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주의 수업이 끝을 바라보네요. 수업과 함께 올해를 마감하는 느낌도 새롭고요. 매주 저도 과제를 해보려 하는데 쉽지 않아요. 도전할 때마다 주제가 만만치 않다고 느끼는데요. 매주 글을 쓰는 학인들의 열정과 성실함에 존경의 마음을 보냅니다. 목소리가 필요했던 다양한 몸들의 이야기라서 그런지 한 줄 한 줄 그냥 읽을 수 없었습니다. 갈수록 쉬워져야 하는데, 어려운 리뷰 쓰기도 이제 끝을 바라보네요. 끝나 가니 아직 글을 못 썼던 분들도 용기를 내보길 청합니다. 아쉽고 고마운 마음 담아 11차시 리뷰 올립니다.
마법사
자신이 생리 불순인지 몰랐던 필자가 우연히 검사를 받으며 자신의 몸에 대해 알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저도 병원에 갈 때마다 전문적인 용어에 압도당하는 느낌을 받아 공감하며 읽었어요. 전문가에게 자신의 몸을 위임하고, 스스로는 아픔을 돌보는 능력을 잃어가는 현대인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의학은 그녀가 알지 못하는 언어로 그녀를 공격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상태로 남게 한다.”라는 <몸의 언어>의 한 문장도 떠오르고요. 필자의 말대로 몸(특히 여성의 몸)에 대해 “조언받을 만한 지식이나 인프라가 없었”던 거 같아요. 이 무지를 깨닫고 적극적으로 알아가는 필자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는데요. 앞부분에 무료검진 받게 된 배경 설명이 길어요. 타의로 검사를 받게 됐다는 정보 한두 줄이면 충분합니다. 한의사 선생님의 말이 중요한 전환의 계기인데요. 저는 좀 불편했어요. 반말에다가 다그치며 단정하는 말이라서요. 게다가 “야한 영화나 소설도 봐”는 무슨 맥락인지 몰라 당혹스럽고요. 아마 필자에게는 간절한 문제였기 때문에 의사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잘 들렸던 거 같아요. 실제로 들은 말이겠지만, 정돈해서 꼭 필요한 말만 쓰면 좋겠어요. 결말에서 자신의 변화를 설명한 내용이 좋았는데요. 나열식이고 왜 그렇게 행동하게 됐는지 이유가 안 나와서요. 정보적 가치가 있는 내용이니 초점을 잡아서 자세하게 전달하면 좋겠어요.
은유 - 제목이 “몸은 의사만 다뤄야 해?” 이거면 좋겠네요.
심심
타인의 몸에 관한 나의 무지를 고백하는 글이네요. 내가 가진 인식의 한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글쓰기는 간접적으로나마 인식의 한계를 깨고 경험을 확장하기 위한 의식적인 노력일 텐데요. 그런 면에서 이 글은 타인의 입장을 헤아리는 미덕을 가졌네요. 이 글에서는 총 6명의 인물과 사례가 나옵니다. 그런데 조금씩 시사하는 바가 달라요. 신랑 J, 선배 S의 사례는 아픈 몸에 향한 나의 무지를 이야기한다면, 강단이와 E작가 사례는 주름과 땀 등 사회에서 터부시하는 몸에 대한 이야기예요. 동생과 전공의 M은 운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읽었고요. 저는 주제를 좁히면 좋겠어요. ‘타인의 몸에 대한 무지’란 주제가 광범위해서요. 초점이 무엇인지 잡아주세요. 좋은 글감이 많이 나왔으니 주제를 좁히고 아픈 몸, 몸에 대한 사회적 터부, 몸 돌보기와 몸매 가꾸기에 관한 차이 등(은유) 한 편씩 따로 써보면 좋겠어요.
