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화 : 새터(오티)
오늘은 간신히 들어간 대학의 새터(오티)를 가는 날이자 두 번째로 학교에 가는 날이다. 두 번째 발걸음이라 이제 좀 익숙하다. 스쿨버스에 올라 뒷자리에 앉기까지 눈을 희번덕거리며 좌우로 스캔하기 시작했다. 남고에서 3년간 썩을 대로 썩은 나는 대학에 가면 자연스레 여자 친구를 만나게 될 줄 알았다.
입학 전 나의 대학상상도는 딱 2가지였는데 하나는 고3때 담임이 보여준 비디오다. 내용은 선배의 꼬드김에 학생운동에 가담한 학생이 이차저차 하여 지하에서 배포할 전단지를 만들다 수갑 차며 울며 끝난다.
다른 하나는 말 그대로 "우리들의 천국"이었다. 그렇다 장동건, 김찬우 주연의 그 불멸의 청춘드라마이다. '아껴둔 우리 사랑을 위해', '너에게로 가는 길' 등 많은 히트곡을 남기기도 했던 명 드라마이다. 어린 시절 나에게 대학의 환상을 심어준 그 말도 안 되는 드라마.
'마지막 승부' 또한 공놀이를 빼면 비슷한 주제이다. '아~ 다슬이... 아~ 다슬이~ ' 중학시절 심은하라는 여주인공을 보며 얼마나 많은 밤을 설렜던가. 난 중학시절 그 마음을 간직한 채로 현실에서 다슬이를 찾고자 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밝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현실을 직시하려던 그 찰나.
좌석이 가득 찬 스쿨버스 위로 입석하려는 학생들이 올라오는
그 때였다.
하얀 얼굴에 하얀 치아. 하얀 꽈배기 쉐타.에 청바지. 커다란 눈망울. 긴 파마머리. 외소 해 보이는 몸집이 청순!
그 자체였다.
그렇다.
나는 다슬이를 보게 된 것이다.
몇 학년일까? 이름이 뭘까? 집이 어딜까? 남자친구는 있을까?
이런 저런 상상을 하며 계속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다슬이 때문일까? 두 번째라서 그럴까? 젖소 목장이 금방 나왔다.
예비 모임 때도 가지 못했던 나이기에 어디로 가야할지 몰랐다.
아무도 없는 과사무실에서 허우적대다가 1시간 뒤에서야 비로소 채플실에 모든 학생들이 모여 있는 것을 알았다.
"이런~ 나 뭐한 거야"
사전 교육 및 예배 비슷한 것을 진행하고 있었고 나는 그 착한 학생회장의 안내를 받아 아무도 앉지 않는 뚱보 옆자리를 배정받았다. 뚱보가 뚱보를 비집고 들어가 낑낑거리며 교회의자에 앉았다.
"헉!!"
착석하여 앞을 보는 순간. 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 나의 다슬이가 내 앞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다슬이는 우리 과? 그리고 나와 같은 일학년?" 머릿속으로 온갖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아~ 가만있어보자. 가만있어보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침착하자. 침착하자" 침착 할 수 없었다.
"오호 이것 봐라? 아~ 이게 바로 우리들의 천국이구나!" 나는 드라마속의 장동건이 된 기분이었다.
뭔가 아다구가 딱딱 들어맞는 그런 느낌을 도무지 지울 수가 없었다.
긴 파마머리에 꽈배기 쉐타를 입은 다슬이를 좀 더 가까이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앞에 꽂혀 있는 성경책을 펼쳤다.
팔짱을 끼고 책상에 기대며 책을 보는 척 몸을 앞으로 쑤욱 숙였다. 그녀의 머릿내가 내 코를 찌릿하게 만들었다. "음~ 여자들은 이런 냄새가 나나?" 엄마와는 다른 냄새였다. 자세히 보니 하얀색 쉐타는 아이보리에 가까웠고 안에 청남방을 하나 더 입고 있었다.
내가 지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교육이 또 금방 끝이 났고 불현듯 불길한 생각이 스쳤다.
혹시 다슬이와 뒷모습만 똑같은 게 아닐까? 하는 별 해괴한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기어코 얼굴을 확인해야겠다.
교육이 끝나도 난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다슬이의 얼굴을 반드시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녀가 일어섰을 때 나도 같이 일어서며 재빨리 곁눈질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내 눈빛을 들킬까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자세히 보니 주근깨가 가시지 않은 얼굴이 더욱 풋풋해보였다.
채플실 앞에서 그녀의 이름을 확인하였고. 오티 장소로 가는 내내 옆에서 대학생활의 이것저것을 알려주려고 했던 여자 선배의 말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경기도의 한적한 수련원에 도착했다. 도착하여 일량년들을 조별로 배정하였다. 보통 이 조에서 만난 친구가 짧게는 1년 길게는 4년간 함께 하기도 한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다슬이가 나와 한조에 속해 있었다.!!!
