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정리(大亭里)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산읍에 있는 리(里).
마을이 온산국가공업단지에 자리잡고 있다. 동쪽으로는 동해바다와 근접하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당수나무각당, 번내, 송정, 큰말이 있다.당수나무각당은 마을에 당산제를 지내는 당수나무가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번내는 대정리 남쪽에 큰 보가 있는데 그 안에 마을이 이룩되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송정은 마을에 소나무 정자가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큰말은 대정리에서 가장 큰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정의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자연환경
동쪽은 이진리, 서쪽은 화산리, 남쪽은 원산리, 북쪽은 산암리와 접한다. 동쪽으로는 동해바다와 근접하고 있다. 마을이 온산국가공업단지에 자리잡고 있다. 예전에 송정(松亭)으로 불리던 북쪽 지역에 소나무가 많았으나 온산국가산업단지가 들어서면서 옛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형성 및 변천
1894년(고종 31)에는 송정동과 대안동으로 갈라져 있었으며,
-1911년에는 송정동과 대안동, 본내동(本內洞)으로 갈라졌다가 얼마 후 본내동은 보내동(洑內洞)으로 개칭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이들 3개 동을 합한 후 법정리인 대정리로 하고 울산군 온산면의 관할에 두었다.
-1962년 6월 법률 제1068호에 따라 울산군이 시로 승격되면서 울산시와 울주군으로 분리되었다.
-1991년 1월 울주군이 다시 울산군으로 개칭되었다가
-1995년 1월 울산시와 울산군이 도농 통합형으로 개편되면서 종래의 군 지역이 울주구로 개편되었다.
-1996년 2월 온산면이 온산읍으로 승격되었다.
-1997년 7월 울산광역시 승격과 더불어 울주구가 자치군으로 승격되면서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산읍 대정리로 편제되어 현재에 이른다.
명칭 유래
대정리(大亭里)는 옛날 지명인 대안동(大安洞)의 ‘대’와 송정동(松亭洞)의 ‘정’을 합하여 만든 이름이다.
자연마을로는 당수나무각당, 번내, 송정, 큰말이 있다.당수나무각당은 마을에 당산제를 지내는 당수나무가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번내는 대정리 남쪽에 큰 보가 있는데 그 안에 마을이 이룩되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송정은 마을에 소나무 정자가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큰말은 대정리에서 가장 큰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현황
면적은 2.06㎢이나 주민이 한 명도 없어서 행정리도 없다(2017.12.31 현재).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풍산홀딩스 울산사업장, 코리아니켈 온산공장, 금오산업, LS-Nikko동제련 등이 온산국가산업단지 안에 들어서 있다. 국도31호선이 서쪽에서 남북으로 지나간다.
대정리(大亭里)
충청북도 옥천군 군북면에 있는 리(里).
환산 아래 자리잡고 있으며 앞으로는 금강이 흐르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거먹골(흑곡), 대촌(방아실), 새거리(신가), 와정, 자가터(자과터,자가대) 등이 있다. 거먹골은 검은 돌이 있으며 근처의 흙빛이 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대촌은 대정리에서 가장 큰 마을이며 전에 물레방아가 있었다 하여 방아실이라고도 한다. 새거리는 새로 된 마을이다. 자가터는 대부분의 주민들이 자기 터에 집을 짓고 산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대정리 이름은 대촌과 와정에서 딴 것이다.
문화유적으로 대정리 산성지가 있다.
대정리(大井里)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에 있는 리(里).
삼성면 소재지에서 북으로 2㎞ 떨어진 마을로 평야가 넓은 편이다. 동쪽에는 대정소류지를 비롯하여 여러 저수지가 있다.
본래 충주군 두의곡면에 속한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하리(下里)와 구정리(九井里)를 병합하고 대정리라 하여 삼성면에 편입하였다.
자연마을에는 웃두리실(상리), 망월사, 아랫두리실(하리)이 있다. 웃두리실과 아랫두리실은 각각 상리와 하리로 불리며 위쪽에 위치한 마을이 웃두리실, 아래쪽에 위치한 마을이 아랫두리실이다. 망월사는 마을에 망월사라는 절이 있어 지어진 이름이다.
대정리(大井里)
충청남도 아산시 선장면에 있는 리(里).
삽교천, 무량천 유역에 위치하여 대부분의 지역이 평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주로 논농사가 행해진다.
큰 우물이 있으므로 한우물 또는 대정이라 칭하였다고 한다.
