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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 이어 듣기_소화 데레사의 삶과 사랑 2편 ( 1:04:51 )
한 권 이어 듣기_소화 데레사의 삶과 사랑 2편
제 2장 내 삶의 두 번째 시기
< 뷔소네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되다.>
나는 알랑송을 떠난 것이 전혀 슬프지 않았다.
오히려 그러한 변화가 기뻤으며, 리지외의 새 삶에 대해 기대가 컸다.
알랑송에서 리지외까지의 여행과
저녁에 이시도르 외삼촌 댁에 도착했던 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우리가 현관에 들어섰을 때 외숙모와 외사촌 요안나와 마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첫날 밤을 우리는 성 피에르 거리에 있는 외가에서 보냈다.
다음 날 아침 외가 식구들은 우리의 새 보금자리인 뷔소네까지 우리를 데려다 주었다.
뷔소네는 시내에서 뚝 떨어진 외곽에 있었으며,
별들의 공원이라고 부르는 아름다운 산책길에서 가까웠다.
나는 우리 집에 특히 전망실에 매혹되었는데
이 방에서는 멀리 떨어진 곳까지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또한 주교좌 성당 탑과 우리 본당인 성 야고보 성당,
종탑을 비롯하여 도시 전체를 볼 수 있었다.
집 앞에는 영국풍의 정원이 있었으며, 그 뒤로는 단층집이 있었는데
뛰어다니며 놀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가옥 전체는 담장과 키 큰 나무에 둘러싸여 있었으므로
우리 가족에게 더없이 아늑한 보금자리였다.
우리는 이사한 바로 그날부터 부지런히 이삿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1층에는 주방과 식당이 있었고, 좁은 계단이 마리와 폴리나의 방으로 이어져 있었으며,
그 옆이 아빠의 방이었다.
레오니와 셀리나, 그리고 내 방에는 뒤쪽 정원으로 통하는 출입문이 있었다.
집 맨 꼭대기에 있는 가장 아름다운 전망실은 아빠의 서재로 꾸몄다.
그 당시 리지외는 인구 1만 8천 600명이 사는
칼바도스 지역에서 가장 큰 산업도시였고 이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포공장, 연사 직물공장, 침구류 공장, 피업공장, 증류주 제조공장 등이 있었다.
토요일마다 노르망디 지역의 생산물을 시장에서 살 수 있었다.
리지외는 목조 가옥이 빽빽하게 들어선 오래된 거리로 인해 중세 도시와도 같았다.
축일에는 주교좌 성당 옆에 있는 공원 가로수길에서
군악대가 연주를 하여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그러나 1870년 리지외도 전쟁 후유증에 시달렸다.
번창했던 직물 산업은 눈에 띄게 쇠퇴했으며,
경제 상태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분쟁이 일어났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네 살 반밖에 안 된 나에게 먼 나라의 이야기였다.
나의 세계는 아직도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사랑하는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의기소침해지긴 했지만
그 아픔을 떨쳐버리는 데 도움이 되는 아름다운 일들을 많이 체험했다.
내가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도록 언니들은 애를 썼다.
아침에 언니들은 나를 꼭 안고 사랑스럽게 깨워주었고,
다 같이 기도하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마리와 폴리나는 새 가정부 빅토리아한테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엄마에게 살림하는 것을 배운 마리가 집안 살림을 이어 받았으며,
폴리나가 집안 일을 거들면서 셀리나와 나의 교육을 도맡았다.
레오니는 도시 서쪽에 있는 베네딕토 수도원 기숙학교에 들어갔으며,
셀리나는 그곳에서 반 기숙생으로 다녔다.
나는 5살에 이미 읽기와 쓰기를 배웠으며,
나 혼자 읽은 첫 단어가 천국이었다.
마리가 읽기를 넘겨받아 가르쳤고,
폴리나는 쓰기와 내가 즐겨하지 않는 문법을 연습시켰다.
문법 시간에 여성이니 남성이니 하는 것들을 구별해야 할 때는
눈물이 방울방울 연습장 위로 떨어졌다.
배우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나는 기억력이 좋았다.
가장 좋아한 분야는 의심할 여지 없이 교리 교육과 재미있는 성경 이야기였다.
나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아빠의 서재인 전망실로 올라가
마리와 폴리나가 매겨준 점수를 아빠에게 자랑스럽게 내보였다.
또한 언니들은 열심히 따라하는 나에게 칭찬 점수를 주었는데,
일정한 점수가 모이면 상과 함께 수업 없는 휴일을 주었다.
오후가 되면 아빠는 어김없이 나와 함께 산책을 나갔다.
아빠는 도시에 있는 많은 것들을 보여주었는데,
특히 아름다운 예술품으로 장식된 성당을 보여주었다.
아빠에게 특별히 중요한 것은 매번 성체를 방문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처음으로 가르멜 수녀원 성당을 방문했는데,
아빠는 창살을 가리키면서 저 뒤에는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
계속해서 기도하는 경건한 수녀님들이 살고 있다고 했다.
산책에서 돌아오면 나는 곧장 두 선생님이 내준 숙제를 했다.
때로는 저녁 식사 때까지 정원에서 뛰놀았으며 온갖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곤 했다.
나는 인형을 가지고 노는 것에는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는데,
특히 화창한 날 정원이 나를 부를 때는 더욱 그랬다.
나무, 껍질, 곡식알, 솔방울, 돌 등 자연 속에서 만나는 것들과 놀기를 좋아했다.
또 아빠를 놀이에 끌어들이기도 했다.
아빠는 온갖 방해에도, 예를 들면 독서를 중단시켰을 때에도 결코 화를 내지 않았다.
나의 어린 시절을 행복하게 했던 많은 것들을 모두 열거할 수는 없다.
아빠, 사랑하는 임금님께서 나를 낚시터에 데려간 여름날들은 특히 아름다웠다.
때때로 작은 낚싯대를 드리우기도 했지만,
대부분 꽃이 만발한 초원에 앉아 사색에 잠기거나
코끝을 간지럽히며 스쳐가는 바람 소리를 들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오후 시간은 너무도 빨리 지나갔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폴리나가 싸준 빨간 잼을 바른 빵을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어느 날 빵에 바른 잼의 색깔이 변한 것을 알았다.
그때 나는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은 사라지며
오로지 하늘나라에서만 구름 한 점 없는 영원한 기쁨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하나 내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산책길에서 만난 불쌍한 남자였다.
그는 지팡이에 의지해 힘겹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나는 동전을 들고 그에게 달려갔다.
그는 슬픈 표정으로 오랫동안 나를 바라보더니
씁쓸하게 웃으면서 머리를 저어 내 동전을 거절했다.
나는 말할 수 없이 슬펐다.
나는 단지 그를 위로하고 그에게 기쁨이 되고자 했을 뿐인데,
뒤늦게 내 생각을 했는지 그는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서 웃어주었다.
그때 아빠가 과자를 사주었는데,
나는 그것을 들고 얼마나 그에게 달려가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 당시 나는 다음과 같은 격언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가끔 한 조각의 빵보다 한송이의 장미가 더 의미가 있다.
나는 첫영성체를 하는 날 이 불쌍한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기로 결심했다.
사랑하는 하느님은 첫영성체를 하는
어린이의 기도를 잘 들어주신다고 했기 때문이다.
5년 후 나는 약속을 실천했으며,
하느님께서는 그를 틀림없이 도와주셨을 것이다.
나는 주일과 축일을 무척 좋아했는데, 그날은 평상시와 달랐기 때문이다.
특히 수업이 없었으며 숙제도 없었다.
나는 실컷 늦잠을 잤으며,
언니는 아침 식사로 초콜릿 우유를 침대까지 갖다 주었다.
그런 다음 마리는 옷을 입혀주고 머리를 빗겨주었는데,
나는 늘 소리를 지르고 대들고 하여 언니 속을 썩였다.
우리는 주교좌 성당인 성 베드로 성당으로 미사를 갔는데,
거기 가면 친척들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리지외로 이사 온 지 두 달 후 나는 처음으로 내가 들은 강론을 이해했다.
그때 뒤슬리에 신부님은 예수님의 수난에 대해서 강론을 했는데,
어린 내 마음은 온통 그 말씀에 쏠렸다.
그때부터 나는 모든 강론을 이해하게 되었다.
한 번은 신부님이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에 대해 강론을 했는데,
아빠는 나를 내려다보면서 조용히 말했다.
"잘 들어라. 신부님께서 너의 주보성인에 대해 말씀하신다."
나는 신부님 말씀을 열심히 들었지만
신부님보다는 아빠의 얼굴을 더 자주 쳐다보았다.
왜냐하면 임금님의 진지한 얼굴이
믿음은 불가사이한 어떤 것임을 잘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일과 축일에 외가 식구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했는데 무척 즐거웠다.
나는 종종 마리나 셀리나와 함께 저녁 때까지 친척들 곁에 있었다.
우리는 사촌들과 놀거나 이시도르 외삼촌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런 날은 빨리 지나갔다. 저녁이면 아빠가 우리를 데리러 오셨는데,
나는 아빠를 만나는 것이 기뻤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늘은 맑았으며, 우리는 반짝이는 별들을 관찰했다.
한 번은 오리온 별자리를 보았는데,
나는 거기서 'T'자처럼 보이는 별들을 발견하고는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기쁨에 넘쳐서 나는 이렇게 소리쳤다.
"아빠, 저기 좀 보세요. 내 이름이 하늘에 쓰여 있어요."
평일이 시작되면 수업이 계속되었다.
폴리나는 엄마 역할에 충실하려 했으므로 쉽게 예외를 만들지 않았다.
그와 반대로 아빠는 아무것도 거절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아빠를 통해서 내 마음대로 했다.
폴리나는 오전 수업을 잘하기 위해 오후 산책을 빼버리기도 했다.
그러면 아빠는 나를 위해서 폴리나에게 허락을 청했고,
드디어 아빠와 함께 산책을 나가곤 했다.
폴리나는 내가 착하게 자라도록 마음을 많이 썼다.
나의 지나친 감수성은 종종 가족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는데,
우리 집 식구들은 고집불통인 나를 길들이는 데 훌륭한 조련사들이었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일이 있다.
한 번은 우리 집 가정부 빅토리아에게 심하게 화를 냈는데
그녀가 나를 있는 대로 놀렸기 때문이다.
나를 작은 악마라고 놀리면서 재미있어 했다.
이렇게 그녀는 종종 내 화를 돋우었다.
한 번은 내가 '빅토리아는 작은 난장이야!' 라고 소리쳤는데
그녀는 심하게 기분이 상했다.
폴리나는 많은 인내심과 섬세한 이해심으로
나의 모난 성격을 스스로 의식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매일 저녁 반성 시간이면
사랑하는 하느님께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청하도록 나를 이끌어 주었다.
나 역시 가족들이 나를 항상 용서해 주고 넉넉한 사랑으로 감싸준다는 것을 느꼈다.
다섯 살 반쯤 되었을 때 나는 처음으로 고해성사를 보게 되었다.
이것은 나에게 행복하고도 소중한 기억이다.
폴리나는 신중하게 나를 준비시켰다.
한 인간에게 죄를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 죄를 고백하는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나는 진지하게 내가 하느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고백 사제에게 말하면 안 되는지 물어보았다.
나는 내가 말할 내용과 취할 태도를 분명히 알고
고해실로 들어가 고해 틀에 무릎을 꿇었다.
신부님이 나를 향해 돌아 앉았을 때 그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는데,
내가 너무 작아서 내 머리가 겨우 고해틀에 팔 받침대에 닿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신부님은 내가 서서 고해성사를 보도록 했다.
