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진하는 안내산악회 대간 팀을 따라 '외나무골교 → 예수원 → 구부시령 → 푯대봉 → 건의령 → 피재/삼수령'의 15.7km, 6시간 30분 코스를 달릴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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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의령[巾衣嶺]
건의령은 강원도 태백시 상사미동에서 삼척시 도계읍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이다. 고려 말 때 삼척으로 유배 온 공양왕이 근덕 궁촌에서 살해되자 고려의 충신들이 이 고개를 넘으며 고갯마루에 관모와 관복을 걸어놓고 다시는 벼슬길에 나서지 않겠다고 하며, 고개를 넘어 태백산으로 몸을 숨겼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유서 깊은 고개이다. 여기에서 관모와 관복을 벗어 걸었다고 하여 관모를 뜻하는 건(巾)과 의복을 뜻하는 의(衣)를 합쳐 건의령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현재는 건의령 터널이 건설되어 태백과 삼척에 오가는 데 터널을 이용하고 있으며, 2010년도에는 터널 상부 능선의 폐도부까지 지형의 원형을 살려 복원을 실시하고 자작나무, 소나마, 야생화 등 지역 야생 수종을 선정하여 식생 복원사업을 실시하였다. [출처: 건의령 소개문]
이번 주 산행은 산불 통제 기간 한시적으로 진행하기로 한 백두대간 연결 다섯 번째로 구부시령부터 삼수령까지 달리기로 했다. 비록 이 구간에 해발 1,009m의 푯대봉이라는 봉우리가 있으나, 다른 연결 구간 내에 있는 봉우리와 다름없이 인터넷을 다 뒤졌으나, 산에 대한 소개를 찾지 못했다. 분위기로 봐서는 인터넷에서는 찾을 수 없으나, 정상에는 소개 글이 있던 다른 봉우리와 달리 그런 종류의 소개 글도 없을 거 같다. 해발 1,000m가 넘는 봉우리임에도 백두대간 종주를 인증한다는 기관이나, 기업 어디도 푯대봉은 인증 대상이 아닌 걸 보면! 다만 지난주 통안재, 복성이재 구간과는 달리 정상석을 가진 봉우리가 있다는 것만 해도 다행이다.
원래 이 구간 내에 있는 건의령은 2021년 1월 한 안내산악회의 두문동재~건의령 산행 때 갈 예정이었으나, 당시 폭설로 두문동재까지 버스가 올라가지 못해 시간을 지체했고, 심설 산행으로 일행이 지쳐 우여곡절 끝에 삼수령에서 산행을 마감했었다[산행기]. 그때 건의령까지 달렸다면, 이번 구간 중 삼수령에서 건의령까지의 코스가 중복돼, 애초 이번 구간에 기대를 거의 하지 않았는데, 그나마 조금이나마 있던 기대마저도 사라질 뻔했다. 인간사 새옹지마다! 어쨌든 남진이든 북진이든 이번에 삼수령에서 구부시령까지 산행으로 화방재에서 구부시령까지 백두대간을 연결하게 된다. 산불통제 기간에만 한시적으로 진행하는 대간 연결이나, 이런 식으로 진행하면, 내년 봄 산불 통제 기간에는 백두대간 종주를 끝냈을 수도 있을 거 같다.
구부시령에서 삼수령까지 대간을 따라 남진하는 이번 산행에는 28인승 버스 두 대에 인솔 대장 포함 총 43명이 함께 한다. 이제 막 시작하는 대간 종주 팀이 28인승 차 한 대 성원만 간신히 넘기는 것에 비하면 엄청난 인기다. 이유가 뭘까? 코로나 기간 중 무서워서 중지했던 대간 종주를 다시 진행하는 등산객이 많아서? 어쨌든 산행 당일 날씨는 최고 기온이 25도에 육박해 더울 거로 예상되지만, 아직은 새벽과 밤이 추워 복장은 지난주처럼 준비한다. 그리고 삼수령에 매점이 하나 있어 컵라면에 막걸리 정도는 마실 수 있으나, 운영하는지가 명확하지 않아, 평소같이 점심을 준비해 간다. 다만, 지난주까지는 뜨거운 차를 준비했다면 이번 주부터는 차가운 차를 준비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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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준비해둔 배낭을 둘러메고 새벽에 집을 나서 6시 50분경 양재역에 도착했다. 타야 할 산악회 버스가 사당에서 6시 50분에 출발하니, 딱 알맞게 도착했다. 마을버스가 지체하는 바람에 불광역에서 6시 6분 차를 탄 덕이다. 승차장에서 역구내로 올라가며 오늘이 일요일인데, 과일 가게가 문을 열었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올라가보니, 예상과 다르게 열었다. 그럼 언제 쉬지? 내가 걱정할 건 아니고. 어쨌든 12번 출구로 나가 국립외교원 앞으로 가기 위해 한 산악회가 경유지로 사용하고 있는 마을버스 정류장을 보니, 일요일임에도 등산객으로 붐비고 있었다. 2년의 코로나 암흑기를 버틴 놀이의 민족이 3년만의 상춘을 지나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상황이기는 하다!
