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서점가에 가면 가장 많이 팔리고 읽히는 책 가운데 하나는 리더십, 지도력에 관한 책입니다. 지도력이란 사람을 어떻게 잘 관리하고 다루느냐의 문제입니다. 리더십에 관한 책이 많이 팔리는 것은 인력관리가 가장 힘이 들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사람입니다. 독일에 있을 때 식당을 경영하는 집사님 말이 생각이 납니다. 제일 힘든 것이 사람쓰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가르켜서 좀 있을만 하면 가버리고, 옆에 식당을 차리고, 짜증을 부리고. 정말 사람 때문에 지친다는 것입니다.
목사님들 얘기를 들어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일 힘든 것이 일꾼세우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6장에 예루살렘교회가 양적인 성장에서 질적인 성장으로 온전히 부흥할 수 있었던 것은 일곱집사를 세울 때부터였습니다. 성령충만, 은혜충만한 리더들을 세울 때 성장의 장애물이 제거되고 교회가 폭발적인 성장을 하였던 것입니다.
제대로 된 사람 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천하를 얻는 것 보다 귀합니다. (잠 25:13)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
일군, 리더, 참으로 헌신된 지도자가 누구입니까?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쳐서 공동체를 아름답게 세워나가는 자입니다. 지도력은 영향력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함께 살펴볼 느헤미야는 참된 지도자 상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가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고자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 어떤 소문이 났습니까? 이스라엘 공동체를 괴롭혔던 사람들 입에서 나온 소리가 무엇이었습니까? '흥왕케 하려는 사람'이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흥왕케 하는 사람으로서 모두가 인정을 했다는 것입니다. 느 2:17-18을 보면 느헤미야가 성벽재건에 관한 이야기를 간증과 더불어 이야기 할 때 모두 힘을 내어 선한 일을 하려고 했습니다.
학개서1;14절에 학개 선지자가 말씀을 전할 때 사람들의 마음이 흥분되어 성전재건의 역사를 이루었던 것 처럼, 느헤미야의 말에 백성들의 마음에 동요가 일어나고 성벽재건에 함께 동참을 하며 결국 52일 만에 성벽재건을 완성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목말라 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느헤미야가 같은 흥왕케하는 사람입니다. 부흥케 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시대의 방관자가 되지말고 부흥의 주역이 되기를 바랍니다. 어떠한 사람이 부흥의 주역이 될 수 있는 가를 느헤미야를 통해 배우게 되기를 바랍니다.
1.이타주의의 삶을 사는 자입니다 - 느헤미야가 살고 있던 시대는 기원전 450년 경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기원전 536년 70년의 바벨론 생활을 끝내고 고토로 돌아간 훨씬 이후입니다. 기원전 516년에 이스라엘은 스룹바벨 성전을 재건을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예루살렘 성벽은 재건되지를 못했습니다.
저들은 1차 재건하고자 했지만 일부 사람들의 방해공작으로 다시 불타버리고 말았습니다. 성벽은 외부의 침입을 막고 백성들이 성안에서 안전되게 살수 있도록 하는 방패역할을 하는 것인데, 성벽이 재차 불타버린 상태에서 백성들은 많은 정신적인 불안과 경제적인 피해속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이 고향의 안타까운 소식을 동생 하나니로부터 페르시아 수산궁 안에서 듣게 됩니다.
느1;1-3의 이야기입니다.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고 예루살렘 성은 훼파되고 성문은 다 불타버렸다는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듣고 그는 슬피 울었습니다.
느헤미야는 먼 이국 땅에서 살고 있습니다. 수산궁내에서 왕의 술 맡은 관원으로서 호위호식하며 살았습니다. 시대적인 상황으로 보아서는 그는 이민 3세대에 해당되는 자입니다. 아쉬운 것이 없는 자입니다. 그런데 고국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고 눈물을 흘렸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상황을 보아서는 슬퍼하며 눈물 흘릴 일이 없지만 조국의 상황을 생각할 때 그는 통곡하며 자신의 옷을 찢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안녕된 삶의 자리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무너진 성벽 재건에 앞장 섰던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한 마디로 이타주의의 삶을 살았던 자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며 이웃을 생각하며 남의 유익을 위해 살았던 자입니다. 나만 배부르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백성과 함께 동고동락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쓰임받는 일군은 남을 위해 사는 자입니다. 봉사와 섬김의 삶을 사는 자입니다. 조직에서의 리더가 진정한 리더가 아닙니다. 자기의 삶을 통해 세상의 소금이 되고, 세상의 빛이 되며,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는 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자가 리더입니다.
그러므로 리더는 자리를 가지고 시기하거나 다투지 않습니다. 자리를 차지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기 보다는 현재의 주어진 자리에서 내가 얼마나 다른 사람들에게 감화력을 끼치고 매력을 주며 선한 동기를 불러 일으킬 수가 있느냐에 더 초점을 맞춥니다.
교회 안에서 리더는 사람을 지치게 해서는 안됩니다. 공동체에 불안감을 조성해서는 안됩니다. 존경받는 리더는 다른 사람을 세워주는 자입니다. 함께 일할 줄 아는 자입니다. 부흥의 주역은 자신의 견해를 고집하지 않고 공동체의 유익을 앞세우는 자입니다.
(고전 10:24)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빌 2:30)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한 것은“
2.기도의 무릎을 꿇는 자입니다 - 느헤미야는 무너진 예루살렘을 재건하고자 할 때 무엇보다 먼저 기도의 무릎을 꿇었습니다. 느 1;4 이하를 보세요. 그는 슬픈 소식을 듣고 금식하며 기도하였습니다.
"긍휼을 베풀어 주세요. 우리를 형통케 해주세요" 2;4에 아닥사스다왕앞에 자기의 청원을 올리기전 총알기도를 하였습니다.
