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86년도인가,아시아지역 과학기술정책워크샵에 참가코자 네팔로 향하게 되었었다.비자는 주식회사 대우가 네팔을 대행하여 발급해 주었다.일단은 오사카로 날라 쌍용지사장을 하고 있던 동기생을 만나 하루를 놀고자 난바역 부근의 코구멍만한 호텔방에누워 친구를 기다리는데 이녀석이 들이 닥쳤다.이놈바라 대뜸 냉장고를 열드니 이것 저것 빼묵는데 내가슴은 간이 콩알 만해져간는데 아랑곳 않하고 큰병 작은병 다 건들이는기라. 그기 얼마나 비싼 가격인지 갈길이 먼 여행객이 중도 기착지에서 빈털털이가 되는갑다 싶었다. 에라 종내는 자포자기로 나도 슬슬 빼어 들이켰다. 이 냉장고 속의 맥주나 양주는 알단 빼면 다시는 집어넣을수 없고 자동으로 호텔측으로 기록되어지고 경비가 청구되어진다.
이친구 현지 일본인 직원을 여럿 거닐고 있었다. 하루는 작난삼아 전직원의 지갑을 테이블에 놓코 내용을 털어 보도록하였다.아니나 다를까 누구도 일천앵 이상 든 지갑은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이었다.일본인들은 일천앵으로 하루를 산다. 왕복 지하헐 삼백앵 담배 백오십앵 점심 삼백앵 그리고 나머지로 퇴근길에 맥주와 안주까지 먹고 귀가한다.
오싸까에서 대접 잘 받고 빈털털이로 타이페이로 날랐다.명동 국빈대반점 지배인의 심부름을 해야하는 것이다.이친구 한 스물대엿살 되었던가.해외출장간다니까. 타이페이의 애인한테 물건좀 전달해 달란다.품목은 대학입시 참고서 와 청바지 두벌이었다.애인이 대만으로 퇴거를 했는데 어차피 대학은 한국에서 다니는 것이 낫다는 까닭이다.기왕이면 꼬냑 두병도 면세점에서 구입하여 그녀에게 전달하면 그녀가 알아서 안내와 배려를 해줄 것이란다.그걸팔면 이틀 체재비는 거저 생길만큼 대만인들은 꼬냑을 선호하고 현지가격은 대단히 비싸다하는 정보를 귀뜀해주어서 그렇케 하였더니 통역걱정 없이 잘 먹고 구경 잘하고 홍콩으로 날랐다.대만인들은 밤을 함께 보낸 여인과는 꼭 아침을 같이 먹고 헤어진다는 휴머니틱한 사실이 기억에 남는다.
홍콩의 아침은 죽과 무우 저림인데 먹고나면 하루가 그래 편할 수가 없다.
드디어 로얄 네팔 항공을 타고 데카 경유 카투만두로 향한다.보잉727을 절반 잘라서 앞은 화물 칸으로 뒤는 객실로 꾸민 항공기인데 화장실 손잡이에는 변이 뭍혀져 있고 시렁도 덜렁거리고 날개 한쪽으론 윤활류 세는 자국도 있고해서 내심 퍽이나 불안했지만 날라가는데는 지장이 없다.네팔인들은 밀수하러 홍콩을 왕래한다.일단 한사람이 청바지를 수무벌 끼여입고 입국을 한다.
방그라데시 데카에 잠시 머문뒤 다시 이륙하니 곧 세계의 지붕이 눈에 펼쳐진다. 인도대륙이 저 남반구에서 떠 올라오다 아시아와 충돌하니까 저렇케 히말라야가 밀려 솟아오른 것이렸다.시골역사 같은 카푸만두 공항에 내렸다.
어라 내 삼소나이트 가방이 없어져 버렸다. 30분이나 기다려도 없다.이런 내 케이스가 데카에 내려졌으니 이틀뒤에 세관으로 찾으러 오란다.할 수 없지하고 워크샵이 열리는 엤 왕궁인 호텔로 갔다.
일본을 제외한 전 아시아 국가의 참가자들이 모였다.북에서는 현지 대사관 직원 둘과 평양에서 또한사람 3인이 참가하였는데 이날 리셉션 장에서 번갈아 가며 나에게 닦아와서는 공갈을 치고 딴데로 갔다.셋다 똑같은 말을하고 갔는데 먼저 "통일합시다" 였고 두번째는 "서울에서 봅시다" 였고 마지막는 전두환 대통령에 대한 욕이였다. 그때 나의 대답은 저들이 기대한것과는 영 아닌 이런 투엿다."통일 좋타""서울에서 보고싶으면 쳐들어 온나""전대톨령은 매우 무서운 분이니 조심하는 것이 좋을 꺼다"이놈들은 이 세가지 말만하면 남조선 사내한테하는 지네들 협박임무는 끝이 나는 모양인데 글쌔 내 대답이 어쨌을런지 .
며칠지나 이놈들에게 내가 실실 말을 부쳐 나갔다. "어데 김가요""동무 에미나이 생각나면 어쩌지""개고기 좋아하우""남원김가라요""에미나이는 쌍소리라요""평양에 두고"왔기에 방법이 없디요"'개고기 좋아합네다"주네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사관 이인자라는 김가는 실내에서도 늘 색안경을 쓰고 있다.이 김가가 나에게 넌저시 묻는다.:동무 토지있어" " 그럼 집도 있고 자동차도 있다""한참 복잡한 표정을 짓더니만 "잘살긴 잘사느만"한다.어떤날은 나에게 자랑을 하는데 "우리는 옷도 신발도 나라에서 다준다"라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나일론 섞인 비날론인지 하는 그친구의 양복의 이곳저곳에 짜집기한 흔적이 여러곳인기라 .그의 형편을 짐작할 수 밖에.또 하루는 나에게 자랑을 하는데 자기는 외교관이라 한달 이백오십달라 급료를 받는데 아껴쓰면 백달라 정도를 꼬불칠 수 있다고 자랑을 한다.당시의 암시장의 평양환률은 달러당 팔십원 정도 하였고 보통 남자의 한달 월급이 팔십원 한다고 했으니 백달라이면 상상도 못할 금액일 것이고 그것을 나에게 뻐기고 자랑이랍시고 한것이다. 당시 나의 하루 출장비는 일일 백삼십오불이었다.
인도 페밀리 즉 파키스탄 인도 방그라데시 스리랑카 참가자들은 말이많코 한 두시간은 너끄니 쉬지않코 지껄인다.터키나 중국대표는 통 말이없고 영어는 태국여인이 제일 못한다.내가 발표를 마치자 북한 아저씨가 나중에 묻는다."동무 외국어대학 나왔소"
카투만두 시내를 릭쇼타고 구경하는데,하루종일타면 오백원만 주면된다.네팔인들은 매일놀고 풍악잡고 나발불고 동네방네 돌아다니는데 티베트 난민들은 부지런라고 손재주가 좋다.상권은 인도인들이 모두쥐고 왕족들이 주로 밀수를 자행한다.인도가 국경을 봉쇄하면 모든 석유등 필수물자 공급이 끊긴다. 시내구경을 나가보면 참으로 희한한 세상도 있구나라고 여겨진다.14세기와 20세기 말이 뒤섞여 있는 나라인기라.맨발로 다니는 사람이 부지기수인 반면 힐튼 호텔 같은 곳은 그야말로 최신식 고급 시설을 갖추고 있다. 일찌기 구르카 족들이 쿠쿠리라는 무시무시한 칼을 등에 걸고 영국군 용병으로 전쟁터에서 용맹을 날렸다.네팔인들은 안자서 세계의 여러 인종을 만난다. 그많큼 다양한 여행객들이 찾아오고 특히 히피풍의 각국 도인들이 많이들 찾는 나라이다.
잃어버린 슈트케이스를 찾으로 공항으로 아침 일찌기 나섯다.무슨 세관이라는게 책상도 없고 근무자는 빈방에 전부들 서있는데 상급자의 출근을 기다리고 있었다. 뚱뚱하고 거만한 관리가 나타나더니만 집합을 시키더니 색분필 중에서 한개를 뽑아 근무자들에게 여러동강을 내어 노나준다.그날 이분필로 그어덴 물품은 통관되는 모양이다.한나절이 지나서 세군데 사무실을 거친 다음에 드디어 최고 책임자 방으로 안내되었다.이양반 앞으로 드디어 나의 가방이 전달되어 들고나가면 될줄알고 손잡이에 손을 내밀었더니 안됀단다. 가방을 열고 내용을 보잔다. 그래 할수 없이 열어 보여주었더니 실망하는 빛이 역력하다. 라면과 고추장 그리고 속옷 잠바 이외는 네팔관리가 탐낼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우여곡절 3일만에 내가방을 찾았다.
네팔 위스키 록시를 한잔하고 시장으로 여행 기념품 사러 나갔다.사원의 기둥에는 노골적인 성애장면을 조각한 곳이 있을 만큼 성적 표현물로된 기념품이 많다.몇 군데 돌고돌아 고미술품 점포에서 세밀히 그린 만다라 두점을 샀다.이게 미술사적으로 진품일 경우 나는 횡재하는 것이다.가는 곳 마다 밀크 홍차를 내어 놓는데 참으로 자주 마신다.
주최측 국제기구에서 매일 65불의 체재비를 참가자들에게 제공함으로 호텔 숙비 15불을 제외하면 제법 주머니가 그득했는데,북한 참가자들은 전부다 대사관에 내놓아야 했을 것이다. 시장 한구석에서 등반물품 파는 곳을 발견했다.세계의 유명 등반대가 장비를 버리고 가는 곳이다.최고의 방한복과 침낭은 물론 없는것이 없을 정도로 좋은 것이 많다. 신품도 있고 몇번 사용한 것도 있다. 실제로 히말라야 원정대는 현지에서 장비를 준비하고 때로는 팔아치우고 떠난다.물론 한국제품도 많다.
나중에 알았지만 우리나라의 원정대들이 국산 저가 왕자표 운동화 500켤레를 갖고 네팔에 들어와 이것을 팔아 경비도 마련하고 장비도 구입한다는데 네팔 당국과의 마찰도 있었다 한다.이나라의 공업력은 겨우 성냥 이나 만드는 수준이라서 모든 공산품의 가격은 상당히 비싸다.브리사 K303같은 한국산 고물차가 보이길레 가격을 알아보니 2천만원이나 한단다.저 개발국으로 갈수록 공산품 가격은 올라간다.TV방송국도 없으므로 비디오로 보아야 하는데 TV세트도 턱 없이 비싸다. 안 만드니까 그럴수 밖에.