자연마을로는 새뜸, 안뜸, 중뜸이 있다. 새뜸은 대정리에 새로 형성된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안뜸은 중뜸의 안쪽에 위치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중뜸은 대정리의 중앙에 위치하여 중뜸이라 불린다.
대정리(大井里)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성남면에 있는 리(里).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성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자연 환경
동쪽과 남쪽 경계부는 대부분 해발 고도 250여m의 구릉성 산지를 형성하고 있고, 북동쪽 경계부는 해발 고도 200여m의 구릉성 산지를 형성하고 있다. 북동쪽을 제외한 북부 및 중부와 서부의 대부분은 100~200여m의 구릉성 산지를 형성하고 있다.
서쪽 경계부에는 비교적 규모가 큰 대정 저수지가 축조되어 있는데, 이 저수지로 유입되는 소하천 연변의 충적지 평야들은 대부분 논으로 개발되어 있다. 구릉성 산지의 곡간과 비탈에도 있는 소규모의 평지들도 논으로 개발되어 있다. 구릉성 산지의 완사면 곳곳에는 국지적으로 밭과 과수원들이 조성되어 있다.
북서쪽 경계부와 남서쪽 경계부의 해발고도 200여m 지대에는 각각 한티 고개와 태호 고개가 있다.
평지가 매우 넓게 펼쳐진 지역이다. 동쪽에는 대정저수지라는 매우 큰 저수지가 있고 그밖에도 여러 저수지가 있다. 작은 하천이 북쪽으로 흘러가 승천천에 합류된다. 북쪽에는 경부고속도로가 통과하고 있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시대에 목천군 남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목천군 남면 대티리, 초정리, 마산리 및 하대티리를 통폐합하여 대정리를 개설하여 충청남도 천안군 성남면 대정리라 하였다. 1963년에 충청남도 천원군 성남면 대정리로, 1991년에 충청남도 천안군 성남면 대정리로, 1995년에 충청남도 천안시 성남면 대정리로, 그리고 2008년에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성남면 대정리로 각각 변경되었다.
명칭 유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통폐합 대상인 대티리, 초정리, 마산리 및 하대티리 중 대티리의 ‘대’ 자와 초정리의 ‘정’ 자를 따서 대정리(大井里)라 부른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자연마을에는 마산, 한티가 있다. 마산은 마을의 뒷산이 말같은 형상을 하고 있고 세종대왕이 이 곳에 말을 묶어두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 이름이고, 한티는 마을의 위에 한티고개가 있어서 이름 붙여진 것이다.
현황
대정리는 성남면의 서부에 자리 잡고 있다. 2012년 8월 31일 현재 면적은 3.64㎢로 이 중 경지 면적은 논이 0.42㎢, 밭이 0.27㎢이며, 총 106가구에 231명[남자 120명, 여자 111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으로 성남면 석곡리·대흥리, 서쪽으로 목천읍 도장리·소사리 및 세종특별자치시 소정면, 남쪽으로 세종특별자치시 소정면·전의면, 북쪽으로 성남면 용원리·석곡리 및 목천읍 도장리와 이웃하고 있다. 대정 1·2리의 두 개 행정리로 이루어졌으며, 자연 마을로 마산, 초정, 대치윗말, 대치아랫말 등이 있다.
초정(椒井)은 위말미 추정 마을 동남쪽 말티 고개 넘어가는 길가의 논 가운데 있는데, 『대록지(大麓誌)』에 의하면 어떤 신통한 중이 약물을 구해 깊은 산중에 들어가 마시려고 병에 넣어 가지고 이 고개를 넘다가 잠깐 쉬어 가는데 놓았던 병이 쓰러져 흘린 것이 약물로 나온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여기에는 세종과 관련된 이야기가 구전되고 있고 조선왕조실록에도 나와 있다. 세종이 한글을 연구하다가 과로로 안질이 생겨 병 치료를 하기 위해 각 지방의 약수를 물색하다가 대정리 초정과 전의 초정 및 청주 초정을 찾았다. 1444년(세종 27) 청주 초정에 이어 대정리 초정을 수축하여 거동하려던 중 민폐를 걱정해 말을 이용하여 약수를 실어다 먹었다는 것이 요지이다.
서창골은 중샘 서쪽에 있는 골짜기인데 1444년에 세종이 초정 거동을 위해 창고를 지었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고, 마산은 말미라고도 부르는데 뒷산이 말과 같이 생겼고 세종의 안질 치료를 위해 초정 약수를 운반할 때 말을 매두었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한티는 대티라고도 부르는데 마을이 한티 고개 밑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승천천의 지류 유역 농경지에서 벼농사가 이루어지고, 하천 주변 산기슭 완사면에서는 밭농사가 주로 이루어진다. 특산물로는 쌀이 있다.
