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의 도시? 노숙자 넘치는 파리 [대한 11.11]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낭만의 도시? 노숙자 넘치는 파리 ‘낭만의 도시’ 파리라고 홈리스가 없을 리 없다.가족도,집도,일자리도 없이 거리를 떠도는 홈리스들을 프랑스에서는 ‘주거불명자(SDF,Sans Domicile fixe)’라고 부른다.하지만 화려한 상젤리제가의 불빛 아래 파리의 홈리스들이 느끼는 상대적 빈곤과 소외감은 다른 도시들에서보다 더 심한 듯하다. 장기적인 경기침체와 높은 실업률,가족 해체,그리고 불법 이민 등 프랑스 사회가 안고 있는 어두운 일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홈리스 문제로 프랑스가 골치를 앓고 있다.특히 올 겨울은 강추위가 예상되고 있어 시당국은 비상이 걸렸다. ｜파리 함혜리특파원｜파리 시내를 다니다 보면 지하철역이나 길거리에서 구걸을 하며 앉아 있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관광객들에게는 ‘관용의 나라 프랑스’,‘낭만의 도시 파리’의 이미지가 깨지는 순간이다. 거리에서 생활하는 이들은 해가 지면 바람과 비를 피할 수 있는 다리 밑이나 공공시설의 실내,건물 입구 등에서 잠을 잔다.식사는 구걸을 하거나 사회구조단체의 급식소에서 해결한다.운이 좋으면 사회구조단체가 제공하는 숙소에서 하룻밤 편안한 잠자리를 구할 수 있지만 다음날 아침이면 다시 거리로 나와야 한다. 프랑스에서 ‘주거불명자’ 문제가 사회문제로 본격 대두된 것은 10여년 전이다.문제는 갈수록 이들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연금,사회보장 등 오래 전부터 연금제도,장애인 보조금 정책 등 여러 가지 사회보장제도가 잘 갖춰져 절대빈곤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회안전망이 커버하지 못하는 소외계층은 계속 늘고 있다.특히 주택 문제가 심각한 대도시에서 일정한 수입이 없고,의지할 곳이 마땅치 않은 사람들은 언제든지 홈리스가 될 가능성을 안고 있다. 사회구조단체인 엠마우스회의 엘렌 투뤽은 “소외계층이 주거불명자가 되는 원인은 복합적”이라고 말한다.그는 “장기 실업,가정 문제,정신적인 질병 등이 지금까지 거리의 방랑자가 되는 원인이었지만 최근 들어 신분증명서가 없어 일을 할 수 없는 망명 요청자들,가정환경이 불우해 가출을 했지만 최저생계비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20세 전후의 청소년들이 급격히 늘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프랑스에서는 집을 계약하려면 월세의 3배 정도에 해당하는 정기적인 수입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수입원이 없을 경우 부모나 형제 등이 보증을 서야 한다.소득이 없는 상태에서 가정 문제와 같은 개인적인 어려움이 겹치면 결국 거리를 떠돌 수밖에 없다. ●정부,노숙자 대책 강화 아프리카나 동구권 국가 사람들의 무작정 망명이나 불법이민이 늘면서 주거 불명자 수는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외국인들은 경제적,사회적 차원에서 프랑스인에 비해 많은 차별대우를 받고 있으며 실업률이 높은 데다 프랑스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SDF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SDF 가운데 14%가 외국인이다. 이들 SDF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한 통계를 낼 수는 없지만 지난 2001년 1월 프랑스국립통계청(INSEE)이 조사를 실시한 뒤 발표한 8만 6000명을 공식적인 수치로 잡고 있다.이중 3만∼4만명이 파리의 주거불명자들이다. 이 수치는 조사기간 중 한 차례 이상 사회구조 기관에서 잠자리와 식사를 제공받았던 사람들을 기준으로 한 것이어서 실제 드러나지 않은 주거 불명자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난 여름 프랑스를 강타했던 폭염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해 비난을 샀던 프랑스 정부는 이번 겨울의 추위에 대비하기 위해 민·관이 운영하는 270곳의 노숙자 숙박시설의 수용 능력을 최대한 늘리는 한편 여러 가지 노숙자 구조대책들을 내놓고 있다. 사회적 불안정과 소외 퇴치의 책임을 담당하고 있는 도미니크 베르시니 사회부 차관은 각 도와 관청에 보낸 ‘사회적 위기와 소외계층’ 공문을 통해 “추위가 계속되는 동안 노숙자들이 응급숙박시설에 배치되도록 하고,필요한 시설들을 지속적으로 확충해 달라.”고 요청했다.