3일간의 휴가가 워크샵 기간중에 주어졌다.미리 스리랑카 참가자 두분과 룸비니를 둘로 보기로 약속을 하였기에 계획대로 밤 버스를 타고 룸비니로 향했다.산길을 돌고 돌아 한시간에 19KM정도를 가는가 하는데 50년전 우리들 시외버스와 흡사하여 한번쉬면 한두시간 쉬어버린다.정거장 근처의 식당에서 네팔인들은 배추국 비슷한 것을 밥과 함께 손가락을 무쳐가면서 맛있게 밤참요기를 하길레 한번 시도해보려 했으나 아무레도 자신이 서질 않는 거라.버스는 아슬아슬하게 비탈길을 돌아 새벽을 맞이하여 차창밖을 보니 맙소사 전부가 다 다락논이고 계곡으로는 뿌연 히말라야의 물이 흐르고 있었다.다시 평지가 나타나고 점차 사방이 조용한 들녁 에 들어서서 다른 버스를 바궈타서 12시간 만에 우리 일행은 룸비니에 이르렀다. 나무하나가 내린 수많은 뿌리가 있는 거대수가 있었고 그곳은 지상에서 가장 고요한곳이였다. 과연 불타가 계실 만한 곳이였다. 내마음 조차 고요해지는 곳이였다.현장이 다녀갔던 곳인가 아니면 혜초스님의 왕오천축국전에도 언급되지 않은곳 같았는데 룸비니에는1896년 커닝암에 의해 아소카왕이 건립한 석주(石柱)가 발견되었는데, 그 석주에는 ‘이곳에서 샤카족의 성자(聖者) 불타(佛陀)가 탄생한 것에 연유해서 룸비니 마을은 세금을 면하고, 또 생산의 1/8만을 납입한다’라는 취지의 법칙(法勅)이 새겨져 있어 석가탄생지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룸비니는 ‘남비니(藍毘尼)’로 음역한다.
스리랑카의 순례자들은 사못 진지한 자세로 경배들인다. 서울에서 온 사내는 사실 불교의 교리에 대해서는 깜깜 무식의 소유자인지라 합장은 안했으나, 어쩌거나 경건한 분위기를 자연스레 자아내주는 성지의 분위기를 맛보앗다. 아소카왕의 소두 다음 워크샵도 있고해서 아쉽지만 우리 일행은 포카라로 여정을 잡았다.네팔 최대의 휴양지이며 안나푸르나로 트레킹 할 수 있는 곳이다.포카라는 마차푸차르 라는 영산이 있는데 황혼역에의 그 자태는 실로 장관이다. 높이는 6,998m이다. 마차푸차리라고도 한다. 그 이름(네팔어로 마차는 ‘물고기’, 푸차르는 ‘꼬리’의 뜻)이 말해 주듯 산꼭대기 근처에 물고기의 꼬리지느러미처럼 둘로 갈라진 봉우리가 있는 아름다운 첨봉(尖峰)이다.
히말라야의 난봉(難峰) 중의 하나로 1957년 영국의 노이스 등산대가 정상 바로 밑 45m까지 접근하였으나, 가파른 얼음습곡(褶曲) 때문에 등정하지 못했으며, 이후 네팔당국의 입산불허로 1995년까지 등정자가 없었다.
우리는 포카라 호텔에 방을 하나 잡았는데 가만히 보니 이곳은 티베트 망명기구의 본산으로 각종대사관 업무도 병행하는곳 같았다.식사는 호텔 앞 네팔 만두집에서 해결하고 이웃에 사는 포타를 한분 고용했다. 부부 가 관광철이면 고향에서 포카라로 나와 호텔일과 포타를 하면서 살아가는사람들이다. 헤어질 때 알았는데 6개월 방세 걱정 때문에 지독히 고민을 하는 친구였다. 우리는 안나푸르나 가는 어떤 곳을 트레킹으로 올라갔었고 커다란 독수리가 터 잡은 곳 까지 가서 한 10 시간을 걷다가 내려와 호텔로 귀환했다. 스리랑카 박사님들의 옷갈아 입는 방식은 특이하다.앞뒤가 뚫린 허연 광목통에 들어가서는 고개만 내어놓코 내의등을 갈아입는데 신기하게 능숙히 처리하고 발밑으로 흘러내린 자루에서 나온다.이분들은 불교도인지라 남방인 치고는 술을 잘 먹는데 나와 록시를 주고 받았고다.둘은 침대에 재우고 나는 바닥에서 잣다.다음날은 자전거로 포카라 시내를 돌다 티베트인 기념가게를 방문했었다. 신기한 물건들이 많은지라 은상감 동컵도 샀으나 두개골 술잔은 포기해 버렸다.버스 정류장에서 포터에게 500루피를 수고비로 주었다. 한 30루피만 주어도 되었는데 이돈이면 포터 부부의 육개월 방세를 치루고도 남았으리라.이 포토는 나에게 눈물울 흘리면서 땅바닥에 머리를 좋으리고 감사의절을 한다.사실 한 이만원 밖에 안될건데도.버스가 출발하기 전에 왼놈이 싱긋이 웃으며 닦아와선 뭘좀 사란다. 헤쉬쉬란다. 좋다 한번 시도해 보기로 하고 그걸 사서 가방 깊숙한 곳에 감추어 놓았다.
포카라에서 카투만두로 오는 버스는 생지옥이 따로 없는 바로 만원 버스 그 자체였였다.독일 여자 하나는 죽는다고 고함지르는데 우리야 좌석에 쳐박혀 취한상태로 잠만 자도 되었지만 서서 한밤을 열시간 달려야하는 자들의 인내와 고통이란 생각만 해도 끔직하였다.
마지막으로 이등서기관 녀석과 평양 아저씨에게 육담과 먹거리 예기로 그들의 주체사상을 흔들어 주었는데 남북이 여자예기와 보신탕 이야기를하며 낄낄거리는데는 아무런 장애가 없었다.
알바트러스 가슴털 파커와 오리털 침낭 사파이여 비슷한 보석 구리컵 양탄자 등을 챙긴체 3주간의 워크샵을 마감하고 그 희안한 왕국을 떠났다.
네팔의 인종 구성은 극히 복잡하나 북방으로부터의 몽골계(系) 인종과 남방으로부터의 인도아리아계 인종이 주류를 이룬다. 주요 종족은 북부의 부티아족(族), 서부의 마가르족·구룽족, 중부의 네와르족·구르카족, 동부의 렙차족·림부족 등이다. 그 중 16세기 중엽 이래 지배민족인 구르카족은 인도의 라지푸트계(系) 종족으로 알려져 있고, 또 흔히 각국의 등산대에 고용되는 셰르파족은 몽골인종의 티베트계 종족이다. 공용어는 인도아리아어계(語系)의 힌디어(語)에서 유래한 네팔어이나, 티베트-버마어계의 언어를 사용하는 종족도 꽤 많다. 종교는 힌두교(86%), 불교(8%), 회교(4%)를 믿는다.
네팔은 여러 층의 석탑, 돌 조각품, 위협적인 눈의 가면, 기도하는 사람의 돌아가는 바퀴, 몽롱한 탕카 두루마리, 티베트의 카펫 등이 그들의 문화를 대변한다. 4줄의 사링히나 프릇을 공중에 매달고 윙윙 울리며 중얼거리는 것은 네팔의 한 음악 형태라 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이 힌두의 산크리스트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전통 포크 음악가들은 저녁이면 카투만두 계곡에 모여 가면 춤과 고전 춤을 출 때 이 곳에 모여 노래한다.
귀로의 야간비행기가 다시 방그라데시 다카 공항에 2시간 가량 기착하게 되어 승객은 공항 보세구역에서 기다리게 되었다. 저녁 6시가 지나자 어렵소 공항 의 출입국 관리소사람들과 세관 근무자 항공사 사람들이 하나둘 씩 승객용 긴의자 쪽으로 터를 잡는데 광목 자루 속에서 제복을 갈아 입더니만 그자리에 취사도구를 내어놓는데 조금 있으니 가족들이 화장실에서 하나둘 나와 합세 하는 것이 아닌가. 아하 이곳이 그들의 거주공간인가 싶었다. 자기들은 살 수 없으니 면세점에서 담배를 대신 좀 사달라고 부탁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쩌하던간에 마대를 덮고 자다가 잿속에 새를 구워 먹던 한 가족의 애철운 모습과 록시의 맛을 나는 아직도 잊지를 못한다.
임페리알시절
과학기술처가 우리 사무실에 영국 문화원 <브리티시카운실>장학생 추천을 의뢰했기에 어쩌다 지목이 되어 멋 모르고 신청서를 접수하고선 어학시험을 보았다.
덕수궁 뒤로 가서 난생 첨 영국식 영어 시험을 치루었는데 조건부 합격이였다.
먼지도 모르고 얼핏 임페리알 칼레지라는 소리를 작년 마드리드 국제화의에서 들은것 같아 희망대학원을 추천서와 소개서 동봉하여 임페리알 칼레지로 적어내었더니만 그쪽에서 입학허가가 덜컥 떨어져버렸다.
헤적이 다닌학교...런던 임페리알 칼레지
히드로 공항에 안착을 하고나니 브리티시카운실에서 마중을 나와주어 시내로 들어오는데 운전사 아저씨와 잡담을 나누었다."런던에는 외국인이 많쿠먼 "차창 밖으로 지나는 인총들이 대부분 깜둥이와 인도 파키스탄인들이서 한 말이다."요즘은 너무 많타"라고 운전사 아저씨가 개탄을 한다.10년전 처음 런던에 도착했을 때 보다도 거리에는 에어리안이 넘친다.깔레부터가 에어리안이 시작된다는 것이 영국인들의 관점이지만...자마이카에서 역수입한 흑인들과 이차대전후 쇄도한 인도 파키스탄 계 사람들로 런던은 점령된 듯하다.pay the price인게라,그들 말 맞다나 영국은 세상을 지배한 댓가를 치루고 있다.
대학원 과정에 입학하기전 3개월간 어학코스를 킹스칼레지에서 받으란다.
직장 휴직하고 처자도 내 팽긴체 엉겹결에 브리티시 카운실의 장학금을 믿고 단신 런던으로 날랐다.이미 세번째 영국 방문이지만 이번에는 장기체류인 것이다.
히드로 공항에 안착을 하고나니 브리티시카운실에서 마중을 나와주어 시내로 들어오는데 운전사 아저씨와 잡담을 나누었다."런던에는 외국인이 많쿠먼 "차창 밖으로 지나는 인총들이 대부분 깜둥이와 인도 파키스탄인들이서 한 말이다."요즘은 너무 많타"라고 운전사 아저씨가 개탄을 한다.10년전 처음 런던에 도착했을 때 보다도 거리에는 에어리안이 넘친다.깔레부터가 에어리안이 시작된다는 것이 영국인들의 관점이지만...자마이카에서 역수입한 흑인들과 이차대전후 쇄도한 인도 파키스탄 계 사람들로 런던은 점령된 듯하다.pay the price인게라,그들 말 맞다나 영국은 세상을 지배한 댓가를 치루고 있다.
런던유니버시티에는 여러 칼레지가 속해 있는데 각 칼레지의 규모는 우리나라의 종합대학교 보다도 큰 것들도 있다.임페리얼과 킹스 칼레지가 그런 경우일 것이다.
천지도 모르고 임페리얼을 선택했다만 그 곳이 영국내 노벨상수상자를 가장많이 배출한 대학인줄은 몰랐다.학부는 캠브릿지나 옥스포드를 졸업하고 대학원 과정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태반이라는데..참 청맹과니가 겁도 없이 임페리알에 끼여든 것이다.
후배 덕에 대한항공 비지니스석에 앉아 무엇에 흘린듯이 그렇케 런던에 닿았다.
서울로치면 한강이남 송파쯤에 킹수 칼레지 기숙사가 있다. 그래서 매일 신촌쯤에 있는 킹스칼레지 중급 어학코스를 다녀야했다
런던 이야기만 치고나면 사고가 난다 무려 한시간이나 두들기고 올릴라하면 다 날라가버린다. 오기로 다시 두드려 남겨야것다. 니기미.....
