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Goes On
WEDAN 作
우지호 박경
어제 쯤 맞춰두었던 지랄맞은 알람 소리에 경기를 일으키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진짜진짜 거슬리기는 한데 아침잠 깨는덴 직빵이라 바꾸기도 뭐하다. 밤새 입을 벌리고 잤는지 입천장이 텁텁했다. 하품을 찍 하고 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6시 20 분, 십분만 더 잘까. 다시 눕기에도 일어나기에도 영 애매한 시간 탓에 망설임이 들었다. 그래도 한 시간 후 미래의 나에게 욕을 처먹지 않으려면 지금 일어나야 한다. 휴대폰을 구겨진 추리닝 바지 주머니에 밀어넣고 몸을 일으켰다. 습관처럼 창문을 열고, 빛이 잘 들어오도록 커튼을 젖혀 잘 갈무리했다. 인생은 계속된다. 새 계절이 찾아오듯 아침이 찾아왔다.
키보다 몇 센치쯤 높은 찬장을 향해 낑낑 손을 뻗었다. 의자를 쓰면 편하긴 한데 귀찮기도 하고, 쓸데없이 자존심도 좀 상해서 대충 짐작만으로 아무거나 잡아다가 끌어 내렸다. 하필 손 끝에 걸린 게 크레놀라다. 이거 퍽퍽해서 싫은데… 에베레스트 산보다 높아 보이는 찬장을 원망스레 쳐다보고 입맛을 다셨다. 아무래도 귀찮지. 뱃속에 들어가면 똑같아.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듯 말하고 시리얼 상자를 북 찢어 열었다. 바닥 쪽 면이 이미 열려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땐 이미 접착제가 붙은 상자 뚜껑이 반 쯤 찢어져 너덜해진 후였다.
안에 든 시리얼이 줄줄 샐 것만 같아 보이는 시리얼 상자를 쓰레기통에 던져넣고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돌아섰다. 쓸데없이 몸을 움직였더니 귀찮아져서 발로 의자를 잡아끌어 빼고 몸을 앉혔다. 어, 숟가락 없다. 팔만 쭉 뻗어 수납장에서 숟가락을 꺼냈다. 열린 수납장은 숟가락 끝으로 밀어 닫았다.
언제부턴가 시리얼을 먹을 때 우유를 먼저 붓게 되었다. 이상하지, 물렁한 시리얼이 세상에서 제일 맛없다고 느끼던 나인데. 처음에는 텅 빈 보울에 양 조절을 못해서 우유만 가득 넘치게 붓고는 했는데, 이제는 퍽 정확하게 맞춘다. 괜히 이런거에 뿌듯함이 틀고 그래. 일상에서 찾아가는 즐거움이랄까. 흠흠 콧노래를 부르며 숟가락으로 우유를 휘저었다. 하얀 색 소용돌이가 시리얼을 품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잘 먹겠습니다. 무의식적으로 성호를 그으려다, 멈추었다.
그릇과 부딪히는 숟가락이 내는 짤깍짤깍 소리가 멈추고, 부엌에 갑작스런 침묵이 들어찼다. 그릇 안 휘몰아치는 소용돌이는 요인이던 숟가락이 멈추었음에도 빙빙 외로운 춤을 멈추지 않았다. 뻣뻣한 손가락을 움직여 숟가락을 쥐었다. 톡, 숟가락 끝에 맺혔던 우유 방울은 눈물 차럼 허공에서 다시 그릇 안으로 추락했다. 파장을 만들며 잔잔한 호수 같은 우유 안에서 퍼져나갔다. 흔적을 지우듯 숟가락으로 파장을 깨트렸다. 그럼에도 시리얼 보울 안의 호수는 쉬이 잔잔해지지 않았다.
숟가락을 쥐지 않은 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버석한 피부의 촉감이 손바닥에 먼지가 묻어나오는 마냥 퍽퍽했다. 내 마음 속 호수는 하루도 잔잔해질 날이 없는가 보다. 이미 물렁해진 크레놀라 덩어리를 숟가락 끝 뾰족한 쪽으로 톡 건드렸다. 우유에 퉁퉁 불어 뚱뚱해진 덩어리는 느릿하게 보울 가장자리를 향해 느긋한 표류를 시작했다.
