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manic Princess-Story which was remained **
##Platina×Jade##
자정 무렵에 비치는 달빛은, 기분 나쁘다고 자신은 생각해 왔다.
구름 뒤에서 슬그머니 드러나는 하얀 얼굴은, 음산하고, 소름 끼치게 무섭다.
보통 사람들이면 아름답다고, 낭만적이라고 좋아할지도 모르지만, 영술사인 자신은, 미처 먼 곳으로 가지 못하고 원한만을 되새기는 영혼들을 더욱 세밀히 비추어주는 불쾌한 존재로밖에 볼 수 없었다.
비록 이제는 자신을 영술사로서 살게 한 옛 영혼도 사라져, 더 이상 그런 불쾌한 경험을 할 일은 없없지만─.
…아주 오래 전부터.
…자신이 영을 다루던, 끔찍한 저 달을 증오하던 시절부터도.
달빛을 닮은 그 누군가를 만나던 날 이후로, 그 달빛 같은 고요함에 익숙해진 그 날 이후로─.
…한밤중에 조용히 떠오른 달을, 그저 가만히 바라보다 잠들곤 하는 버릇이 생겼다는 사실을.
…은빛 달을 닮은 그 누군가는, 결코 알 리 없을 것이다.
─그렇지요, 전하?
**Moonlight of Midnight**
-by 海流
"…제길, 늦잠이라니…!!"
복도를 달리는 걸음에서 그 주인의 짜증스러움이 느껴질 정도다. 다급하고, 여유 없고, 스스로에게 상당히 화가 나 있는 그런 느낌의─.
하지만 제이드 데이비스는 본디 그렇게 성격이 급한 편도, 짜증이 많은 편도 아니었다. 오히려 여유 있는 성품에, 싫은 일도 웃는 낯으로 잘 참아 넘길 수 있는, 조금 꺼림칙하게 말한다면 능란한 편이랄까, 요령이 좋다고나 할까.
그런 그이기 때문에, 「저 나락왕」의 밑에서, 매일 그 얼굴을 보면서도 성격 좋고 능수 능란한, 유능한 참모 역할을 어려움 없이 소화할 수 있는 것이라고, 동료들은 입모아 말하곤 한다.
그렇지만 까다롭고 예민한, 그리고 조금은 신경질적인 완벽주의자인 그가 가장 엄격한 상대는,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자신이다. 자신이 가끔, 아주 때때로 저지르는 작은 실수 하나에도 격하게 반응하는 그였다. 그리고-지금이 바로 그런 순간이다.
"하아…, 어째서 회의장은 이렇게 먼 거야!"
마침내 모퉁이를 돌아, 거대한 나무 조각이 새겨진, 왕정회의장 문 앞에 도착했다. 발목을 삐끗거리면서 멈춰선 그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고, 옷매무새를 고르게 한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단정한 모습으로 위엄 있는 문을 연다─.
…라지만, 지각도 한참 지각인 참모님에게 모두의 시선이 쏠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뭐, 이쯤이야-라고 생각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드는 순간.
…마주친 것은, 지나치게 차가운, 마치 그의 것이 아닌 듯한, 「그의 전하」의 눈빛.
"…왕을 직접 모시는 참모가, 중요한 왕정회의를 이렇게 가볍게 생각한다는 건, 아무래도 직무태만이 아닌가 하는데, 제이드 경?"
"…죄송합니다. 부디 용서를─."
…내참, 「경」이라고?
자기가 삐쳤다는 걸, 저렇게나 티내는 임금님이 대체 어디 있냔 말입니다.
"이번에는 특별히 너그럽게 넘어가겠지만, 이 이상 해이한 태도를 보였다간, 바로 징계 감이라는 것, 명심하도록."
"하해와 같은 전하의 은혜, 마음 깊이 감사하게 받겠나이다."
"…앉도록."
들리지 않을 만큼 작게, 가벼운 한숨을 내쉬고는-플라티나의 우측 줄, 아래 좌석에 앉는다. 맞은 편에는 재상인 알렉산드르 파스툴이, 그리고 자신의 옆에는 카롤 잭슨이 이미 앉아 있다.
생긴 것과는 딴판으로 요령 좋은 그가, 자신밖에 들을 수 없을 목소리로 자그맣게 속삭인다.
"…무슨 일입니까? 전하가, 「당신에게」 저토록 냉정하실 때도 있는 겁니까?"
