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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벨과 하코트, 그리고 할아버지가 기차역까지 오드리를 배웅하러 나왔다. 그녀는 여행의 모든 순간들을 빠짐없이 즐기기 위해 비행기 대신 기차로 동부지방까지 가기로 작정했던 것이다.
아나벨은 여전히 계속 수다를 떨고 있었고, 하코트는 뜨거운 시선으로 오드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오드리는 겉으로는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내심 오늘따라 이상하게 아침부터 계속 한마디도 말이 없는 할아버지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는 홍차를 마시면서도 달다 쓰다 말이 없었고, 달걀에는 손도 대지 않았었다.
오드리가 할아버지를 위해 특별히 솜씨 좋은 새 요리사를 고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심지어 신문조차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는 것은 그의 마음이 무척 무겁다는 것을 입증해 주는 것이었다.
오드리는 홀로 남을 할아버지가 무척이나 걱정스러웠다. 그녀는 방을 나서기 전에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자기가 살던 방을 둘러보았다. 그녀는 자신이 그렇게 훌쩍 떠나 버리는 것에 할아버지가 큰 층격을 받지나 않을까, 혹은 더욱 나쁠 경우 삶 자체를 포기해 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듯이 그 또한 이제는 자신의 두 발로 인생을 지탱해야만 할 것이다. 더우기 그 기간이 단 몇 달 동안에 불과할 것 아닌가. 그저 그녀가 자유의 세계를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고 이번 방랑길에서 무엇인가를 얻었다고 느끼기에 충분할 정도의 기간이면 족할 것이다.
"9월에는 돌아오겠어요. 할아버지. 아무리 늦어도 10월 증에는 꼭 돌아오겠어요. 맹세할께요."
할아버지는 공허한 눈길로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설레설레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똑같은 말을 아주 오랜 옛날에도 들었었다. 그러나 로란드는 결국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던 것이다.
"저는 달라요. 할아비지."
"그럴까 왜 ? 네가 무엇 때문에 다시 돌아오겠니, 오드리? 나에대한 책임감 때문에? 아니면 의무감? 그런 것 때문에 네가 돌아올 수 있겠니 ?"
에드워드의 말투는 비장하기조차 했다. 하지만 설사 그녀가 여행을 포기하겠다고 말한다 하더라도 그는 결코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번 여행이 그녀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그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고, 또한 그녀를 위해서라면 자기가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그녀를 가게 내버려 두어야 하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에드워드는 어느 날 갑자기 그녀의 입에서 아버지의 발자취를 쫓아 그의 곁을 떠나겠다는 이야기가 나올까봐 항상 가슴을 졸이며 살아왔다. 그녀는 제 아버지를 너무나 빼닮았고, 그놈의 앨범을 너무나 소중히 여기고 있었다.
그녀는 이제 그 앨범을 빈방에 내버려둔 반면, 그렇게도 아끼던 카메라를 메고 아버지가 못다 이룬 모험의 길을 떠나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역에서 다시 한번 할아버지의 품에 안겨 그의 좌절이 얼마나 클 것인가를 생각하며 더욱 힘주어 그를 끌어 안았다. 동시에 그녀는 자신의 인생에 대한 문제를 스스로 되새기게 한 하코트가 말할 수 없이 증오스러웠다. 도대체 그의 어느 구석에 그런 권리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제 그녀는 당장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만 했다. 그녀에게는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한 것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이제는 할아버지나 아나벨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만 했다.
"할아버지, 사랑해요. 곧 돌아올께요. 약속해요."
그는 그녀의 얼굴을 가볍게 감싸쥐고 말없이 눈물로 얼룩진 그녀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무뚝뚝하던 그의 모습은 이미 찾아볼 수 없었다. 의식 깊숙한 곳에 잠재되어 있던 그녀에 대한 그의 사랑이 이제 이별의 고통으로 표출되고 있을 뿐이었다.
"몸조심 하거라. 오드리. 언제든지 준비가 되는 대로 돌아오렴. 우리 모두 너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
그의 차분한 목소리는 그녀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주는 듯했다. 비록 자기 자신에게도 자신있게 말할 수 없는 부분이긴 했지만, 그는 자신이 그녀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그녀는 지난 15년 동안 자신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주었고, 이제는 그녀 스스로의 자유를 누려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마침내 기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자 에드워드는 조용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것은 오드리가 모험길을 떠나는 테 있어서 가장 커다란 선물이었다.
