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상류층이 모여 파티를 하는 한 호텔의 화려한 홀이 여자의 높은 목소리에 울렸다. 핑크빛 귀여운 드레스를 차려입고 작고 흰 계란형 얼굴에 윤기 흐르는 흑단 같은 머리칼을 가진 소녀는 방긋 웃었다. 물감으로 예쁘게 칠한 듯한 소녀의 입술이 건조했다.
“정말이지 좋으시겠어요.”
여자들이 소녀를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여자들의 미묘한 눈빛은 소녀의 어머니로 보이는 듯한 여자에게로 쏠렸다.
“오호호. 좋긴요~”
잔뜩 생색을 내며 손으로 진한 입술을 가리는 여자. 소녀에게 비할 만큼은 아니지만 여자 또한 꽤나 아름다운 미모를 소유하고 있었다. 풍기는 분위기가 아직은 철이 덜 든 어린 여자였다.
“아직 어린데도 이렇게 예쁜데 크면 얼마나 아름답겠어요. 아주 예쁜 숙녀가 될꺼에요.”
소녀를 둘러싸고 여자들이 모두들 한마디씩 거들었다. 소녀의 어머니인 여자는 흐뭇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이제는 노골적으로 짙게 화장한 얼굴 위로 진한 웃음을 그리었다.
소녀의 얼굴은 웃음도 표정도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소녀의 방. 모든 가구들과 벽지. 분위기 또한 공주님의 방을 연상케 했다.
“오늘도 잘 했다. 완벽했어.”
마녀 같은 웃음소리를 만들어내며 소녀에게로 다가온다. 여자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움이 가득찬, 약간은 광기 어린 표정이 어려있었다.
소녀의 친 엄마 서경아….
“넌 내꺼야. 알겠니?”
경아의 손에 붉게 칠해진 긴 손톱이 돋보이는 가느다란 손으로 소녀의 뺨을 쓰다듬었다. 잠시 동안 정적이 흐르더니
-찰싹.
하는 마찰음과 함께 경아는 소녀의 뺨을 내리쳤다. 그러자 소녀의 몸이 툭, 침대위로 고꾸라졌다. 붉게 상기된 한쪽 뺨만이 지금 상황을 말해주고 있었다. 소녀의 눈빛은 여전히 탁했다.
“오늘 처럼 그런 인공적인 웃음 질색이야.”
잔뜩 찡그린 표정으로 소녀의 옆에 사뿐히 앉아 속삭였다. 금세 표정을 풀고 온화한 엄마의 모습으로 돌아간 듯 했다.
“잘못했어요.”
소녀의 목소리가 경아의 귀에 들어가지도 못할 만큼 작게 자신의 입술 주변을 맴돌았다.
“언제나 말하지만 난 너를 낳는다고 결혼식도 올리지 못하고 방송활동도 접어야 했어. 넌 내 인형이야. 알겠지?”
경아의 말에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7살밖에 먹지 않은 작은 소녀에게 있어서 이 이야기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스토리였다.
엄마가 시키는 대로. 왜냐하면 엄마는 날 낳아주셨으니까.
“여보. 오셨어요?”
곧은 자세와 적당히 부드럽게 들려오는 목소리. 우아한 몸짓하나 하나에 신경을 쓴다. 기품이 넘치는 부잣집 안주인 자리는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였다.
“아빠! 다녀오셨어요~”
소녀가 방긋 웃으며 말한다. 한층 밝게 말하는 아이의 얼굴에 웃음이 걸려있었다.
“우리 하나~ 잘 놀았니?”
“네.”
“엄마 말씀은 잘 들었고?”
“그럼요~”
하나라고 불려 진 소녀는 경아 뒤에 몸을 숨겼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아빠라는 사람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눠야만 했을 것이다. 소녀는 꽤나 영악했다.
“애가 이렇게 부끄럼이 많아서야 원.”
“아직 어린애잖아요.”
넓은 방안에서 경아가 양복과 가방을 들어주며 말했다. 그리고 한 번의 포옹이 오가고
“고생하네.”