6시 55분경 국립외교원 앞에 도착하자, 아직 출발하지 못한 6시 50분발 버스가 승객을 기다리고 있었고, 그 뒤로 6시 50분에 사당에서 출발해 외교원 앞발 7시 차가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타야 할 구부시령행 1호차는 다른 차량보다 조금 늦은 6시 59분에 도착했다. 옆자리가 비어 배낭을 멘 채로 버스에 타, 내 자리로 가 배낭을 빈자리에 두고 앉아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데, 정확히 출발 예정 시각인 7시에 버스는 다음 경유지인 죽전 간이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죽전에서 나머지 승객을 태우고 7시 20분경 목적지인 태백 하사미동 외나무골교를 향해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렸다. 상춘 절정기의 휴일임에도 고속도로가 한가해 막힘이 없었다. 지난주 토요일 막히는 것과 비교하면 아예 정체가 없다시피 하는 게 일요일과 토요일의 차이인가? 뭐 이런 생각을 하다가 번뜩 떠오르는 게 있었다. 우리는 상춘을 즐길 남도가 아니라 대간을 달리기 위해 강원도로 동진하기 때문이다! 누가 이 시기에 강원도로 놀러 가겠는가?
죽전을 출발한 버스가 실내등을 끄는 순간 책을 보기 위해 들고 있던 패드를 앞주머니에 넣고 잠을 청했다. 잠이 깨 창밖을 보니, 주변에 아파트가 즐비하다. 영동고속도로 변 아파트라면 원주 부근일 텐데, 해서 시계를 보니, 한 시간 조금 넘게 잤고, 차는 익숙한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매주 전국의 산을 다니는데, 익숙하지 않은 도로가 있을까? 잠이 깨고 얼마 있지 않아 예상대로 버스는 ‘치악 휴게소’로 들어갔다. 신선한 공기가 필요해 버스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다가 이왕 내린 거 볼 일이나 보자고 화장실에 들린 후 나오다가 등산용품을 비롯한 나들이 물건을 파는 가게 앞에서 진열된 배낭에 매달고 다닐 수 있는 핸드폰 파우치를 보고 잠깐 고민하다가 마음에 드는 걸 샀다. 기존에 쓰던 건 방수와 보온이 되지 않아 겨울과 장마철에는 쓸 수가 없어 다른 게 필요해서 고민 중이었는데, 마침 눈에 띈 거다.
차로 돌아가며 휴게소 주차장을 보니, 대소형을 막론하고 차량으로 가득했던 지난주 정안휴게소와 비교하면, 허허벌판이다. 역시 상춘 시절에는 남도, 단풍 시절에는 강원도가 국룰이다. 20분의 휴식을 마친 버스는 다시 들머리인 외나무골교를 향했고, 달리는 차 안에서 패드로 책을 읽다보니, 어느 순간 차가 고속도로를 벗어났다는 느낌이 들어 창밖을 보니, 영월을 지나고 있었다. 해서 눈의 피로도 풀 겸 패드를 내려 놓고 창밖의 경치를 감상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후 버스가 몇 개의 고개를 넘자 인솔 대장이 마이크를 잡고, 미쳐 모르던 사실을 알려주었다. 언제부터인가 주의사항, 코스 등이 기록된 지도를 제공하지 않아, 인솔 대장의 의무도 아니고 귀찮아서 안 만드는 거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산악회 차원에서 까페 게시판에 산행지 별로 등록해 놓고 필요한 등산객은 내려받아 사용하는 걸로 바꿨다는 거다. 그리고 그 위치를 알려주었다. 해서 패드로 게시판에서 다운받아 이번 코스의 난이도를 확인했다.
