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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권에서 주변 시세의 ‘반값 아파트’가 나온다. 이명박 대통령의 역점 사업인 ‘보금자리주택’이다. 7일부터 서초구 내곡지구(783가구)와 강남구 세곡2지구(711가구)에서 사전예약 입주자를 모집한다. 예전 기준으로 24.8평형(공급면적 82㎡)의 새 아파트가 최저 2억8190만원이다. 3.3㎡당 분양가로 따지면 1100만~1200만원 수준이다. 강남권의 다른 아파트 단지에선 상상할 수 없는 파격적인 가격이다. 최근 강남 아파트 값이 떨어졌다 하더라도 3.3㎡당 2000만원 이하는 여전히 드물고, 입지가 좋은 새 아파트는 3.3㎡당 3000만원을 넘나든다.
지난달 29일 오전 서초구청의 도움을 받아 내곡지구 보금자리주택 개발 예정지(76만9000㎡)를 둘러봤다. 자연 환경은 쾌적해 보였다. 청계산과 인릉산 자락이 동서남쪽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여의천의 물길이 북쪽으로 양재천을 향해 흐르고 있었다. 지구 서쪽의 청계산 등산로 입구는 평일인데도 등산객들의 발길로 북적였다. 그동안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으로 묶인 탓에 비닐하우스만 가득했다. 큰길에는 ‘헐값에 토지수용 절대 반대’ 등 개발 예정지에서 흔히 보는 각종 현수막이 나부꼈다. 사업 시행자인 SH공사도 ‘불법투기 행위를 신고하는 투파라치(투기+파파라치)에겐 포상금(100만원 이하)을 지급한다’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집값이 싸다고 교통·생활 여건이 불편한 것은 아니다. 개발지구 서쪽은 경부고속도로, 동쪽은 서울 양재동과 경기도 성남을 잇는 헌릉로(왕복 8차로)와 맞붙어 있다. 서초구 관계자는 “내년 하반기 신분당선이 개통하면 지구 서쪽은 청계역 역세권을 형성한다”며 “청계역에선 지하철 3호선 양재역이나 2호선 강남역까지 2~3개 정거장만 지나면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차를 타고 2㎞ 정도 나가면 경부고속도로 양재나들목(양재IC)과 연결된다. 양재나들목 근처에는 농협 하나로클럽과 이마트·코스트코 등 대형 마트와 양재동 꽃시장이 있다.
주변 지역에선 보금자리 분양가가 너무 싸게 나온 바람에 기존 집값이 덩달아 떨어진다고 아우성이다. 우면동 우성아파트 단지에서 영업하는 한빛부동산 문평식 대표는 “한때 7억~7억5000만원에 거래되던 102.5㎡(31평)짜리가 6억~6억3000만원에 급매물로 나왔지만 그마저 거래가 되지 않는다”며 “전적으로 보금자리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영향이 큰 것만은 틀림없다”고 말했다. 인근 대림아파트 단지에 있는 대림공인중개사 조천석 대표는 “지난해 10월 우면지구 등 1차 보금자리 공급 이후 거래가 완전 실종된 상태”라며 “단지 전체가 155.4㎡(47평)짜리여서 중·소형 위주인 보금자리와 차별화되지만 영향을 피할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보금자리 2012년까지 60만 가구 공급
서울·경기도·인천 등 수도권 집값이 떨어지고 있다. 국민은행 연구소에 따르면 2008년 9월 금융위기 발생 이후 지난달 말까지 수도권 아파트 값은 2.2% 내렸다. 같은 기간 전국 평균이 1.2% 오른 것과 대조적이다. 지역별로 경기도(-4%)·인천(-1.4%)이 서울(-0.3%)에 비해 하락폭이 더 컸다. 서울 강남구는 1.1% 내려 이른바 ‘강남불패’의 신화를 무색하게 했다. 반면 대구(-2.3%)를 제외한 부산(13%)·대전(9.6%)·울산(3.2%)·광주(0.6%) 등 지방 대도시는 전반적으로 상승했다. 금융위기는 똑같이 겪었지만 집값 회복은 지역별로 큰 차이가 나타난 것이다.
상당수 부동산 전문가들은 수도권 집값을 떨어뜨린 중요한 원인의 하나로 보금자리주택을 꼽는다. 정부가 비교적 입지 조건이 좋고 환경도 쾌적한 보금자리주택을 주변 시세보다 20~50% 싼값에 공급하니→분양 기회를 노리는 실수요자들이 무주택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기존 주택의 구입을 자제하고→거래가 위축하면서 집값이 계속 떨어지자→집을 사려고 대기하던 사람들도 추가 하락을 기대하며 시장 상황을 지켜본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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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들어 전세 가격이 크게 오른 것도 보금자리주택과 관련이 깊다. 한국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입주 물량이 축소된 가운데 보금자리주택 청약 및 부동산 규제 강화에 따른 주택 구입 보류 등으로 전세 수요가 크게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해인 2012년까지 수도권에서 모두 60만 가구의 보금자리주택을 공급할 계획이다.
