를 선포하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을 누리며 화평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되기를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주의 복음이 선포하는 하나님과의 화평을 오늘도 누리며 살기를 소망합니다.
주님과의 화평이 아닌 세상과의 화평을 위한 모든 것은 무가치한 것임을 고백합니다.
사람의 열심과 스스로의 의로움은 화평이 아닌 분쟁과 분열을 가져옴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오직 복음을 선포하고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자가 하나님이 허락하신 전리품을 가질 수 있고 만족할 수 있음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주의 복음으로 오늘도 시작하게 하시고 승리를 확신하며 살기를 소망합니다.
날마다 베푸시는 은혜로 만족을 얻게 하시고 주 안에서 기쁨을 누리게 하옵소서.
오늘도 함께 하시고 은혜와 사랑으로 인도하실 주님을 기대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가증한 일을 모두 끊어 버리라
신명기 20:10-20 / 코너스톤교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을 할 때 지켜야 할 원칙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이 멀리 떨어져 있는 성읍과 전쟁을 하게 되었을 때, 그 성읍과 전쟁을 통해 정복하기 전에 먼저 화평할 수 있는 기회를 주라고 했습니다. 만일 적군이 평화의 관계를 유지하기를 원하고 성문을 열어 이스라엘 군대에게 항복하면, 그 항복을 받아주고 대신 그 성읍은 이스라엘을 섬기고 조공을 바치도록 했습니다.
고대 전쟁에서는 이처럼 적군의 항복을 받아주지 않는 잔인한 민족들도 많았습니다. 군사와 민간인 상관없이 전쟁에서 진 민족을 무참히 살해하는 나라들도 많았습니다. 혹은 전쟁 노예로 끌고가서 못살게 괴롭히는 민족들도 있었습니다. 이에 비해 이스라엘이 자신들에게 항복한 성읍들에 대하여 그들의 항복을 받아주고 대신 조공을 받는 것은 매우 관대한 행위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 성읍이 이스라엘과 평화적인 조약을 맺기를 싫어하고 끝까지 대적하여 싸우려 한다면, 이스라엘은 그 성읍을 에워싸고 칼로 모든 적군 남자들을 다 죽이라 하셨습니다. 또한 성읍에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주신 전리품으로 취해도 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이 멀리 떨어진 적국의 성읍을 정복할 때 ‘화평’의 기회를 주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은 가나안 일곱 족속이 머무는 성읍에는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민족들은 모조리 남김없이 죽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16-17절 말씀을 봅시다. “(신 20:16)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이 민족들의 성읍에서는 호흡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지니 (신 20:17) 곧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네가 진멸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명하신 대로 하라” 가나안 족속은 이미 오래된 극심한 죄악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작정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가증한 우상숭배와 심각한 성적 타락 등 하나님의 멸망 아래 놓여 있는 자들입니다. 만일 이들을 살려준다면, 그들의 심각한 죄악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족속들에게는 화친을 제의하는 것 없이 모조리 멸절시키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을 남김 없이 멸하라고 하신 말씀은 우리 삶의 죄악을 하나도 남김없이 끊어버리라 하심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죄악 된 가나안 백성들과 구별하여 거룩하게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과 같이,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죄악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구별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19-20절에는 가나안 족속들과 싸울 때 베어서는 안 되는 나무에 대한 내용입니다. 먼저 말씀을 함께 봅시다. “(신 20:19) 너희가 어느 성읍을 오래 동안 에워싸고 쳐서 취하려 할 때에도 도끼를 둘러 그 곳의 나무를 작벌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먹을 것이 될 것임이니 찍지 말라 밭의 수목이 사람이냐 너희가 어찌 그것을 에워싸겠느냐 (신 20:20) 오직 과목이 아닌 줄로 아는 수목은 작벌하여 너희와 싸우는 그 성읍을 치는 기구를 만들어 그 성읍을 함락시킬 때까지 쓸지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족속과 싸울 때 사과나무나 무화과나무와 같이 열매를 맺는 나무들은 베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다만 소나무와 같이 과일을 맺지 않는 수목의 경우는 전쟁 시 필요한 장비로 쓰기 위해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과목을 보호하신 이유는 단순히 나무를 보호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전쟁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나무란 것은 한 번 자르면 다시 자라나는데 시간이 오래 소요됩니다. 가나안 사람들을 진멸하는 가운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생각하여 과목을 베지 말라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명령 속에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크신 긍휼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을 하나도 남기지 말고 멸하라고 하신 이유는 그들의 우상이나 이방 신상이 남아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악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주님의 백성이 죄악과 타협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죄악과 단절하여 거룩하게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족속을 모두 멸하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염려하신 대로 가나안 사람들이 섬기는 우상들과 이방신상들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범죄하여 큰 고통을 당하게 되고,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가 멸망하는 일까지 벌어지게 됩니다.
