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7장 31절부터 37절
인간들은 눈에 보이는 육적인 장애자 ,특히 전신 불구자를 보면 기피하려는 성향이 있습니다, 왜? 자신들이 도움의 상대가 되어야 하거나 아님 그들을 바라보게 되는 부정적인 생각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기피하려는 육적인 장애자보다 더 기피해야 할 장애자가 있는데 .바로 사단에 메인 영적인 장애자입니다
본문에는 그런 육체적 장애를 앓고 있는 귀먹고 어눌한 자가 타인의 손에 이끌려 그리스도께 왔는데
이 사람이 남에게 이끌려 왔다는 것은 ‘앉은뱅이의 신앙’을 상징하는데
이처럼 스스로 홀로 설수 없고 남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살 수 있는 의존적인 신앙의 모습이 주님의 탄식을 불러 일으켰던 것인데
교회안에도 외적인 모습만 화려할 뿐 .영적으로 귀가 어두운 사람들이 있음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들은 일상 생활속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감각에, 너무 익숙해 있기 때문에 ‘볼 수 있다는 것’에 ‘들을 수 있다는 것’에 ‘느낄수 있다는 것에 대하여 고마움을 별로 알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닌 감각 중에서 어느 한가지라도 없어진다면 ,우리는 매우 커다란 불편을 느끼게 될 것이며. 주의 사람들로부터도 불쌍한 동정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비록 육적인 것에서 느끼는 것 뿐만아니라 .영적인 감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으로 영안이 열린 사람은 .하나님의 존재와 역사하심을 확실히 느낄수 있으며 또한 영적인 눈을 가진 사람은 보통사람들이 볼 수 없는 천국의 아름다운 광경을 볼 수 있으며 .
영적으로 열린 귀를 가진 사람은 하나님게서 우리를 부르시는
음성과 성령의 부드러운 속삭임까지도 들을수가 있는데 이런
성령의 부드러운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것.. 이것은 인간으로서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하늘의 축복입니다.
따라서 영적인 마음과 영적인 눈, 그리고 영적인 귀를 갖지 못한자들은 ,들을수도 ,볼수도, 느낄수도 없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축복을 기대할 수 없기에 참으로 안타까운 인생인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알 수 있다고 보십니까? ,인간의 능력이 아무리 대단하다 하여도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읽을수 있는 안목은 절대로 없습니다
또한, 인간 구원에 관련된 복음진리도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의 눈을 열어서 볼 수 있도록 성령의 조명을 비추어주셔야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앙인들도 하나님과의 원만한 소통을 하려면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서 기도로, 말씀묵상으로, 신앙적인 모든 행위의 드러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이루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축복으로 살아간다는 성도들 중에는
영적인 안목을 가지려는 노력은 하지 않은 체 그져 세상에 묶인체로 안일하게 살아가려는 자만에 빠지는 경우들이 보게 되는데 이럴 때 주님께서 하신 경고의 말씀이 있으십니다
주님께서는 교만함으로 신앙의 눈이 감긴 종교지도자들을 가리켜서 마태복음 23장 17절에 그들을‘ 화 있을진저 어리석은 맹인들’이라고 책망하시었는데
그 무서운 책망이 우리에게 해당되어서는 정말로 안될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소경 바디메오는 그리스도께서 자기 앞으로 지나가실 때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하여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그 모습을 본 주위의 사람들이 소경의 안타까운 마음을 들여다 보기는 커녕 오히려 야단을 치고 막았지만 그럴수록 그는 더 큰 소리로 그리스도를 부르고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남에게 의존하는 모습이 아닌 홀로 서는 신앙의 모습을 보시고
사랑이 많으신 예수님은 그에게 측은한 마음을 가지시고 자비를 베푸사 그의 귀와 입술을 사단의 사슬로부터 풀어 주셨습니다
본문에서 우리가 받는 교훈은
첫째로 예수그리스도는 언제나 연약하고 어리석은 성도들을 위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친히 하나님께 간구하신다는 사실이며
두 번째는 성도들은 이적에 대해 지나친 호기심을 갖기보다는 오히려 말씀에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며
세 번째는 진정 오묘한 일은 하나님께 속한것이므로 우리 인간들이 지나치게 호기심을 가질 필요가 없으며 다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자신의 삶 가운데서 그것을 실천하는 일이야 말로 우리들에게 요구되는 과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실 때 하셨던 사역중의 하나인 치유사역을 보면 예수님은 말씀 한마디로 병자를 고치셨고, 병자에게 손을 얹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치유를 하셨는데
본문의 병자에게는 .발로, 손가락으로, 입안의 침으로 ,기도로, 말슴으로 ,탄식으로,그야말로 몸 밖의 것과 몸 안의 것, 육체와 영혼 모두를 사용하셨는데 왜 그러셨을까요?
