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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로는 부족하다. 너무 아름다운 뉴질랜드
이스라엘 여행자 론과 함께한 남섬 여행
아름다운 뉴질랜드의 남섬을 자전거로 여행 중인 우리는 크라이스트처치를 시작으로 마운트쿡을 거쳐 더니든, 밀포드사운드, 퀸스타운을 차례로 여행할 계획이다. 이제 여행 3일째인 오늘은 제랄딘의 홀리데이파크에서 만난 이스라엘 출신 자전거 여행자 론과 함께 당분간 함께 여행을 하기로 했다. 그와 함께 하는 오늘은 과연 우리 앞에 어떤 모험이 기다리고 있을까? ( 글 사진 = 이성종 손지현 )
- 38km밖에 안 왔는데 왜 이리 멀게 느껴지는 걸까? 그래도 짧게나마 내리막이 보이니 기분이 좋다.
- 드디어 오르막의 정상에 올랐다. 기념으로 단체 사진 찰칵!
- 론과 그의 자전거. 그는 외발 트레일러를 사용하고 있는데 정말 엄청나게 많은 짐을 싣고 다닌다. 그런데 그의 짐의 대부분은 음식물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설탕 소금 쌀 캔 할 것 없이 한 자루씩 가지고 다닌다.
그의 이야기
게으름뱅이 론
론과 함께 여행하기로 한 날 아침, 우리는 아침 일찍 일어나 오늘의 일정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시간은 벌써 8시를 조금 넘어가고 있었지만, 7시 30쯤 되어야 동이 트고 오후 9시 가까이에 해가 지기 때문에 이쯤이면 이른 준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오늘의 식량을 구입하기 위해 가게를 다녀온 뒤 짐을 꾸려 자전거에 적재하고 론을 기다린다. 그런데 이제야 일어나 텐트에서 나온 론은 우리에게 너무 이르다며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의 사상에 따르자면 여행이라는 것은 그저 현실에서 벗어나 발길 닿는 곳으로 유유자적 돌아다니는 것이기 때문에 굳이 일찍 일어날 필요도 없고 빨리 갈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지? 오늘 같이 테카포호수 까지 가고 싶은데 늦으면 못 갈 것 같아.”
“뭐? 테카포호수까지 간다고? 여기서부터 거기까지는 계속 오르막인데.”
“그런가? 그래도 가보는데 까지는 가봐야지.”
“불가능한 거리는 아니지만 꽤나 힘든 여행이 될 거야. 열심히 해봐.”
“충고 고마워.”
“고맙긴, 암튼 그럼 이렇게 하자. 나는 남자 혼자니까 너희 둘이 먼저 출발하면 내가 열심히 달려서 따라잡을게. 못 만나면 뭐 어쩔 수 없고.”
“그래도 괜찮다면 그렇게 하자. 우리는 일정이 3주밖에 안되니까 좀 서둘러야해. 시간 여유 있는 네가 부러워.”
그렇게 론과 잠시 이별을 고한 뒤 테카포 호수를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마운트쿡을 향해 가는 국도를 따라 달리기 시작하니 점점 뉴질랜드의 진면목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국도에 올라서자마자 낮은 산에 자리 잡고 있는 많은 양들이 우리를 반겨준다.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양을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기에 흥분되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국도에는 차도 별로 없어서 도로를 장악하고 사진도 찍고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었고, 꽃밭을 지날 때면 셀 수 없이 많은 나비가 우리를 감싸 정말 이곳이 천국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오늘따라 속도가 느린 것 같다. 그저 너무 여유를 부려서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힘이 들어 애꿎은 타이어만 터진 게 아닌지 의심을 한다. 그런데 정작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오르막! 론이 이미 말했듯 우리가 달리는 길은 계속 아주 완만한 오르막이었던 것이다. 너무나도 완만하기에 오르막이라는 생각조차 안 드는 오르막이 길게 뻗어 있었던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면 당연하게도 해안선의 고도는 해발 0미터 정도이고 테카포 호수 주변의 고도는 해발 800미터 이상이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거의 하루 종일 오르막을 올라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급격한 오르막 보다는 완만한 오르막이 달릴만하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오르고 있자니 뒤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린다.
