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에 나같이 진실에 목말라 사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ㆍ 고물장사를 해야 할 정도로)
찢어진 깃폭(원본)
1980년 6월 5일 일본가톨릭정의평화협의회 기자회견 내용 :
"이 자료는 우리에게 보내기 전에 내용의 타당성을 입증한 한국 가톨릭교회의 믿을 만한 소식통으로부터 입수된 것이다. 우리는 내용의 진실성에 책임을 진다." 이 증언은 광주에서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탑승했던 고속버스에서 내린 5월 19일부터 증언자가 직접 목격했던 사태 설명에 대한 녹음테이프에서 베끼고 편집하여 번역한 것이다. 그는 그날 아침 서울로부터 도착해서 가족들의 안전을 점검하고 아래 사태가 일어났을 때는 서울로 다시 돌아가려던 참이었다. 증언은 증언자가 군대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철도를 따라 5월 24일 새벽 7시 광주를 떠난 시점에서 끝난다. 그는 도로 이용을 피하려 애쓰면서 산을 넘고 계곡을 건너 서울행 기차를 탔다. 그 후의 보도에 의하면 그는 광주사태에 관해 이 증언을 한 혐의로 체포되었다고 한다.
1. 아름다운 도시
1980년 5월 19일, 아름답고 조용한 전원도시, 전남의 도청소재지, 독립과 민주주의 투쟁에 몸바친 수많은 영웅을 길러낸 호남의 젖줄이며 빛의 고을인 광주가 피의 쑥밭으로 변하던 날, 공설운동장 입구에다 황급히 승객을 토해내고 도망치듯이 시외로 빠져 나가던 고속버스 뒷모습에서 나는 사태의 심각성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피로에 지친 몸을 택시에 던지고 운전사에게 도청 앞으로 가자고 말했다.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는 죽는 시늉을 하면서, "차라리 걷는게 나을 거요"하며 브레이크를 밟고 나를 다시 내리게 했다. 하는 수 없이 걷기로 하고 임동 쪽으로 걸어갔다. 불타버린 파출소가 어느 패전한 도시의 단면을 보여주는 듯했다. 도처에 대검을 부착한 계엄군들이 승전의 대가로 얻어낸 적지를 짓밟듯 온통 시가지를 누비고 있었다. 나의 전신에선 오싹 소름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나는 조심스레 그들 가운데를 뚫고 벌써부터 이마에 돋아난 식은땀을 훔치면서 금남로에 접어들었다. 한때는 꽃들이 무성히 피어나 내방객을 환영해 주던 아름다운 도시, 소박한 인정, 잘 정돈된 시가지들은 모두가 옛 시절의 추억에 잠기고 폐허로 변해가고 있었다. 포근한 어머니의 젖가슴마냥 도시를 살찌게 하는 아름다운 산 무등산, 또 봄이면 둑 위에서 낚시질하는 강태공들의 모습이 깃든 극락강이 있는 아름다운 전원도시에 지금은 찬바람이 불고 있었다.
2. 살인면허
광주시민은 양처럼 순하다. 그러나 이 날 그토록 순한 양들이 민주수호라는 제단에 바쳐지는 피의 제물이 되고 있었다. 무한한 권력을 휘두르는 권력자는 권력의 지속적 유지를 위해 현 체제의 어떤 변화도 용인하지 않는다. 어떠한 변화나 개선을 촉구하는 행위는 권력자에 의해 즉각 체제전복의 음모로 간주되어 무참한 탄압의 대상이 되는 것이 후진국의 풍토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는 바이지만, 오늘의 호남 일각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는 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반민중 탄압의 극을 장식할 것이다.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함성, 창자를 뒤틀리게 하는 비명, 임종을 알리는 듯한 숨 가쁜 신음소리, 흡사 대지가 메말라 저 젊은 넋들에게서 짜낸 피를 서서히 마시고 취하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하늘은 온통 메아리치는 함성으로 찢어지고 있었다. 시위학생들과 구경하던 무고한 시민들을, 벌떼처럼 날아들어 온 공수특공대가 단 한마디의 경고도 없이 포위해 버렸다.
"설마 무고한 양민을 죽이기까지 하랴"는 단순한, 그리고 어리석은 믿음에 의지하고 중심가에 접어든 나는 일단 살아야 되겠다는 가장 본능적인 마음에 쫒겨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뒤쫓아 오는 총검의 섬뜩한 촉감이 어깨로 의식되며 어느 빌딩 안으로 정신없이 뛰어 들어갔다.
고맙게도 먼저 온 사람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셔터를 내려주어 철퇴로 골통이 부서지는, 대검에 가슴이 찢어지는 참극을 면할 수 있었다. 난생 처음으로 죽음이라는 검은 그림자가 내 곁에 다가와 있음을 절감했다. 나는 피신객들 틈에서 생쥐처럼 움츠려 앉아 그물망처럼 엮어진 셔터의 바깥 정경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고막을 찢는 총성, 예리한 대검, 철봉 휘두르는 소리, 누군가의 목숨이 절단나는 비명소리는 지옥의 한 장면처럼 내 의식을 뚫고 들어왔다.
