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재경 대구사범 동창회 참석과 스승의 날 제자, 그리고 12회 사범 후배님 초청에서의 감회가 깊어 대구사범과의 인연을 연상게 되었습니다. (스승의 은혜와 동창의 따뜻한 情,제자의 스승 존경에서)
1956년 김천중학교를 졸업하면서 가정형편으로 인문계 진학을 포기하고 학비가 적고 졸업하면 즉시 직장이 보장 되는 학교를 생각 하게 되었다. 당시 체신고등학교는 졸업하면 우체국,교통고등학교는 철도청 공무원,사범학교는 교사로 직장이 보장 되는 학교였다. 이 학교 중에서도 사범학교는 국립으로 학비가 없을 뿐 아니라 졸업하면 국민학교 2급 정교사로 직장이 보장 되는 학교였기에 사범학교를 택한 것이다.. 대구사범 진학 졸업으로 지금의 행복한 삶을 새삼 느낀다
國立大邱師範範學校 진학으로 얽혀진 인연을 생각 해 본다. 먼저 결론 한마디 부터 김천중학교 - 대구사범학교 - 대구교육대학교 계절제 편입 4년 수학 교사 -교감- 장학사 -장학관 -교장 40여년 교직에 봉직 정년 퇴임의 보람 ............................................................................................................................................ 國立大邱師範學校와 나의 인연을 조금 구체적으로 살펴 보면. 대구사범학교는 재학시절 수업료가 없으며 관비(장학금)가 지급 되었다.
학교 교사 모습 1956년 입학 당시 대명동 언덕배기 돌뿌리 솟아 있는 부지에 세워진 국립대구사범의 교사 전경이다.교사 전경은 흐름 했지만, 교사 우측 상단 大師란 모표를 단 모자에 이 뺏지를 달고 다니면 아는 사람은 ' 너 참 좋은 학교에 다니며 선생이 되겠구나 '라며 우러러 보았다. 이 사진이 나의 대구사범학교 학생시절의 사진이다. 인자 하시고 情이 깊으신 김영기 교장 선생님으로 본과 1학년 2반 (남여공학반) 담임 두용규 선생님
김영기 교장선생님은 구 대구사범학교 (심상과)교사 재직시 박정희 대통령 은사이시고 저의 1학년 2반 담임이시었던 두용규 선생님도 구대구사범학교 심상과 출신으로 박정희 대통령과 동기시며, 김영기 교장선생님의 제자이시었다. 두용규 담임 선생님은 체육과 선생님 이셨다.
본과 2학년때 증축 된 신 교사 전경 이다. 아담한 3층 건물로 1층은 1학년,2층은 2학년,3층은 3학년 교실로 배치 했다. 위 세 분의 선생님은 본과 8회와는 인연이 깊으신 선생님들이시다. 한창희,정상진,이정원 선생님으로 2학년 담임에 이어 3학년 담임으로 저희들 졸업을 시키셨다.
저와 한창희 담임선생님과 3반 담임이정원 선생님과의 인연 남다른 사제간. 한창희 선생님,이정원선생님과 소풍지에서 기념사진도 찍고 졸업식을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을 만큼 가까운 사이가 된 것은 2학년 1반 학급 임원을 맡으면서 선생님과 자주 접촉하게 되었으며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교를 중퇴할 형편 이었을 때 한창희 담임 선생님이 이정원 선생님을 연결 시켜 주시면서 그 계기로 이정원선생님과의 인연으로 사범학교를 졸업하게 되었다.
이정원 선생님과의 인연
( 사진 1)
한창희 선생님이 이정원 선생님에게 저를 부탁하셔 이정원 선생님이 평소 다니시는 홧숑미장원집 언니 아우 같은 사이의 원장 자녀 가정교사로 소개해 주셨습니다. 이를 계기로 이정원 선생님은 어머니 같으신 인정으로 저를 도와 주셨다. 선생님은 독신으로 사시면서 꽃 가꾸기,새 기르기를 좋아 하시면서 남산동 단독 주택에 혼자 사시면서 꽃과 새를 많이 기르셨다. 저는 일요일이면 이 학생을 대리고 선생님 댁에 가곤 했다. 이 어린이는 전 부터 이정원 선생님과 낮 익은 사이라 선생님 댁 꽃과 새 보는 것을 좋아 했다. 선생님댁에 가면 수재비국도 끓여 주셨던 선생님이었다.
( 사진2 ) 한창희 선생님과 이정원선생님의 사랑과 배려에 류상덕 친구도 형제처럼 지내면서 두 선생님과 가까웠다.
( 사진 3 ) 1959년 3월 31일 발령 후 장미꽃이 만발한 5월 선생님을 찾아 뵈었고 기념사진도 찍은 흔적이다.
( 사진5 ) 한메 결혼 기념 사진 이정원 선생님은 본과 12회 졸업후 사범학교 폐교로 경산 자인고등학교로 전출 되셨고 경북여고 최명주 교장님 소개로 세무서장(본처 사망)으로 퇴직하신 분과 재취로 결혼 하셨다. 60이 넘어 결혼, 대구예식장에서 김영기교장선생님이 주례하셨고 한창희 선생님이 웨이딩 마취 피아노를 치셨다. 하객은 대구사범 졸업생 교가합창 축하 노래가 예식장에 울려 퍼졌고 유래없는 예식 장면이었다. 그 후 신혼 생활을 하실 때 저의 결혼(1964년 8월 29일 결혼) 소식을 듣고 참석하셔 신랑 신부 친구 분들과 함께 기념 사진도 찍어셨다.