라는 남편의 말에 경아는 행복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더 한 고생이라도 하고 싶었다. 다시 연기를 시작하고 싶었다. 젊었을 적 잘 나가는 연기자였을 때. 그 어렸을 때에는 부잣집에 시집가기 위해 연기를 했고 치장을 했었다. 그녀의 소원대로 결혼에 성공했고 시댁과 마찬가지로 남편도, 그리고 자신 또한 연기를 그만둘 것을 바랬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아이까지 낳자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녀는 그 우울증을 연기에 대한 새로운 꿈으로 이겨냈고 그 꿈을 아이에게 발산했다. 그녀는 아이를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녀의 인형으로 만들어나갔다.
지금 그녀는 지금보다 더 화려한 세계를 동경하고 있었다. 지금 다시 그 세계로 돌아간다면 썩어빠진 밑바닥부터 시작하지 않아도 될 텐데. 하는 아쉬운 생각이 그녀를 유혹했다.
“저기…….”
“당신. 요즘 헛된 꿈꾸는 것 같아서 말하는데 우리집안이 어떤 집인지 잘 알겠지?”
“예. 꿈은 꿈이에요.”
젊은 시절부터 오만방자하던 경아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무서운 사람은 그의 남편 ‘최진호’였다.
‘하나 공주의 방’ 이라는 분홍색 레이스가 달린 예쁜 푯말이 달린 문틈으로 여자의 신경질 적인 목소리가 비집고 흘러나왔다.
“엄마가 어떻게 말하랬지?”
“밝은 아이처럼. 해맑게 웃으면서…….”
“방금 네가 한건 가식적인 웃음이란 말이야! 그런 건 악역이라고!”
붉은 색 긴 손톱을 물어뜯으며 소리쳤다. 하나의 침대에 걸터앉아 앞에 세워둔 하나를 노려본다. 경아는 자신의 모든 것을 인형에게 가르쳐 주고 싶었다. 그리고 자신과 같게 만들고 싶었다. 하나는 경아의 분신이자 인형 이였으니까…….
“엄마. 사랑해요. 헤에……. 안녕히 주무세요. 하나는 너무 졸려요.”
하나가 엄마. 경아의 다리를 감싸 안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졸리다는 듯이 눈가를 문질렀다. 오늘 이 한마디를 가지고 몇 십 분을 경아는 하나에게 소리 지르고 화내고 짜증을 냈었다.
하나를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고 경아가 물었다.
“그래. 하나는 뭐라고?”
“엄마 인형.”
“왜?”
“엄마가 날 낳아줬으니까.”
그렇게 하나의 방의 불은 꺼졌고 경아는 이층의 하나 방이 아닌 일층의 안방으로 향했다. 오늘 밤은 남편에게 잘 보여서 전부터 점찍어 두던 빌딩을 자신의 명의로 돌려주라고 말해봐야겠다고 생각한 경아는 마를린 먼로 그녀가 쓰던 그 향수 ‘샤넬 NO.5’의 향기를 몸에 뿌렸다.
“오늘 무대의 역은 마를린 먼로.”
“사모님. 오늘이 전에 말한 그 날인데요.”
경아에게 몇 번을 망설이다가 겨우 겨우 말을 꺼낸 가정부였다. 신경질 적이거나 온화하거나 두 가지의 성격도 문제기도 했지만 워낙 감정기복이 심한 여자라 가정부는 몸을 낮추고 나춰서 겨우 비위를 맞춰가며 일을 하고 있었다.
“아. 그래요? 내일 아줌마 딸이 온 다구요?”
“예. 집안일은 잘 하는 아이니까……. 하루 종일도 아니고 몇 시간이니. 별일은 없을 겁니다.”
거실에 우아하게 앉아 향기로운 커피를 마시며 독서를 하고 있던 경아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건성으로 대답했다. 애초에 집안일은 관심 밖이 였으니.
“알았어. 알았어. 참는다고 참아! 응. 어린애 간식 챙겨주고 뭐 할 것도 없다며. 그 시간대엔.”
“걱정 되니까 그렇지. 혹시나 실수하지 말고. 오늘은 손님도 없을 꺼야. 그냥 3시간만 버텨.”
“얼른 가. 아빠가 엄마 보고 싶어 하셔. 버렸으면 다시 줍지 라도 말지 왜 찾아와.”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다. 얼른 다녀올게. 부탁한다.”
집을 나서는 경아네 집의 일을 돕는 가정부는 낯설은 옷차림과 잘 하지 않는 화장, 그리고 오래되어 기스도 많이 났지만 결혼반지라고 나눠꼈던 보석이 박힌 금반지를 끼었다. 표정은 상기되어 있었다.