밥먹다가 보나까 무엇이 허전하다 싶었는데 어금니에 구멍을 뚫고 해박은 금니빨 보철이 빠져 달아났다. 다행이 목구멍 속으로 안 넘어가고 반찬에 뭍혀 잎밖으로 뱉어내게 되었다.입안을 헹구고 다시 끼워넣으니깐 기가막히게 들어가서 자리를 잡는다. 십년전 칫과를 개업한 친구에게 가서 전날 구멍파고 본을 뜨고 다음날 하룻만에 해박은 금쪼가린데 수고비로 삼만원을 주었더니만 이만원만 받는거라 그리고는 공사기념으로 그친구는 그돈으로 술 한잔 먹자는데 "화이 낱"카면서 오만원치 술 퍼먹고 둘이서 여관까지 진출하였던 사연깊은 금떵어리였었다.
거푸집 속에 들어박힌 보철물이 열흘에 한번씩 부지불식간에 빠져나온다.밥먹다가 삼켜버릴까싶어 때로는 아예 손꾸락으로 미리 빼 놓코 식사를 한다음 다시 끼워 넣는다만...조금씩 치통이 느껴지는데 아무래도 불편하다.
더우기 여기는 런던아닌가. 지가 무슨 낭만의 망명객이라꼬 아니면 청운의 유학생이라꼬 마흔이 훌쩍넘어 처자식 나뚜고 혈혈단신 브리튼으로 날라와서 날마다 짙어가는 향수에 몸서리 치는 신세 주제에 치통이라도 발생한다면 큰일아닌가? 아픈건 둘째고 잘못하다간 저작을 못하고 굶고 살수 밖에 없는 지경에 이른다.
런던 유니버스티에는 여러 칼레지가 있는데 칼레지 마다가 우리네 종합대학 규모 이상이다. 임페리알 칼레지로 진입하기전에 우선 킹스칼레지 중급 영어반에서 어학코슬를 다녔는데 어떤 과목은 또 다른 칼레지에서 강의를 들어야만 했다. 그래서 대영박물관 뒤쪽에 있는 무슨 칼레지에 가서 세미나에 참석해야만 했었다.점심시간이 오고 어마어마하게 큰 구내 식당엘 들어가서 생선과 감자 그리고 카레와 함께 와인까지 걸치고 시내로 나왔다. 오후 강좌를 빼묵을 심사 에서 유유히 본드스트리트로 걷고 있는데 아이구야! 그놈의 금니빨이 입안에서 안보인다...
황급히 유명한 런던택시를 잡아타고 오던길 되돌아 그 칼레지 구내식당엘 들어섰는데 점심시간이 지났는지 그 넓은 식당이 텅 비였다. 식사하던 자리 주위르 살펴보아도 없다. 그때 식당바닦을 쓸고 있는 깜둥이 청년이 보인다. "여기서 아까 점심 먹다가 금니빨 조각을 잃어버렸는데 찾아야 한다" "좀 도와주라 그거 잊어버리면 내가 살아갈수가 없다" 자마이카에서 역수입한듯한 아프리칸 아메리칸 잉그리시 청년은 딱한듯이 내 이야기를 듣더니만 같이 주방으로 가잔다.
삽십분이 지났을까....네프킨 속에 쌓인 성냥대가리보다 조금 큰 금쪼가리를 찾았다.아마도 점심먹기전에 미리 손꾸락으로 뽑아가지고 내프킨에 싸둔다음 밥먹고 얌전하게 내버려두고 나온 그 보철을 찾아낸 것이다. 깜둥이 청년도 환하게 웃어준다. 의기양양하게 보란듯이 그걸 이빨속에 끼워 넣는 것을 깜씨친구에게 보여주고 싹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고밥다 시끼야 이 은혜를 어떻게 갚을꼬.....""주방바닥을 어질르게하고 다시 주어담는 고생을 시켜 미안타..." "괜찮타...""그라면 펍에가서 라거 한 파인트 땡기자 내가 살꼐""괘안타 그냥가라...나도 단기대학학생이다" "고맙다 복 많아 받거라"
영국인들은 아프리카에서 덩치좋은 흑인들을 잡아다가 아메리카 팔아먹었다가 이차대전후 호경기 시절 자마이카에서 다시 그들 후손들을 영국으로 불러들여 각종 힘든일들을 시켜먹었는데...좌우간 런던에는 깜씨들이 대단히 많타.물론 인도 파키스탄인들도 많타만.
런에서의 치통
참으로 우여곡절 끝에 어금니 보철을 찾아 뺏다 끼웠다하며 지냈건만 나날이 치통이 심해가고 금니빨이 자주 네멋데로 부지불식간에 빠져 달아가는 바람에 마침내 런던의 의료기관을 찾게되었다.
일반인의 병원이용은 무료지만 순서를 기다려야한다,영국인들은 일년이고 이년이고 자기차례가 올때까지 참는다. 아프면 무조껀 참는다. 그런데 돈만 많이주면 바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개인병원도 있다. 하도 아프니깐 동내칫과에 등록을 하고 이쁜여의사에게 문제의 금니빨을 내어 보이고 단단이 고정시켜달라고 부탁을 헀다.
"미스타 김 지금 당신의 어금니를 치료하고 다시 보철을 박아야하는데 치료를하면 구멍이 너뵤어 지고 그러면 전에 끼웠던 보철물은 영원이 들어맞지않케 되니깐 무용지물이 된다오"그러면 임시치료나하고 세멘으로 막은 다음 귀국해서 제대로 새로 해박아야하는 수 밖에.....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혹은 줄여서 임페리얼 칼리지로 불리는 이 학교는 런던의 부촌인 켄싱턴·첼시에 있는 자연과학, 공학, 의학분야 특화 대학교이다.1907년 설립됐으며, 연구 중심 대학으로서 2013년 기준 전체 교수진 중 무려 72명이 영국 학자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영예인 왕립학회 회원이다. 현재까지 모두14명의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임페리알칼레지
. 지원자 대비 최종 합격률은 15.3%으로 입학심사과정이 매우 까다로운 학교 중 하나로 정평 나있다. 미국 뉴욕타임스가 전 세계 20개국 일류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선호 대학 졸업생 조사에서 임페리얼 칼리지는 전 세계 9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과학기술처가 우리 사무실에 영국 문화원 <브리티시카운실>장학생 추천을 의뢰했기에 어쩌다 지목이 되어 멋 모르고 신청서를 접수하고선 어학시험을 보았다.
덕수궁 뒤로 가서 난생 첨 영국식 영어 시험을 치루었는데 조건부 합격이였다.
먼지도 모르고 얼핏 임페리알 칼레지라는 소리를 작년 마드리드 국제화의에서 들은것 같아 희망대학원을 추천서와 소개서 동봉하여 임페리알 칼레지로 적어내었더니만 그쪽에서 입학허가가 덜컥 떨어져버렸다.
대학원 과정에 입학하기전 3개월간 어학코스를 킹스칼레지에서 받으란다.
직장 휴직하고 처자도 내 팽긴체 엉겹결에 브리티시 카운실의 장학금을 믿고 단신 런던으로 날랐다.이미 세번째 영국 방문이지만 이번에는 장기체류인 것이다.
런던유니버시티에는 여러 칼레지가 속해 있는데 각 칼레지의 규모는 우리나라의 종합대학교 보다도 큰 것들도 있다.임페리얼과 킹스 칼레지가 그런 경우일 것이다.
천지도 모르고 임페리얼을 선택했다만 그 곳이 영국내 노벨상수상자를 가장많이 배출한 대학인줄은 몰랐다.학부는 캠브릿지나 옥스포드를 졸업하고 대학원 과정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태반이라는데..참 청맹과니가 겁도 없이 임페리알에 끼여든 것이다.
후배 덕에 대한항공 비지니스석에 앉아 무엇에 흘린듯이 그렇케 런던에 닿았다.
서울로치면 한강이남 송파쯤에 킹수 칼레지 기숙사가 있다. 그래서 매일 신촌쯤에 있는 킹스칼레지 중급 어학코스를 다녀야했다.
히드로 공항에 안착을 하고나니 브리티시카운실에서 마중을 나와주어 시내로 들어오는데 운전사 아저씨와 잡담을 나누었다."런던에는 외국인이 많쿠먼 "차창 밖으로 지나는 인총들이 대부분 깜둥이와 인도 파키스탄인들이서 한 말이다."요즘은 너무 많타"라고 운전사 아저씨가 개탄을 한다.10년전 처음 런던에 도착했을 때 보다도 거리에는 에어리안이 넘친다.깔레부터가 에어리안이 시작된다는 것이 영국인들의 관점이지만...자마이카에서 역수입한 흑인들과 이차대전후 쇄도한 인도 파키스탄 계 사람들로 런던은 점령된 듯하다.pay the price인게라,그들 말 맞다나 영국은 세상을 지배한 댓가를 치루고 있다. 계속
임페리알로 진입하기전에 킹스칼레지 어학코스를 한 석달 다녀야 한다는 상황에 따라 어학코스 중급반에 등록하였다.긴 방학동안 각 대학의 교수진들이 부수입을 올리고 노는 시설도 이용하고 아울러 신입생들의 영국 학사에 적응토록 하는 여러가지 이유에서 어학코오스가 개설된다.
영국인들은 지역과 계층에 따라 서로 상이한 언어를 사용한다.옥스브릿지 출신들은 윗입술을 움직이지 않코서 발음을한다.런던 서남부 변두리 서민들의 이야기는 에지간해서는 못 알아 먹는다.하물며 글라스고우 갚은 스코틀란드 사람들의 말이란..영국인들 조차 알지 못한다.
세계인들이 영어를 말한다지만 호주인들이나 미국인들은 말할것도 없지만 인도인 동남아인 중국인 독일인 불란서인들은 제각기 즈그들 억양데로 영어를 지껄이는데 어쩔수 없는 것 아닌가.한국의 경상도식 영어가 또 여기에 등장한다만...
우리반에는 독일 그리스 프랑스 그리고 콜럼비아 중국 대만 또 타이 일본 한국인들이 섞여있었다. 희랍외과의사는 나처럼 적당한 농뗑이 술꾼이였고 대만 아가씨는 아무리 신나게 영어로 떠들어도 내귀에는 중국어로 들렸다.사사껀껀 말꼬투리를 잡고 토를놓는 오사싸 출신의 왜놈은 언제 한번 손바 주라라 벼루엇는데....
함께 임페리알로 진하할 톨롬비아 청년이 제일 성적이 좋았다.
차차 수업의 강도가 진해지더니만 에쎄이를 써 내란다. 처음에는 2주에 한편이더니 일주에 한편 그것도 분량이 늘어간다.영국식 에쎄이라는 것이 모두에 이러이러한 결말을 내릴것이라는 서술로 시작된다.결국 연역식 문장이다. 석박사 과정의 경우 에세이만 처음부터 죽 순서대로 다 모은다면 별도의 논문없이 그것이 학위논문이 된다는 것이다. 영국은 3년 1년 2년의 학사 석사 박사 과정을 갖는다. 빠르다. 그대신에 재수강도 없고 유급도 없다 쳐지면 제적이다.스코틀란드는 또 다르지만.
“If you are tired of London, You are tired of life.”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펍 없이는 못산다”는 우스갯 소리까지 있을 정도로 영국 사람들과 펍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그러나 이곳은 퇴폐적으로 흥청거리거나 폐쇄적인 곳이 아닌 친구, 동료, 연인끼리 혹은 동네 아저씨나 아이들까지도 드나들며 가벼운 식사나 맥주, 위스키 등을 즐길 수 있는, 말하자면 ‘전통 간이 술집’이다. 사실 번역은 그렇게 하지만 내용상으로 보면 오히려 마을 공동체의 중심인 우리네의 ‘시골 사랑방’으로 이해하는 편이 더 적당한지도 모르겠다.
