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 / 박미숙
나는 어려서부터 빚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다. 누구에게 뭘 하나 받으면 비슷한 것을 바로 줘야 마음이 편했다. 그랬는데 이 생각을 바꾸게 한 사람이 있다.
학교에서 맘이 통하는 동료 교사가 있다는 것은 아주 큰 복이다. 전남으로 전근을 오니 또래 교사가 잘 없었다. 함께 차 마시며 이야기 나눌 친구가 있었으면 싶었다. 그러다 만난 이가 남심 선생님이다. 나보다 두 살 적지만,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이성적이며, 통찰력이 있어 여러 가지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한다. 둘이 학급 아이들, 자식들과 남편, 시댁 식구 등 온갖 얘기를 다 한다. 남심 샘은 귀 기울여 듣고 있다 좋은 해결책 제시를 잘한다. 시부모님을 계속 모시는 문제로 고민할 때 “착한 것과 지혜로운 것은 다르다, 언니의 행복도 생각하라.”는 조언을 하였다. 다른 이들 챙기느라 나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것이 안타깝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용기를 내어 형제들에게 “돌아가면서 모시자.”라고 말하여 혼자만 감당하던 부양의 부담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동 학년 교사 중에서 텃밭에서 가꾼 채소를 나누어 주시는 남자 선생님이 계셨다. 그냥 받기가 미안해서 부산 어묵을 주문해 드렸다. 그랬더니 남심 샘은 “그것 받았다고 바로 다른 것을 주면, 좋은 것을 같이 나눠 먹으려는 사람의 마음이 퇴색되지 않겠냐?”라고 한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말이다. 그때부터였다. ‘빚졌다’라고 생각하던 것을 ‘덕분에’로 바꾼 것은. 그리고 바로 되갚는 것이 아니라 나도 좋은 것이 있을 때 나누려고 하였다.
남심 샘은 나에게 여러 가지 첫 경험을 많이 시켜 주었다. 50대 초반에 흰머리가 눈에 띌 정도로 생겨 ‘염색해야겠다’라고 생각하면서도 미용실에 선뜻 가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 날, 집에 갈 시간이 되었는데 헤나(henna,천연염색약)와 도구를 들고 우리 교실로 왔다. 나 염색해 주려고 집에서 다 가지고 왔단다. 모두가 퇴근하고 없는 학교에서 정성껏 약을 발라주며 상세히 설명해 주어서 그다음부터 혼자서도 잘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난겨울에 만났을 때도 집에 데려가 약이 묻을까 봐 자기 옷으로 갈아입게 하고 “새 학교로 옮기는데 예쁘게 해서 가라.”면서 염색을 해 주었다. 작은딸 결혼식 날짜가 가까워졌을 때, 피부관리실에서 자신이 마사지 받는 시간을 나에게 주는 등 속 깊은 마음 씀씀이에 가슴이 뭉클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작년 여름, 남편이 처음으로 스마트스토어(smart store)를 시작하여 눈, 코 뜰 새 없이 바빠 잠도 서너 시간밖에 자지 못했다. 이 소식을 듣고 대학생 아들과 함께 도와주러 왔다. 고마워서 “진호 아르바이트비로 용돈을 좀 주면 안 되겠냐?”라고 했더니, “난 그냥 언니 옆에 있어 주고 싶어서 온 것이다. 앞으로도 일손이 부족하면 언제든지 불러라.”라고 하여 오히려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마치 자기 일인 양 지인들에게 제품 홍보를 열심히 한다.
자신이 가보고 좋은 곳엔 항상 나를 데리고 간다. 같이 산길을 걷고 냇물에 발도 담그고 맛있는 곳에서 밥을 먹으며 얘기도 나눈다. 지난 10년, 낯선 이곳에서 잘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남심 샘이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힘들거나 외로울 때도, 기쁜 일이 있어 자랑하고 싶을 때도 언제든지 연락할 수 있는 사람. 삶의 굽이굽이마다 도움을 받은 것이 너무 많다. 덕분에 힘든 시간을 잘 버텨낼 수 있었다.
오늘도 함께 둘레길을 걸었다. 꽃과 나무 이름을 잘 알고 있어서 국수나무꽃, 맹 감나무, 멀구슬나무를 가르쳐 준다. 멀구슬나무 향기가 아주 좋다고 하는데 멀찌감치 있어서 맡지는 못했다. 베트남 음식점에서 푸팟퐁 커리와 분짜도 처음으로 먹어 보았다. “단비가 하늘나라로 가서 우울해 보여 맛있는 것을 사주고 싶었다.”라고 한다. “내가 무슨 복으로 언니를 만났을까요?” “무슨 말씀을, 샘이 옆에 있어서 제가 얼마나 좋은데요.” 서로 사랑 고백을 했다. 남심 샘과 함께 한 행복이 충만한 하루! 그녀 덕분에 단비를 떠나보낸 이 어려운 시기도 또 잘 넘기고 있다.
첫댓글 마음 맞는 사람이 가까이 있는 건 정말 큰 복 같아요.
'빚졌다'라고 생각하기보다 '덕분에'라고 생각하고 좋은 것이 있으면 서로 나눈다. 삶의 지혜를 따뜻한 글로 나눠 주셔서 또 배웁니다. 두분 다 정말 멋지십니다.
살면서 나를 믿어주는 단 한 사람만 있으면 된다던데, 그런 분이 있군요. 부럽습니다.
아이고, 단비가 떠났군요.
마음 잘 추스리고 좋은 친구분과 오래도록 행복하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빚지고는 못 사는 성격. 저도 그렇답니다.
남심쌤 무척 지혜로운 분이군요.
박미숙 선생님, 아마도 전생에 나라를 구하신 듯해요. 하하
이렇게 맘에 맞는 분 만나기 쉽지 않지요.
둘레길을 함께 걸으며 소소하게 나누는 이야기에 행복이 묻어납니다.
저도 덩달아 흐믓합니다.
끼리끼리 만난다고 합니다. 선생님이 좋으셔서그런 분을 만났나 봅니다.
마음을 나누는 사람이 곁에 있다니 선생님 삶이 아름답습니다.
좋은 분들이 곁에 많이 계시네요. 다 선생님이 복 받으시는 겁니다.
현명하고 멋진 분을 옆에 두셨네요.
두 분의 인연이 오래오래 이어지길 기도합니다.
'유유상종' 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에요. 한 사람만 잘하면 그 인연이 이어지지 않아요.
전 개인적으로 염색해 주는 사이가 찐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멋진 찐 친구를 두셨네요. 부럽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전화 한 통화 해야겠습니다. 친구에게,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