아줌마도 여자라는 말이 절로 떠올려진다. 바람나 외국으로 도망갔다던 남편이 8년 만에 찾아온 것이다. 몇 주 전에 연락을 받고 오늘로 약속을 정하고 거기를 향해 나아가는 그녀의 발걸음이 설레는 만큼 무거웠다. 8년 동안 얼마나 힘들었는데……. 딸내미 하나 오갈 데 없는 몸둥이 하나. 처음 몇 년은 피 말리는 시간 이였었다.
“나 같으면 절대 다시 안 만나.”
그녀의 딸, 수연이 총총 걸음으로 걸어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엄마의 일터. 유은그룹의 사장 내외가 살고 있는 집으로 향했다.
열려진 문을 살짝 밀고 들어가 정원을 지나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아, 안녕하세요.”
“음? 아 아줌마 딸? 이렇게나 큰 딸이 있었네.”
대학생인 수연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경아는 한번 씩 웃었다. 순진하게 생긴 얼굴이 꽤나 마음에 들었는지 그녀에게 거실 구석구석에 놓여 진 자신의 사진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 사진은 나 연기 처음 했을 때 사진이구. 이건 우리 이쁜 딸 낳고 찍은 건데……. 붓기가 덜 빠졌을 때 사진이라 마음에 들진 않아.”
“그래도 예쁘신데요.”
“정말? 좋아라.”
액자를 살짝 돌려 놨던 그 사진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경아는 한손에는 커피가 담겨진 머그잔을 들고 여기저기 액자가 놓여 진 곳을 향하며 천천히 기품있는 목소리와 자태를 유지하며 사진을 설명하기에 바빴다. 탁자에 놓여있는 경아의 유일한 독서거리 연예잡지가 경박하게 펼쳐져 있었다.
“음. 나는 오늘 쇼핑 약속이 있어서요. 우리 딸 간식만 좀 챙겨줘요. 지금 방에서 책 읽고 있을 거 에요.”
“예. 다녀오세요.”
값비싼 옷들임이 분명했지만 경아에게는 모두 조금은 어색한 듯 했다. 경아와는 맞지 않는 너무나 비싼 옷들임은 틀림없었다.
“냉장고에 치즈케이크하고 우유 있으니까 그냥 빼서 주고 먹는 거 봐주랬지.”
자신의 엄마가 넣어 수연을 걱정하여 케이크를 적당히 잘라 냉장고에 넣어 뒀었다. 찬 우유를 컵에 따라 접시 옆에 올려두고 딸기가 달린 포크를 접시 옆에 살포시 놓고 쟁반을 들고 2층의 소녀, 하나의 방으로 향했다.
“간식 먹자.”
문을 열며 혼잣말처럼 중얼 거렸지만 수연의 말에 하나는 열려진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손에 들려진 치즈케이크에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하나가 좋아하는 케이크였다. 부드러운 맛에 하나는 케이크 하면 치즈케이크만을 찾았었다. 더 간단한 이유를 찾자면 자신의 엄마. 서경아가 치즈케이크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하나 또한 치즈케이크를 좋아해야 했고 그리고 좋아했다. 하나에게 엄마란 존재는 절대적인 사람 이였으니까.
“언니. 언니는 엄마가 좋아요?”
케이크를 반쯤 먹어가던 하나가 대뜸 물었다. 아무 말 없이 먹기만 하더니 수연을 향해 또박 또박 물어보고 있었다. ‘엄마가 좋아요?’
“좋을 때도 있고 싫을 때도 있는데. 엄마는 엄마니까 좋아. 왜? 하나는 엄마가 싫어?”
수연을 방안에 들어올 때 걸려 있던 십자수로 손수 만든 것 같은 푯말 안에 쓰여 있던 글을 보고 아이의 이름을 알 수 있었다. 방안은 매우 넓었고 그 안에 놓여 져 있는 고급스런 목재 테이블 위에서 간식을 먹이고 있었다.
“전 엄마가 무서워요. 엄마랑 떨어져 있으면 막 겁나요.”
“왜?”
“엄마가 없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안 가르쳐 줬어요. NG는 있어서는 안 돼는 거래요.”