켄싱턴 하이스트리트 지역이 런던시절 나와바리 였다. 그러나 기숙사 갈려면 워털루역이나 빅토리아 역에서 기차를 잡아타고 한사십분 템즈강 넘어강남지역으로 넘어가야했다. 워털루 역에서 기차시각을 맞추려면 역안의 펍에서 한파인트 <영국식 맥주 한사발 대략 한 육백CC 될라나> 꺽고 기다려야한다.
좌우지간 련던뿐만 아니라 전 브리튼이 펍 천지다. 한집건너 있다면 거짓말이고 구석구석에 산재한다. 박물관에도 미술관에도 음악당에도 술코너가 있다. 돈이 없는 영국인들은 기니스<아일랜드산 흑맥주> 한잔으로 점심을 떼운다.하물며 대학내에도 펍이 있다. 내가 다니던 임페리얼 컬리지에도 펍이 여러곳에 있다. 하여튼 술집천지다. 기차간에도 물론 바가있고..골푸장에는 말할 것도 없고 천차만별의 펍이 있는데...일단 들어가보면 그 활기차고 자유분망한 분위기가 그지없이 좋타. 펍에서는 간단한 요기도 할 수 있고 어떤곳에는 그집이 자랑하는 로고가 박힌 티 셔츠도 판다.하여간 영국인들이란 문장과 제복을 좋아한다.
펍에 들어가서 비어 달라고하면 알고도 모른척하고 맥주를 건네주지 않는다.<라거>라고 해야 알아묵는다. 워터나 워러 캐도 물을 안준다.워우타라고 해야한다. 처음 영국의사당에 구경갔더니만 <해스 오브 커먼> <해스 오브 로드>카길레 먼 소린가 했더니만 하원과 상원을 그렇케 발음하던걸...하원역시 코구멍 만한데 의원 전원이 출석하면 삼분지 일은 자리가 없어 뒤에 서 있어야 한다눈데 아마도 의사당에도 술집이 있을것 같다.
기차를 타고 런던남부 덴마크힐 역에 내리면 이 조그만 역사 전체가 출입구와 사무실 빼고나면 또 펍이다. 밤이면 벤드까지 동원해서 시끌벅적 요란한 펍이된다. 이곳에서 술 뽑아주는 아주 이쁘고 씩씩한 아가씨가 그립다. 얼마동안 들랑거리다 보니 나에게 그렇케 잘해줄수가 없었다.돼지고기 파이도 공짜로 주고 간혹 라거도 반 파인트 그냥 부어주었었다. 역을 나와 킹스 컬레지 기숙사에 이르기 전에 또 거대한 펍을 만나게 된다.한 천평도 더 될것 같다.기숙사 뒷문을 나서면 주택가 안의 작은 펍이 여기저기에 또 있다.
그렇케 몇달 지내다가 한국인이 하는 하숙집으로 거처를 옮겼는데..이번엔 윔불던 지나 뉴몰던으로 한인들이 밀집하는 동내였다. 여기서도 기차를 내려 하숙집까지 가는 동안에 너덧개의 펍을 놓칠수가 없는 법이다. 어스름하면 주로 노인들이 그자리에 앉아있는데 라거 한잔 사 주면 그렇케 좋아들한다. 영국 여자들 젊으나 늙으나 엄청나게 라거를 마셔덴다. 그라고 보이 영국인들은 별로 위스키를 선호하지 않는듯 한데...와인은 또 상당히 즐긴다. 오히려 프렌치들이 위스키와 맥주를 탐닉하는것 같다.
어떤 펍은 이백년 전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어떤 곳은 당구대도 설치되어 있는데 스누크라고 당구대가 우리것 보다 한 네배 크다.날이 추워지면 벽난로에 통나무 장작불을 집혀 놓은 곳도 있다. 펍에는 술 부어주는 싹싹하고 건장한 선남선녀들이 흰 셔츠와 검은 바지차림으로 서비스를 하는데 다들 열심이다.일들을 아주 성실히 한다.개중에는 이뻐죽을 만큼 참한 아가씨들도 있다.그녀를 볼려고 하루도 빠짐없이 저녁마다 들랑거렸으나.....
그러다 이번에는 크롬웰로드 근처로 숙소를 옮겨 런던 중심부로 나와버렸는데...여기저기 펍 투성이다. 폴란드 이태리 인도 중국 중동 호주식당이 즐비한 <얼스코트> 튜브 역사 주변이였다. 이래저래 오며가며 이집저집 기어들어 라거도 마시고 <블라디메리>도 마시고...펍이 없었다면런던의 나날이 싫증도 날만헸으리...
임페리알 대학은 세계가 알아주는 공과대학이 유명한 대학이다. 옥스포드나 캠브릿지의 학사과정을 마치고 이곳으로 석박사하려는 학생들이 많코 상당수의 노벨수상자들이 교수로 재직한다. 여러가지 특별활동 가운데 모던댄스반하고 포도주연구반이 있었는데 와인반에 등록하였더니 일주일에 두시간씩 와인공부를 하게되었다.매번 8가지 서로다른 와인을 맛보면서 강의를 들었고 수업이 끝날때 즈음이면 벌써 얼큰해졌고 마치고 집에가다가 또 펍에서 이차를 했다. 물리학과 다니는 영국놈 하나는 나만 졸래졸래 따라다니면서 늘상 내가 사주는 라거를 얻어먹었다.이놈은 한사코 떨어지질 않았는데...
식물원에도 고성에도 왕궁내에도 펍이있다.말할나위 없이 이 나라는 술천국이다,,,시원하게 한파인트 들이키고 한 한시간후에 이르면 또 말짱하다.라거도 수천종이 있었으리라...그중에서도 <테넨츠>라는 스코티시 라거맛을 어찌 잊으리오....
이석희 회장의 노고로
골푸장으로 사부링
맨 아래는 배영식 공무원이 이글을 잡은 14번홀
아리아나 호텔은 새로이 아리아나 브로이를 개설하였기에 마누라하고 방문을 해서 필젠, 스타우트 그리고 머라든가를 시켜 마심니다. 안주는 낚지볶음과 닭구이.옥수수가 아닌 보리맥주인기라 적응할라면 상당히 마셔야 할 것임니다. 가짜가 진짜를 밀어낸 상황이라 .오래된 보리숭늉 맛을 잃어버린지 오래임니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입니다.방학기간 보충 수업료를 챙겼습니다. 그돈으로 난생처음 대도극장 옆 비루홀에 냅다 들어가 갈색병에 호박색 액체를 들이켰니다. 이쁜 처희가 딸아주는 거품덮힌 차가운 환락을 맛보았슴다.밖은 섭씨 39.5도 기가막힌 저녁이었슴니다. 막걸 리가 불쌍해졌슴다. 언제나 낮에는 그놈의 500cc가 갈증을 더해놓곤 했슴니다.빈 포겥이 늘 짜증 스러웠슴다. 물론 3학년을 앞둔 겨울 방학엔 세놈이 보충 수업료로 정종과 참새로 바꿔먹고 방학한달 아예 학굘 안갔으니가. 어차피 학년도 바뀌고 담임 선생도 바뀔 터이니 머 뱃장이다.새학년 새 교실 이나 맞이하자하고선.
인버네스에서도 한참 더 올라 간 스코트란드의 하이랜드입니다. 물어 물어 광천수 지대 윘쪽의 브리튼 100대 소호텔의 하나인 그곳에 이르러 여장을 풀고 호텔옆에 달린 마을의 펍으로 자연스레 들어갔슴니다. 한 한시나 되었을 까.우선 라거 원 파인트를 시키고 옆에 청장년 두분에게도 인사없이 그냥 돌렸슴니다.털털한 30대 초반의 순수 스코티시들임니다. 런던에서 옆에 술을 권하면 화를 내고 안 마시는 아저씨들도 더러 있는데. 그러지 그쪽에서 위스키 두잔이 답례로 날라오고 하여 넙적넙쩍 받아 먹었더니 신기한 듯 처다 보는데 이마을 생기고 처음 찾아온 동양인인데 잘도 처 마시는기라.다시 보드카를 답례로 돌리니까. 블라디메리 두잔이 날라오고 발전소 비번 근무자들 한 타스 들어오고 또 호텔에서 일하던 아줌마들도 동네 아줌마들도 오고 하여 화기 애애 씨끌벅적 한기라. 그로부터새벽 두시까지 그들이 권하는 각종 주류를 일대일로 다 마신기라.발전소 소장 아저씨 하루종일 스코트랜드 국가만 부르고. 따라서 내귀에도 확실히 각인되었지.다응날 떡이 된체로 한라운드 돌고 다시 펍으로 들어가니 그분들 다 또 있는기라. 에레기 기타 밴드까지 준비하고서.이리하여 또 우정의 술마시기가 반복되고 , 주는 술 다 받아먹고... 그 분들 다 잘 계시는지......
더블린입니다. 오스카 와일드, 사무엘 베케드 ,버나드 쇼 , 예이츠의 나라입니다. 트리니티 칼레지를 구경하고 아이리시 바로 행차함니다.우선 기니스 하프파인트를 들이키고 이리시 위스키 주문함니다. 어떤 아이리시 술집은 바 밑에 물흐르는 개울이 있어 마시고 메려우면 바로 바에 대고 일보면 되는 참 편리한 곳이라 하니 얼마나 아이리시들이 호주가인지 알만 합니다.새벽 4시 쯤인가 잠이 안와서 위스키 들고 로비로 나갔더니 주인 아저씨 서성이고 있다. <몇호실이냐?><1xx실이요>물끄러미 보더니만 <댁이 자는 방은 예전에 제임스 조이스가 글쓰던 방이라네...>아! 그런가 .나중에 조이쓰의 단편집 "더불린 사람들" 의 포겥북 표지의 건물이 바로 이집이었다니...
마드리드의 보뗑에서 딸기 맥주를 한국인 훌라멩꼬 선생님 주리여사와 마심니다. 안주는 돼지 태아 구운 것. 이집도 헤밍웨이가 지나간 곳이기에 와글와글 한곳임니다. 옆집 간판은 더 우끼는데 "헤밍웨이가 절대로 안 들른집"이람니다.
뮌헨의 어마어마한 비어홀에서 프리첼을 안주로 퍼마시고 다음날 도이취 뮤지움으로 가서 과학이 사회에 가한 변혁을 실감함니다.
대체로 빠리인들은 맥주와 위스키를 매우 흠모하고 영국인들은 버건디다 보르도 와인을 사랑하더이다.
그러나 하루종일 힘든 학교를 마치고 워털루역이나 빅토리아역에서 통근 열차를 기다리면서 찾던 그 맛 테넨츠라는 스코티시 비어 였음니다. 아.... 한모금 비웠으면 .... 어디 터보그나 하이네켄이나 버드와이저나 밀러가 흉내나 낼라치고, 칭따오도 그렇고 산 미구엘도 또몰라 호주산 XXX표는 괜찮튼데.