아직 들머리에 도착하지 않았으나, 대장이 이번 산행에 주어진 시간은 6시간 30분이고, 들머리 도착 시각이 10시 30분경이라 버스 출발은 17시 즉 오후 5시라고 공표했다. 끝으로 날머리인 삼수령에는 작은 매점이 있으니 일찍 도착한 등산객은 거기서 매식이 가능하다고 알려주었다. 알고 있던 내용이나, 영업 여부를 모르고 있었는데, 영업 중이라니 막걸리와 라면으로 하산주를 마시기로 했다. 해서 하산주를 위한 한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5시가 아닌 4시까지 삼수령에 도착하는 거로 목표를 잡았다. 그리고 등산화를 신은 후, 미니 스패츠를 착용하고 5분가량 지나자, 버스가 정차했다. 들머리인 외나무골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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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정차한 주변을 사진으로 남기고 골지천에 놓인 외나무골교를 건너 개천 옆으로 난 포장도로로 따라가며 앞을 보니, 앞선 등산객은 거대한 밭 끝에서 우회전하고 있었다. 작은 마을을 통과한 도로는 서서히 가팔라지더니, 산행 시작 15분 정도 지나자 저 앞으로 돌로 짓은 아주 그럴듯한 건물이 나타났다. 코스에 있던 예수원이다. 코스 설명을 볼 때는 개신교 교회라 생각했는데, 생김새로 봐선 개신교는 아니고, 가톨릭 계열의 수도원? 피정의 집? 뭔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그런데, 놀이터가 있고, 애들 장난감과 대여섯 대의 차량이 주차해 있는 거로 봐선 피정의 집이나 수도원 같지는 않은데. 해서 산행기를 쓰며 “예수원”으로 구글링해봤다. 가톨릭과 개신교의 중간 정도 되는 성공회에서 설립한 초교파 생활 공동체란다. 역시!
포장도로는 예수원 앞에서 끝나고, 이제부터는 비포장이기는 하나, 경운기는 충분히 다닐 수 있는 정도의 길이라 등산로라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해서 차가 올라가지 못하게 차단봉을 설치했겠지만. 하긴 구부시령이 동서를 연결하는 고개이니만큼 길 상태가 여느 등산로와는 다른 게 이상한 건 아니다. 다만, 지난 피앗재와 같이 급경사가 아니기를 빌며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했다. 역시 같은 경사라도 포장도로가 훨씬 속도가 빠르다는 걸 실감하며 구부시령을 향해 오르자 저 앞으로 갈림길이 보였다. 당연히 이정표 따위는 없고. 해서 등산 앱을 확인하니, 좌는 덕항산으로 바로 올라가는 길이다. 2주 후에 덕항산에 오르기 위해 여길 다시 와야 하는데, 백두대간 연결이 목표가 아니라면, 굳이 직진인 구부시령으로 갈 필요없이 왼쪽으로 가면 된다. 아쉽게도 덕항산행 목적이 구부시령과 덕항산 간 대간 연결이라 빠른 길을 보고도 지나쳐야 하지만.
역시 백두대간의 유명한 고개를 넘는 길은 옛부터 사람뿐만 아니라 우마가 다녔던 곳이라 길이 평범하지 않다는 걸 느끼며 재를 향해 오르다 보니, 저 위로 능선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시각이 11시 12분으로 산행 시작 후 40여 분만으로 지난 피앗재 접속보다 거리는 길지만, 시간은 더 짧게 느껴졌다. 해서 실제 그런지, 이 글을 쓰며 지난 산행기를 확인해보니, 기분탓이었다. 피앗재가 더 짧은 건 맞고 시간도 10분 적게 걸렸다. 구부시령 고갯마루에는 앞서간 대간꾼이 이정표를 배경으로 인증을 찍고 있었다. 구부시령이 까만 소 백두대간 인증 장소 중 하나라 그게 목표인 대간꾼에게는 당연한 절차다. 까만 소 인증 따위에는 관심 없는 나는 인증꾼이 바뀌는 순간을 이용해 이정표를 사진으로 남기고 주변을 둘러보니, 2주 후에 방문 예정인 덕항산이 북으로 1.1km 거리에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건 구부시령까지 올라오는 게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고, 반대로 고도는 거의 990m를 넘어 해발 1,073m에 불과한 덕항산에 오르는 게 어렵지 않을 거라는 희망이 생겼다.
