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곰소포구 인근 곰소모텔에서 아침을 맞는다. 지난밤 늦게까지 부산을 떨고도
이른 새벽 6시부터 깨어 일어나 해변가 산책을 즐기는 노익장의 청춘이 있다.오늘은 어제와 달리 내변산 산행이다.
오전 7시. 어제 저녁 만찬을 즐긴 <남도회집>에 아침상이 마련되었다는 전갈
을 받고 깔끔하고 너른 대청으로 안내된다. 주변 식당가는 다들 조용한데 부지
런한 이집 주인 내외만이 정갈하게 아침상을 준비 하였다.대합조개탕이 올려지고 알록달록 예쁜 조개 껍데기 안에는 포도포동 살찐 하얀
조갯살이 맛깔스럽고, 많은 젓갈류 중에도 밴댕이 젓갈 한켠으로 자주 젓가락이
향한다. 가난했던 우리 시대의 그 어린시절 밥상머리에 자주 올려지던 조갯살
을 넣은 아욱국과 밴댕이 젓갈 그리고 묵은 김치가 옛맛을 되살려 낸 것이다.
덕분에 밥 한그릇이 거뜬히 비워지고, 한 공기 더 추가! 모닝커피 한잔으로
기분을 살리고 일행은 내소사 방면으로 진행한다.지금 이 시간 도심 같으면 벌써 주변이 시끌버끌 소란했을 터이지만, 곰소
포구와 내소사 주변 마을은 죽은 듯 조용하여 깊은 심산유곡으로 들어온 것
같은 착각속에 빠지게 한다.오전 9시 40분. 능가산 내소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우들은 내소사 입구의
유명한 전나무 숲길로 들어선다. 수령 200년의 울울창창히 솟아있는 500여그루
의 전나무가 도열하여 장관을 이룬 600m의 터널숲길은 내소사만이 간직하고
있는 특별한 자랑거리중 하나이다.부안군 진서면 석포리 깍아 지를 듯 하면서도 품안에 감싸주는 듯 둘려 처있는
가인봉, 관음봉에 안기어 내소사는 푹신하게 안도하며 명당중에서도 가장 으뜸
의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국가 지정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보물이 8점이나 있는데 그중 4점이 내소사
에 있으니 즉, 고려동종. 법화경절본사본, 대웅보전, 영산화개불령화이며 또
지방 유형문화재로 3층석탑, 설선당과 요사의 3점이 지정되어 있다. 이처럼
내소사 일원은 부안에 둘도없는 문화유적의 보고이다.이곳에서 산우들은 선발과 후미의 2개조로 나뉘어 선발조는 부지런히 관음봉
을 향해 앞으로 나가고, 후미조는 천천히 체력을 비축하며 오르도록 하였다.