하코트는 작별 인사를 하면서 아플 정도로 힘차게 그녀를 포옹해 주었으며, 아나벨은 이제 어린 윈스톤을 어떻게 길러야 하나 하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역시 하코트의 말이 옳았던 것이다. 오드리는 그들 모두를 위해서 너무나 많은 일을 맡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오드리의 차례가 돌아온 것이다. 오드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계속해서 손을 흔들었다.
마침내 기차가 모퉁이를 돌아서자 그 사람들은 모두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시카고에 도착하기까지는 꼬박 이틀 밤과 낮이 걸렸다. 오드리는 갖고 간 소설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소파와 객실이 딸린 침대칸을 이용하고 있었다.
헤밍웨이의 '하오의 죽음'과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읽었는데 두 편 모두 그녀의 모험과 발견에 대한 열정을 고무시켜 주는 내용이었다.
오드리는 실로 오랜만에 차분히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자기 자신 이외에는 그 누구도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식단을 짤 필요도 없고 하인을 혼낼 필요도, 식사 시간에 맞춰 옷을 갈아입을 필요도 없었다.
기차가 광활한 대지를 달리면 달릴수록 점점 더 따뜻해졌다. 그때는 6월 중순 경이었으며 기차가 마침내 시카고에 도착하자 오드리는 하얀 목면 원피스에 이번 여행을 위해 준비한 하얀 새 구두를 꺼내 신었다.
그것은 당시에 가장 유행하던 옷차림이었는데, 커다란 모자를 쓰고 갈색 머리칼을 휘날리며 기차에서 내리는 그녀의 모습은 무척 아름다왔다.
그녀는 모든 짐을 다음 날 아침 뉴욕 램 기차를 타기 전까지 머무를 라 살래 호텔에 풀어 놓았다. 그녀는 갑자기 짜릿한 흥분이 엄습해 옴을 느꼈다. 그냥 거리 한 가운데서 실컷 웃어보고 싶었다. 가족들을 남겨 두고 떠나 온 아픔마저 점점 희미해져 가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그와 이야기를 나눌 때만이 그 아픔이 다시 되살아났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그녀가 전화를 걸었을 때 할아버지는 예의 그 무뚝뚝한 말투로 전화를 받았으나, 그 무뚝뚝한 음성 뒤에는 진한 외로움이 깔려 있는 것을 역력히 느낄 수가 있었다.
"누구냐?"
할아버지는 그녀의 전화에 대고 여전히 그 고함치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지만, 그녀는 호텔방의 창밖을 내다보며 잔잔한 미소를 떠올리고 있었다.
"저예요. 할아버지. 오드리예요." 하고 그녀가 되풀이했다.
"벌써 저를 잊지는 않으셨겠죠?"
"그래, 월터 윌첼 쇼를 듣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는 재빨리 시차를 계산해 보았다.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는 자기가 전화 통 옆에 붙어 앉아 그녀로 부터 전화가 오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었던 것이리라.
"지금 어디에 가 있는 거냐?"
"여긴 시카고예요. 라 살레 호텔이요."
그녀는 떠나기 전에 몇 번이나 그에게 자신의 여행 일정을 알려주었었지만, 벌써 다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거긴 어때 ? 형편없는 싸구려 호텔 아니냐?"
"물론 아니죠. 할아버지."
그녀는 웃음을 터뜨리며, 새삼스럽게도 그가 못 견디게 보고 싶었다. 집에서 너무나 먼 곳으로 와 보니 할아버지가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었다.
"여긴 루프 근처예요. 할아버지도 여기 와 보신 적이 있다고 그러셨잖아요."
"기억이 나지 않는구나. 뉴욕에는 언제 갈 작정이냐?"
"내일 아침에요. 할아버지."
"음, 그렇다면 반드시 객실이 딸린 침대차를 타도록 하여라. 그놈의 기차는 얼마나 지저분한지 말도 못하니 말이다." 그의 세심한 배려에 그녀는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물론이죠. 할아버지..."