모든 정보를 획득한 이후 다양한 자세로 인증을 찍고 있는 대간꾼을 뒤로 하고, 2주 후 다시 방문을 기약하고 구부시령을 떠나 백두대간을 따라 남진을 시작했다. 오늘의 목표는 삼수령까지다. 그 전에 올라야 할 목표는 푯대봉으로 산의 소개는 찾을 수 없었으나, 앞선 산꾼의 사진을 보면 최소한 정상석은 가진 봉우리다. 그런데 이미 잘 알고 있는 거지만, 날머리인 삼수령까지 가는 길에 볼거리나 즐길 게 전혀 없어 그저 앞만 보고 달리면 된다. 고로 사진 찍는다는 핑계로 쉬는 일도 있을 수 없다. 해서 기복이 심하지 않기를 빌 뿐이다! 그런데 이런 각오를 하고 있었음에도 기록을 위한 이정표와 가끔 만나는 반가운 리본을 찍기 위해 멈춰야 했다.
구부시령 바로 남쪽에 있는 봉우리의 높이로 보나 위치로 보나 푯대봉이라 생각하고 헉헉대며 올라 저 위로 정상이 보임에도 등산 앱이 아무런 반응이 없어 고개를 갸우뚱했다. 대개 주요 거점 50m 내외에서 봉우리에 도착했다고 음성으로 알려주는데, 정상에 도착했음에도 아무런 안내가 없었다. 무언가 착오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폰을 꺼내 등산 앱을 확인해 보니, 푯대봉이 아니다. 푯대봉은 건의령 직전으로 거의 6km를 더 가야 했다. 그런데, 높이로만 보면 지금 있는 이 봉우리가 더 높아 보여 고도를 확인했다. 예상대로다! 해발 1,078m다! 푯대봉이 해발 1,009m에 불과하니, 70m 가까이 더 높은 봉우리다. 그런데 정상석은 때려치우더라도 봉우리 이름마저 없다! 하긴 이름이 없는데 정상석이 있을 리가. 이 봉우리와 덕항산 사이의 움푹 파인 고개가 구부시령임에도!
올라왔으면 다시 내려가야 하는 게 봉우리라, 급경사의 무명봉을 내려가서 서너 개의 작은 봉우리, 언덕을 넘으며 길을 가다 보니, 그나마 개나리와 혼동하기 쉬운 생강꽃이 가끔 보이고, 따뜻한 남쪽이라는 걸 시위하듯이 야생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대간 위의 등산로 좌우의 관목은 다 철쭉으로 4월 말, 5월 초 대간 산행은 철쭉 터널을 만끽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그저 앞만 보고 가다가 다시 꽤 높은 봉우리를 헉헉대고 올라 정상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곳에 도착하자, 갑자기 등산 앱이 봉우리에 도착했음을 알려준다. 응? 푯대봉은 아직 멀었고, 뭐지? 폰을 꺼내 확인해보니, 석희봉이다! 난 잘 알지만, 그는 날 잘 모르는 누구의 이름과 같다. 이 봉우리는 산악회 코스에도, 등산 지도에도 없다. 그런데, 등산 앱에는 있다. 물론 정상석 따위가 있을 리 없고, 하다못해 산악회에서 매단 표지조차 없지만.