저녁에 아무 생각없이 헨리 8세의 궁궐이 있는 헴프턴 쪽으로 버스를 타고 서편으로 무작정 갔다.튜터 시대는 얼마간의 상처도 없이 그냥 그데로 자리하고 있었다. 테임즈강은 언제나 조용하기만하고 떡갈나무는 아름드리 위용을 갖추고 그 정원에는 장미가 빨갛게 노랗게 피여 있었다. 히드로 가는 버스가 있기에 무작정 올라타고 공항에 이르렀다.더불린이나 가볼까, 내가 과연 무슨 낭만의 망명객이라고 아니지 , 그러면 진리를 추구하는 구도자 인가.천만의 말씀 그러면 무얼까? 단지 길떠난 나그네 인가. 무엇인가 의심이 가는 구석이 있어서 더불린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앞서서 이렇게 늦게 공항으로 들어선 것이다. 어렵소,UK는 아일랜드를 외국으로 생각하자 않는다.그냥 국내선으로 날라가면 되고 영국내에서 탑승하기만 하면 비자도 여권도 필요없다 과연 이 천체에 더불린은 있을까 하는 심정으로 무엇에 홀린 듯이 왕복 탑승권을 구입하고 보잉 737에 올랐다.. 하프 문양의 아이리시 항공은 랭카샤 버밍헴을 지나 아일랜드에 착지했다.토끼풀로 상징되는 나라 IRA가 떠올리는 나라 "라이언 의 딸" 이란 영화가 머릿속에 상영되는 나라 그리하여 사라 마일즈가 눈에 어릿되는 또다른 섬에 도착한 것이다.엥글로 색손과는 구분되는 겔트 족의 섬으로 순식간에 이르른 것이다. 아무 연고도 없이 어떤 계획도 없이 덜컥 에이레에 내린 것이다. 우선 인포메이션 데스크로 가서 더불린 시내의 호텔을 수소문하니 아주 친절한 미녀 아줌마가 싸고 매우 훌륭한 호텔이라면서 예약을 해준다 .대충 이름만 듣고 버스를 타고 소박한 더블린 시내로 들어 섣다. 제딴에는 거리 표지를 보고 버스에서 내려 물어물어 호텔에 이르렀는데 아무레도 주택가 이고 분위기가 영 아닌기라 알고보니 엉뚱한 지역에 있는 같은 이름의 호텔이었다 그래 다시 되돌아 나와 시내로 향한 버스를 타고 번화가에 도착하여 옆길로 접어드니 과연 그곳에 호텔이 있었다. 호텔에는 조상을 찾아준다는 안내문귀가 있었다. 해외 아이리시가 일억 이상이 지구촌에 살고 있는 반면 에이레 에는 불과 삼백만 정도 거주하니까 뿌리찾아오는 아이리시에게 그들의 조상을 찾아준다는 이야기 인 것이리라. 바다와 이어지는 강이 더불린을 가로지르고 있기에 건너 보았다.박물관과 칼레지 성당 순레를 미루고 우선 먼저 주점으로 들어 가보는게 급했다. 과연 술꾼의 나라 답다. 영국인들은 아이리시를 꺼리는데 대부분 술울 많이 마시고 목소리가 크고 걸핏하면 주먹질하며 잘 싸우기 때문이란다.까만 기니스로 먼저 시동을 걸고 아이리시 위스키로 노독을 달랠 요량으로 주문을 하였다. 주점은 이른시각이지만 왁자지끌한데 어라 특이한 영국식 엑센트는 싹 없고 미국식 억양들이다.그러니까 영어도 브리튼의 영향을 덜 받고 고착된 듯 하지만 어학전공자가 아닌 주제에 무어라고 단정적으로 자신있게 진단을 내릴 수는 없으니깐 나중에 전문가에게 물어 바야 할 사안이다. 돌아오는 길에 쓰여진 표지판에는 영어와 함께 게일어가 병기되어 있다.조금씩 눈에 비치는 켈트의 소박한 문양도 이곳이 아일랜드임을 확연히 가르쳐 주는 것의 하나이다. 번화가에 들어서니 과연 쾌할한 더불리너들이 웃고 떠드는데 거리 한가운데 인파 사이에 받침대도 없는 구리 동상이 있었다.애꾸눈위로 넓은 챙 모자의 아저씨가 파이트를 물고 있었다.제임스 조이스 였다. Riders to the Sea를 생각하면서 위스키에 취해 잠을 잦는데 한밤에 깨어 버렸다. 부시럭 거리며 남은 술잔을 채우고 얼음을 구하러 로비로 나왔다.호텔이라 하지만 오밀조밀한 전통건물이었다.두리번 하는데 육중한 체격의 근사한 아저씨가 나타났다. "여기 투숙객 이요"라고 뭍는다.자신이 이곳의 주인이라면서 몇호실에 있는냐 하더니만,"그방에서 제임스 조이스가 글을 썻었다네"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아! 그렇구나,그러고 보니 "더불린 사람들"이라는 책자의 표지에서 본 그림이 생각나는데,아! 과연 호텔 밖에서 보니 바로 그 그림 그데로가 아닌가! 트리니티 칼레지의 시커면 외관이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 해준다. 예이츠가 공부하던 곳이 아니던가.학교를 나와 발가는데로 내버려둔다. 헨리 팔세와 에리자베스가 무자비하게 살육을 일삼았고 또다시 크롬웰이 짓밟은 애환의 아일랜드 그 한복판 시가를 다리 아푼줄도 모르고 걸었다. 존웨인이 나오던 영화 "아일랜드의 훈풍"을 기억하는 한편 아이리시들의 부활절 봉기와 독립운동을 되새겨 보면서.... IR을 집어타고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향했다. 척박한 땅이라지만 구를지와 해변은 아늑하다.한시간 쯤 가다가 기차에서 내려 무작정 바닷가로 가서 검은 모래사장을 거닐다 낚시꾼을 보았다.
41년생..동갑덜..사라와 크리스토퍼..우리나이로 66...http
셀스돈...호텔이 고풍이라
꽤나 고급스런 호텔이라 옛 고성을 개조한듯
밤이면 동네사람들 결혼식 파티도하고
두꺼운 영국식 가구..
아일란드 지배인하고 갈바도스 한잔
아침은 환상적이더만
51회가 주영대사관 공보관으로 재직시
초대받앗다
재영 경맥회원들이 자주가던 곳
42회 대사관 공사님을 비롯하여
대사관 상무관 각 은행 영국 현지 지점장덜..
선후배가 득실거리고...
동네 골푸장 한번 도는데 7파운드
킹스칼레지 기숙사 야간 경비와 함께
스스람 없이 들리던 곳
제일 싼 곳
런던 남부의 시내 중심에 있던 퍼브릭 코스인데
택시기사 동네 아지매..다들 카터끌고 출입한다
단 청바지차림은 절대 엄금
스코틀란드 북쪽 하이렌드
정말 조았던 곳
천연광천수지역인거 같은데..
여기 한바퀴 돌고 호텔로 돌아오니
온 동네사람이 부속 �에 모여
문딩이와 밤새 떡이되도록 마시고 담날 또
연장메고...알콜타법으로 ..
스코트의 철로변의 싸구려 골푸장..
체리롯지 여기 캡틴과 친해서 공짜로 야미로 즐기던 곳
선후배들과 한달에 한번씩
어데가도 경맥회 인총들은 쌔 삐갈린는기라
마드리드
프랑코 총통이 즐기던 곳이라던데..
필드에 야생양귀비가 지천이더만
설명이 필요없는 자연이 멩긴 샌 앤드루스
여기 올드 코오스에서...즐기도다
요즈음은 여기 들어가기가 별따기라던데..
세계제일 코오스
글라스고오
하이랜드가는 인터씨티에 탄 스코티시따라 무작정 글레스고오
아랫마을에 숙박하고 다음날 두번째 찾은곳에서 공치기가 허용되고
동네 인사들과 유쾌하게 술마시며 양떼들과 함께 마구마구 휘두르던 곳
포루투칼
깔끔한 골푸장이 너무나 많은데 일본놈과 한라운딘
마치고 멕시칸 음식으로 포식
돌아오는길에 히치하이커 아갔들이 꼬시는데
저기다..창순이라...
튜니지
마누라가 정지시킨 비자카드가 이상하게 떨어져서
나도 올리브 사이로 의아하게 한바퀴 돌은 곳
폴튜칼
포르투칼 남부 ..달리할일이 없서...
미국하고 호주 카드는 안 보이네...
디젤 계통의 열차로서 상당히 빠른 인터시티 편을 타고자 런던의 킹스크로스 역으로 향했다.
캠브리지를 지나고 험버강을 넘어 요크에 이르니 드디어 노섬브리아 영역인데
다시 뉴우캐슬부터는 해변으로 거침 없이 질주하니 마침내 에딘버러에 이르렀다.
브리튼 섬을 한반도에 비견하자면 대구로부터 안동 충주 삼척을 거쳐 원산에 이르른 셈이다.
에드윈 성을 둘러보고 괜찮타는 골프 코오스로 무작정 택시타고 갔었었는데 마을시합이
있다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에딘버러로 되돌아 오고 말았다
.전 시내의 호텔의 빈방이 없어서 비 엔드 비를 알아보려해도 귀찮아서 그냥 기차역으로 향하니,마침 샌 앤드루스 가는 편이 있었다.
한반도의 흥남쯤 되는 곳이다. 고즈녁한 세인트앤드루스에 이르러 미니 캡을 타고
시내로 들어오는데 분위기는 15세기 그대로 였다
.비 앤드 비 즉 벧 앤드 브랙퍼스트를 잡고 여장을 풀었는데,깔끔한 여관이라 할 수 있었다.
무조건 펍이나 바를 찾아 한잔 걸쳐야 하는일이 급선무이므로 날이 어두워 졌지만
해변가의 호텔로 들어섰다.벽난로가 날름날름 붉은 화염으로 아늑하게 통나무가
타오르는 바가 있었다.
위스키 다블을 한잔 시키니까 400페이지 짜리 책을 권한다
.펼쳐보니 헤아릴 수 없는 위스키 종류가 족보와 함께 소개되어 있다.우리가 마시는 조니워커도 발렌타인도 시바스리갈도 런던의 벨이나 티쳐스도 여기엔 아예 없다.
그야말로 지역과 역사를 달리하는 양조장의 몰트위스키만도 수 백종이 넘게 소개되어 있지 않는가.
과연 스코트랜드 답다.그리하여 아가씨의 추천과 숙박객들의 취향을 흉내내어 몇가지 서로 다른 스카치를 맛보았다.마침내 내 입에 맞는 그렌타렛이란 몰트를 퍼셔날 스카치로 정하게 되었다.
숙소로 돌아오기 전에 이번에는 펍으로 가서 라거를 마셨다
.대체로 스코트의 물가는 잉글랜드의 딱 절반이다, 내 형편으로 보아선 반 거저인 셈이였다.
아침이 오고 식당에서 블랙퍼스트를 먹는데 근사하다.
쥬스 우유 홍차 시리얼 베이컨 버터와 호밀빵 에그후라이 절인 대추야자를 먹는다.
이제 골프의 고향 "홈 오브 골프에 왔으니 <올드 코오스>를 둘러 보아야 한다.
숙소에서 멀지 않는 곳에 골프 박물관이 있고 그밑에 고색창연한 왕립골프클럽하우스가 있었다.
기념품 가게마다 멋진 세인트 엔드루스 문장의 골프 관련 바지 스웨타 모자 양말 우산 티셔츠 등을 팔고 16세기식 히꼬리나무의 골프채도 판다
.점원에게 어떻게 하면 저 유명한 "올드코오스"에서 골프를 칠 수 있는가를 물어 보았다.
아침 일찍이 도착해서 마스터에게 15파운드 내고 신청하면 공을 칠 수 있다한다.
