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리(南城里)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에 있는 리(里).
비교적 평지가 넓은 편이다. 초강천이 흐르며 경부고속도로 황간 인터체인지가 있다.
자연마을에는 구교동, 남성, 신평, 통천, 생기골, 향교골이 있다. 구교동은 오래된 다리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신평은 평지에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통천은 난곡리에서 발원하는 냇물이 통천마을 앞을 관통하고 있어서 통천이란 이름이 되었다. 향교골은 과거에 향교가 있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남성리(南星里)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에 있는 리(里).
제월봉이 낮은 산지를 이루고 있으나 금강 유역에 위치하여 대부분의 지역이 충적평야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마을로는 오얏골, 광생이가 있다. 오얏골은 옛날에 마을에서 기와를 구웠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광생이는 남성 북동쪽에 있는 큰 마을로 이 마을을 두르고 있는 일광산(日光山)과 제월봉에 비치는 해와 달이 마을로 하여금 번성하게 한다고 해서 광생이라고 불린다.
남성리(南城里)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에 있는 리(里).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남성리(南城里)는 남성1리~남성13리로 이루어지며 신창면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남성1리~남성3리는 농촌마을이지만 남성4리~남성13리는 아파트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1980년대 이후 아산만 개발사업과 더불어 배후 주거지역으로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어 현재는 상주인구 1만 명이 넘는 도시로 발전하였다.
자연환경
남성리는 남쪽에 야트막한 야산이 북쪽으로 완만한 기복을 이루며 내려오고, 이 기복이 끝나는 곳부터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다.
대부분의 지역이 새터 저수지의 용수를 공급받는 비옥한 평야지대이고 논농사가 주로 행해진다.
형성 및 변천
남성리는 본래 신창군 소동면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신성리, 남방리, 방축리의 각 일부와 대동면의 수여리, 수남리, 구평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남성리라 하고 아산군 학성면에 편입되었다.
-1917년 학성면이 신창면으로 개칭됨에 따라 아산군 신창면 남성리로 개편되었고,
-1995.1.1 행정구역 조정으로 아산군과 온양시를 통합하여 아산시로 개편되면서 아산시 신창면 남성리가 되었다.
명칭 유래
‘남성리’라는 명칭은 1914년 남방리(南方里)와 신성리(新城里)를 병합할 때 두 마을의 이름을 하나씩 따서 붙인 것이다.
자연마을로는 남방재, 처너물, 방죽말 등이 있다. 남방재는 신성리의 남쪽 재 위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처너물은 남방재 남쪽에 위치한 마을로 찬 우물이 있었다 하여 찬우물이라 하다가 변하여 처너물이라 불린다. 방죽말은 남방재방죽이 있다고 하여 방죽말이라 불린다.
현황
남성리의 면적은 4.71㎢이며 인구는 4,732가구에 총 1만 1751명으로 남자가 6,016명, 여자가 5,735명이다 (2019년 1월 기준). 남성1리~남성13리의 13개 행정리로 이루어졌으며, 자연마을로는 남성1리에 남방제, 두성리, 참나무배기가 있으며, 남성2리에는 천여물이 있고, 남성3리에는 성제방죽이 있다. 남방제는 방죽이 있어서 생긴 이름으로 제방이 곧지 않고 굽었다 하여 ‘남방’이라 하였다. 참나무배기는 참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천여물은 ‘찬우물’이 변한 말로 ‘처녀물’ 또는 ‘천여수’라 한다. 성제방죽은 원래 ‘형제방죽’인데 음이 변하여 ‘성제방죽’이 되었고 지금은 제방의 흔적만 남아 있다.
남성리는 동쪽으로는 온양4동의 배미동, 서쪽로는 오목리, 남쪽으로는 행목리, 북쪽으로는 신달리, 수장리와 맞닿아 있다. 남성1리~남성3리만 농촌의 모습을 유지하고, 남성4리~남성13리는 1980년대 이후 아산만 개발사업과 더불어 아파트들이 들어서기 시작하여 아파트단지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1980년 이전만 해도 시골마을이었으나 현재는 주민의 수효가 1만 명이 넘는 산업도시로 변모하여 신창면 전체 인구의 36%를 차지한다.
남성리(南星里)
전라남도 고흥군 포두면에 있는 리(里).
해안가에 있는 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익금, 남성이 있다. 익금마을은 포두면의 가장 남쪽 끝에 있는 마을로, 마을 앞에 모래가 많이 쌓이는 해안이 있어 장사리(長沙里)라고 불렸다. 후에 이것이 어촌 지명으로 적합하지 않다 하여, 뒷산 지형이 육구미(여섯마리 개의 꼬리가 모인 형국)와 비슷하다는 뜻에서 육구미(六拘尾)리로 고쳐 불렀다. 그러나 그 후 개 모양에 의한 지명으로 인재가 배출되지 않는다 하여 다시 발음이 비슷한 익금으로 지명을 바꾸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남성마을은 남성리의 중앙에 있는 마을로, 포두면 내에 가장 큰 마을이다. 이 마을에는 옥강리를 연결하는 성터(지금의 마목성)가 있고 옛날에는 이 성을 남포성(南浦城)이라 부르다가, 남성(南星)으로 바꾸어 불렀다. 조선말에 지방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쪽 하늘의 노인성(老人星)이 비추는 곳이라 장수(長壽)하는 이가 많다 하여 남성(南星)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남성리(南星里)
전라남도 무안군 청계면에 있는 리(里).
소살봉 남쪽에 있는 농촌지역이다.