석희봉 정상에서 진행 방향으로 아래를 보니, 바로 아래에 축사는 아니나 축사 규모의 건물이 보이고 그 앞으로 포장도로가 지나가고 있는 게 보였다. 물론 거대한 밭도. 사진에는 잘 표현이 안 되고 있지만, 그림만 놓고 보면 그 건물과 대간과의 거리가 300여 미터에 불과해 보여 그리로 가서 밥을 달라고 하면 줄 거 같은 분위기다. 그림만 그렇다는 거다! 어쨌든 석희봉 정상에 도착한 시각이 12시 13분으로 점심시간이다. 지금 점심을 먹어야 하산주를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 해서 여기까지 오면서 밥 먹을 만한 장소를 물색했으나, 찾지 못했다. 그런데, 이 봉우리가 이름을 가진 이유가 정상이 갈림길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정표는 없으나, 대간과 갈라져 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있었다. 등산객이 거의 다니지 않아 낙엽이 쌓여 있어 유심히 보지 않으면 길이라고 생각지 못할. 해서 그 방향으로 희미한 길을 따라 20여 미터를 가서 고목 아래에 방석을 깔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산에서 먹는 점심은 겨울에는 컵라면, 그 외의 계절에는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가져오는 영양밥과 김치, 과일로 거의 변함이 없다. 그 변함없는 걸로 대략 7분에 걸쳐 점심을 먹는 동안 3팀 정도가 지나쳐 갔다. 간단히 점심을 먹고 모든 인적을 인멸하고 그 자리를 떠나 다시 대간에 들어서 석희봉을 내려가자, 산림청에서 만들어 세운 댓재에서 건의령에 이르는 백두대간 지도가 있어, 그걸 보며 다시 구부시령에서 연칠성령까지 달릴 생각을 하니 짜증이 확 밀려왔다. 덕항산에서 연칠성령까지는 2017년 10월 봉 감독과 둘이 2박 3일로 달린 적이 있었다[산행기]. 그때야 백두대간이라는 생각은 전혀 없었고, 백두대간 연결 산행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지만. 그러다 보니 백두대간 연결에서 골치 아픈 구간이 됐다. 대간 종주 팀은 구부시령에서 댓재, 댓재에서 백복령까지 두 구간으로 나눠 진행하는 게 일반적인데, 그 사이를 이미 달렸는데, 또 달리려니. 그나마 다행은 구부시령에서 시작해 환선굴에서 끝내는 산행을 발견해서 자암재에서 댓재까지는 다시 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거.
저 아래로 보이는 포장도로가 대간 위를 달리는 게 아니기를 빌며 급경사를 내려가는데, 경사면 대부분에 벌목한 나무가 쓰러져 있어 길을 찾기 힘들었다. 아무 생각 없이 앞서가는 대간꾼을 따라가다가 뭔가 이상해 주변을 둘러보니, 당연히 등산로는 능선 위로 이어져야 하는데, 그들은 점점 능선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어 능선으로 올라가자, 아주 잘 닦여진 등산로가 나타났다. 대간 위의 멀쩡한 길을 놔두고 벌목지에서 길을 찾아 헤맸던 거다. 그리고 다행인 건 위에서 보기와는 달리 그 포장도로와 대간은 아무런 관련이 없고, 심지어 대간에서는 보이지도 않았다. 1시 13분에 푯대봉 600m 거리에 있는 이정표를 지나자, 경치는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달라졌다. 처음 본 느낌은 대규모 벌목장으로, 능선에 올라서기 전까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은 버스에서 인솔 대장이 이번 구간에 몇 년 전 동해안에 대규모 산불이 난 지역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 코스에서는 길을 잃기 쉬우니 GPS를 참고하라고 했는데, 여기다[2017년 5월 산불 기사]!
급경사의 허허벌판을 올라가자 곳곳에 불에 탄 그루터기가 보이는 게 당시 산불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능선에 올라서서야 대장이 왜 길을 잃을 수 있으니 GPS를 참고하라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대간은 허허벌판에 눈에 잘 보이는 길이 아니라, 숲을 따라 올라가야 했다. 고로 약 300여 미터 대간에서 빗나간 셈이다. 다시 대간에 올라서 허허벌판 깔딱을 힘겹게 올라 1시 24분에 푯대봉에서 100m 거리에 있는 푯대봉 삼거리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 이정표를 사진을 남기기까지 하고서도 이정표의 내용은 유심히 보지 않고 그저 이정표가 가리키는 푯대봉으로 갔다. 당연히 대간은 푯대봉을 넘어갈 거라 생각하고. 이정표에 의하면 대간상에 있는 건의령(한의령)으로 가려면 다시 삼거리로 돌아와야 하는데.