요즘에는 외지인이 특히 외국인이 올드코오스에 입장하려면 일본인이 세운 호텔에 투숙하여야 하고 거기서 추첨을 해서 당첨되어야만 100파운드 내고 한 라운딩 겨우 가능하다 한다.
대충 정보를 입수하곤 밥도 팔고 술도 파는 펍으로 가서 소고기덥밥 비슷한 것으로
맥주와 함께 점심을 먹었는데 저녁마다 꼭 들리게 되어 샌 앤드루스 미술관 큐레이터와 한잔 주고 받으면서 친분을 쌓게 되었다.
이리하여 하루에 세군데의 술집을 정기적으로 출석하게 된다.
해변의 작은 호텔에서는 우아하게 꽃 무늬 박힌 로라 에슐리표 원피스 차림의 종업원 아가씨 바라보며 장작불 옆에서 마시고 대학생들의 펍에선 라거를 마시고 동네 바에서는 큐레이터와 마시는 것이다.
드디어 골프채를 빌려서 올드코오스로 향했다.클럽에는 회원 아니면 절대로 입장이 안된다.
혹시 디 오픈 우승자이면 모를까.
새벽인데 첫홀 출발선 옆 마스터의 오두막에는 세계의 골퍼들이 줄을 섯다.
이날 딱 4명만 받아 준다는데 운좋게 걸렸다.미국인 둘 프랑스인 하나 그리고 조선 문뎅이 초보가 라운딩이 허락이 된 것이다.
다리를 조금 저는 현지 나이든 노인 캐디를 20파운드에 고용했다. 당시환율은 1파운드에1100원 과연 싸다. 나이가 들수록 캐디의 수고비가 비싸다.물론 남자 만이 캐디를 한다.
정신없이 몇홀을 지났는데 잭 니클라우스가 빠진 벙커에 빠졌다.
사다리 타고 벙커에 내려가면 지면이 안 보인다.항아리 벙커 즉 우물통이다.
그래도 뒤로 치곤 해서 3번만에 나왔다.
엉컹퀴와 바람 사이에서 바다를 끼고 17번 악명 높은 로드 홀에 이르렀다.
악성 훅이나고 벙커에 들어 가고 스리퍼트로 마쳤다.캐디 아저씨 아주 잘한단다.
실개천 위의 앙증 맞은 중세풍의 다리를 건너 결국 올드코오스의 18번 홀을 점령하였다.
센트 앤드루스에는 3개의 또다른 코오스가 올드코오스를 에워싸고 있다.
"뉴 올드 코오스" "쥬베닐 코오스"가 있는데 .그린 피는 6파운드 내면 된다.
윌리엄 왕자가 어째서 세인트 앤듀르스 대학을 다니는지 모르지만, 이도시는 품위가 있다.
멋진 북해가 있고 어마어마한 15세기 성당이 부서진체 있고 사람들이 정겹다.
무엇보다 물가가 싸고 음식 맛이 좋다.
전 세계 골퍼 들의 순례지로 죽기전에 올드코오스에 한번 서 보고자 하는 골프의 성지인 곳이다.
마침 인근 공군기지에서 연래적인 에어쇼가 개최되길레 버스를 타고 RAF기지로 향했다.
헌터, 림노드, 라이트닝도 물론이고 스피드파이어와 모스키토도 있고
노르웨이와 텐마크에서 날라온 재귀어와 F16도 있었으며 토네이도의 시범비행은
귀청이 다 멍멍할 정도 였고 무스탕의 추억어린 곡예 비행과 해리어의 신기한 수직 이착륙 시범 그리고 헬리콥터의 180도 루프비행 헤큘러스 수송기의 사라예보 다이빙이라고
4000피드 상공에서 수직 강하후 바로 지상에 단거리 착륙하는 비행과 및 착지후 후진하는
비행쇼가 있었으며 B52의 어마어마한 이착륙 광경이 있었다.
10만 세인트 엔듀르스 시민이 이곳에 다 온 듯 하다.
앤드류스를 떠나기전 시내에서 머리를 깎는데 남녀 공용이다.
이쁜 아가씨가 가위로 정성드려 손질하면서 손님의 취향과 반응를 꼭 물어보고 뒤로
목을 제켜서 머리를 감겨주곤 8파운드 받는다
.밤에는 영화관엘 갔는데 상연중에 담배를 피워도 괜찮은지라 이러한 관습에 매우
흡족해마지 않았다.
샌 앤듀르스를 떠나 던디에서 일박하고 다시 카누치 가서 링크스코오스를 돌다가
인버네스 북쪽 하이랜드 까지 갔는데 말하자면 신의주 까지 가게 된 셈 이였지만
아직도 샌 앤드류스가 그립다.
함부르크에 내린지가 까마득하다.옆동네 브레멘하고는 서로 니가 잘낫네 못났네 하며
지낸다카는 북부독일의 유서깊은 항구도시렸다.
호반이 있고 인류사 박물관이 그릇듯하던데...여기 박물관의 독일인 노박사님이
한식이 먹고싶다하면서 일본인 처와 동반하여 함께 한식당엘 찾아갔다.
이어른이 산스크릿드어를 비롯하여 몇가지 언어를 자유자제로 구사하는지 셀수가 없다. 다리하나는 무슨 버거씨 병인가로 절단을 해가지고도 말이다.유창한 한국어로"종묘앞에 갈비집들 여전히 잘 있는가요"하면서 입맛을 다시는데...소주가 없어서 우리는 일제 오사께로 낮술을 나누었다.
인류학자들이란 역시 아무음식이나 주류나 어떤인종의 여인이나 가리지 않코 잘드신다.
이 양반 평생 테레비를 본적이 없다가 최근에는 흑백TV를 얻어다가 만화영화만 쪼금식 본다고
일본인 부인이 살짝 귀뜀해준다...평생취미가 술먹는거 이외는 학문하는거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분이였다..
함부르크라면 다음에 떠오르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 같은 <요하네스 브람스>아닌가....
그의 생가 부근이라는 조간대위에 썰물로 빠진 축대위에 지어논 식당엘 가서 그의 음악과
생애를 더듬으며 근사한 독일식 만찬을 얻어묵었다.
초대기관에서 함부르크대학에 유학을 온 박사과정 한국학생을 안내자로 붙여주었는데...
밤이오자 한잔 따르는데 십오분이나 걸리는 독일 맥주를 먹고 우리는 쌍파울리로 진군을 했다.
쌍파울리에는 소시장과 닭장이 유명하다....
먼저 도로에 면한 창넘어로 우아한 여인들이 앉아있는데 마음에 들면 문을 열고 그집에 들어가면 되는 곳이 닭장이다.소시장에 갔더니만 축구장보다는 적고 농구장 보다는 큰 홀에 젊은 아가씨들이 우굴우굴 서있는데...아이구야 수백명은 될듯한거라.아무나 마음에드는 아가씨와 흥정을하고
소시장 닭시장을 구경하고 다음에는 쌀롱인지를 들어갔는데...맙소사 무대위에선 실연을 벌리고 있고
좌석사이론 전라의 동서양 여자들이 휘젖고 다닌다....
함부르그라면 유보트 햄버거 아쯔..호반과 함께 쌍 파울리가 점철되어 뇌리에 잔존한다.
런던에는 세인트 폴 성당이 장대하다..겉 멋은 없다마는 크기로바선 세계에서 몇번째 가지 싶다.
인류에는 위대한 바울선생이 두분계신다.
사도바울과 뽈 세잔느가 바로 그분들이다....
함부르크에 내린지가 까마득하다.옆동네 브레멘하고는 서로 니가 잘낫네 못났네 하며
지낸다카는 북부독일의 유서깊은 항구도시렸다.
호반이 있고 인류사 박물관이 그릇듯하던데...여기 박물관의 독일인 노박사님이
한식이 먹고싶다하면서 일본인 처와 동반하여 함께 한식당엘 찾아갔다.
이어른이 산스크릿드어를 비롯하여 몇가지 언어를 자유자제로 구사하는지 셀수가 없다. 다리하나는 무슨 버거씨 병인가로 절단을 해가지고도 말이다.유창한 한국어로"종묘앞에 갈비집들 여전히 잘 있는가요"하면서 입맛을 다시는데...소주가 없어서 우리는 일제 오사께로 낮술을 나누었다.
인류학자들이란 역시 아무음식이나 주류나 어떤인종의 여인이나 가리지 않코 잘드신다.
이 양반 평생 테레비를 본적이 없다가 최근에는 흑백TV를 얻어다가 만화영화만 쪼금식 본다고
일본인 부인이 살짝 귀뜀해준다...평생취미가 술먹는거 이외는 학문하는거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분이였다..
함부르크라면 다음에 떠오르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 같은 <요하네스 브람스>아닌가....
그의 생가 부근이라는 조간대위에 썰물로 빠진 축대위에 지어논 식당엘 가서 그의 음악과
생애를 더듬으며 근사한 독일식 만찬을 얻어묵었다.
세인트 폴/쌘뽈/쌍 파울리
초대기관에서 함부르크대학에 유학을 온 박사과정 한국학생을 안내자로 붙여주었는데...
밤이오자 한잔 따르는데 십오분이나 걸리는 독일 맥주를 먹고 우리는 쌍파울리로 진군을 했다.
쌍파울리에는 소시장과 닭장이 유명하다....
먼저 도로에 면한 창넘어로 우아한 여인들이 앉아있는데 마음에 들면 문을 열고 그집에 들어가면 되는 곳이 닭장이다.소시장에 갔더니만 축구장보다는 적고 농구장 보다는 큰 홀에 젊은 아가씨들이 우굴우굴 서있는데...아이구야 수백명은 될듯한거라.아무나 마음에드는 아가씨와 흥정을하고
그러던 차에 大邱市와 도야마현<富山縣>이 기술협력을 체결한다해서 대표단의 일원에 슬쩍 끼여들어 날라가게 되었다. 대구테크노파크 단장을 역임하던L교수의 배려 덕분에 꼽사리로 갔다마는 사실은 일본의 深層水 사업을 보기위해서였다.
빛이 닿지 않는 해수면 700m 이하에는 수온 1도의 밀도가 큰 해수가 존재한다. 도야마만에는 깊은 바닷속 웅뎅이가 있고 현 정부가 이 해수를 퍼올려 민간회사에 공급해준다. 이물을 증류해서 순도 높은 소금도 만들고 여과시켜 식수도 만들고 맥주도 만들고 해서 파는데 년간 4천만엥이나 되는 사업이란다...
아시아나 직항으로 도야마에 착륙했는데... 아 도시 북쪽으로 해발 3000m 급의 준봉들이 수십 km 에 걸쳐 연이어 버티고 서 있다....일본 알프스 인거라 ..다떼야마 인거라. 수십 미터 눈을 깍고 산 마루 까지 차가 올라간다는데.. 좌우간 대단한 관광자원이고...어마어마한 산악이다. 아국에도 저런산이 경북 어디에 하나라도 있다면 엄청나게 돈 벌어줄건데.... 저기서 녹은 얼음물이 수십년 지하를 거쳐 시내에서 생수로 나온단다.... 아무튼 전국시대에도 험준한 지형덕에 도야마 지역은 전란에 휩슬리지 않코 안전 했다나...
