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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자연 풍경이 아우르는 강화 나들길 ; 제 5코스 고비고갯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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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길은 문화체육관광부가 2009년 5월에 선정한『이야기 있는 문화생태 탐방로』의 시범사업이다. 역사와 문화의 고장답게 다양한 문화 생태적 가치를 지닌 제 1코스인 심도(沁都)역사문화길을 시작으로 보장지처(保障之處) 강화도의 전통과 정신을 후손들에게 꼭 전하고자 화남 (華南) 고재형 선생님이 심도기행을 완성한 두두미마을 생가 가는 길인 제 6코스에 이어 9코스까지 완성되었지만 계속 새로운 길을 찾고 다듬고 있다 .
여기 소개되는 제5코스 고비 고개길(나래현)은 강화도의 진산인 고려산(오련산)과 혈구산을 가까이 밟아 보면서 아주 까마득한 옛날 토착민들의 중심이었던 심주고읍터(沁州古邑墟)의 향취도 확인하는 도보 여정이다.강화도에 남아 있는 80 여 개의 고인돌중 대표적 고인돌군과 새우젓, 나무 짐을 지고 넘나들던 숲 길, 소박한 시골 냄새나는 내가시장, 편백나무의 산림욕장과 바다 갈매기들이 힘찬 비행으로 도보 여행자들의 완주를 맞아주는 외포리 포구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길이다.
인생이 즐겁고 행복한 분이 있다면 이 세월이 빨리 가고 짧은 것을 아쉬어 하겠죠. 반대로 힘들고 고통스러운 인생길을 자신도 모르게 걷고 있는 분들에게는 시간이 길고 긴 것이 삶에 이치이다. 특히 인생의 고비로 발길을 어느 방향으로 떼어 놓기가 어렵고 망설일때, 이 고비고개길을 선택한 도보자는 혈구산과 고려산의 기운으로 큰 힘을 얻고 돌아간다. 잘 알려진 만큼 산 곳곳에 굿당과 기도처가 많다. 행복하기 때문에 걷는 것이 아니라 수려한 자연에 일부가 되어 도보하는 그 순간이 행복한 시간이 아닐 까.
잠시 걷다가 숲 흙오솔길에서 숨을 고르고 눈을 감고 이 옛 길 낙엽 위를 걸었던 수 많은 선조들의 발 자국도 느껴보자.
어디 발 밑에 밟피는 것이 낙엽 뿐이 겠습니까.
도보 여행(我道行)을 통해 무엇 하나라도 사랑하는 것을 만나고 간직할 추억을 선택한 당신은 편안과 기쁨을 찾아 걷는다.
♧ 풍물시장~강화산성 남문~석수문~서문(연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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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모임장소 출발지를 풍물시장으로 정하면 도보일 끝자리가 2일/7일에 정기적으로 열리는 강화읍 장날 풍경도 먼저 구경하는 재미를 덤으로 얻을 수 있다. 곧 남문으로 향하다가 강화산성 위에 뒤틀린 노거수의 옹이 자국 만나 보면 강화도 역사의 아픔을 이 한 그루가 모두 말해 주는 듯 서 있다. 몇백년이 지나도록 저 고목 나무에 얼마나 많은 백성들의 서러운 눈길들이 머물다 갔는지. 오죽하면 沁都라고 했을 까. 마음 속에 고요히 여울지는 ‘시간의 파도’을 느껴본다.
혹시 새벽에 출발하느랴 아침 식사를 못하신 분은 그 노거수 옆에 있는 떡사랑 떡집에서 다양한 모양의 떡을 준비해 길벗과 함께 나누는 재미도 도보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남문 안파루 천장에는 '붉은 봉황' 한쌍이 새겨져 있다.이는 강화산성을 지키는 사신(四神) 중 남쪽을 지키는 수호신이다.남문 안 쪽 바로 왼쪽에 대부분 그냥 지나가기 쉬운 곳에 머리 표정이 괴상한 거북이 등에 얹힌 비석 하나가 세워 있는데 조선 숙종때 고려시대 이래의 토성인 강화 내성을 현 규모의 석성으로 확장 수축하였고 마리산 정수사 쪽 바닷가 해안에 있는 선두포구 앞으로 둑을 쌓아 막은 강화유수 민진원의 송덕비다.조선시대 최대 규모의 간척사업이 강화도에서 이루워 졌다.