방 안의 창으로 해가 저물며 수연이 좋아하는 노랑 색 계통의 빛이 분홍색 공주님 방으로 스며들었다.
“NG? 근데 하나 손목하고 여기. 여기 입술에 상처는 뭐니? 친구랑 싸웠어?”
“하나는 친구 없어요. 엄마한테 맞았어요. NG 내버려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 수연은 7살 먹은 아이의 표정이라고 볼 수 없을 만큼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는 하나를 보며 왠지 모르게 두근거림과 불안함을 느꼈다. 이 집 사모님이 몇 년 전에는 시대를 주름 잡던 미모의 연기자라고 들었었다. 그것과 무슨 관련 있는 것인지 수연의 머리가 복잡해 져 왔다.
유아교육학과를 전공하는 수연은 절대로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심리학시간 때 배운 것을 드디어 써먹을 때가 온 것인가. 하며 쓴 웃음을 지어보였지만 쓴 웃음은 역시 씁쓸했다.
“엄마가 때린 거야? 하나가 무슨 잘 못 했는데?”
“하라는 대로 안 해서.”
하나가 케이크를 천천히 먹으면서 대화는 오갔다.
“뭘?”
“연기.”
“응? 연기?”
수연이 되 묻자 고개를 끄덕인다. 예쁜 소녀가 무표정의 표정에서 갑자기 환하게 웃는다.
“이런 거.”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간다. 환하게 웃었을 때는 정말 귀여운 아이였고 지금은 마치 인형 같았다. 흰 피부와 살 오른 볼 살이며 생머리의 머리칼. 눈동자가 정말로 맑으면서도 검었다.
“하나는 연기 잘 하는 구나.”
“응. 맞기 싫어서 열심히 했어.”
빈 컵과 빈 접시를 들고 나오는 수연의 표정이 복잡했다. 묘한 분위기의 사모님과 뭔가 이상한 그녀의 딸. 혼자 별세계까지 향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가 결국 한 가지 결론을 얻어었다.
“엄마한테 물어봐야겠다.”
수연은 자신이 상상했던 어떤 결론보다도 현명한 생각 이였다며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수연의 핸드폰이 진동으로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한번으로 멈추지 않는 것이 전화인 것 같았다. 슬라이드를 올리고 말하기 시작한다.
“엄마. 왜 이렇게 늦어.”
“다 왔어. 별 일 없었지?”
“엄마야 말로 별 일 없었지?”
전화가 길어지려고 할 때쯤 2층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빨리 와. 있다가 집 같이 가자.”
수연은 재빨리 전화기를 닫고 청바지 안으로 비집어 넣고 2층을 향해 달려갔다. 하나의 방문을 열어 재끼고.
“…하나야! 지금 뭐하는 거니?”
멀쩡히 바닥에 깔려 있던 카페트를 들어 올려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단정하던 머리카락과 옷이 먼지와 주름으로 지저분해보였다. 간식을 먹고 다시 책을 읽겠다며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동화책은 ‘신데렐라’라며 자랑까지 하는 하나를 보고 주방으로 내려간 수연은 당황 그 자체였다.
하나 옆으로 펼쳐진 동화책. 책 안의 그림과 같은 상황을 하나는 만들어 내고 있었다. 저 그림은 분명 ‘신데렐라’
“새언니. 저도 데려가 줘요. 성에서 하는 멋진 파티에…….”
하나는 분명 수연을 향해 말한 것 이였다. 수연은 기겁했으며 하나에게 달려가 몸을 흔들었다.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지만 아는 지식과 실제로 닥쳤을 때의 행동은 다소 차이가 있었다.
“하나야. 정신 차려! 이러면 안 돼! 연기는 연기일 뿐이야. 그치? 연기는 무대에서 하는 거지?”
수연이 달래보지만 하나는 여전히 그녀를 향해 ‘새언니’라고 불렀다.
이제 더 이상 창으로 노랑색 계통의 햇빛이 비추지 않았다. 어둠이 내려앉은 듯 했다. 방 안도 어두웠고 하나의 마음도 어두웠으며 수연의 마음 또한 그런 듯 했다. 서로 다른 어두움을 가지고 있었다.
“새언니. 무슨 소리에요. 아까 치즈케이크 먹은 것도 연기에 일부였어요. 다 짜여 진 거 에요. 제발 부탁이에요. 저도 파티에…….”