연일 환영만찬과 점심행사며...현지사의 배려덕에 잘먹었다. 도야마 지역은 발광 오징어 젖갈과..연어 비슷한 생선으로 유명하고...또 농촌지역이라 일본에서도 음식 맛이 좋키로 알아준다는데...사실이다.도야마 여자들은 전국에서 가장 부지런하단다.산과 바다로 고립된 지역이라 또 매우 순박한 성품을 갖고 있다. 도야마는 약제사업이 활발하여 여러가지 전통약품을 생산한다.
다다미 방에서 기모노 입은 일본 처녀들의 시중을 받으며 술상을 받는 기분도 삼삼했다... 밤이면 일차로 대접받고 이차로 사시미와 대게와 사께로 대접받고 삼차로 한식집에서 진로소주로 답하고 사차로 일본 바에 이르면 60대 할머니 호스티스와 가라오께로 ...꼭지돌고 또다시 골목에서 우동 사먹고... 호텔에 돌아와서는 또 잭다니엘 돌리고... 한일간에 아니 대구와 도야마 간에 꼭지 돌아가며 퍼 마시는기라..
도야마 해변으로 가보니 ..해변이 검은 모래인데...저쪽 바다 건너 한국쪽을 바라보는 감개는 남다르다..똑바로가면 포항이나 강릉 사이 어데쯤일까... 년중 해변에서 신기루가 나타나는데 여름에는 꺼구로 겨울에는 똑바로 선 도시가 바다위에 투영된다는데 신기루가 뜨면 사이렌이 울리고 모두가 해변으로 달려간다. 허지만 매일 기다린 사람도 아직 한번도 못본 사례도 있다나...
다떼야마에 오르면 거대한 댐도 볼 수 있고 폭포도 있다는데... 시간이 없어 먼 발치로만...겨울에 더운물이 도로 곳곳에서 뿜어나와 눈을 녹이도록 한다.
심층수 공장을 방문하여 공정도 구경하고..소금도 심층수도 목욕세제도 선물로 받았다.. 우리 동해에도 심해가 있고 심층수가 순환한다..바람이불면 동해변의 표층수가 동쪽으로 실려가고 이자리를 메꾸려고 심해의 심층수가 올라온다. 이것이 upwelling 즉 용출수이다..미네랄이 100배나 많은 해저의 바닷물이다. 이 것을 퍼서 마시는 물도 김치도 맥주도 만들고 온도차 발전하고 축양장에도 공급해야 할텐데.... 회사나 하나 설립해보자....
떠나기전에 구식 목욕탕이나 들어 가 볼껄...워낙 일정이 빡빡하여 시내의 서민생활에 직접 접하질 못헀구나... 도야마시가 설치한 건강센테에 가보니 온천이랑 수영장이란 헬스 기타 운동시설이 부럽다....
.튜니지
튜니지에서
2004.06.27
튜니지
게트윅 공항으로 감니다. 빅토리아 역 까지 까만 택시를 잡아타고 갔다.런던 택시는 유명하다. 운전면허를 받으려면 한3년 죽도록 길을 외어야 한다.그래서 미니 캡이라는 숨어있는 택시도 있다.요금은 절반밖에 안하지만 이용하기에는 별 차이가 없다.
특급열차로 한시간 가면 공항이 나온다.영국의 전세기는 대게 이곳에서 출발하는데 리버풀 요크 글라스고우 등지에서도 일단 게트윅으로 모여서함게 출발하는듯 하다.내가 보기에는 가장 훌륭한 공항이라 여겨진다. 술집도 좋코 들고 나갈 상품도 다양하고 풍부한데 가격조차 환상적이다.
세계에서 사고가 났다면 희생자 중에는 꼭 영국인이 끼여있을 만큼 이들은 여행을 선호한다. 동네 여기저기에는 틀림없이 여행사가 있고 그곳에 가면 지구상 어느곳이라도 다녀올수 있는 프로그랜을 발견할 수 있다. 특이한 것은 체제기간이 길 수록 경비가 싸다. 1주면 400 파운드 2주면 3백 3주면 250 파운드 이런식이다. 런던의 한달 체재비 절반이면 세계유명관광지에서 2달 보낼 수 있다는 뜻이된다.
면세점에 들어가서 알았지만 현금 서비스가 안된다. 너무 써제낀다고 마누라가 비자카드를 국내에서 정지시켜 버린 것이다.큰 일이다.3주간을 어텋게 버틸 것인가. 암담하다. 괜히 택시타고선 귀한 파운드를 날려버린 데 대해 후회가 막급이다. 그렇타고 튜니지 여행을 포기 할 수도 없고,우선 닥닥 긁어모아 위스키 대형 2병과 담배 두보루는 확보했다.
튀니지 동해안에는 어마어마한 신식 호텔이 있다. 여기서 아침 저녁은 주는데 점심은 각자 알아서 먹어야 한다.해변의 낙타꾼은 태워주고 사진 찍어주고 얼마 받아 먹고 사는데 그들의 삶이란 오히려 낙타보다 불쌍하다. 아침먹고 자고 점심사먹고 바닷가 거닐고 카르타고 유적지나 다녀오고밤이면 위스키 홀작거리고 이웃 호텔이나 기웃거렸다.영국인들은 대부분 가족단위나 프랜드를 대동하여 이겨울을 해외에서 보낸다. 그러나 나는 무어냐? 테레비도 없는 호텔에 밤이면 홀로 갇혀 있어야만 했다. 아 이러는 게 아닌데. 정신이 날로 황폐해갈 무렵 컨트리 클럽으로 무작정 갔다.한라운드에 7파운드 모른척 하고 비자카드를 주니, 어라 결제가 된다.그래 돌아오는 길에 은행 써비스를 시도해보니 안된다. 마누라가 날 죽일려고 하는 모양이다.
택시폰 가게로 간다. 전화가 귀한 이나라에는 전화방이 있어서 통화를 신청하면 몇개의 부스에서 주인이 연결하는 전화를 쓸 수 있다.집으로 전화를 건다 "살려다오 카드 풀어라 대금은 귀국해서 갚으마" 우리마누라는 택도없다는 식이다. 거기서 직싸게 고생하란다. 아이고 ,튀니지 한국대사관이나 가서 사정 예기하고 융통해 볼까.안될 말이라지 .난감하다 이제 점심도 저녁의 맥주도 못 사먹을 형편이다.
호텔 종업원은 나에게 은근히 은밀한 눈빛을 보낸다.때로는 아주 애걸쪼로 때로는 협박쪼로 나온다. 위스키와 담배를 팔으란 것이다."야 이놈아 느그는 모슬렘 아이가 와 술이 필요하노 내 묵을것도 모자린다." 위스키 전쟁이다.앞으로도 2주일 버텨야한다. 한병 반 남았지만 줄 그어가며 겨우겨우 무료를 달래는 비상의 묘약인데 너한테 죽어도 팔수는 없다.아랍인들은 숨어서 위스키를 먹는다 그리고 아주 좋아한다.값은 한 너덧배 비싸다.그래서 끈질기다.
빈 지갑을 열어 본다. 아 지값속에 세계의 돈이 다 있는 것이 아닌가. 쓰고 남은 수집품들이다. 슈만 마누라가 그려진 100마르크 쇼세키가 그려진 이찌망엥 드비시 50프랑 상떽즈베리 50프랑 베르디 1만리라 그랜트장군 50달라 오지리 크로네 스페인 임금님 500페세타.살았다 죽으란 법은 없도다.그데로 호텔 환전소로 내달음친다. 환전 아저씨 어리둥절 수상 쩍은 눈초리로 자꾸만 쳐다본다."얄마 빨리 튜니지 돈으로 바까라"
튜니지 튜어에 나섬니다.오리브로 덮힌 들판과 로마의 원형극장 모자이크 박물관 오아시스 소금호수 마지막으로 사하라 사막으로 감니다.땅속에 굴을 파고 사는 베르베르인을 만나고 스타위즈의 촬영 배경지도 둘러보는데 반병남은 위스키를 신주 모시듯이 가슴에 안고 따라다녔다.
사막의 여우는 너무귀엽다. 아랍식 물담배 이건 정말 희한하다.향수의 원액은 양탄자와 함께 여기 특산물이고 낙타고기 양고기 정말 맛있다.가시나무 박에 없는 거친 사막의 앙상한 양고기가 영국산 살찐양 보다도 최고로 치고 값도 열배 정도 비싸다.
귀국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런던으로의 귀환이다.우쨌든 일단은 게트윅으로 돌아간다니 꿈만같다.무리한 3주였었다. 외톨이의 외로운 밤과 무일푼의 하루하루가 몸서리쳐질 정도로 힘든날들의 연속이였다.
출국 심사대를 뒤로하고 드디어 보딩을 기다리게 되었다.우선 면세점으로 들어갔다. 위스키 한병을 들고 카드를 제시하니 아무 문제가 없다.풀였다.카드도 인생도 살은 것이다. 대합실에 앉아 병나발을 불고 눈물을 흘리는데 맞은편 영국 여자가 물끄러미 보더니만 자기쪽으로 오란다. 우리 호텔에 같이 있던 아지메 아이가.
"왜우느냐'"사실 여차여차 해서 운다." 나는 위스키를 그녀에게 권했다.그녀도 스스럼없이 병나발을 분다."그렇타면 진작 나한테로 오지 나도 혼자 왔드랜걸"약올리나 다 끝난 판에.이번에는 그녀가 면세점으로 가서 벨 위스키 한병 받아온다. 동서양의 남여가 튀니지 공항에서 부어라 마셔라 병나발을 분다.그리고 키스를 하고 또 마시고.
WELLCOME TO U.K 사실 나는 어떻게 숙소로 돌아온지 모른다.기내에 앉자 마자 대취한 체로 골아 떨어진 가보다.그녀가 알뜰살뜰 캔싱턴 하이 스트리트 까지 택시로 데려다 준 모양이다.내 수첩에는 KENT에 있는 그녀의 주소가 스터커로 붙어있었다.
로마가 지나가고 스페인이 휩쓸고 터키가 그리고 롬멜의 독일군이 또 프랑스가 강점했던 카르타고를 나는 이렇게 지나왔다.