나는 마치 어른처럼 고해성사를 보았으며 축복을 받았다.
고해실을 떠날 때 나는 마치 깃털처럼 가벼운 느낌이었으며,
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큰 기쁨을 느꼈다.
그때부터 큰 축일 전에는 꼭 고해성사를 보았으며, 그것은 매번 축제가 되었다.
첫 고해성사를 본 지 얼마 안되어 나는 처음으로 바다를 보았다.
1878년 8월 8일 아빠는 나를 데리고
리지외에서 북쪽으로 약 30킬로미터 떨어진 트루빌에 갔는데,
여행의 목적은 마리를 데려오기 위해서였다.
이시도르 외삼촌은 트루빌에 별장을 하나 빌렸는데
언니들을 차례로 초대하여 사촌들과 지내도록 했던 것이다.
바다에 대한 첫 인상은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출렁거리는 파도는 아무리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았으며,
석양이 지는 광경은 깊은 감명을 주었다.
석양은 불덩어리처럼 바다의 수면을 스치면서
물 위에 밝은 길을 활짝 펼쳤다.
나는 이렇게 상상했다.
내 마음은 하얀 돛을 단 날쌘 보트가 되어 태양을 향해
빛나는 이 길을 달려가고 있다.
나는 영원한 생명의 강가에 빠르고도 기쁘게 도달할 수 있도록
예수님을 항상 눈앞에 모시고 있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다지 중요하지는 않지만 내 삶의 기본 방향을 보여주는
작은 사건 하나를 들려주고자 한다.
마리가 인형 옷과 천 조각, 그리고 색색의 레이스가 가득한
바구니를 가지고 왔을 때 셀리나와 나는 깜짝 놀랐다.
우리는 그때 인형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마리는 우리가 그런 것을 가지고 놀기에는 지났다고 느꼈는지 상냥하게 말했다.
"얘들아, 너희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가지렴."
셀리나는 레이스 몇 개를 골랐다.
나는 잠시 생각한 후 바구니를 통째로 집어들고 달아나면서
어이없이 쳐다보는 언니들을 향하여 이렇게 소리쳤다.
"나는 다 가질 거야!"
<베네딕토 수도원 학교에서>
뷔소네의 첫 3년은 이렇게 표현할 수 있겠다.
'후다닥 지나간 행복한 시절!'
1881년 10월 3일, 나는 8살의 나이로
베네딕토회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학교에 들어갔는데,
레오니는 그때 학교를 졸업했다.
나는 초록색 반이라고 불리는 네 번째 반에 들어갔다.
80여 명의 여학생은 여섯 반으로 나누어 졌으며,
각기 하얀색, 오렌지색, 빨간색, 초록색, 하늘색, 보라색 허리띠로 구분했다.
나는 셀리나와 외사촌, 요안나,
그리고 마리와 함께 1.5km 떨어진 학교까지 걸어다녔다.
외가의 가정부가 우리를 학교까지 데려다 주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우리는 반 기숙생으로서 저녁 때까지 학교에 머물렀는데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자습실에서 숙제를 했으며, 운동장에서 뛰어놀기도 했다.
저녁 6시쯤에 아빠나 외삼촌이 우리를 데리러 왔다.
나는 기숙사 시절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편안했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았다.
1886년 5월까지 수도원 학교에 다닌 5년이란 세월은
내 인생에서 가장 우울한 시절이었다.
셀리나가 없었다면 단 한 달도 견디지 못하고 병이 났을 것이다.
마리와 폴리나가 나를 가르친 덕분에 나는 우리 반 아이들보다 한 발 앞서 있었다.
수학과 철자법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반에서 첫째였다.
우리 반 아이들은 질투심 때문에 나를 따돌렸다.
한때 기숙사에서 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얼마 뒤 그 아이마저 따돌림을 받지 않으려고 다른 아이들 편을 들었다.
나는 이 경험을 통해 모든 공동체와 우정은 시기와 질투 때문에
파괴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무력한 느낌이 드는 한편으로 친구를 사귀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뛰노는 놀이에 대해 흥미를 느끼지 못했으므로
나는 혼자 있는 것을 즐겼다.
쉬는 시간에 꽃을 따거나 죽은 새를 묻어 주었으며,
내게 귀 기울이는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해주거나
유치원 아이들과 놀아주었다.
다시 말해 우리 반 아이들과는 제대로 사귈 수가 없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나와는 전혀 다른 관심사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엄마의 죽음을 통해서, 언니들과 함께하는 생활을 통해서,
그리고 어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성장했으므로
또래 아이들보다 성숙한 편이었다.
저녁에 뷔소네로 돌아오면 얼마나 해방감을 느꼈는지 모른다.
의기소침했던 나는 다시 살아난 것처럼
아빠의 무릎에 매달려 내가 받은 점수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아빠의 입맞춤은 나의 모든 고통을 잊게 해주었다.
학교가 쉬는 날에는 정원에서 놀았다.
외사촌 마리와 함께 은수자의 삶이라는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냈다.
우리는 작은 제대를 꾸며놓고 거기서 기도했으며,
침묵 가운데 사랑하는 하느님에 대해서 깊이 생각했다.
어느 날 폴리나에게 나의 비밀을 털어놓았다.
나는 은수자가 되어서 그녀와 함께 먼 사막으로 떠나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다정하게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가 클 때까지 기다릴게.
나는 이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으며, 다른 일이 생길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 두 번째 엄마의 출가 >
1882년 여름 우연히 가족들의 이야기를 통해
폴리나가 리지외에 있는 가르멜 수도원에 입회하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이제 나는 두 번째로 고아가 되는 것이다.
나는 순진하게도 내가 자라면 폴리나와 함께 수도원에 가리라고 상상했다.
그러나 하느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르고, 그분의 길은 우리의 길과 다르다.
땅 위에 하늘이 아득히 높듯이, 그분의 길 또한 우리의 길보다 아득히 높다.
예리한 칼날이 내 가슴을 꿰뚫는 것 같았다.
나는 가르멜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폴리나가 수도원에 들어가길 원하며
나를 더 이상 돌봐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나중에 들은 것이지만, 폴리나 본인도 가르멜의 성소에 대해서 매우 놀랐다고 한다.
그것은 갑작스럽게 생긴 일로
1882년 2월 16일 그녀가 '가르멜 산의 사랑스러운 부인'
마리아 동상 앞에서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영감이 떠올랐다는 것이다.
그 동상은 우리 본당 성 야고보 성당 안에 있었으며,
마침 가르멜 수도회의 정신적 어머니인 아빌라의 데레사 성인
서거 300주년을 기념하여 드라트루에트 신부님이
우리 본당에서 3일간 기도의 날 행사를 하던 때였다.
폴리나는 성소를 받은 바로 그날 아빠께 말씀드렸고 승낙을 받았다.
그리고 가르멜 수도원 원장 수녀님도 그녀의 결정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때의 놀라움과 두려움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인생은 고통과 계속되는 이별뿐이라는 느낌을 받았으며 많이 울었다.
반면에 폴리나는 무척 행복해 보였다.
그녀는 가르멜의 생활이 어떤 것인지 설명해 주면서 나를 위로해 주려고 애썼다.
나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녀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다.
언젠가 사랑하는 하느님께서 나도 불러주실
가르멜은 사막과 같은 곳일 거라고 생각했다.
폴리나는 입회를 앞둔 마지막 주간이 되자
입맞춤과 선물 공세로 지나칠 만큼 잘해주었으며,
맛있는 케이크를 잔뜩 만들어 주었다.
이별의 날 곧 1882년 1월 2일 월요일을
태양이 찬란하게 빛났음에도 하루 종일 눈물로 보낸 것을 기억한다.
아빠는 폴리나와 함께 가르멜에 갔고,
나머지 가족들과 외가, 친척들은 미사에 참석했다.
우리는 미사 동안 내내 울었다.
미사에 참석한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흐느낌 때문에
자주 우리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들은 우리의 가슴이 얼마나 메어지는지 결코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날은 정말 불행한 날이었다.
왜냐하면 그날은 새 학기가 시작되는 날이라
미사 후에는 학교에 가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3학년이 되었는데 우리는 첫영성체 준비를 했다.
종교 교육은 다른 과목에 비해 특별한 위치를 차지했다.
그 밖에도 여자 선생님 한 분이 왔는데,
일주일에 세 번씩 첫영성체를 준비하는 어린이들을 보살펴 주었다.
성체를 모시게 된다는 생각이 고통 중에서도 깊은 행복을 느꼈지만
그것마저도 우울한 일이 되었다.
주교님은 첫영성체 교육에서 나를 제외시키기로 결정했는데,
그 이유는 내가 너무 어리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교회법이 요구하는 기준에서 이틀이 모자랐다.
(내 생일은 1월 2일이었으므로 12월 31일까지라는 기준에서 이틀이 부족한 상태였다.)
이시도르 외삼촌은 특별 관면을 청하기 위해
지체 없이 주교님이 있는 바위외를 찾아갔다.
그러나 친절하지만 단호한 거절이었다.
"죄송합니다만 예외를 만들 수가 없습니다.
약사님의 조카딸에게도 어쩔 수 없습니다.
첫영성체를 하는 어린이는 만 11세가 되어야 합니다."
그 말은 상처투성이인 내 가슴에 너무도 가혹한 것이었다.
나는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매주 폴리나를 찾아갔는데 그것마저 고통뿐이었다.
면회시간은 삼십분이었는데 마리와 외숙모가 계속 이야기를 했고,
나에게 허락된 시간은 겨우 2~ 3분 뿐이었다.
결국 나는 '언니가 나를 완전히 잊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러한 충격은 내 영혼 깊숙히 숨겨두었던 엄마의 죽음을 일깨워 주었다.
< 희귀한 병 >
나는 1882년 12월부터 아프기 시작했는데, 그 원인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두통과 옆구리와 가슴 통증이 나를 떠나지 않았다.
내 얼굴은 부스럼으로 뒤덮였으며, 나는 거울 보는 것조차 싫어했다.
밥도 먹을 수 없었으며, 잠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이제는 큰언니 마리가 엄마 역할을 떠맡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가 나를 다루는 방법이나 성격 때문에 나는 끊임없이 반항했다.
셀리나와 나 사이에는 자주 작은 마찰이 일어났으며,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말다툼을 했다.
나는 마치 선인장처럼 가시돋친 사람으로 변했다.
사랑하는 폴리나는 가르멜 안에서 이 모든 일을 다 알고 있었다.
그녀는 따끔한 경고와 함께 비록 도움이 되지는 못했지만
유익한 충고가 적힌 작은 쪽지를 자주 보내주었다.
곤자가의 마리아 원장 수녀님은
나의 걱정스러운 상태를 알아채고 이런 편지를 보냈다.
'내 작은 딸 데레사가 잠도 못 자고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작은 천사 같은 대레사에게 충고하니
하루 종일 폴리나 생각만 하고 있지 말아요.
그것은 데레사의 작은 가슴을 지치게 하고 건강을 해칠 수 있어요.'
나는 편지를 읽고 반항심이 생겨서 이렇게 혼잣말을 했다.
첫째, 나는 당신의 작은 딸이 아니에요.
둘째, 나는 이미 작은 천사가 아니에요.
셋째, 당신이 내 가슴의 상처를 들추어내는 것은 야비한 짓이에요.
분명히 원장 수녀님은 내가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는지
폴리나와 다른 수녀님에게도 말했을 것이다.
내가 완전히 그들의 손에 들어있다는 생각을 하자
심한 무력감을 느꼈으며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었다.
셀리나가 기쁘게 생활하며 말괄량이로 변해가는 동안
나는 점점 내 안으로 더 움츠러들었고,
가족들이 견디기 힘들 만큼 울보가 되었다.
