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24년 2월 2일(금) 23:00' ~ 2월 4일(일) 15:30'
●등반 당일 날씨: -7°C ~ -1°C. 흐리고 종일 가는 눈발이 흩날렸음. 바람은 잔잔함
●참가 대원
-최병기 등반대장
-이명규
-전성률
-안성조
-김효건
-이동빈 대장(한국산악회 등산학교 동문회 등반대장 )
●일정
<2월 2일 금요일 >
23:00'. 이명규 형님.최병기 대장.전성률.안성조는 이명규 형님 댁이 있는 훼미리아파트에 집결하여 전성률 차를 타고 출발. 김효건.이동빈 대장은 김효건 차를 타고 별도 출발
<2월 3일 토요일 >
00:50'~02:10'. 속초 시내에 있는 <24시 속풀이 해장국집>에 도착하여 야식을 먹음
02:50'. 설악동 주차장에 주차하고 어프로치 시작
05:00'~05:40'. Y계곡 도착하여 장비 착용
06:00'. 토왕성빙폭 하단 도착
07:00'. 3명씩 2개조로 하단 등반 시작
08:50'. 6명 토왕성빙폭 하단 등반 완료.
이명규 형님은 하단 등반 중 낙빙에 맞아 얼굴 인중 부위가 찢어지는 부상을 당하여, 하단 등반 완료 후 전성률과 함께 하강하여 서울로 이동
09:10'. 토왕성빙폭 중단 등반 시작
10:00'. 1개조로 토왕성빙폭 상단 등반 시작( 선등 이동빈 대장. 세컨드 최병기 대장. 서드 안성조. 라스트 김효건 )
16:00'. 김효건 대원이 라스트로 상단 등정 완료
16:15'. 하강 시작
17:15'. 토왕성빙폭 하단 스타트지점에 하강 완료
19:33'. 설악동 주차장 도착
20:00'~22:00'. 속초 대포항 횟집에서 막걸리.소주를 곁들여 회와 함께 저녁 식사 후, 설악동 숙소로 이동하여 취침
<2월 4일 일요일>
08:00'~09:30'. 기상하여 온천탕에서 목욕
09:30'~10:30'. 대포항 횟집에서 섭국으로 아침 식사 후 서울로 출발
13:30'~15:00'. 훼미리아파트에 도착하여 이명규 형님이 아시는 순대.족발집으로 가서 점심 식사.전성률도 참석하여 등반 얘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가짐
15:00'. 해산
●서언
2021년 5월에, 암벽 등반을 하는 모험주의자 동문들이 모인 구덕산우회에 들어왔다. 그해 가을에 설악산 적벽에 올라서서 천불동계곡을 보았다. 그리고 토왕골에 있는 솜다리봉에 올라서 토왕성폭포를 보았다. 이 순간부터 토왕성폭포는 내가 올라야 할 대상이 되었다. 쳐다보기만 할 대상이 더이상 아니었다.
나는 山의 神秘를 보고 느꼈고 그것을 좇는 탐미주의자가 되었다. 모험주의자는 부수적인 조건이 되었다.
그해 겨울에 구덕산우회는 토왕성빙폭 완등에 도전하자고 결의했다. 지난 겨울에는 부족함을 알고, 하단만 등반하고 중.상단은 쳐다보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올 겨울에는 매주 토요일마다 5차례 훈련을 하며 준비를 해왔다. 그러나 따뜻한 날씨가 계속 되면서 토왕성빙폭 개장이 한없이 미뤄지고 있었다.
설악산 산신이 도왔는지, 지지난주에 연4일 간 날씨가 추워지면서 지난주에 개장 공고가 국립공원관리공단 홈페이지에 떴다. 그리고 우리가 등반하고 2일 후에 설악산 전구간 빙벽 등반을 조기 종료한다는 안내문이 떴다. 올해 개장일은 평일 포함 6일이었고 토요일은 딱 하루였다. 우리에게 주어진 단 한 번의 기회를 잃지않고 도전해서 성공을 이루어 내었다.
우리 구덕산우회를 축복해주신 설악산 산신께 감사드리고,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지난 2년여 동안 애쓰신 최병기 대장. 이명규 형님. 이승원 회장님 그리고 함께한 대원들과 회원님들께 감사드리며, 이 기록을 올립니다.
1. 토왕성빙폭 공격 날짜를 앞당기다.
1월 27일 5차 훈련 때 토왕성빙폭 공격 날짜를 2월 17일 에서 2월 3일로 앞당기기로 결정했다.
얼음이 얼지 못하는 따뜻한 날이 계속되어 토왕성빙폭 개장이 계속 미뤄지면서 애를 태우고 있었는데, 1월 22일부터 -10°C 이하의 날씨가 몇일간 계속되더니 마침내 설악산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개장을 결정하고 신청을 받기로 했다. 그동안 목매고 기다려온 전국의 빙벽등반가들의 신청이 폭주했다. <2월 3일 등반>을 시작하자마자 접수시켰지만 우리는 실패했다. <2월 17일 등반>을 추가로 신청했지만 내주에 답신해 준다고 하는데 비관적이었다. 내주부터 또다시 따뜻한 날씨가 쭉 이어진다는 예보는 우리를 더욱 절망케 했다.