그 비석을 돌아 자연스레 강화읍 골목길로 쏙 들어가 땡땡이 고개를 이용하면 강화 주민들의 속살을 볼 기회도 만날 수 있다. 가는 길목에 향나무 주택에 있는 용트림한 수령 400년 된 향나무와 그 약수로 간식도 먹고 잠시 쉬었다가 강화읍 시내를 벗어 나면 강화공설운동장 입구에 나있는 강화산성 석수문 산성을 만난다. 그 산성 위에 서면 앞에 첩첩히 마주치는 크고 작은 산자락들과 나란히 솟아 있는 고려산과 혈구산 사이를 이어주는 고비고개 능선이 하늘 끝과 잘 어울려 보인다.
이 석수문옆에 구석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연무당 옛터는 강화도조약이 체결된 장소이다.원래는 강화도 주둔 조선군 군사 훈련장 이었다. 이후 일제에게 점차 나라를 빼앗기게 되는 첫 걸음도 이 시점이니 그 표지석 뒷면에 새겨진 글을 읽고 나면 더욱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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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락천 산책로~국화저수지~국화 교회~쉼터(매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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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산 샘물에서 발원하는 동락천은 강화읍 가운데를 통과하여 한강 하구 강화해협을 감싸고 있는 염하강으로 흘러가는 하천이다. 지금은 복개되어 48번 국도 차량 도로가 되었다. 앞으로 옛날 자연개천 모습으로 복원 계획을 세워 순차적으로 공사 중이지만 먼저 상류 서문 앞 쪽으로 남아 있는 하천에 산책로가 조성되어 쉽게 국화저수지 산책로와 연결 이어 졌다. 국화저수지는 물고기가 뛰어놀고 백로 황새가 한가로이 쉬어가는 산속에 호수다. 호수 둘레를 감싸고 있는 남산 고려산 혈구산 등 주변에 풍경을 담고 있는 저수지 물 위 그림들을 쉬엄 쉬엄 감상하면서, 정비된 산책로 따라 반 바뀌 돌고 난 후에 실개천에서 떼지어 올라가는 송사리와 함께 청년사 입구 방향으로 가다 보면, 길목에 나그네를 위한 쉼터와 고려산 등산로 안내판이 세워 있고 인근에 있는 구멍가게(매점)를 만나게 되는데,아주 먼 옛날부터 고비고개를 넘나들 때 주막터였다.지금도 동네 참새 방앗간격인 좁은 가계안에서는 마을 어르신들과 등산 술객들을 쉽게 볼 수 있고 수더분하게 말도 잘 받아주는 여 주인댁이 각종 산 약초를 담근 술병과 더불어 주객들을 유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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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사 입구~산 습지~청소년 야영장~고비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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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부(古阜):옛날에 오얏나무가 많은 언덕위에 형성된 마을이라 고부라 칭하였으며 속칭 고비라고 한다
여기서 두 방향을 놓고 선택해야 된다.하나는 청년사 입구 등산로 안내판 옆에 나들길 길 방향 표시를 따라 시멘트 포장이 된 나들길이고, 또 다른 하나는 지방도인 고비고개길 방향으로 20m 올라 가다 기둥에 어깨동무,신선지 팬션 광고를 붙인 교통 도로 표지판이 나오면 우측으로 빠지는 숲 길 습지가 있는 20분 단축된 샛길 인데 판단은 자신이 스스로 알아서. 이런 도전과 모험이 산들 걷기의 “숨겨진 길 찾는” 참 멋이다.
참고로 출발지인 강화 터미날~국화저수지까지 구간에 대한 강화나들길 제5코스에 대한 공식 길 안내는 강화산성 남문을 우회 통과하는 차량 인도를 따라 길 표시가 되있다. 그러나 아도행에서는 제5코스와 1코스를 거처가는 강화읍 문화탐방로를 개척하였다. 이미 강화산성길,남,북산길, 벚꽃길 등을 연계 행보 하고 있다.이 제 5 코스 초입 구간에서 다양한 문화탐방로를 이용하여 걷게 되면 강화도에 색다른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고 있는 살아 있는 역사문화 자원을 체험 할 수도 있다. 즉 출발점부터 들머리를 어디로 정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도 배가된다.
고려산은 산봉우리 정상 주변에 다섯 연못이 있었고 청*백*적*황 *흑 五色 蓮花 傳說이 있어 옛 부터 오련산으로 불리웠다.