1883년 부활절을 앞두고 아빠는 마리와 레오니를 데리고
파리에 가서 성주간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셀리나와 나는 외삼촌 댁으로 보내졌다.
나는 사촌들이 그들의 엄마와 함께 얼마나 행복하게 지내는지를
매일 체험했다.
나도 엄마를 갖고 싶어서 외숙모에게 '엄마'라고 불렀다.
그러자 사촌 하나가 나에게 소리쳤다.
"우리 엄마는 너희 엄마가 아니야. 너희 엄마는 더 이상 없어!"
부활절 저녁에 이시도르 외삼촌이
일찍 죽은 당신의 여동생에 대해서 나의 엄마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
나는 완전히 균형을 잃어버렸다.
나는 슬프게 울기 시작했다. 외숙모와 셀리나가 나를 침대로 옮겼다.
갑자기 심한 전율과 오한, 그리고 무서운 불안에 시달렸다.
의사 선생님이 달려왔고, 그는 심각한 진단을 내렸다.
"일찍이 어린이가 걸린 적이 없는 중병입니다."
그는 냉수 요법 처방을 내렸다.
결국 전보를 쳐서 파리에 있던 아빠와 두 언니를 불렀다.
나는 뷔소네로 옮길 수 없을 만큼 약해졌다.
신경과민으로 인한 전율과 공포, 그리고 환각 상태까지 왔다.
이런 나를 혼자 둘 수 없어 가련한 언니 마리도 외삼촌 댁에 머물렀다.
언니가 그렇게 헌신적으로 보살펴준 데 대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병은 아주 심각했고 더 이상 좋아질 것 같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1883년 4월 6일 폴리나의 착복식에 무조건 참석하려 했다.
큰 기대에 부풀어 그날 나는 병상을 떠나 온 가족과 함께 가르멜에 갈 수 있었다.
엄숙한 착복식 후에 폴리나는 수도명으로 '예수의 아네스 수녀'라는 이름을 받았으며,
우리는 외부 면회실에서 만났다.
나는 다시 찾은 엄마의 무릎 앞에 앉을 수 있었으며,
온종일 활기찬 기쁨으로 충만했다.
모두가 꿈을 꾸는 듯 했다. 그렇게 아름다운 하루를 보내고 다시 뷔소네로 돌아왔을 때,
가족들은 더 이상 아프지 않다고 저항하는 나를 반강제로 다시 침대에 눕혔다.
다음 날 나는 다시 심각한 증상에 시달렸다.
기억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했고, 마치 미친 사람처럼 아무 뜻도 없는 말들을 중얼거렸다.
그럼에도 나는 확신하건데 한순간도 의식을 잃은 적이 없었다.
나는 실신해서 누워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나를 두고 하는 말들을 다 들었다.
그것은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최악의 상태였다.
주치의와 가족들은 혹시 내가 평생을 이렇게 지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걱정했다.
가르멜 수녀님들이 우리 가족과 함께 나의 완치를 위해 기도했다.
그들은 우리 가족이 사랑하는 파리의 성지 노트르담 대성당에
9일 기도를 부탁했던 것이다.
하느님의 도우심에 대한 아빠와 언니들의 신뢰는 기적을 불러올 만큼 컸다.
< 웃음 짓는 마리아 >
내가 병이 났던 부활절도 어느새 6주나 지나갔다.
달력은 1883년 5월 13일을 빨간색으로 칠해 놓았는데
성령강림 대축일이었던 것이다.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나를 위한 9일 기도가 드려지는 동안
레온이는 내 머리 맡에 앉아 있었는데 내가 끊임없이 엄마를 불렀다고 한다.
이 소리는 정원에 있는 마리에게도 들렸으므로 그녀는 서둘러 들어왔다.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때 나는 언니를 알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나를 진정시키려는 언니의 수고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때 새 언니 마리, 레오니, 그리고 셀리나는 내 발치에 무릎을 꿇고
마리아상을 바라보며 막내 동생을 살려주시길 간절히 빌었다.
나 역시 이 세상에서는 아무도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었으므로
천상의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기를 간절히 청했다.
성모님을 바라보는 동안 갑자기 더 이상 아름다울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부인을 보았음을 깨달았다.
성모님의 얼굴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선함과 부드러움으로 가득했으며,
그녀의 매력적인 웃음은 내 영혼 깊숙히 파고들었다.
그 순간 내 모든 고통이 마치 떠오르는 태양에 안개가 걷히듯이 사라졌다.
두 줄기 굵은 눈물이 내 얼굴 위로 흘러내렸다. 기쁨의 눈물이었다.
성모님이 나를 보고 웃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이튿날 나는 가족들의 일상생활에 다시 참여할 수 있었으며,
5월 말에는 가르멜의 폴리나를 방문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학교는 방학이 끝나서야 겨우 갈 수 있었다.
몸도, 마음도 아직은 무척 허약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가족들 역시 내 병의 드라마틱한 후유증으로부터 서서히 회복되었다.
가족들은 내 병이 다시 재발할까 봐 한동안 두려워했다.
마리는 내 갑작스러운 치유에 대해서 끈질기게 물었으며,
나는 결국 그녀에게 비밀을 털어놓을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만사를 제쳐놓고 가르멜의 수녀님들에게 이 이야기를 전했으며,
모두들 기적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면회실에서는 모두들 기적으로 치유된 아이인 양
나를 바라 보았으며 많이들 물었다.
"성모님은 어떤 모습이더냐? 그분의 옷은 무슨 색이었느냐?
그분은 빛으로 둘러싸여 있더냐?"
나는 이런 질문 앞에서 혼란스럽고 슬펐다.
그런 것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어떤 질문에도 대답할 수가 없었으며,
혹시 내가 본 것이 환상이거나 거짓일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모든 기쁨이 사라졌다.
내 병이 치유되었다는 사실이 거짓이 아니며,
가족과 주치의가 그것을 보증했음에도 나는 4년 동안이나 죄책감에 시달렸다.
내가 다시 영적 균형을 되찾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 해 여름방학 때 모든 걱정을 잊어버릴 만큼 많은 기쁨을 누렸다.
1877년 우리가 리지외로 이사한 뒤 처음으로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이 묻어있는 알랑송을 찾아갔다.
가족들과 함께 엄마의 산소를 참배했고, 아빠는 나를 친구들에게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스말레의 유모 로즈 타이 가족은 우리가 찾아갔을 때 무척 반가워했다.
방학 동안 내가 체험한 모든 것들로 나는 기쁨과 행복에 겨웠다.
많은 이들이 나를 축복해주고 귀여워해 주었으며, 경의롭게 생각했다.
이제야 고백하지만 사람들과의 만남이 나를 들뜨게 했다.
나는 겨우 10살이 지나지 않았지만
이 세상은 정말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 첫 영성체와 견진 성사 >
나는 1883년 10월 수도원 학교에 다시 다니기 시작했으며,
첫영성체를 준비하는 보라색 학년의 둘째 반에 들어갔다.
첫영성체를 준비하는 시간이 학교 수업 중에서 가장 즐거웠다.
폴리나는 기도와 좋은 생각으로 엮어진 작은 책을 가지고 있었는데,
나는 그것으로 기쁘게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이러한 기간은 내게 특별한 인상을 남겼다.
나는 이 기간이 끝날 무렵 세 가지 결심을 했다.
첫째, 나는 결코 용기를 잃지 않겠다.
둘째, 나는 매일 성모님께 기도하겠다.
셋째, 나는 나의 자존심을 굽히도록 노력하겠다.
드디어 4년이나 기다려온 첫영성체 날인 1884년 5월 8일이 다가왔다.
내 가슴속에선 사랑에 대한 그리움이 일어났으며,
예수님은 내게 첫 키스를 하기 위해 서두르셨다.
그것은 사랑의 키스였다. 나는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꼈으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며 영원히 나를 당신께 드립니다.'
예수님과 나의 결합은 넓은 바다에 떨어지는 한 방울의 물과도 비슷했다.
나는 예수님의 넓은 사랑의 바다 안에서 사라졌다.
나는 예수님으로부터 떨어진다거나 이별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영원히 내 곁에 머문다.
감사의 기도를 드릴 때 기쁨의 눈물이 시냇물처럼 내 얼굴을 타고 내렸는데,
다른 아이들은 내가 엄마가 없어서 운다고 믿었다.
첫 영성체를 하던 날, 엄마의 부재가 결코 슬프지는 않았다.
내 마음속에서는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이 곧 천국이었으며,
엄마는 이미 오래전 그곳에 당신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예수님의 방문과 함께 엄마의 방문도 받았던 것이다.
오후에 나는 가족들에 둘러싸여
첫 영성체를 한 어린이로서 인사하기 위해서 가르멜에 갔다.
저녁이 되어서야 드디어 우리 가족만의 잔치를 즐겼다.
나는 많은 선물을 풀어 보았다. 특히 두 가지 선물을 보고 환호성을 올렸다.
아빠가 선물한 예쁜 시계와 크림색의 모직으로 된 멋진 옷이었다.
1884년 6월 14일 첫영성체를 한 지 5주 뒤 나는 친구들과 함께
리지외와 바이외의 교구장인 위고넹 주교님한테서 견진 성사를 받았다.
레오니가 견진 대모가 되었다.
견진 성사를 위해서 많은 준비를 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기본적인 것들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견진성사는 사랑의 성사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사랑하고 고통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주신다.'
<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함 >
1885년으로 넘어가기 전 한 가지 더 언급하고 싶은 것이 있다.
1884년 6월 26일 뷔소네에 톰이 왔다.
하얀색의 예쁜 스파니엘로 나의 간절한 소망을 아빠가 들어주신 것이다.
이 개는 훌륭한 보디가드로 내가 산책할 때는 어디든지 따라다녔다.
톰은 충실한 심복이었고 나를 떠나지 않았다.
1884년 여름방학은 아주 멋있었다.
언니와 외사촌과 함께 리지웨에서 10킬로미터쯤 떨어진
셍켕루펭이라는 시골에서 여름방학을 보냈다.
그곳에 있는 농가는 외숙모의 어머니,
푸르네 부인의 소유였는데 우리에게는 낙원과 같았다.
나는 매일 저녁 소젖 짜는 것을 지켜 보았으며,
자상한 외숙모는 금방 짠 따뜻하고 신선한 우유를 내가 마셔야 한다고 고집했다.
석 달째 나를 괴롭히고 있는 백일해에 그것이 좋다는 것이었다.
그 밖에 1884년에는 아름다운 추억이 많다.
1885년 부활절 방학 때 바다를 다시 볼 수 있어서 기뻤다.
5월 3일부터 10일까지 우리는 도빌에서 많은 체험을 했다.
리지외로 돌아온 후 학교에서는 첫영성체 1주년 기념을 준비했다.
도밍 신부님이 우리에게 3일간 강의를 해주었는데,
죽을 죄와 죽음에 대한 내용으로 자비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었다.
그것은 복음이 아니라 협박으로 많은 공포를 불러 일으켰으며,
나는 '소심증'이라는 심각한 영적 병에 걸리게 되었다.
작은 실수를 두고도 죽을 죄를 지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언니 마리만을 믿었는데,
언니는 이 고통스러운 시기에 유일한 충고자였지만
결국 언니도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언니는 내가 걱정거리를 이야기할 때
싫증을 내거나 하품하는 일도 없이 대단한 인내심을 가지고 들어 주었다.
돌이켜보면 당시 내가 털어놓았던 이야기들은
가끔은 신경질적인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문제는 회전 목마에 탄 것처럼 늘 나 자신을 축으로 돌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행히 방학이 시작되었고 우리는 분위기를 바꿀 수 있었다.