"좋아. 괜히 나돌아 다니면 안 돼."
그리고는 갑자기 너무나 애처로운, 거의 애원조에 가까운 목소리로 그가 다시 말했다. 도저히 에드워드 답지 않은 말투에 그녀는 마침내 눈물을 홀리고야 말았다.
"뉴욕에 도착하면 다시 전화해 줄 수 있겠니?"
"도착하자마자 전화부터 할께요."
그녀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흘러나오자 그는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에게 무언가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으나 적당한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사실 시카고에서 전화를 걸어 준 것만 해도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뉴욕에서는 어디에 머무를 작정이냐?"
"플라자 호텔에요. 할아버지..."
"음, 그래."
그리고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몸조심해라, 오드리"
"그럼요. 할아버지. 약속 드릴께요. 할아버지도 몸조심하세요. 너무 늦게까지 계시지 말구요."
"그 기차에선 특히 더 조심해야 해!"
다시 그게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객실에서 꼼짝도 하면 안돼 !"
그러나, 다음 날이 되자 오드리는 할아버지의 충고는 깨끗이 잊어 버리고 있었다. 특등 객차의 바에는 행복한 표정으로 떠들어대는 사람들이 북적대고 있어, 전혀 위험할 것 같지 않았던 것이다.
식당도 무척 깨끗했고, 깔끔한 웨이터들이 훌룡한 음식들을 날라다 주고 있었다. 그녀는 신혼 여행을 즐기고 있는 한 부부와 클리블랜드에서 오는 길이라는 무척 점잖아 보이는 한 변호사와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를 했다. 변호사는 그녀에게 뉴욕에 도착하면 다시 만나자며 맨 역에서 호텔까지 그녀를 태워다 주겠다는 제안을 하기도 했지만 그녀는 정중하게 그 제의를 사양했다.
뉴욕에 도착하자 그녀는 혼자 택시를 잡아타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차창에 바짝 몸을 붙이고는 마천루와 우스광스럽게 생긴 모자를 쓰고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닥치는대로 찍어댔다.
그녀는 눈으로 본 것들을 카메라 렌즈로 포착하는 데에는 가히 천재적인 재질을 갖고 있었으며, 택시가 호텔에 도착한 줄도 모르고 사진 찍는데만 온 정신을 집증하고 있었다. 주차장에는 멋진 자동차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요금을 지불하는 그녀를 운전사가 유심히 바라보더니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아가씨는 관광객이오, 아니면 사진작가요?"
그녀는 호텔 종업원에게 짐을 건네 주며 운전사의 질문에 미소를 머금은 채 대답했다.
"둘 다예요."
"뉴욕 관광을 하실 건가요?" 그가 다시 물었다.
"그럼요."
그녀는 시계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한 시간 후에 이리로 와 주실 수 있겠어요?"
아름답고 화창한 오후였다. 실로 오랜만에 그녀에게는 시간이 남아 돌고 있었고 할 일이라고는 도시를 구경하는 것 밖에 없었다.
운전기사는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을 했고, 틀림없이 그 약속을 지켜 주었다. 한 시간 후에 그녀는 다시 택시를 타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과 세인트 존 성당을 구경했다. 할렘을 지나는 동안에는 두 꼬마 아가씨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그들의 사진을 찍기도 했다.
마치 천국과도 같은 하루, 천국과도 같은 여행, 천국과도 같은 순간 순간들이었다. 호텔로 돌아오자 그녀는 천국을 모두 구경한 듯한 기분이 되었다. 그녀는 빌딩과 사람들과 할렘과 센트럴파크와 이스트 강과 허드슨 만과 조지 워싱턴 브리지와 월 스트리트를 찍느라고 6통의 필름을 썼다.
오드리는 그날 밤 생기에 넘치는 목소리로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건 후 21이라는 레스토랑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뉴욕에서는 가장 유명한 음식점 가운데 하나였으며 여자들이 혼자서 마음놓고 드나들 수 있는 몇 군데 안 되는 곳 중에 하나이기도 했다.
오드리는 새까만 칵테일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자리에 앉자마자 두 명의 남자가 접근해 왔지만 곧 웨이터가 재빨리 달려와 그들을 돌려 보내 주었다.