기타 도로들이 대정리의 곳곳을 지나고 있는데, 이 도로들은 동쪽에 인접한 석곡리의 서부에서 대흥리와 석곡리의 서쪽 경계부를 남북 방향으로 지나는 지방도 691호선에 연결된다.
대정 1리에 대정 약수터와 대정 낚시터가 있는데, 연중 많은 사람들이 드나든다.
대정리(大井里)
충청남도 홍성군 구항면에 있는 리(里).
낮은 산지에 있는 산간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구억말, 마재, 돌소지, 당재모랭이 등이 있다. 구억말은, 마을이 구석진 곳에 자리해 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마재는 마재에서 은하면(銀河面) 장곡리(長谷里) 다릿골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그 고개 아랫마을을 마재라고 부른다. 내두(內斗), 또는 두현(斗峴)이라고도 부르는데 말(斗)의 속처럼 지형이 되어 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돌소지는, 대두(大斗)라고도 부르는데 마을 주위에 바위가 많이 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당재모랭이는 고개가 꼭 문처럼 생겼다 해서 문고개라고 부르며 문바위와 비례해서 동문고개라고도 부르는데 그 고개 아래에 자리한 마을도 고개 지명 따라 문고개라고 부른다.
대정(大井)이라는 명칭은, 대두(大斗)와 미정(美井)의 이름을 따서 생겼다.
대정리(大政里)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회현면에 있는 리(里).
회현 간척제방(干拓堤防)을 쌓아 만든 만경강 하구의 간척지로 이루어져 넓은 충적평야가 전개된다. 경지정리가 잘 되어있다.
자연마을로는 구정, 대지메, 배그메, 서기, 평류동 등이 있다. 구정은 대정리에서 으뜸가는 마을로 옛 회미현의 터였다고 한다. 대지메는 서기 동남쪽에 위치한 마을로 주위의 산 능선이 큰 대자 모양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배그메는 서기 서쪽에 있는 마을로 주변 산의 모양이 배와 같다고 하여 배그메라 불린다. 서기는 구정 서쪽을 이루고 있는 마을이라 서기라 칭하였다. 평류동은 구정 북서쪽에 있는 마을로 부근 제방에 버드나무가 무성하였던 것을 개간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대정리(大井里)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산내면에 있는 리(里).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개설
법정리로서의 대정리에는 중기리(마을)·대정리(마을)·매동리(마을)의 3개 행정리가 있으며, 산내면 사무소가 위치하고 있다.
자연환경
지리산의 초입 부분으로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과 접경을 이루며, 뱀사골계곡과 백무동계곡의 갈림길인 산악 지대이다. 사방이 지리산의 줄기로 둘러싸여 삼봉산·백운산·삼정산·덕두산·바래봉이 위치하며, 마을 서쪽으로 람천이 흘러 산내면 장항리와 경계를 이룬다.
대정마을에는 남원시 운봉읍에서 흘러온 람천과 지리산 뱀사골과 달궁계곡에서 흘러온 만수천이 합쏘에서 만나, 합수하여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으로 흘러 진주 남강으로 흘러 낙동강에 유입된다.
중기마을은 산내면 소재지로부터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방면 800m 지점에 위치하며, 삼봉산을 분기점으로 함양군 마천면과 경계가 된다. 백무동 직행버스와 남원시 시내버스가 왕래하여 교통편이 좋다.
대정마을은 산내면 소재지 마을로 뱀사골과 백무동의 갈림길로, 상권이 형성되어 있다. 산내면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대정마을은 분지로서 면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뱀사골·달궁·백무동으로 가는 시외버스와 시내버스의 왕래가 빈번하여 교통편이 좋다.
매동마을은 산내면 소재지로부터 남원시 인월면 방면으로 600m 지점에 삼봉산을 분기점으로 남원시 인월면과 경계를 이룬다. 시외버스와 시내버스의 왕래가 빈번하여 교통편이 좋다. 마을 앞에는 일성레저콘도가 있어 관광객의 왕래가 빈번하다.
2002년과 2003년에 태풍이 지나가 집중호우로 피해가 심했다. 대정리는 2002년 8월 31일 제15호 태풍 ‘루사’의 영향으로 인명 및 재산 피해가 속출했다. 450㎜ 이상 폭우가 쏟아진 남원 산내면과 인월면 지역에는 하천이 범람하여 주택 250여 가구가 침수되고, 1명이 실종되었으며, 2명이 중경상을 입어 총 70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날 오후 산내면 대정리 침수 지역에 나와 있던 주민이 무너져 내린 토사에 매몰돼 중상을 입었다. 또 폭우로 남원 산내파출소가 1.5m가량 침수되는 바람에 경찰관들이 엽총과 탄약 등 총기류를 인근 인월파출소로 옮기는 소동을 벌였다.