우리는 다시 셍켕루펭에서 방학의 절반을 보냈다.
그런 다음 투르빌에 바닷가로 갔는데 그때는 아빠가 함께 가지 않았다.
셀리나와 나는 외가의 친척들과 함께 로즈빌라에서 지냈다.
우리는 바닷가 모래밭에서 함께 뛰놀았고,
외숙모가 마련해 주는 다양한 오락을 즐겼다.
나귀를 타고 소풍을 간다거나 낚시를 하기도 하고 시장을 보기도 했다.
나는 내적 고통을 잘 숨길 수 있었다. 외숙모는 이렇게 확신했다.
'데레사는 분명히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 얘가 이렇게 명랑한 것은 처음 보는 걸.'
그동안 아빠는 중부 유럽을 두루 거쳐 발칸 반도에 이르는 긴 여행을 했다.
갈 때는 뮌헨과 빈을 들렀고, 돌아올 때는 아테네, 네팔, 로마,
그리고 밀라노를 거쳐서 왔다.
우리는 그리움과 기대에 가득차 역에서 아빠를 기다렸다.
벽난로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는 겨울날 저녁,
아빠는 우리에게 당신의 여행담을 들려주었다.
나는 이런 저녁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1885년 여름방학이 끝나고 10월 5일 월요일부터
다시 학교에 가야 했는데 정말 힘들게 느껴졌다.
이때부터 혼자 학교에 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셀리나는 학교를 졸업했으며,
사촌 마리는 병치레가 잦아 더 이상 학교에 다닐 수 없게 된 것이다.
나는 고독한 가운데에서도 학급에 적응하려고 애썼으며,
담임 선생님과 좋은 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했고,
아무도 나를 돌보아주지 않았으므로 예수님한테서 위로를 받았다.
나는 수도원 성당 2층 성가대에서 아빠가 데리러 올 때까지 기다리곤 했다.
3월 초 아빠는 나를 더 이상 수도원 학교에 보내지 않고 가정교사를 두기로 결정했다.
나는 1주일에 여러 번 파비뇽 부인을 찾아갔는데,
그녀는 어머니와 고양이 한 마리와 함께
우리 외가에서 가까운 성 피에르 광장에 살고 있었다.
선생님은 50대였는데 세련되고 상냥했지만 약간은 노처녀 기질을 갖고 있었다.
그녀의 집에 들어설 때면 언제나 그녀의 어머니가 나를 맞이했는데,
그분은 크고 맑은 눈으로 나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세히 훑어본 후에야
나직하고 꾸민 듯한 목소리로 당신 딸을 불렀다.
"파비뇽 부인, 데레사가 왔어요."
그러면 선생님은 어린애 같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나 여기 있어요." 그런 다음에 수업이 시작되었다.
나는 고풍스러운 가구로 장식되고 책과 노트가 가득한 방에서
수도원 학교에서 느끼지 못했던 하나의 세계를 발견했다.
사람들의 방문이 잦아 수업은 종종 중단되었다.
책과 씨름하면서도 그들의 이야기를 다 들었으며,
내가 듣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말들도 다 들었다.
여자들이 수다를 떠는 동안 나에 관한 내용도 많았다.
한 부인이 "저 예쁜 소녀는 누구야?" 하고 말하면
다른 부인은 "머리가 참으로 예쁘기도 하네!" 하고 맞장구를 쳤다.
나는 이런 말을 즐겨 들었으며,
이것들은 마치 기름처럼 내게 스며들어 내 영혼의 허영심과 교만을 남겨놓았다.
그때에 나는 내게 주어진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으므로
우리 집 이층 다락방을 내 취미에 맞게 꾸몄다.
새들이 있는 커다란 새장과 화분, 금붕어가 헤엄쳐 다니는 어항,
성인들의 성상, 상자와 바구니,
그리고 인형을 비롯하여 많은 책, 다락방은 마치 시장과 같았다.
이러한 왕국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으며,
여기서 공부도 하고 책도 읽었으며, 기도와 묵상도 했다.
< 세 번째 엄마와의 작별 >
허약한 내 건강을 생각할 때 또 한 번의 새로운 이별은 지나친 것이었다.
1886년 8월, 마리가 10월 15일에
가르멜 수녀원에 입회하겠다고 통보한 것은 마치 번개가 친 것 같았다.
나는 이층 다락방에 대한 매력을 한꺼번에 잃어버렸다.
나를 곧 떠날 사랑하는 언니한테서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으려 애썼다.
언니의 방 앞을 지날 때마다 방문을 두드리며 언니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나는 언니를 껴안고 수없이 많은 입맞춤을 했으며,
우리가 헤어진 다음을 위해서 충고를 듣고자 했다.
나는 더 이상 감정의 여왕이 아니었지만
13살이라는 나이에도 여전히 어린애처럼 행동했다.
아빠는 당신의 감정을 감추었다.
아빠는 당신의 보석이 떠나지 않길 바랐다.
외가의 친척들도 마리의 결정에 매우 놀랐다.
그 누구도 자유롭게 지내던 집시가
수도원에 들어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마리가 가르멜에 입회했을 때 나는 여전히 겁 많은 소녀였으며,
작은 일에도 매번 눈물을 흘렸다.
그러므로 친지들은 내 성격이 나약하다고 생각했다.
외가의 친척들도 같은 생각이었다.
사람들은 나를 착하고 상냥한 반면에 삶에 무능한 작은 바보 정도로 여겼다.
내 불행은 레오니가 한마디 통보도 없이,
그리고 작별 인사도 없이 글라라 수녀원으로 사라졌을 때 극에 달했다.
엄마가 글라라 수녀원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아빠는 레오니와 함께 그 수녀원을 단지 한 번 방문했는데,
레오니는 수녀님들을 만나는 순간 그들의 엄격한 생활에 강한 매력을 느꼈고
그대로 그곳에 머물렀던 것이다.
나는 아빠로부터 레오니가 이미 글라라 수녀원 수녀로서
수도복을 입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당혹스러웠던 것을 잊을 수 없다.
내게는 가르멜을 비롯하여 모든 수도원을 미워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내 인생의 버팀목을 잇따라 빼앗아 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가르멜 수녀가 되고 싶었다.
폴리나와 마리를 다시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이 나를 그리로 부르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삼갔다.
사람들이 나를 미쳤다고 여길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내 삶에 없어서는 안 될 뷔소네의 보호는 서서히 사라졌다.
아빠에게는 단지 당신의 작은 두 딸들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17살에 안주인 역할을 해야 하는 셀리나와
아직도 응석받이인 나만이 아빠 곁에 남아있었다.
1886년 10월 15일 이후 나는 절망에 빠졌으며,
삶에 대한 모든 기쁨과 의욕을 잃어버렸다.
나는 모든 집안일을 셀리나에게 떠맡겼다.
셀리나는 매사에 나를 부추겨야 했는데,
심지어 내 침대를 정리하도록 시켜야 할 정도였다.
나는 마치 아무런 의욕도 없이 남이 시키는 대로 따라하는
구제 불능의 아이와도 같았다.
< 결정적 사건 >
마리와의 이별은 내 영혼의 평정을 또다시 흔들어 놓았다.
나는 생각했다. '인생은 온통 고통과 슬픔으로 가득하구나!'
내게는 아무것도 즐거운 것이 없었으며, 아무런 의욕도 없었다.
할 수만 있다면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었으며 단지 훌쩍거리면서 울 뿐이었다.
나의 지나친 감수성을 내 스스로가 견딜 수 없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상하게 했을 때
나 자신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울지 않으려고 노력하기보다는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그러다가 진정이 되면 울었다는 사실 때문에 또다시 울기 시작했다.
한 번은 누군가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아이 때 그렇게 많이 울었으니 어른이 되면 더 이상 흘릴 눈물이 없겠다."
이 말은 내게 몹시 충격적이었다. 온갖 충고를 들었지만 소용이 없었으며,
나 자신의 실수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그것은 정말 견딜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나 자신을 견딜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지나친 감수성과 눈물,
그리고 죄책감이라는 악순환에서 탈출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항상 분명했다.
만일 사랑하는 하느님이 아니라면 아무도 나를 도와줄 수 없다.
하느님은 작은 기적을 일으키셔야만 한다.
나는 자주 방에 숨어서 기도했다.
나는 나를 압박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 하느님께 단순하게 말씀드렸다.
그렇지 않으면 누구에게 내 고통을 털어놓을 수 있단 말인가.
모든 것을 들어주던 마리는 석 달 전 가르멜에 가고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성탄절이 다가왔다.
나는 두려운 마음으로 마리 없이 지내게 될 첫 성탄절을 생각했다.
성탄 전야에 아빠는 우리 세 자매 레오니와 셀리나,
그리고 나와 함께 성베드로 주교좌 성당에 자정 미사에 갔다.
나는 성당에서 첫 영성체 때 강하고 전능하신 하느님을 받아 모실 수 있었다.
그때는 자주 영성체 하는 것이 보편화되지 않았다.
우리는 자정 미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가 뷔소네에 도착했을 때
벽난로에서 선물이 가득 담긴 구두를 가져오는 것이 나는 무척 기뻤다.
프랑스에서는 이러한 관습이 어린이들에게 큰 기쁨이었는데,
셀리나는 이를 계속하려 했던 것이다.
우리 가족 중에서 나는 막내였으며,
아직도 나를 어린아이처럼 다루는 것이 그녀에게는 즐거웠던 것이다.
그러나 응석을 부리는 것은 괜찮지만,
다른 한편으로 셀리나한테서 큰 아기 취급을 받는 것이 싫었다.
자정 미사 후 피로해진 아빠는 내 구두가 벽난로에 세워져 있는 것을 보고 화를 냈다.
나는 모자와 외투를 벗으려고 방으로 난 계단을 올라가면서 아빠의 소리를 들었다.
천만 다행히도 이것이 마지막이구나!
아빠는 내가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며 이제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아빠의 말씀은 내 가슴을 꿰뚫었다. 내 감수성을 알고 있으며,
이미 내 눈에 눈물이 맺힌 것을 본 셀리나 역시 하마터면 울 뻔했다.
그녀는 나를 너무도 사랑했으며 나의 슬픔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데레사~" 셀리나가 말했다.
"내려가지 마. 지금 네 구두를 보면 너무 가슴이 아플 거야."
그러나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예수님은 내가 영성체를 통하여 당신을 모시는 순간 나를 변화시키셨다.
나는 눈물을 참으며 계단을 서둘러 내려갔다.
가슴이 뛰는 것을 억누르면서 내 구두를 집어들고 아빠 앞에 내보이며
행복한 여왕처럼 기쁘게 그 안에 들어있는 모든 것을 꺼냈다.
아빠는 다시 즐거워하면서 웃었고, 셀리나는 꿈을 꾸는 듯 했다.
우리는 모두 행복했는데 내가 가장 행복했다.
이것은 진정 하나의 기적이었다.
그렇게도 울어대고 감수성이 예민하던 내가
단 한 번에 자의식이 강해지고 모든 슬픔으로부터 해방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밝은 성탄 전야에
내 인생에 가장 아름다운 세 번째 시기가 시작되었다.
예수님은 내가 10대의 노력으로 할 수 없었던 일을 단 한순간에 완성하셨다.
다른 이들을 기쁘게 해주고자 하는 사랑이 가슴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그때부터 나는 행복했다.
예수님은 내가 나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나를 변화시키셨다.
나는 다시 태어난 듯했다.