"…그 속을, 누가 알겠습니까. 원래 어린애의 마음은, 어린아이밖에 모르는 거예요. 뭐, 재상 각하께라도 여쭈어 보시던지."
킥, 하고 작게 웃음 터지는 소리. 그에 모두들-심지어 저 투정쟁이 전하마저도 이 쪽을 주목하지만, 자신은 모르는 척 그 시선을 받아넘긴다.
그러자 살짝 찌푸려진 미간을 하고, 모르는 척 보고를 받는 그의 모습.
-아아, 분명 그 때부터야.
분명히, 그 때 말했기 때문인 거라구.
그래, 그 때─.
…자신이, 더 이상 영술사로서의 힘을 가질 수 없게 되었던 때.
…자신은 그렇게나 약해 보였던 걸까.
솔직히 말해서, 누구에게 있어서나 자신이 우위일 수 있었던 그 힘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은 굉장한 충격이기는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자신에게 너무도 익숙했던 정경─어릴 적에는 늘 울음을 터뜨리게 만들었던, 사자死者들의 세계, 그것이 보이지도, 들리지도, -느껴지지도 않는다는 사실에 혼란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그 녀석─.
귀찮았던 것도, 짜증스러웠던 것도, 사라져 버렸으면 하는 생각도 때때로 했던 것-모두 사실이지만.
…라이즈, 그 녀석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다는 것─.
그 사실은 놀랍게도, 심장 한가운데 구멍을 내버린 듯한 허전함을 안겨준다.
…한참이 흐른, 지금까지도.
하지만 자신은, 나약하게 누군가에게 기대지도, 그렇다고 혼자서 버티다 무너져 버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도, 자신은 미덥지 못한 존재였던 건가.
전하는, 언제나, 어떻게든 곁에 있어주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어떻게든, 혼자 두지 않으려고.
그래도 말이지, 사람이 약해진 틈을 타서, 그렇게 솔직하게 돌진해오는 법이 어딨어.
아, 그래, 물론 내 탓이었다는 거 알지만─.
─한 번이라도, 아무리 정신이 없었다고는 해도, 그렇게 허락해버리는 게 아니었는데.
「그 일」이 있었던 날.
자신이 특별한 힘을 모두 잃게 되었던 날.
문득, 자신도 모르게 입술로 손가락을 가져간다.
그 날의 일은, 단지 생각하는 것만으로 얼굴이 달아오른다.
물론 처음이었다는 것도 아니고, 얼결에 뺏겨버린 순진한 처녀인 척 할 생각도 없지만, 그래도─.
당황스러웠다구, 나는.
그리고 그 후의─.
마주 닿았던 숨결이 떨어지고, 두 사람 모두 가쁜 숨을 내쉬고 있을 때의.
눈물도 이미 말라버린 그 때의.
…그 때 그 순간의 그 어색함이란!!!
…아아,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
아, 물론 전하는 조금도 어색해한다거나, 쑥스러운 기색 따위 없었지만. 오히려, 내가 민망할 정도로 계속 쳐다보고 있었지. 정말이지, 그 뻔뻔함이란!!
어쨌거나, 그 순간에 느낀 거야.
이 사람과는 절대로─.
「그런 관계」로는, 난 발전하고 싶지 않다고.
이런 류의 질척한 감정, 아슬아슬한 마음의 줄타기.
그리고─언제라도 깨어져 버릴 수 있는 위험한 관계의 얽힘.
한 번 깨어져 버리면, 다시는 이전처럼 될 수는 없다.
전하가 싫다는 건 아니지만─아니.
…솔직히, 바라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런 건 싫다.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머릿속에 있는 말을-가슴속에서는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었던 그런 말들을-남김 없이 모두 쏟아내었다.
전하를, 주군으로써 누구보다도 경애하고 있다고.
「이런 상대」로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일이 없다고.
지금의, 신뢰할 수 있는 군신 관계를 잃고 싶지 않다고.
이런 「장난」은, 이제 그만해 주셨으면 한다고.
그 순간, 그 사람의 눈빛이 변했다.
나를 향해 한 번도 던진 적 없는, 차고 찬 시선.
그리고 서릿발같은 음성.
-장난…이라.
-…전하.
-지금껏 줄곧, 그리 생각해 왔었나.
-저는….
-알았다, 너의 마음은.
옷자락을 떨치며 일어서는 모습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것이─.
…못내, 아쉬워서.
마지막 음성은, 차디차게 비어버린 가슴에 떨어진다.
-앞으로 다시는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내 약속하마.
