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의 꽃
메주 고 제 웅
동래 K병원 장례식장 안치실의 가슴 아픈 정경이었다. 염습(殮襲) 전용 스테인리스(stainless steel) 상에 지천명의 S보살 시신이 모셔져있다. 얼마나 어렵게 살았으면 시신에도 고생한 흔적이 역력할까?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인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은 정성스러운 염습(殮襲)뿐이었다. 마음속으로 “나무아미타불…,”염불을 간절하게 되뇌며 탈지면에 알코올을 적셔 온몸 구석구석을 정성스레 닦아나갔다.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있을까?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처럼 해탈이라도 한 듯 시신의 얼굴이 더없이 평온하게 투영되어 적이 안심되었다.
고독사인 까닭에 시신이 방치되어 부패한 탓일까? 가슴속에 켜켜이 쌓였던 모든 아픔과 한을 남김없이 털고 가려는지 배설물이 끝없이 흘려 내렸다. 이 때문에 우선 귀와 코 그리고 입을 탈지면으로 막자, 탈지면에 막힌 귀, 코, 입이 예쁘게 보였다. 죽음도 미색이라니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하지만 하체는 하대(기저귀)만으로는 감당키 어려웠다. 생각다 못해 항문을 탈지면으로 막아주었다. 그런 임시변통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해 낼 수가 없었다. 배설물이 너무도 많이 흘려내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이 같이 난감한 순간에 힘이 된 것은 장례학을 배울 때 들었던 지식이었다.
“고인을 대할 때는 단지 망자와 장례지도사일 따름이다.”라고 배웠던 내용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렇게 배움의 내용이 뇌리를 스치면서“그래! 고인과 장례지도사일 따름이다.”라는 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마음이 여기에 다다르자 시신의 주인공이 더는 여자가 아니었다. 단지 부패하는 시신이었고, 처리해 주어야 할 사체였으며, 전염병을 유발할 수 있는 병원체인 폐기물이었다. 그렇지만 고인도 인간이기에 존엄을 지켜주어야 한다는 숙연함이 중량이 되어 양어깨를 눌렀다.
장례지도사(사수)와 보조 장례지도사(부사수)* 사이는 모든 것이 이심전심으로 통하고 있었다. 사수가 묵묵히 손을 놀리는데도 불구하고 부사수는 사수가 필요로 하는 것을 척척 건넸다. 사수가 지의(紙衣)로 시신의 다리를 가리고 수시 포로 상체를 덮어, 폐광의 갱도 입구만 들어낸 순간, 부사수가 재빨리 미리 잘라 놓은 탈지면을 사수에게 건넸다. 사수는 핀셋에 탈지면을 둘둘 감아 폐광의 갱도 입구를 서슴없이 막아버렸다. 그러자 흘러내리던 배설물이 뚝 멈추었다. 탈지면은 백색이다. 태초에 신이 백색(白色) 백광(白光)의 빛으로 우주의 구멍 난 블랙홀을 막아 혼돈 속에서 세상을 창조하셨다. 그처럼 사수가 S보살의 블랙홀을 막아 저승으로 가는 길을 닦아 준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폐광의 갱도는 한때 건장한 사나이가 간곡히 성전의 빗장을 제치고 값진 보석을 캐내지 않았을까. 깊은 지하 갱도에서 다이아몬드보다 빛나는 보석을 캐어 품에 안고 나왔으리라. 그리고 그 보석을 반짝반짝 빛이 나도록 닦기 위해 노심초사했을 게다. 자존심도 숨긴 채 그 어떤 굴욕도 인내하며 수행자가 도를 닦듯이 인욕도 닦았지 싶다. 아아! 금강장사보다도 더 완강한 무력을 부드럽게 조정했을 선박의 키(key) 같은 여인의 심지(心地)여…, 이제 더는 “풍랑에 흔들리지 말라. 해초 그리고 작은 고동과 소라의 소곤거리는 소리도 파도의 이야기도 가슴에 담지 말라. 성전환만이 왕생극락의 지름길이다.”라고 간곡히 일렀다.
“태아 과정의 가변성 말고도 어떤 종(種)은 성숙한 다음에도 성을 바꿀 수 있다. 수컷에서 암컷으로, 암컷에서 수컷으로 전환하는 형태가 모두 존재한다. 수컷이었다가 암컷으로 변하는 패턴을 ‘프로탄드라이(proandry)’라 부른다. 한편 먼저 암컷이었다가 후에 수컷이 되는 패턴은 ‘프로토지니(protogyny)’라고 한다. 이 두 가지 성전환 패턴은 어류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양놀래기과의 레스, 앵무고기, 말미잘고기의 일부, 엔젤피쉬(angelfish)의 일부가 성전환 능력을 가지고 있다. 어류의 성전환을 처음으로 명확히 증명한 사람은 그레이트 배리어 라이프 해론 섬에서 팩시픽 청소놀래기를 연구했던 로버트슨 박사(D.R. Robertson)였다. 이 청소놀래기들의 사회제도는 하렘(일부다처제) 방식이며 여섯 마리 정도의 암컷을 한 마리의 수컷이 거느린다. 수컷 청소놀래기는 암컷들을 그의 하렘 안에 보호시켜 놓고 다른 수컷이 오면 화가 난 특별한 몸짓으로 방어한다.”