그녀는 배에 오르기 전에 사훌 동안 뉴욕에서 유익한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다. 가보고 싶었던 관광 명소들을 모조리 둘러보았고, 두 편의 영화까지 볼 수 있었다. 두 편 모두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조안 크로포드가 나오는 영화였다. 모두 1년 전에 나온 영화들이었지만, 오드리에게는 그런 영화들을 볼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는 하염없이 거리를 헤매며 수많은 가게들을 기웃거려 보았지만 1년 반 전에 문을 연 엘모로코에 가볼 수 없었던 것이 너무나 아쉬웠다. 아나벨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모든 실내장식이 얼룩말의 줄무늬 형태로 되어 있으며, 아름다운 선남선녀들이 밤새도록 춤추고 마시는 곳이라는 것이었다. 오드리도 꼭 한 번 가보고 싶었지만 뉴욕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단 한 사람도 없어 감히 혼자서는 가볼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는 뉴욕에서 겪은 모든 이야기들을 아나벨에게 들려주고 싶어 전화를 걸었다.
"언니는 얼마나 좋을까. 나도 언니따라 갈 걸 그랬나 봐."
"모든 사람들이 멋진 모자와 화려한 옷들을 입고 다녀."
사실 모든 것이 다 캘리포니아보다 더 크고 더 밝고 더 흥미로왔다.
"엘모로코에 가봤어?"
오드리는 웃으며 동생에게 대답했다.
"가보긴? 어떻게 갈 수가 있겠니 ? 여긴 내가 아는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었는데..."
"그럴 듯하게 차려 입은 사람은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
오드리는 다시 한번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도 물론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었지만, 그건 작년과 같은 불경기 대의 이야기였다.
"그건 그렇고, 거긴 별 일 없니 ?"
그녀는 다시금 어린 동생을 걱정하는 심정이 되어 물었다. 그녀가 보기에 아나벨은 여전히 어린애에 불과했다. 그녀는 자신의 새끼를 보호하려는 어미 호랑이처럼 잔뜩 신경을 곤두세웠지만, 아나벨은 아무 일도 없다고 언니를 안심시켰다.
"우린 잘 지내. 언니가 없어서 좀 힘들긴 하지만 말야. 난 언니가 어떻게 그 많은 일들을 혼자서 다 해낼 수 있었는지 모르겠어."
아나벨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지만, 오드리는 그런 그녀가 보이지 않는 것이 오히려 다행스러웠다.
"너도 잘 할 수 있어. 인내심을 가지렴.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을 다 배울 수는 없잖니."
"그런데 하코트는 내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나봐."
그녀의 목소리는 수심에 가득 차 있었지만, 오드리는 미소를 지었다.
"남자들은 그런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한단다. 할아버지를 생각해봐."
오드리의 눈에서는 계속 눈물이 흘러 내리면서도 그녀의 입가엔 미소가 번졌다.
"넌 지금도 잘 해 나가고 있어."
그것은 항상 그녀가 동생을 격려해주기 위해 하곤 하던 말이었다.
"어린 윈스톤도 잘 키울 수 있을 거구." 그건 사실이었다. 아나벨은 마치 어린 소녀가 인형을 가지고 노는 기분으로 윈스톤을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뭔가 실수라도 할까봐 걱정스러워 죽겠어, 언니."
"그렇지 않을 거야. 넌 엄마니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어."
오드리는 전화요금이 엄청나게 비싸다는 데 생각이 미치기 시작했다.
그녀는 부모가 물려준 돈 가운데 5천 달러만을 갖고 집을 나섰고, 그 돈으로 모든 경비를 충당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만 끊어야겠구나, 아나벨. 배를 타기 전에 다시 전화할께."
"그게 언젠데?"
"이틀 후야!"
그녀는 자기가 배를 타는 것을 아나벨이 전혀 부러워하고 있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배만 탔다 하면 항상 심한 배멀미에 시달리곤 했던 것이다.
"몸 조심하고, 아나벨. 할아버지에게도 안부 전하렴."
"할아버지는 나한테 한번도 전화를 하지 않는걸." 하고 그녀가 불평하듯 말했다.
"네가 걸면 되잖니."
