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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 장안사(長安寺)
부산 기장군 장안읍 장안리 598
01. 연혁
장안사(長安寺)는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루고 나서 국태민안을 염원하기 위해서 전국의 3곳에 장안사(長安寺)라는 사찰을 지었다고 하는 데 이곳 경남 기장군 불광산의 장안사(長安寺), 경북 예천 비룡산의 장안사(長安寺), 그리고 북한 금강산 장경봉의 장안사(長安寺)라고 한다. 하지만 전하는 이야기일 뿐 정확한 근거는 없다.
이곳 장안사는 신라 문무왕(文武王) 13년(673) 원효대사(元曉大師)가 창건하여 쌍계사(雙溪寺)라고 했다가 애장왕(哀莊王, 800~809)이 다녀간 후에 장안사라고 개칭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38년(인조 16) 태의대사(太義大師)가 중건하였다고 한다.
장안사는 주불전인 대웅전(大雄殿)을 중심으로 좌우에 명부전(冥府殿), 응진전(應眞殿)이 있고 명부전, 응진전과 나란히 요사채가 배치되어 있으나, 요사채들은 약 30여 년 전에 신축된 것이며, 원래는 대웅전을 마주보고 강당이 배치되어 대웅전, 응진전, 명부전, 강당이 대웅전 앞마당을 둘러싸고 있는 ㅁ자형 배치형식을 가졌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전각구성과 배치형식은 조선 중․후기에 통불교계(通佛敎界) 사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식으로 이른바 산지중정형(山地中庭形)으로 분류할 수 있다.
02. 대웅전(大雄殿)
보물 제1771호
대웅전은 1654년(효종 5)에 원정(元正), 효능(孝能), 충묵(沖黙) 스님의 의해 중건되었다고 하며, 1948년에 다시 크게 중수한 사실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지금의 대웅전 모습은 1654년 중건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의 다포계(多包系) 양식인 장안사 대웅전에는 중앙에 본존불인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오른쪽에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 왼쪽에 약사여래(藥師如來)가 모셔져 있고, 불상 뒤에는 1856년(철종 7)에 제작된 후불탱화가 모셔져 있다. 이 건물에서 주목할 점은 창호(窓戶)의 구성으로, 격자살과 교살이라는 단 두 가지 창살기법으로 중심성을 강조하는 입면구성의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각 창호의 윗부분에는 격자살마다 한 칸 건너 원형의 꽃살을 장식하여 소목공예(小木工藝)의 고급스러움과 화려함을 보여주고 있다.
대웅전은 위치하고 있는 지대가 높을 뿐 아니라, 건물 폭에 비해 건물 자체의 높이가 높고 처마가 깊게 돌출한 팔작지붕을 갖고 있기 때문에 평면의 규모에 비해 웅장한 느낌을 주며, 공포 안의 부재들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장식성을 더해주는 등 중심 건물로서의 기상을 잘 나타내고 있다. 천연광물을 이용하여 절집에 채색하는데 조사결과 놀랍게도 처음 채색된 그 색감이 단 한 번의 덧칠 채색이 없다고 한다. 효종 8년(1657) 중창하는 과정에 인부 165명이 동원되어 중건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당국화(唐菊花)로 추정되는 꽃살문이 독특하게 장식되어 있다. 범어사 대웅전보다 23년 앞서고 장안사 대웅전은 부산에서 운주사 대웅전 다음으로 오래 된 목조건물이다.
대웅전이 국가문화재로 지정된 숨은 이야기
오정(鰲亭) 김방한(1635-1697) 문집 '오정일보'를 번역하다 1658년 장안사를 중수했다는 대목을 발견한 기장문화원 황구 실장은 사찰 측을 3년에 걸쳐 설득한다. 마침내 허락을 얻어 문화재 전문위원들과 대웅전 천정을 뚫고 올라가 종도리에서 동일한 내용의 기록을 찾아냄으로써 문화재 지정의 단초를 제공한 것이다.
