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고원 길 1 코스를 가다
(전북 진안군 백운면, 2015. 4. 4)
瓦也 정유순
어제 내린 비 때문인지 황사로 뿌옇던 하늘이 청명하다. 산들은 봄기운이 완연하여 더 가깝게 보이고 바위의 잔주름이 다 보이는 것 같다. 꽃구경 가는 차들이 고속도로를 꽉 메우고 휴게소는 상춘객이 넘친다. 역시 봄은 움츠렸던 육신을 바깥세상으로 불러내나 보다. 전주 임실을 거쳐 ‘성수산’고개를 넘으니 멀리서 진안의 랜드마크 ‘마이산’이 귀를 쫑긋한다. 목적지에 가까울수록 먹구름이 드리우는데 예정시간보다 한 시간 가량 늦게 도착했다.
북에는 ‘개마고원’이 있다면 남에는 ‘진안고원’이 있다고 한다. 그만큼 높은 산들이 이마를 맞대고 있어 붙여진 이름 같다. 이 산속의 마을과 마을을 이어 놓은 길이 ‘진안고원 길’이다. 총 14개 코스 중 오늘은 제 1코스 중에서도 백운면 ‘노촌리 영모정’에서 시작하여 백운동계곡을 중심으로 맛만 보기로 한다. 고원 길 팻말을 따라 내를 건너 고갯길에는 진달래가 듬성듬성 무리지어 만개했고, 다른 수목들도 저마다의 특징으로 망울을 터트리며 봄의 세계를 꿈꾼다.
길옆의 갈대가 누워 있고 ‘물버들’이 우거진 습한 곳은 벼농사를 짓던 논이었을 것이고, 평평하게 골라진 땅은 분명 사람들이 살던 곳이었을 것이다. 조금 더 높은 고개 마루에는 고랭지 채소재배를 위한 밭이 넓게 펼쳐 있고, 비닐하우스로 부가가치가 높은 농사를 짓고 있는 것 같다.
고개 아래 ‘웃흰바우(상백암)마을’ 할머니들은 행여나 아는 사람이라도 있는지 고개를 내밀어 아는 체를 하는데, 이곳에서 태어난 우리 일행 중 한사람을 알아보시고 ‘익산댁’ 아들 왔다고 ‘택호’를 부르며 반가워하시는 허리 굽은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이 ‘울엄니’ 같다. 이곳도 내 고향처럼 사람이 떠나 빈집으로 있다가 폭삭 주저앉은 폐가가 마을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세상이 아무리 많이 변해도 ‘고향’이라는 것은 “책갈피에 꽂아 둔/낙엽 한 닢/어디에 넣었는지/모르고 있다가//갑자기/눈에 띠면/그렇게 반가운/동구 밖 은행나무//고향은/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배꼽 같다”(고향, 와야 정유순) 정말 살아 있는 한 지워지지 않는 탯줄 자국이다.
점심을 하기 위해 면사무소가 있는 ‘백운장터’로 간다. 고기집이라는 허술한 간판의 음식점은 겉보기와는 다르게 안이 넓고 ‘김치찌개’와 ‘꽁치무졸임’은 맛있는 밑반찬과 함께 입에 쩍쩍 붙어 밥 한 공기로는 부족하다.
백운장터는 주민들이 손수 만든 한글 간판으로 더 정감 있고 아름답게 다가온다. 전통 매사냥의 보유자의 응방에는 보라매가 어두운 유리벽 안에서 바깥세상을 응시한다. 화단의 수선화와 명자나무 꽃망울이 반갑고 길옆의 할미꽃은 허리가 무겁다.
백운동계곡은 진안군 백운면 덕태산(1,113m)에 있다. 고지대로 올라 갈수록 ‘별장마을’들이 나오고 자동차 길도 나 있다. 단비에 주민들의 손길이 바쁘다. ‘전진바위’폭포는 속도를 더하여 힘차게 떨어져 ‘대미샘’에서 발원하는 섬진강으로 합류하여 임실, 순창, 남원, 곡성, 구례, 하동, 광양 땅을 풍요롭게 적시면서 몸을 낮추고 더 낮추며 남해로 흘러간다.
생동하는 만물들을 살찌우게 하는 봄비는 더 굵어져 더 이상 계곡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전주로 회군하여 ‘덕진공원’으로 간다. 덕진공원은 후백제 왕 견훤이 전주에 도읍을 정한 후 연못을 만들었다고 전해져 내려온다. 여름 날 활짝 피는 연꽃이 장관을 이루고 전주시민뿐만 아니라 외지인들도 많이 찾아오며, 해마다 오월 단오 날에는 부녀자들이 이곳에 와서 창포 우린 물로 머리를 감는 풍습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작년에 시든 연잎과 연밥은 새순이 돋기를 기다리며 봄비를 맞는다. 우리는 호수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현수교를 따라 우산을 받고 걸으며 아름다운 추억을 켜켜이 쌓아둔다. 이웃의 전북대학교정과 건지산은 분위기를 더 짙게 자아낸다.
덕진공원 정문(남문) 입구로 들어와서 오른쪽에 구한말 쓰러지는 종묘사직을 한탄하며 ‘중추원 참의’벼슬을 버리고, 부안의 개화도에서 후학들에게 우국충정을 가르쳤던 성리학자 ‘간재 전우(艮齊 田愚, 1841∼1922)선생의 유허비’가 우리를 향해 곧게 살아 밝은 세상을 만들라고 마지막으로 강론한다.
첫댓글 진안, 좋은데까지 가셨군요,
옛날 방학때 캠프를~~
그래도 옛날 모래재 넘던 고갯길이 좋았던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