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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간도에서 보내는 편지
‘북간도 일기’를 쓰고 있는 최요안입니다.
최근 일기를 자주 쓰지 못하다가 이렇게 편지를 드리게 돼
송구스럽습니다.
이제 중국 연변땅에 들어온지도 1년5개월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무엇하나 제대로 하는 것 없이
그저 몇명의 이곳 청소년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장애인들에게 음악봉사하는 것으로 신분의 위안을 삼아왔습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이곳은 이미 먼저 다녀가신 몇몇 한국인들로 인해
한국인에 대한 신뢰가 그리 녹녹하지는 않습니다.
더구나 경제 발전을 다그치고 있는 이곳의 현실은
형제 친척간에도 돈을 매개로 한 속고 속임이 빈번해
경제에 관한한 서로간의 믿음은 바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입니다.
이런 가운데 ‘프란치스코 청소년 보호회’와 ‘잔꼿송이회’
회원들의 도움으로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에게 지급되는 장학금은
조건 없는 사랑을 말없이 전해가고 있습니다.
현재 ‘프란치스코(방지거)장학금’을 받고 있는 아이들은
연변자치주 4개학교의 17명, 길림시 1개학교의 2명등
모두 5개학교의 19명입니다.
중국은 개혁개방으로 지금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접하는 보도는 중국 경제의
지극히 단면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공동체가 그 발전의 결실을
공유하기에는 너무도 미미할 뿐입니다.
이것은 오히려 사람들의 갈증을 더해 농촌의 해체현상까지
초래하고 있고 나아가서 가족 해체까지 불러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특히 조선족이 많은 연변에서는 조선족 농촌마을이
무너져가고 있습니다. 아직 힘이 남아 있는 청장년층은
모두 큰 도시로 몰려 나갔고 그들의 어린 자식들은
허리가 꼬부러진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버려지다시피 맡겨져 있습니다.
어느나라나 농촌이 가장 어렵기는 하지만
중국의 농촌은 일년 내내 현찰 수입이란 거의 불가능한
아직 물물경제의 잔형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특용작물을 재배하거나, 경제 작물을 재배하는 농호들도
많이 있습니다만 이것도 좀처럼 고향을 버리지 않는
한족(중국인)이거나 젊은 노동력이 남아있는
몇몇 가정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의무교육이긴 하지만 아직 잡부금이 남아 있는
소학교에서 돈을 걷을 때면 늘 곤욕을 치른다고 합니다.
상상이 갑니다. 제가 초등학교 시절에도
학교에서 내라는 돈을 못내 훌쩍이면서 집으로 쫓겨가던
친구의 뒷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니까요.
도를 닦는 노스님의 장삼마냥 이중 삼중으로
옷을 기워입고, 운동화의 옆구리를 꿰메신고,
다떨어진 운동화를 주워와 바닥만 오려내
천으로 등을 만들어 신기도 하는 중국의 농촌,
농촌의 가난한 아이들에게 어떻게
희망과 사랑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빈곤 가정과 그 가정의 아이들을 돕겠다는
초기의 활동 목표는 한 곳에 정착하는 것을
전제로 하였으나 이곳의 현지 사정으로 인해
아직 겉으로 돌고만 있는 실정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몇 곳의 지방정부 관계자들과
접촉하였으나 우려했던 대로 결과는 그리 신통치 않았습니다.
역시 무소속, 무조직, 무자본의 활동가를
돈이 모든 평가의 잣대인 이곳에서는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신기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분의 도우심인지 연변주의 농촌도시인 화룡에서
농촌 어린이들을 돕는 일에 대해 호의를 보이셨습니다.
아직 몇 단계의 절차와 평가를 거쳐야하지만
지금 마음은 무척 고무되어있습니다.
그곳에서 제시한 것은 이렇습니다.
기본적으로 소학교 이상은 정부에서 의무교육으로 제공되지만
유아들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니
가난한 가정과 농촌의 유아들을 모아놓고 교육을 시킴으로서
빈곤 가정에는 희망을 주고, 아이에게는
공민으로 자랄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자는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농촌 아이들과 가난한 가정의 어린이들을 위한
유치원을 운영해보자는 것입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바로 제가 하고자했던 일입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그리고 제 능력에 비해
규모가 크기에 망설여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제껏 제가 해온 일도
제 능력으로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마음을 추스릴수 있었습니다.
아직 절차가 남아있어 조심스럽기는 하나
연변의 조선족과 농촌의 아이들,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정식으로 사업을 할수 있게 된다는 마음에
가슴이 벅차옵니다.
오늘 이렇게 편지를 드리는 이유는
사랑으로 저를 지켜보아주시는 분들과 이 기쁨을
공유하고, 이곳의 아이들에게 사랑을 전하는 일에
더욱 따스한 마음으로 동참해주시기를
청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 사업의 첫발을 위해 내년 봄까지 최소한
4천만원 정도의 자금이 필요합니다.
제가 이곳에 마련한 숙소를 처분하면 약 1천만원 정도는
만들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이번 겨울방학에
예정에 없던 한국 나들이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은인들과 지인들을 찾아다닐 예정입니다.
무엇이 저에게 이렇게 용기를 주는지 곰곰 생각해보면
역시 그분의 사랑의 힘은 못할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난데 없는 편지를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03. 11. 15
연길에서 최요안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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