1월 30일. 최병기 대장 톡이 올라왔다. 설악산 한국산악회 구조대 훈련차 하는 등반으로 <2월 3일 등반> 허가를 받았다고 했다. 최 대장은 한국산악회 소속이다. 대원들 용기가 수백배 났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출발 준비 사항들에 대한 지시가 내려지기 시작했다. 기분좋은 긴장감이 가슴을 싸악 쓸고 내려갔다. 안전 제일을 당부하는 회원분들의 글도 같이 올라왔다.
내 몸 상태는 만족하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집 주변 단지를 도는 코스를 30분간 쉬지않고 뛰어 완주할 수 있게 되었고, 40계단을 30번 오르락내리락 하고도 호흡이 가쁘지 않았고, 낮은 푸쉬업.풀업도 140개씩 할 수 있게 되었다. 출발 하루 전날까지 바일 스웡 연습을 쉬지 않았다. 지난 겨울 하단 등반을 떠올려 보면 자신감이 생겼다. 음식에 체하는 것과 같은 뜻하지 않은 사태만 생기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2. 이동빈 대장님의 합류
1월 31일. 한국산악회 등산학교 동문회 선배인 이동빈 등반대장님(72세)이 최종적으로 이번 토왕성빙폭 등반 선등을 서주시기로 했다는 김효건 대원의 톡이 올라왔다. 이명규 형님보다 겨우 2살 아래이신 분이 선등을 서기로 했다. 이래서 최병기 대장. 이명규 형님. 안성조가 한조가 되고, 이동빈 대장님. 전성률. 김효건이 한조가 되어 2 팀으로 등반하기로 결정됐다.
각 팀은 80m 자일 2동씩 준비해야 된다. 3명씩 2 팀으로 등반하면 여럿이 1 팀으로 등반하는 것보다 등반속도는 빨라질 것이고, 기술적으로 챙겨야 하는 여러가지 여려움도 많이 줄여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걱정이 조금 되었다. 아무리 프로등반가이시지만 대원들과 한 번도 팀웍을 맞춰보지 않았는데, 고난도 등반을 바로 같이 해도 되나 하는 걱정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기우였다. 이동빈 대장님의 합류는 이번 등반을 성공시키는 데에 큰 힘이 되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대장님께 물어보고 알게된 사실이다.
미국 ABC 방송국 한국주재원 기자로 일하신 대장님은 정년이 가까워 오던 50대 중반부터 뭔가 재미난 일을 찾다가, 해병대 복무 시절 조금 배운 적이 있은 암벽 등반을 하기 시작하셨다. 그러다가 한국산악회 등산학교에서 일하는 지인으로부터 등산학교 입교를 권유받고 등산학교에 들어가셨다. 거기서 등산 강사로 있던 최병기 대장을 사제지간으로 만났다. 이때부터 등산학교에서 알게된 수많은 등반가들과 함께 일주일에 2번씩은 꼭 암벽.빙벽 등반을 해오시고 있다.
이용대 전 코오롱등산학교 교장(88세)을 포함해서 한국 현대 암벽.빙벽사를 쓴 산악인들이 대거 포진해 있는 시니어 알파인클럽의 막내 회원으로서 지금도 선등을 도맡아 하시고 계신다. 이번 등반에서 보여주신 실력은 한국산악회 젊은 대원들보다 나았으면 나았지 결코 못하지 않으셨다.
3. 설악의 어둠 속으로 들어가다.
2월 1일(금). 23:00'를 지나면서 이명규 형님. 최 대장. 내가 탄 전성률 차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방금 김효건으로부터 가평휴게소에 있다는 연락이 왔었다. 우리보다 일찍 출발한 모양이다. 낮에 일하고 저녁에도 전혀 눈을 붙이지 못 했기에 조금이라도 잠을 자둬야 하는데, 전성률이 밟는 악셀레이터는 점점 더 깊어진다. 아무도 선잠도 자지 못하고 1시도 되기 전에 속초 시내에 있는 <24시 속풀이 해장국집>에 도착했다.
김효건과 이 대장님은 20분 정도 늦게 도착했다. 해장국.설렁탕 등으로 요기를 했다. 나는 혹시나 체할까 싶어서 콩나물 해장국 반 그릇 정도만 먹고 남겼다. TV에서는 아시안컵 한국과 호주의 8강전이 중계되고 있었다. <1:0>으로 끌려가고 있는 답답한 상황이다. 끝까지 보고 가자는 대원도 있었으나, 이대로 끝나면 안 좋아진 기분이 등반하는데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는 얘기도 있어서 중간에 일어났다.
가는 눈발이 다시 날리고 있었다. 설악산에는 지지난주에 연 4일간 계속 눈이 내렸고 지난주에도 눈이 내렸으며, 그저께는 25cm가 넘는 폭설이 내렸다.