대웅전 석조삼세불좌상(石造三世佛坐像)
보물 제1823호
장안사 대웅전 삼세불은 방형의 수미단 위에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약사여래와 아미타여래를 갖춘 석조삼세불좌상이다. 파손 또는 결실된 부분 없이 보존상태는 양호하다 2006년 2월 장안사에서 실시한 불상 개금시 석가여래상의 복장에서 기문(記文)이 발견되어 1659년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본 석조삼세불좌상은 방형의 얼굴, 미소 띤 온화한 상호, 두꺼운 법의와 간략한 옷주름 등을 통해 17세기 불상의 공통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반면, 얼굴에서 코와 입술 사이의 인중이 길고 뚜렷한 점, 윗입술과 인중 부위가 돌출된 모습이나 목 아래로 쳐져있는 삼도의 표현, 그리고 왼쪽 소매자락의 꽃잎 형태 등은 장안사삼세불상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복장에서 발견된 기문에 의하면 이 대화원(大畵員) 녹원(鹿元)이 조각승으로 참석하여 1659년에 조성한 작품이다. 지금까지 지정된 문화재 가운데 17세기 삼세불상은 20여점 정도로, 목조불상이 대부분이며 석조 불상은 1점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불상은 특징적인 표현기법 뿐만 아니라 녹원이 1659년에 조성한 절대연대를 가진 귀중한 작품이다. 녹원은 주로 나무 재료를 이용하여 불상을 만들었는데 이곳 대웅전은 유일하게 석재로 만든 불상이다. 중심불로 석가여래좌상을 모시고 협시불로 왼쪽은 약사여래좌상, 오른쪽은 아미타여래좌상을 두고 있다. 특히 국내 불상에서는 볼 수 없는 석가불의 왼손과 약사불, 아미타불의 두 손은 나무로 제작하였다.
부산지역 사찰의 조선시대 기년명 불상 가운데 지금까지 기장군청 홈피에는 범어사 목조석가여래삼존상(보물1526호)이 1662년 작품으로 되어 있으나 필자가 확인한 결과 1661년(현종2년, 순치18년, 辛丑년)에 희장(熙藏, 1639-?)이 제작한 것이 맞다. 그러니 장안사 삼세불상은 이보다 2년 앞선 작품이 된다.
대웅전 석가영산회상도(釋迦靈山會上圖)
부산시유형문화재 제87호
이 불화는 크기가 4미터에 달하는 대작에 속한다. 화면에는 중앙의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 문수․보현의 협시보살과 사천왕을 비롯하여 뒤쪽으로 여섯 제자와 타방불 2위, 그리고 4위의 팔부신장을 나누어 배치하였다. 화면은 부분적으로 약간의 훼손이 있을 뿐 전체적으로는 상태가 양호하다. 작품은 장안사 대웅전 삼세불상의 뒷면에 걸려있는 석가모니후불탱화로 설채(設彩 : 먹으로 그린 바탕 위에 색을 칠함)는 전통적인 녹색과 적색을 주조색으로 하여 부드러운 황토색을 넓게 채색하여 자연스러운 느낌을 주고 있다. 인물들의 비례도 조화로우며 섬세한 필선과 부드러운 채색이 마치 18세기 불화를 보는 듯하다.
19세기 전라도 지역에서 활동한 금어(金魚) 금암 천여(錦庵 天如,1794~1878)를 비롯한 6명의 화승이 참여하여 조성하였다. 금암천여는 순천 선암사의 중창을 이끌었는데, 그는 선암사를 중심으로 지역에 편중되지 않고 폭넓은 활동을 하였으며 금어로서 종장(宗匠)이 되었던 사람이다. 금어 천여의 명성만큼 19세기 후불탱화의 기준 작으로서 꼽힐만한 수작이다.
03. 명부전(冥府殿)
부산시유형문화재 제106호
명부전은 죽은 사람의 넋을 인도하여 극락왕생하도록 기원하는 전각이다. 정면 3 칸, 측면 2칸의 맞배집으로 내부 바닥은 우물마루를 깔고, 출입구를 바라보며 ‘ㄷ’자형으로 불단을 배치한 장안사 명부전에는 1684년에 조성된 석조지장보살좌상을 중심으로 좌우로 도명존자상과 무독귀왕상, 시왕을 협시로 한 지장시왕상 13구와 함께 동자상, 귀왕상, 판관상, 사자상, 역사상이 좌우로 각 1구씩 배치되어 있으며, 지장삼존상 뒷면에는 1856년에 제작된 지장보살도가 봉안되어 있다.
장안사 명부전의 건립연대나 건축형식에 대해서는 그 동안 이렇다 할 조사가 없어 건축사적 위치나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알 수 없었으나, 2010년 10월 현장 조사에서 종도리 하단에 적힌 묵서명(墨書銘)이 발견되어 머릿글 부분 10행 정도가 확인됨으로써 정확한 건립연대를 알 수 있었다. 묵서명에 따르면 명부전은 임진왜란 피해를 복구하던 1600년대 중반에 건립된 후 존속하다가 대웅전의 서까래를 수리하던 1744년에 중창되었고, 다시 1800년에 상연(上椽) 수리공사가 이뤄졌으며, 1800년 이후로는 이러하다 할 수리공사가 없었음도 확인되었다. 이를 볼 때 이 건물의 건립연대는 적어도 1800년으로 볼 수 있고, 더 이전으로는 1744년으로도 소급이 가능하다.