고려 왕조가 약 200년 쯤 지난 중엽 때 몽고침입으로 강도(江都) 천도시절 고려산으로 산명을 바꾸고, 40년 간 영욕의 세월을 보내야 했던 고종의 왕릉(홍릉)만 국화리 학생야영장 위 산자락에 모셔 놓았으며, 고려산 자락 시루메봉에 고구려의 영웅 연개소문의 탄생 신화와 말 타고 무술 연마한 이야기를 남기는 등 고려인들의 염원이 묻혀 있는 명산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대대손손 "고려"의 이름 이라도 후손들이 영원히 기억해 주길 원하는 고려인의 강한 소망과 의지를 알 수 있다.
매년 4월 중순 봄이면 어김 없이 진달래 꽃을 통해 우리들에게 그 넋을 알려 준다. 20~30분 숲길을 따라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올 정도로 걸으면 국화리 야영장이 나오는데,
그곳은 강화군 공공시설이므로 화장실,물 등 자유 롭게 이용 할 수 있지만 쓰레기 등은 반드시 각자 가지고 떠나야 한다.
야영장 극기 훈련장 시설을 통과 하면 고려산 여러 높은 산자락 사이를 단숨에 가로지르는 계곡안으로 연결되어진 풍치좋은 오솔길을 만난다.수려하고 깊은 계곡 사이로 불어 오는 맞 바람이 길손들에 몸과 마음의 땀을 시원하게 날려버린다.
또 백두산과 한라산 중간지점으로 산 정상에 국토지리원이 한반도의 중심 표지석을 세운 한반도의 배꼽 혈구산(穴口山) 사이에 알타이 산맥으로 부터 이어지는 마고 할멈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계곡을 따라 사각 사각 수북히 쌓인 낙엽 밟는 소리와 숲 향취를 흠뻑 안고 한적한 고비고갯길을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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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오상리 고인돌군~내가 저수지(고려지)~내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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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먼 먼 옛날에 고려산 정상에서 인도 고승이 연꽃을 날려서 떨어진 곳이라 하여 연촌(蓮村) 이라 부르는 조용한 마을 끝에 5,000년전 청동시 시대 유적인 2000년 유네스코에 등록된 세계문화유산인 내가 고천리 고인돌군,오상리고인돌 군(群)을 만나게 된다.
80 여개 고인돌은 홀로 혼자 남아 있는 것도 있고 대부분 2-5개 모여 있는데 내가 오상리 고인돌 주변 고려산 자락에는 여러개의 고인돌이 몰려있으니 5,000년 이상된 돌에서 이상한 기운이 나오는 듯한 느낌도 들고, 숲 속에서 구석기인이 불쑥 나타날 듯한 분위기가 돈다.이 서너개의 받침돌(굄돌) 위에 한개의 커다란 덮개돌로 꾸민 유적이 무덤이라는 것이 알려진 것이 불과 40년 전이라니 너럭 바위 밑에 묻혀 있는 구석인들이 지금에 걷기 열풍으로 찾아오는 우리들을 어떻게 볼까.
고인돌 주변에서 내다보는 풍치와 바다 조망이 매우 좋다. 그 위치에 서서 보면 그 당시 살았던 구석인들도 그들 나름 대로 풍수지리를 알고 있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2008년 유네스코 회원들이 강화도에서 워크숍 때 방문 기념으로 쓰다 버린 나무 조각에 자필과 그림을 남겨 세워 놓은 방문 답사 표시판을 보니, 그들의 자연스러운 생각과 재치 있는 행동은 배울 만하다.
고인돌 뒤편 숲으로 이어지는 산 오솔길을 조용히 따라 가다 보면 바다 같은 크기에 내가저수지(고려지) 옆을 살짝 돌아갑니다.이 고려지 둑방길은 보행을 못하도록 철제문과 철조망으로 출입 통제되어 있지만 길라잡이의 안내에 따라 도보자는 개구멍을 통해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이 저수지 옆에 위치한 내가 초등학교 정문을 지나서 차도를 건너면 내가 면사무소 앞이 나오는데 길 모퉁이에 내가 천주교성당 돌표지석이 서 있다.그 돌을 보고 우측으로 들어서면 대부분 지나치기 쉬운 뒷 골목길에 자리 잡은 강화도 최대 갑부 파평 윤씨 고택과 넓은 마당이 나옵니다. 꼭 들러 보세요.
