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30일 연중 4주간 화요일(마르5,21-43)
♡믿음의 손♡
어려서의 기억입니다. 배가 아프다고 하면 어머니께서는 놋쇠 밥그릇뚜껑을 따듯하게 하여 배에 올려놓고 쓰다듬어 주셨습니다.
때때로 “엄마 손이 약손이다” 하시며 배를 만져주시면 곧 통증이 멈추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일반적으로 배를 차게 하면 탈이 나니까 밥그릇 뚜껑을 이용해 따뜻하게 해 줌으로써 그 원인을 치료해 주었던 것입니다. 거기에다 어머니의 사랑과 믿음이 담긴 약손이었으니 낫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려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는 마을 사람들에게서 명예와 존경을 받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회당장이 “예수님을 뵙고 그분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누구 앞에 엎드린다는 것은 항복한다는 것이요, 모든 것을 맡긴다는 의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릎을 꿇었다는 것은 그의 믿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어린 딸이 병으로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기에게 다가온 큰 고통이 그를 무릎 꿇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주님의 능력을 만났습니다. 그렇다면 고통도 은총의 한 부분입니다. 사실 주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의 시련과 역경, 고통, 눈물을 거두어 주리라!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라. 믿음으로 승리하여라!
일반적으로 회당장처럼 높은 직책을 가지고 있으면 근심걱정거리가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회당장의 내면을 보면 감당할 수 없는 아픔을 안고 있었습니다. 회당장은 그 고통을 통하여 그동안 보지 못했던 곳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고 자신의 무능력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결국 무릎을 꿇고 “아이가 병이 나아 다시 살게 해 주십시오”(마르5,23). 하고 간곡히 청하였습니다. 만약에 회당장이 죽어가는 어린 딸을 절망과 슬픔 속에서만 바라보고 있었다면 아이를 살리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지위도 있고 아쉬울 것이 없는 회당장이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어린 딸에 대한 한없는 사랑은 그보다 더한 일도 하게 합니다.
우리는 일상 안에서 남모르는 근심 걱정거리를 안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말 못할 고민이나 근심 앞에서 회당장처럼 무릎을 꿇는지, 아니면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도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마르4,39) 하고 두려워하는 태도를 취한 제자들의 모습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시련과 고통, 어둠 속에서도 주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내 안에 자리를 잡고 당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말에는 커다란 힘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말을 잘 할 때? 아니면 많은 말을 할 때? 아니면 강한 폭력과 함께 할 때? 아닌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잘 들어주는데서 힘이 나타납니다. 말을 잘 듣는 사람은 그만큼 자기 안에 말을 정제할 것이고, 그 말이 아주 짧고 간단한 말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정제된 말에는 힘이 넘쳐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말을 잘 듣는 사람은 화도 내지 않습니다. 화를 조절해서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람을 존경하고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사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모습 역시 잘 들어주는 것이었습니다. 폭력으로 사람들을 당신 발 앞에 무릎 꿇릴 수 있는 힘이 없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죄로 계속해서 기울어지는 모습을 갖고 있는 부족한 우리이지만 계속해서 기회를 주시면서 우리의 말을 들어주고 계십니다.
이렇게 사랑으로 다가오시는 주님께 우리는 당연히 사랑으로 또한 감사의 마음으로 응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이며, 이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주님의 손길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