말끝을 흐리더니 큰 눈동자에 눈물이 그렁그렁 달리기 시작했다. 후둑 후둑 카페트가 없는 바닥에 떨어져 흔적을 남기는 하나의 눈물 자국이 선명했다.
“하나야~ 어서 나와 예쁜 엄마에게 인사하렴.”
일층에서 들려오는 경아의 목소리에 수연은 당황했다. 자신이 이렇게 만든 것도 아닌데 무서웠다. 눈 꼬리가 올라간 것만큼 사나워 보이는 사모님 이였다.
“……. 하나야. 너 좀 맞을래? 엄마가 인사하라고 안했니? 연기는 감독이 큐 싸인 주는 순간 바로…….”
2층의 하나의 방 앞에서 경아의 목소리가 점차 줄어들어 갈 수 밖에 없었다. 방 안에는 자신의 딸인 최하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였고 간식을 챙겨주고 집을 봐주다가 집에 돌아간 줄만 알았던 가정부의 딸이 하나의 방에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앞에 털석 주저앉아 있는 수연을 두고 방안을 드려다 보았다.
“하나야 뭐하니?”
“연기 중이에요. 엄마…….”
수연이 흔들어도 꿈적도 않던 하나가 글썽이는 눈으로 경아를 쳐다보았다. 어둠속에서 하나의 눈물은 반짝였고 지저분하고 단정치 못한 머리카락과 옷이 현재 하나의 역할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하나가 제일 좋아하는 책은 ‘신데렐라’
“……. 아니. 틀렸어. 하나 넌 어떻게 제대로 하는 게 없니.”
실망한 듯한 목소리. 하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수연은 사모님과 하나를 번갈아 쳐다보며 이 상황을 이해하려고 무던히 노력했으나 모두다 허사였다. 정말 이해 할 수 없는 가족, 아니 모녀였다.
“하나는 뭐라고?”
“엄마 인형.”
“왜?”
“엄마가 날 낳아줬으니까.”
반사적으로 오가는 물음과 대답에 경아는 한번 웃었다.
“넌 내 인형이야. 그래서 넌 내가 시키는 것만 해야 해.”
“…….”
“알겠니? 누가 이런 짓 하랬어?”
“엄마. 난 신데렐라가 좋아.”
“누가 이런 짓 하랬어! 말 해!”
사모님의 다그침에 하나는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언니가 같이 하자고 했어. 난 신데렐라. 언니는 못된 새언니.”
하나는 역시 영악했다.
“나 좀 보고 가요. 하나야. 이제 엄마한테 인사해야지.”
“네. 엄마~ 다녀오셨어요.”
수연에게 노려보며 말을 한 뒤 경아는 하나를 향해 말하며 볼에 뽀뽀하라는 듯이 볼을 내밀었다. 하나는 ‘쪽’소리가 나게끔 귀엽게 뽀뽀를 했다.
문 앞에서는 나름대로 평화로워 보이는 모녀와 수연이 있었고 문 뒤로 방 안은 어둠에 싸여져 널부러진 동화책 ‘신데렐라’와 카페트가 휭 해보였다.
수연은 벌렁거리는 심장을 다잡았다. 강하게 나가기로 했다. 저 아줌마에게 기가 눌려 있으면 할 말도 못하고 되려 배로 당하게 생겼으니……. 정신 바짝 차리기로 했다. 그리고 한 참 전에 들어오라던 서재로 발을 붙이게 되었다.
“너! 뭐 하는…….”
“애한테 무슨 짓이세요!”
경아의 말끝을 훔쳐 수연이 당당하게 소리 질렀다.
학대 받는 아이들도 참 여러 종류의 아이들을 봐왔지만 이런 경우는 난 생 처음 듣고 처음 봤다. 학대 받는 아이를 실제로 본 것은 이번이 처음 이였지만 텔레비전에서 봐오던 것과 대학 수업에서 들어오던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머리로 듣는 것과 가슴으로 듣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주 어렸을 때. 그때부터죠?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하겠어요!”
“……! 시끄러워! 상관하지 마! 신경 꺼. 신경이 자꾸 쓰이겠지. 얼마면 그 신경 꺼버릴 수 있겠니? 내 인형가지고 헛소리 하지 마.”