…그거의 어디가, 잘 알았다는 사람의 태도냐는 말이지요~.
턱을 괴고, 서류에 몰두하고 있는 그 모습을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었다.
거짓말쟁이에, 잘 삐치기까지.
사실은 누구보다 능글맞고 능란한 사람인 주제에, 이럴 때만 어린이 흉내지.
몰라, 이젠 나도 싫다니까─.
그 때, 마음 속 소리를 듣기라도 한 듯, 그가 고개를 들어 나를 빤히 쳐다본다.
놀라 얼른 자세를 고쳐 잡고 깃펜을 잡았다.
"…무슨 용무라도 있는가?"
"아니오, 전혀-. 방해가 되었다면 죄송합니다."
"……."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접고 들어가는 그의 모습이 진정 어색하다.
보통 때라면. 그래, 보통 때라면─.
-무슨 일이지? 뭐, 감정에 솔직한 것도 좋다지만-그렇게 빤히 쳐다보면 내가 쑥스럽지 않나.
-…글쎄요, 전혀 그래 보이지 않으십니다만.
-뭐, 자네의 그런 면, 난 좋아하고 있으니까 말야. …때로는 솔직하지 못해서, 벌써 몇 년째나 계속되고 있는 상관의 구애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점도 포함해서 말이야.
-솔직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취향이 아니여서-라고는 생각 못하십니까?
-전혀. 나만큼이나 완벽한 사내를 이 나락에서 찾기란 힘들거라 생각하는데.
-…예이, 예이.
…라는 게 정상인데!
하하, 조용하고 얌전한 전하-. …언제나 그려온 풍경이긴 하지만, 영 익숙해지지 않는군….
어쩌면, 그대로의 전하가 더 나을지도 몰라-라고, 당치도 않은 생각을 하는 자신의 머리를 뾰족한 깃펜 끝으로 찔러버린 제이드였다.
그리고, 여전히 무관심한 플라티나.
오후의 노을이, 지고 있었다.
"어, 전하-. 여기 부탁하신 서류-."
밝게 웃는 얼굴로 문을 연 사피루스였지만, 방안을 꽉 채운 냉랭한 분위기에 놀라 잠시 굳어 있다.
그런 그를 보며, 화사한 미소로 말을 꺼내는 플라티나.
"아, 고마워, 사피루스. 언제나 수고하네."
"아닙니다, 그런 황송한 말씀! 전 당연한 일을 하고 있는 것뿐인 걸요."
"그런가? 글쎄, 참모라는 작자가 워낙 태만하다 보니, 그 「당연한 일」이라는 것마저도 굉장히 감동적인걸. 이해해 줘-."
"아, 예에…."
자신의 눈치를 살피며, 사피루스가 조심스레 대답한다.
…다 좋은데, 어째서 그리도 유치하십니까!!
당신을 모시고 있는 저의 입장에 대해 회의가 밀려온단 말입니다~.
한숨이, 말과 함께 흘러나온다.
"사피루스, 부탁한 건 준비되었습니까?"
"아, 예! 29층, 여신의 전 맞은 편입니다. 전부 준비해 놓았으니 천천히 옮기기만 해요."
"그래, 고마워요."
"뭘요…그럼 물러나겠습니다, 전하."
"아, 그래. 조심해서 가-."
"아, 예…."
그래봤자 성내 아닙니까. 조심하긴 뭘요? 플라티나 님 같은 능구렁이만 알아서 피하면 된다구요.
조금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싶더니, 이내 그가 느릿하게 입을 연다.
"…사피루스에게 부탁한 일이란, 뭐지?"
"개인적인 일입니다. 굳이 「상관」께 보고 드려야 할 문제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만."
"……."
어쩐지, 그가 노려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착각이리라.
그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깃털이 날고 눈이 떨어지는 마법의 시계를 본다.
"이런, 벌써 근무 시간 초과로군요. 그만 물러가도 되겠습니까, 전하?"
"…정말로 태만하군. 상관이 아직 업무를 보고 있는데 퇴근하겠단 건가?"
"저야 뭐, 그저 태만하고 버릇없는 한심한 월급쟁이 아닙니까. 게다가 상관께 미운 털 단단히 박힌."
"……."
부드럽게 문손잡이를 잡아 걸어나간다. 등뒤에 꽂히는 시선 따윈, 없다.
그것마저 못내 아쉬운 건─솔직한 심정인 거지.