댐에 난 500원짜리만한 작은 구멍 하나가 결국에는 댐 전체를 무너뜨리게 됩니다. 우리 몸에 남아 있는 조그마한 암 세포가 몸 전체를 고장 나게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삶에 남은 작은 죄악 하나가 우리 신앙생활 전체를 무너뜨릴 정도로 파괴력을 가지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죄를 끊어내는 일에 있어서는 너그러움을 보여서는 안 됩니다. 그 어떠한 죄도 타협함 없이 끊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족속을 멸하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같이 우리 삶에 남아있는 죄악들을 모두 끊어버리고 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성전(聖戰)에 관한 율법
신 20:10-20
신명기에서 성전에 관한 문제가 크게 취급된 것은 기자들이 적군을 하나도 남김없이 학살하기를 즐기던 호전적인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윤리적 일신교에 대한 그들의 충성심에서였습니다. 그들과 또 그들의 열조들은 다신교를 섬기던 백성들과 혼합하여 살면서 그들에게 관용을 베푼 결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얼마나 비참한 결과가 생겼던가를 그 쓰라린 경험을 통해 배웠던 것입니다. 즉 하나님과의 계약은 깨어지고 유일하신 참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비젼과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완고 말았던 것입니다. 세상을 구원하는 이스라엘의 역활에 대한 이해는 바벨론 포로기의 예언자와 예수 및 그리스도 교회에 의하여 보존되었습니다. 신명기 기자들은 하나님의 때가 이르면 사라져 버릴 자들이었습니다. 비록 그들이 전쟁을 종결시킴으로써 잔인성과 무정함을 완화시켰다 해도 그 들은 국제적인 기본관계를 바꾸어 놓지는 못했습니다. 이런 면에서 거룩한 전쟁시행에 관해서 일종의 인간적 고려가 생기게 됩니다. 즉 즐거운 일을 맞이한 사람들에 관해서는 병역을 면제시킬 것, 마음이 약하고 겁장이인 사람들은 제해 놓을 것, 평화협상을 제안함으로써 불필요한 유혈을 방지할 것, 그리고 적을 공격할 때 과수나무를 상하게 하지 말 것 등이었습니다. 10-11절에 “네가 어떤 성읍으로 나아가서 치려할 때 그 성에 먼저 평화를 선언하라 그 성읍이 만일 평화를 회답하고 너를 향하여 성읍을 열면 그 온 거민으로 네게 공을 바치고 너를 섬기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평화선언은 평화조약을 뜻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스라엘의 성읍지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성읍들과는 조약을 맺고 그 성민들을 죽이는 대신 부역을 시키며 조공을 바치도록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조약은 강대국과 약소국 사이에서 지키는 것으로 강자는 약자를 보호하며 약자는 강자를 섬긴다는 고대 근동 세계의 정규적인 조약의 의미를 지닙니다. 이스라엘과의 조약관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이방인들이 우상을 버려야 하고, 할례는 받지 아니한다 하나 그들이 개종함으로써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예배하고 새로운 주인에게 공물을 바친다는 조건하에서만 성림되는 것입니다. 이런 조건하에서만 전쟁이 중단될 수 있고, 이런 복종 조건하에서만 정복자가 그들의 보호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는 비록 하나님이 가장 공정하게 원수들을 파멸시킬 수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그들의 파멸을 기뻐하시지 않기 때문에 평화를 선포하고 그들과 화해하기를 간청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정의를 가장 싫어하는 자들에게만 파멸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만일 그들이 평화에 응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문을 열고 하나님께 종으로써 공물을 바치는 조건을 받아들인다면 그들은 파멸에서 구원을 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12-13절에 “만일 너와 평화하기를 싫어하고 너를 대적하여 싸우려 하거든 너는 그 성읍을 에워쌀 것이며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네 손에 붙이시거든 너는 칼날로 그 속의 난자를 다 쳐 죽이고”라고 했습니다. 평화의 제안이 수락되지 아니하면 그 때는 전쟁을 하게 됩니다. 만일 그들이 평화의 제안을 거절하오 제한된 시간 내에 그 제안의 혜택을 받지 않는다면 심판은 집행됩니다. 그들은 평화적 제안을 거부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제시하시는 평화의 제안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성전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신다고 했습니다. 13절에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이스라엘 손에 붙이시겠다는 약속이 허락되어 있습니다. 