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14:5-12 누군가가 원망할때 '이걸' 사용해보세요 원망의 문제가 풀리게 됩니다!
약속의 땅에 대한 보고를 들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가난한 땅을 정복하려고 했기 때문에 패배감이 몰려왔다. 그 패배감은 원망 불평으로 이어졌다. 잠 19:3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 자기들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망쳐놓고] 하나님을 원망한다. 그래서 그들은 지도자들과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기도든 예배든 무엇을 하든 내 힘으로 하기 시작하면 부딪힐 때마다 실패로 좌절하게 된다. 두려움과 근심 걱정에 휩싸이게 된다. 이스라엘도 똑같았다. 그래서 죽음을 운운하며 처자들도 잡힐 것이라고 추측했고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고자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죄악의 나라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했다.
하나님은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보셨는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밤새도록 통곡하고 원망했겠는가? 힘들었지?"하며 그들에게 긍휼과 동정을 보내셨는가? 아니다. 하나님을 멸시하고(11,23) 믿지 않고(11) 10번이나 하나님을 시험하고 그 목소리를 청종하지 않았고(22) 반역의 죄를 지었다(33)고 평가하셨다. 거역하는 이 악한 회중(35).
원망의 결과는 무엇인가? 멸망이다. 고전 10:10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진멸할 작정이었으나 모세의 기도로 이스라엘 백성을 죽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불신앙에 대한 징벌을 내리셨다.
(1)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다(23).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29,30)
(2) 너희는 내일 돌이켜 홍해 길을 따라 광야로 들어갈지니라(25)
(3) 너희의 시체는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다(32).
(4) 그 땅을 정탐한 날 수인 사십 일의 하루를 일 년으로 쳐서 그 사십 년간 너희의 죄악을 담당할지니 너희는 그제서야 내가 싫어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리라(34)
롬 2:6-8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8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마 16: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5) 자녀들은 너희 반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사십 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는 자가 되리라(33) 원망의 죄가 후손에게 대물림 되었다. 그들의 자녀들이 광야에서 당황할 필요가 없었는데 반역한 죄로 광야에서 40년을 방황해야만 했다.
(6) 그 땅에 대하여 악평한 자들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다(37).
빌 2:13,14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14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 여러분 앞에 펼쳐진 모든 일이 하나님의 계획과 허락하에 진행되고 있음을 믿음으로 인정하라.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고 있는데 무슨 원망과 시비가 있겠는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니 원망하고 시비하지 않겠는가? 그저 마음을 낮추고 그 상황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적극 순종 해야 할 때이다. 약 5:8,9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9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 유 1:16 이 사람들[경건하지 않게 행한 죄인들; 15절]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하며 이익을 위하여 아첨하느니라 - 원망을 회개하자. 원망 자체가 없어질 때까지 회개하자.
원망하는 자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가?
(1) 하나님을 신뢰하며 엎드려 기도한다.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망 불평하는 사람들을 설득하고 제압하려고 한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힘이 없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원망 불평하는 사람들로부터 거리를 두고 뒤에서 비난을 일삼는다. 싫지만 어쩔 수 없이 공존해야 하니까. 공존함으로 생기는 이득이 있으니까. 하지만 모세와 아론은 폭도(暴徒)로 변해가는 백성들을 설득하거나 대항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회피하며 비난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이스라엘 앞에서 철저히 낮췄고 이 모든 상황을 하나님께 맡긴다는 표시로 엎드려 간구했다. 이 절망적인 상황 즉 이성을 잃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은 채 폭도로 변해가는 이스라엘을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임을 직감했다.
역시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에 반응[응답]하셨다. ❶시내 산에서 송아지 우상을 만들었을 때도 하나님은 격하게 분노하시면서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출 32:10)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번에도 같은 말씀을 하셨다. "내가 전염병으로 그들을 쳐서 멸하고 네게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12)
시내 산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명예를 걱정하면서 "어찌하여 애굽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가 자기의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는 악한 의도로 인도해 내었다고 말하게 하시려 하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출 32:12)라고 하나님의 뜻을 거둬주실 것을 기도 했었는데, 이번에도 모세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중재자가 되어 "주의 명성을 들은 여러 나라가 말하기를 여호와가 이 백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에 인도할 능력이 없었으므로 광야에서 죽였다 하리이다"(15,16)라고 하나님을 걱정하며 애굽에서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용서하신 것 같이 이번에도 용서하여 주실 것을 간절히 구했다(13-19). 골 3:13-15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❷원망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광야 생활을 할 것이고, 그 땅을 악평한 10명은 죽음으로, 그 땅에 대해 희망을 외친 여호수아와 갈렙은 생존으로 응답하셨다. 그리하여 거대한 군중의 원망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시 37:1-9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2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3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 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5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6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8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9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역시 무슨 일이 생기면 무조건 하나님께 엎드리는 것이 가장 선한 방법이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답을 받는 것이 가장 깔끔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비책이다.
(2) 하나님의 뜻을 전하며 믿음을 요구한다.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촉구했다. 하나님의 뜻은 분명한데 신변에 위협을 느낀다고 이에 반대하는 이스라엘 군중에 대해 극한 슬픔과 분노로써 그 둘은 옷을 찢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해서라도 하나님의 뜻을 진정성 있게 전달하고 싶었다. 이 외침은 자만이나 만용이 아니었다. 하나님과 그 말씀을 믿고 던진 신앙적인 발언이었다. 하나님의 약속에 자신의 전 삶을 맡기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는 자들에겐 결코 절망이나 좌절 따윈 있을 수 없다. 오히려 절망 중에 담대함이 나온다.
절망적인 현실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약속의 말씀을 끄집어내야 하고, 그 말씀을 더 강력하게 믿고 묵상해야 하고, 그 말씀을 굳게 믿고 그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며 인내로써 기도해야 한다. 절망하는 이웃에게도 그렇게 말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육의 생각에 사로잡혀 하나님과 원수가 된 이스라엘은 그들의 말에 굴복하지 않았다. 굴복할 수도 없다(롬 8:7).
원망하던 이스라엘은 폭도로(폭력적으로) 변하여 그 둘을 돌로 치려고 했다. 마치 스데반의 의로운 설교에 유대인들이 그를 돌로 치는 모습과 같이(행 7:57,58). 말씀에 역행하는 자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그들의 정곡을 찔렀기 때문에 종종 이런 위험천만한 일들이 발생한다. 딤후 3: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 요 15: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순간 그 둘은 생명의 위협[ 죽음의 공포]을 느꼈을 것이다. '차라리 이런 말을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하며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 편에 서서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는 자들을 하나님은 영광 중에 나타나셔서/직접 개입하셔서 그 둘을 보호해주셨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바울에게 빛으로 나타나 주저앉히고 시력을 잃게 하여 다메섹 교회를 구한 것처럼. 하나님의 임재에 압도되어 이스라엘 군중은 그 둘에게 돌을 던질 수 없었다.
하나님은 그들을 매우 극찬하셨다(24)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온전히 따랐다는 '하나님께서 만족하실 정도로 넉넉히 그분의 뜻에 순종했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바로 이같은 순전하고도 능동적인 순종이다. 안 되면 회개하자. 순종할 때 자기 이기심과 이득과 이별해야 함으로 용기와 결단이 요구된다. 마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그 땅을 차지하리라는 말씀은 온전히 성취되었다(수 14:6-15). 아낙 자손을 물리쳤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후계자가 되어 가나안 정복 전쟁을 총지휘하는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