문득, 뒤를 돌아본다. 열어둔 문 사이로 바람이 불어 머리칼을 날린다.
그것이 따갑고, 아프다고 생각해버린다.
"…그 날의, 일 말씀입니다만."
"……."
"전하의 마음, 장난으로 받아들인 일은 없습니다."
"…굳이 변명할 필요는 없는데. 나도 더는 미련 두지 않는 일이니."
"…그렇습니까. 변명은 아닙니다. 다만, 격한 어휘를 선택한 것─."
"……."
"그만큼이나, 알아주셨으면 하는 마음 뿐이라, 실례를 범한 것 같습니다.
…부디 용서를. …플라티나 님."
더는 바라보지 못해 나간다. 방안의 공기는, 너무나 따가워─.
…나는, 질식해 죽을 것만 같아.
가만히, 문이 제자리를 찾아 돌아오는 소리.
그의 발소리도 멀어져 간다.
한 손을 들어, 어지러운 머리를 감싼다.
"…이름, 부르지 말라구."
아침 내내 붙잡고 있던 서류는, 조금의 진척도 없는 백지 그대로─.
오늘의 일을 기점으로, 더 이상 회의장과 집무실로부터 한참이나 먼 자신의 방을 고수할 마음이 싹 사라졌다.
사피루스에게 부탁한 것은, 주요 업무 장소로부터도 가깝고, 아늑하고, 경치가 좋은, 자신이 쓸 만한 방을 알아봐 달라는 것이었다.
어차피 성내에 방은 넘치고 넘치니, 그런 문제야 금방 해결된다.
다만, 진짜 문제는-.
…자신이 그 곳으로 향하는 길을 영 모른다는 것이다.
어쨌든 힘들게, 힘들게 다리를 옮겨 29층까지 올라온 것은 좋은데-.
…대체 여신의 전이 어디냐 이거지.
그리고 깨달은 자신의 안일함─.
무의식중에 자신은, 설령 길을 헤매더라도, 언제나 곁에서 볼 수 있는 영들이, 자신을 도와줄 것을 굳게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인정해─, 내 실수인 거다.
그렇다고는 해도….
"…라이즈."
돌아와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가슴을 가득 채워.
결국, 아무 화려한 문 맞은 편의 방에나 들어가 버렸다.
그러나 운이 좋은 듯, 그 방에는 사람의 체취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방이 어두워 더듬더듬 찾아 누운 침대의 시트도 그저 막 세탁한 냄새뿐.
넓게 트인 창가에, 달의 모습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잘됐어.
이런 날은, 굳이 그를 떠올리며 잠 설치고 싶진 않은 거다.
…눈물이 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말도 안 돼, 그런 건 이미 오래 전에 말라 버린걸.
…네가, 가져가 버린 거야?
뭐,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줄 수 있지만-.
…있어주지도 않을 거면서, 비겁해.
"……."
플라티나는 잠시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을지 고민했다.
감히, 겁도 없이 나락왕의 거처로 들어와, 그것도 침소에 몸을 누이고 세상 모르고 자는 녀석이라니.
어두워서 얼굴은 확인할 수 없었지만, 플라티나는 굳이 불을 켤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어차피, 첩자이거나, 암살자이거나, 왕성 내 지리도 채 익히지 못한 멍청한 녀석이겠지.
하지만, 전자의 두 경우 이렇게 어설프게-그걸 넘어서 어이없게-행동할 리 없지 않은가.
문득 웃음이 났다. 메마른 나날에 간만에 재미랄까.
일단은 깨운 뒤, 잘 타일러 돌려보낼 심산이었다.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면 얼마나 당황할는지.
…아니, 최근 확실히 욕구불만이기도 했고.
안절부절못하고 당황할 상대를-귀여운 녀석이기만 하다면-어떻게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쳇, 첫사랑에 실패하고 막가는 임금님이라 이거야-.
-라는 생각에 몸을 숙여 상대를 살펴보았다.
때마침 솟아오른 달빛에 비치는 상대의 얼굴은─.
…도무지 이 상황을 어찌 받아들이면 좋을꼬.
도기처럼 깨끗한, 만지면 마치 깨어져 버릴 것 같은 새하얀 피부.
때론 여자의 그것보다 가냘프고, 그럼에도 적절한 강약을 지닌, 고운 이목구비의 형태.
피곤해 보이는 얼굴에, 지친 듯이 살짝 벌어진 붉은 입술.
어느덧 숨을 삼켜버린 자신이었다.