끼야호!!! 이건 운명이다.
머릿속에는 계속해서 다슬이와 함께하는 우리들의 천국이 맴돌고 있었다.
우리 조에는 94학번 여자선배도 있었다. 속으로 이상하다. '5학년인데... 왜 이리 오래 다니지?' 별 대수롭지 않았다. 왜냐면 우리 조에는 다슬이가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조심스레 그녀를 유심히 지속적으로 끈질기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짐을 풀고 큰방에 둥그렇게 모여 각자 소개하는 시간이다.
'아~ 긴장된다. 뭐라고 말하지?, 다슬이는 어떤 친구일까?'
나중에 술자리에서 알게 된 그 친구는 다소 백치미에 아주 털털하여 친구도 여자보다 남자가 더 많은 그런 친구였다.
나는 초록색 고르뎅 바지와 짙은 고동색의 쉐타를 입고 있었으며 당시 강남의 자존심인 마틴 구두를 신고 나름의 철없는 자부심에 도취해 있었다. 방에 들어가기 위해 그 자부심을 벗는 순간!
아뿔싸! 검정 양말 엄지 쪽에 큰 구멍이 나있는 것이 아닌가!
오티의 악몽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양말을 자꾸 발가락 밑으로 쥐어짜내 엄지와 검지사이에 꽉 물어서 구멍이 안보이게 했다. 이때부터 도저히 다른 일에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그때는 그게 왜 그리 창피하고 신경이 쓰이는지. 그나마 안면이 있는 학생회장 형에게 도움을 구했다. "형, 죄송한데... 양말 하나 더 있으세요?",
착하디착한 우리 형은 마치 자식 보듯 푸근한 반달눈을 하고는 "음... 여분이 없는데. 왜에~?" 하고 되묻는 것이었다.
"아... 아니에요"
저녁을 먹고 동아리들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다행이다. 객석은 어두운 상태라 맨 뒷좌석에서 발가락을 진정시키고 마음 놓고 구경할 수 있었다. 대학에 가면 반드시 동아리를 해야 한다고 다짐했던 터라 쭈욱 지켜보았다.
꽝! 꽝! "바위처럼~ 살아가보자~" 보라빛의 노래배우기 시간이었던 것 같다. 하얀 장갑에 천을 오른손에 두르고 일렬로 민중가요를 부르는 문화를 태어나 처음 접해보았다. 처음엔 교회의 성가대 비슷한 것이라 생각했으나 이내 바뀌었다.
본 공연이 시작되었다. 소리아리, 메트로, 뮤즈 등의 밴드들의 노래를 들었다. 표범무늬 가죽바지를 입은 싱어를 아직도 기억한다. 뒤이어 보라성, 보라빛, 곶매의 마임도 있었던 듯하다.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갑자기 이상한 선배들이 뒤에 우르르 몰려들었다. 장구와 북을 들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고, 스텝이라고 쓰여 있는 큰 점퍼를 입은 사람도 있었다. 그 중에 눈에 띄는 이가 있었으니 호리호리 길쭉한 체격에 라면 같은 곱슬머리가 인상적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국사학과 선배이자 겨울극회 직속선배 당시 총학생회 사회부장 임화끄였다.
분위기가 최고조에 이르자 사회자인 영문과 회장이 총학생회장을 소개한다고 하였고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했다.
이내 뒤에 있던 임화끄 선배가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투쟁의~ 함성으로~ 역사위에~ 영원하라~ 민족~ 한신이여~" 전형적인 운동권의 모습을 상상하며 무서운 선배구나 생각했다.
"깜짝이야!" 맨 뒷자리에서 널브러져 있던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보라빛의 연주에 맞춰 시뻘건 머리띠를 한 두 남자가 팔뚝질을 하며 맨 뒤 정중앙에서 앞으로 성큼 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아. 길이 열렸다. 마치 예수가 홍해를 건너 모세의 기적을 일으키듯 가운뎃길이 열리기 시작하여 성큼 성큼 걸어 나가는 것이 아닌가. 총학생회장, 부회장이었다. 그때의 문화적 충격은 내 20대를 송두리째 집어삼키는 듯 강렬했다.