도저히 먹을 맘이 들지 않아 숟가락을 싱크대에 던졌다. 엎어진 시리얼을 치우지 않고 욕실을 향해 발을 돌렸다. 부엌에서 욕실로 들어가는 멀지 않은 길에서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7시. 푹 한숨을 쉬고 욕실 손잡이를 잡았다. 달팽이 걸음처럼 느릿한 내 아침의 끝이 다가온다.
화장실 문을 열면 깔끔하게 정리된 수납장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반대로 놓인 욕실 실내화를 아무렇게나 구겨신고 발을 직직 끌어 거울 앞에 섰다. 물 튄 자국도 찾아보기 힘든 거울은 내 처참한 몰골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 수도꼭지의 레버를 냉수 쪽으로 최대한 틀었다. 곧 냉동실에서 온 것 같은 찬물이 손바닥 안으로 쏟아졌다. 숨을 흡 들이쉬고 얼굴을 파묻었다. 냉수의 차가움은 순식간의 피부 속까지 파고들어 얼얼한 통증을 남겼다. 멈추지 않고 연거푸 물을 퍼부었다. 얼굴이 마비되는 것만 같았을 때, 물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을 수건으로 비볐다. 다시 몸을 틀어 거울을 보았다. 차가운 물 탓에 상기된 얼굴이 비쳤다. 뻣뻣해진 얼굴을 이리저리 움직이다 젖은 머리칼에 시선이 갔다. 고개를 숙여 거울에 비치는 정수리 부분을 보았다. 밝은 감색으로 염색했던 머리의 뿌리에서부터 검은 머리가 퍼져나가듯 자라 있었다. 마지막으로 미용실 문을 열었던 때를 더듬어 떠올렸다. 대략 한 달 쯤 됐나.
우지호, 나 염색할건데 어때?
염색? 무슨색으로 할 건데.
음…감색?
야, 빨강계열 색이면 졸라 여자처럼 보일 텐테…
아 몰라. 어쨌든 할거야. ㅡ니 맘대로 할 거면 나한테는 왜 물어봤어. 웃음을 머금고 날아온 대답을 대차게 씹고는 그날 당장 헤어샵 문을 열었던 기억이 났다.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 순간 후회하긴 했지만, 예쁘다는 한 마디에 거짓말처럼 마음이 풀렸댔지. 불과 한 달 전의 일인데 꼭 전생처럼 느껴진다. 딱, 겨우 한달 전인데.
우리는 어느새 이렇게 되었나.
세면대 위 컵 안에 든 칫솔은 두 개였다. 그중 하나를 골라 왼 손에 쥐었다 나머지 하나는 오래 사용하지 않아 칫솔모가 바짝 말랐다. 물기없이 덩그러니 놓인 칫솔 꼭대기를 손끝으로 통 쳤다. 칫솔은 원형의 컵 모서리를 따라 빙, 반 바퀴를 돌아 반대편까지 갔다.
하다못해 치약 짜는 것마저도 예전의 습관이 남아있는 것은 없었다. 치약은 칫솔모의 밑에서부터 위까지 짜고, 칫솔질 하기 전 물을 살짝 묻히는 것까지. 다 익숙하지만 내 것은 아닌 것들이었다. 너네 본 주인 찾아가려면 시간 좀 걸리겠다. 헛헛한 웃음을 웃고 왼쪽 어금니에서부터 칫솔질을 시작했다. 치약과 섞인 물기는 칫솔질 세 번 만에 산타클로스 수염 같은 치약 거품을 형성했다. 뚝뚝 떨어지는 치약 거품이 옷 위로 떨어지기 직전 세면대에 몸을 숙였다. 단내가 가실 때까지 이를 닦고 거품을 뱉었다. 수도꼭지를 돌리고 거품을 씻어냈다. 하마터면 턱 끝에 묻은 치약 거품을 못 보고 지나칠 뻔 했다.
욕실에서 나오면서 시간을 한번 더 확인했다. 뭘 했다고 벌써 한시간이 가냐. 투덜대면서 부엌을 빙 돌아 안방으로 향했다. 널브러진 이불을 대충 정리하고 옷장 앞에 섰다. 어째 입을 것이 하나도 없다. 순간 여자들의 마음을 이해할 것만 같았다.
