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완주 전주최씨 문성공계 시조 최아 묘(비룡상천형, 大穴)
1. 전주최씨와 문성공계
* 전주최씨는 각기 시조를 달리하여 최순작(문열공계) 최군옥(문충공계) 최균(사도공계)의 대파로 나누인다. 그러나 후대에 이르러 상계(上系)와 연결이 명확하지 못 한 탓으로 독자적인 계파를 형성한 전주최씨가 있다. 문성공(文成公) 최아(崔阿)系는 최순작의 7대손이라는 견해가 다수이지만 최균이라는 설 혹은 唐에서 도래했다는 견해도 있다(문성공계의 옛 족보 참조). 전주일원에 최씨가 많이 살았는데 신라6촌 가운데 고허촌의 촌장인 소벌도리의 후손이라 생각되지만 연결할 증거가 없기에 각자 연결이 확실한 상계(上系)를 찾아 시조를 정한 것이다. 전주최씨 4개파는 인구458,191명 순위19위(2015년)이고 그 중 최아계는 15만명이다. 최순작계가 왕실과 인척을 많이 맺어서 가장 번성했다.
* 최아는 완주일대에서 향리로 대를 이어오다가 최아가 고려 충숙왕 때(1313~1339) 과거에 급제하여 완산군에 봉해지면서 사대부(士大夫)가문이 된 덕에 시조가 되었고 원시조가 애매하여 독자적인 계열로 분류된 것이다.
2. 답사
* 최아(崔阿)의 묘는 전북 완주 소양면 죽절리 산198에 있다. 마이산 위봉산 종남산을 거쳐서 왔다. 혈처 뒤에서 낮게 묶었다가 홀연히 올라서서 사각형의 넓은 당판을 만들었고 전면은 겹겹이 산들이 둥글게 엎드려 있다. 비룡이 구름위를 나는 비룡상천격이다. 다만 아래와 같은 약간의 소란이 있다.
* 최아는 1260년생으로 추정되는데 아들 넷을 낳아 후손이 번창하였다. 문성공제단 비문을 보면 “公의 선조는 전해오지 않는다. 공의 생몰 산소위치도 전하지 않으나 전주 주덕산 본토동에 선산이 있다. 노인들의 말에 의하면 공의 현손 최덕지 묘 아래에 있다고 한다. 이 묘에대하여 최아의 아들 4명을 지파시조로한 4개파 사이에 이견(異見)을 해소하고자 1796년(병진년)에 봉분을 열고 발굴조사를 하였으나 광위에 넓은 돌 하나만 덮여 있고 지석이나 유물이 없어서 확인 할 수 없었다. 3개파는 실제 묘로 인정하고 그 다음해에 북쪽에 제단을 쌓고 묘제(墓祭)를 지냄에 대하여 막내 아들 종랑장공파는 헛 무덤이라 보고 별도로 단제(壇祭)지낸다.
객관적으로 본다면, 이 산은 최씨 종산으로 대인(大人)묘가 있다는 설화가 전해왔다는 점, 묘 뒤를 더 올라가면 현손 최덕지, 손자 최담의 묘가 차례로 있는데 시조묘자리가 비어 있었다면 그들이 산위로 올라갈 리 없다는 점, 최아는 네 아들을 두었고 그들이 모두 지파를 형성하여 번성하였던 점(2남 최용각은 무학대사가 소점한 완주 대아리산46 자라터에 묘를 썼다)등을 고려하면 헛뫼가 아닌 실묘(實墓)로 보인다. 이 묘의 발복으로 후손들이 폭발적인 번성을 하였다고 본다. 상등중급 대혈로 조선20대 명당에 해당한다. (20023.9)
* 최아 묘의 지도---
* 앞에서---
* 뒤에서---
* 최아의 차남 묘--- 댐건설로 수차 복토
첫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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