남녀노소, 학생, 시민 할 것없이 닥치는 대로 갈기고 찌르고 부수었다. 마치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에 의해 모잠비크 민중이 무자비하게 학살되던 그 현장을 직접 눈으로 보는듯한 착각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만큼 재빨리 나는 내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주위의 일에 다시 관심을 가졌다.
미처 피하지 못한 70세 가량의 할아버지의 뒤통수에 공수병의 철퇴가 내려치자마자, 노인의 입과 머리에서 분수 같은 피가 쏟아져 내리며 비명도 아픔도 없이 훌쩍 거꾸러졌다. 나는 어찌해야만 좋을지 몰라 망연히 서 있다가 꼬아지는 아픔에 계단에 주저앉고 말았다. 곁에 있던 아주머니는 발을 동동 구르다가 그대로 장승처럼 땅바닥에 무너져 내렸다. 약하고 힘없는 민중의 집단적 분노가 솟아나고 있었다. 그것은 호소할 곳도 의지할 곳도 없는, 참으로 외롭고 고독한 서러움이었다.
살인현장, 그것도 가장 무자비하고 잔악한 살인현장을 직접 목격하기는 처음이다. 그러나 살인자의 악랄함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두 명의 공수부대에게 개처럼 끌려온 여인은 만삭에 가까운 임신부였다. "야, 이년아, 그 주머니에 들어있는 게 뭐야?" 나는 무엇을 묻는지 몰라 그녀의 손을 살폈으나 손에 주머니 같은 것은 눈에 띄지 않았다. "이 쌍년아, 뭔지 모르나. 머스마가, 계집아가." 그들은 매우 흥분한 것처럼 보였으며, 내가 그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깨달은 순간은 바로 이 순간이었다. 여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으나 아마 자기도 알 수 없다고 말하는 눈치였다. "그럼 내가 알려주지!" 순간 여자가 반항할 짬도 없이 옷을 낚아채자 그녀의 원피스가 쭉 찢어지며 속살이 드러났다. 공수병은 대검으로 그녀의 배를 푹 찔렀다. 후비면서 찔렀는지 금방 창자가 튀어나왔다. 그는 다시 한 번 그녀의 아랫배를 가르더니 태아를 끄집어내어 땅바닥에 할딱이고 있는 여인에게 던졌다. 도저히 믿을 수도 있을 수도 없는 이 처참한 현장을 목격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돌리고 몸서리치면서 이를 갈았다.
나는 눈을 감고 혀를 깨물었다. 전신에 경련이 일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에는 시체도, 공수병도 보이지 않았다. 옆에 서 있던 사람의 말에 따르면 마치 오물을 쳐내듯이 가마니에 쑤셔넣고 쓰레기차에 던져 넣고 갔다는 것이다. 나는 무의식중에 소리쳤다. "오, 주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순진무구한 사람들의 피의 대가로 무엇을 해야 보상이 될까. 이제 이 나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 정말로 저들이 이 나라 국토방위라는 성스러운 과업을 수행하는 대한민국의 국군일까.
내 자신의 목숨을 위해 그토록 끔찍한 광경을 숨어서 엿보던 자신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일에 항거할 수 없는 자신의 비굴함을 보고 참으로 치사한 인간의 모습이 바로 나로 보여졌을때, 자신에게 이루 말 할 수 없는 모멸감을 느꼈다. 배가 갈라져 죽어가던 그 여인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나 자신의 비겁하고 용렬한 모습에서 최초로 자기증오의 감정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어느새 딴 곳으로 피신했는지 내 옆에 있던 사람들은 다 없어져 버렸다. 계엄군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엔 핏자국과 파편이 오물과 분노와 함께 남아있었다. 대검과 철봉을 피해 군중들은 골목, 다방, 식당, 가게, 건물 등 안전한 곳이면 아무 데고 뛰어들었다. 피를 마시기에 혈안이 된 군인들은 아무나 잡히는 대로 찌르고 갈겨서 현장에서 즉사시키는 것이었다. 그들은 살인면허를 소지하고 있었다.
"쿼바디스, 주여! 어딘소 가시나이까", "나는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해 로마로 간다." 로마병정들에게 무차별 학살되는 초기 기독교인들을 보고도 도망가는 사도 베드로를 보고 하신 예수의 말씀이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권력에 짓눌리고, 풍요로부터 외면당하고, 소외와 고독의 한 가운데서 굶주림과 추위에 떨며 권력과 무력의 제물이 된 그들은, 자신의 목숨을 결코 서 푼이 상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기
첫댓글 진실에 주리고 목말라 하자. 비록 썩은 양심이라는 소리를 들을지라도.
찢어진 깃폭이 소설인가
진실인가 검증 확인하고
남을 함부로 매도하지 말기 원한다.
역사적으로 검증되고 백서까지 나온 사실을
자꾸 들추고 의심하고 하는 것이 썩은 양심이죠
소설인지 진실인지 검증은
의혹을 제기한 사람이 해야 할 일입니다
이것을 뒤바꿔 생각하는 것 자체가 썩은 양심임을 보여주는 겁니다
@봄날5 고물장사하는 것과 진실에 목말라함이 무슨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인지? 이해 불기합니다 고물장사 할애비께는 무슨말을 븥여야 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