행거에 걸린 정장을 흘끗 보았다가, 그건 안되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손끝으로 옷을 하나 하나 뒤적이다가 핑크색 후드티를 보고 멈칫했다. 풋풋한 연애 초기 시절, 우지호가 사줬던 거다. 후드티 목 위로 비죽 튀어나온 옷 칼라는 하도 많이 입어 색깔이 바랜지 오래였다. 이어 검정색 스키니진을 발견하고 다리부터 끼워넣었다. 손은 아직도 후드와 캐주얼 니트 사이에서 망설이고 있었다.
결국 후드티를 꺼냈다. 말하자면 오기 같은 것이었다. 내가 추억이랍시고 덜덜 떨 것 같아? 하는, 오기나 자존심 그 중간 무엇 때문에. 스스로가 한심해 혀를 찰 지경이었지만 어쨌든 옷은 입어야 해서 잠옷 티셔츠를 벗었다. 옷을 벗고 입느라 부스스해진 머리칼을 손날로 대충 벗어넘겼다. 벽의 시곗바늘이 7시 50분을 가리키는 것을 흘끗 보고 마지막으로 옷매무새를 정돈했다. 느릿한 발걸음으로 안방 문을 열어 밖으로 나왔다. 아침보다 기온이 많이 낮아진 듯 부엌에는 싸늘함이 가득했다. 아직 엎어진 시리얼이 그대로 있는 싱크대를 시나쳐 부엌 찬장에서 비닐봉지를 꺼냈다.
욕실까지 휘적휘적 걸어가 칫솔을 제일 먼저 담았다. 그 다음은 면도기, 스킨로션, 쉐이빙 크림까지. 거침없이 쓸어담다 샤워 코롱 앞에서 손을 멈칫했다. 느릿하게 손을 뻗어 동그란 뚜껑을 열었다. 익숙한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나와는 다르게 남자다운 향이 어울리는 우지호는 내가 쓰는 과일향 샤워코롱은 죽어도 쓰지 못하겠다고 했다. 너무 달다는 게 이유였다. 그럼에도 맡는 건 싫어하지 않았지만.
코끝이 시큰한 건 코를 자극하는 강한 향 때문일 것이다. 눈까지 시큰해지기 전 뚜껑을 닫고 비닐봉지에 각진 용기를 처넣듯 넣었다. 그대로 안방까지 성큼성큼 들어가 우지호가 일년에 두어번 쓰고 방치해 둔 향수까지 가져왔다. 코 가까이엔 가져가지도 않았다. 나는 건조하고 식상한 이별을 원했기 때문에.
서랍장 문을 마지막으로 닫았을 때 초인종이 울렸다. 시계를 보면 딱 8시 정각이었다. 아마 오 분쯤 더 일찍 도착해 밖에서 몇 분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여느 때보다 훨씬 느릿하게 발걸음을 옮겨 현관문 앞에 섰다. 버튼을 누르면 철컥 소리와 함께 자물쇠가 열리고, 두 걸음 앞에 네가 서 있다. 문을 마저 열고 두 발자국 물러섰다. 너는 세 발짝 반을 성큼성큼 걸어 내 문을 지나쳐 코앞에 다가와 섰다. 아무도 잡아주지 않는 현관문은 쾅 소리를 내며 요란하게 닫혔다. 현관문에 자동으로 록이 걸리고, 머리 위 보조등이 켜질 때까지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백만년 만에 보는 듯한 얼굴은 기억 속의 얼굴과 비슷한 듯 하면서도 어딘가 미묘하게 달랐다.
″…안녕.″
결국은 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언제나처럼 속을 알 수 없는 얼굴이다. 무의식적으로 잘 지냈어,? 물으려다 입을 헙 닫았다. 잘 지냈을 리가 없지. 네 성격에, 날 버리고 잘 지냈을 리가.