그리고 달빛에 푸른빛을 띄우는 녹옥의 머리칼과-무엇인지 모를, 이마의 보옥까지.
…이건 아무리 봐도 자신의 참모 제이드 데이비스 씨가 맞단 말씀.
그런데 문제는, 왜 그가 지금, 그것도 자신의 침소에 있냐는 말씀이지.
…자신에게 한 일이 얼마나 잔인했는지를 깨닫고-아니 아니, 이건 그를 모르고 하는 말이지-그럼 잘릴까봐 두려워서-그래, 이건 좀 현실감 있군-, 얼른 「제멋대로 상사」에게 용서를 구하고자─.
"─수청들러 온 건가?"
…그건, 제이드를 봐도 한참 잘못 본 사람의 얘기고.
"뭐냐고요, 이 상황은. …깨워야 하나."
하지만, 너무나 달게 자고 있는 얼굴이고─.
…그리고, 다른 것보다도.
보내고 싶지 않아.
단지, 자신의 장소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토록 안도감을 느끼고 있는데-.
"그건 그렇고, 남의 침대에서 잘도 자네. 얄미워-."
볼이라도 꼬집어 줄까, 하고 몸을 숙인 것까지는 좋았지.
지금 자신이 무얼 하고 있는지, 라던가.
이건 분명 상대의 동의도 뭐도 구하지 않은, 제멋대로의 행위라던가.
그에 따르는 죄책감, 질책, 자기혐오─.
-그리고 평온해 보이는 상대에 대한 미안함.
이런 엷은 감정들은, 떠올랐다가도 이내 흩어져 사라졌다.
어째서, 무슨 짓이지-라고, 자신에게 반문하고 있는 이 상황에서도.
…참으로 부끄럽게도, 몸은 솔직해서─.
달빛을 마실 듯이 벌어진 입술을, 혀를 내밀어 다정스레 핥고.
머리칼을 감싸 두르듯이, 팔을 옮기고.
가냘픈 몸을, 자신의 두 다리 사이로 고정시켜 움직일 수 없도록 한다.
그러는 와중에도, 머리칼을 헤집는 손은 자꾸 떨리고 있어.
좀 더 깊은 곳으로, 끊임없이 옮아가는 자신의 것이, 정신 없이 그를 헤집는 순간.
"…으음…."
귀를 울리는, 익숙한 상대의 음성.
순간, 자신이 무얼 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상대가 대체 누구인지 하는 모든 것이 머릿속에 너무나 명확히 떠올랐지만─.
…어차피, 몰랐던 것도 아니잖아.
아무나라도 좋다는 마음으로 탐하고 있는 것이 아니야.
단지, 오늘밤 이 곳에 있는 상대이기 때문이 아니야.
…너무나 원했던 상대인 거다.
체념하고, 다시 한 번 부드러운 붉은 살갗에 자신의 것을 겹친다.
─몰라, 호랑이 굴에 제 발로 걸어 들어온 건 너잖아─.
단지 부드럽기만 하던 입맞춤에 힘이 가해지고-.
그의 입술이, 움찔거리며 뭔가를 느낀다고 생각했다.
몸을 살짝 밀어내는 손길에, 그의 설픈 잠이 깨어지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멈출 수 없을 만큼 와 버렸다.
잠시 떨어지곤 했다 다시 이어지는 숨결에, 그의 가냘픈 신음성이, 계속 새어나간다.
움직이지 않던 손이, 약하게 자신을 밀어내고 있는 것도 느껴진다.
진홍을 두른, 보랏빛 눈동자가 몇 번 마주치려 하는 것도 무시해 버린다.
그리고, 간헐적인 두 사람 사이의 간격, 그 때 들려오는─.
"…플라티나 님…."
정신이 바짝, 들어오고 말았다.
그의 시선은, 책망하는 것도, 놀랐다는 것도 뭐도 아니었지만-.
…이건, 도무지 변명할 수가 없어.
경멸 당한다 해도 별 수 없겠지.
…짐승 같은 짓을 한 거다, 확실히.
그 순간에 이성 따위, 내게 남아 있지 않았어─.
그의 얼굴로, 어깨 위로 온통 흩어져 있던 자신의 은발을, 몸을 일으키는 것으로 모두 거두어낸다.
힘겹게 숨을 몰아쉬는 그는,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 시선을 차마 마주할 수 없어.
여름의 습기가, 미칠 정도로 엄습해 온다.
몸은 일으켰지만, 아직도 두 사람은 꺼림칙한 자세 그대로─.