꽃우물
“시간은 내게만 따박따박 징표를 건네는 것 같았다. 세상엔 머리 검은 사람들 천지였다.” “나이 듦을 능력 없음의 동의어로 여기는 세상” 밑줄 그은 문장이 많아요. 필자가 나이 듦에 관한 자기 마음을 정직하게 비추어 배울 점이 많은 글이었어요. “변해가는 지금까지 모두 나”라는 시선이 좋았고, 그럼에도 “색이 바랜 나는 내쳐질까 불안”하다는 말에 수긍이 갔어요. 저는 “재계약하는 데 불이익이 생길지도 몰라”란 문장에서 가슴이 철렁했는데요. 단지 머리색의 차이만으로 일할 능력을 판단하는 게 부조리한데도 비일비재한 일이라 생각하니 화가 나요. 흰머리라는 상징적 소재를 통해 ‘나이 듦’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를 잘 꼬집었네요. 저는 이 글이 사례가 풍부해서 좋았는데요. 여기서 몇 장면은 시간과 장소, 인물이 부여된 구체적인 서사로 풀어내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 “최저시급 보수를 받는 비정규직 중년 여성”인 필자가 일터에서 어떨 때 나이 듦에 대한 압박을 받았는지, “나이듦을 능력 없음의 동의어로” 여긴다고 느낀 순간이 있다면 언제였는지. 이런 구체적인 서사가 자세하게 나오면 좋겠어요. 마지막 네 문단에는 흰머리, 노화는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이야기가 반복되니 줄여주세요. 저는 “조만간 하얀 머리로 당당히 거리를 누빌 내 모습을 그려본다”는 마지막 문장이 좋았어요. 필자의 의지를 암시하면서도 구체적인 장면으로 떠올려볼 수 있어서요. 앞서 말한 필자의 구체적인 상황(특히 일터에서의 압박)이 중반에 나온다면 이 결론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겠어요.
불가사리
필자 말대로 “머리에 있든 겨드랑이에 있든 털이긴 매한가지”인데, 왜 유독 “여성”의 겨드랑이털에 대한 터부가 심한지 모르겠어요. 누구도 정확히 설명하지 못할 “왜인지도 모르는 수치심”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필자의 말대로 그것이 누구의 욕망인가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도 페미니즘 공부를 하며 십 년 넘게 제모를 하지 않고 있는데요. 수영장에 가는 건 여전히 고민이에요. 나는 이게 맞다는 걸 아는데, 사람들의 놀라는 표정을 감당할 수 있을까 싶어서요. 저도 불가사리처럼 화장과 제모가 예의라는 사람들을 향해 “너야말로 예의가 없는 것 같아”라고 외치고 싶네요. 이 문장을 읽고 속이 뻥 뚫리는 듯 시원했어요. 중간에 레이저 제모를 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하고 나서 땀이 더 찬다거나 등 불편함은 없었는지 궁금해요. 필자 말대로 몸에 있는 건 다 역할이 있는데 그걸 없애면 탈이 날 거란 생각이 들어서요. 겨드랑이한테 사과하는 결말도 참신하지만, 저는 “신경 끄시죠. 내가 알아서 할게요”라고 말하는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했어요. 오랜 분투 끝에 내린 결론일까요? 알아도 그렇게 말하지 못하는 저로서는 그 힘의 원천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요.