“헤이~ 생각보다 많이 왔는데? 따라잡느라 힘들어 죽는 줄 알았어.”
“벌써 왔네? 우리는 네가 한 시간은 더 있어야 올 줄 알았는데 말이지.”
“나름 열심히 달려왔지. 그런데 내가 안 좋은 소식을 하나 알려줄까?”
“뭔데??”
“조금만 더 가면 가파른 경사의 산을 하나 넘어야 해.”
“그거 정말 안 좋은 소식인데?”
론은 뉴질랜드 도로 구석구석 고도와 캠핑장 정보가 수록되어 있는 자전거 여행용 책자를 가지고 있었기에 그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도 살까 하다가 생각보다 작고 조악한 품질에 만원이 넘는 가격이라는 것을 보고 구입을 망설였지만, 생각보다 꽤나 유용한 책자였다. 나중에는 그의 책자를 빌려서 우리가 갈 곳의 고도가 나와 있는 부분을 사진기로 찍은 뒤 컴퓨터에 저장해두었는데, 꽤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아무튼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말한 것처럼 가파른 오르막이 우리를 가로막았다. 호주에서는 오르막에 별로 올라본 일이 없는 아내는 상당히 고전하는 눈치이다. 게다가 오르막에서 페이스를 맞추어 올라가는 것은 꽤나 힘든 일이므로 론은 정상에서 기다린다는 말을 남기고 먼저 올라가버렸는데, 론이 사라지자 긴장이 풀린 아내는 갑자기 속도가 쳐지고 포기를 선언한다.
“헉....헉.... 나 진짜 못가...”
“힘내 다 올라가면 내리막이야.”
“헉.... 헉.... 헉.... 내리막 끝나면 다시 오르막이잖아.”
“점심에 맛있는 거 해먹자.”
“헉.... 난 오늘 요리 안 해.”
“알았어. 내가 다 할게. 그리고 퀸스타운에 도착하면 쇼핑하게 해줄게.”
“정말? 약속 지켜야 돼.”
옷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아내의 심리를 이용하는 것이 양심에 찔리긴 하지만 약발이 있었던 것인지 아내는 그 오르막을 끌바 한번 안하고 정복했다. 정상에서 기다리던 론도 아내에게 잘했다며 박수를 쳐주며 우리를 맞이해주었고, 이곳에서 우리는 아름다운 배경을 바탕으로 단체 사진을 한 장 찍었다. 힘들었던 만큼 보람찬 시간이었다. 다시 내리막을 내려와 도착한 마을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 우리는 일정에 관해 회의를 하기 시작했다.
아내: “나 오늘 그만 달리고 이 마을에서 쉬고 싶어.”
나: “아직 1시밖에 안됐는데?”
아내: “그래도 나 힘들어. 론은 어떻게 생각해?”
론: “테카포까지 가는 길에는 지금까지 온 길보다 경사가 더 가파른 곳이 몇 군데 있어. 테카포까지 가는 일정은 꽤 무리라고 생각해.”
나: “그 대신 이 마을은 너무 가깝잖아? 좀 더 가다가 나오는 마을에서 쉬면 안 될까?”
론: “그것도 좋지. 나는 상관없으니 숙녀 분께서 하고 싶은 대로 하겠어. 어떻게 생각해?”
아내: “그럼 다음 마을에 캠핑장이 있는지 확실히 물어보고 가든지 말든지 하겠어.”