더블린
저녁에 아무 생각없이 헨리 8세의 궁궐이 있는 헴프턴 쪽으로 버스를 타고 서편으로 무작정 갔다.튜터 시대는 얼마간의 상처도 없이 그냥 그데로 자리하고 있었다. 테임즈강은 언제나 조용하기만하고 떡갈나무는 아름드리 위용을 갖추고 그 정원에는 장미가 빨갛게 노랗게 피여 있었다. 히드로 가는 버스가 있기에 무작정 올라타고 공항에 이르렀다.더불린이나 가볼까, 내가 과연 무슨 낭만의 망명객이라고 아니지 , 그러면 진리를 추구하는 구도자 인가.천만의 말씀 그러면 무얼까? 단지 길떠난 나그네 인가. 무엇인가 의심이 가는 구석이 있어서 더불린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앞서서 이렇게 늦게 공항으로 들어선 것이다. 어렵소,UK는 아일랜드를 외국으로 생각하자 않는다.그냥 국내선으로 날라가면 되고 영국내에서 탑승하기만 하면 비자도 여권도 필요없다 과연 이 천체에 더불린은 있을까 하는 심정으로 무엇에 홀린 듯이 왕복 탑승권을 구입하고 보잉 737에 올랐다.. 하프 문양의 아이리시 항공은 랭카샤 버밍헴을 지나 아일랜드에 착지했다.토끼풀로 상징되는 나라 IRA가 떠올리는 나라 "라이언 의 딸" 이란 영화가 머릿속에 상영되는 나라 그리하여 사라 마일즈가 눈에 어릿되는 또다른 섬에 도착한 것이다.엥글로 색손과는 구분되는 겔트 족의 섬으로 순식간에 이르른 것이다. 아무 연고도 없이 어떤 계획도 없이 덜컥 에이레에 내린 것이다. 우선 인포메이션 데스크로 가서 더불린 시내의 호텔을 수소문하니 아주 친절한 미녀 아줌마가 싸고 매우 훌륭한 호텔이라면서 예약을 해준다 .대충 이름만 듣고 버스를 타고 소박한 더블린 시내로 들어 섣다. 제딴에는 거리 표지를 보고 버스에서 내려 물어물어 호텔에 이르렀는데 아무레도 주택가 이고 분위기가 영 아닌기라 알고보니 엉뚱한 지역에 있는 같은 이름의 호텔이었다 그래 다시 되돌아 나와 시내로 향한 버스를 타고 번화가에 도착하여 옆길로 접어드니 과연 그곳에 호텔이 있었다. 호텔에는 조상을 찾아준다는 안내문귀가 있었다. 해외 아이리시가 일억 이상이 지구촌에 살고 있는 반면 에이레 에는 불과 삼백만 정도 거주하니까 뿌리찾아오는 아이리시에게 그들의 조상을 찾아준다는 이야기 인 것이리라. 바다와 이어지는 강이 더불린을 가로지르고 있기에 건너 보았다.박물관과 칼레지 성당 순레를 미루고 우선 먼저 주점으로 들어 가보는게 급했다. 과연 술꾼의 나라 답다. 영국인들은 아이리시를 꺼리는데 대부분 술울 많이 마시고 목소리가 크고 걸핏하면 주먹질하며 잘 싸우기 때문이란다.까만 기니스로 먼저 시동을 걸고 아이리시 위스키로 노독을 달랠 요량으로 주문을 하였다. 주점은 이른시각이지만 왁자지끌한데 어라 특이한 영국식 엑센트는 싹 없고 미국식 억양들이다.그러니까 영어도 브리튼의 영향을 덜 받고 고착된 듯 하지만 어학전공자가 아닌 주제에 무어라고 단정적으로 자신있게 진단을 내릴 수는 없으니깐 나중에 전문가에게 물어 바야 할 사안이다. 돌아오는 길에 쓰여진 표지판에는 영어와 함께 게일어가 병기되어 있다.조금씩 눈에 비치는 켈트의 소박한 문양도 이곳이 아일랜드임을 확연히 가르쳐 주는 것의 하나이다. 번화가에 들어서니 과연 쾌할한 더불리너들이 웃고 떠드는데 거리 한가운데 인파 사이에 받침대도 없는 구리 동상이 있었다.애꾸눈위로 넓은 챙 모자의 아저씨가 파이트를 물고 있었다.제임스 조이스 였다. Riders to the Sea를 생각하면서 위스키에 취해 잠을 잦는데 한밤에 깨어 버렸다. 부시럭 거리며 남은 술잔을 채우고 얼음을 구하러 로비로 나왔다.호텔이라 하지만 오밀조밀한 전통건물이었다.두리번 하는데 육중한 체격의 근사한 아저씨가 나타났다. "여기 투숙객 이요"라고 뭍는다.자신이 이곳의 주인이라면서 몇호실에 있는냐 하더니만,"그방에서 제임스 조이스가 글을 썻었다네"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아! 그렇구나,그러고 보니 "더불린 사람들"이라는 책자의 표지에서 본 그림이 생각나는데,아! 과연 호텔 밖에서 보니 바로 그 그림 그데로가 아닌가! 트리니티 칼레지의 시커면 외관이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 해준다. 예이츠가 공부하던 곳이 아니던가.학교를 나와 발가는데로 내버려둔다. 헨리 팔세와 에리자베스가 무자비하게 살육을 일삼았고 또다시 크롬웰이 짓밟은 애환의 아일랜드 그 한복판 시가를 다리 아푼줄도 모르고 걸었다. 존웨인이 나오던 영화 "아일랜드의 훈풍"을 기억하는 한편 아이리시들의 부활절 봉기와 독립운동을 되새겨 보면서.... IR을 집어타고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향했다. 척박한 땅이라지만 구를지와 해변은 아늑하다.한시간 쯤 가다가 기차에서 내려 무작정 바닷가로 가서 검은 모래사장을 거닐다 낚시꾼을 보았다.
산디아고
H교수는 샌프란시스코에서 C 사장은 뉴욕에서 K백수는 덴버에서 출발하여 이곳LA공항에 오후 3시쯤 만났다.그리고는 H교수 능숙하게 렌터카 회사로 가서 포드 승용차 한 대 빼왔다.우리 셋은 태평양을 오른 편에 두고 신나게 산디아고로 달려갔다.잠깐 눈을 부치고 멈춘 곳에서 일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그 굉장한 광경이란 기가막혀 무어라 씨불거리기에도 벅찼다. 샌디에고 진입 고속도로에는 군데 군데 주의 표지가 있고 어린이와 여자가 뛰며 횡단하는 그림이 실루엣으로 그려져 있다. 멕시칸 불법 이민자가 목숨걸고 시속 100KM의 자동차 사이로 뛰어 든다는 것이다. 우축의 국경선에서 좌측의 LA방향 고속도로 쪽으로 옮겨 와야 약속된차량을 만날 수 있다한다.국경을 몰래 넘는데 1000달러 LA까지 이동비가 1000달러 취업 알선비가 1000달러나 든다나.캐리포니아는 원래 멕시코 땅이 아니였던가. 자기들 고향을 찾아오는데 그렇케 돈이든다.이 돈은 취업해서 값어 나가는데 안주면 어김없이 해결사가 난타난다. 산디아고는 미해군의 요람이자 관광지다.멕시코 쪽 티후하나의 근무지를 출퇴근하는 한인들도 많이 있고 멋진 불고기 식당도 있다.
모텔을 잡고 LA친구에게 전화를 했다.<야 잘있어서 모래 갈테니 마중나오고 골프나 함 치자><아니 이시키 또 왔어 니기는 IMF도 없나>이 친구는 미국 온지 24년 되어 미국식 사고가 몸에 베였다.벌써 두 번이나 갔었고 이번이 3번째인데 상당히 찜찜해 하는 반응이다. 이 친구 에나하임에 세차장 체려 놓았는데 엘니뇨로 LA 일원에 늘 때아닌 비가 몇달체 내려 장사 조져버려서 돌아뿌릴라 하는 모양이다.
마르린 몬로 와 잭 레몬 토니 커티스가 나오는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 "의 촬영 장소이던 미국에서 제일 비싸다는 호텔 옆에 골프장이 있어서 그 리로 갔으나 그날 마을의 컴피티션이 있어 결국 못치고 우리 일행은 외각지 코스로 향했다.이곳에서는 오케이란다그래 진행원에게 <아이 러뷰>라고 했더니 싱긋이 웃는다.신나게 한코스 돌고 있는데 보안관이 멀리서 망원경으로 관찰하다가 닦아왔다.부킹여부를 문는다. 만약 공짜로 살며시 골프치는 것과 제대로 규칙을 준수하는 것을 체크하는 것이다. 마치고 시원한 비어로 갈증을 해소하고 귀소하려는데 이런 렌트카 열쇄가 없어진 것이다.아까 차에 지갑가지로 H교수로부터 키를 넘겨 받은 기억이 있는데 그 이후가 오리무중이다.H는 화가 상당히 낫고 만약 LA까지 차를 돌려 주지 못한다면 보통 골치 아픈 문제가 아니라 큰 낭패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비난의 눈길이 나에게 쏟아진다. 하여튼 샌디에고 렌트카 지사와 접촉하여 차 키를 구하여야 할판이다.<저 새끼 하는 일은 늘 이모양인기라> 하고 혀를 차는데.나는 축 처진 발걸음으로 자동차 주변을 살펴 볼 요량으로크럽하우스를 나왔다.
그때 미국 아줌마가 담배를 피우고 구조물에 걸터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내가 슬슬 그쪽으로 같더니만 미국여자 하는 말슴.What you lost? wife? children? 내가 풀이 죽어 비실대니까 귀신 같이 무얼 일어 버린걸 감 잡은 모양이다.< I do not lost them but I lost lent car's key and so my friends would kill me.> 그러면서 담배 한 대를 청하니 Why not 하면서 불까지 붙여준다.이 미국 아줌마도 한잔 걸친 듯 열쇄고 머고 간에 둘이서 콩이야 팥이야 하며 히히덕 거리는데, 두친구 멀리서 내 꼬락서니를 보고 미쳐버릴라 한다. 이때 크럽하우스에서 연락이 왔다. 키를 찾았다는 것이다.매점에서 누가 주워 카우터 갖다 준 것이다.H와 C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나는 미국 여자와의 수작을 멈추어야 만 하는 것이다. 제기럴 잘 되어 가는데 둘이서 바로 가서 새로 한잔 주고 받기로 하는 판인데,그렇타고 의리없게 혼자 남을 수는없는 법 열쇄까지 잃어 버린 주제에 아쉬움을 뒤로한체 산디아고 모텔로 돌아왔다.
첫댓글 장글 쓰씨느라 수고 많으셨어요감 했습니다
중국 일본 프랑스 독일 아일랜드...텐마크는 내일...올림
하이구 첨지님요
갑자기 변장을 싸악해가 와이라는교
글을 마 짜드리 모라가 짠잔하이
비이지도 안하구마는요
글자크기 쫌 널쿠코
하루 항개씩 보도록 쫌 해주소
몽탕몽땅 짤라가
어제 그마이 말햇띠
니는 주깨라 이건교
근데 억수로 인테리네요
오만데를 다 여사로 댕기삿네요
눈이아파가 보다마다 보다마다
하구마요^^
룩 앤 미 ! 함 바주소?...국물도 없다...NO SOUP...!
하하하하하
첫사랑님 바로 이깁니다.애교가 철철 넘친다 아닙니까.
갱상도 억양이 사알살 가을바람 같아예..
그라니까네 첨지스키님 와 이라는지 당췌 모리깄네예.
하하하하 이리오너랑~~~교 멍교.
@조롱박가든 내싸마 답따바가 참말로
가든님 이게 멍교 멍게도 아이고
이래노코 궁물도없다 캐사코^^
@조롱박가든 여기서 꾸러기빼놓고 당췌 쇄주 몇병을 드셨는지?
모두들@#$%
아이구 아까버래이 이래 질고 존글로
가따가 한구디 다모라 여노코
쫌농갈라 씨제 이글로가따가 날로
주마 일년은 우라묵께꾸만도
주게 든 님이 임자라카이 할수없제
맘대로 하시소 그라고 잘계시소^^
AFP/I'm dying ~~ㅎㄷㄷ
늦은 밤이라 김첨지님의 글은 내일 맑은 정신으로 읽을꺼고
걱정 됩니다 첫사랑님 입비뚤어질까봐
저는 이댓글을 읽기도 힘드네요 ㅎㅎㅎㅎ
@꾸러기mom 꾸맘님도 잘 주무시소 ㅋ
소생 70노구에...4개국어를..영 불 서반아.중국어 해독함
@김첨지 예삿분이 아니시란거 진즉에
감지했습니다
터억턱 던지면 글이되는 ㆍ ㆍ
그게 어디 그냥 됐겠습니까
즐겁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음... 외지에서,..어금니와 치통이라니..한때 이빨 수난을 많이 겪으셨군요..
모쪼록 환절기에 건강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