03:00'부터 헤드랜턴을 켜고 설악의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흩날리는 가는 눈이 상서로운 瑞雪로 느껴져서 기분이 좋아졌다. 작년 하단 등반 때도 서설이 내렸었다. 아이젠을 차느라 다소 뒤처져서 가고 있었는데, 화장실이 있는 쉼터에서 쉬고 있던 앞서간 대원들이 한국축구팀이 막판에 역전하여 <2:1>로 이겼다는 기쁜 소식을 알려준다. 오늘 등반 성공을 예고해 주는 것 같아서 더더욱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 설악산 기온이 -10°C~-7°C라고 예보했는데 춥지 않다. 특히 바람이 전혀 없다. 날씨까지 우리를 도와준다. 헤드랜턴 불빛에 비치는 설악산의 속살은 눈천지다. 내일이 입춘인데, 계절 흐름은 변함없는지 눈밭 밑으로 흐르는 계곡 물소리가 명랑하다. 눈이 깊으니 아이젠은 소용이 없고, 30kg에 가까운 배낭을 메고 가파른 산비탈 허리를 타고 갈 때는 아찔한 순간도 몇 번 넘겼다. 얼마 못 올라가서 온 몸이 땀으로 젖어 버렸다. 상의 쉐타를 벗고, 모자를 벗고, 장갑마저 벗었다. 짧게 한 번만 쉬고 2 시간을 쉬지않고 올라 마침내 05:00'에 Y계곡에 도착했다.
Y계곡에는 3 팀 정도가 먼저 와서 장비를 착용하고 있었다. 장비를 착용하면서 본격적으로 몸과 마음이 긴장되기 시작했다. 하네스를 2 번이나 잘못 착용하여 재차 고쳐 착용해야 했다. 토왕성빙폭 하단으로 오르는 길은 눈이 무릎 위까지 쌓였다. 바일은 하네스에 차고 발로만 올라갔다. 숨이 턱까지 차지도록 한참을 오르니, 벌써 반딧불 같은 헤드랜턴을 켠 등반객들이 빙벽에 붙어서 오르고 있었다. 4 팀이나 되었다.
4. 토왕성빙폭의 2 惡摩
토왕성빙폭을 완등하기 위해서는 2 악마와 싸워나가야 한다. 첫번째 악마는 쉬지않고 쏟아져 내리는 낙빙이다. 우리 위로 4 팀이나 올라가고 있으니, 이들이 얼음을 찍으면서 떨어뜨리는 낙빙 총알.포탄은 끔찍할 것이 분명했다. 두번째 악마는 상단 140m 수직 빙벽이다. 올라도 올라도 끝이 보이지 않는 이 벽을 나의 힘과 의지력과 설악산 산신의 도움을 받아서 올라가야 한다.
하단 빙벽은 90m 정도인데, 빙벽 등반 길이는 60m 정도이고 30m는 일반 등반이 가능한 설상면이다. 선행 4 팀이 올라갈 때까지 아랫쪽 설상면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07:00'부터 이동빈 대장님 팀부터 우측 벽면쪽에서 공략하기 시작했다. 조금 후에 우리팀은 왼쪽 벽면쪽으로 붙기로 하고 스타트지점으로 올라갔다. 최병기 대장이 하단 등반을 시작했다. 내가 세컨드고 이명규 형님이 라스트다.
잠시 뒤 단단한 물체가 내 인중 오른쪽을 강하게 때리고 갔다. 우...너무 아프다. 낙빙 조각이었다. 그리고 곧바로 이번에는 콧등을 조금 전보다 더 큰 놈이 더 세게 때렸다. 코 안에서 액체가 흘러내렸다. 옆쪽에서 전성률 비명소리가 들린다. 나보다 더 큰 놈한테 맞은 모양이다. 이때부터 화이바에 부착된 안면보호경을 최대한 내리고, 머리는 박고, 몸통은 얼음벽에 밀착해서 빌레이를 보기 시작했다.
김효건 소리가 크게 들렸다. 낙빙을 피하는 잠깐 사이에 선등이 달고 올라간 자일의 끝자를 놓치고 말았다. 어둠 속으로 자일이 딸려 올라가 사라진 것이다. 선등으로 오르던 최 대장이 확보지점에 있는 이동빈 대장님에게 소리를 질러 다시 자일을 내려 주게 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낙빙에 정신이 매몰되어 이런 황당한 사태가 계속 일어났다.
내가 오를 차례가 되었다. 때마침 어둠도 걷히기 시작해서 헤드랜턴도 벗었다. 심호흡을 짧게 하고 왼쪽 바일을 찍고 왼쪽 크램폭을 찍고 몸을 세워보니 내 몸은 살아있었다. 조금 올라가니 오버행이 연속해서 계속 이어진다. 작년에는 빙벽이 70° 정도 각도로 매끈했고 발디딤 자리도 군데군데 많아서 어려움 없이 올랐는데, 오늘은 다르다. 작년에는 시기도 겨울 막바지인 2월 21일이어서 얼음이 푸석해 바일이 잘 찍혔는데, 오늘은 잘 찍히지 않고 세게 찍으면 얼음이 깨져 터져버린다. 그래서 낙빙이 더 많이 생기는 것 같았다. 빙벽은 매번 그 얼굴이 변한다. 할 때마다 생전 처음 보는 놈과 싸워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단련된 내 몸과 훈련으로 쌓인 내 기술력은 하단을 넘기에는 충분했다.