우리 가족은 1887년 1월 2일 14번째 내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우리는 가르멜 수도원에 있는 언니 폴리나와 마리를 방문했는데,
그들은 나의 변화에 대해 무척 놀라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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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이 예민한 이들에게서 느끼는 모습을 엿보는 것 같았고
하느님의 현존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엄마를 잃은 세 번의 고통이 성녀를 훌쩍 성장하게 한 것 같아
고통이 은총의 통로임을 더욱 실감하였습니다.
사랑하는 하느님아버지, 감사합니다.
너무도 부족한 제가 소화데레사 성녀의 영성을 살 수 있게 해 주시고
대림특강을 통해 그 길을 잘 걷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시니
참으로 아버지의 사랑의 배려와 교육에 눈물겹고 감동입니다.
영혼 구령의 사명을 더욱 뜨겁게 가슴에 품고
아버지만 죽도록 뜨겁게 사랑하며 지도사제를 끝까지 잘 따라가겠습니다.
거내영과 모든 사제와
대림특강의 모든 것을 통하여 무한찬미영광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 순간 내 모든 고통이 마치 떠오르는 태양에 안개가 걷히듯이 사라졌다.>
<이것은 진정 하나의 기적이었다.
그렇게도 울어대고 감수성이 예민하던 내가
단 한 번에 자의식이 강해지고 모든 슬픔으로부터 해방되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아버지,
소화데레사 성녀의 자서전은 참으로 인간적이라
그래서 더욱더 사랑스럽고 감동적으로 느껴집니다.
예민하고, 때로 자기 멋대로이고,
쉽게 상처 받고,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친구들의 시기 질투에 깊이 상처 받은 경험이 있고,
몸이 약하면서 너무나 감수성이 풍부한 것이
어쩜 저의 어린 시절과도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저도 슬프고 애닯고 힘들었던 어렸을 때의 정서가
쉽게 몸으로 나타나 자주 아프곤 하였거든요.
한가지 크게 다른점은
어렸을 때부터 문화처럼 생활 깊숙히 영향을 미친 가톨릭 신앙과
남다른 하느님 사랑이 저에게는 전혀 없었다는 점이네요.
사랑하는 아버지,
저는 가톨릭 문화의 종교적 가르침을 가정 교육으로 받지 못하였고,
삶 속에 신앙을 살아온 부모님도 안 계셨지만,.
저와 같은 이를 위하여
한 사제를 통하여 마련하신 <거내영>과 <무형의 성전>을 통하여
소화데레사 성녀가 걸어가신 완전한 신뢰와 위탁의 길,
내맡김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안배하셨습니다.
성녀의 유달스러움과 나약함과 아픔을 아버지의 사랑으로 치유하시고
오히려 그 점을 좋게 바꾸시어 아버지의 사랑의 도구가 되게 하셨음과 같이
저의 부족함과 나약함과 죄스러움도
전능하신 아버지의 연금술을 통하여
아버지의 사랑의 도구로 바뀌어질 것을 믿습니다.
저는 이미, 전능하신 아버지의 세탁기 안에 쑥 들어와
요술쟁이 아버지의 손길을 받고 있는 중이니까요.
사랑하는 아버지,
소화데레사 성녀의 자서전을 통하여
성녀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더욱더 가득 채워주심에
엎디어 감사드립니다.
2023년 거내영 대림특강과 모든 사제와 부족한 저희들을 통하여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크게 드러내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것은 사랑의 키스였다. 나는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꼈으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며 영원히 나를 당신께 드립니다.'
예수님과 나의 결합은 넓은 바다에 떨어지는 한 방울의 물과도 비슷했다.
나는 예수님의 넓은 사랑의 바다 안에서 사라졌다.
나는 예수님으로부터 떨어진다거나 이별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영원히 내 곁에 머문다. >
아멘, 아멘~!!
사랑하는 아버지,
홀로 넓은 세상에 버려졌다고 생각하며 늘 위축된 삶으로 날개가 꺾여
위태롭게 추락하던 죄인을 늘 받쳐주고 계셨던 우리 아버지, 감사합니다.
혼자라고 생각이 들던 그 순간에도 아버지는 늘 부족한 저와 함께 였음을
거내영의 삶을 살면 살 수로 더 깊이 느껴지며 아버지를 향한 사랑으로
드러나며 온통 아버지 생각으로 점철됩니다.
나날이 아버지의 사랑으로 부족한 저는 더욱 더 작아지니
아버지와 합일되어 아버지께서 저를 차지하심에 환희로 벅차오릅니다.
아버지, 소화데레사 성녀의 삶처럼은 살지 못하지만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아버지의 바다에 점점 녹아들어 저는 없어지고 아버지의 사랑만 남도록,
부족한 저의 모든 것 아버지께 내맡겨 드립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며 부족한 저도
아버지를 뜨겁게 사랑하는 자녀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아버지만 죽도록 뜨겁게 뜨겁게 사랑하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거내영>과 대림특강의 모든 것을 통하여 무한찬미영광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우리 엄마는 너희 엄마가 아니야. 너희 엄마는 더 이상 없어!"
부활절 저녁에 이시도르 외삼촌이
일찍 죽은 당신의 여동생에 대해서 나의 엄마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
나는 완전히 균형을 잃어버렸다.>
<예수님은 내가 10대의 노력으로 할 수 없었던 일을 단 한순간에 완성하셨다.
다른 이들을 기쁘게 해주고자 하는 사랑이 가슴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그때부터 나는 행복했다.
예수님은 내가 나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나를 변화시키셨다.
나는 다시 태어난 듯했다.
나는 슬프게 울기 시작했다. 외숙모와 셀리나가 나를 침대로 옮겼다.
갑자기 심한 전율과 오한, 그리고 무서운 불안에 시달렸다.>
<첫 영성체를 하던 날, 엄마의 부재가 결코 슬프지는 않았다.
내 마음속에서는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이 곧 천국이었으며,
엄마는 이미 오래전 그곳에 당신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 교실에서 친구와 말다툼이 일어 났어요.
서로 어쩌구 저쩌구 싸우다가 친구가 '너는 엄마도 없는 년이' 하는 거예요.
'아, 그렇지 엄마도 없는게 이길려구 큰소리만 쳤네'
어린 맘에 정말 서러워 기가죽어 지금 소화데레사님의 글을 읽으며
떠올려 주시니 또 눈물이 나네요.
그 뒤로 거내영 오기전까지 모든게 불안에 시달렸어요.
저에겐 거내영을 통해 엄마 아빠의 부재의 시달림에서
내맡김으로 완전 탈출 시켜주셨어요.
하느님아버지가 제 안에 계시고 모든 것에
저와 함께 살아주시니 두려움도 불안함도 없습니다.
내마음속에서는 예수님과 언제나 늘 함께 있는 것이 참으로
든든하여 그냥 여기가 지금 저야말로 천국을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안에 육의 엄마아빠도 함께 그곳에 계심을 믿습니다.
성녀 소화데레사 성녀님을 마주하며 아버지만을 향한 사랑으로
어찌나 아름답고 고우시고 사랑스러우신지요.
부족한 저 소화데레사님을 본받아 더욱더더 아버지만을
사랑하면서 살아가겠습니다.
거룩한 내맡김 영성은 참으로 신비입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부족한 저의 모든 것을 통하여
아버지 마음껏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것은 사랑의 키스였다. 나는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꼈으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며 영원히 나를 당신께 드립니다.'
예수님과 나의 결합은 넓은 바다에 떨어지는 한 방울의 물과도 비슷했다.
나는 예수님의 넓은 사랑의 바다 안에서 사라졌다.
나는 예수님으로부터 떨어진다거나 이별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영원히 내 곁에 머문다.>
아멘, 아멘!
사랑하는 무비님,
정성스런 녹취에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소화데레사 성녀의 어린 시절을 생생하게 공감 할 수 있어서
참으로 은혜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아름답고 순수한 가족들과 소화데레사 성녀의
하느님을 향한 온전한 사랑과 굳건한 믿음이 놀랍기만 합니다.
부족한 저도 그 믿음을 본받아 아버지만을 죽도록 뜨겁게 사랑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감사합니다.
2023년 <대림특강>을 통하여 무한찬미영광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아빠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우리 반 아이들은 질투심 때문에 나를 따돌렸다.
한때 기숙사에서 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얼마 뒤 그 아이마저 따돌림을 받지 않으려고 다른 아이들 편을 들었다.
나는 이 경험을 통해 모든 공동체와 우정은 시기와 질투 때문에
파괴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랑하는 아버지,
소화데레사 성녀가 겪었던 상처와 아픔은 요즘 많은 청소년들이 겪고 있습니다.
성당 공동체 안에서도 비일비재하는 사건을 접하면서 얼마나 아버지께 불효를 저지르며 깨닫지도 못하는지요.
오직 아버지만을 사랑하는 거내영 식구들 안에서 찐한 사랑이 넘쳐 나길 바랍니다.
그넘들의 장난에 영혼육 빼앗기지 않도록 깨어 화살기도 속에 날려 버리고 마음이 산란하지 않도록 내맡겨 드리겠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소화데레사 성녀의 작은길 따라 영원히 살아 가렵니다.
사랑하는 주님 제가 당신을 뜨겁게 사랑하게 하소서.
사랑하는 아버지,
대림특강을 통하여 무한찬미영광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 나는 이렇게 상상했다.
내 마음은 하얀 돛을 단 날쌘 보트가 되어 태양을 향해
빛나는 이 길을 달려가고 있다.
나는 영원한 생명의 강가에 빠르고도 기쁘게 도달할 수 있도록
예수님을 항상 눈앞에 모시고 있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
< 그것은 사랑의 키스였다. 나는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꼈으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며 영원히 나를 당신께 드립니다.'
예수님과 나의 결합은 넓은 바다에 떨어지는 한 방울의 물과도 비슷했다.
나는 예수님의 넓은 사랑의 바다 안에서 사라졌다.
나는 예수님으로부터 떨어진다거나 이별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영원히 내 곁에 머문다. >
<예수님은 내가 10대의 노력으로 할 수 없었던 일을 단 한순간에 완성하셨다.
다른 이들을 기쁘게 해주고자 하는 사랑이 가슴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그때부터 나는 행복했다.
예수님은 내가 나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나를 변화시키셨다.
나는 다시 태어난 듯했다. >
사랑하는 아버지,
소화 데레서 성녀는
어린시절에 고집스럽고 감수성이 무척 힘들만큼 예민하였네요.
하오나 믿음의 가정 안에서 아빠의 사랑과 언니들의 보살핌으로
이미 아버지만을 갈망하고 위로를 받으며
영원히 변함이 없는 참생명에 도달하는 삶을 위하여
오직 아버지만을 향하는 범상치 않은 오롯한 믿음에 감동하였습니다.
소화데레사 성녀의 삶을 묵상하면서
참으로 부족한 제가 거내영과 아버지기도를 통하여 다시 태어났으며
아버지의 참사랑 안에서 아버지의 모든 것을 누리며 살고 있음이
기적의 은총이기에 참으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버천한 저를 새롭게 하신 아버지께 모든 것을 내맡겨 드리고
아버지만을 더더 뜨겁게 사랑하겠습니다.
소화데레사 성녀의 영성을 더 배우며 진실한 내맡김의 삶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 거내영 >의 대림 특강의 모든 것을 통하여 무한찬미영광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하느님아버지, 거내영의 주보이신 리지외의 데레사 일대기를
통하여 부어주시는 은총에 감사합니다!
<우리는 모두 행복했는데 내가 가장 행복했다.
이것은 진정 하나의 기적이었다.
그렇게도 울어대고 감수성이 예민하던 내가
단 한 번에 자의식이 강해지고 모든 슬픔으로부터 해방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밝은 성탄 전야에
내 인생에 가장 아름다운 세 번째 시기가 시작되었다.