문득, 그림인 줄만 알았던 입술이 말을 한다.
"…이거, 강간이라는 거 알고 계신 겁니까?"
"…여전히 어휘 선택에 신중하지 못하군. 아무리 현장에서 걸렸다지만 난 아직 나락왕이란 말이다."
"…대체, 플라티나 님이 왜 여기 계신 겁니까?"
"그건 정말이지 내가 묻고 싶은 말이군. 대체 내 처소엔 웬 걸음이냐?"
"…당신의 처소…?"
"그래, '검의 전' 맞은편. 그 곳이 나락왕의 장소라는 걸 모르는 이는 없어. …평소 상관에게 얼마나 무관심했는지 알 만한 대목이군."
"…아아, 확실히. …저의 실수입니다."
"…그러니, 책망하지 말라구."
"……."
"이번엔 제대로 찾아가! 또 엄한 남의 침실 들이닥치지 말고!"
"…그만두시겠다는 겁니까?"
…보청기라도 끼어야 하나.
"…뭐…?"
"멀쩡히 잘 자던 사람 깨워놓고, 그만하겠다는 거냐구요. 대체 뭐하자는 겁니까?"
"뭐하자니, 이제라도 내 죄를 반성하고, 상대의 의사를 존중해 주겠단 거지."
한숨짓는 얼굴이, 사람의 것처럼 보이지 않아.
천사의 한숨, 그런 느낌인 걸까.
"…계속해 주세요."
"…사람 여러 번 놀래키는군."
"…뭐, 나쁘지 않았으니까."
"하아…."
─몰라, 네가 자초한 일이야.
내일 회의에는 지각이 아니라, 아예 못 나온대도 난 모른다구.
"…봐주지 않는다."
"글쎄요, 절 혼절시킬 수 있다면 한 번 시도해 보시지요."
"쿡…."
옅은 미소가, 그의 얼굴에도 스쳐 지나가는 것을 알았다.
서늘한 머리칼을 움켜쥐고, 마른 어깨를 양 무릎으로 눌렀다.
입술 속을 한참 헤매다, 그 끝을 흘러, 부드러운 턱선을, 곧게 뻗은 하얀 목을 천천히 잠식해 가는, 자신의 흔적.
솔직하게 성대를 치고 배어 나오는, 제이드의 화답.
자신의 머리칼을 헤집는 손길도─.
허리 부근의 옷자락을 꽉 움켜쥐는 귀여운 느낌도─.
…글쎄, 너무 감미로워서.
아침 따위, 영영 오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했다.
가늘게 휘어지며 부드럽게 웃는 눈매가, 많이.
─많이 예뻤다.
자정 무렵에 뜬 달은, 밤새 지지 않고.
동이 틀 무렵에, 꼭 껴안은 두 사람의 사상자를 남기고─.
그렇게, 사라져 가지만.
뭐, 내일도 다시 뜰 거라는 걸.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어─.
1. 안녕하세요, 海流입니다. 게시판을 제 쓸데없는 글들로 꽉꽉 채워서 어쩌지요-. 하지만 빨리 끝내버리고 싶은 마음에 서두릅니다요.
2. 이 시리즈는 분명 연재작은 아닙니다만, 두어 가지 이야기가 더 남아 있습니다. 제목 그대로 [남겨진 이야기]이니까요.
3. [A-숫자]라고 제목 옆에 있는 것은 플라제이 편의 이야기.
[B-숫자]라고 제목 옆에 있는 것은 라이제이 편의 이야기입니다.
의외로 라이제이를 지지하시는 분들도 계셔서 용감하게 써봅니다.
라이즈가 누구야-? 라거나, 이 녀석 따위는 싫어!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피해주세요;;
제목과 테마는 같을 것이고, BGM도 같겠지요.
다만, 이 편에서만큼은 A형 스토리와 B형 스토리의 배경 음악이 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4. 사용한 곡은 사카모토 마아야 양의 [다니엘].
[Love is not enough...]라고 중얼거리듯 부르는 부분이 특히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새 앨범 [니코파치]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인데 안 먹힙니다!;ㅁ;
태그로 쓰면 들리긴 하지만, 보기 힘드실 거에요. 어쩌지, 어쩌지.
5. 리코멘트 들어갑니다.
크리티엘 님.
아아, 저는 플라티나 님이 좀 더 공스럽고;; 상큼발랄+느끼하셔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 외모로 무엇을 한들 용서받지 못하겠나이까.