5. 2 대원의 중도 하산
먼저 등반을 시작한 이동빈 대장님 팀은 라스트인 전성률마저 확보지점에 도착했다. 우리 팀의 라스트인 이명규 형님이 시야에 나타나셨다. 밝은 표정이셨다. 그런데, 순식간에 낙빙이 형님 얼굴을 때리고 날라갔다. 입 주변에 피가 흐른다. 잠시 후 확보지점에 도착한 형님 얼굴을 보니, 인중 부위가 찢어져 벌어져 있고 윗 입술도 터져 있었다. 경험이 많은 최 대장을 불러서 상태를 확인해 보시고는 서둘러 하산해서 치료받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리셨다. 문제는 오늘이 토요일이기 때문에 응급실로 가야 하는데, 속초병원 응급실에는 성형외과 의사가 없다는 것이다. 재작년에 최 대장도 속초병원에서는 응급처치만 받고 서울에 올라가서 봉합수술을 받았다. 서울로 올라가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전성률 차를 이용해야 하기에 전성률이 형님과 동행해서 하산하기로 했다.
갑작스런 2 대원의 중도 하산은 우리들 마음을 흔들었고 동시에 등반팀의 변화를 요구했다.
09:10'. 자일 2 동을 먼저 사린 이동빈 대장님과 김효건이 중단 등반을 시작했다. 최 대장은 자일 2 동을 내려서 이명규 형님과 전성률을 하강시키고, 자일 1동은 Y계곡으로 하강할 때 쓰도록 아래로 내려주고 자일 1동만 올려서 사렸다. 45° 이하의 완경사인 중단도 하부 바탕은 빙판이지만, 빙판 위에 무릎 위까지 눈이 쌓여 있어서 바일 없이도 등반이 가능하다. 130m 길이의 중단은 100m 지점까지는 눈이 쌓여 있으나, 그 위 30m는 경사가 세지면서 눈이 쓸려 내려가고 빙판이 드러나 있다. 이곳은 바일과 크램폰을 찍으면서 올라가야 한다.
6. 지옥문을 열었다.
중단 상부 30m 지점 가운데로 오르던 김효건이 아주 고통스러운 소리를 지르더니 앞으로 무너졌다. 아주 큰 낙빙에 맞은 모양이다. 연이어 고통스러워하는 소리가 또 들렸다. 상단 스타트지점에 도착해 있던 이동빈 대장님이 오른쪽으로 이동해서 올라오라고 안타깝게 외친다. 상단을 쳐다보니 10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등반을 하고 있다. 이들의 바일질에 쪼개진 얼음 조각들이 떨어져 이리저리 튕기다가 가운데로 몰려서 내려오고 있었다. 뒤따르던 최 대장도 나도 왼쪽으로 트래버스 해서 올랐다. 마침내 윗면이 살짝 오버행져 있고 아랫쪽은 안으로 조금 깎여져 들어가 있는 곳에 3 사람이 도착했다. 우측에 있던 이동빈 대장님도 우리가 피해 있는 왼쪽으로 옮겨 왔다.
자일 3 동을 이용한 새로운 등반 방식에 대해서 최 대장과 이 대장님이 의논을 해서 1 팀으로 등반하기로 결정했다. 선등 이동빈 대장님. 세컨드 최병기 대장. 서드 안성조. 라스트는 김효건이 맡기로 했다.
상단 140m는 2 피치로 끊어서 등반한다.1피치 70~80m. 2피치 60~70m로 끊어서 등반한다. 상단은 마지막 10m 정도는 완만한 경사지만 나머지는 직벽.오버행.고드름.얼음버섯으로 점철되어 있다. 절대적으로 팔힘이 강해야만 한다. 때문에 이 구간에서는 스크류를 회수하는 세컨드는 서드.라스트와는 차원이 다르게 힘들다. 나와 김효건은 이 역할을 안 해도 되게 되었다. 라스트인 김효건은 수직벽에 매달려서 후등자 빌레이 보는 일도 하지 않게 되었다. 이로써 나와 김효건은 애초 계획보다 수월해진 조건에서 등반을 계속하게 되었다.
먼저 오르는 팀들의 등반 속도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이들 뒤를 따라서 올라가서는 언제 올라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더욱 심각한 것은 이들이 등반하면서 떨어뜨리는 낙빙을 다 맞아가면서 어떻게 올라가느냐 하는 문제였다.
안전한 지대라고 피해 있지만, 이리저리 튕긴 낙빙이 아래에서도 옆에서도 날라와 얼굴을 때린다. 이번에는 최 대장이 왼쪽 볼에 2~3개를 연달아 맞았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 한복판에 벌거숭이로 우리는 서있었다.
그래도, 머릿속에는 올라간다는 생각뿐이다. 내려간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얼굴을 들고 눈앞에 펼쳐진 경치를 새삼스레 제대로 보았다. 진누런 황토색 돌덩어리 노적봉이 하얀눈 면사포를 쓰고 하얀 눈꽃을 수놓은 치마를 입고 말없이 서있다.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거벽 병풍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황홀하고 위엄있는 순백색 곤룡포를 입고 우리를 호위하고 섰다. 구름이 사방을 가렸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스노우샤워가 수시로 우리를 덮으며 희롱하고는 계곡 아래로 날아간다. 그리고 우리를 죽일 듯한 이 빙폭도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렇게 아름다운 경치에 홀리노라니, 낙빙을 맞는 이 고통도 받아들여 진다. 이 정도 대가는 당연하지 않는가 하고...
경치가 너무 좋다고 했더니, 최 대장이 말한다.
"그러나, 이 순간에는 지옥입니다. 다시는 오고 싶지 않은..."
"...이런다고 밥이 나옵니까? 돈이 나옵니까?..."
"효건이 형, 그만 내려갈까요?"
김효건이 말했다.