예수님은 내가 10대의 노력으로 할 수 없었던 일을 단 한순간에 완성하셨다.
다른 이들을 기쁘게 해주고자 하는 사랑이 가슴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그때부터 나는 행복했다.
예수님은 내가 나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나를 변화시키셨다.
나는 다시 태어난 듯했다. >
사랑하는 신부님,
사랑하는 무비님
올려주신 동영상 너무나 깊이 잘 들었습니다.
저의 어린시절의 감수성이 그대로 드러나게 하는 소화데레사의 일기가
너무도 마음속 깊이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러면 안돼는줄 알았는데
그런 저를 변화시키시는 분이 계시다는 것을 더욱 뚜렷하게
배우게 하십니다.
저의 꼬라지가 어떻든 아버지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을 다 돌보시어
번화 시키심을 보면서 부족하고 죄스런 저임에도
지금여기 거내영으로 이끄심이 바로 데레사 성녀께서 말씀하신 기적입니다.
부족한 저도 거내영을 통하여 세번째 시기를 맞이 하고 있습니다.
모든게 아버지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정화되어 가는 저는 예전의 제가 아님을
압니다.
신부님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부족한 저를 새롭게 이끌어 가심을 알기에 참으로 감사와 흠숭을 드립니다.
아버지의 사랑과 자비로 제가 재창조되어 가는 것을 깊이 깨닫기에 소화데레사의
삶이 더욱 마음깊이 와 닿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아버지께서 하시는 은총으로 저도 변화 되어감을 고백하면서 저에게
배푸신 은총에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저는 비록 아무것도 아니지만 아버지께 받은 은총으로 아버지만 더 더 사랑해 드리며
아버지를 모르는 이웃에게 아버지를 선포하겠습니다.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순수하고 아름다운 영혼을 볼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내 마음은 하얀 돛을 단 날쌘 보트가 되어 태양을 향해
빛나는 이 길을 달려가고 있다.
나는 영원한 생명의 강가에 빠르고도 기쁘게 도달할 수 있도록
예수님을 항상 눈앞에 모시고 있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성모님이 나를 보고 웃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내 가슴속에선 사랑에 대한 그리움이 일어났으며,
예수님은 내게 첫 키스를 하기 위해 서두르셨다.>
<예수님과 나의 결합은 넓은 바다에 떨어지는 한 방울의 물과도 비슷했다.
나는 예수님의 넓은 사랑의 바다 안에서 사라졌다.
나는 예수님으로부터 떨어진다거나 이별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영원히 내 곁에 머문다. >
아멘!
사랑하는 아버지,
티 없이 맑고 순수한 영혼으로 풍부한 감수성과
사랑을 지닌 소화데레사
성녀의 삶을 읽고 있으니 저도 순수한 영혼으로 동화되어 가는 듯했습니다.
읽는 동안 제 가슴에는 사랑이 스며들어 행복했습니다.
소화데레사 성녀의 단순한 믿음과 절대적인 사랑과 신뢰는
참으로 경이롭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남다른 영특함과
감수성은 하느님아버지로부터 받은 특은인 듯합니다.
소화데레사 성녀의 삶을 읽으며 더없이 작아지고 초라하지만
제게도 아버지께서 주신 특은, 거내영의 삶으로 이끌림 받음입니다.
아버지께 부족한 저의 모든 것을 내맡겨 드리며 아버지를
뜨겁게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뜨겁게 감사합니다.
무형의 성전의 <2023년 대림피정>을 통하여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크게 드러내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엄마가 글라라 수녀원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아빠는 레오니와 함께 그 수녀원을 단지 한 번 방문했는데,
레오니는 수녀님들을 만나는 순간 그들의 엄격한 생활에 강한 매력을 느꼈고
그대로 그곳에 머물렀던 것이다.>
사랑하는 아버지,
부족한 제가 세례를 받고 성녀 소화데레사의 자서전을 읽어 보았다면 하는 아쉬움을 뒤로합니다.
그때의 마음 이었을까 라는 질문은 해보지만 수녀원에 가고픈데 부모님의 강요에 의해 결혼을 하게되면서 삶의 소용돌이 속의 시작이었지요.
아버지 소화데레사의 단순한 아버지께 대한 믿음을 <거내영>을 통하여 저의 모든 것을 아버지께 내맡겨 드리오니 거룩하신 뜻대로 이끌어 주소서.
지나간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지금 여기에 충실히 내맡기며 따라쟁이로 살겠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대림특강을 통하여 무한찬미영광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아빠, 사랑하는 임금님께서 나를
낚시터에 데려간 여름날들은 특히 아름다웠다.
때때로 작은 낚싯대를 드리우기도 했지만,
대부분 꽃이 만발한 초원에 앉아 사색에 잠기거나 코끝을
간지럽히며 스쳐가는 바람 소리를 들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오후 시간은 너무도 빨리 지나갔다>
사랑하는 아버지,
소화 데레사는 어린 시절부터 이미 관상의 삶으로 이끄셨네요.
육의 아빠를 사랑하는 임금님으로 부르며
낚시터에서 꽃이
만발한 초원에 앉아 사색에 잠기거나 코끝을 간지럽히며 스쳐가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자연 안에 숨쉬는 아버지와 깊은 밀애에 빠지는 참으로 아름다운
오후 시간을 보내는 사랑에 정말 가슴이 뜨거워 지네요.
<그런데 어느 날 빵에 바른 잼의 색깔이 변한 것을 알았다.
그때 나는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은 사라지며
오로지 하늘나라에서만
구름 한 점 없는 영원한 기쁨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은 순간이며 오로지 아버지 사랑만이 영원한
기쁨임을 부족한 저는 거내영 아버지 사랑이 아니었다면 죽는
순간까지 내 뜻의 노예로 살다가 사라져갔을 것입니다.
<나는 생각했다. '인생은 온통 고통과 슬픔으로 가득하구나!'
내게는 아무것도 즐거운 것이 없었으며,
아무런 의욕도 없었다.
할 수만 있다면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었으며 단지 훌쩍거리면서 울 뿐이었다.>
내맡긴 영혼이 되기 전의 저의 모습입니다.
더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말만 할 뿐,,,
우울증과 무기력증에 신앙도 싫었고 기도의 무게에 짓눌러 있었기에
그 기도의 덫에서 해방 되고만 싶은 마음 뿐이었습니다.
이런 저에게 아버지께서는 거내영으로 부르시어
죽음에서 생명으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 질기디질긴 내 뜻의 모가지를 잘라주시고 무소유 고백과 끊임없는
화살기도로 나날이 새 인간으로 새롭게 변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부족한 저도 소화데레사 성녀의 삶을 더더 깊이 사랑하며
오직 아버지만을 죽도록 뜨겁게 사랑하고 사랑하렵니다.
<거내영>과 대림 특강의 모든 것을 통하여 무한찬미영광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것은 사랑의 키스였다. 나는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꼈으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며 영원히 나를 당신께 드립니다.
예수님과 나의 결합은 넓은 바다에 떨어지는 한 방울의 물과도 비슷했다.
나는 예수님의 넓은 사랑의 바다 안에서 사라졌다.
나는 예수님으로부터 떨어진다거나 별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아멘, 아멘!
성가정을 몸소 실천하신 훌륭하신 부모님과,
자매들 친척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자란 성녀의
어린 시절은, 참, 따뜻하고 화목하게 그려집니다.
비록 고집 센 울보였지만, 나이에 어울리지 않은
성숙함이내재되었던 것 같습니다.
성녀는 하느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을 사랑할 줄 알았으며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랑꾼이네요.
일찍이 하느님을 사랑하는법을 알고있는 성녀는
하느님으로부터 이미 선택받은 분이었습니다.
자신이 알아보질 못할만큼 큰 변화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내맡김 삶을 사셔서
이루어진 결과가 아닐까 합니다.
이번 대림시기에 성녀의 삶을 묵상하며
하느님만 생각하는 성녀의 아름다운 마음을 깊이 새기며,
오직 아버지만 뜨겁게 사랑하고자 합니다.
거내영과 대림특강의 모든 것을 통하여 무한찬미와영광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 그것은 사랑의 키스였다. 나는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꼈으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며 영원히 나를 당신께 드립니다.' >
< 예수님은 내가 10대의 노력으로 할 수 없었던 일을 단 한순간에 완성하셨다.
다른 이들을 기쁘게 해주고자 하는 사랑이 가슴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그때부터 나는 행복했다.
예수님은 내가 나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나를 변화시키셨다.
나는 다시 태어난 듯했다. >
아멘 아멘!!
성녀 데레사가 첫영성체를 유난히 기다리고 준비하면서
아버지를 향한 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함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아버지를 중심으로 온 가족이 서로를 아끼며
사랑으로 하나된 모습들을 통해서
어린시절 신앙을 물려받지 못했지만
이제는 어떻게 아버지 중심으로 살아야 하는지
가슴 깊이 새기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나약해진 성녀를 단 한순간에 변화시킨 아버지를 느끼며
성녀가 다시 태어났다고 하듯이 죄 많은 영혼 안에 오시어
한 순간에 바꾸신 아버지를 뜨겁게 찬미합니다.
일어나는 모든 일은 아버지의 뜻으로 받아들이라는
사랑하는 신부님의 가르침이 이제는 제 골수에 박히게 되었습니다.
모든 순간이 아버지의 선물임을 알게 되니
본능적으로 뱉었던 왜?가 이제는 자취를 감추지 않을런지요.
유독 남편에게는 배려와 사랑이 부족했음을 작은 사건을 통하여
깨닫게 하시니 성녀 데레사처럼 사랑이 가슴속으로 스며듬을 느낍니다.
< 거내영 >의 삶은 참으로 신비이고 복된 삶입니다.
사랑하는 아빠아버지,
< 거내영 >으로 뜨거운 사랑을 허락하시니
그 사랑으로 제게 보내시는 모든 이들과 함께 사랑을 나누겠습니다.
2023년 대림특강과 거룩한 사제와
모든 내맡겨진 영혼들을 통하여 무한찬미영광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 내가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도록 언니들은 애를 썼다.
아침에 언니들은 나를 꼭 안고 사랑스럽게 깨워주었고,
다 같이 기도하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나는 5살에 이미 읽기와 쓰기를 배웠으며,
나 혼자 읽은 첫 단어가 천국이었다. >
사랑하는 아버지,
성녀 데레사의 어린시절은 부모님의 깊은 신앙에서 비롯되어
하느님아버지를 향한 믿음과 순종으로 온 가족이 그의 영향을 받았으며
사랑의 가정 공동체를 이루어 주심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얼마전 아들을 결혼시킨 후
육의 형제들과 처음으로 3일간의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제 어린 시절 어떻게 자라났는지 이야기를 들으며
어린 나의 모습이 가슴으로 훅 들어오며 진한 슬픔을 느꼈습니다.
살아오면서 왜 그다지도 사랑을 갈구했는지
그 사랑을 갈구하며 고통의 관계가 되었는지를
저의 어린시절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성녀처럼 늦둥이 막내로 태어났지만
신앙심 없는 가정에서 자라나면서
부모님은 생계를 위해 어린 나를 언니들한테 맡겨놓고 장사를 떠났다고합니다.
언니들은 또래 아이들과 놀고 싶은데 아이인 내가 울어대니까
배가 고파서 울어댄지
똥을 싸고 울어댄지 그냥 등에 업고 놀았다고..
보살핌 없이 자라면서 어린시절 배가고파 울었을 거라고 합니다.