김일수 씨티은행 프라이빗뱅크 부동산팀장은 “현 정부의 서민 주거 안정 정책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보금자리주택’으로 노무현 정부의 ‘신도시 개발’과 비교된다”고 말했다. 그는 “신도시는 대체로 교통이 불편하고 기반시설도 부족하며 분양가도 별로 싸지 않아 정책 효과가 기대보다 낮았다”며 “보금자리주택은 주로 서울 주변 그린벨트를 풀어 지어 입지 조건이나 분양가가 신도시에 비해 훨씬 유리하다”고 말했다.
건설업계는 주택시장을 살려야 한다며 ▶미분양 해소 대책 마련 ▶분양가 상한제 폐지 ▶주택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등 금융규제 완화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 등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업계는 보금자리주택 건설 규모도 당초 계획보다 줄이거나 분양 일정을 조절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지난달 23일 업계 요구를 부분적으로 받아들여 ‘주택 미분양 해소 및 거래 활성화 방안’을 내놨다. 하지만 보금자리주택에 대해선 당초 계획대로 밀고 나가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최중경 청와대 경제수석은 지난달 26일 ‘안녕하십니까, 청와대입니다’란 정책소식지에서 “보금자리주택은 이제 가시적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며 “국민에게 저렴한 보금자리주택이 지속적으로 공급된다는 확실한 믿음을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폭락 없더라도 투자위험 관리해야”
향후 집값 전망에 대해선 전문가들의 의견이 크게 엇갈린다. 일부에선 1990년대 초 일본과 비슷한 부동산 거품 붕괴 가능성을 제기한다. 비관론자들은 현재 집값이 가계소득이나 물가 상승률에 비해 크게 비싼 수준인데, 그 원인은 정부의 경기 부양책과 저금리로 시중에 돈이 워낙 많이 풀렸기 때문으로 본다. 따라서 올 하반기 무렵 정부가 출구전략에 들어가면 집값 하락폭도 깊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와 저출산 등 인구 구조 변화, 주택 보급률 100% 도달에 따른 공급 초과 등도 집값에 부정적인 요소로 꼽힌다.
산은경제연구소는 지난 3월 말 ‘국내 주택가격 적정성 분석’이란 보고서에서 “실증 분석 결과 서울의 아파트 가격은 장기 추세에 비해 29.5%, 강남은 31.5%나 비싸다”며 “국내 아파트 값과 물가 상승률의 격차도 미국의 부동산 거품이 최고조에 달했던 2006년보다 크다”고 지적했다. 이상호 GS건설 경제연구소장도 “주택시장은 ‘검은 백조’의 출현에 대비할 때”라며 “30% 이상 주택 가격 급락이 없다고 단언할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검은 백조’는 존재(발생)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극단적 상황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80~90년대 일본과 최근 국내 상황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어 일본과 같은 집값 대폭락은 없을 것이란 반론도 만만치 않다. 박원갑 스피드뱅크 연구소장은 “대세 상승이 끝난 것은 맞아 보이지만 이것을 대폭락으로 연결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라며 “한국은 LTV와 DTI 등 금융규제로 부채관리를 잘 해왔다”고 강조했다. 김일수 팀장도 “90년대 초 일본의 LTV는 120%에 달했다. 반면 국내 은행권의 LTV는 30~40%로 일본과 아예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시각도 비슷하다. 진현환 국토해양부 주택정책과장은 “최근 시장 상황은 침체라기보다 조정 국면이며 정상화를 향해 가는 과정으로 본다”고 말했다.
오히려 출구전략이 늦어지고 대규모 토지보상금이 주택시장으로 흘러들면 집값이 다시 오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토러스투자증권의 원재웅 애널리스트는 “올해 풀리는 토지 보상금은 총 40조원으로 노무현 정부 시절 최대였던 2006년(30조원)보다 많은 사상 최대 규모가 될 것”이라며 “국토해양부가 발표한 26조~27조원과 도로·철도공사의 4조~5조원, 지방자치단체가 추진하는 각종 개발 사업을 모두 포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은행도 보고서를 통해 “보금자리주택, 위례신도시, 4대 강 정비사업 등과 관련한 토지보상 자금이 주택시장으로 유입되고 부동산 관련 규제 완화 기대가 확산되면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주택가격이 다시 불안해질 가능성은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박원갑 소장은 “대폭락 사태는 없더라도 투자자 입장에선 위험 관리를 해야 할 때”라며 “실수요자라도 집값의 30% 이상 빌리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는 “굳이 집을 산다면 강남은 고점 대비 20%, 비강남은 30% 정도 싼 매물을 중심으로 선별적으로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며 “현재 시장에는 이런 매물이 많지 않기 때문에 좀 더 기다리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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