뒤따라 학생회장들이 팔뚝질을 하며 총학 회장 뒤로 일렬로 나란히 서 있었다. 여분의 양말이 없던 우리 과 착한 회장도 있었고, 면접 때 조교로 착각한 철학과 회장도 거기에 있었다. 인자하고 자상한 그 얼굴에 저런 모습이 있었다니. 고3 때 비디오가 생각났다. 뭔가 속은 기분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밝은 무대에서 보니 총학부회장이 여자였다는 사실이다. 키가 더 크고 체격도 더 우람하고 느낌이 '장군' 같아서 남자인줄로만 알았다. 고딩시절 아침조회와는 사뭇 다른 자세로 회장, 부회장의 학내정세와 관련된 연설을 들었다. 체육과 보다 더 체육과 같은 신학과에서 우뢰와 같은 함성과 박수소리가 들렸다. 뒤에 있던 장구든 선배들이 "잘생겼다~, 멋지다~"라는 감탄사를 연발하였다.
이제 하이라이트라고 하는 마당극 공연이 시작되었다. 시작과 동시에 나는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어우동 복장을 하고 큰 점을 붙인 선배가 살랑살랑 장단에 맞춰 궁둥이를 흔들며 등장하기 시작했다.
"헉!", "저 동아리는 들어가면 안 되겠다" 속으로 다짐했다.
이윽고 손오공 같이 생긴 선배가 나왔다.
"으헉!" 또 한 번 놀랐다.
또 연달아 저팔계 같이 생긴 선배가 춤을 추며 나왔다.
"으허허헉!"
사오정 같은 선배도 있었다.
마당극을 보고 있지만 중국판 서유기를 보는 느낌이었다.
대학문화를 처음 접해본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흥분감과 첫 만남의 설렘을 간직한 채 양말을 벗고 방으로 들어가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맨발인 사람은 나 혼자였다.
선배들이 친절하게 레몬소주를 만들어 오셨다. 한잔 술에 여자 동기 하나가 발작을 일으키며 쓰러졌다. 선배들이 다른 방에서 진정시켰다. 나도 술을 마셔보지 못했지만 주면 주는 대로 원샷했다. 왜냐면 우리 조에서 다슬이가 날 보고 있기 때문이다. 마시다 보니 뒤엉켜 있었다. 동그랗게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불렀다. 마치 70년대 대학생처럼. 다슬이와 어깨동무도 했다. 취기가 올라와 자세히 잔을 보니. 레몬끼가 보이지 않았다. 언제부터인지 깡소주를 마시고 있었던 것이다.
"작지만 알찬 대학!"
"돌이 들어와서 황금이 되는 학교!" 라는
감동적인 조교의 말은 잊은 지 오래다.
비틀비틀 벽에 의지해서 화장실로 갔다. 공용 화장실이라 그런지 시설이 엉망이다. 소변기가 고장 나고 수챗구멍이 막혀서 물 반 오줌 반으로 덮여있었다. 가운데 욕실 슬리퍼가 한 켤레 떠 있었다. 술이 나에게 기운을 준 것일까? 나는 그게 징검다리처럼 보였다. 게다가 나는 지금 맨발 아닌가. 다시 씻으면 되지 않는가. 한발을 한쪽 슬리퍼에 올렸다. 좋았어. 나는 용기가 더 충만해졌다. 다른 한발을 다른 슬리퍼에 올리려는 그 순간이었다.
'휘리릭~ ' 미끌, ' 철퍼덕'
앗! 나는 그만 자빠져버리고 만 것이다.
다행이 손으로 짚기는 했지만 고르뎅 바지 왼다리가 오줌 물에 흠뻑 적셔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 뒷일은 기억나지 않는다. 머리가 너무 아픈데... 잠결에 말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무슨 냄새지?”, “무슨 쉰내 나지 않니?”, “ 어디서 개 키우나?”
눈을 살며시 떴다. 내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자는 척하며 내 왼다리를 슬쩍 만져보았다. 아~절망감이 밀려왔다. 내 고르뎅 바지 한쪽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던 것이다. 육안으로도 눈에 띄게 노란 물이 들어있었다.
너무 창피해서 나 혼자 몰래 가서 아침을 먹고 왔다. 밥 먹으러 가는 길에 임화끄 선배가 선전 선동을 하고 있었다. 무서웠다. ‘빨리 집에 가야지.’ 속으로 생각했다. 집에 갈 준비를 하라고 해서 쾌재를 부르며 어제 벗었던 구멍 난 양말을 신고 가방을 맸다. 그런데 앗! 난데없이 동아리공연 2부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 강당은 어두우니까 어제처럼 뒤에서 보면 되겠지” 안심하고 강당에 자리 잡았다. 그날 본 것이 집체극이라는 것과 연극반이 거기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지루한 공연이 끝날 무렵 사회자가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으레 하는 그런 레크리에이션이었다.
“자! 지금부터 과별 게임을 진행하겠습니다. 엄청난 상품이 있습니다. 각 과에서 가장 튼튼한 남학생과 가장 튼튼한 여학생을 뽑아주십시오.”
남의 일 보듯이 뒤에서 널브러져있었다.
그 때였다.
“얘요! 얘! 얘! 얘!”