그런 나를 바라보며 성녀의 어린시절이 참으로 부럽게만 다가왔고
내 어린시절 측은한 마음이 공명되어 슬픈 눈물을 한동안 쏟아냈으며
쏟아낸 눈물은 치유해 주시는 아버지의 손길이었습니다.
< 가장 좋아한 분야는 의심할 여지 없이 교리 교육과
재미있는 성경 이야기였다. >
아멘, 아멘!!
성경을 읽고 묵상과 나눔하면서 3년을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의 가르침에 사랑을 만나면서
사랑을 갈구했던 고통에서 치유가 일어난 눈물이었습니다.
매일 성경 읽고 기도드리는 삶이 기쁨으로 다가왔었지만
아버지를 뜨겁게 사랑해 드려야하는 줄은 진정 몰랐습니다.
거내영을 통해 비로소 아버지를 뜨겁게 사랑하는 것이
먼저 순서를 바로 잡는 것임을 알게되었고
끊임없는 아버지기도를 통해 지속적인 밀애관계가 형성 되어짐을
체험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 다른 이들을 기쁘게 해주고자 하는 사랑이 가슴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그때부터 나는 행복했다.
예수님은 내가 나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나를 변화시키셨다.
나는 다시 태어난 듯했다. >
@사랑으로.보조
< 그것은 사랑의 키스였다. 나는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꼈으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며 영원히 나를 당신께 드립니다.‘
예수님과 나의 결합은 넓은 바다에 떨어지는 한 방울의 물과도 비슷했다.
나는 예수님의 넓은 사랑의 바다 안에서 사라졌다.
나는 예수님으로부터 떨어진다거나 이별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영원히 내 곁에 머문다. >
아멘, 아멘!!
거내영 봉헌 신청하면서
아버지의 이끄심에 한없는 눈물을 쏟아내며
“여기였군요?!”라며 저의 종착지인 아버지 품에 안기게 되었습니다.
비로소 내맡긴 영혼이 되어
성녀의 삶처럼 아버지의 사랑으로 변화되어진 삶이
아버지의 사랑으로 다른이들을 기쁘게 해주고자 하는 열정이
현존의 삶으로 실현될 때 기쁨으로 용약하며 행복함을 체험합니다.
저도 성녀처럼 거룩한 내맡김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질긴 에고가 끊임없이 벗겨지기 위해
아버지의 사랑으로 품넓은 세탁기에 들어와 있습니다.
얼마나 행복한 삶인지요! 눈물나요. 아버지이~!!!
베풀어 주신 모든 은총에 엎디어 경배합니다.
부족한 저를 통하여 당신 마음껏 찬미영광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 내 마음은 하얀 돛을 단 날쌘 보트가 되어 태양을 향해
빛나는 이 길을 달려가고 있다.
나는 영원한 생명의 강가에 빠르고도 기쁘게 도달할 수 있도록
예수님을 항상 눈앞에 모시고 있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
< 예수님과 나의 결합은 넓은 바다에 떨어지는 한 방울의 물과도 비슷했다.
나는 예수님의 넓은 사랑의 바다 안에서 사라졌다.
나는 예수님으로부터 떨어진다거나 이별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영원히 내 곁에 머문다. >
아멘!
사랑하는 아버지,
제 인생의 여정은 온통 아버지의 이끄심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 뜻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아버지께서 저와 함께 하지 않았을 것이라 원망한 시간속에서도
아버지는 저와 늘 함께 하셨음을 믿습니다.
지금 제가 처한 상황이나 일들 속에서도
이해하기 어렵고 알아듣기 어렵기에
부족한 저는 늘 함께 하시는 아버지만을 믿으며 내맡겨드립니다.
믿음의 빈틈을 비집고 올라오는 저의 생각으로 인하여
예수님의 강가에 이르는 길을 방해하지 않게 해주소서!
제 마음의 깊은 곳에 머무르는 아버지와의 깊은 결합은
그 어떤 것으로도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아버지만이 저의 유일한 희망이기에
보이지 않아도 들리지 않아도 아버지 손만 잡고 가게 해주소서!
아버지께서 이 세상에서 베풀어주시는 모든 것,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여기서 아버지께서 저와 함께 하신다는 것만을
기억하고 기도하겠습니다.
제 영혼을 택하여 저의 온갖 더러움을 씻어주시고
언제나 올바른 구원의 길로 이끌어주시는 아버지께
온 마음 다하여 찬미와 감사를 드립니다.
부족하고 어리석은 저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는 아버지께
모든 것을 내맡겨드립니다!
아버지, 아버지만을 뜨겁게 사랑하게 하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드디어 4년이나 기다려온 첫영성체 날인 1884년 5월 8일이 다가왔다.
내 가슴속에선 사랑에 대한 그리움이 일어났으며,
예수님은 내게 첫 키스를 하기 위해 서두르셨다.
그것은 사랑의 키스였다. 나는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꼈으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며 영원히 나를 당신께 드립니다.'
예수님과 나의 결합은 넓은 바다에 떨어지는 한 방울의 물과도 비슷했다.
나는 예수님의 넓은 사랑의 바다 안에서 사라졌다.
나는 예수님으로부터 떨어진다거나 이별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영원히 내 곁에 머문다.
감사의 기도를 드릴 때 기쁨의 눈물이 시냇물처럼 내 얼굴을 타고 내렸는데,
다른 아이들은 내가 엄마가 없어서 운다고 믿었다.
첫 영성체를 하던 날, 엄마의 부재가 결코 슬프지는 않았다.
내 마음속에서는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이 곧 천국이었으며,
엄마는 이미 오래전 그곳에 당신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예수님의 방문과 함께 엄마의 방문도 받았던 것이다.>
소화데레사 성녀는 어릴 때부터 남다르셨군요.
첫영성체를 예수님의 첫키스로 사랑을 받고 함께 하심을 이미 알아버리셨네요.
사랑이 많은 아버지와 엄마 언니들로부터 사랑도 많이 받았지만
이별에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참 아팠답니다.
인간과의 이별과 부재의 체험을 통해서 예수님과 온전히 결합하게 되었고
그 영원성에 두려움도 사라지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며
참으로 아름답고 거룩한 분이심을 느끼게 됩니다.
거내영으로 인간 중심이 아닌 아버지 중심으로의 삶으로 변화되면서
영혼육이 많이 단단해지고 때로는 더 유연해지는 것을 봅니다.
아버지께 더더욱 내맡겨드리어 척착으로 아버지 뜻에 공명되는
작은 딸이 되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아버지, 나의 아버지,
모든 하덧사 하내영을 통하여 무한찬미영광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거내영을 통해 저를 살고 저를 이끌고 계신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예수님은 내가 영성체를 통하여 당신을 모시는 순간 나를 변화시키셨다.>
<예수님은 내가 10대의 노력으로 할 수 없었던 일을 단 한순간에 완성하셨다.
다른 이들을 기쁘게 해주고자 하는 사랑이 가슴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그때부터 나는 행복했다.
예수님은 내가 나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나를 변화시키셨다.
나는 다시 태어난 듯했다. >
아멘!!! 아멘!!!
사랑하는 아버지,
첫영성체를 통해 다시 태어난 듯했다는 소화 데레사 성녀의 고백이
제가 내맡김 봉헌 직후에 느꼈던 마음과 같습니다.
내맡김 봉헌과 함께 다른 차원으로 쑥 빠져 들어와
되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느낌과 함께
설명할 수 없는 기쁨과 환희 속에 새로 태어났다는 강렬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30여년 전에 세례를 받긴 하였지만,
그 당시에 하느님의 자녀로서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았기에
그 은총을 받아 누릴 수 없었던 것이지요.
저 자신의 부족함과 죄스러움으로 죽을 것 같은 고통속에서
저의 유일한 안식처이자 희망이신 아버지를 끝없이 좇아 헤매었고
그런 저를 가엾게 여기신 아버지께는 거내영을 통해 제 안에 오시고 저를 살고 계시지요.
소화 데레사 성녀의 변화가 첫영성체 이후에 시작되었듯이
저의 변화 또한 거룩한 내맡김 봉헌 이후에 시작되었고
지금까지 변화와 정화, 성장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너무나 부족하고 부족한 저를 거내영을 통해 새 삶을 살게 하시고
소화 데레사 성녀와 같은 성인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신 이 길에서 소화 데레사 성녀처럼
더더욱 작은 자가 되고 더더욱 아버지만을 죽도록 뜨겁게 사랑해드리며
아버지를 닮은 작은 사랑이 되겠나이다.
거내영과 부족한 저를 통하여 무한찬미영광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사랑하는 아빠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드디어 4년이나 기다려온 첫영성체 날인 1884년 5월 8일이 다가왔다.
내 가슴속에선 사랑에 대한 그리움이 일어났으며,
예수님은 내게 첫 키스를 하기 위해 서두르셨다.
그것은 사랑의 키스였다. 나는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꼈으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며 영원히 나를 당신께 드립니다.'>
아멘아멘~~
이토록 아버지를 갈망하는 작은 천사 소화데레사 성녀의 삶을 대림특강으로 이끌어주시고
베풀어주신 모든 은혜에 찬미와 감사드립니다.
어린시절 길에서 만났던 불쌍한 사람에게 가진
것을 나누는 사랑의 실천과 첫영성체때 그를
위해 기도하겠노라 약속한 바를 지켰으며,
이미 작은 하느님나라를 실천하는 데레사의 삶을
통해 내맡김과 위탁의 삶을 배웠습니다.
배워서 아는만큼 하느님의 부르심에 즉시
응답하는 충만한 삶으로 실천과 나눔 베품의
삶을 살고자 끊임없는 화살기도로 온몸을 감쌉니다.
눈길과 온마음으로 오로지 하느님께로 향하는 성녀데레사 하느님을 아는 지혜는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님에 감동하며 함께 울고 함께 기뻐합니다.
오늘은 성당 성탄 제대트리 세례자 코사지 제대꽃꽃이를 하면서 성녀데레사와 함께 기쁘게 했습니다.
손길 마음 눈길이 하느님께 머무르며 그분의 뜻으로 하고자 했습니다.
순간순간 아버지의 이끄심에 귀를 쫑긋 마음을 열어 한순간도 산란스럽지 않으려 깨우고 깨웠습니다.
배움이 배움으로 끝남이 아니라 삶의 실천으로
살아내고자 합니다.
거내영의 끊임없는 가르침과 지도에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아는 것이 힘이며 이처럼 뿌듯함으로 가슴을
활짝 펴고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게 용기백배로
살아갑니다.
끊임없는 화살기도 아버지기도로 저의 모든것
100프로 내맡겨드리며 오로지 죽기까지
아버지만을 더더 뜨겁게 뜨겁게 사랑합니다.
거룩하신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우리는 모두 행복했는데 내가 가장 행복했다.
이것은 진정 하나의 기적이었다.
그렇게도 울어대고 감수성이 예민하던 내가
단 한 번에 자의식이 강해지고 모든 슬픔으로부터 해방되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내가 10대의 노력으로 할 수 없었던 일을 단 한순간에 완성하셨다.
다른 이들을 기쁘게 해주고자 하는 사랑이 가슴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그때부터 나는 행복했다.
예수님은 내가 나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나를 변화시키셨다.
나는 다시 태어난 듯했다.>
아멘! 아멘~!!
사랑하는 아버지, 소화 데레사 성녀의 삶을
대림 특강으로 이끌어 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어린 나이부터 지혜롭고 총명한 영안이 열린 삶을 보며
혼탁한 시대에 노아를 준비 시켜 주시듯 악으로 기울어져가는
이 시대의 구원을 위하여 소화 데레사 성녀를 준비 시켜 주시어
특별히 거내영을 통하여 일하시는 아버지의 뜨거운 자비를 느끼며
뜨거운 눈물의 감사를 드립니다.