나: “그럼 그렇게 해”
아내는 론이 자기편을 들어 준 데다 달려야 하는 거리가 줄어들어 상당히 신난 눈치였다. 나도 사실 적은 거리를 꾸준히 달리며 아름다운 곳에서 몇 날 며칠 쉬어가고 싶지만, 이번 뉴질랜드 여행에 할당된 21일은 그런 여행을 만들기에는 너무나도 촉박한 시간이기에 마음이 급해져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좀 더 가볼 요량으로 그 마을에 있는 야영장 주인아저씨에게 다음 마을에도 캠핑장이 있냐고 물어봤더니 아저씨의 상술인지는 몰라도 퉁명스레 여기 말고는 없다고 대답하셨다. 그리하여 오늘은 이 마을에서 오후 내내 휴식을 취하고 내일은 좀 더 멀리까지 가는 것으로 일정을 정하게 되었다.
야영장 한 구석에 텐트를 치고 휴식에 어울리게 바비큐파티를 하기로 결정한 우리는 근처 마트에 가서 소고기와 스파게티를 만들 재료를 준비하여 야영장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오는 길에 반가운 얼굴이 보인다. 그들은 바로 첫 날 라카이아 리버 야영장에서 만난 독일인 자전거 여행자 커플이 아닌가? 그들은 우리와 헤어지고 고속도로를 벗어나 내륙으로 들어갔는데,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마운트쿡을 향해 간다고 하더니 헤어지고 불과 이틀 만에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그동안의 안부를 나누는 사이 론이 우리의 바비큐 파티를 준비해주었다.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누며 그저 자전거로 여행한다는 주제 하나만을 가지고 모두 다른 언어를 쓰는 독일인, 이스라엘인, 그리고 한국인 다섯 명이 모여 늦게까지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이제 내일이면 사진으로만 보아오던 아름다운 호수 테카포에 오르게 된다. 과연 어떤 장관으로 우리를 맞이해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지금까지 즐거운 일들이 계속 일어나서 더욱 기대가 되는 뉴질랜드에서의 자전거 여행이다.
- 드디어 시작된 우리의 바비큐. 오늘의 고기는 론이 책임지고 굽기로 했다.
- 즐거운 식사시간!
- 즐거운 식사시간!
부록#1. 뉴질랜드 자전거 여행을 하기 좋은 시기
일단 뉴질랜드의 기후는 우리나라와는 정반대이다. 우리나라는 남반구, 뉴질랜드는 북반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인데,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눈사람을 만들며 크리스마스를 지내는 것과는 반대로 이곳에서는 수영복을 입고 크리스마스를 즐긴다. 전반적으로 전형적인 해양성 기후를 보이고 있어서 여름에도 그다지 덥지 않고 겨울에도 그다지 춥지 않다.
그렇지만 뉴질랜드는 남반구에서도 가장 남쪽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호주나 남태평양 일대의 섬들보다는 좀 더 추운 기후를 가지고 있고, 자전거 여행자들이 선호하는 뉴질랜드의 남섬, 그중에서도 내륙지방은 뉴질랜드에서도 가장 추운 기후를 가지고 있기에 한겨울에 혹한에 대한 대책도 없이 이곳을 여행했다가는 소리 소문 없이 실종될 위험이 상당히 크다. 때문에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한겨울에 이곳을 여행하시겠다는 분들을 말리지는 않겠지만, 일반적으로 한겨울인 6~8월은 피하시는 것이 좋겠다. 실제로 필자도 여름인 12~2월의 끝자락에 해당하는 2월 중순~3월 말에 여행을 했지만, 내륙지방을 여행할 때 새벽에는 추워서 텐트 밖에도 못나갔었다. 그리고 아침에 자전거에 오를 때에는 옷을 몇 개씩 껴입고 있다가 해가 뜨고 공기가 점점 따뜻해지면 겉옷을 벗고 여행을 했다. 이처럼 일교차가 크기 때문에 여름철에도 캠핑을 하려면 따뜻한 옷과 따뜻한 침낭은 필수라고 할 수 있겠다.
겨울철을 피해야하는 이유가 한 가지가 더 있는데, 그것은 바로 강우량이다. 뉴질랜드의 강우량은 겨울철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분명 눈으로 뒤덮인 뉴질랜드의 모습도 아름답기는 하겠지만, 자전거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장비의 무게 상승, 가격 상승, 꾸리기 귀찮음 등 상당한 준비 과정과 귀찮은 일들이 뒤따를 것이므로 이를 충분히 숙지한 뒤 여행 계획을 세워야 할 것이다.
