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학동에 경사 났네
조 흥 제
TV조선에서 선발한 2021년도 미스트롯 미에 선출된 12살 김다현양의 고향이 경남 하동 지리산 기슭에 있는 청학동이다. 아버지 김봉곤씨는 청학동 훈장이면서 한복에 망건을 쓰고 다니는 국악인이다. 형님도 고향에 사는 훈장이면서 국악도 한다. 올해 13살이 된 초등학교 6학년에 올라간 다현이가 언니(중학생으로 음악 수업 중)와 아버지와 함께 청학동 고향을 방문했다. 청학동 입구에 김다현 길이 새로 생겼다. 다현이가 미스트롯에 들어 전국적으로 이름이 알려졌기 때문에 하동군에서 부랴부랴 김다현길을 건설한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김다현의 금의환향을 기리는 음악회를 마련하여 언니 친구들이 와서 춤을 추고 다현이가 노래를 불렀다.
그 마을이 눈에 익다. 80년대 후반 애 엄마와 함께 1박2일 지리산 등산을 갔었다. 남원 광한루를 구경하고 백무동에 오니 작은 폭포의 연속이었다. 능선 정상에 있는 세석산장에서 잤다. 남녀가 따로 자게 되어 있어 부부라도 떨어져 자야 했다. 이튿날 지리산 대표적인 폭포인 쌍계사 불일폭포를 목표로 출발했다. 10km가 넘는 긴 지릉을 타고 와서 삼신봉에 올랐다.긴 지릉의 끝이어서다. 거기에 평상복을 입은 처녀가 앉아 있었다. 1300m 가까이 되는 봉우리에 평상복으로 올라온 아가씨에게 의심이 가서 말을 걸어 보니 서울 방배동이 집이라고 한다. 나는 상도동이어서 반가웠다. 그때가 87년 학생운동으로 주동자를 검거하던 때여서 피해 왔던가 보다. 청학동에 와 있는데 여기까진 뒷동산에 오르듯 오르기가 쉬워서 평상복으로 왔다고 했다. 내려가 보니 청학동이었다. 불일폭포(30~60m?)는 반대쪽에 있었다. 청학동 서당(書堂)이 유명하여 한번 가고 싶어하던 곳이어서 서운하진 않았다. 마을 가운데 번듯한 기와집이 있는데 청학동 서당이다. 문이 열려 있어 들어가 보니 부인들만 있었다. 글 쓰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훈장님 만나고 싶다고 했더니 한 부인이 나서서 밭에 일하러 갔다고 했다. 깨끗한 한복에 예의도 발랐다. 훈장의 부인인 것 같다. 그 마을 사람들은 하얀 한복을 입고 머리에는 흰 수건을 썼다. 일 하는 사람들도 똑 같은 복장을 하여 이곳 사람들은 왜 복장이 그런 차림이냐고 물었더니 종교(그곳에만 있는)를 믿기 때문이라고 했다. 부인은 청학동의 내력을 얘기해 주였다. 청학동은 우리나라 십승지(十勝地) 중 하나다. 십승지는 난리가 났을 때 몸을 피하는 피란 고장을 말한다. 조선왕조가 망할 때 이곳으로 피란민이 많이 몰려 왔다. 지리산 청학동은 깊은 산중에 있고 위에 넓은 고원(세석평전)이 있어 농사도 지을 수 있어서이다. 세석평전은(둘레 8km. 높이 1700m) 지금도 지리산 철죽제를 거기서 연다. 피란민들이 세석평전을 개간하여 농사를 지었으나 지대가 높아 결실이 안 되어 정착을 못하고 청학동에 화전을 일구어 터를 잡았다. 6‧25 사변 중에는 지리산에 공비가 숨어 있어 군 당국에선 여기 저기 흩어져 있던 화전민들을 관리하기 좋게 청학동으로 한데 모았다고 했다.
다현이가 공연을 마치고 그 마을에 사는 큰 아버지를 찾아갔다. 아버지는 총각때 어머니 말씀을 안들은 것이 가슴 아프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어머니는 천국 가셨는가 보다. 내가 청학동 서당을 방문하여 이야기를 나눈 훈장님 부인이 다현이 할머니 같았다. 이마가 넓은 얼굴이 다현이 닮았다.
그 동네에 사는 국악계의 원로인 김영림선생을 찾아갔다. 남편 이상해씨는 방해된다고 오지 말라고 했단다. 다현이 아버지는 김영림선생이 서울 있을 때 두 딸을 지리산에서 서울까지 손수 운전하여 데리고 가서 국악을 배우게 했다. 끝나면 다시 지리산으로 왔으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김영림씨의 말인즉 김다현양은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국악 신동이라고 했다. 오고 가는 길이 멀어서 힘들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다현이 자매는 ‘저희들도 죽겠어요.’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웃었다. 아버지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김영림씨는 청학동이 좋아 혼자 와서 조용히 국악에 매진하여 4시간 동안 계속하는 긴 완창을 준비한다고 했다.
다현이의 성공은 아버지의 열정이 만들어낸 결과다. 다현이 아버지는 딸을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어 한국의 위상을 널리 알리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다현이는 아버지의 꿈을 이루어 드리기 위하여 그 작은 몸으로 얼마나 뛰어야 할까.
아버지의 꿈과 자녀의 꿈이 같을 때는 그 꿈이 이루어질 확률이 높다. 하지만 꿈이 다를 때는 부모가 아무리 닥달해도 안 된다. 다현이는 어떤 경우일까? 처음에는 아버지가 시켜서 억지로 했지만 자신의 인기가 날로 높아져 방송에까지 나오자 아버지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신도 하고자 하는 의욕이 생겼으리라고 본다. 그래서 방송에 나오는 노래를 부를 때마다 목소리가 커지고 발을 뒤로 반짝반짝 들면서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는 독특한 몸짓을 한다.
다현이와 아버지와는 뜻이 맞는 것이다. 아버지도 같은 음악계에 적을 두고 적극적으로 밀어주니 다현이의 앞날은 더 넓어지리라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