비참한 죄인이 믿지않는 가정에서 태어나 일등 죄인으로
살았지만 용사받은 죄인으로
내맡김 영혼으로 다시 태어난 삶으로 이끌어 주시는
자비의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사제를 택하시어 가장 작은 삶 가장 낮은 삶으로
@거룩한길.보끊.주니어
친히 사시며 망아지같은 저까지도
살도록 이끌어 주심에 무한감사를 드리며
자비로 이끌어 주시는 아버지의 뜻은 놀랍기만 합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아버지의 뜻에 부족한 저의 모든 것을 내맡겨 드리며
소화 데레사 성녀의 삶을 따릅니다.
아버지만을 죽도록 죽기까지 뜨겁게 사랑하며
마목정 거, 머시기로 따르오니 이끌어 주시며
거내영을 만방에 외치오니 이끌어 주소서.
모든 사제와 거내영을 통하여
거룩하신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며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크게 드러내소서!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바다에 대한 첫 인상은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출렁거리는 파도는 아무리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았으며, 석양이 지는 광경은 깊은 감명을 주었다.
석양은 불덩어리처럼 바다의 수면을 스치면서 물 위에 밝은 길을 활짝 펼쳤다.
나는 이렇게 상상했다.
내 마음은 하얀 돛을 단 날쌘 보트가 되어 태양을 향해 빛나는 이 길을 달려가고 있다.
나는 영원한 생명의 강가에 빠르고도 기쁘게 도달할 수 있도록
예수님을 항상 눈앞에 모시고 있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사랑하는 신부님,
사랑하는 무비님,
성녀 소화 데레사의 삶과 사랑을 접하게 해주시니 너무나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일상속의 소소한 것들을 경험하며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키워나간
어린 소화 데레사 성녀의 삶을 읽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급박한 상황에만 아버지께 기도와 감사를 드렸던 지난날과는 다르게
내맡긴 영혼이 되고 나서는 일상에서의 모든 것에서
아버지의 사랑과 베푸신 은총을 느끼며 감사를 드리게 됐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소화 데레사가 바다를 바라보며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경험한 것 처럼
저도 아버지의 사랑을 느낀 일상속의 경험이 어제 있었는데요,
얼마 전 동생 오아가 (한국에 들어가기 전에) 미국에 있는 저를 방문하여
거의 11년 만에 같이 성탄절을 함께 보내게 되었는데
아마도 여행하며 걸린 바이러스 때문에
독감에 걸려 몇일 동안 고생하고 있습니다.
아픈 동생을 보살피며 아버지께 또 한번 감사함을 드리게 되었어요!
만약 네덜란드에서 독감에 걸렸더라면 한국음식도 제대로 먹을 수 없고
홍삼같은 보조식품도 구할 수 없기에 더 아팠을 수도 있고
만약 한국에 돌아간 후 독감에 걸렸더라면 바로 병원으로 가서 항생제를 받아
감기는 빨리 낫을 수 있었겠지만
몸이 약한 동생한테 항생제는 좋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미국에 있는 저희 집에서
(동생 오아보다는 건강에 조금 더 신경을 쓰는) 제가 아버지의 사랑을 본받아
동생이 면역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같이 등산도 하고 좋은 음식 먹으며 보살피게 해주셨으리란 느낌이 들었습니다!
@빛과소금
이렇듯 일상에서 일어나는, 저에게 주어진 상황들을 통해 아버지를 느끼니
저의 삶이 아버지의 사랑으로 너무나도 충만하고
감사한 일들만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아버지, 저도 소화 데레사 성녀의 <어린아이 같은 단순함>을 본받아
아버지만을 바라보고 당신만을 사랑하게 이끌어주소서!
저의 모든 것을 당신께 내맡기오니
저를 당신의 거룩하신 뜻대로 이끌어주소서!
사랑합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작은 일렁임조차도 아름답게 변화시키시는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다른 이들을 기쁘게 해주고자 하는 사랑이 가슴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그때부터 나는 행복했다.
예수님은 내가 나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나를 변화시키셨다.
나는 다시 태어난 듯했다.>
저 잘나서 드러내놔라는 아집과 교만이 넘치던 무지랑이가
현재에 머무는 화살기도와 내맡김으로 아버지께서 안주히여 계시는 작은 성전을 이뤄 나갑니다.
이는 본질인 저를 끊임없이 이끌어 가시는 아버지께서 제안에 역사 하심을 거내영이 되어서야 영안이 열려 알았습니다.
데레사성녀의 전기는 찬란히 펼쳐질 아버지의 나라가 성녀에게는 어떻게 임하실지
저희 한사람 한사람에게도 어떠한 신비로 아버지의 영과을 드러내실지 강한 설레임으로 닥아옵니다.
아버지와 함께인 내맡긴영혼과 더불어 더욱 아버지나라를 목말라하는 신앙이들에게도 아버지의 거룩하신 영광을 드러내소서!
아버지의 완사완영을 위하여!
거내영을 통해 저를 거룩하게 하시고
이끌고 계신 아빠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 예수님을 항상 눈앞에 모시고 있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
< 그것은 사랑의 키스였다. 나는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꼈으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며 영원히 나를 당신께 드립니다.'
예수님과 나의 결합은 넓은 바다에 떨어지는 한 방울의 물과도 비슷했다.
나는 예수님의 넓은 사랑의 바다 안에서 사라졌다.
나는 예수님으로부터 떨어진다거나 이별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영원히 내 곁에 머문다.
감사의 기도를 드릴 때 기쁨의 눈물이 시냇물처럼 내 얼굴을 타고 내렸는데,
다른 아이들은 내가 엄마가 없어서 운다고 믿었다. >
어린 소화 데레사가 사랑의 키스를 통하여 아버지께 사랑을 고백한 것처럼
저도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지만 주일날 지인의 세례식에 축하를 하러 갔더니
신부님께서 세례자들을 축하를 하는 동시에 자기가 세례 받은 날을 생각해보고
다시 세례를 갱신하는 마음으로 임하라고 하셔서 제가 세례를 받고
첫 영성체를 한 날을 생각하니 12월 19일이였고
그때 참 많이 울었던 생각이 났고 그날 이후 한번도 주일을 거르지 않고 30년 동안을
제가 성당에 잘 다닌 것도 이 거내영을 살게 하신 것도
모두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신 것이기에 이제까지 지내온 모든 것들 생각하니
이 죽을 죄인을 살리시고 이끌어 주신 아버지의 자비로운 사랑이
너무너무 감사하여 감사의 눈물이 흘렸으며 제 세례날이 12월 19일이
아들생일과 같은 날인 것도 생각이 나며 앞으로는 세례날
아들과 함께 생일을 보내야겠다고 느꼈습니다.
이렇듯 일상들을 통해서 아버지의 넓은 사랑의 바다에 풍덩 빠져 헤엄치며
행복한 삶을 살도록 하시는 아버지를 죽도록 뜨겁게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제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소화 데레사 성녀의 단순함을 본받아
아버지만을 바라보고 당신만을 더욱더 뜨겁게 뜨겁게 사랑하게 하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 드디어 4년이나 기다려온 첫영성체 날인 1884년 5월 8일이 다가왔다.
내 가슴속에선 사랑에 대한 그리움이 일어났으며,
예수님은 내게 첫 키스를 하기 위해 서두르셨다.
그것은 사랑의 키스였다. 나는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꼈으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며 영원히 나를 당신께 드립니다.' >
아멘, 아멘!
사랑하는 무비님,
정성스러운 녹취 수고에 감사를 드립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부족한 저와는 거리가 먼 일이었기에 성인전은 읽을 생각도 못 했는데
내맡김의 선배인 소화데레사 성녀의 삶을 들으니
내맡기면 성인이 될 수 있다는 지도 신부님의 말씀이 저의 폐부 깊숙이 파고들며
대림 특강을 이끌어 주신 아버지께 감사와 찬미와 흠숭들 드립니다.
신앙심이 투철한 부모님 덕분에 어릴 때부터 예수님께 대한 사랑이 엄청나시더만
첫 영성체 때 벌써 그 사랑이 정점을 이루셨다니 너무나 부럽습니다.
< 거내영 >을 몰랐다면 성녀님을 많이도 부러워했을 텐데
이제 부족한 저도 예수님께 사랑받고 있음이 느껴지며
부족하지만 저를 몽땅 드리고 싶은 마음뿐이라 내맡김의 삶이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성녀님을 따라 저도 작은 자 되어 오직 저의 모든 것을 아버지께
내어드리며 아버지만을 죽도록 죽기까지 뜨겁게 사랑하고 싶사오니 이끌어 주소서.
사랑하는 아버지,
< 거내영 >과 < 2023년 대림 피정 >의 모든 것을 통하여 아버지 홀로 무한찬미영광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아빠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 드디어 4년이나 기다려온 첫영성체 날인 1884년 5월 8일이 다가왔다.
내 가슴속에선 사랑에 대한 그리움이 일어났으며,
예수님은 내게 첫 키스를 하기 위해 서두르셨다.
그것은 사랑의 키스였다. 나는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꼈으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며 영원히 나를 당신께 드립니다.'
예수님과 나의 결합은 넓은 바다에 떨어지는 한 방울의 물과도 비슷했다.
나는 예수님의 넓은 사랑의 바다 안에서 사라졌다.
나는 예수님으로부터 떨어진다거나 이별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영원히 내 곁에 머문다.
감사의 기도를 드릴 때 기쁨의 눈물이 시냇물처럼 내 얼굴을 타고 내렸는데,
다른 아이들은 내가 엄마가 없어서 운다고 믿었다. >
사랑하는 아버지,
당신과 결합의 황홀하고 감사함을 기억하고 사랑합니다.
지어짜내도 없던 사랑을 알게 하신 예수님,
하느님아버지를 부를 때마다
울컥하고 올라오는 무엇이~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현상으로 느껴집니다
성녀는 주님과의 결합은 넓은 바다에 떨어지는 한 방울의 물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성녀께서는 첫영성체로 주님의 사랑을 이루신 삶을 지금 이 세대에 보내주신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을 통하여 성녀가 가신 길을 기꺼이 내어주신 아빠아버지,
당신의 사랑으로 이끌어 주셔서 살게 하시니 베풀어 주신 은혜가 온 땅에 가득찰 때가 오리라 믿습니다.
이땅에 이루신 아버지의 거룩하신 뜻대로 저희를 이끌어주소서.
거내영과 2023년 대림피정을 통하여 찬미영광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도밍 신부님이 우리에게 3일간 강의를 해주었는데,
죽을 죄와 죽음에 대한 내용으로 자비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었다.>
<예수님은 내가 10대의 노력으로 할 수 없었던 일을 단 한순간에 완성하셨다.
다른 이들을 기쁘게 해주고자 하는 사랑이 가슴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그때부터 나는 행복했다.
예수님은 내가 나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나를 변화시키셨다.
나는 다시 태어난 듯했다.>
아멘, 아멘!
성가정에서 태어나 가족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으며 자라온 성녀의
어린시절이 너무 부러움으로 다가오며,
그동안 살아오면서 주고 받았던 사랑이 참으로 인색한 사랑이었으며
거내영에서 완전하고 진짜 사랑을 배우고 실천하게 됩니다.
늦은 나이에 저의 모든 것을 아버지께만 향하고 집중하도록 이끌어 주신
아버지께 무한한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
모든 순간이 너무도 소중하기에 한 눈팔지 않고 아버지만을 뜨겁게 뜨겁게
사랑하며 더더더 내맡기며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대림특강과 거내영과 내맡긴 영혼들을 통하여 무한찬미영광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