오드리는 그런 동생이 은근히 얄미워졌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진화 한 통 자기 손으로 걸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항상 상대방이 먼저 접근해 오고 연락 오기만을 기다리곤 했었다.
"할아버지는 이제 너를 필요로 하고 계실 거야."
"알았어, 언니. 내가 전화할께, 엘모로코에 가게 되거든 꼭 알려줘야 해 !"
오드리는 혼자 미소를 지으며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형제 지간에 어쩌면 그렇게도 다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 무척이나 재미 있었다.
자기가 짜놓은 유럽 여행 계획을 아나벨이 알면 얼마나 못마땅해 할까. 샤넬이나 파토우 같은 곳은 그녀의 계획에서는 쑥 빠져 있었다. 오드리에게는 잡아야 할 다른 물고기들이 있었던 것이다.
다음날, 배에 도착하자마자 그녀의 심장은 마구 줄달음치기 시작했다.
모레타니아 혹의 4개의 굴뚝을 바라보는 순간, 그녀는 마침내 자신의 꿈이 실현되려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의 앨범에대한 기억은 어느덧 저편으로 사라지고 오로지 그녀 자신의 여행, 그녀 자신의 모험, 그녀 자신의 계획만이 온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녀는 자신의 객실에 짐을 풀어놓고 갑판으로 나왔다. 그녀를 전송하러 나온 사람은 물론 아무도 없었지만, 항해가 시작되자 그녀는 갑판 위를 혼자 거닐어 보았다.
배가 항구로부터 서서히 멀어지고 있었고, 다른 승객들은 손수건과 색종이를 흔들며 전송나온 친구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있었다. 다른 모든 소음들을 삼켜 버리는 듯, 뱃고동 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고, 오드리의 바로 옆자리에서는 한 젊은 부부가 서로 팔짱을 낀 채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인은 검은 머리칼과 커다란 푸른 눈, 우유빛 피부를 가졌으며 분홍색 신발을 신고 있었는데, 해변의 친구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 있었다.
팔에 무척 커다란 다이아몬드 팔찌를 하고 있는 것이 오드리의 눈에 들어왔다. 뱃고동 소리가 사라지자 그녀의 웃음소리와 함께 같이 있던 남자와 키스를 나누는 장면을 오드리는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 남자는 하얀 바지에 해군복을 본뜬 화려한 웃도리를 입고 있었다. 유쾌한 웃음소리를 퍼뜨리며 서로 팔짱을 끼고 갑판 위를 거니는 모습은 그저 보기에도 무척 아름다왔다.
오드리는 그들이 신혼여행을 떠나는 부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나중에 그들이 라운지에서 함께 샴페인을 마시는 것을 보았을 때 자기 생각이 거의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그녀는 그날 밤, 식사를 하면서 내내 그들 부부를 유심히 지켜 보았다. 그 여자는 유난히 돋보이는 새하얀 이브닝 가운을 입고 있었고, 그녀의 남편은 까만 넥타이를 맨 모습이었다. 오드리 자신은 그때 회색 이브닝 가운을 입고 있었는데, 바로 몇 달 전 샌프란시스코에서 산 그 옷이 갑자기 그렇게도 초라해 보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것에 신경쓰고 있을 시간이 전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었다.
식사를 마친 오드리는 조끼를 어깨에 걸치고 갑판으로 올라갔다. 거기서 그녀는 아까 식사 때 본 그 부부를 다시 볼 수 있었는데, 그들은 은은한 달빛 아래서 서로 손을 맞잡고 뜨거운 키스를 나누고 있는 증이었다. 오드리는 갑판 위에 놓인 의자에 걸터앉아 하늘에 걸린 달을 올려다보고 있는데, 예의 그 부부가 자기 옆을 지나길래 살며시 미소를 지어 주었다. 그러자 그들 부부는 오드리가 앉은 의자 근처에 멈춰서더니 역시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 것이었다.
"혼자 여행을 하시나 보죠?"
여자 쪽에서 먼저 오드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가까이서 보니 그녀는 파란 다이아몬드를 연상시킬 만큼, 실로 적당한 표현을 찾아낼 수 없을 정도의 대단한 미인이었다.
"네, 그래요."
