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서에 나타난 황토나 각종 흙의 의학적 효능은 해독과 설사 및 출혈을 멈추는 것으로 크게 요약된다. 설사와 출혈을 흙의 기운으로 다스린다는 것은 기존 한의학적 사고에서 매우 타당성 있는 이야기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각종 ‘자연요법’에 대한 붐이 일고 있다. 황토나 진흙도 그 중 하나다. 황토나 진흙을 이용한 팩·마사지·목욕·찜질을 비롯해 황토집, 구이요리는 물론 흙을 넣어 만든 내복까지 유행하고 있다. 환경호르몬이나 유전자 조작 식품 등으로 생활환경이 오염되면서 ‘자연으로 돌아가자’라는 움직임과 상업성이 적절히 결합되면서 빠른 속도로 번져가고 있다.
한의학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황토나 먼지, 건물벽의 흙 등을 분류하고 각각의 효능을 기록하고 있다. 「동의보감」 토부(土部)에 기록된 약재만 18가지다. 우선 우리나라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황토에 대한 활용은 상당히 빈번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황토는 성이 평하고 맛이 달아 설사와 이질을 다스리고, 열독으로 인한 통증을 다스리는 효과가 있다. 또 만물의 독을 흡수하는 효과가 있어서 육류중독 등 각종 중독과 등에 생긴 악창이나 갑작스런 황달에도 사용됐다.
황토 외에도 각종 생활환경에서 얻어지는 흙이나 먼지를 약으로 사용했다. 대표적인 것이 ‘복룡간’(伏龍肝)이다. 이는 10년 이상된 부엌 아궁이의 바닥을 파내면 자색의 흑이 나오는데 이를 약으로 사용한 것이다. 약효는 각종 출혈을 멎게 하고 종기의 독을 소멸시키고 산후에 태반을 쉽게 내리고 어린이가 밤에 우는 병을 치료하는 것이다. 또 ‘동벽토’와 ‘서벽토’라는 것도 있다. 오래된 건물의 동쪽벽과 서쪽벽을 긁어서 사용한 것이다. 동쪽벽은 가장 먼저 태양의 기운[陽氣]을 받은 흙을 이용해 설사나 곽란 등을 치료하고, 서쪽벽은 해질 무렵의 태양이 비친 것으로 음기(陰氣)가 강하니 기운을 아래로 내리는 성질을 치료에 이용한 것이다.
한의서에 나타난 황토나 각종 흙의 의학적 효능은 해독과 설사 및 출혈을 멈추는 것으로 크게 요약된다. 설사와 출혈을 흙의 기운으로 다스린다는 것은 기존 한의학적 사고에서 매우 타당성 있는 이야기다. 오행의 상생상극 이론에서 ‘토극수’(土克水)에 해당한다. 홍수[水]가 범람할 경우 흙(土)으로 만든 댐이나 제방을 세워 홍수를 제압하는 것을 연상하면 된다. 심한 설사·이질은 비위의 토(土)기운이 허약한 반면 수(水)기운이 강한 경우가 많다. 즉 물이 넘쳐 흙으로 만든 댐이나 제방이 무너진 경우다. 이런 경우 비위를 보하는 것과 함께 토(土)기운을 가진 약재를 사용해 무너진 제방을 복구하면 치료가 된다. 이같은 자연의 원리는 우주의 축소판이라 불리는 인체의 질병치료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설사와 출혈을 멈추는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지사제나 지혈제를 볶거나 살짝 태워서 사용하기도 한다. 약초를 태우는 과정은 토(土)기운을 강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다. 각종 출혈과 설사·이질 등에 황토를 약으로 활용한 것도 비슷한 관점이다.
중국에서는 1950년대까지도 흙을 먹는 풍습이 쉽게 관찰됐다고 한다. 치료 목적보다 기근 때 음식 대용으로 활용한 것이다. 몇 년 전 캐나다의 한 대학에선 중국의 황토를 분석한 결과 철·칼슘·마그네슘·칼륨 등 필수 영양소들이 풍부한 것으로 밝혀졌다. 아프리카에서 기근 때 식용으로 사용하는 흙에도 주변토양보다 미네랄이 수백 배나 많았다고 한다. 영양실조를 최소화하는 데 흙을 먹는 것이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는 게 밝혀진 셈이다. 물론 영양상태가 양호한 현대인들이 영양보충을 위해 황토를 먹자는 뜻은 아니다. 다만 황토에 들어 있는 각종 성분들이 여러 모로 유익한 부분이 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시사한 것이다.
황토의 해독효과도 과학적으로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맹독성 농약에 중독됐을 때 사용하는 해독제가 황토에서 주성분을 추출한 것이다. 또 미국의 한 동물학자는 앵무새가 매일 흙을 먹는 이유를 조사한 결과, 주로 먹는 열매나 씨앗의 독성을 중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한때 1g의 흙에만 수억 마리의 세균이 우글거린다며 부정적인 측면이 부각됐지만, 페니실린을 비롯한 각종 항생제도 결국 토양미생물의 산물이다.
“사람은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처럼 흙을 가까이 하고 질병치료에 활용하고자 했던 점은 단순한 민간요법 수준 이상의 지혜가 숨어있음을 짐작케한다.
먼지도 마찬가지다. 비교적 최근까지도 천식과 알러지 등 각종 호흡기 질환의 주범으로 몰고 갔다. 그러나 최근 미국에서는 “집먼지가 오히려 천식을 예방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또 흙을 밟기 힘든 도시 아동들의 천식발생률이 계속 늘고 있는 반면, 먼지가 많은 개도국 농촌지역 아동들의 발생률은 낮아지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또 이탈리아에서는 가정환경을 조사한 결과 아주 깨끗한 집에서 살다온 공군생도들의 호흡기 질환이 더 많았다.
지난해 미국학자들은 7년간 조사끝에 도시에 거주한다는 사실만으로 시외곽이나 농촌지역에 사는 사람보다 일찍 사망할 가능성이 62%나 높았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흙을 비롯한 자연으로부터 멀어지고 인공환경 속에서 생활하는 데서 오는 부작용 때문이다.
흔히 황토나 진흙의 효용성에 대해 지나치게 특정 성분이나 지엽적인 효과를 부풀려 이야기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그러나 이는 상업적인 목적과 결합된 것일 뿐, 흙이 인간에게 주는 진정한 혜택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흙이 주는 건강상의 이득은 단순히 흙 속에 몇몇 성분에 있는 것이 아니다. 자연의 지혜는 멀리한 채 흙을 넣어 가공한 옷을 입고, 흙을 발라 고기를 구워먹는 것으로 건강이 좋아지길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다.
황토와 진흙을 이용하는 것은 자연에 한발 더 다가가려는 노력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흙이 주는 즉물적인 효과만 노리고 다양한 일상에서 자연적인 삶을 추구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결코 건강해질 수 없을 것이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글 쓰시느라 수고 하셨읍니다 좋은공부 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