배신자 같은 우리 과 회장이 날 가리키며 소리치고 있었다. 시골 가로수 길을 차타고 달리듯이 이열 종대의 얼굴들이 하나씩 뒤를 돌아보기 시작했으며 동시에 자기가 아님에 안도의 표정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뒤에서 선배들이 등을 치며 “얼른 나가, 너야~ 너!” 독촉했다.
나는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다. “안돼요! 저 안돼요! 절대 안돼요!”
당시만 해도 남들 앞에 서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던 숫기 없는 나였다.
그 때였다. 임화끄 선배가
“야이~ XX야~ 나 새내기 때는 빤스만 입고 춤췄어~ 이씨~”
다른 과는 이미 거의 다 나와 있었다. 도저히 버티기가 힘들었다. 나가기 전에 양말을 다잡고 발가락에 힘을 주고 동기들 사이로 걸어 나갔다. 선배들은 여학생도 등 떠밀어 내보내기 시작했다. 우리 일량년 통틀어 최고의 거구인 여학생이 X씹은 표정으로 성큼 성큼 나왔다. 키가 180가량이었고 몸집은 이영자만큼이나 컸다. 다른 과들은 제법 놀거나 나서기 좋아하는 일량년들이 나온 반면 우리과는 정말 튼튼한 학생들만 내보낸 것이다.
“자 지금부터! 남학생이 여학생을 업습니다!” 사회자가 소리쳤다. 강당에 있던 모든 시선이 나와 친구에게 집중되는 느낌이 들었다. 사회자는 그때서야 우리를 확인했다.
“아~~ 국사학과 커플 기대됩니다.” 사람들의 이목이 더욱 집중되었다. 내가 크게 심호흡 후 업으려고 하려는 그때였다. “내가 업을게” 여자 동기가 나에게 조용히 말했다.
“무슨 소리야! 남자가 업는 거자나”, “나 업을 수 있어”
“아니야. 내가 업을게”
“아 왜 그래! 창피하게... 남자가 업어야 된다고!”
그때였다. 여자 동기가 앉아서 업히라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깜짝 놀란 국사학과 동기들이 “와아~~~” 하는 함성을 질렀다. 당황한 나는 동기를 일으켜 세우려고 하였다. 그러나 부처님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 미칠 지경이었다. 우리 둘이서 아옹다옹한 모습에 사람들은 더 열광하였고 “여학생이 업어도 인정! 됩니다.” 사회자가 신나는 듯이 외쳤다. 다른 과를 보니 호리호리한 쌍쌍들이 이미 업고 있었다. 또,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었다.
결국 난 여자 동기 등에 업히게 되었고, 여자 동기가 일어서려는 순간 휘청하며 같이 엎어졌다. 강당은 또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고, 너무 창피하고 당황한 나는 또 다시 재빨리 등에 업혔다.
“국사학과! 국사학과! 아! 성공입니다!” 사회자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아뿔싸, 이번에는 내가 당황한 사이 힘주고 있던 양말 사이로 발가락이 삐죽 삐져나온 것이다. 이제 관객들이 손가락을 가리키며 웃기 시작했다. 오줌 묻은 바지가 조명을 받아 더욱 반짝거리는 듯 했다. 내 인생 최고의 망신살이 뻗친 날이었다. 우리 과 사람들은 왜 저 친구가 양말을 벗고 하루를 보냈는지 모조리 알게 되었고, 난 돌 지난 아가처럼 여자 동기 등 뒤에 고개를 푹 숙이며 업혀 있었다.
여자 동기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한 학기를 채 다니지 못하고 자퇴를 하였기 때문이다. 나 역시 3월의 학교생활은 창피하였다. 교정을 거닐다 웃는 친구들을 보면 꼭 나 때문인 것 같았다. 이렇게 새터의 추억은 끔찍하게 막을 내렸지만 금방 잊혀졌다. 왜냐면 3월의 강력한 대학문화가 나를 매료 시켰기 때문이었다.
제 2 화 끝.
첫댓글 오덕희~!!!! 필력이 금새 좋아졌구나. 등장 인물들도 다양해지고, 몰입이 잘 됨은 물론, 낄낄~ 거리며 몇 번 빵빵 터졌다. ㅎㅎㅎㅎㅎ~ 아주 재미지다. ㅎㅎㅎㅎㅎ~~~
오... 이번거 저도 그 시대의 드라마들을 떠올리며 봤어요 ㅋㅋㅋㅋ
1997 같았음.. ㅋㅋㅋㅋㅋㅋ 재밌어요!! 다음화는 언제 나오나요?
이거 정말 재미있는데요?ㅋㅋㅋ 기대되요 오빠
감사드립니다. 모두. 성원에 힘 입어 곧 독자와의 만남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