오드리는 갑자기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여행 도중에 새로 만나게 될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질문을 던질 것이었다. 막상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젊은 여인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자 오드리는 약간 거북하고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난 바이올렛 호돈이라고 해요. 이쪽은 남편 제임스이구요."
오드리는 다이아몬드 팔찌와 커다란 에메랄드 반지를 낀 그녀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고 악수를 나누었다.
"신혼 여행을 즐기시는 중인가요?"
오드리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질문을 던지자 그들은 둘 다 폭소를 터뜨리는 것이었다.
"우리가 그렇게 보이나요?"
바이올렛은 생각만 해도 우습다는 듯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어쩌면 좋아. 여보, 당신 눈빛이 빨리 침대로 돌아가지 못해 안달을 하는 사람으로 보이나봐요."
다시 한 번 세 사람 모두 기분 좋게 웃어 젖힌 후, 바이올렛은 재빨리 사실을 털어놓았다.
"사실, 우리는 결혼한지 벌써 6년이나 되었답니다. 집에는 아이가 두명이나 우릴 기다리고 있는 걸요. 휴가를 맞아서 보스톤에 사는 남편의 사촌을 만나러 온 것 뿐이에요. 나도 뉴욕에 한번 와보고 싶었구요. 당신도 뉴욕에서 오시는 길인가요?"
그녀의 세련된 말투와 우아한 외모에 오드리는 완전히 압도되어 마치 자신이 보잘 것 없는 촌뜨기처럼 느껴졌다.
"저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오는 길이에요." 오드리의 대답을 들은 바이올렛 부인의 치켜뜨는 눈썹에서 재미있어 하는 표정을 역력히 읽을 수 있었다. 오드리보다 그다지 나이가 많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요? 원래 그곳에서 태어나셨나요?" 그녀는 질문하기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호기심 많은 성격인 모양이었다. 그녀의 남편이 재빨리 끼어들어 그런 그녀를 웃는 얼굴로 장난스럽게 나무랐다.
"여보, 제발 그렇게 사람들을 귀찮게 하는 버릇을 좀 버려요!"
하지만 대체로 미국인들은 참을성이 많은 듯, 그녀의 그런 질문들에 기꺼이 대답해 주곤 했었다.
"괜찮아요." 하고 오드리가 말했으나 바이올렛 부인은 정중하게 사과를 하는 것이었다.
"미안해요. 제임스 말이 옳아요. 난 아무래도 너무나 많은 질문을 하고 싶어 하는 나쁜 버릇이 있나봐요. 영국에서는 사람들이 모두 나를 무례하기 짝이 없는 여자로 생각하곤 해요. 그런 면에서는 미국 사람들이 훨씬 더 관대한 것 같더군요."
그녀가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하자 오드리도 그녀를 따라 웃었다.
"괜찮아요. 저도 즐거운 걸요. 사실 저는 하와이에서 태어나서 11살 때 샌프란시스코로 옮겨 갔었어요. 거기가 우리 부모님의 고향이었죠."
"참 재미있네요."
그녀는 정말로 오드리의 이야기에 마음이 끝리는 모양이었다. 오드리는 그제서야 아직 그들에게 자신의 소개조차 하지 않았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그들 세 사람은 정식으로 인사를 하고 나서 제임스가 샴페인이나 한 잔 함께 드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했다.
그 남자 역시 반짝이는 새까만 머리카락과 넓직한 어깨, 그리고 흠집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귀족적인 손을 가진 드물게 보이는 미남이었다.
오드리는 자신도 모르게 자꾸만 그에게 눈길이 가는 바람에 무척 애를 먹었으나, 사실 그들 부부가 함께 있는 것을 보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읕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던 것이다.
그들은 아름다운 외모와 번뜩이는 재치, 값비싼 보석들,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는 세련된 분위기 등등을 고루 갖추고 있었다.
"유럽에는 자주 가는 편인가요?"
바이올렛 이 다시 질문을 하기 시작했지만, 이번에는 제임스도 굳이 말리려 들지 않았다.
"딱 한 번 가본 적이 있을 뿐이에요. 제가 18살 때, 할아버지와 함께였어요. 그때는 런던과 파리에 들렀다가 제네바의 온천에서 한 일주일 정도 보낸 후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갔었어요."
"그땐 무척 지루했었겠네요. 그렇지 않았어요?"