나는 너의 사랑만으로 충분의 하늘 위를 거닐듯 살 수 있었지만, 너는 나보다 복잡한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의 삶에선 내가 걸림돌이 된다. 함께 한 시간이 지날수록 진해진 생각이었다. 나는 박힌 돌이지만, 언제고 네 심장 한 구석에 콕 붙박혀 떨어지지 않을 자신이 있지만. 나를 심장에 품는 것 만으로도 너는 어마어마한 희생과 각오를 해야 한다는 걸 아니까. 그래서 너를 위해 기꺼이 벗어나 주는 거야.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비참해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표면적으론 모든 걸 가진 너지만, 이제 너한텐 내가 없으므로. 네 심장에 나라는 공허함의 구멍이 존재하는 한 완벽하지 못할 널 알아서.
어찌 보면 참으로 이기적인 거였다. 우지호는 이제부터 나에 대한 죄책감과 찌꺼기처럼 남은 사랑을 품고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가 그 죄책감을 떨쳐내지 않는 한 나는 그의 안에서 영원히 살아 숨 쉴 테니.
″…밥은 먹었어?″
그래서 헤어짐이 아쉽지 않았다. 대수롭지 않게 물음을 던지면서 동시에 직감했다. 우지호는 두 번 다시 이 집 안으로 다시 발을 들이밀지 않을 것이다. 완벽주의자적인 너의 성격이 나는 처음으로 미웠다. 말쑥한 정장 차림에 손에 든 서류가방. 내 손에 들린 비닐봉지는 결코 저 정장에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주춤 손을 뒤로 해 손에 든 것을 가렸다. 그때까지
말이 없던 우지호가 침묵 끝 입을 열었다.
″…응, 먹고 왔어.″
다시 정장 차림인 우지호를 바라보았다. 정장보다 평상복이, 평상복보단 교복이 어울릴 때 부터 이어왔던 관계가 오늘로써 끝난다는 것을 알았다. 몸에 맞춘 듯 자연스러운 옷 맵시는 우지호를 더욱더 빛나게 했다. 나는 그대로 있는데, 너만 그렇게 자랐구나. 지호야.
우리 둘 사이 침묵이 언제부터 이렇게 숨막히고 무거워 졌더라. 기억도 나지 않는 오래 전, 밝은 햇살 아래 나란히 서 있었던 언젠가의 우리 둘은 이렇지 않았다. 우리는 여름 햇살보다도 찬란한 사랑을 했었다. 어두컴컴한 옷장 안에 갇혀 서로의 얼굴만 틈없이 들여다보는 사랑이 아니라.
″그래.″
″…″
″알았어.″
입술을 달싹이며 세발짝 앞 너를 보았다. 몸 뒤로 살짝 숨겼던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찬해 마트, 지랄맞게도 촌스러운 마트 이름이 손바닥만하게 박혀 있는 것이 창피했다. 검지 손가락에 아슬하게 걸린 비닐봉지는 내용물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손잡이 부분이 찢어질 듯 늘어났다. 목석 같이 서있던 너는 발걸음을 내딛는 대신 나처럼 손을 뻗었다. 하늘을 향한 손바닥은 내 손의 반절은 더 컸다. 여자처럼 곱지만 강인하고 길다란 손가락도, 소매를 걷어부친 팔목에 돋아난 남자다운 힘줄도. 홀린 듯한 발짝 다가가 내밀어진 손을 향해 손을 뻗었다. 손끝이 닿는 순간 놀라 손을 떼었다. 무거운 짐을 든 팔은 힘줄이 돋아 있다. 소리 없는 한숨을 한 번 쉬고 물러났다. 꼭 무대 위로 입장과 퇴장을 반복하는 연극 배우가 된 것 같았다.
관찰하듯 날 보는 시선에 무심한 무표정을 가장했다. 내가 가진 표정들 중 우지호가 유일하게 읽어내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탐색하던 시선이 체념하고 바닥을 향했다. 움찔, 시선이 닿은 발가락을 오무렸다.
″경아, 나 사실…″
″…″
″너 보러 온 거야.″
고해성사를 하듯 고통스런 얼굴이 보기 싫었다. 봐, 넌 아직도 날 못 버리잖아. 날 향한 감정 자체가 죄악인 걸 알면서도 이어왔던 너잖아. 네 팔에 박힌 세례명, 팔목의 묵주, 가슴에 새긴 네 어머니에도 불구하고 날 사랑했던 너니까. 네가 사랑하는 내가 남자라는 사실에 나보다 더 좌절했던 너니까.