공의의 이름으로 모든 군병들은 칼로 치고 무장할 수 있는 모든 남자는 칼로 쳐 죽이라는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그러나 14절에 그들이 취한 전리품은 이스라엘인들이 가지도록 허락되었는데 거기에는 여인들과 아이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합법적인 전쟁에서 획득한 것은 정당한 재산으로 인정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심이라”고 했습니다. 16절에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이 민족들의 성읍에서는 호흡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지니”라고 했습니다. 18절에 “이는 그들이 그 신들에게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너희에게 가르쳐 본받게 하여 너희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케 할까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약속의 땅 안에 있는 이방 성읍은 정치적으로도 이스라엘에게 위험이 될뿐 아니라 또 종교적으로도 유혹의 위험이 많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가차없이 전멸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 진멸은 히브리어로 “혜렘”이라고 부르는데 이방인에게 속한 모든 생명체는 사람이나 짐승을 가릴 것 없이 모조리 죽이라는 것입니다. 고대 싸움은 제신에 대한 싸움이니 만큼 “헤렘”사상은 이스라엘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절대 순종을 뜻하며, 동시에 이방신에 대한 추호의 동정이나 연민을 허용하지 않은 사상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19절에 “너희가 어느 성읍을 오랫동안 에워싸고 쳐서 취하려 할 때에도 도끼를 둘러 그곳의 나무를 작벌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먹을 것이 될 것임이니 찍지 말라 밭의 수목이 사람이냐 너희가 어찌 그것을 에워싸겠느냐”고 했습니다. 가나안 성읍들은 성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외부 세력이 성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성 밖에 진을 치고 토성을 쌓아 올리거나 아니면 벽에 구멍을 뚫고 쳐들어가야만 했습니다. 신명기 법전은 이스라엘이 어느 도성을 에워쌀 때 과일이 열리는 나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열매를 따먹을 수 있으며 그렇지 않은 나무만 잘라 포진 중에 연료로 살거나 아니면 공격용 재목으로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이같은 자연보호 원칙은 신명기의 특징인 인도주의적 사상의 영향이라고 하겠습니다. 즉 성읍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많은 목재를 사용했는데 “오늘 같이 포탄이 없었던 인해전술 작전의 시대였으므로”전쟁이 한창 무르익으면 유실 수목도 성벽 공격용 목재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실과수는 사용되어서는 안된다고 명시한 것입니다. 그 이유인즉 “과실수는 사람의 생명이니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성전에 임하는 군인과 지휘관들에게 전쟁터로 변한 그 땅에서 자기들 마음대로 무엇이나 황폐하게 만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절대적으로 불가피한 파괴 이상의 파괴를 초래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대한 정신은 인간의 생명에 대해서 뿐 아니라 그들의 생업에 대해서도 관대함을 보여줄 것입니다.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만”음식이 없으면 목숨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고로 본문은 고의적인 낭비를 금하는 조항이라고 이해해야 합니다. 과실수는 땅만 헛되이 차지하는 것이 아니면 자르지 아니했고, 누구든지 고의로 그릇을 깨고 의복을 찢고 우물을 막으며 건물을 넘어뜨리거나 음식을 못쓰게 만드는 사람은 “너희는 파괴치 말라”는 율법을 어기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은 부서진 빵조각도 손실되는 것이 없이 다 모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은 모두 선합니다. 그래서 거부되어야 할 것도 없듯이 남용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부주의하게 남용한 바로 그것이 없어서 궁핍하게 살게 될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아직 남아 있는 기르가스와 히위
신 20:10-20
소위 가나안의 일곱 족속은 지난 신 7:1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사 네가 가서 차지할 땅으로 들이시고 네 앞에서 여러 민족 헷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곧 너보다 많고 힘이 센 일곱 족속을 쫓아내실 때에' 라고 나오고 그 후에도 수 3:10, 24:11 등에도 기록되었는데, 이들에 대해 이미 창세기 10장과 15장에는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출애굽 후에 차지할 지역임을 예언하셨다. 그런데 느 9:8은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 즉 히위 족속이 빠지고, 또 오늘 17절은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라고 기록하며 '기르가스' 족속이 빠졌다. 원래 기르가스 족속도 살고 있었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이르자 그들은 떠났기 때문에 그들은 제외되었다고 하며, 느헤미야에서 히위 족속이 빠진 것은 그들의 일부인 기브온이 꾀를 내어 진멸당할 것을 면하고 이스라엘을 위해 물 깃고 장작 패는 노예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히위 족속은 창 34장에 의하면 야곱의 딸 디나가 당한 일에 그 아들들이 그들을 속여 복수했다고 기록하는데, 서로 속이고 속이다가 결국 여호와께 묻지 않고 그들을 외모만 보고 살려 두는 일이 발생했다. 따라서 17절의 명령에 대해 히위 족속, 더 자세히 기브온은 진멸하지 못하게 되었다.
