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불산에서 길을 잃었다.
벌써 오래 전 일이다. 동학 취재 차 장흥에 가서 억불산을 오르다가 길을 잃었었다. 해발 500여M 남짓인데, 작은 산에서 길을 잃고 헤맨 것이다.
작은 산이라 얕잡아 본 게 잘 못이었다.
장흥읍에서 한 눈에 보이는 산, 억불산, 한 시간 남짓이면 갔다 오지 않을까 싶었다. 점심은 좀 늦을 지라도 다녀와서 먹기로 했다. 택시를 타고 억불산 아래 평화마을까지 가자고 했다. 들녘은 연두색이고 하늘에는 잿빛 구름이 자욱했다. 들판을 가로질러 억불산 산자락으로 들어갔다. 평화마을 입구에서 택시기사는 나더러 내리라고 했다. 아무래도 나는 좀 더 올라가야 할 것 갈은 데, 외평리 입구에서 내리라니, 나는 이곳이 맞느냐고 물었다. 그렇단다. 저만큼 올라가면 길이 있을 것이라고. 그 길을 따라가면 억불산이란다.
약수터를 지났다. 길은 그런대로 내 앞에 펼쳐지고 한참을 올라갔다. 도라지꽃이 현란하게 피어난 그 밭머리에 들어서자 구름 속에 안개가 밀려오며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돌아갈까 망설였다. 그러나 올라온 길이 아까웠다. 그냥 헤치고 올라가자, 높아야 얼마나 높을라고. 그러나 길을 갈수록 깊어지면서 사라졌다.
얼키고 설킨 명감덩쿨, 복분자덩쿨, 찔레덩쿨, 거기에 무성한 칡덩쿨은 더더욱 그러했다. 한발 한발 나는 힘겨운 싸움을 전개하며 산을 오른다. 바라보면 구름 속에 저 만큼에서 산 능선이 손짓할 법한데 그곳에 가면 그곳이 능선이 아니다.
진실로 내가 사는 삶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연약한 내 육체와 정신 앞에 가로 놓여 있는 세상의 벽은 얼마나 두터운가, 두드려도 악을 써도 소리를 질러도 열리지 않고 끔쩍도 않는 벽. 재물의 벽, 명예의 벽, 건강의 벽, 사람과 사람 사이에 엄존하고 있는 불신의 벽. 나는 그 앞에 벌거벗은 채 홀로 서 있다.
조금만 더 가면 어둠의 벽이 걷힐 법한데 세상은 더욱 어둡다. 도피할 길은 없다. 나는 그 벽을 뚫어 버리거나 밀어서 무너뜨리거나 그 앞에 주저앉거나 어떤 형태든 결단해야 한다. 그러나 살아온 나의 삶은 결단을 보류하고 망설이고만 있을 뿐이다.
이렇게 벌건 대낮 작은 산에서 길을 잃기도 하지만 캄캄한 밤에 마을에서 길을 잃었던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소로가 지은 <월든>에 그에 대한 글이 실려 있다.
“속담에도 있듯이 어둠을 칼로 자를 수 있을 만큼 깜깜한 밤에는 마을의 행길에서도 길을 잃는 경우가 자주 있다는 애기를 들었다.
교외에 사는 사람들이 마차를 타고 마을에 물건을 사러 왔다가 하룻밤을 묵어야한 적도 있으며, 나들이를 가던 신사 숙녀가 발만으로 보도를 더듬으며 한 적도 있으며, 나들이를 가던 신사 숙녀가 발만으로 보도를 더듬으며 가다가 언제 옆길로 들어 선지도 모르고 계속 가게 되어 반마일이나 길을 빗나간 적도 있었다고 한다.
어느 때이고 숲속에서 길을 잃는다는 것은 놀랍고도 기억해둘 만한 경험이며 소중한 경험이기까지 한다. 특히 대낮이라도 비바람이 치는 경우에는 낯익은 길 위로 나왔더라도 어느 쪽으로 가야 마을에 이르게 되는지 알 길이 없다. 자신이 이 길을 천 번이나 지나다닌 것은 알지만 그 길의 특징 하나 알아볼 수 없어 마치 시베리아의 길처럼 낯설기만 한 것이다. 밤에는 물론 그 당혹감이란 비할 수 없이 더 큰 것이다.“
‘길은 도처에 있고 길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길은 있다.’ 라고 중얼거리며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한발 한발 올라간다.