- 일출과 함께 시작하는 여행은 경건한 기분이 들게 한다.
- 내륙으로 들어오자 양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진속의 흰 점이 모두 양이다.
- 지나가는 자전거 여행자가 우리에게 파이팅을 외치며 지나간다.
- 지겨운 오르막을 오르고 있다. 화이팅!
- 이곳이 바로 테카포 호수입니다.
그녀의 이야기
믿기지 않는 풍경의 테카포 호수
새벽같이 일어나서 텐트를 걷는다. 아직 해도 뜨지 않았건만 우리는 짐을 다 싸고 떠날 채비를 한다. 혹시나 옆자리의 론이 깰까 조용히 야영장을 빠져나와 도로에 들어선다. 우리가 이렇게 도둑고양이처럼 빠져나가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어제의 짧은 일정이 마음에 걸렸던 남편이 오늘은 구지 테카포를 지나 트와이젤까지 달리겠다고 고집을 피우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내로 도착을 못하면 일정에 차질이 많다나 뭐라나 하는데 나는 그냥 여유 있게 보는데 까지만 보고 나중에 시간 여유가 있으면 다시 오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나 이런 나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편은 앞에서 재촉만 하고 있다. 그래서 게으름뱅이인 론은 더 자게 내버려두고 우리가 먼저 테카포로 향하는 것이다. 체력 좋은 그라면 아마도 우리를 금방 따라잡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내 입장에서는 여자인 나를 잘 배려해주고 마음 편하게 해주는 론이랑 같이 출발하고 싶지만, 남편의 고집을 꺾지 못하니 이렇게 묵묵히 따라갈 수 밖에 없다.
새벽의 차가운 공기는 우리의 졸음을 싹 잊게 해주고 멀리서 떠오르는 햇살은 우리의 시야를 밝혀준다. 아직 계절상으로 여름이지만 내륙으로 들어갈수록 떨어지는 아침 기온이 우리가 남반구의 최남단 뉴질랜드, 그것도 남섬에 와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해준다. 더불어 드는 생각은 왜 우리는 반팔과 반바지만 챙겨왔을까? 이렇게 추운지도 모르고 말이다. 다행히도 낮에는 더워서 상관이 없었지만 아침저녁, 그리고 비가 오는 날이면 너무 추워서 옷을 세 겹씩 껴입어야만 했다.
이렇게 아침에 자전거를 타는 것은 꽤 즐겁다. 한낮에 땡볕을 피하는 것도 분명 그 이유 중의 하나이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부지런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는 것이다. 자전거를 타는 중에 맞는 일출과 오늘은 그 누구도 달려가지 않았던 것 같은 신선한 도로의 느낌, 그리고 아침이슬을 가득 머금은 풀들을 보면 누구라도 그런 생각을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새벽에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한다.