삼거리에서 푯대봉으로 가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통신 철탑이다. 부근에서는 가장 높은 봉우리가 가지는 특권이다. 통신 철탑에 실망하며 계속 가자 그 뒤로 정상석과 그걸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등산객이 보였다. 그나마 정상석이라도 있는 봉우리다. 일단 정상석을 사진으로 남기고 그 등산객에게 부탁해 그걸 배경으로 인증을 찍었다. 오랜만에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긴 거 같은데. 그렇게 인증을 남기고 이후 도착한 대간꾼이 인증을 찍고, 대상을 교체하는 사이 정상석 뒤로 보이는 길로 다음 목표인 건의령으로 갔다. 그러자 인증을 찍고 있던 사람들이 그 방향으로 가면 안 된다고 나를 불렀다. 그 길로 가면서도 지금까지와는 등산로가 달라 이상함을 느끼고 있던 순간이다. 대간은 삼거리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알려주어 그나마 길을 잃고 헤매지 않을 수 있었다. 해서 다시 삼거리로 돌아가는데, 삼거리 쪽에서 오는 사람의 반은 ‘왜 돌아오냐?’고 물었다. 그들 역시 나처럼 이정표를 제대로 보지 않는 사람들이다.
삼거리로 다시 돌아와 대간을 따라 푯대봉에서 건의령으로 10여 분 내려가자 저 아래로 무언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등산객의 모습이 보였다. 건의령이다. 1시 43분에 건의령에 도착해 보니, 소개문과 이정표가 건의령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번 산행에서 소개가 있는 건 봉우리든 고개든 처음이다. 그리고 건의령 이정표는 까만 소 백두대간 인증 장소라 나보다 앞선 인증꾼이 이미 찍고 갔고, 속속 도착할 인증꾼으로 붐빌 예정이라 재빨리 소개문과 이정표만 사진으로 남기고 그 자리를 떴다. 그런데 하나 이상한 건 건의령 바로 옆으로 시멘트 포장도로가 지나가고 있음에도 인증 장소가 된 이유가 궁금했다. 차량으로 도착해 사진만 찍고 가는 얌체도 있을 수 있어, 이런 환경의 봉우리나 고개는 인증 장소에서 제외하는 게 일반적인데. 임도라 아무 차나 못 2올라오나?
그리고 도로와의 사이에 비철(碑鐵)이 서 있어 가까이 가서 보니, 어떠한 설명도 없이 이름이 잔뜩 새겨 있었다. 해서 산불 진화를 위해 애쓴 사람들의 명단이 아닐까 생각해봤는데, 산림청과 소방청 등의 언급이 없는 거로 봐서 그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다시 자세히 보니 그 비철 제일 위에 "tree planet"이라는 타이틀이 있었다. 나무 행성? 아주 당연히 이 글을 쓰며 구글링해봤다. ‘반려동물’이 있듯이 ‘반려나무’라는 개념을 도입한 영리기업이다[홈페이지]! 지난 산불로 폐허가 된 지역에 나무를 사서 직접 심었거나, 나무를 살 수 있도록 지원한 사람들의 명단이다! '반려나무'라면 이름표 정도는 있어야 할 거 같은데, 여기까지 오면서 이름표를 단 나무는 못 봤는데?! 대신 비철에 이름을 새긴 건가?