( 사진6 ) 위 사진은 2001년 교대부초 교장 재직시 교내 학예발표날 이정원 선생님을 초대하셨드니 참석 하신 모습을 본교 선생님이 포착하셔 찍은 사진이다.
선생님은 늦게 결혼하셔 재미있게 노년 신혼생활을 하시면서 영남대학교에 강의도 나가셨다. 그 후 몇 년 되지 않아 남편은 중풍으로 돌아 가시고 혼자 고독한 생활을 하시다 2004년 11월 14일 혼자서 아무도 지켜 보는이 없는 독방에서 돌아 가신 것이다. 그 당시 저가 소개해 드린 가정부의 도움으로 생활 하셨는데 이 분이 연락해 방문하였드니 싸늘한 죽음으로 혼자서 눈을 감으셨던군요. 너무 처절하게 보였습니다. 영남대학병원 영안실로 모셔 여러 사범 제자들의 도움으로 장례를 치려 드렸다. 이것으로 선생님과의 인연이 마지막이었다.
대구사범 졸업후 대명언덕 14년 6개월의 인연 ( 사범학교 3년, 교육대학 4년,부속교감 4년 6개월,부초교장 3년) 박태암 선생님( 선생님,교수로,학장님으로) 박태암 선생님과는 9년의 인연이었다. 사범학교 3년은 선생님으로, 교육대학 4년은 교수로,부초 교감 재직시는 직속상관 인 학장으로 2년 그리하여 선생님으로, 교수로,부초 교감 재직시 직속 상관 인 학장으로 모시면서 도움을 받은 선생님과의 인연은 남 달랐다.
아래 3분의 선생님 사범학교 시절 김성권,김병업,박정수 선생님은 대학시절 다시 강의를 받은 교수로 대명언덕에서 2번째 만남의 인연이었다. 대구교육대학교 편입 재학시절 교정이 이렇게 변모 되었다 그러나 중앙 원형 화단에는 본과 8회 졸업기념비는 그대로 남아 있었으나 좌대는 수정 되었다.
2024년 5월 12일 현재는 이렇게 변했다 중앙 원형 화단에는 8회 졸업 기념비 ' 너희는 먼저 그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는 비가 ' 참된 스승의 길을 간다 '는 비로 바뀌었다.
사범학교 흔적으로 유일하게 남은 본과 8회 졸업 기념 비의 좌대가 아래와 같이 개조되어 오다가 현재는 대학 본부 앞 화단 옆에 옮겨져 있다. 지금은 이 비의 내막을 모르는체 외롭게 서 있다.
오른쪽 세번째 본과 8회 졸업 기념비 좌대 변경과 옮겨진 현 모습이다. 외로워 검은 눈물을 흘린듯 자국이 보인다.
2024년 5월 12일 모교 대구교육대학교를 방문 現 배상식 총장님을 뵈옵고 지워져 보이지 않은 비명패를 아래 좌대 글씨와 같이 분명하게 알 수 있도록 동판이나 놋쇠판에 새겨 비명패를 달아 주시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명문 大邱師範學校의 상징이 앞으로 영원히 알려지리다 저가 오늘 까지 건강하게,즐겁게 살아가며, 행복하게 사는것은 국립 대구사범학교의 졸업과 사랑으로 가르쳐 주신 선생님 은혜와, 情이 두터운 선후배가 있음이다.
대구사범학교 본과 8회 졸업 한메 성 용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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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대구사범카페에 딱 어울리는 글을 올려주셔서 감명 깊었습니다.
과연 국립대구사범학교 모범 졸업생이며 교육자이십니다.^^
인생 전반(全般)을 교육자로서의 생을 살고 계시네요.
은퇴 후에도 동기와 동문들과 유대를 가지고 서로 이끌어 주고 밀어 주며
함께 모교의 터전에서 이탈하지 않고 살고 계시니 참된 스승이시며 모범 애국자이십니다.
할 말이 태산 같지만 지면 상 줄이고
1학년 공반에 있었는데 그 때의 친구는 두 사람만 기억하고(이름은 모름) 있을 정도로 사회성이 제로였습니다.
용제도 몰랐고.ㅋㄷㅋㄷ
전 대구 근무 8년 선에서 전근해서,
청도 남성현에서 1년 근무 퇴직했으니 교육자도 못 된 셈입니다.
이 글 준비하느라 꽤나 시간 소요하였겠습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능자씨와 1학년 2반 같은 공학반 이었을 학창 시절 그 당시 한 반이었던 동기를 안 것은
당신 한 사람 뿐이었을 정도로 모두 몰랐습니다.
촌뚜기로 대구의 여러 똑똑한 친구설치는 바람에 눌려 꾹 처벅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능자 이름과 얼굴은 똑똑하게 기억 을 했습니다.
입학식 선서한 여학생이 우리 반 학생 이었으며 그 어려웠던 관문에 수석 합격자라 들었기 때문이었지요.
내 속으로 ' 저 가시나 머리가 얼마나 좋기에 수석이라' 생각까지 했기에 당신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했답니다. ㅎㅎㅎ
엮시나 지금도 동기 중 바람새를 따라갈 동기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두뇌가 좋은 것이 아니고 찍기가 행운이었던 셈입니다.ㅎㅎ
좋은 글과 사진을 잘 보았습니다. 한메 선배님의 살아온 길을 보는 것이 대구사범학교가 걸어온 길을 보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대구사범학교가 걸어 온 길.--적절한 표현입니다.^^
대구사범학교 전 졸언생 중 가장 훌륭한 선배님이시고 Roll Model로 존경합니다.
대구사범학교 졸업생으로 인생으로 보면, 현재 93세로서 정정하신 정재식 장군님께서 Roll Model이시고 존경합니다.
위 두 선배님의 만수무강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