오늘도 역시 은근한 오르막의 연속이다. 반대편 차선에서 달려오는 자전거 여행자가 내리막을 신나게 내려가며 우리에게 불쌍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벌서 몇 시간 째 오르막을 올라왔건만 내리막은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늘은 바람마저도 우리를 버렸는지 맞바람이 강하게 분다. 신이 있다면 오늘만큼은 우리의 편이 아닌가보다. 그래도 고지대로 올라가면서 변화하는 뉴질랜드의 자연환경이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해안가에서 낮은 구릉지대, 그리고 메마른 황무지 지대를 지나니 저 멀리 ‘써던 알프스’ 산맥의 웅장한 모습이 우리의 시야를 사로 잡는다. 이름 그대로 남반구의 알프스라고 불리는 이곳은 마운트쿡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 산맥인데, 높은 산과 만년설, 그리고 그 빙하가 녹은 호수들이 모여 아름다운 절경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렇게 빙하가 녹은 호수는 빙하의 석회질 성분 때문에 마치 에메랄드빛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색깔로 우리 눈에 비치게 되는데, 각 호수마다 이 성분의 함량의 차이 때문에 같은 빙하 호수라도 색이 다르게 보인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빛깔을 뽐내고 있는 곳이 바로 오늘 우리가 갈 테카포 호수라고 하니 정말로 기대가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오르막은 내리막으로 바뀔 생각도 안하고 가깝게 느껴졌던 테카포 호수는 쉽사리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남편은 호수까지 이제 고작 5km가 남았다고 하는데, 도저히 그 거리가 줄어들지를 않는다. 하루 종일 오르막을 올라와서 체력도 없는데다가 맞바람이 호수를 얼마 안남기고 정말 심해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호수에 거의 다 왔다는 생각에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페달을 밟아나간다. 이제 이런 오르막도 별 불평 없이 오르고 있는걸 보면 그동안 나도 자전거 실력이 늘긴 늘었나보다. 힘들게 한발 한발 오르고 있는데 남편의 함성소리가 들린다. 드디어 테카포 호수가 특유의 에메랄드빛을 뽐내며 웅장하고 압도적인 자태로 내리막과 함께 등장했기 때문이다. 오늘의 성취감은 아마도 내가 자전거 여행을 시작한 이후 처음 맞는 느낌인 것 같다. 내 힘으로 해냈다는 느낌에 온몸이 짜릿해져 온다. 점점 호수를 향해 다가갈수록 숨이 막혀오는 장엄함과 성취감에 나는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드디어 도착한 호숫가에 자전거를 잠시 멈추어 놓고 호수로 달려간다. 그리고 그 물을 한 손 가득 떠본다. 분명 내 손에 있을 때는 이렇게 투명하고 맑은 물인데, 조금만 고개를 들어보면 에메랄드빛이라는 것에 너무 신기해하며 물을 한 모금 마셔본다. 정말 맛있다.
호수를 한 바퀴 둘러본 우리는 공원에 앉아 라면을 끓여먹기로 했다.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라면이 좀 안 어울린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이 순간 라면에 김치가 생각난다는 것이 역시 우린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인가보다. 힘들었던 오전 일과 때문에 허겁지겁 라면을 먹고 있는 우리에게 어떤 아이가 말을 건넨다.
“이 깃발 왜 달고 다녀요?”
“한국인이니까 태극기를 달지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 아이는 아빠를 부르며 달려갔다. 한국인이었던 것이다. 잠시 후 그 아이는 아빠와 함께 다시 나타났다.
“반갑습니다. 뉴질랜드에서 여행하는 한국인은 많아도 자전거로 여행하는 사람은 처음 봤네요.”
“네, 아무래도 많지는 않으니까요.”
“우리는 휴가로 퀸스타운 갔다가 다시 크라이스트처치 가는 길인데, 길 위험하니까 조심하세요.”
“지금까지 길은 참 괜찮았는데, 그쪽은 좀 위험해요?”
“전체적으로 괜찮긴 한데, 가끔 미친 사람들 많으니까 정말 조심해야 돼요. 특히 퀸스타운 근처에서는 정말 조심해야 돼요.”
“네, 감사합니다. 이런데서 한국인을 만나니 반갑네요.”
“그러게요, 크라이스트처치 들를 일 있으면 놀러 와요, 내가 숙식 제공 해 드릴 테니까.”
“와, 정말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다가온 부자는 우리에게 연락처를 남기고 사라졌다. 여행 중 이벤트가 하나 더 늘어난 느낌이라 기분이 좋다. 그리고 이렇게 우리의 여행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분이 계셔서 너무 기분이 좋다. 관심에 보답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야 하는데 말처럼 쉽지는 않다. 언젠가는 그 사랑에 꼭 보답을 하고 싶다.
잠시 쉬고 오늘의 오후 일정을 준비하는데 반가운 얼굴들이 보인다. 바로 론과 독일인 커플이다.