산불로 한쪽 면은 민둥산이 된 능선을 따라 6km밖에 남지 않은 삼수령 방향으로 300여 미터를 가자 다시 울창한 숲으로 바뀌었다. 여기까지는 소방대원의 노력으로 화마가 닿지 못한 거 같다. 울창한 숲이라 좋기는 하나 볼 건 전혀 없는 대간을 따라 묵묵히 앞만 보고 가는데, 한국의 능선이 다 그렇듯이 기복이 장난이 아니다. 대략 100m당 언덕 하나는 넘는 기분이다. 물론 표고차 100m가 넘는 봉우리는 가끔가다 있지만. 햇볕이 강하고 기온은 높은데, 간절기용 등산복이라 땀은 폭포수가 되어 흐르지만 마실 물은 바닥이다. 뜨거운 태양과 끊임없이 올라야 하는 언덕과 봉우리, 바닥난 물의 삼중고다! 1리터 물통에 얼음을 얼려서 다녀야 할 계절이 돌아왔다. 그건 다음 일이고 당장 물이 필요해 물이 있을 만한 곳이 없나 두리번거리며 전진했다. 물론 대간 즉 능선 산행에서 물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은 지리산밖에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입술이 바짝바짝 타는 가운데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가다가 습지를 발견했으나, 물이 고여 있지는 않았으나, 지자체에서 쉼터로 만들어 놓은 통나무 의자에 주저앉아 잠깐 쉬었다. 그러자 뒤에서 따라오던 등산객 세 명도 옆에 앉았다. 그걸 보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물을 구걸했다. 돌아온 답은 역시 물이 떨어졌다. 대신 참외를 물 대신 먹자고 하나 권한다. 과일은 지난 2021년 8월 주금산에서 천마산까지 천마지맥의 일부 구간[산행기]을 달릴 때 물 대신 사과를 먹고 고생한 경험이 있어 망설였지만, 당장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받아먹었다. 나중에야 어찌 됐든 당장의 갈증은 해소할 수 있어 살만했다. 이 순간에 빨리 달려 2.8km 거리에 있는 삼수령으로 가는 게 현명하다는 판단에 바로 출발했다. 물론 남은 코스에 언덕과 봉우리가 최소 10개는 넘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다섯 개가 넘지 않기를 빌며!
다시 몇 개의 언덕과 봉우리를 넘자, 조금 전에 먹은 참외의 후유증으로 입술 주변은 설탕이 덮고 있어 갈증이 더 심해졌다. 바짝바짝 타는 입술을 혀로 핥으며 가다가 문득 디팩에 오렌지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태백시 공동묘지를 바라보는 작은 언덕에 퍼질러 앉아 그걸 까먹었다. 물론 물이 기다리고 있는 삼수령이 멀지 않다는 든든한 배경을 믿고. 뒷감당은 나중 문제고 오렌지로 급한 불을 끄고 다시 물이 있는 삼수령으로 가는데, 1km가량 남은 구간에 대여섯 개의 언덕과 봉우리가 체력의 밑바닥까지 드러나게 만들어, 달콤한 입술을 핥으며 쉬다 가기를 반복해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등장한 포장도로! 대간은 그 임도로 향하고 있었다.
역시 대간의 특성은 포장도로라고 해서 사라지지 않아, 바닥난 체력을 끌어모아 고개를 하나 넘자 저 밑으로 이정표가 보였다. 이정표가 있다는 건 갈림길이라는 얘기고, 그 방향은 임도를 벗어나, 작은 봉우리로 향하고 있었다. 빤히 눈에 보임에도 제발 등산로는 그 봉우리가 아니라 임도를 따라가기를 빌며 내려갔다. 그런데, 삼수령 휴게소에서 만난 산꾼들과 얘기해보니, 모두 나와 같은 생각을 했다고... '안 좋은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라는 진리에 따라 그 봉우리를 넘는 게 대간이다. 물론 임도를 따라가도 된다. 현재 시각 3시 49분, 남은 거리 400m, 언덕의 표고차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나, 목표한 4시 전에 산행을 끝낼 수 있다는 것과 막걸리가 기다린다는 걸 위안 삼아, 임도로 가자는 악마의 유혹을 뿌리치고 등산로로 들어섰다. 지친 몸을 끌고 언덕에 올라서자,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조금 더 가자 뾰족한 탑과 정자가 반긴다. 낙동강, 한강, 오십천의 분수령이라 이름 붙여진 삼수령이다! 