베르시니 차관은 “특히 아이들을 동반한 어떤 가족도 거리에서 밤을 지내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해 줄 것”을 당부했다. ●홈리스 위한 추위 경보제 도입 이와 함께 지난 10월30일에는 프랑스 기상청과 ‘주거불명자들을 위한 긴급 일기예보에 관한 협약’을 체결했다. 이 협약은 기온이 강하할 것이 예상되면 구조기관이 경계를 강화하고 응급숙박시설을 확충하는 등 예비조치를 적절히 취하도록 함으로써 피해가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기상청은 사회부 중앙통제소와 경시청,각 지역 사회구급담당소(Adass)에 기온이 급강하하기 3일 전 이를 통보하게 된다.이 예보 서비스는 파리뿐 아니라 마르세유,릴,니스,리용,툴루즈 등 노숙자들이 많은 30개 도시에 제공된다. 경보는 2단계로 취해진다.우선 1단계인 ‘저온기’는 기온이 5도∼영하 5도로 예상될 경우 취해지며 2단계는 ‘강추위 경계기’로 영하 5도 이하로 떨어질 경우다. 경찰,소방서,응급의료구급대(SAMU) 등에서는 이들 경계가 내려지면 야간순찰을 강화해 노숙자들을 응급숙박 시설에 배치하고 구호기관들도 숙박 시설을 확충해 노숙자들이 지붕 아래에서 잠을 잘 수 있도록 하게 된다.각 지방에서는 특히 강추위 경보가 내려지면 모든 사회구조 시설을 24시간 개방해야 한다. 노숙자들이 응급구조를 전화로 요청할 수 있도록 ‘115번’도 11월부터 가동 중이다.115번은 민관이 운영하는 응급숙박 시설과 경찰,소방서,응급의료구조대,지역 구호센터 등과 연결된다. 115번의 한 안내인은 “하루 600통의 전화를 받는다.”면서 “노숙자들에게 잠자리를 주선해 주고 있지만 수용 규모에 비해 요구가 너무 많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lotus@ **끝** (대 한 매 일 구 독 신 청 2000-9595)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홈리스들의 대부´ 피에르 신부 ｜파리 함혜리특파원｜주택 문제가 심각한 프랑스에서 ‘지붕없는 사람들’ 문제가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것은 1954년 2월1일 밤 아베 피에르 신부가 라디오방송을 통해 호소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피에르 신부는 영하 17도의 혹한에 집달리에게 쫓겨나 파리의 세바스토폴 거리에서 새벽에 얼어 죽은 한 여인의 사연을 방송으로 전파하며 거리에 나앉은 집없는 사람들을 도와줄 것을 호소했다. 프랑스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가운데 한 명으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 ‘살아있는 성자’ 피에르 신부는 자신이 설립한 초종교적인 빈민구호 공동체 ‘엠마우스’와 함께 평생을 집 없는 가난한 사람들과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바치고 있다. 91세의 노령에도 불구하고 쩡쩡한 목소리로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정치인들을 꾸짖곤 하는 그는 거처없이 떠도는 사람들에게는 ‘희망’으로 통한다. 1912년 리용의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19세 되던 해에 자기 몫의 상속 재산을 모두 자선단체들에 나눠주고 카퓌신 수도원으로 들어가 사제가 됐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항독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며 배타적이고 편협한 인종주의에 항거했던 그는 전쟁 후 정치적 힘을 바탕으로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국회의원이 됐다. 그러나 곧 한계를 깨닫고 직접 그들 속으로 들어가 본격적으로 빈민구호 활동을 펼친다. 1949년 피에르 신부는,자살을 기도했다가 피에르 신부의 도움으로 삶의 희망을 되찾고 사회운동가가 된 조르주와 함께 파리 근교에 자신이 살던 집을 개조해 집없는 사람들과 부랑자들,그리고 당시 넘쳐나던 전쟁 고아들을 위한 작은 공동체를 만들었다. 이것이 오늘날 전세계 44개국,350여개의 단체가 활동하고 있는 엠마우스 운동의 시작이다. 파리에 본부를 둔 엠마우스회에서는 피에르 신부의 엠마우스 설립 정신을 이어받아 고정된 거주지없이 도시를 떠도는 사람들을 위한 구호 활동에 주력하며 이들의 사회 재진입을 돕고 있다. 노숙자들을 위한 12곳의 임시숙소(1000명 수용)를 운영하는 외에 매일 밤 자원봉사자들이 파리 센강변의 다리밑 등에서 잠을 청하는 집없는 사람들을 찾아 이들에게 따뜻한 음료를 제공하고,대화를 나누며 어려움을 함께한다.1997년 엠마우스회가 설립한 파리 17구의 페레르 응급숙소에서는 노숙자들에게 잠자리를 제공하는 외에 가난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음식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