“헛소리? 이 이야기면 아줌마 다시 티비나 올 수 있어요. 신문 타고 연애 잡지에도 실리겠네. 뉴스 타고! 뉴스에서 연기나 해보시지!”
“뭐, 뭐?”
경아는 기가 막힌다는 듯이 뒷목을 잡고 휘청였고 수연은 자신의 말만 하고 서재실의 문을 신경질 적으로 닫고 현관 쪽으로 나왔다. 현관에서 올려다 보이는 2층. 2층에서 마주친 소녀는 수연을 향해 웃으며 손 흔들었다.
갑갑한 마음을 안고 그 집 대문을 향해 나가간다. 대문 앞에서 보이는 자신의 ‘엄마’의 모습에 갑자기 짜증이 치밀어 온다.
“엄마. 가자.”
“저녁 해야 해. 먼저 가 있어.”
“사모님이 같이 가랬어! 그냥 가자면 가!”
“아, 그랬어? 왜 화를 내고 그러니. 가자, 가.”
수연이 자신의 엄마와 함께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동안 내내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다. 수연은 오늘 있었던 충격적인 일을 어떻게 세상에 폭로해야 할지 생각하자니 머리가 아파왔다. 아무리 사태가 심각해도 수연의 손에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였고 더구나 상대는 유은그룹이였다.
“다 필요 없어. 유은그룹에 대수야? 애가 그 지경인데!”
“뭔 소리야.”
어느세 집에 도착한 모녀는 각자 씻고 함께 밥을 먹었으며 텔레비전 앞에서 과일을 두고 앉아 있었다. 오늘따라 시시껄렁한 개그프로그램 밖에 하지 않는다. 수연이 무심코 달력을 보니 오늘은 일요일이다.
“그나저나 어땠어? 그 남자가 뭐래?”
“그 남자가 뭐야. 말 똑바로 해.”
“…아빠가 뭐라고 했어?”
바보상자 텔레비전은 분위기가 심각한 줄도 모르고 웃고 떠드느라 정신이 없다.
“별 말 안했어. 신경 쓰지 말고. 그냥 한국 왔다가 미안해서……. 그래서”
“하!”
기가 막힌 듯이 한숨이 터져 나온다. 수연의 엄마의 얼굴이 근심에 차있는 것은 수연이 엄마를 걱정한답시고 그래도 자신의 아버지를 미워하는 그것 때문 이겠거니.
수연은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엄마는 닦달해야 그나마 조금 진실을 말 해 줄 것이란 것을. 하지만 지금은 물어볼 기운, 정신도 없었다. 엄마를 생각하고 돈을 생각하고 사회적으로 자신이 힘들어질 수도 있다는 것도 생각해봤지만 절대로 그저 쥐어주는 돈만 받고 끝낼 일이 아니였다.
자신의 딸을 인형이라고 말했다. 장난감인 듯이……. 분명히 그 사모님, 하나의 엄마에게 무슨 정신적인 질병이 있을 것이다.
“엄마. 일 봐주는 집말이야. 어때?”
“그냥 그러지 뭐. 성격이 그래서 그렇지 돈도 많이 주고 별로 집안일에는 신경도 안 쓰고 나름대로 편해.”
“그런 거 말고. 사모님하고 애기하고 사이 좋아?”
“사모님이 엄하게 꾸짖는 거 빼면. 애가 워낙 내성적이라, 근데 왜?”
과일 입에 물으면서 수연이 고개를 저었다.
“엄마. 나 좀 말려봐.”
수연의 엄마가 뜬금없는 말을 하는 딸을 처다 보며 머리를 툭 쳤다.
“정신 차려 이것아. 뭘 말려. 거실 정리하고 들어가. 엄마는 잘련다~”
수연은 머리로 열심히 말리며 몸으로 컴퓨터를 켰으며 발로 손을 말렸으나 손은 자세하게도 ‘한국 복지재단아동학대신고상담센터’홈페이지에 들어가 오늘 봤던 느꼈던 감정과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적어 내려가고 있었다.
“오늘 밤이 지나면 터지겠지. 내가 유은그룹에 끌려가던지. 유은그룹 사모님이 경찰서에 끌려가던지.”
수연은 생각했다. 자신이 어쩌면 생각했던 것보다도 독한 아이일 거라고…….