다른 민족들에 대해서는 먼저 화평을 선언하고 받아들이면 조공을 바치며 섬기게 하라 하셨지만 그렇지 않으면 성인 남자들은 다 죽일 것을 말씀하는데, 이러한 명령은 잔인하게 들릴지 몰라도 고대에는 오히려 더욱 잔인한 일들이 민족들 간에 자행되었는데, 바로 가나안 일곱 족속에 대해서는 진멸하라 명하시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즉 '그들이 그 신들에게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을' 했기 때문이고 그러한 것에 이스라엘 백성이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함이다 (18절). '그 신들에게'와 '모든 가증한 일들'이라는 언급은 하나님을 저버리고 악한 것을 좇아 인간성 자체를 말살시키는 어떤 것으로 보인다. 이 일곱 족속에 대해 많은 설명과 영적 해설이 있는데, 결국 이민족들이 행하던 악한 일들이며,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어도 오늘의 시각으로도 경악할 만한 일들이 자행되었을 것이다. 이것은 소위 '보편적 가치' 즉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 등 성경적 개념에 상반하는 지독한 악행들이다.
주님께서 죽으심으로 모든 인류의 죄 (단수)는 끝났고, 따라서 주님을 믿는 이들은 더 이상 정죄받지 않는다. 하지만 '죄들 (복수)'의 문제는 남아 있는데, 바로 우리 안에 있는 죄성 혹은 죄의 기질들이다. 일곱 족속 중에 다섯은 진멸했고 기르가스는 떠났으며, 히위는 아직도 살고 있는 것을 보며, 이러한 일곱 족속이 현재 우리 안에 어떠한 죄성으로 남아 있는지 생각해 본다. 우리에게 있어 가장 제거하기 힘든 죄는 아마도 기르가스 즉 우리와 이미 멀어졌다고 생각하는 것들과 교묘히 우리를 속이는 히위 족속의 어떠함일 것이다. 기르가스는 떠났지만 느 9:8 에 다시 언급되는 것을 보며 아마도 계속해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알게 모르게 영향을 주는 어떠한 것으로 보인다. 기르가스라는 말은 진흙탕을 의미하는데, 순수한 물에 조금이라도 진흙이 섞이면 더러워지 듯, 순수하지 않은, 그리고 어떠한 혼돈을 말한다. '혼돈'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상태를 의미하는데,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죄사함 받은 이들로서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약 1:27)' 않도록 거룩을 추구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말씀 대신에 세속의 가르침과 가치관을 용납하다 보면 결국 이도 저도 아닌, 뜨겁거나 차지 않게 되어 결국 주님으로부터 토해 내쳐지게 될 것이라 말씀한다 (계3:16).