멱살을 잡고 외쳐주고 싶었다. 뻥 차버리고 잊어버려, 이 개새끼야. 내 앞에선 성호도 못 긋는 주제에, 나랑 손 잡고는 집 앞 세 발자국도 못 나가는 주제에.
나랑 사랑을 하면서 사랑에 빠진 사람의 표정 대신 죄인의 암울한 표정을 짓는 너를 이해하려 노력했다. 기독교 집안 출신인 내가 널 대신해 성호를 긋게 된 것도, 우리가 짓는 이 추악한 범죄를 조금이나마 정당화 시켜 보려는 나의 발버둥이었다. 그런 네 앞에서, 술 처먹고 너는 왜 남자로 태어난 거냐며 별 주정을 떨어대는 네 앞에서 내가 뭘 할 수 있었겠냐. 사랑이란 말로 떨쳐버리기엔 네 가슴 속의 신이 너무나 대단했나 보다.
하느님, 제게서 왜 지호를 데려가려 하시나요. 기도해 보아도 악마의 죄를 숨쉬듯 저지른 나란 죄인의 기도에 신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너는 아직도 네가 용서받지 못할 죄인이라고 생각하고 있구나.
″우지호.″
″…″
″나 회사 가봐야 돼.″
″…″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열흘 전 사직서를 냈던 회사까지 들먹였다. 죽기 직전 미약한 숨을 쉬는 노인처럼 쇠약한 숨을 들이쉰 네가 입을 달싹였다. 매몰차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숨을 집어삼켰다. 경아, 경아. 나는 네가…
″…잘 지냈으면 좋겠다.″
″…″
축 늘어진 두 팔을 보고 눈을 깜빡. 웃으려 노력하지만 참담하게 일그러진 얼굴을 보고 깜빡. 흐린 초첨을 맞추기 위해 한번 더 깜빡. 내 시야는 이제 좁은 카메라 속 세상 같았다. 카메라의 연속 사진처럼, 띄엄띄엄 멀어지는 너를 보고 팔을 뻗었다. 손끝에 닿는 청바지 재질을 느끼고 흠칫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아니다, 나는 양팔을 옆구리에 바짝 붙인채 미동도 없이 눈만 뜨고 서 있다. 멀어진 건 너 뿐이구나. 문가에 기대 선 우지호의 두 손에는 무거운 짐이 들려있다. 무게에 짓눌려 벌겋게 피가 몰린 손가락 끝을 보았다. 네가 졌었던 나라는 짐보다도 무겁니, 지호야.
″…미안해.″
″…″
″잘… 있어.″
서류가방을 든 손을 올려 버튼을 누른 우지호는 무대에서 퇴장하는 배우 같은 몸짓으로 문을 열었다. 내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고 발만 뒤로 옮겨 문밖으로 몸을 빼낸다. 문에 기대 있는 팔꿈치를 떼고 한 번 더 발을 움직이는 순간, 나의 세상에서 우지호는 사라진다. 오랫동안 눈을 감지 않아 시큰하게 아려왔지만 눈을 감지 않았다. 안녕, 잘 가. 마지막 모습까지 눈에 담으며 인사하고 싶다면 난 끝까지 이기적인 놈일까.
그 때 우지호가 팔꿈치를 떼고 현관 틈새에서 물러났다. 아무것도 잡아주지 않는 문은 낡은 경첩의 삐걱거림과 함께 닫히기 시작했다. 연극이 끝나고 닫히기 시작하는 붉은 커텐 같았다. 양 옆으로 늘어진 팔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우지호의 반듯한 얼굴과 정장을 멘 넥타이를 다급하게 눈에 담았다. 늘어뜨린 팔, 넓은 어깨, 귀, 얼굴 반 쪽. 나를 향한 왼쪽 눈마저 사라지기 직전 천장에 달린 보조등이 픽 소리와 함께 빛을 잃었다.
덕분에 얼굴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어둠 속에 숨겨둘 수 있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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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우리 비픽을 다시 살려 봅시다8ㅅ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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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고갑니다
잘보고갑니당!!
최고에요 샘.....
잘보구갑니당
잘보고가용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