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최초의 극장 행좌] 당시 부산에는 전국 최초로 극장 취체 규칙[공연장 시설과 운영에 관한 법. 1895년]이 제정되었는데 그 즈음에 부산에 극장이 존재하였다고 짐작할 수는 있으나 아직 밝혀진 것은 없다. 영화가 국내에 첫 선을 보일 즈음 부산에는 이미 6,000여 명이나 되는 일본인 거류민이 용두산을 중심으로 한 조계지(租界地)에 모여 ‘작은 일본’을 이루며 살고 있었다. 그래서 국내 최초로 영화를 상영한 곳이 부산이며, 영화를 최초로 본 한국인은 아마도 부산 사람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래서 부산은 한국 영화의 고향으로 불린다. 현재 문헌상 1903년 설립된 행좌(幸座)가 부산 최초의 극장이다. 행좌는 현 부산광역시 중구 광복동 할매 회국수집과 서울 깍두기 사이의 좁은 골목길에 있었다. 그러나 옛날의 화려한 모습과 달리 지금은 양쪽의 건물들이 서로 등지고 있는 길이 되어 버려서 인적이 거의 닿지 않고 있다. 이후 1914년 3월 욱관(旭館)이 개관되면서 ‘상설관 시대’가 열렸다. 현재 ‘피프 광장’이라 불리는 부산광역시 중구 남포동과 용두산 공원 인근에 극장들이 들어서기 시작하였다. 보래관[1914년], 태평관[1922년], 소화관[1931년], 부산 극장[1934년] 등이 신축되어 극장가를 형성하면서 부산은 근대 한국 영화의 중심지로 우뚝 섰다. 행좌, 송정좌를 비롯해 수많은 극장들은 일본 전통극 공연장으로 출발하였지만 연극의 지위를 영화가 잠식해 들어가는 동안 서서히 영화관으로 바뀌어 갔다. 행좌 역시 일본 전통극인 가부키 공연장이지만 초창기부터 영화를 함께 상영하였다. 다다미 바닥에 앉아 전통 연희를 보는 장소를 뜻하였던 좌(座)라는 이름은 근대적 복합 공연장인 관(館)으로 변모되었고 영화관인 극장이 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