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새
친구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죽은 고목을 가리켰다. 나는 나뭇가지에 앉은 파랑새를 처음으로 보았다. 친구는 어릴 때 고향 황해도에서 자주 보았다며 파랑새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해주었다. 내 가슴에도 마음속 깊이 웅크린 옛 추억 한 토막이 날개를 파닥거렸다.
군대시절, 월남에 갈 장병들의 훈련부대라서 위문 엽서가 많이 왔다. 엽서 한 묶음을 풀자 초등학교 학생들이 쓴 엽서가 쏟아졌다. 제목은 한결같이 “국군장병 아저씨에게”였다. 특이한 제목의 엽서가 눈길을 끌었다. 큼지막한 펜글씨는 시원스럽고 난초 잎처럼 가지런했다.
부대에서 제일 멋진 장병님께!
이 엽서를 받는 분은 부대에서 제일 용감하고 멋진
장병님이 될 것입니다.
저는 행복의 여신 특별 보좌관이기 때문입니다.
1965. 11. 20
H 초등학교 김 선생
김 선생은 군 복무를 마친 남자 선생으로 병사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이런 엽서를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행복의 여신으로 믿고 싶어 엽서를 가슴 주머니에 고이 넣었다.
월남 파병은 지원이었다. 나는 지원하지 않아 다른 부대로 전출되었다. 새 부대에서 맡은 직무는 자동소총 사수였다. 오랜만에 군인다운 나를 느꼈다. 우리 소대는 펀치볼 지역에 파견되었다. 작전 임무는 동해안에서 서해안에 이르기까지 산의 8부 능선에 나무 울타리를 설치하는 일이었다. 통나무 밑동에 콜타르를 칠하여 울타리를 세우면 그 위에 철선을 휘감고 마지막으로 부비트랩을 설치했다. 산이 험악해서 안전사고는 날마다 일어났다. 이럴 때 위문 엽서를 꺼내어 읽으면 영화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 힘이 솟았다. 엽서 속의 글 몇 줄이 이렇게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신비로운 감마저 들었다.
병역 의무를 마치는 전날 밤, 엄격했던 중대장은 떡을 해서 제대병들에게 잔치를 베풀었다. 양구에서 새벽에 떠나 정읍역에 도착하니 밤 11시가 넘었다. 신작로에는 달리는 차도 없이 눈만 하얗게 쌓였다. 집에 돌아왔다. 군대 생활이 없었더라면 이렇게 자유롭고 편안한 시간의 가치를 평생 모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고향에는 해마다 눈이 많이 왔다. 어젯밤에도 눈이 수북하게 내렸다. 오늘은 편지를 보냈다. 이름도 주소도 몰라 "김 선생에게 (행복의 여신 특별 보좌관)"라고 썼다. 주소는 어린이들의 학교 주소를 썼다. 보름 만에 회답이 왔다. 학교에 김 선생이 여럿이어서 7번째로 받았으며 2년 전의 일이라 다 잊고 있었는데 답장을 주어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 신의 답이라도 받은 듯 기뻤다.
보릿대 껍질을 벗기니 금 젓가락처럼 속이 노랗고 깨끗했다. 보릿대로 금 지게를 만들어 행복의 여신에게 보냈다. 편지 왕래는 복학한 1학년 2학기부터 벌써 3년째다. 학교생활을 알리면 행복의 여신은 큰 칭찬을 해주어 나는 어린이 같은 마음으로 대학 생활을 보냈다. 대학 동아리 활동에서 여러 여학생과 만났지만, 여신과 대화를 나누는 자부심으로 누구에게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친구들과 캠퍼스 동산의 마로니에 나무 그늘에 앉았다. 김 선생에게서 온 편지를 공개했다. 김 선생은 과년한 처녀로 부모님께 걱정을 끼쳐드리고 있다면서 현실 속에 있는 나를 결혼 상대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친구들은 당장 내려가 만나보라 했다. 학생인 나에겐 결혼이란 빨라야 4년 후에나 가능한 일인데…. 그렇다고 당장 결혼할 수 없는 궁핍한 나를 말하는 것도 싫었다. 답장해야 한다면서 하지 못하고 벌써 몇 개월이 지났다.
김 선생으로부터 편지가 왔다. 지난 일요일에 결혼했다. 지아비의 근무처가 00으로 옮겨져 자신도 00으로 떠난다. 마지막 편지를 보내며 그간 고마웠다는 내용이었다. 나도 모르게 눈이 감겼다. 귀에서 갑자기 팽팽한 강철 줄이 끊어지듯 땡 소리가 났다. 여신과 나를 잇는 줄이 끊어지는 소리였을까.
어려운 세상에 살다 보니, 때로는 누구로부터 위로를 받고 싶은 날이 있다. 나는 김 선생에게서 용기를 얻어 군복무를 잘 마쳤지만, 정작 김 선생의 삶을 살펴 한 줄 글로도 위로하지 못했다. 어쩌면 김 선생은 내 삶의 파랑새였을 수도 있었다. 새는 어디든 날아갈 수 있는 날개를 가졌다. 하긴, 아무리 힘들어도 위로해주지 않는 남자의 어깨에 앉을 여자가 있을까.
오늘에서야 지나간 삶의 페이지를 하나씩 넘겨보았다. 삶의 길목마다 만난 누군가가 힘이 들 때, 그를 다독거린 기억이 하나도 없다. 기껏 어릴 때, 울타리에 오르도록 나팔꽃 줄기에 막대기를 대준 것뿐이다. 내 주위에도 위로를 받아야 할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을 텐데, 내 앞만 바라보는 나에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삶에는 많은 기회가 찾아온다. 나에게 도움이 되는 기회를 많이 놓쳤지만 내가 도움이 될 기회도 잡지 못했다. 기회는 순식간에 지나가고 떠난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 평범한 진리를 머리에 하얀 성상이 내린 고희가 넘어서야 깨우쳤으니, 참 우둔했나보다. 하지만 지금에라도 나를 알았으니, 이제는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는 존재가 되라는 하늘의 뜻이 아닌가 싶다.
아침 창문을 여니, 새가 어디로 가는지 혼자서 회색 하늘을 날아간다. 이른 아침에 약초 한 잎을 따러 갈까. 왠지 날아가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다. 신문을 펴니 어떤 기사는 눈물을 머금었다. 긴 세월 끝에 서 있는 이 나이에 더는 파랑새가 날아올 리 없으므로 이젠 남에게 작은 희망이라도 주는 파랑새이고 싶다.
첫댓글 오랜만에 다시금 읽었네. 참 애틋하고 이쁘네그려. 고교시절 옆자리에 앉아 꿈결 속 허둥대며 함께 그려보던 소녀... 그 보다 김선생이 더 고왔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