그 시각이 3시 55분으로 백두대간 구부시령, 삼수령 구간과 화방재에서 구부시령까지 연결 산행이 끝난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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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아래로 주차해 있는 버스 두 대가 보이는데, 문제는 정자와 버스 주변에 앉아서 쉬고 있는 등산객이다. 물론 서울에서 준비해 온 등산객은 필요 없으나, 그렇지 않은 등산객은 매점에 있어야 하는데, 버스 주변에 앉아 있다는 건 매점이 영업하지 않는 걸 수도 있어 순간 섬뜩했다. 일단 눈으로 확인이 필요해 평소라면 배낭을 비롯한 짐을 버스에 두고, 슬리퍼로 갈아 신고 매점으로 향했을 테지만, 갈증의 정도가 그런 여유를 허락하지 않아 바로 버스를 지나쳐 매점으로 갔다. 다행히 작년에 왔을 때는 코로나와 기상이 좋지 않아 문을 닫았었는데, 현재는 문을 활짝 열고 있었다. 해서 망설임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전형적인 시골 담배 가게 모습에 주민(여기는 관광객)용 테이블 4개가 놓여있었다. 다른 게 있다면, 커피 머신이 있어, 등산객에게 아이스 아메리카를 팔고 있다는 거. 긴 테이블에는 대간꾼 네 명이 삶은 달걀, 라면 등을 안주로 막걸리, 소주,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내부 관찰이 끝나고, 빈 테이블에 배낭을 벗어 두고, 냉장고로 달려가 막걸리 하나를 꺼내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이스 아메리카 판매가 끝난 주인장에게 안줏거리를 달라고 하자, 김치와 삶은 달걀 두 개를 가져다줬다. 라면도 끓여 주는데, 그건 먹고 싶지 않아, 삶은 달걀과 김치에 만족했다. 먼저, 막걸리를 따라 시원하게 갈증해소 후 정신을 차리고 다른 테이블의 대간꾼과 이번 코스에 관해 얘기하며 막걸리 한 통을 다 비웠다. 그리고 한 통 더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나중에 와서 같은 테이블 반대편에 앉은 꾼이 막걸리가 남는다며 권해 그걸 받아 마시는 거로 술은 마감했다.
4시 45분경 다른 테이블 꾼들이 마감이 맞춰 자리에서 일어나는 걸 보고, 나도 냉장고에서 생수 하나를 꺼내 들고, 계산했다. 막걸리 한 통, 삶은 달걀 두 개, 생수 한 통에 6,000원이다. 너무 싸서 놀랐다. 아이스 아메리카가 4,500원인데.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당연한 가격인데, 왜 싸게 느껴졌을까? 어쨌든 휴게소를 나와 주변을 둘러본 후 삼수령 표지석을 사진으로 남기고 삼수령 기념탑이 있는 곳으로 갔다. 이미 안주를 기다리는 동안 신발을 벗기 위해 버스로 가 배낭을 빈자리에 두고 신발과 양말을 벗고 슬리퍼고 갈아 신었기에 무장해제는 끝난 후라 여유가 있었다. 앞으로 다시 여기 올 일이 없을 거 같아 여기저기에 작별 인사를 하고 버스로 돌아갔다.
예정보다 5분 이른 4시 55분에 삼수령을 떠나 버스는 6시 27분에 치악 휴게소에 휴식을 취하고 다시 고속도로를 달려 죽전에서 승객을 내려준 후 8시 8분에 아침에 차를 탔던 양재 국립외교원 앞에 도착했다. 기사와 인솔 대장에게 수고했다는 인사를 남기고 버스에 내려 지하철과 시내버스로 집으로 향해 9시경에 도착하는 거로 이번 백두대간 구부시령, 삼수령 산행을 마쳤다. 물론 저녁을 먹으며 하산주 2차로 안전 산행을 축하하는 걸 잊지 않았다.
처음 계획대로 접속 포함 '외나무골교 → 예수원 → 덕항산 갈림길 → 구부시령 → 석희봉 → 푯대봉 → 건의령 → 피재/삼수령'의 16.69km, 5시간 38분이 걸린 백두대간 구부시령, 삼수령 산행이었다. 이동 5시간 16분, 휴식 22분!
이미 알고 있었지만, 백두대간 종주가 목적이 아니라면 그 동네 사람이 아니라면 가지 않을 능선이고 푯대봉이라는 걸 확인한 산행이다.
다음 대간 연결은 3주 후 구부시령, 덕항산, 자암재 구간이라 댓재까지 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위안을 얻고 있다.
4월이 지나면 지역에 따라 산불 통제가 끝나기 시작하므로 대간 연결 산행도 다음 통제 기간인 가을까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중단이다.
첫댓글 그리 빨리 다니니까 땀 나고 갈증도 나는거지.
네가 할 말은 아닌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