패러디의 매력은 역시 쓰는 사람도 재밌다는 게 아닐까요~.
의외로 라이즈 녀석 반응이 좋아 기쁩니다(두근두근).
건필할게요, 계속 봐 주세요.
달사[花緣]。 님.
예, 그 때까지는 신파였지요. 하지만 우울한 건 싫어서...
아무래도 현생의 건전하고 멀쩡한 청년 제이드 씨에게는, 플라티나 님이 변태 사이코로 보일수도 있겠지요. 그래요, 로망이란(절레).
잘 보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Blue☆ 님.
쓰는 저로서도 플라제이가 더 좋은지, 라이제이 쪽에 끌리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결국 두 개씩 써 버리지만, 이래도 좋을는지;;
제이드 왕비님도 분명 굉장할 겁니다~, 소매는 치렁처렁한 동양 풍에, 은잠을 꽂아 머리를 살짝 올리신 모습이 좋아요~!!!(로망이란;;)
야누베 님.
라이즈를 쓰는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완전히 반해버렸어요!! 하아...
음, 그래서 다음 주 쯤에는 라이제이가 올라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기다려 주시겠죠?
라이즈 녀석은 얼굴만 상큼한 게 아니라니까요...그런데 상큼한 두뇌란 대체 어떻게 생긴 걸까요?;;
...그러니까, 비 전하 제이드 씨도 좋다니까요...;;;;;
˚ОГ침Øı슬….. 님.
꼬리에서 말씀드렸지만, 여러분이 알고 계시는 플라제이 커플은 500년 전의 사람들입니다. 잘 안 읽으신 것이지요~.
눈이 아플 정도로 빽빽한 글을 잘 참아 주셨는데, 이해하지 못하셨다니 안타깝습니다. 흐흑...죄송해요오~(도망)
덧붙이자면, 소설란은 활성화될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ハロ 님.
라이즈는 해피니스 케이지-Call my name 편에 나오는, 상큼깜찍한 녀석입니다. 수작은 사피루스에게 부렸지만, 어째선지 라이제이가 인기인;;
분명, 찾아보기 힘든, [제이드보다 큰 인물]이기 때문이 아닌지;;;
사피루스에게 집적대다 개죽음당했지만, 제게는 쿨하고 멋진 놈입니다.
이 지루한 글을 끈기 있게 읽으시고, 느끼신 바가 그뿐이라니 좀 섭섭한데요^^.
교주 님.
어느 쪽의 플라티나 님이 멋있는 것인지? 에헤헤, 라이제이는 로망이잖습니까~♪ 조금이라도 웃을 수 있으셨다니 기쁘네요.
실은, 플라제이와 라이제이가 대치되고, 사피루스는 과거의 남자로 배경을 채우는 구도를 제일 좋아합니다!+ㅁ+(제이 수에 찌들었어;;)
곧 라이제이를 뱉겠지만, 어떠실는지?
알렉 님.
음, 역시 헷갈리게 써 버렸나 봐요. 미숙해서, 죄송합니다;;
잘 읽어 주셨다니 다행입니다^^. 고맙습니다.
Kanami 님.
한분쯤 그 이름에 반응해 주시는 분이 있어 얼마나 기쁘다구요~.
저는 절대 히카아키 지지자입니다만, 영하아키나 이스아키도 좋아요^^.
http://www.geocities.co.jp/Bookend-Christie/5846/ kai 상의 홈페이지로, 굉장히 멋진 소설들이 많습니다(온리 히카아키).
하지만 절대로 쉽게 읽을 수 없는 수준의 것들입니다;; 제 경우 프린트해서 번역하며 읽지요.
모든 글이 눈물나게 멋지지만, [そして淚にキスをした]와 [Suppose] ,
[あなたを探してた]를 강추합니다! [소시테...]는 이미 프린트-번역 완료!!
슈크림카롤☆ 님.
저의 개인적인 소망과, 슈크림카롤☆ 님의 은근슬쩍 기대, 그리고 라이즈의 염원이 이루어질 날이 머지 않았답니다☆ 기대해 주시길.
☆sky★rine☆ 님.
다함께 나락의 새로운 비 전하를 추대해 보자구요. 다 덤비라고 해욧!
음, 옛날에 사피알렉을 플라제이와 세트로 써봤지만...글쎄;; 저는 역시 알렉사피 쪽이. 바보공, 어린공, 귀염공, 발랄공이 겹쳐진 느낌을 좋아합니다.