“아동학대에 신고가 들어온 이상 어쩔 수 없습니다. 일단 아이는 저희 쪽에 맡겨 두시고 경찰서에 다녀오셔야 될 것 같습니다.”
“내, 내가! 누군지 알아? 당신들. 각자 얼마씩이면 입 다물래? 우리 딸은 문제없어! 이 일이 남편한테 들어가면 안 돼!”
“유은그룹 사장님은 이미 알고 계십니다. 연락 취하고 자택으로 올 수 있었던 겁니다.”
여자는 입을 다시 꾹 다물었다. 경아가 소리치고 밀고 당기고 여자를 괴롭혔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여자는 목까지 차오른 말을 꺼내기가 미안해졌다. 비참하게 만들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사장님도 어느 정도 낌새가 이상했다고 하셨습니다.’
경아가 소란을 피울 때마다 혀끝까지 올라온 말을 참는 여자도 힘들어 보였다.
하나는 데리러 온 사람들과 함께 어디론가 가버렸고 경아는 응접실에 앉아 경박하게 펼쳐져 있는 연예잡지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사모님도 가셔야 합니다. 아동학대가 사실로 들어나면 뉴스에 나가는 건 못 막을 것 같네요.”
“다 필요 없어. 연기도 이 자리도 어떻게 만든 건데.”
경아의 눈동자 안에는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잡지의 글자만이 비쳐지고 있었다.
‘톱스타 서경아씨의 결혼생활. 인형 같은 딸과 함께한 데이트!’
“한밤의 연예 데이트입니다. 한때 최고의 스타이셨죠. 유은그룹 안주인 이였던 서경아씨가 지난 7년 동안 자신의 딸을 학대 해왔던 것으로 밝혀져 화재입니다. 보시는 화면과 같이 아이는 현재 아동학대 센터에서 맡겨져 보호와 치료를 받고 있으며 서경아씨는 연기가 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외치면서 정신분열 증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에 유은그룹 측에서는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것에 사죄를 표하고 아동학대 센터, 아동학대를 당한 아이들의 치료를 위해 많은 돈은 기부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습니다.”
TV에서는 유명 연예인 출신인 유은그룹 사모님이 벌인 지독한 일을 떠들어 대기 바빴다. 수연의 엄마는 다른 집에 일을 다니기 시작했고 수연에 손에는 신고자에게 소정의 포상금이 쥐어져 있었다.
“이런 걸 바란 게 아닌데…….”
수연은 지금 이렇게 아이를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시켜 놓고 치료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컸을 때 많은 상처를 받을 것이 틀림없었다. 수연은 현관에서 보이는 2층. 하나의 방에서 하나가 손을 흔들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웃고 있었는데…….
지금 텔레비전과 뉴스, 잡지에서 시끄러운 이 일도 2주가 지나면 잠잠해 질 것이고 또 세상은 굴러갈 것이다. 더럽고 추접한 면과 깨끗하고 순수한 면이 맞물려져 돌고 돌아갈 것이 분명했다.
-끝
“오랜…만이네.”
“…그러네. 오랜만 맞네. 오랜만이네.”
중년의 남자와 여자가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남자는 뜨거운 커피를 앞에 두었고 여자는 보기만 해도 차가워 보이는 오랜지 주스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손가락에 걸린 초라한 반지를 감춰보려고 하지만 투박하기까지 한 반지와 손가락이 숨긴다고 가려지진 않았다.
주책이지. 뭘 바라고 반지를 끼고 나온 건지…….
“잘 지냈지?”
한 참 동안 침묵이 그들을 짓누르고 있다가 남자가 말을 꺼냈다.
“잘 지냈어. 지독하게 힘들었을 때도 잘 살았어.”
“……미안.”
여자가 파마한 짧은 머리를 괜시리 만져 본다. 그가 떠나갔을 때는 긴 생머리였었는데……. 벌써 이렇게 세월이 흘렀구나. 하고 허탈한 웃음을 짓는다. 세월이 8년이 지났다. 아빠가 보고 싶다고 조르던 철없던 딸은 벌써 성인이다. 이번 년에는 투표하러 딸과 함께 갔던 여자였다.
“이렇게 찾아온 것도 미안하고. 염치없이 이런 말해서도 미안해. 나 한번만 살려줘.”
“살려줘? 어디 아파?”
남자는 뭔가 마음부터가 급한 듯 했다.