자연마을로는 남성동, 망산, 광석마을이 있다. 남성동(南星洞)은 옛날 소살봉 아래에 서당이 있었는데, 그 서당에서 샛별이 뜰 때까지 책을 읽는 소리가 들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망산(望山)은 마을 뒷산이 웅장하여 산에서 풍겨 나오는 정기로 소원을 성취 한다 하여 생긴 지명이다. 광석(廣石)은 3m 아래에 암석이 전반적으로 깔려 있어 넓은 박독이라는 의미에서 이름 붙여졌다.
남성리(南城里)
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에 있는 리(里).
산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전형적인 산촌지역이다. 우두봉이 솟아 있으며, 전체적으로 고도가 낮은 편이다. 비교적 지대가 평탄한 지역이다.
자연마을은 남문, 사직, 탑동 마을이 있다. 남문마을은 강진 읍성의 남문이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사직마을은 옛 사직이 있었다 해서 사직마을이라 불린다. 탑동마을은 전에 탑이 있었다 해서 명명되었다.
남성리(南星里)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에 있는 리(里).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에 속하는 법정리.
자연 환경
남성리는 북쪽으로 금호강(琴湖江)의 지류인 대창천이 흐르는 구릉성 평지에 자리한 마을로, 들이 넓게 펼쳐져 있어 논농사가 주로 이루어지는 곳이다.
남으로 멀리 보이는 금박산(金泊山)의 한 지맥이 북으로 뻗어 구릉지를 형성하고 다시 평야를 형성하여 넓게 전개되어 있으며, 동으로 오계리와 접하여 역시 구릉지를 이룬다. 서쪽은 경산시와 접하고 있으며 북쪽은 넓은 들이 전개된다.
구릉성 평지에 자리한 마을로, 들이 넓게 펼쳐져 있어 논농사가 주로 이루어지는 곳이다. 동편에 하천이 흐르며 남성교가 놓여있다.
형성 및 변천
남성리는 조선 말 영천군 창수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에 거여면·고현면·창수면·칠백면을 통합하여 금호면을 신설함에 따라 영천군 금호면에 속하게 되었다.
1973.7.1 금호면이 금호읍으로 승격함에 따라 영천군 금호읍 남성동이 되었고, 1988년 5월 3일 동(洞)을 이(里)로 바꾸면서 남성리가 되었다. 1995년 1월 1일 영천시·영천군 통합으로 영천시 금호읍 남성리가 되었다.
명칭 유래
남성리(南星里)는 마을 북쪽에 성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 북쪽에 성이 있다 하여 남성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남성, 옻샘, 달밭, 못안, 동편, 서편마을 등이 있다. 남성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로, 지명 유래 또한 남성리의 그것과 같다. 옻샘마을은 옻 오른 데 좋다는 찬 샘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달밭마을은 반달과 같이 생긴 산 밑에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칭해진 이름이고, 못안마을은 신제라는 못이 있는 곳이라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다. 동편마을과 서편마을은 각각 남성의 동쪽과 서쪽에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현황
남성리는 금호읍의 남서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자연마을로는 남성·옻샘·달밭·못안·동편·서편 마을 등이 있다. 남성리의 면적은 3.45㎢이며, 인구는 47가구, 115명으로, 남자가 54명, 여자가 61명이다.
금호읍에 영천 금호 포도 작목반이 조직되어 있는데, 남성리에는 주민 66명으로 구성된 창수 포도 작목반이 있다. 남성리의 주민 편익 시설로는 남성리 노인 회관이 있으며, 대구 대학교에 속한 몇몇 건물들이 남성리에 위치한다.
남성리(南城里)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대송면에 있는 리(里).
남천이 흐르는 평지에 자리한 마을로, 경지가 넓게 분포하여 논농사가 주로 행해지는 곳이다. 남성이 있으므로 남성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남성, 성좌동, 새뜸, 향교골마을 등이 있다. 남성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로, 지명 유래 또한 남성리의 그것과 같다. 성좌동마을은 남성 북쪽에 있는 마을이고, 새뜸마을은 성좌동 옆에 새로 된 마을이라 하여 칭해진 이름이다. 향교골마을은 성좌동 옆에 있는 마을로, 영일향교가 있었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라 한다.
남성리(南城里)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에 있는 리(里).
마을 앞에 적계못이 넓게 자리잡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남문밖(남문동), 배말곶이(배말꼭대기), 못산(못안), 양촌 등이 있다. 남문밖은 남문터에서 남쪽으로 형성된 큰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배말곶이는 지형이 약간 솟은 곳으로서 옛날 배를 매었다는 구전에 따라 지어진 지명이라 한다. 양촌은 권무정의 서편 옥성리와의 경계 지점에 있었던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남성리(南星里)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에 있는 리(里).
집현산의 서남쪽 자락에 위치하여 추동을 경계로 긴 협곡(峽谷)을 이루고 있다.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남성저수지가 있다.
자연마을로는 남성, 돌방, 장골 등이 있다. 제일 아래에 있는 마을을 남성골이라 하고 중간에 있는 마을을 돌방이라 하고, 제일 윗편에 있는 마을을 장골이라 한다. 남성은 약 300년 전부터 경주 김씨들이 살아왔으며, 그 뒤를 이어 수원 백씨들이 입주하여 함께 살아왔다. 돌방은 앞산이 돌로 이루어져 악산(惡山)이라 부르니 여기에 연유된 지명이다. 장골은 돌방에서부터 거리가 오리가 넘는다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