히위는 '작은 마을, 시골' 등을 의미하는데, 이들 중 기브온이 이스라엘을 섬겼던 것 처럼 우리의 노예라고 생각되어 지는, 우리가 주도권을 잡고 있다고 혹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할 거라 여기는 것들이다. 하지만 정작 우리에게 매우 큰 영향을 알게 모르게 끼치는 것들인데, 주님 주시는 평안과 기쁨 보다 세상의 기쁨과 즐거움을 좇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우리 믿는 이들에게 특히 치명적인데, 말씀에서 길을 찾거나 교훈 혹은 가치를 추구하지 않고 오히려 영화나 드라마 혹은 뉴스 등으로 우리의 가치관이 물드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세상이 주는 즐거움에 매우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히위의 일부인 기브온은 후에 느디님이 되어 성전에서 봉사하는 이들로 변함 받아 끝까지 이스라엘을 떠나지 않는 충성된 이들로 변화한다. 이들은 진멸당해야 할 이들임에도 가장 비천한 자리에서 오히려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데, 오락과 예능 혹은 예술 등 문화를 통해 주님을 섬기는 이들이 이러한 경우일 수 있다. 세상에서는 크게 인기도 없고 두각을 나타내지 못해도, 혹은 세상의 인기를 추구하지 않으며 묵묵히 이러한 부문에서 섬기는 이들이 있고, 우리에게는 이러한 이들도 필요하다.
주님, 주님의 은혜는 히위를 느디님으로 변화시키십니다.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히위에 대해 신중하며 그들도 진정한 주님의 종으로 삼을 수 있는 행동하는 믿음을 우리 가운데 허락하소서.
신명기 제20장 강해 - 성전(聖戰)
안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전쟁에 대한 규례입니다. 강조점은 전쟁을 하되 이방인들처럼 영토 확장이나 경제적 약탈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기 위해서 전쟁을 치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전(聖戰)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세부적으로 보면 1-4절은 출전 의식, 5-9절은 전쟁에서 나가서는 안 될 사람, 10-18절은 일반 족속과의 전쟁법과, 가나안 족속과의 전쟁법, 19-20절은 과도한 파괴 금지와, 전쟁 이후 생활에까지 심각한 영향을 미치지 말라는 규정입니다.
1: 네가 나가 대적과 싸우려 할 때에 말과 병거와 민중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수행에 있어서 필수적으로 명심해야 할 두 가지는 첫째,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늘 함께 하신다는 것이며, 둘째는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전쟁을 치른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시점까지 볼 때에, 이방인들은 강한 군사력, 우수한 병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이스라엘은 정규적 군사 훈련도 받지 못했고, 말이나 병거도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전쟁을 치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강한 능력의 하나님은 적군의 그 어떤 군사력보다도 더 크기 때문에 결코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2-4: 너희가 싸울 곳에 가까이 가거든 제사장은 백성에게 나아가서 고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전쟁에 있어서도 제사장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에 있어서의 전쟁은 마치 ‘제사’와도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리고성을 점령할 때의 모습은 전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제사의식과도 같았습니다(수 5;13-6:21). 또한 성전 수행을 위해 특별한 임무를 맡은 제사장을 따로 세우기도 했습니다(민31:6; 삼상 4:4; 대하 13:12). 유대 전승에 의하면 이러한 제사장을 가리켜 ‘참전을 위하여 기름 부음을 받은 자’(메쉬아흐 함밀하마:משיח המלחמה)라고 칭하였으며, 대제사장 다음가는 직위로 인정하였다고 합니다. 제사장은 백성들에게 “겁내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떨지 말고, 놀라지 말라”고 격려하고 힘을 주는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격려 차원이 아니라 성전을 치루기 위해서 반드시 갖춰야 할 신앙적 자세를 고무시켜 주는 것입니다.
5: 유사(有司)들은 백성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새 집을 건축하고 낙성식을 행치 못한 자가 있느냐~
5절부터 9절까지는 전쟁을 수행함에 있어서 개인적인 문제로 인하여 전력을 쏟을 수 없는 자들에 대한 병역 연기의 특별 규례입니다. 유사(有司)(쇼테르:שטר)는 매우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는데, 이 직분들의 업무의 공통적인 특징은 어떤 문서를 작성, 기록, 보관하는 역할로서, 행정, 사법, 군사적 업무 전반에 걸쳐 활동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군에 소집될 사람들에 대한 명부를 작성함과 동시에, 그들이 군인으로서의 합당한 조건을 갖추었는지를 판단하는 판정관의 역할까지 수행한 것으로 보입니다.