내소사 입구 왼편쪽 등산로로 방향을 바꾸니 더덕향의 독특하면서도 진한 향내
가 코를 찌를 듯이 다가온다. 필시 근처에 더덕이 야생하며 자라는 군락지가
있는 것 같다.산행로 초입에 서니 내소사 경내로부터 스님의 경읽는 소리와 목탁 두드리는
소리가 아련히 들려오며 참나무/물피나무/노간주나무의 숲길이 급경사면과 연속
으로 깔딱고개로 이어진다. 지난해 장성 백암산을 오르던 기억이 되살아 난다
그때도 백양사를 돌아 오르는 길목부터 급한 경사의 깔딱고개였지? 오늘도
시작부터 땀깨나 흘리게 생겼다.관음봉 2.2km, 직소폭포 3.5km의 이정표가 보이며 잘 정돈된 원목나무 계단을
딛고 한발짝 한발짝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몸도 무겁고 땀방울은 비오듯
쏟아지며, 내가 왜 이렇게 힘든 고생을 하고 있을까? 자문하면서, 그래 아침식
탁에 오른 밴댕이 젓갈에 유혹에 빠저 식탐(食貪)을 했으니! 그것이 문제야,
그렇다고 되돌아 갈 수는 없지 않은가? 가는데 까지 올라 가보자는 오기가
발동하고 앞서간 산우의 뒤를 열심히 따라 붙는다.이번 산행에는 田河鎭 등반대장의 유고로 이곳 등산을 한 경험이 있는 朴尙玉
교수가 리더를 맡는다. 우리의 영원한 田대장은 그간 많은 산행 덕분으로
하체는 튼튼하게 단련이 되어 있으나 상체가 약해져서 체력단련장을 찾은 것이
화근이 될 줄이야! 갑자기 심한 운동으로 목에 근육이 뭉쳐저 병원 통원중
이라니, 동창들께 당부 하는바 항상 과한 것은 이롭지 못한것임을 유념
하시기를........오전 8시 20분. 등반시작 40분이 경과되고 1차 지능선에 올라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식히며 잠시 휴식의 시간을 갖는다. 변산반도앞 너른 서해바다가
시야에 들어오고 뒤돌아 보니 곰소만 너머로 고창 선운산이 손안에 잡힐 듯
아름다운 자태를 들어낸다. 발 밑으로는 관음봉 산자락이 흘러 내린 계곡 속에
내소사가 반듯하게 놓여 있다. 문외한인 우리가 보아도 배산임수 길지에 내소
사는 자리하고 있는 것 같다.오른편으로 눈을 들어보니 관음봉 1.2km, 왼편 능선상으로 직소폭포 2.3km의
이정표가 보인다. 오른쪽 관음봉을 돌아 내소사로 내려 갈 것이냐?(소요시간
2시간), 아니면 직소폭포/월명암/쌍선봉으로 이어지는 내변산 종주산행을 계속
할 것이냐?(소요시간 4시간) 당초계획은 관음봉을 일주 후 내소사에서 후미조
와 합류 할 계획이 었으나 언제 우리가 또 다시 직소폭포와 봉래구곡, 쌍선봉
들의 경승지를 찾을 것이냐 하는데 의견의 일치를 모으고 오르막길 철계단을
오른다.내변산은 기암절벽의 절승지 답게 중간중간 바위등이 있어 수려한 주변 산세를
조망 할 수 있도록 자연적인 휴식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으며 겹겹이 둘려있는
계곡을 돌아가며 우거진 수풀사이로는 아늑한 등산로가 연속으로 이어진다.
철제계단에는 5m/m굵기에 철근을 잘라 받침턱으로 용접하여 미끄러움을 방지
했다. 좋은 아이디어라 생각된다.재백이고개 너른 바위등에 도착한다. 직소폭포 1.5km, 월명암 2.9km, 오늘의
종착지 남여치매표소는 2.1km로 앞으로 남은거리는 모두 6.5km, 우리의 리수로
따지면 약15리가 약간 넘는 산길이다. 평지에서 장정걸음으로 1시간 40분 정도
의 거리이나 이곳은 오르고 내리는 산행길이니 3시간 정도가 소요되지 않을까
예측해 보며 발걸음을 재촉한다.이제부터 내리막 길이다. 계곡에 들어서니 어디선가 졸졸졸 시냇물 흐르는
소리가 난다. 부안댐 상류 발원지라고 우리의 리더 朴교수가 알려준다. 점차