이처럼 건립연대를 오래 전으로 소급할 수 있는 것은 정면 상인방과 문선과의 맞춤방식이 비교적 오래 된 건물에서 볼 수 있는 고식(古式)의 반연귀맞춤으로 되어 있고, 그 밖의 부재들도 모두 1800년 수리 때 또는 그 이전의 1744년 중창 때 형성된 것으로서 보존상태도 상당히 양호한 편이며, 건축형식을 판단하는 데 중요한 요소인 공포도 비교적 오래 전 형식인 출목 없는 3익공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안사 명부전은 조선후기 부산 지역의 사찰 건물에 구사된 건축수법과 부불전(副佛殿)의 건축형식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조선 후기 부산 지역 건축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명부전 석조지장시왕상(石造地藏十王像)
부산시유형문화재 제86호
지장시왕상은 모두 복장물을 납입할 수 있는 복장공(腹藏空)이 마련되어 있다. 지장시왕상과 권속들은 전반적으로 상태가 양호한 편이지만, 군데군데 채색 안료의 박락이 보이고 부분적으로 파손 또는 손상되어 보수된 상(像)도 있다. 사찰에서 보관중인 전륜대왕상(轉輪大王像)의 복장에서 발견되었다고 전하는 기문을 비롯한 총 6매의 한지묵서가 전한다. 장안사 명부전 지장삼존 및 시왕상과 권속들은 제 10전륜대왕상의 복장에서 발견된 조성기문을 통해 1684 (康熙 23)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기문에 양공(良工)으로 소개된 조각승들은 같은 해에 장안사 응진전 불상을 만든 화승들과 일치하며 조각․표현기법 역시 동일한 솜씨를 보이고 있어, 장안사 명부전 지장삼존 및 시왕상과 권속 역시 중요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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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부전 지장보살도(地藏菩薩圖)
부산시유형문화재 제89호
본 작품은 명부전 지장삼존불상 뒷면에 봉안된 작품으로, 대웅전 석가모니후불탱과 함께 1856년에 제작된 것이다. 비단 바탕에 채색으로 그려진 이 불화는 부분적으로 얼룩 및 박락이 진행되고 있으나, 전체적으로 화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화면의 구도는 중앙의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하단 전면에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을 비롯하여 옆으로 사천왕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으며 상단에는 4위의 보살이 좌우 대칭으로 둘러 싼 구도이다. 본 불화의 제작자는 역시 대웅전 석가영산회상도를 그린 19세기 전라도 지역에서 활동한 금어(金魚) 금암 천여(錦庵 天如, 1794~1878)를 비롯한 6명의 화승이 참여하여 조성한 작품이다.
본 작품의 도상은 지장삼존의 보살상 4위, 사천왕상 등 간략한 구성을 이루고 있으나, 사찰 주전각의 중하단탱으로 봉안된 지장시왕도와는 달리 시왕상을 별도로 갖춘 명부전에 봉안된 사례임을 보여주고 있어 조선후기 명부전 지장보살도를 연구하는데 자료적 가치가 있는 작품으로 평가한다.
04. 응진전(應眞殿)
부산시유형문화재 제107호
응진전은 부처님의 제자인 나한(羅漢)을 모신 전각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집으로 내부의 3칸은 통칸이며, 내부 바닥은 우물마루를 깔고, 출입구를 바라보며 ‘ㄷ’자형으로 불단을 배치한 장안사 응진전에는 1684년에 조성된 석조석가 여래좌상, 제화갈라보살, 미륵보살 등 석조삼세불좌상을 중심으로 좌우로 16나한상과 사자상, 천부상 및 인왕상이 배치되어 있으며, 삼세불좌상 뒷면에는 1882년에 제작된 석가영산회상도가 봉안되어 있다. 장안사 응진전은 2010년 10월 현장 조사에서 발견된 상량묵서를 통해 1899년 (대한 광무 3, 기해) 3월 18일 묘시에 입주(立柱)하고, 같은 달 19일 미시에 상량했음을 알게 되었다. 이에 따라 현 응진전 건물의 건립연대는 1899년으로 볼 수 있으며, 현존하는 주요 구조 부재 역시 당시의 것으로 판단된다.