느헤미야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느헤미야서 전반에 걸쳐 느헤미야의 기도가 나옵니다. 순간 순간 기도했습니다. 바쁜 가운데서도 기도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겸손하게 하나님의 도움을 구했습니다. 느헤미야서 마지막절 13:31"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 성경에서 개인적인 기도문으로 끝나는 책은 느헤미야서 밖에 없습니다.
느헤미야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기도할 때 도울 자를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기도할 때 추진력을 주었습니다. 기도할 때 사람들을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기도할 때 장애물이 제거가 되었습니다. 기도할 때 성벽재건은 52일만에 결국 이루어지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이루고 사람들에게 많은 선한 영향력을 끼친 탁월한 시대의 리더자들은 모두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무릎을 꿇은 만큼 공동체의 리더가 될 수 가 있습니다.
사무엘을 보세요. 삼상 3:19, 그가 한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약3:2에 말에 실수가 없으면 온전한 사람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온전한 사람이 될 수가 있었습니까?
그것은 삼상 12:23, 백성들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했기 때문입니다.
메시야를 작곡한 헨델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대표적인 작곡인 메시야는 23일간의 금식기도로 가운데 영감을 얻어 지은 곡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까?
생전에 5만번의 기도응답을 받았던 죠지 뮬러를 아시죠. 고아의 아버지라 불리울 만큼 버려진 아이들을 위해 일생을 헌신했던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어디서 그렇게 돈이 생겨서 수많은 고아들을 먹여 살립니까?"
죠지 뮬러는 자기 기도방으로 사람을 데리고 가서 대답을 합니다. "저는 사람들에 손을 벌린 적이 없습니다. 대신 날마다 하나님 아버지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는 기도의 방석을 보여 주면서 말합니다. "이 기도의 방석이 돈이 나오는 자리입니다"
여러분, 기도만이 환경을 변화시키고, 새 역사를 창조하고, 사람을 움직이고, 하나님의 능력을 삶의 현장에 끌어내린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의 충성된 일군은 기도의 일군이 되어야합니다. 교회 안에서 기도하는 자가 리더가 되어야합니다. 기도 안하는 것이상 큰 죄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 기도의 무릎을 꿇는 자가 리더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도 안하는 능력있는 일군 보다 기도하는 무능한 일군을 더 쓰시기를 원한 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부흥의 주역이 되기를 원하시면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대하16;9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이 땅을 두루 감찰하사 자기를 향하여 전심으로 부르짖는 자들에게 능력을 베푸시고 그를 통해 그 땅을 고치신”다고 했습니다.
3.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자입니다. - 느헤미야가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고자 할 때 그냥 쉽게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역경이 많았습니다. 반대가 많았습니다. 모함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힘을 북돋우어 주지 못할 망정 힘을 빼는 자가 많았습니다. 죽일려고 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산발랏, 도비야, 게셈이었습니다. 2;19 업신여기고 비웃었습니다. 4;3에는 건축 중에 하는 이야기가 여우가 올라가도 무너지리라고 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산발랏과 도비야 게셈같은 장애물이 있었지만 그것을 뛰어 넘었습니다. 걸림돌을 디딤돌로 오히려 디딤돌로 삼았습니다. 느헤미야는 모든 역경에도 굴하지 아니하고 그 역경을 발판으로 삼아 승리하고 성벽을 재건하였습니다.
인도 선교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윌리암 케리는 그에게는 고난이 많았습니다. 젊은 나이 31세에 인도에 갔는데 사랑하는 아들과 아내를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낙심하지 않고 선교의 사업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20년만에 인도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뱅갈어로 성경을 번역해서 출판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감격에 겨웠습니다. 인쇄기가 돌아가는 소리에 감사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런데 기쁨도 잠시 뿐, 인쇄소에 화재가 나서 모든 것이 불타 버리고 말았습니다. 20년 동안 쌓아놓았던 것이 한 줌의 재로 끝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케리는 그 잿더미 위애서 무릎을 꿇고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오 주님이시여, 주님은 20년동안의 수고를 거두어 가셨습니다. 여기에는 한 줌의 재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 20년간의 땀과 수고는 거두어 가셨을 지라도 다시 일할 수 있는 믿음과 인내를 거두를 가지 않으시니 감사합니다."
그리고 오히려 주위 사람들을 위로 했습니다. ' 어려운 상황만을 보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세요'
그는 이 모든 역경을 딛고 더 좋은 성경을 만들어 인도 선교의 아버지라 불리움을 받는 탁월한 지도자. 부흥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부흥을 일으키는 주역들은 모두가 고난에 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모세도, 여호수아도, 다윗도, 바울도 모두 그러했습니다. 고난을 식물로 삼고 역경을 친구로 삼았던 자들이었습니다. 고난을 이길 수 있는 지도자가 되어야 고난중에 있는 사람들을 이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잠 24:10) “네가 만일 환난 날에 낙담하면 네 힘의 미약함을 보임이니라” (잠 24:16)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바다 가운데 주의 길이 있습니다. 고난 가운데 주님이 인도하시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시 77:19) “주의 길이 바다에 있음이여...”
건너지 못할 강이 있다고 넘지 못할 산이 있다고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있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절망하지 마십시오. 역경에 굴복당하지 말고 거기서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길을 있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고난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탁월한 지도자, 부흥의 주역을 만드는 도구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이 세상을 떠날 때 문제가 되는 것은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벌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많이 주었느냐가 중요합니다. 얼마나 열심히 살았느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살았는가 입니다.
우리 모두 교회의 사회의 역사의 부흥의 주역이 됩시다. 공동체를 흥왕케하는 사람이 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