계곡의 폭이 넓어지며 제법 너른 시내와 沼가 나타난다. 인적이 없는 깊은
산골이니 소와 너울에는 산천어들이 마음놓고 자라고 있겠지.오전 9시 30분. 심연으로 떨어지는 폭포음이 귓전에 들리며 드디어 산우
일행은 직소폭포 상단 등허리에 선다. 나무울타리로 경계를 세운 벼랑아래
110m 거리에 직소폭포는 굉음을 내고 수직으로 떨어지고 깊은 소가 시퍼런
모습으로 내려다 보인다.얼마를 더 내려오니 직소폭포 정면을 향하여 전망대가 높다랗게 설치되어
있다. 전망대에 올라 서니 정말로 장관이다. 직소폭포는 30m 높이에서 힘찬
물줄기가 쏟아져 내리고 폭포 아래에는 푸르른 옥녀탕이 출렁대며 그 아래로
여러개의 크고 작은 폭포를 이루고 있는데 이를 봉래구곡이라 부른다. 곳곳에
계속해서 내려오는 믈줄기들은 백천내로 변산댐에 이르면서 곳곳에 시원한 경치
를 만들어 낸다.폭포는 물이 거의 수직으로 떨어져 내리는 상태이며 낙하지점에는 소용돌이와
떠도는 돌, 모래에 바위 밑부분이 깍여 용소(龍沼)가 생긴다. 우리 조상들은
용소를 선녀가 목욕하고 용이 사는 곳으로 신성시 여기고 있다.마침 전망대에는 광주에서 온 젊은 부부가 초등학교 저학년의 어린 자녀와
함께 휴식하고 있어 사진 한컷을 부탁한다. 오늘은 마침 任基石 동창회장이
카메라를 갖고 나와 귀한 장면을 찍을 수 있게 하여 천만다행이다.
감사합니다. 任회장! 오늘 카메라맨들이 불참할 줄 알았으니 선견지명의
혜안이 있으십니다.직소폭포와 작별을 하고 10여분 계곡을 따라 내려오니 폭 50m, 길이 200여m의
호수가 협곡 사이에 가로 놓여 있다. 이렇게 깊은 산골에 이런 호수가 있다니
놀라웁기만 하다.오전 10시. 세갈래 갈림길이 나타나며, 여기서부터 낙조대, 월명암, 쌍선봉
으로 향하는 산오름길이 된다. 어디선가 찌찌, 찌찌하는 산새 울음소리에
이번에는 찌삐, 찌삐하며 화답하는 소리가 들린다. 산새 암수 한 쌍이 서로를
찾는 사랑의 노래인가 싶다. 고즈넉한 계곡속이 순간 청아한 산새소리로 새
생명을 얻는 것 같다.그간 1시간여를 편안하게 계곡물길 따라 내려오다 다시 오르는 등반은 힘들
기도 하나 등반 시작 초반 보다는 훨씬 덜 하다. 월명암 1.2km, 반대로 직소
폭포 1.7km의 이정표가 보이고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월명암 주지의 사찰
경내지임을 알리는 안내문이 서있다. 사찰면적 434.876평방m(131.780평)로
대단히 넓은 경내지 면적이다. 한편으로는 사찰수행 환경보호지역으로 지정
되어 있으니 이곳에서 고성방가와 취사, 야영을 금지 해 달라고 안내되어
있다. 정상 능선에 올라서니 나뭇가지 사이 저 아래로 월명암이 내려다
보인다.월명암(해발380m)은 노령산맥의 서쪽 끝, 변산반도의 능가산 법왕봉 아래
자리하고 있으며 통일 신라 신문왕 12년(692년)부설거사에 의해 창건 되었고
그후 여러차례 재난을 거치며 중수를 거듭하였으며 1945년 원경스님이 군내 각
기관에 협조를 얻어 작은 규모의 암자를 세워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게 되었다
한다. 암자에는 많은 등산객들이 머물거나 우리가 다녀왔던 직소폭포를 향해
오르고 있다. 수인사를 나누니 부천과 전주 산악회에서 단체로 나와 내변산을
찾는 산행객들이다.이제가 마지막 산오름길이다. 저 능선만 넘으면 최종목표지인 남여치매표소가
나타날 것이다. 남은 거리는 2km, 이제 거의 다 왔다. 능선에 올라서니
시원한 바닷바람이 목덜미를 시원하게 적시며, 인근 약수터에는 일단의 등산객
들이 목을 축이고 있다. 마침 수통에 물도 바닥이 난터, 잘 되었다.