다인
저도 같은 증상을 겪고 있어 공감하며 읽었어요. 다인은 아픔을 자기 삶의 배움으로 가져갔네요. 처음에는 허리가 아파 시작된 치료였는데, 필자는 자기가 늘 긴장 상태에 있다는 걸 깨닫습니다. 긴장 상태를 풀기 위해 치료사가 준 과제는 바로 ‘느리게 걷기’. 무엇이든 빨리하면 감각하지 못하고 지나치는 게 많죠. ‘느리게 걷기’를 실천하며 자기 내면의 조급함을 발견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저는 필자가 무엇에 이렇게 쫓기며 살았는지 궁금했어요. 빨리 걷거나 수업시간에 빨리 말한 것을 ‘근본 없는 불안’ 때문이라고 표현했는데, 이보다 더 구체적인 이유를 찾아보면 좋겠어요. 자기 자신이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무언가에 빨리 도달하고 싶었던 건지, 그렇다면 도달하고 싶던 자신의 모습은 무엇인지, 그 외에 나를 재촉하던 외적 요인이 있다면 무엇인지. 내면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 주세요. 느린 몸으로 살겠다는 다짐 자체도 좋지만, 지금은 당위적으로만 다가와요. 앞서 말한 자기 이야기를 더 풀어주세요. 수업과 홈쇼핑의 비교가 명료해서 좋네요. 저도 마음에 새기고 싶어요. 다인은 언어를 섬세하게 다루는 장인 같아요. (첫 문장이 어려워서 “언젠가부터 치마가 오른쪽으로 돌아갔다.”처럼 쉽게 시작하면 좋겠어요!)
윤팔
정말 몸이 내 맘 같지가 않네요. 수술 이후 건강해지기 위해 걷기 운동을 시작했는데, 무릎 연골판 파열로 그마저도 어려워진 필자. “목발을 짚는다는 건 드러남이었다” 아픈 몸이 드러나는 순간 그것이 호의든 아니든 눈에 띄는 몸이 된다는 이야기가 공감 갔어요. 이전에 윤팔이 썼던 글에서 ‘드러나지 않는 병’의 고충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면 이번에는 시각적으로 드러나는 병에 대한 이야기이네요. 저는 간단히라도 이전 투병 경험과 비교를 언급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아파서 미안해하지 않기 위해” 기술을 연마한다는 말이 좋았어요. 질병을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질병과 같이 살아가자는 제안을 건네는 좋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기술에 대한 이야기가 더 나오면 좋겠어요. 앞부분에 걷기 이야기를 줄이고 이 기술을 어떻게 연마해가고 있는지 구체적인 사례로 보여주세요. 마지막 세 문장은 갑자기 주제가 ‘운동’으로 바뀌어서 빼면 좋겠어요. “아파도 미안하지 않을 수 있는” 윤팔만의 기술을 들려주세요.
히힛
“친구들은 작은 키에 경계심을 풀었고, 그 덕분에 나는 친구들과 더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작은 키의 장점을 두루 이야기하며 시작해서 좋았어요. 통념을 깨는 첫 문단이 매력적이에요. 인지할 필요도 없던 키 이야기를 굳이 끌어내 누군가를 조롱하고 무시하는 데에 쓰는 사람들이 얄밉네요. “신체 너머의 무언가를 보지 않으려는 게으름”이란 통찰이 통쾌해요. 이 상황을 보는 관점과 통찰은 좋았는데, 뒷부분으로 갈수록 필자가 쏙 빠진 느낌이 들어요. 그러다 보니 전반적인 비판으로 끝이 나는데요. 저는 그것이 “게으름”에서 왔다는 걸 필자가 깨닫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했어요. 그걸 간파한 뒤에는 무엇이 달라졌는지도요. 필자가 나오지 않으니까 이야기가 단편적으로 흘러요. 결말에서 자신을 더 드러내며 내가 이 경험을 통해 깨달은 바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더 주제를 좁혀주세요.
은유 - 작은 키에 관한 이야기에서 ‘겉모습만 보는 게으른 사람들의 생각 없음에 대한 비판’에 관한 글로 끝나요. 작다고 여겨지는 키로 사회생활 하는 사람이 겪는 일들-통찰로 글이 끝까지 가면 좋겠어요.