"...여기까지 올라오면서 이렇게 얻어 터졌는데...열 받아서 못 내려가겠다..."
이동빈 대장님이 결심을 하고 일어났다. 오르는 사람이 없는 제일 우측면을 타고 오르겠다고 하셨다. 우측면으로 이동한 이동빈 대장님이 위로 올라가면서 우리 시야에서 사라졌다. 풀리는 자일만 보고 최 대장이 빌레이 봐줄 뿐이다. 성질 괄괄한 이 대장님이 등반하는 젊은 친구들을 나무라는 소리가 들렸다. 이 대장님도 낙빙에 또 맞은 모양이다. 낙빙을 만든 젊은 친구가 '낙빙' 하고 외치지도 않은 것에 화가 나서 성질내고 있는 것 같았다. 기죽어서 투덜대는 젊은 친구 목소리도 들린다. 위가 궁금하지만 낙빙이 무서워 머리를 들 수가 없다.
7. 토왕성빙폭에 제물을 바치다.
이 대장님이 올라가신 지 아주 긴 시간이 흘렀다. 낙빙에 질려 거의 망각 상태에 이른 우리는 시간을 확인해보는 것도 잊고 기다렸다. 마침내 무전이 왔다. 최 대장이 빠르게 출발했다. 또 아주 긴 시간이 흘렀는데도 자일은 계속 풀려나갔다. 수직 빙벽에 매달려서 스크류를 다 뽑자니 얼마나 힘들고 시간이 많이 걸리겠는가?
바람이 없는 포근한 날씨지만 몸이 추워지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스노우샤워를 뒤집어 썼고, 목 뒷덜미로 쏟아져 들어간 스노우샤워에 등은 축축하게 젖었고 팔목으로 들어간 눈가루에 장갑도 옷소매도 젖었다. 얼음벽을 찍어서 깎아내고 만든 좁은 풋 스탠스에 2시간 가까이 버티고 서있다 보니 발도 시리고 몸도 추위를 느끼고 굳어 갔다. 몸을 얼른 움직여야 하는데...마침내 최 대장한테서 '완료' 하는 무전이 왔다.
오르는 나를 보고 김효건이 말했다.
"형이 얼마나 빨리 오르느냐에 제가 얼마나 더 떨지가 달렸습니다..."
아뿔싸, 급하게 오르다가 빙벽에 찍어 놓은 김효건 바일 하나를 자일이 건드려 떨어뜨리는 황당한 사태가 발생했다. 천만다행으로, 옆에서 등반하던 한국산악회 대구지부 대원들 중에 아래에서 올라오던 대원이 있어서 김효건 바일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자일을 따라 오르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난코스다. 내 팔과 다리는 오직 본능에 따라 기계적으로 움직였다. 왼팔이 힘들면 내가 해야할 일은 오른팔로 빨리 옮겨주는 일이고, 왼발이 불안하면 오른발을 최대한 빠르게 안전한 곳에 찔러 넣는 일뿐이다. 오버행 구간도 고드름 구간도 돌파해 나갔다. 발디딤이 어려운 오버행 구간에서 오른손 바일을 힘껏 찍었는데 제대로 박혀서 거뜬하게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이 바일이 뽑히지 않는다. 한참을 용을 썼는데, 한 순간에 쑥 뽑히더니 그만 바일 헤더가 내 대문니를 때리고 말았다. 부러진 이빨 조각이 혀에 감겼고, 남은 이빨의 날카로워진 부분이 아랫 입술을 기분 나쁘게 벤다.
"젠장, 왜 이런 일이 내한테 일어나는 거야?......"
그 와중에 내 눈 속으로 빛살이 되어 쏟아져 들어오는 설악산의 신비...
"이 산에 내가 이제서야 제물을 바쳤구나. 이것조차 하지 않는다면 그건 너무 양심이 없는 거지."
마음이 편해졌다. 다른 대원들 신경쓰이지 않게 정상에 가기 전까지는 안 들켜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한참을 올라온 것 같은데 확보지점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오르는 코스는 빙폭 제일 우측 끝까지 몰려서 갔다. 이동빈 대장님이 어떻게든 사람들을 피해서 오르려고 하신 것 같았다. 그랬다. 이 피치를 오르는 동안에 낙빙은 사라졌었다. 오직 무시무시한 수직의 얼음거벽만이 나를 흔들어 지옥으로 떨어뜨리려고 했다.
팔이 힘이 들면 들수록 바일 스웡 속도는 빨라졌고 프론트 킥킹 속도도 빨라졌다. 마침내 최 대장이 나타났다. 또 나는 해냈다. 확보를 하고 바일을 빙벽에 찍고 손을 놓으니, 두 손바닥이 시뻘겋다. 그리고 얻어 맞은 것처럼 아렸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괜찮아졌다. 상단 1피치는 남은 자일 길이를 보니 75m 정도 될 것 같았다.
8. 정상에 서다.
내가 김효건이 이 피치를 올라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걱정하는 소리를 했다. 이 대장님과 최 대장이 어떻게든 올라와야지 어떻게 하겠냐며 믿음을 표시했다...
이동빈 대장님이 마지막 피치 공격에 나섰다. 이 대장님 오르는 빙벽을 보니 빙벽 길이는 역시나 아주 길지만 1피치보다는 낫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다소 안도했다. 나는 김효건 빌레이 준비를 했다.