시원하게 목을 축이고 아래를 보니 멀리 남여치매표소가 발 아래로 내려다
보이고 우리가 타고온 붉은색의 카운티는 매표소 바로 옆에 주차해 있다.11시 50분. 드디어 우리는 매표소에 도착한다. 鄭회장과 후미조 일행이 박수
로 우리 일행을 맞이하며 하이 화이브로 화답한다. 장장 4시간 10분에 걸쳐
8.9km를 넘은 것이다. 오르고 내리기를 두 번씩이나 했으니 각기 두시간을
오르고 두시간을 내린 셈이 된다. 이곳에서 확인한바 우리가 도착한 남여치
매표소는 직소폭포에서 법왕봉 능선을 타고 오르며 내리는 어려운 등산로인
반면 이웃해 있는 내변산매표소는 직소폭포에서 곧바로 계곡을 따라 내리는
편안한 등산로로서 한시간 정도를 단축할 수 있었다고 하나 이미 지나간 일,
모두가 무사히 산행을 마치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이렇게 해서 내변산을
남북으로 종단하는 어려운 종주산행을 완료하였다.자랑스런 인고56산악회 산우들! 그 용기에 격려와 위로의 인사를 보내
드리네. 모두 모여 변산반도 국토순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기념촬영을 하고
산우들은 오늘의 오찬 장소인 부안읍으로 향한다.시간은 12시 25분. 부안읍내에 있는 한정식 전문집 <낭주식당>에 도착한다.
전화로 사전 예약을 해 놓아 곧바로 오찬장에 앉는다. 산우들은 일박이일의
여정을 무사히 마치었다는 안도감과 산우들의 진한 우정이 산행의 지친 시장함
과 함께 어울려 맛의 고장답게 잘 차려진 남도의 특식인 한정식으로 성찬을
즐긴다. 시원한 맥주와 참이슬 한잔을 높이 들고 또 한번 "餘生同樂"으로 건배
를 제창하니 피곤함은 저만치 물러나고 기운이 소생한다.이번 변산반도 내변산과 외변산에 함께한 산우들의 면면은
鄭石宮산악회장. 鄭明燮총장을 비롯 任基石회장. 吳秉益.
金泰秀. 朴尙玉. 宋炳五. 李康鎬. 李永圭. 李潤榮산우와
筆者 知山이다.오늘 이 지면을 빌어 특별히 소개할 산우가 있어 알려 드린다. 산행 약속을
하고 부득이한 사유로 불참케 되어 미안하다는 인사와 함께 회비를 갖고 아침
일찍이 손수 사당역에 나온 許洸學 산우이다. 고지식한 인품과 덕행에 머리
숙여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그리고 또한 금일봉을 전해준 任基石 동창
회장과 田河鎭 골프회장에게도 고마움의 인사를 전한다.우리 주변에 이렇게 고마운 산우들이 있어, 이번 변산반도 순례길은 시각과
미각의 즐거움은 물론 마음 까지도 한결 풍요로워지고 신체단련의 재충전
기회로 기억되게 하는 뜻 깊은 만남의 장이었음을 감사하게 생각한다.또한 모든 일정을 잘 챙겨준 집행부 鄭총장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순례기를 마치려 한다. 자 그러면 산우들, 다음 만날 때 까지 안녕히.......
첫댓글 지산의 글은 한폭의 수체화/ 섬새하면서도 풋풋함이 있오. 지산은 우리 카페의 자랑이오.
지산이 있기에 인고56산악회의 산행이 더욱기다려진다.참으로 섬세하고도 아름다운 산행기이다.지산과 동행한 동문들이 부럽다.
기행문 쓰는겄이 보통 힘든일이 아닌데... 재성형, 모두를 위해서 참말로 수고햇소. "여 생 동 락"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