예수께서는 인생을 사랑하시되 자신의 모든 것을 다하여 사랑하시는 자비의 사역에 다 쏟아 부으셧던 것입니다
‘주께서 기도하신 후 병자를 향하여 아람어로 ’열려라‘의 뜻인 ’에바다‘라고 말씀하시자 드디어 귀와 입이 정상적으로 치료되고 구원함을 얻었습니다
또한 주님께서 하늘을 우러러 탄식 기도하시니 하나님의 은총의 문이 열렸습니다
주님이 하늘을 우러러보신 것은 그의 도움이 하늘로부터 내려온다는 것을 가리키는데 다시 말해서 그가 기도를 통하여 하늘 아버지를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라 할 수 잇습니다
주님은 ‘에바다’ 라고 우리를 향하여 명하시지만
우리의 죄악이 우리 영.육을 가로막은 탓에 우리가 맹인이 되고 .절름발이가 되고. 벙어리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부족한 모습을 보시고 탄식하시지 않으시도록 우리 모두는 영적인 영안을 열어서 주님과의 친밀한 만남을 이루면서 축복의 통로에서 벗어나지 맙시다
마가복음에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많은 이적과 기사 특히 병 고치는 기사가 많이 나오는데 특이한 것은 이적의 주체자이신 하나님께서
주위에 잇던 무리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하게 경계를 하시는 부분이 나오는데 복음이 전파되려면 예수님의 능력이 소문을 통해서 퍼져나가야 하는데 오히려 소문을 내지 말라시는 예수님의 당부를 우리는 이해가 잘 안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기적을 행하실 때마다 그것을 엄히 숨기신 이유 중의 첫번째는 잘못 와전되는 것을 막기 위함인데
주님은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소문이 잘못 알려지면 ,단순한 예언자나 능력을 행하는 자, 엘리아나 세례요한과 같은 사람으로 잘못 알려질 것을 염려 하셨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주님의 우려는 적중하여 주님게서 가이사라 빌립보에서 제자들에게 말하시기를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하고 물으셨을때에 제자들이 하는 말이 ’더러는 세례요한 ,더러는 엘리아, 어떤 이는 예레미아나 선지자중의 하나‘로 알고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일정한 기간 동안 땅에 계시면서 많은 것을 사람들에게 가르치신 후 죽으셔야 했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되기 전에 십자가에 달리셔도 안되었고 율법의 완성과 구원의 완성을 이루시기 전에. 인생들에 의해 헛되이 고난을 받으셔도 안되었기에 당신의 치유사역을 알리지 말라고 당부를 하신 것 이었습니다
두 번째 자신의 기적을 사람들에게 숨기신 이유에서 주님의 겸양의 미덕을 발견하게 합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자기의 자그마한 능력이라도 인정받고 싶어서 일부러 자기 이름을 세상 사람들에게 드러내려고 하지만
그러나 신실한 성도들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을 기쁨으로 삼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증거, 그리고 성경으로부터 받는 내적증거로 하나님게 영광을 돌리면서 큰 기쁨을 얻어야 합니다
예수님게서는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기를 거절하셨을 때 하나님께서 주님을 높이셨는데
빌립보서 2;5~11절에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셔서 하늘에 있는 자들이나 땅에 있는 자들이나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 앞에 꿇게하셨다했습니다
세 번째는 진리는 어둠속에서 더욱 찬란한 빛을 발하게 마련이기에 진리는 숨긴다고 해서 그 빛이 가리워지지 않는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아가 도래하여 천국이 이루어지면 ‘그때에 소경이 눈이 밝을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것이며
그때에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한다‘고 예언하였는데 예수님께서 친히 사역을 시작하실 때 이런 이사야의 글을 통해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셧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자에게 다시 보게함을 전파하며 눌린자를 자유롭게 하고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따라서 본문의 이러한 치유는 단순한 이적의 차원이 아니라 천국의 도래를 나타내는 것이며
예수님의 사역은 단순한 이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기적만을 베풀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이라 하나님나라 시작을 위해서 오신 것이며
이미 하나님나라는 임했고 또한 예수님이 재림시에 완성이 될 것이라는 겁니다 , 따라서 성도는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이 단순한 삶이 아니라 천국이 이미 임했다는 사실을 증거 하는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