별이
저는 수유복이 있다는 걸 이 글을 보고 처음 알았어요. 임신, 출산을 경험해보지 않으면 쓸 수 없는 고유한 글입니다. 특히 이 글은 출산 이후 몸의 변화를 정확한 묘사로 담아냈는데요. “가슴은 힘없이 처져 있고 배꼽 아래는 열 개도 넘는 흰 튼 살이 지그재그로 뻗어있다. 회음부 위엔 붉고 통통하게 솟은 수술 자국이 선명하다.” 서두에서 몸을 쭉 훑듯 전체적인 변화를 설명하고, 차례로 그 자국들의 이력을 하나씩 보여주는 구성이 흥미로웠어요. 저는 제왕절개로 저를 낳은 엄마를 떠올리며 이 글을 읽었습니다. 미처 잘 몰랐던 부분을 자세하게 짚어주어 감사해요. 이대로도 훌륭한데요. 저는 필자가 이런 정보를 접할 수 없었던 이유가 궁금했어요.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인지, 친구들보다 아이를 빨리 낳아서인지 등등 그런 사례가 하나 나와주면 좋겠어요. 그래야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다”는 제목과 주제가 살아납니다. 마지막에 출산을 앞둔 친구에게 이야기를 해주겠다는 결론도 좋은데요. 저는 “귀띔” 정도로는 아쉬워서요. 더 적극적인 행동의 표현이 나오면 좋겠어요.
은유 - 처진 가슴, 나온 배 등 임신 출산 모유수유로 인한 몸의 변화를 필자가 비관적으로 느끼는 게 우리 사회가 여성에게 강요하는 몸-미의 기준 영향도 있는 것일까, 문득 궁금해집니다. 어떤 몸도 수용되는 사회 분위기였어도 출산으로 변한 자기 몸을 보는 일이 괴로웠을까, 이 부분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첫댓글 어려운 리뷰 쓰기도 이제 끝을 바라보네요에 깃든 심정, 제가 한 번 파헤쳐보겠습니다. 개봉박두!
감사합니다. 한의사선생님이 훈장님스타일이라 호불호가 갈린다는 말을 듣고 대했기 때문에 당시엔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었어요. 글을 쓰면서 다시 이런 상황을 마주하면 짜증나겠구나 하고 회상했었어요. "야한 영화나 소설"은 여성호르몬을 촉진시켜야한다는 조언을 저렇게 하긴거였는데, 글에 설명이 부족했네요. 도리님의 리뷰를 읽으며 글을 다시 정돈해서 필요한 정보 위주로 써야겠다 생각합니다. 늘 리뷰를 볼땐 퇴고를 다짐하는데...실천을 아직 못했네요. ㅠㅠ 정성스러운 리뷰 감사합니다.
'어려운 리뷰쓰기'를 늘 멋지게 해내고 계시는 도리님과 은유선생님께 감사한 마음 전합니다^^ 알려주신 대로 불안의 근본을 천천히 따라 가보겠습니다. 끝을 바라보는 게 너무너무 아쉽네요ㅠㅠ 이번 리뷰도 계속 마음속에 담아서 보겠습니다. 늘 고맙습니다:)
1. 제 경우는 겨드랑이 털이 없어서 더 불편한건 없었어요. 원래 땀이 없어서인지 레이저 제모 후 땀이 많아지지도 않았고요. 다만 제모하는 과정이 너무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처음 제모를 하지말자 생각한건 나를 이렇게 괴롭히기 싫다는, 단순한 이유였어요.
2. 그 당시 전남친에게 좀 더 논리적으로 제대로 말하지 못했던 걸 지금까지 후회했는데, 그 문장이 시원했다는 도리리뷰에 '내가 그렇게 바보같지는 않았어' 위로해봅니다.
3. 저도 신경끄라고 말하겠다 다짐은 하지만 대놓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친한 사람이면 신경꺼!하겠지만 잘 모르는 사람이 그러면 당황할 듯해요ㅜ) 그동안 제모를 하지 않을 수 있었던 힘은 저한테서 왔다기보다는 운좋게(?) 주위에서 신경을 꺼줬기 때문인것 같아요. 글에서 표현하려 했는데, 잘 안됐어요.
매번 정성스러운 리뷰 덕분에 내 글을 한 번 더 들여다 보게 됩니다. 도리은유 감사합니다. 이번엔 꼭 퇴고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