땀은 온 몸을 휘감고, 나는 사람들이 뚫어놓은 길에 이르렀다. 힘이 없었다. 다시 천천히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길에 철조망이 있고 그 속에 막사 한 채가 있었다. 저 곳은 무엇일까? 나뭇잎 스치는 내 기척에 한 마리의 개가 나타나고 그 개는 나를 향해 짖었다. 그때 런닝바람의 군인 한 사람이 나와서 짖는 개를 나무랐다. 군 초소였는가 보다. 정상은 바로 눈앞에 있는 듯 한데 아직도 정상은 멀다.
산을 돌고 돌아서 더는 으를 수 없는 정상에 이르렀다.
내가 산정에 도착했을 때, 산정은 구름 속에 떠 있었다. 구름은 산을 감싸고 나를 감싸고 이미 이곳은 구름에 점령당해 있다. 낯은 곳에서 이 산정을 향하여 불어오는 바람 소리. 들렸다. 휘-. 바람이 몰아오는 소리 들리고, ‘쌔’ 하고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 들렸다. 그리고 어느새 구름은 저만큼 내려가서 푸른 평야를 덮고 나는 바위위에 앉아 땀을 닦았다. 볼 수는 있으나 잡을 수 없는 구름. 그 속에서 나는 보이지 않는 먼 곳을 응시한다.
억불산 연대봉 해발 518m라고 쓰여 진 표지석이 바람을 맞고 있고 나는 바람이 몰아오는 이 산정에 서서 온 몸으로 흔들리는 풀잎들을 바라다본다.(...)
내려가는 길은 왔던 길보다 다른 길로 내려가야지. 마음먹고 능선길을 따랐다. 그러나 한참을 작은 나무숲들을 따라 내려오다가, 나는 또다시 길을 잃었다. ‘길 없는 길’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일까? ‘길은 어디에나 있는데, 길은 어디에도 없다.’ 다시 평화마을로 내려 가리라던 나는 정반대방향인 보성으로 회천으로 빠지는 여암마을 입구에 도착하고 말았으니..... 개울물도 없다. 나는 푸른 벼이삭이 넘실대는 논배미에서 논물로 얼굴을 씻고 손을 씻었다. 지레짐작으로는 논물이라 뜨끈 미지근하리라 생각했는데 웬걸 논물이 시원한 개울물 이상이다.
피곤한 나는 내게 남은 마지막 힘까지 지금도 구름 덮힌 저 억불산에 두고 왔다. 이슬에 젖고 땀에 젖은 몸을 이끌고 장흥읍 쪽으로 난 길을 천천히 따라가며 나는 생각했다.
길은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예정된 길을 내가 부정했을 뿐이다. 구름의 탓이라고 혹은 길을 잘못 알려준 택시기사의 잘못이라고 내가 생각할 뿐이다.
그랬다. 프란츠 카프카의 <심판> 중 법 앞에서의 비유가 아니라도 길은 나를 위하여 있고 그 길은 나만이 걸어갈 수 있을 뿐이다.
오늘 억불산 산행은 애당초 내 잘못이었다. 지도상에 억불산 518m라 표시되어 있는 그 높이에서부터 나는 그 산을 무시하고 들어갔었고, 장흥읍내에 내려갔을 때 바라보이는 높지 않은 산의 위용에 더욱더 한 수 접고 들어갔던 게 큰 오산이었다.
매 순간 길은 인간에게 말한다. 오고 가는 것, 거기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그대 몫'이라고,
갑오년 정월 초닷새
첫댓글 열리면 문이고 닫히면 벽이 되는...
닫아걸고 살기는 열어놓고 살기보다 한결 더 강력한 벽... (천양희의 시 벽과문)
이 세상 최고의 일은 벽에다 문을 내는 것...(비노바 바베)
<홀로 걸으라, 그대 가장 행복한 이여 - 비노바 바베 포토 명상집>
그길이 인생길이든, 길이든 홀로 걷다 길을 잃고
흑암에 둘러싸인 경험은 다시 하고 싶지 않지만...
오늘도 마음 문 활짝 열고 걸어야겠습니다.
얼마나 더 많이 걸어야 인간이 되나...(밥딜런의 노래 가사 중에서)
How many roads must men walk down , before they are called him a man
The answer my friend is blowing in the wind, the answer is blowing w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