몇 십분이 지난 후, 빌레이 보는 자일에 아주 센 텐션이 걸렸다. 김효건이 추락한 것인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얼마 후 최 대장도 마지막 피치 등반을 시작했다. 그러나, 김효건과 연결된 자일이 당겨지는 속도는 한없이 더디기만 하다. 텐션이 자주 걸린다. 달려 올라가는 자일을 보니 최 대장은 정상에 도착한 것 같다. 김효건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시간이 얼마나 흘러갔는지 시간을 보지 못했으니 알 길이 없어서 더 답답했다.
이윽고, 시야에 나타났다. 시야에 나타난 그의 얼굴 표정은 심각하지 않았다. 마지막 힘을 쏟아서 마침내 확보지점에 올라와서 확보했다.
올라오면서 낙빙을 크게 맞아 잠깐 동안 기절 상태에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힘들 때마다 쉬면서 힘을 아끼고 올라 왔기에 늦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때 최 대장 무전이 왔다. 라스트가 아직도 올라오지 않았느냐는 걱정하는 목소리다. 잘 올라왔다고 반갑게 응답했다.
위를 보니 1피치보다 쉬워 보이고 마지막 피치이니 같이 파이팅하자며, 둘이 같이 '파이팅'을 외치고 출발했다. 마지막 피치라는 사실이 없던 힘까지 끄집어 내준다. 밑에서 볼 때와 달리 붙어 보니 매한가지로 수직벽이다. 얼음의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랫쪽 얼음은 깡깡해서 바일 끝이 잘 꽂히지 않았는데, 이쪽은 아래로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곳도 있고, 바일 끝이 쉽게 푹푹 들어가기도 하고 얼음이 바사지며 쉽게 빠지기도 한다.
30m쯤 오르니 고드름 구간이 나타났다. 고드름 구간을 질러 올라갈 수는 없고, 좌로 올라가든지 우로 돌아서 올라가든지 해야 한다. 좌로 올라가 보기로 했다. 고드름 사이에 바일을 걸고 당기며 오르다가 추락했다. 고드름 사이에 쌓인 눈을 긁어내고 바일을 걸고 살짝 당겨 힘이 걸리는 것을 확인하고 당겼는데 그만 얼음이 바스라지면서 터져버린 것이다. 추락하면서 양 무릎이 빙벽과 세게 부딪쳤다.
정신을 차리고 이번에는 오른쪽 얼음버섯이 있는 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이곳은 빙벽의 우측 끝부분이다. 얼음 두께가 얇다. 바일질을 간결하면서 예리하게 해야 했다. 스스로를 더이상 다그칠 필요도 사라져 갔다. 정상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느낌만으로도, 나는 이제 이 악마를 때려잡을 수 있었다.
15:10'에 정상에 섰다. 정상은 구름에 싸여 있었다. 보이는 것은 눈꽃을 피운 나무와 흥분해서 구름 속에서 유영하는 듯한 등반객들의 움직임만...등반 중에 전화벨이 울렸으나 받지를 못해서 확인해 보니 전성률 전화였다. 전화해 보니, 이명규 형님은 봉합수술을 잘 받았다고 하며, 등반은 어떻게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3사람은 정상에 올라왔고 김효건만 올라오면 된다고 말했다. 등정 기쁨에 환하게 입을 벌리고 웃는 나를 본 최 대장이 단박에 내 이빨이 깨진 것을 알아채고 캐묻는다. 빙신같이 내가 내 바일로 쳐서 깨먹었다고 말하고 싱그시 웃었다. 최 대장이 계속해서 빌레이 보겠다며 뭐든지 요기부터 하고 쉬라고 한다. 허기가 습격해 왔다. 약밥을 꺼냈다. 5개를 싸가지고 왔는데, 이 대장님.최 대장에게 한 개씩 주고, 2개를 게눈 감추듯 삼켰다. 14시간 만의 요기다. 그리고 스니커즈 쵸콜렛바 2개를 씹어 먹었다. 생강차를 곁들여서...
9. 김효건 대원
16::00'경 김효건 대원이 정상을 밟으며 올라왔다. 고개를 숙인 채 정상에 오르는 김효건 대원의 사진은 이날 최고의 사진이었다.기진해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이내 본래의 생기있는 모습으로 돌아왔다. 지나간 모든 역경이 안개처럼 사라졌으리라. 약밥.에너지바. 생강차 등으로 요기를 하더니 더 살아났다.
정상에 오른 우리 4 사람은 최 대장 셀카로 인증샷을 찍었다.
두 대장 외에, 이번 등반 최고의 공로자는 김효건 대원이었다. 그는 타고난 친화력으로 한국산악회 회원들과 교분하며 등반의 기술과 트렌드를 많이 알게 되었다. 그런 정보와 지식을 바탕으로 이번 산행에 노련한 전문산악인 리더 한 사람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한국산악회 등산학교 동문회 감사를 하면서 친분을 쌓은 이동빈 대장님을 선등대장으로 모셔 왔다. 최병기 대장과 이동빈 대장님과는 등산학교에서 사제지간으로 처음 만난 이후로 한국산악회에서 오랫동안 같이 활동을 해왔으므로 팀웍에서도 최고의 파트너가 되었다. 이 프로 등반가 2 사람을 합쳐 놓음으로써 이번 등반의 성공확률은 처음부터 극상이 되었다.