또 남원시 지리산 일주도로인 육모정과 인월 상우리 도로가 폭우로 침수되거나 파손되어 차량통행이 통제되었다. 8월 30일 밤부터 31일 오후 7시까지 내린 강우량은 지리산 뱀사골이 457㎜로 가장 많았고, 남원은 100㎜, 기타 지역은 평균 70㎜를 기록했다.
2003년 9월 12일에는 태풍 ‘매미’로 인해 산내면 뱀사골에 폭우가 내렸다. 지리산 뱀사골 일대에 최고 414.5㎜의 폭우가 내리면서 이날 오후 한때 하류 지역의 가옥이 침수되거나 침수될 위기에 처해 2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오후 8시경에는 산내면 백장마을 앞 하천이 넘치면서 이 마을 7가구 20명이 고지대 이웃집으로 피신했다. 산내면 백장마을과 원천리 일대 농경지 수백㏊도 물에 잠겼다. 지리산 뱀사골 일대에 폭우가 내리면서 12일 오후 하류 지역인 산내~인월 간 국도와 산내~반선 간 지방도의 일부 구간이 범람해 차량이 통제되기도 했다.
침수 피해가 심했던 이유 중 하나는 면소재지의 지형이 낮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2003년부터 삼거리에서 산내초등학교까지 700m 구간을 약 1.5m 정도 성토를 하여 지반을 높이는 공사를 시작해 2004년에 완공하였다.
세 갈래의 하천이 마을에서 한곳으로 모인다.
형성 및 변천
중기리는 본래 중터라고 했는데 1600년 경 남원양씨 양정원이 함양에서 임진왜란을 피해 지리산으로 가던 중 이곳에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그 후 상중기에 몇 집이 들어와 마을을 형성하여 현재에 이르며, 윗마을과 아랫마을로 되어 있다.
본래 운봉현 산내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유평리·대전리·묘동·매계리·중기리를 병합하여 대정리라 하고, 남원군 산내면에 편입했다. 1995년 1월 1일 남원시·남원군이 통합되어 남원시 산내면 대정리가 되었다.
산간부여서 1920년경에야 마을 앞으로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까지의 지방도가 개통되었다. 농촌 인구가 고령화되는 추세에 산내면의 경우는 인구가 증가하고 출산율도 증가하는,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농촌 중의 하나이다. 2005년 말 기준으로 12명이 출생신고를 하였다. 1998년 실상사의 귀농학교가 문을 연 이래 약 200여 명의 귀농인들이 몰려와 대정리 매동마을과 대정마을·백일리·입석리 등에서 살고 있다.
명칭유래
대정리가 처음으로 형성되었던 솔고개에 큰 샘이 있어 ‘큰 샘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큰샘몰’이라 하였다. 솔고개는 고개에 소나무가 많이 있어서 솔고개라고 하였다.
중기리는 사방이 병풍을 둘러놓은 것처럼 높은 산으로 포위되어 있고, 그 가운데 마을터가 있다. 그래서 ‘가운데 중(中)’ 자와 ‘터기(基)’ 자를 써서 중기리로 이름지었다고 하고, 또 마을터가 중앙의 길지라 해서 중기라고 하였다고도 한다.
매동리는 매계리와 묘동리를 병합하여 이름을 한자씩 따서 지은 이름이다. 마을 앞 200m 지점에 고양이 모양의 바위가 있어 괭이골이라 해서, ‘고양이 묘(猫)’자를 써서 묘동(猫洞)이라 했다. 그러다가 묘동은 풍수지리설에 의해 마을의 위치가 명당이라 하여 무덤 묘(墓)자를 넣어 묘동(墓洞)이라고 불렀다. 매계리는 1870년경부터 땅 모양이 매화꽃 모양으로 생겼다 하여 붙은 이름인데, 두 마을이 병합되면서 마을 이름을 매동(梅洞)으로 바꿨다.