군인으로서 합당하지 못한 첫 번째 걸림돌은 ‘낙성식을 행치 못한 자’입니다. 낙성식은 집이나 기타 건축물을 완공한 후에 행하는 예식인데, 이 예식은 새 집을 소유하게 되었다는 일차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가족공동체의 안전을 하나님께 의탁하는 행위입니다. 유대 전승에 따르면 이 낙성식에서 가장 중요한 절차 중의 하나는 ‘쉐마 본문’(신 6:4-9)을 기록한 두루마리를 통 속에 넣어 그것을 문설주에 달아매는 순서라고 합니다. 낙성식은 단순히 새 집을 건축한 것에 대한 감사제를 넘어서, 자신의 가족과 삶의 공동체 전체를 여호와의 손에 의탁하는 종교적 행위였습니다. 따라서 낙성식을 다른 사람이 행하게 되는 것은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낙성식을 행치 못하고 전쟁에 나가면, 그것이 염려가 되어 전쟁에서 죽지 않으려고 애쓰게 되고, 그렇게 되면 동료들에게 큰 영향을 미쳐 전쟁을 어렵게 만들 수가 있기 때문에, 1년 동안 징집을 연기에 주었습니다.
6: 포도원을 만들고 그 과실을 먹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전사하면~
징집 유예가 되는 두 번째 이유입니다. 새 포도원을 만들었으나 과실을 한 번도 먹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해 보지 않은 경우에는 징집을 유예해 주었습니다. ‘포도원’(케렘:כרם)으로 사용된 이 단어는 감람원이나 기타 여러 종류의 과수원을 지칭하는 데도 사용되고 있습니다(레위기 19:10; 왕하 5:26). 율법에 의하면 나무를 심은 후에 4년에 첫 열매를 여호와께 바치고 5년째에야 비로소 소유주가 자신을 위해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신 28:30; 레위기 19:23; 예레미야 31:5).
7: 여자와 약혼하고 그를 취하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전사하면 타인이~
징집 유예의 세 번째 이유는, 약혼은 했으나 취하지 못한 경우입니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약혼은 사실상 결혼과 동일한 의미를 지닙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다른 사람의 약혼녀를 범하는 것은 간음죄에 해당되어 돌로 쳐 죽이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22:23-27). 그리고 결혼 후 첫 1년 동안은 군대에 보내지도 말고, 그 취한 아내를 즐겁게 해야 하였습니다.
8: 유사들은 오히려 또 백성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두려워서 마음에 겁내는 자가 있느냐 그는~
두려워서 마음에 겁내는 자는 징집 유예의 네 번째 이유가 되었습니다. 두려워서(야레:ירא)와 겁내는(라카크:רכך)것은 상대를 너무 크게 생각하여 마치 신을 경외하여 그 앞에 압도당하듯이 굴복하는 상태와, 담력이 없어진 마음 상태를 가리킵니다. 천성적으로 겁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불신앙의 연고로 적군의 위세에 겁을 먹은 자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전쟁터에 나가게 되면 마치 10의 불신적 보고를 한 정탐꾼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이 낙담하게 된 것과 같이 다른 군사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고 패배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9: 백성에게 이르기를 필한 후에 군대의 장관들을 세워 무리를 거느리게 할지니라.
장관들(사레:שרי)은 복수형으로 군대를 인도하는 여러 종류의 지휘관을 총칭합니다(창 21:22; 삼하 2:8; 왕사 16:16). 지휘관들을 세워서 군대의 체계를 갖추고 징집 된 백성들을 인계하게 됩니다.
10: 네가 어떤 성읍으로 나아가서 치려할 때에 그 성에 먼저 평화를 선언하라.
본 절부터 20절까지는 성읍들을 공략할 때 필요한 규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떤 성읍’은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땅 가나안 밖에 있는 성읍들을 가리킵니다. 가나안 족속이 아닌 이방 국가에 대하여 전쟁을 치를 때는 선전포고를 하기 전에 반드시 화친을 제의하고 피흘림이 없이 평화적으로 항복을 받아내라는 것입니다.(삿 21:13) 그러나 가나안 족속에 대해서는 평화적 제의는 켤코 안되며, 그 성읍들을 완전히 멸절시켜야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가나안은 이미 죄악이 관영하여 심판을 받아야만 하였으나, 나머지 이방 국가들은 아직 심판의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1: 그 성읍이 만일 평화하기로 회답하고 너를 향하여 성문을 열거든 그 온 거민으로 네게~
분명한 항복의 표시를 한 성읍은 이스라엘의 봉신(封臣)이 되어 매년 일정한 공물을 바쳐야 하며(왕하 3:4), 이스라엘은 그 성읍이 외침을 당할 때에 군대를 원조하는 등 종주국으로서의 보호의 의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12: 만일 너와 평화하기를 싫어하고 너를 대적하여싸우려 하거든 너는 그 성읍을 에워쌀 것이며.