6.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쿨럭쿨럭...에에, 진화중이신겁니까...(심각) 하지만, 전 피카츄가 더 좋습..(퍼억!!무슨 소리;;) 아무튼, 이렇게 밤중까지 남아있거나, 아침일찍 일어나서 들어오는 동기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책임지세요?!!(나의 달콤한 잠의 시간이;;)제가 키가 크지 않는 것은 다 님의 글의 매력때문인겁니다ㅠ_ㅠ!!160에서진전없음
아아 러브리씬+ㅁ+!!(좋아하고 있다;) 멋지십니다;ㅁ; 역시 海流 님이셨습니;ㅁ;!! 홈페이지 주소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최근 히카고가 끝나고 잠시 사그러들었었는데. 다시 불태워야지요+_+!!!(:;) 아포에, 히카고에, 로키에... 바쁘구나;; 바뻐;;;(쿨럭;
첫댓글 영광의 첫!타!(두번째;;) 오우, 라이제이가 올라오다니, 듣던중 기쁜말이네요!!! 다음주라..학교갔다오면 한 12시는 될텐데..;;힘내서 열심히 들락거리겠습니다!! 으아으아..뭔가요, 제이드씨..수줍음을 가장해서 조금더 튕겨서..튕긴다음에...(퍼억!!!) 에, 그건 그렇고, 문체가 조금 바뀌신듯?!! 한 느낌입니다~
쿨럭쿨럭...에에, 진화중이신겁니까...(심각) 하지만, 전 피카츄가 더 좋습..(퍼억!!무슨 소리;;) 아무튼, 이렇게 밤중까지 남아있거나, 아침일찍 일어나서 들어오는 동기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책임지세요?!!(나의 달콤한 잠의 시간이;;)제가 키가 크지 않는 것은 다 님의 글의 매력때문인겁니다ㅠ_ㅠ!!160에서진전없음
아앗+_+ 이착이닷! 훗훗...하긴, 라이제이는 과거에는 사피제이와, 현재에는 플라제이와 대치가 되는군요+_+ 의외로 제이드도노는 라이즈에게 의지하고 있었다...라던가!(버닝) 라이제이 사이드, 즐겁게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아앗!!+ㅁ+ 멋집니다아아!!+ㅁ+ 참참참.. [그만두실겁니까-?]라니..-_-; 참으로 대범하신 제이드님이십니다아-..!;; 쿨럭; 라이제이가 기대됩니...[퍽]
와아~ ♥-지나가는 사람;-
조...조금만 더 묘사를!!!!![밝힌다..] 플라티나는 두살... 제이드는... 하여튼 백살은 넘었을텐데... 이거 완전 원조교제수준이네요... 그렇지만 나락의세계는 얼굴이면 다 처리되는 법!
아아,멋집니다;ㅁ;수청들러온 제이드라니,그것도 나름대로(퍼억)어라,근데 카롤 잭슨....'ㅁ'....카롤,루비랑 결혼했던거군요!!(←멋대로 납득)(사소한데 초점을;;죄송합니다;ㅂ;!!)유혹수 제이드님도 좋습니다♡(호,혼절...;;(덜덜덜))소설 잘 읽었습니다!!플라제이도 라이제이도 기대할게요~ :D
;ㅂ;멋지기입니다:D 해류님의 소설은 언제나 읽어도 감탄사가 절로 입에서 줄줄줄 나오네요;ㅂ;乃 이렇게 소설에 열중해보기는 처음입니다;(펑) 앞으로도 멋진글 기대할께요-;ㅂ;(쿠앙)
아아 러브리씬+ㅁ+!!(좋아하고 있다;) 멋지십니다;ㅁ; 역시 海流 님이셨습니;ㅁ;!! 홈페이지 주소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최근 히카고가 끝나고 잠시 사그러들었었는데. 다시 불태워야지요+_+!!!(:;) 아포에, 히카고에, 로키에... 바쁘구나;; 바뻐;;;(쿨럭;
아아;ㅁ;;; 홈 문 닫았데요//////ㅠㅠ;;;
오옷, 이거, 이거, 이거+_+ 이거 무려 플라제이로군요!! [옷깃을 잡으며]당신! 정말 좋은분이시군요(그렁그렁)
어머나아.... 말 하는것 보고 많이 컸구나, 왕자님. 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정도의 표현으로는 부족할 듯 싶네요. 멋지십니다, 폐하. 하지만 너무 무리시키지는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