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에 다녀와서 - 사라진 영광의 나라 백제
역사학과 20100627
이한경
역사는 책상에 앉아 배우고 연구하기 보다는 직접 유물이나 유적을 눈으로 확인할 때 그 의미가 더욱 깊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역사학과는 매년 정기적으로 답사에 간다. 특히 이번에는 내가 가보지 않았던 백제 문화권 지역이라서 기대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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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날 우리는 보원사지로 향했다. 보원사지는 3박4일의 답사 중에서 내 기억에 가장 인상 깊게 남은 곳이다. 큰 규모의 사지는 이곳이 상당히 큰 절이었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당간지주와 석탑, 법인국사보승탑, 보승탑비 정도만 남아있다.
보원사지는 다른 절터와 달리 아직 발굴 중이었는데 직접 발굴하는 모습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평소 고고학이나 문화재 발굴에도 관심이 있어 가기 전부터 기대를 했었고 실제로 보았을 때도 더욱 의미 있게 느껴졌다. 하지만 학자의 느낌보다는 노동자의 느낌이 들어서 역시 모든 일이 멋지기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간지주의 크기로 절의 규모를 가늠할 수 있다고 하지만 절과 당간지주의 크기가 어떤 상관관계를 가지는지를 몰라서 애매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지난 겨울에 갔던 불국사의 당간지주와 비슷한 크기였다. 그렇다면 절의 규모도 불국사와 비슷했을 터인데 불국사만큼 거대한 절이 지금은 터만 남았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인간의 역사란 결국은 지나가기 마련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인생무상이라는 말이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위 사진은 발굴하는 모습과 당간지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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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원사는 창건 시기조차 정확히 알 수 없고 언제 폐사되었는지도 기록을 찾아볼 수가 없다. 패망한 국가의 건물이라면 이렇게 터만 남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승리한 국가는 지나간 왕조의 흔적을 지우게 마련 아닌가. 물론 이 절은 백제가 멸망한 뒤에도 계속 존속하여 조선 전기까지는 이어 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저 현재를 사는 나는 백제인의 손길과 혼을 느낄 수 없다는 점이 아쉬울 따름이다. 터만 남은 거대한 절을 돌아보면서 이곳이 마치 찬란했던 백제의 역사가 잊혀 졌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소인 것 같아서 가슴이 아프기도 했다.
보원사지의 오층석탑은 보물 제 104호로 지정되어있다. 상륜부는 노반(露盤)과 찰주(擦柱)를 제외한 나머지가 소실되었으며, 대부분의 탑신이 남아있다.
오층석탑의 상층 기단에는 8부 중상(八部衆像)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이 8부 중상은 답사에서 처음 알게 된 것으로 불법을 수호하는 여덟 명의 신이라고 한다. 대부분 형태가 남지 않았지만 아수라상이 뚜렷하기에 사진을 찍어두었다. 또한 이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탑의 하층 기단은 3등분이 되어 각 칸에 한 마리의 사자상이 양각되어 있었다. 공간 하나 하나를 놓치지 않고 세심하게 꾸민 점에서 고등학교 국사 시간에 배운 백제인의 세련된 미적 감각을 눈으로 확인한 느낌이었다.
위 사진은 금당지와 오층석탑 기단부의 아수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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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에 간단히 점심을 먹고 우리는 백제의 웅진시기 수도였던 공산성에 갔다. 공산성은 여러 차례 개조되었고 성벽의 발굴도 토성 위주로 이루어져 석성에 대한 자료는 미흡한 수준이다.
우리가 성터와 담벽만 조금 남아있는 공산성에 올라간 이유는 임류각을 보기 위해서였다. 임류각은 백제 시대에 연회장소로 쓰였던 누각으로 소실되었다가 복원되기는 했지만, 백제 고유의 건축 양식을 볼 수 있는 건물이다. 임류각은 겉보기에는 우리가 흔히 접하는 조선 시대 건물과 큰 차이가 없어보였다. 이층에 올라가서 천장을 보았을 때야 특이한 점을 찾을 수 있었다. 격자 모양으로 나누어진 천장은 지금까지 건물의 천장에 관심을 둔 적이 없어서 일지도 모르지만 처음 보는 양식이었다.
위의 사진은 임류각과 그 천장이다.
이번 답사는 내게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역사란 단순히 책상에 앉아서 책만 찾아본다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물과 유적에서 단지 미적인 가치만 찾을 것이 아니라 실제로 보고 느끼며 그 속에 담긴 고대인의 혼과 정신을 찾는 것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필드가 선생이다’라는 박 교수님의 말씀이 인상 깊게 남았다. 답사가 어떤 건지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따라갔지만 이런 게 답사구나 하고 배우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생소한 유적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교수님이나 선배들이 설명해 주셔서 이해도 잘 되었다. 비가 와서 힘들기는 했지만 역사학과 학생으로서 간 첫 답사로 의미 깊은 경험이었다.
*유물, 유적에 대한 지식은 답사지를 참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