전쟁은 평화의 제안이 거부될 때 시작이 됩니다. 자신의 세력이 이스라엘보다 강하다고 판단이 될 경우에 그들은 기꺼이 전쟁을 할 것입니다. 항복을 치욕으로 생각하는 고대 국가에서는 할 수만 있으면 전쟁으로 적군을 물리치려고 했을 것입니다.
13: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네 손에 붙이시거든 너는 칼날로 그 속의 남자를 다 쳐 죽이고.
‘네 손에 붙이시거든’ 이 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승리를 허락하셨다는 뜻입니다. 남자는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있는 20세 이상의 성인, 곧 군인을 뜻합니다. 따라서 군인으로서의 남자를 다 죽이게 될 경우 그 종족의 멸망은 부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평화의 제의를 거부한 종족에 대한 하나님의 단호한 대처 명령을 통해, 오늘날도 구원에로의 초청을 거부하는 자들이 많은데 이들도 결국은 비참한 종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줍니다(벧전 4:17,18).
14: 오직 여자들과 유아들과 육축과 무릇 그 성중에서 네가 탈취한 모든 것은 네 것이니 취하라~
남자는 다 죽여야 하지만, 그 외에 모든 것들은 취할 수 있고, 또 마음대로 처분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어떻게 보면 하나님께서 좀 무자비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하나님의 자녀와 불신자의 차이점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15: 네가 네게서 멀리 떠난 성읍들 곧 이 민족들에게 속하지 아니한 성읍들에게는~
‘네게서 멀리 떠난 성읍들’은 이스라엘이 거주하게 될 가나안 땅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방 풍습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미칠 수 없는 나라들을 가리킵니다.
16: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이 민족들의 성읍에서는 호흡 있는 자를~
가나안 종족들에 대해서는 평화의 제의나, 전리품을 취하는 행위는 하지 말도록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가나안 종족의 멸절은 그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심판의 모형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심판을 교훈삼아 다른 민족들 역시 한시라도 빨리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화목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엡 2:140. 둘째, 가나안 종족뿐만 아니라 그들의 소유물 중에 호흡 있는 자는 여자나 어린아이 가릴 것 없이 멸절시키게 한 것은 그들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증스런 일과 죄를 배우거나 그들의 풍습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17: 곧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네가~
여기에 나오는 여섯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을 합쳐서 일곱 족속은 후기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가나안 족속입니다.
18: 이는 그들이 그 신들에게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너희에게 가르쳐 본받게 하여 너희로 너희의~
가나안 족속을 진멸하는 이유는 이스라엘이 우상숭배를 배울까 염려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점령할 때에 그들을 완전히 섬멸하였다면 우상숭배를 배우지도 않았을 것이며, 또 하나님께 범죄하기도 않았을 것입니다. 누구든지 죄를 지을 때는 한 가지만이 아니라 두세 가지를 겸하여 짓게 됩니다.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죄를 철저하게 멀리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19: 너희가 어느 성읍을 오래 동안 에워싸고 쳐서 취하려 할 때에도 도끼를 둘러 그곳의 나무를~
고대 전쟁시에는 성벽을 올라가기 위하여 나무를 사용했습니다. 모세는 그런 상황이 닥친다고 해도 결코 ‘유실수’를 작벌하는 일은 삼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연 훼손의 관점보다는 식물의 관점에서 볼 때에 그 성읍을 취하고 나중에 그곳에 이스라엘이 거주하게 될 때에 받는 악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이며, 자연을 보호할 의무가 인간에게 주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0: 오직 과목이 아닌 줄로 아는 수목은 작벌하여 너희와 싸우는 그 성읍을 치는 기구를 만들어~
유실수가 아닌 나무는 건축용이나 기타 용도로 쓰기 위해서 심습니다. 전시에는 성벽 공격용 목재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나무는 작벌을 허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