“청소놀래기의 암컷들도 엄연한 서열을 가지고 있다. 이 종이 프로토지니 패턴(먼저 암컷이었다가 수컷으로 변하는)의 성전환을 한다. 수컷이 죽거나 없어지면 서열 1위의 암컷(대개 몸집이 가장 큰 암컷이다)이 성전환 반응을 나타낸다. 그 속도는 상당히 빠른 편으로 1~2시간 뒤면 선임 암컷이 수컷 모양을 나타내면서 영토 경계선을 순시하며 다른 암컷들을 지휘한다. 2일 내지 4일 이내에 암컷의 성전환은 완결되어 기능적으로도 완전한 수컷이 되며 나머지 암컷들과 구애하고 알을 수정시킬 수 있다.”
물고기가 성전환 하듯이 영가(영혼)도 성전환 할 수 있나니, 영가의 성전환은 더욱더 쉬우리라. 영가는 죽음을 통해 이미 육신을 여의었기 때문에 여성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남성이라는 인식을 확고하게 다지기만 하면 성전환은 자연히 이루어진다. 영가의 성전환은 이같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장례지도사가 여성의 시신을 염습할 때는 이렇게 이르면 좋으리라.
“영가여 이제 여성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소서. 성이란 본래 이성이 아니건만 한마음(一心)에 번뇌라는 먹구름이 드리워져 촉식*에 의해 이성으로 갈렸습니다. 영가여! 촉식을 벗어나소서. 불성*은 투과하는 빛과 같고 생명을 살리는 물과 같아서 이성에 걸림이 없습니다. 어찌 여성이라는 업연에 매달리십니까? 이제 여성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남성이라고 생각하소서. 촉식의 경계를 벗어나 자성이 청정한 세계를 걸어가소서. 자성 청정의 경계에서는 마음을 따라 성전환이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사는 사바세계는 이성(異性)의 교합에 의해 잉태하며 새 생명을 얻는다. 따라서 이성에 대한 욕망이 없다면 우리 세상은 끝나고 말리라. 반면 극락세계의 비천상은 연꽃이 필 때 연화가 개화되면서 연꽃 안에서 비천상으로 환생한다. 이 때문에 극락세계의 이성은 의미가 없다. 모든 비천상은 환생할 때부터 욕정을 여인 상태로 환생하기 때문에 이성에 대한 갈망이 없다. 이런 까닭에 여성이 극락세계에 환생하려면 먼저 이성에 대한 사랑, 그리움, 원망, 증오, 혐오하는 마음을 비워야 한다. 비천상의 성은 대부분이 남성이며 그들의 성은 오직 염불삼매를 닦기 위한 정진의 힘일 뿐이다. 이 때문에 비천상은 성적인 욕구 때문에 여성의 몸을 원하지 않는다. 여성이 극락세계의 비천상으로 환생하려면 자신의 성을 남성으로 바꾸는 것이 우선이다. 극락세계의 비천상에 이성이 있고, 이성에 대한 그리움, 사랑, 욕정이 존재한다면 극락세계도 이성 때문에 다툼이 일어나리라. 이같이 되면 극락은 더는 극락일 수 없을 게다.
영가여! 이승에서 여성으로 살았던 것이 대수이리까? 이제 이승에서 받아 지녔던 여성이란 인식에서 벗어나 남성으로 전환해야 극락세계에 환생할 수 있습니다. 영가여 저를 따라 소리쳐 보세요,“나는 여성이란 인식과 고정관념을 버리고 남자가 되었다. 성전환으로 남성을 이루었다. 이제 남성으로서 무생법인*을 닦아 동명 동호 대자대비 아미타불을 이루고자 극락세계에 환생하리라.”입관 염불을 하는 스님이나 장례지도사는 이러한 염불이나 법문을 설 한 후에 여성의 시신을 수시, 염습하면 고인은 존엄을 상하지 않고 극락세계에 환생할 수 있을 것이다.
“오오! 비가 옵니다. 동백나무가 물을 마시면 동백꽃을 피우고 진달래가 물을 마시면 진달래꽃을 피우듯이 성은 이성이 아닙니다. 업력, 원력을 따라 남성이나 여성으로 몸을 받았거나 현신하였을 뿐입니다. 밝은 인성으로 하늘을 뚫고 극락세계 연화대에 환생하소서.”라며 합장하고 소렴, 대렴한 시신을 바라보니 시신이 아니라 한 송이 연꽃이었다.
=============================
* 사수와 부사수 : 장례식장에서는 시신을 염할 때 직접 집전하는 장례지도사를 사수라 부르고, 도움을 주는 장례지도사를 부사수라 칭한다.
* 촉식(觸食) : 불교에서 사식의 하나이다. 몸을 길러 유지해 가는 데에 필요한 네 가지 식물(食物)이다. 단식(段食), 사식(思食), 식식(識食), 촉식(觸食)을 이른다. 촉식은 즐거운 생각을 일어나게 하는 촉감을 음식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성적쾌락은 촉감으로 즐거운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니 촉식에 해당한다.
* 불성(佛性) : 모든 중생이 본디 가지고 있는 부처가 될 수 있는 성질을 의미한다.
* 자성(自性) : 자성(自性)은 다른 어떤 것과도 관계하지 않는 자기만의 특성이다. 즉, 어떤 법의 본질적 성질을 그 법(法)의 자성이라고 하며, 간단히 성(性)이라고도 한다. 또 다른 말로 체(體) 또는 실체(實體)라고도 하고 체성(體性)이라고도 한다. 필자의 견해로는 “마음의 실체”다 간단히 말하고 싶다.
* 무생법인(無生法忍) : 모든 사물과 현상이 공(空)이므로 생기고 사라짐의 변화란 있을 수 없음을 깨달음 또는 그렇게 얻은 마음의 평정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