자연마을로는 벗들, 삼거리, 소년대, 한밭 등이 있다. 벗들은 큰 버드나무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삼거리는 인월리와 동면과 마천면으로 가는 세 갈림길 주위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소년대는 옛날 전란이 있었을 때 소년군의 진지였다는 말이 전해오는 마을이다. 한밭은 큰 밭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현황
대정리 중기마을에는 63세대 152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고, 대정마을에는 83세대 180명의 주민이 거주하며, 매동마을은 109세대 201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중기마을의 면적은 서진암 쪽 임야를 포함하여 228.8㏊로, 산내면 전체의 8.8%를 차지하며, 경지 면적은 밭이 11㏊, 논이 20.9㏊이다.
주민들은 쌀 위주의 농사를 하고 있으며, 일부가 대규모 토종흑돼지 축산업을 하고 있다. 1998년 실상사 귀농학교가 활동을 활발히 시작하면서 귀농인들이 들어와 젊은 귀농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대정마을은 1991년 산내면 청사를 백일리에서 대정마을로 이전·신축하면서 면소재지로서 상권이 활성화된 마을이다. 산내면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대정마을은 분지로서 면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마을 뒤에는 토질이 비옥한 대정뜰이 있다.
마을의 총 면적은 서진암 쪽 임야를 포함하여 49.6㏊로 산내면 면적의 1.9%를 차지하고 있다. 경지 면적은 밭이 11㏊, 논이 9.8㏊이다. 쌀농사 위주의 농업을 주로 하고, 산내초등학교·농업협동조합·새마을금고 등 공공기관이 있으며, 상가가 형성되어 있다.
매동마을의 면적은 288.1㏊이며 산내면의 11.1%를 차지한다. 경지 면적은 밭이 16.2㏊, 논이 28.2㏊이다. 꿀 가공 공장·감식초 공장이 있으며, 한봉·표고버섯·감자 재배로 소득을 올리고 있다. 매동마을에는 827년에 창건한 백장암이 있으며, 박상철이 지은 퇴수정과 관선재가 있고 일성레저콘도가 마을 옆에 있다.
산내 귀농공동체로는 실상사 귀농학교, 생산공동체인 ‘실상사 농장’, 대안학교인 ‘실상사 작은 학교’, 유통판매공동체인 ‘생협’, 그리고 복지공동체인 ‘사단법인 한생명’의 5개 단체가 있다. 한생명은 보육시설인 산내들 어린이집, 방과 후 교실, 지역주민을 위한 건강교실 등 다양한 교육 사업을 통해 귀농자는 물론 지역 주민들의 교육과 문화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있다.
대정리(大井里)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오수면에 있는 리(里).
임실군은 전체적으로 산간지역이고 험준한 산지가 많으나 이 지역은 비교적 평야가 넓은 지역이다. 동쪽에는 둔남천이 흐르고 번화가가 있다. 전라선 철도가 남북으로 관통하며 오수역이 대정리에 있으며 13번 국도는 동서로 통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자연마을에는 대정마을이 있다. 이는 마을에 큰 우물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대정리(大丁里)
경상남도 남해군 서면에 있는 리(里).
용두산과 송등산 사이에 있는 농촌 마을이다. 마을의 대부분은 평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남쪽으로 서상천이 흐르고 있다.
자연마을로 대정, 바깥모, 금곡촌 마을이 있다. 대정 마을은 큰 느티나무 정자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바깥모 마을은 동정 남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금곡촌 마을은 남정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대정리(大井里)
강원도(북한) 창도군 남서부에 있는 리.
북쪽은 면천리(綿川里), 동쪽은 오천리(烏川里)·인패리(印佩里), 남쪽은 천리(泉里), 서쪽은 임남리(任南里)와 접한다.
이곳에 큰 우물이 있다고 하여 대정리라고 한다.
강원도 양구군 수입면 대정리가
-1949년 10월 북한의 행정구역 개편 때 대정1리와 대정2리로 분리되었다.
-1952년 12월 면이 폐지되면서 수입면 대정1리와 대정2리가 합쳐져 신설한 창도군 대정리가 되었다.
북동쪽에는 용문산(룡문산:1,069m)이 있고 여기에서 남서쪽으로 가면서 점차 낮아진다. 하천은 북한강과 그 지류인 금강천이 흐른다. 산림이 리 면적의 90%를 차지하는 산간지대이다. 산에는 참나무·자작나무·피나무 등이 자라며 납·아연·석회석 등의 지하자원도 풍부하다.
경작지 중에서 논이 11.7%, 밭이 42.6%, 과수원이 44.1%, 뽕밭이 1.6%를 차지한다. 주요 농산물은 옥수수·쌀·콩·팥 등이다. 또한 목화가 많이 재배되며 군의 주요 살구 산지이다. 교통은 리에서 동배령(554m)을 넘어 창도읍으로 가는 도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