또 김효건 대원은 낙빙에 크게 맞아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완등을 해냈다. 그래서 정상 인증샷에 2명의 50대 얼굴이 찍혔다. 이 자리에 김효건 대원이 없었다면 나는 이 기록을 쓰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구덕산우회의 역사적인 토왕성빙폭 완등 사진을 기록물로 올렸는데, 그 사진 속에 60대 이상 시니어들 얼굴만 있다면, 후배들이 구덕산우회에 들어오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것 같아서다.
구덕산우회의 새로운 모멘텀을 만드는 이번 등반에서, 주역으로 활동해준 50대 김효건 대원과 정상 사진을 같이 찍게 되어서 기분이 너무 좋았다.
10. 프로들의 하강
이동빈 대장님이 서둘러서 하강해야 된다고 재촉하기 시작했다. 다른 팀들보다 늦으면 하강 시간이 얼마나 늦어질지 모른다고 했다.
16:15'에 하강을 시작했다. 이 대장님이 자일 2 동을 옧매듭하고 나서 각 줄을 픽스한 후에 1 동을 내리고는 지체없이 외줄 하강을 했다. 최 대장이 흐트러진 자일 1 동을 재빨리 사렸다. 사린 자일을 타고 내가 하강하고 다른 자일을 타고 김효건이 하강하고 그리고 최 대장이 2 줄을 타고 하강했다.
먼저 하강해서 동굴이 있는 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 대장님이, 최 대장이 하강하자마자 자일 한쪽 끝을 잡고 당겨 내리고, 한 자일을 클로버 힛치 매듭을 해서 고정시킨 후에 바로 외줄 하강을 한다. 다른 쪽 자일을 최 대장이 클로버 힛치 매듭으로 고정을 해주고 나면 내가 그 줄을 타고 다시 외줄 하강을 했다.
외줄 하강을 해서 중단으로 내려오니, 중단 끝부분에 섰는 이 대장님이 자일 끝까지 내려가서 멈추라고 일러준다. 중단 끝에서 30m 정도 내려와서 섰다. 발로 눈을 깊이 찔러 밟으며 경사가 완만한 지점까지 걸어서 내려가라고 이 대장님이 또 외쳤다. 눈이 무릎 위까지 쌓여 있는 경사지에서는 절대로 굴러 떨어지지 않으니 안심하고 내려가라고 재차 일러준다. 그렇게 아랫쪽 30m 지점에 이르니, 최 대장이 어느새 자일 끝자를 끌고 내려와서 하단 하강링이 있는 좌측 확보지점에 먼저 도착한다. 내가 먼저 외줄 하강하고 , 김효건. 이 대장님. 최 대장 순서로 하단으로 하강 완료했다. 이때가 17:15'으로 1시간 만에 하강을 완료했다.
배낭과 짐을 놓아 둔 Y계곡으로 내려오니 사방이 껌껌해졌다. 장비 정리는 숙소에서 하기로 하고 짐을 아무렇게나 배낭에 쑤셔 넣고 하산을 시작했다. 빙벽화를 신고 걷는 것이 힘든 나는, 등산화로 갈아 신고 아이젠과 스패츠를 차고 스틱을 챙기느라 다른 대원들보다 출발이 늦어져 제일 마지막으로 하산하기 시작했다.
아무렇게나 쑤셔 넣다 보니 배낭의 높이는 높아졌고, 녹은 눈이 밤이 되면서 얼면서 하산길이 많이 미끄러워졌다. 헤드랜턴을 켜고 스틱으로 발란스를 잡으면서 조심조심 하산했다. 하산 중에 계곡물을 7~8번 건너야 한다. 아뿔싸! 2번째 계곡물을 건너다가 미끄러져 물 속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면서 스틱 하나가 부러졌다. 부러진 스틱을 짚으며 일어서다가 재차 계곡물에 빠졌다. 신발과 아랫도리가 완전히 물에 젖고 말았다. 하산길에서 특히 조심해야 된다고 했는데, 나 또한 피하지 못했다. 다행히 밤인데도 기온은 높아서 발이 얼 염려는 없었다.
한참을 내려오니 산길을 가로막고 있는 나무가지에 바일 한 자루가 걸처져 있었다. 한 눈에 최 대장 바일인 줄 알았다. 최 대장이 뒤따르는 내가 길을 잃을까봐 일부러 걸쳐 놓았다고 생각했다. 대원들을 만났다. 최 대장이 바일 챙겨 왔느냐고 묻는다. 나뭇가지에 걸려 배낭에 매달아 둔 바일 한 자루가 빠졌다고 했다. 나는 계곡물에 빠지면서 스틱 한 자루를 부러뜨렸는데, 그렇게 해서 늦어짐으로써 최 대장 바일 한 자루를 찾게 되었다. 묘한 일이 많은 날이다.
19:30'에 드디어 설악동 주차장에 도착했다. 새벽 3시에 산행을 시작한 이래 16시간 30분 간의 산행이 비로소 끝났다. 전날 23:00'부터 시작한 일정이 20시간 30분 만에 완료되었다. 17시간 30분 동안 제대로 먹지 못하고 산행했기에 우선 뭐라도 먹어야 했다. 속초 대포항에 있는 김효건이 잘 아는 횟집으로 갔다.