바이올렛과 오드리는 함께 웃음을 지었으며, 제임스는 말없이 자기 아내를 지켜 보고 앉아 있었다. 아내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듯한 그를 지켜 보며 오드리는 갑자기 아나벨 생각이 떠올랐다. 결혼 생활이란 것이 어떠해야 할 것인가를 직접 눈으로 보는 듯 했기 때문이었다.
서로에 대해 타인이 아니라 서로 상대방을 아껴 주고 같은 대상을 보며 함께 기쁨을 누리는, 그러한 아름다운 모습이 그녀의 눈에 비춰졌던 것이다.
오드리는 이런 남자를 만나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평생 독신으로 지내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바이올렛에 대해시 질투심을 느꼈던 것은 전혀 아니었다. 그들 둘이서 함께 있는 것만 보아도 오드리는 무척이나 즐거웠던 것이다.
바이올렛이 계속해서 수다를 떨었다. 오드리는 그들과 함께 웃고 떠들며 정말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즐거운 저녁 한 때를 보냈다.
"유럽에서는 얼마나 머무를 예정입니까?" 제임스가 그들의 잔에 두병째 샴페인을 채우며 물었다.
"여름이 끝날 때까지는 여행을 계속하게 될 것 같아요. 그때쯤 돌아가겠다고 할아버지와 약속을 했거든요. 참, 전 올해 81살 되신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어요."
"무척 따분한 생활이겠군요."
제임스가 말했다.
"그렇지도 않아요. 할아버지는 무척 훌룡한 분이에요. 할아버지와 나는 거의 매일같이 정치적인 주제를 놓고 논쟁을 별이곤 한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건강에도 좋죠. 나도 항상 바이올렛의 아버님과 티격태격 말다툼을 하죠. 무척 재미있기도하고 유익하기도 해요."
그들은 단 하루 사이에 이미 절친한 친구가 되어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웃음을 지었다.
"당신의 여행 계획을 좀 들려 주시겠어요?"
"글쎄요. 먼저 런던에 들렀다가 파리로 갈 예정이에요. 거기서 자동차로 남 프랑스로 갈까 하는데."
"자동차?"
그는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직접 운전을 하신다는 건가요. 아니면 운전사를...."
그녀는 그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꼭 저희 할아버지 같은 말씀을 하시는군요. 이래봬도 전 일류 운전사랍니다."
"설마...." 제임스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바이올렛이 손을 내저으며 끼어들었다.
"그 낡은 사고방식 좀 버리세요. 여자라고 운전하지 못하란 법이 어디 있어요? 그 다음에는 어디로 가실 거예요?"
그녀는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오드리에게 돌리며 물었다.
"아직 확실하진 않아요. 지금 생각 같아서는 리비에라에서 며칠 묵은 후에 자동차나 기차편으로 이태리를 가보고 싶어요. 로마, 플로렌스, 밀라노....."
그녀가 잠시 말을 머뭇거리자 그들이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시간이 되면 베니스에서 며칠 더 머무르고 싶어요. 거기서 기차를 타고 파리로 와서, 집으로 돌아가야죠."
"그 모든 곳을 9월까지 다 둘러볼 수 있겠어요?"
"할 수만 있다면 그 외에도 가보고 싶은 곳이 너무나 많은데 아무래도 시간이 없을 것 같아요. 스페인과 스위스, 오스트리아, 독일에까지도 가보고 싶지만....."
그녀는 인도, 일본, 중국 같은 곳 까지는 차마 입밖에 내지도 못하고 혼자 미소를 지었다. 온 세계가 다 그녀의 마음을 끌어 당기는 곳이었으며, 그것은 마치 야금야금 꼭지에서부터 씨까지 갉아먹고 싶은 거대한 사과와도 같은 것이었다.
"내 생각에는 여름이 가기 전까지 그 절반도 가보지 못할 것 같군요."
제임스가 말했다.