정면의 처마는 장연 끝에 부연을 시설한 겹처마이고, 배면은 부연이 없는 간략한 홑처마로 되어 있은데, 정면에 부연을 두어 겹처마를 형성한 것은 건물의 정면성과 의장성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또한 공포는 조선 말기에 성행한 1출목 삼익공식으로 다포계를 비롯하여 주심포계, 익공계 건축수법이 절충되어 있으며, 특히 공포의 제공과 익공쇠서 연꽃장식 용두(또는 봉두)의 사용을 통해 전반적으로 장식적인 성향을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
이처럼 장안사 응진전은 겹처마를 통한 정면성의 부각 및 섬약한 익공쇠서와 화려하게 새긴 연꽃, 최상단의 용두와 봉두의 사실적인 조각에서 19세기말 부산 지역 사찰 부불전(副佛殿)의 건축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외1출목 삼익공식의 장식적인 공포형식 및 내부 수장 등에서 익공식 건축의 변천과정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학술적,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건물로 평가된다.
응진전 석조석가삼존십육나한상(石造釋迦三尊十六羅漢像)
부산시유형문화재 제85호
중앙의 석가여래ㆍ제화갈라ㆍ미륵보살 등 석가삼세불좌상과 16나한상은 파손되거나 결실된 부분이 없이 보존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불신(佛身) 전체에 호분이 칠해져 있으며, 16나한상과 권속들의 법의는 다양한 색깔로 채색되어 있다. 응진전 석가삼존상과 16나한상들은 복장에서 발견되었다고 전하는 기문에 의해 1684년 (康熙 23)에 양공 승호(勝湖), 희연(熙衍), 천휘(天輝), 천담(天潭), 법자(法孖), 법종(法宗), 수종(守宗), 허지(虛芝), 도신(道信) 등 9명이 관여하여 장안사에서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응진전에 봉안된 23구 조각상은 대웅전의 불상보다 무른 불석으로 보이며, 대웅전 삼존불보다 25년 후에 조성되었다. 응진전의 조각상들은 명부전 석조지장시왕상과 동일한 시기에 조성되었고 조각 수법과 표현기법에서도 동일하여, 당시 장안사의 큰 佛事에 의해서 조성기문에 기록된 것처럼 많은 시주자들이 참여하여 제작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응진전 석가영산회상도(應眞殿 釋迦靈山會上圖)
부산시유형문화재 제88호
본 작품은 응진전 석가삼존상의 뒷면에 걸려있는 석가후불탱화로, 화면 전체를 붉은색으로 칠한 뒤 백색과 황색선으로 윤곽을 그리고 인물의 얼굴과 대좌 일부분만을 채색한 홍탱(紅幀)이다. 화면에는 석가모니와 18명의 제자만을 간단하게 묘사하였고, 부분적으로 훼손이 확인되나 전반적으로 양호한 상태이다.
본존 좌우측의 아난과 가섭을 비롯한 십육나한상의 안면은 음영법을 사용하여 개성있고 역동적인 표정이며, 자유로운 몸짓도 인상적이다. 특히, 화면 전면 좌우에 배치된 나한상 4위는 구름 위로 솟아 오른 연화대 위에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앉아있는 모습이 마치 서방극락정토의 연화화생자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도상이다.
화기에 의하면 수룡 기전(繡龍 琪銓)과 관허 의관(貫虛 宜官)의 지휘 아래 1882년 조성한 작품으로 기전(棋銓)과 의관(宜官)은 해인사의 화승으로 활약한 화승이다. 아울러 본 작품은 1882년 범어사 불화 조성 시에 같이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전반적으로 얼굴에 드러난 다양한 표정과 몸짓, 호방한 필치가 돋보이는 수작이다.
05. 와불(열반상)
06. 부도밭
07. 문화재 내역
장안사 대웅전(보물 제1771호)
장안사 대웅전 석조삼세불좌상(보물 제1824호)
장안사 응진전 석조석가삼존십육나한상(부산광역시지정문화재 제85호)
장안사 명부전 석조지장시왕상(부산광역시지정문화재 제86호)
장안사 대웅전 석가영산회상도(부산광역시지정문화재 제87호)
장안사 응진전 석가영산회상도(부산광역시지정문화재 제88호)
장안사 명부전 지장보살도(부산광역시지정문화재 제 89호)
장안사 명부전(부산광역시지정문화재 제 106호)
장안사 응진전(부산광역시지정문화재 제107호)
장안사 연(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5호)
08. 장안리 느티나무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느티나무다. 이미 포스팅한 자료를 링크해 둔다.
[기장여행] 우리나라 '최장수 느티나무’는 기장에 있다
기장(장안) 1,300년 된 느티나무 천연기념물 382호 부산시 기장군 장안읍 장안리 294 장안읍 느티나무는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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