이쯤이면 대략 3-4시간이 소요되었고 거리상으로 2/3 를 걸은 것이다.내가시장에서는 대부분에 여행자들은 점심을 먹게 되는데 추천하고 싶은 식당 한곳이 있다면 깨끗한 공중화장실도 이용할 겸 내가시장 안 마을 회관 옆에 있는 내가식당이다. .밖에서 보면 간판만 없다면 식당으로 보이지 않는다. 살림도 함께하고 점심시간에만 장사하는 한적한 시골식당이다.주인 할머니가 외포리 특산 젓굴로 만든 반찬이 나오는데 그 종류가 식탁에 가득하다. 이 9첩 시골밥상 맛을 꼭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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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산 산림욕장~외포리 굿당~망양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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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잠시 휴식 후에 피톤치드가 가장 높다는 편백나무 우거진 덕산 산림욕장을 발밤 발밤 넘어 가다 보면,석모도의 세 산봉우리가 서해 바다를 병풍 삼아 펼쳐진다.이 숲길을 벗어 나면 노송의 향기가 머무는 언덕 끝 위에 제법 규모가 있는 외포리 굿당을 만나게 된다.
정묘호란 때 인조 임금이 대신들과 강화도로 피난한 후, 곧 임경업장군은 왕실을 구하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강화도에 도착하자 조정이 후금과 연미정(월곶진)에서 강화조약을 맺었다는 소식에 크게 실망하였다. 고려 공민왕 때 갑곶진 만호이었던 억울하게 죽은 최영 장군이 무속신이 되었듯이, 다시 뱃길을 돌려 임장군도 청나라를 복수 하러 중국으로 가면서 연평도에서 조기를 잡아 선원을 배불리 먹였다는 전설과 함께 조기잡이 신으로 모시고 있다. 역사의 갈림길에서 운명을 달리 한 두 분에 장군들 모두 강화도와 인연이 깊다.
외포리 곶창굿은 2년이나 3년마다 음력 2월 초에 3일간 하는 것이 전례이지만, 마을 사정에 따라 더 자주하거나 늦춰지기도 한다. 다른 풍어제에서 볼 수 없는 작두타기가 있고, 굿의 순서가 다른 곳의 순서와 달리 먼저 수살맞이를 한 후 우물굿, 당굿으로 이어지는 것이 특징이다.어업을 하는 외포리 정포 마을과 농사를 짓는 대정 마을이 뜻을 같이 하여 풍어와 풍농을 기원하며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추구하는 현존하는 유일한 마을 전통 축제이기도하다.
마지막으로 북방 오랭케 몽골에게 항복해 노예 같은 삶을 택하느니 자유롭게 살길 찾아던 삼별초가 1,000척여 배로 3일만에 진도로 떠났던 고려시대 수군의 요충지 외포리 포구,망양 돈대까지 18 Km를 6시간에 거쳐 흙 숲오솔길과 저수지 둑방길, 산람욕장 위를 걷는 기행이다.
아쉬운 완주의 종점이 다음 여행의 약속점으로 그리워지는 아도행에서 도보를 지극히 사랑하는 자기 자신을 찾고, 더불어 역사의 첫 걸음 강화도를 재발견하며 고인돌,저수지, 풍경을 오롯이 담고 있는 아름다운 마을을 한걸음 한걸음 걸으면서 그 마을 구석 남아 있는 1,000년 된 은행나무,노거수,토성,성벽 등이 지켜 온 오랜 심도의 이야기를 소곤 소곤 소통 할 수 있는 행유(行由)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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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강화길 다녀오신 분들은 5코스를 강력![추천](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9.gif)
하시던데...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옥 걷겠습니다. ![에이스](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0725/texticon102.gif)
언젠가 꼬
강화읍 역사문화자원 탐방로와 나들길 5-1 코스를 결합한 프로그램은 산들걷기만이 진행 할 수 있습니다.
순례자님 토요일에 길 좀 열어 주세요...
9월 11일/12일 강화군청과 함께 하는 걷기 행사와는 별도로 추석연휴 주말에 연속되는 태풍으로 밤송이가 숲에 많이 떨어졌기에 날씨를 보아 번개 숲길 걷기 공지를 계획 중 입니다.
언제나 수고와 열정 보답 할 시간도 없이 죄송하구 고맙기만 합니다
열정으로 걷기하시고 항상 건강 행복하세요.풍경과 길 위에 함께 하는 사람이 많이 아름답다는 뫔이 찡하게 느끼는 어느 순간이 올 때 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