“혹시 가진 돈…있어? 나 좀 빌려줘. 아파. 돈이 필요한데 결국 당신한테까지 찾아와버렸어.”
“누가 아픈데…….”
“마누라. 미안……. 내가 몹쓸 놈 인거 아는데. 미안하다. 정말…….”
“에라이. 나쁜 놈아. 내가니 마누라다! 어떻게 나 버리고 다른 년하고 바람나서 이혼해주라고 그렇게 사람 속을 뒤집어 놓더니 이제는 그년 병원비까지 주라는 거냐?”
여자는 화장이 지워지는 것도 모르고 눈물이 홍수가 난거처럼 주륵 주륵 흘러 내렸다.
“미안하다. 내가 죽일 놈이지…….”
“찾아 오지라도 말지. 혼자 만든 내 서방을 좀이라도 멋진 놈으로 만들어서 그렇게 여길 수 있게.”
“…….”
남자가 고개를 숙인다. 여자는 손가락에 걸린 반지가 이제는 부끄러웠는지 빼버려 남자를 향해 던지려다가 화를 누그려트리고 반지를 가방 안에 집어넣었다.
“얼마나.”
“응?”
“돈 말이야. 사람은 살려야 할 꺼 아냐.”
“고마워. 정말 고마워…….”
“대신 수연이 한테는 비밀로 해. 당신 딸이잖아. 수연이도 아무리 싫다고 해도 당신 자식인게 변하나.”
남자가 여자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눈물 콧물을 흘리며 ‘고마워. 고맙네, 정말 내 꼭 값을 거야. 고마워…….’라고 반복하며 중얼거리는 듯이 감정이 격한 듯이…
“…어떻게 하나도 안변했니.”
여자는 남자의 손을 억지로 빼내고 창밖으로 먼 곳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찾아오는 허무함은 눈물로 쏟아 버리려는지 눈물은 멈추지 않고 흘렀다.
인형 같이 예쁜 아이에게 말이 통하지 않았다. 잠깐이라도 눈을 떼면 어떤 상황을 만들어 -아이는 연출이라고 말한다.- 연기를 하는 것 이였다. 아이는 자신의 아버지가 설립한 ‘아동학대 치료 원’에서도 가장 골치 덩어리였다. 자학을 하는 것도 아니 였고 어떤 방법으로 치료를 해야 할지 감이 전혀 잡히지 않는 인형 같은 소녀였다.
“엄마 보고 싶어요. 엄마는 다 아는데…….”
소녀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리고 시작되는 비련의 여주인공의 연기.
“우리 그냥 사랑하게 해주세요. 엄마 보고 싶어요. 만나게 해줘요.”
7살짜리 소녀의 절박한 애원 이였다. 눈물이 흘렀고 절규했다. 소녀는 일단 독방처분이 내려졌다.
“악역이라 마음 아프긴 하지만. 악역만이 진정한 연기를 선보일 수 있는 거 같아서 좋아요.”
“음, 앞으로 어떤 연기자가 되고 싶으세요?”
“‘백향유인’ 이라고 들어보셨어요? 한자로 백가지 향기를 가진 사람이라는 뜻인데요. 저는 여러 가지 향기를 연기하는 다양한 역을 맡아서 여러분들께 보여드리고 싶어요.”
“정말 멋있네요. 앞으로 꼭 그런 멋진 활동 부탁드리구요. 여기서 인사드릴께요. 한밤의 연예 데이트 오늘 데이트도 성공입니다!”
“상반기 핫이슈 탑 텐! 제 4위. 톱스타 서경아씨 아동학대 사건이네요. 현재 서경아씨는 병원치료로 많이 건강을 회복하셨다고 하는데요. 서경아씨는 연기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계신데요. 빨리 건강 회복하셔서 안방극장에서 뵀으면 좋겠네요.”
“지난 아동학대 사건으로 잠시 휘청 이던 유은그룹이 오늘 오후. 아동학대에 대해 연구하고 치료에 힘쓰겠다며 ‘아동학대 치료 원’을 설립하여 많은 학대 받은 아이들의 치료에 힘쓰겠다고 밝혔습니다. 최 사장은 지금까지 아동학대 센터에 많은 돈을 기부해 사회에 환원하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첫댓글 오랜만에 올라온 완결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