가재미 구이. 멍게 그리고 복어회에 소주가 몸 속으로 들어가니 천국문이 활짝 열렸다. 따뜻한 국물에 밥을 말아 먹으니 지난 시간의 고통은 간 곳이 없어졌다.
설악동 숙소로 돌아와서 더 마시려고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가지고 왔는데도 한 모금 마시다 말고는 그대로 곯아 떨어졌다.
11. 지옥에서 돌아오는 자
모두 한 번도 깨지 않고 다음날 08:00' 알람이 울릴 때까지 뻗어서 잤다. 일어나니 전날 추락하면서 빙벽에 부딪혔던 양 무릎 통증이 없다. 팔.다리 근육통도 그저 그렇다. 내 몸이 살아있음을 확인한다.
온천탕에서 목욕을 하고 나니 몸도 개운하고 기분도 상쾌해졌다. 어젯밤에 갔던 대포항 횟집에 들러 뜨끈한 섭국을 먹으니 속도 아주 펀해졌다.
이명규 형님이 최 대장에게 전화를 하셨다.점심을 사시겠다면서 훼미리아파트 도착시간을 알려 달라고 하신다. 1시 반에서 2시 사이가 될 것 같다고 김효건이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성률이 형도 참석하라는,전성률과 통화하는 최 대장 목소리도 들렸다.
차 뒷좌석에 앉아 몸을 뒤로 젖히니 피로감과 졸음이 덮쳐온다. 그리고 전날 있었던 일들이 뒤엉켜서 나타났다가 사라지며 머리를 어지럽게 한다. 그리고는 멍한 상태가 된다. 전날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히말라야 고산 원정 대원들이 귀국 비행기 안에서 휩싸이는 공허한 정신 상태가 아마도 이런 상태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동빈 대장님이 말씀하셨다.
"...등반 당시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지옥 같아서 이 지랄 다시는 안 한다고 하지만, 그곳을 떠나고 나면 또다시 생각이 난다. 이 세계는 중독성이 너무 강하다..."
이 대장님은 오는 목요일에 토왕성빙폭에 또 올 계획이라고 말씀하셨다.
13:30'. 훼미리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하니 이명규 형님이 먼저 나와서 기다리고 계셨다. 인중과 입술 부위는 수술한 후에 안전하게 보호조치를 한 상태였다. 전성률도 도착했다. 그런데, 모두 모인 등반 대원들 얼굴을 보니 성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 얼굴 찰과상은 모두 있고, 찢어지고 부러지고 곳곳에 타박상을 입고...지난 하루는 정말로 치열한 전투를 한 하루였다.
이명규 형님이 잘 아는 순대.족발집으로 가서 등반 얘기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이동빈 대장님. 전성률은 김효건 차량으로 귀가하고, 나는 최병기 대장 차량으로 귀가했다.
12. 구덕산우회의 길
월요일에는 서울을 포함해서 전국에 비가 내렸다. 그리고 화요일에는 설악산 전구간 빙벽등반을 조기 종료한다는 안내문이 국립공원관리공단 홈페이지에 떴다.올 겨울 토왕성폭포 빙벽등반은 2월 3일.4일 등반이 마지막이었다. 하마터면 일년을 또 목매고 기다릴 뻔했다.
山의 神秘를 좇는 탐미주의자 모험주의자들, 결국 지옥문을 열었습니다. 이 설명하기 어려운 중독의 세계로 성공적으로 이끈 대원은 50대의 최병기 대장과 김효건 대원입니다. 우리 구덕산우회의 미래를 책임질 주역들이 이번 등반을 성공시켰다는 것에 저는 제일 큰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토왕성폭포 빙벽등반은 도전적이고 모험적인 등반이었습니다.
50대의 주역들이 구덕산우회의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고, 회원들은 산을 통해서 건강과 즐거움과 행복을 오래토록 누릴 수 있기를 염원합니다.
다시 한번 지난 2년여 동안 애쓰신 최병기 대장님. 이명규 형님. 이승원 회장님께 감사드립니다. 같이한 대원들과 회원님들께도 감사하는 마음을 거듭 전합니다.
■이동빈 대장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간접적이지만 특별하게 올립니다.
첫댓글 그간 노력을 얼마나 해왔는지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올랐는지 절절한 산행기 잘 읽었습니다
수고 많았고 꺽이지 않는 마음을
토왕폭에서 제대로 보여준 구덕 회원들이
자랑스럽습니다
늘 새로이 도전하며 산사람 우정을 쌓아가는
구덕의 화이팅을 외쳐 봅니다
명절 잘 쇠시고, 내년을 기약합시다.
등반의 순간이 모두 다 떠오르게하는 후기입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또 다른 도전으로 뭉치기를 바라며 모든 회원님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서울대 철학과 출신 아니라 할까봐 등반후기도 철학적으로 잘 표현했네,
등반 못지않게 후기 쓰느라 또한 고생 많았네, 금년에도 뜻깊은 산행 많이 하세!
예.형님.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회복 잘 하시고 명절 잘 쇠십시오.
구덕의 쾌거요
나름. 끈끈한 우리의
자일의 정 이요.
잘하든 못하든 끼리
정을 나누면 최고다.
나는 어제도 의상 능선
올랐다. 70 넘어니 산이 뭔지 알것 같은
느낌이 이제사 온다.
산은 부처와 예수 의 가치를 생각 하게 만든다.
우리 모두 즐기고 기쁨 을 공유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