론: “일찍 왔는데? 오늘 맞바람 장난 아니었지?”
나: “말도 마. 나 오늘도 그냥 여기서 쉬고 싶어.”
남편: “나도 일정만 아니면 그러고 싶을 정도로 너무 아름답다 여기.”
론: “그래, 여기 정말 꿈에서나 보던 풍경이다. 이런 풍경을 보고 있다니 믿기지가 않아.”
나: “정말이야. 이렇게 아름답다니.”
론: “나는 여기서 며칠 머물 생각이야. 이 근처의 산들을 올라보고 싶어.”
나: “그래, 정말 좋겠다. 그럼 우리 이제 헤어지는 건가?”
그렇게 작별을 하고 우리는 테카포를 떠나지만, 론과는 왠지 헤어짐이 아쉽지가 않다. 아마도 어디선가 또 만날 것이라는 강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테카포를 뒤로하고 오늘의 목적지인 트와이젤 까지 가는 길은 내리막이라고 한다. 남편의 말에 따르면 말이다.
일행들과 인사를 나누고 트와이젤을 향해 떠나고 있는 현재 시각은 오후 4시 일몰시간은 오후 9시 트와이젤까지 남은 거리 약 45km인데 걱정이 앞선다. 난 이미 지쳐있었고 불길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자의 직감 이란 것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라 불안해하면서도 남편을 믿고 따라가지만 가도 가도 내리막은커녕 오르막만이 이어질 뿐이다. 그래서 남편에게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더니 돌아오는 황당한 대답은 이것이었다.
“길을 잘못 들었어.”
이로써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더욱 줄어들고 말았다. 남편의 설명으로는 테카포부터 레이크 푸카키까지는 수력발전용으로 만들어놓은 수로가 있는데 그 수로를 따라 길이 잘 나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입구를 못 찾아서 일반 국도로 온 것이라고 한다. 거리상으로는 큰 차이가 안 난다지만, 당장 눈앞에 오르막이 버티고 있으니 마음은 점점 불안해진다. 잠시 후 겨우 오르막의 정상에 오르지만 그곳에서 우리를 반겨주는 것은 어마어마한 맞바람이었다. 여기서부터 트와이젤까지는 마을이 하나도 없고, 황량한 황무지만이 있는 이 곳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캠핑할 장소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테카포로 되돌아 갈수도 없는 우리는 사면초가의 상황에 빠졌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 테카포에 그냥 머무르자던 내 의견을 무시한 남편이 미워진다. 그래도 뭔가 믿는 구석은 있으니 이렇게 무리하게 달려왔겠지? 해는 점점 져오고 앞으로 갈수도 되돌아갈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진 우리는 과연 어떻게 될까? 과연 남편의 판단은 무엇일까? 불길한 기운이 우리를 엄습해온다.
- 독일인 커플과 함께 기념촬영. 코가 너무 많이 타서 어쩌나?
- 독일인 자전거 여행자의 자전거를 찍어보았다. 역시 가방과 랙 타이어 등 많은 부분에서 독일제를 찾아 볼 수가 있었다. 전형적인 자전거 여행자의 자전거이다.