"그동안 내내 혼자서만 여행할 건가요?" 이번에는 바이올렛의 질문이었다. 오드리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대단한 용기로군요."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항상 이런 여행을 꿈꾸어 왔거든요. 나의 아버지가 그랬듯이.... 아버지는 온 세상에 다니지 않은 곳이 없었어요. 마지막엔 결국 하와이에 눌러앉았지만 피지나 사모아, 보라보라 등을 늘 여행했어요. 그런 아버지의 피가 내 몸속에도 흐르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이런 여행을 꿈꾸지 않은 적이 없었어요. 혼자서 사람들을 만나며 무언가를 하고.... 그런데 갑자기 정말로 내가 여기 와 있군요."
그녀는 즐거움에 사로잡혀 어쩔 줄 몰랐다. 바이올렛 부인이 팔을 내밀어 그녀를 가볍게 포옹해 주며 말했다.
"당신은 정말 재미있는 아가씨예요. 굉장히 용감하기도 하구요. 나 같으면 제임스 없이 혼자 그런 여행을 한다는 것은 아마 꿈도 꾸지 못할거예요."
제임스는 그녀를 바라보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이제 슬슬 아내와 함께 잠자리에 들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의 눈이 아내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오드리도 제임스의 그런 눈치를 읽었다.
"정말로 즐거운 저녁이었어요. 두 분께 감사드립니다. 샴페인 잘 마셨어요."
"내일도 함께 만나는 것이 어떨까요? 점심식사를 함께 하는 것도 좋겠네요."
바이올렛이 상냥하게 말했고 오드리도 동의했다.
"그렇게하죠. 그럼 내일 뵙겠어요."
오드리는 그들을 남겨 두고 자신의 객실로 내려왔다. 그들과 함께 보낸 저녁 시간은 정말 즐거웠다.
오드리는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바이올렛으로부터 그녀 자신은 28살이고 제임스는 33살이며, 역시 제임스라는 이름의 5살 난 아들과 3갈짜리 딸 알렉산드라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런던에 살고 있으며, 시골에도 저택을 갖고 있고, 케이프 탄 티베스라는 곳에서 여름을 보낸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무료함이나 권태 같은 것과는 거리가 먼, 호화스런 생활을 구가하고 있었다.
그들에게서는 재미있고 신비스럽기까지 한 분위기가 풍겼으며, 그 다음날 함께 점심 식사를 한 이후로 그들 셋은 줄곧 함께 어울려 즐거운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다.
그들은 항상 붙어다니는 삼총사가 되어 함께 웃고 춤추고 떠들어댔다. 다른 승객들까지도 그들 덕분에 지루하지 않은 여행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오드리와 호돈 부부는 이제 뗄래야 뗄 수 없는 절친한 친구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드디어 영국에 도착하기 하루 전날 밤, 그들은 언제나처럼 함께 모여 앞으로 헤어져야 한다는 슬픔에 사로잡혀 있었다.
"우리와 함께 케이프 안티베스로 가지 않겠어요?"
먼저 그런 제안을 내놓은 것은 바이올렛이었지만, 제임스도 그에 뒤질세라 열심히 오드리에게 권했다.
"정말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겁니다. 대단한 인물들이 많이 모여드는 곳이니까요."
그들 가운데서도 머피스, 제랄드, 사라와는 절친한 교분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 때는 헤밍웨이도 그곳에서 그들과 함께 여름을 보내기도 했고, 피츠제랄드는 단골손님이었으며 피카소, 도스 파소스 등의 인물들이 함께 어울리기도 했다. 호돈 부부는 무척이나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듯 했다.
"꼭 와야해요."
바이올렛은 오드리를 붙잡고 신신당부를 했다.
"어차피 남 프랑스에 들릴 계획이라니, 거기서 며칠만 더 머무르도록 계획을 바꾸면 되잖아요."
"그렇게 해요. 오드리."
제임스도 한몫 거들었다.
"기다리고 있을께요. 우린 7월 2,3일 쯤 그곳에 갈 테니까 그때 꼭 오셔야 합니다."
"그럴께요." 하고 오드리도 약속했다.
갑자기 그 해 여름이 더욱더 아름다와질 것만 같았다.
그녀 앞에는 이제 새로운 세상이 활짝 펼쳐져 있었다. 오드리의 머릿 속에는 닥쳐 올 황홀한 순간들에 대한 상상의 나래가 마음껏 펼쳐지고 있었고, 호돈 부부와 자신을 만나게 해준 행운의 별에 대해 무한한 감사를 드리고 싶은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