부록#2. 뉴질랜드 여행 팁 몇 가지
1 - 국도를 이용하라. 고속도로는 길이 잘 뚫려 있긴 하지만, 교통량이 많고 트럭들의 위협이 있다. 그리고 항상 단조로운 모습만을 보게 될 것이다. 좀 돌아가더라도 뉴질랜드의 진면목을 보려면 국도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2 - 음식을 해 먹어라. 뉴질랜드의 물가는 가히 살인적이다. 특히 사람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상상 이상으로 비싼데, 그 중에 요리도 포함이다. 그래서 한국에서의 물가와 비교 했을 때 비싼 금액을 내고 음식을 주문했는데, 그에 비해 실망스러운 음식이 담겨 나온 접시는 여행자를 지치게 만든다. 그것은 시골로 내려갈수록 더 심해지기 때문에, 차라리 뉴질랜드를 여행할 때는 좀 귀찮더라도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을 추천한다. 팩 앤 세이브, 뉴 월드, 카운트다운과 같은 슈퍼마켓에서 식 재료를 구입한다면 우리나라에서의 물가와 비슷한 가격으로 요리를 만들 수 있고, 현지 서민들의 음식문화를 체험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3 - 텐트를 쳐라. 자전거 여행자와 캠핑은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물론 계획을 잘 세워놓고 숙소를 미리 정한 상태로 여행을 한다거나, 국내를 여행한다면 캠핑을 하지 않고도 자전거 여행을 할 수 있겠지만, 해외에서, 특히 물가가 비싼 곳을 여행할 때의 텐트는 무거워도 짊어지고 가야만 하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일반적으로 뉴질랜드에서 숙박을 한다면 가장 만만한 것이 백팩커스 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10인실 도미토리 같은 경우 1인당 $25~$30 정도의 가격대가 형성이 되어 있는데 비해서, 홀리데이 파크의 텐트 사이트 같은 경우 1인당 $10~$20 정도의 가격대가 형성이 되어 있기에 매일 $10 이상을 아낄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경치가 좋은 곳 주변에 어김없이 형성되어 있는 양심 캠핑장은 비록 샤워나 전기를 쓸 수 없다는 단점은 있지만, 숙박부에 이름을 적고 보통$5 내외의 저렴한 액수의 돈을 양심깡통 속에 넣으면 숙박을 할 수 있으니 부담이 없다. 게다가 텐트 밖을 나섰을 때 만나게 되는 대자연은 덤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텐트, 침낭, 매트리스 가격도 비싼데 차라리 아무것도 안사고 백팩커스만 이용 하는 게 더 경제적일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질문이 나올법하다. 물론 단기간의 여행이라면 그것도 맞는 말이다. 그러나 캠핑을 추천하는 이유가 단지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캠핑을 하는 자전거 여행자가 뉴질랜드에는 엄청나게 많이 있기 때문에 그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친구를 사귀기가 쉽기 때문이다. 캠핑장에 들어가기 전에 오늘은 어떤 자전거 여행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까 설레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도 뉴질랜드 자전거 여행이 가지고 있는 매력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4 - 오르막을 두려워하지 마라. 아무래도 오르막을 오르는 것은 자전거 여행에서 가장 힘든 부분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코스에서 오르막을 배제하게 되면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많을 것이다. 서울의 야경도 한강에서 보는 것과 남산에서 보는 것이 다르듯이 오르막을 오르지 않는다면 멋진 장관들을 놓치기 쉽다. 예를 들어 뉴질랜드에서 해안선을 따라 달린다면 많은 오르막을 만나지는 않겠지만 뉴질랜드의 가장 아름다운 호수들인 테카포 호수와 푸카키 호수, 그리고 와카티푸 호수를 볼 수 없으며, 뉴질랜드의 최고봉 마운트쿡 또한 볼 기회가 없다. 하지만, 여행 경로 중에 오르막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면 하루 이동 거리를 가늠하기 힘든 경우가 생기기 때문에 될 수 있는 한 자료를 많이 모아서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할 것이다.
5 - 여유 있게 계획을 짜라. 뉴질랜드의 대자연을 느끼기 위해서는 여유 있는 마음이 필수이다. 하루하루 거리에 연연해서 지금 눈앞에 있는 아름다운 것들을 놓친다면 그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을 것이다. 필자도 21일간이라는 짧은 일정을 소화하느라 바쁘게 다녔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차라리 여행 지역을 좀 더 줄이고 편안한 마음으로 하는 것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므로 뉴질랜드를 자전거로 여행하려면 일단 기간을 길게 잡고, 길게 잡지 못하면 여행 계획을 단축시키는 것을 추천한다.
- 맞바람과 싸우며 달리고 있다. 정말 여태껏 맞아본 바람 중에 가장 강력했다!
작성자 이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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