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비밀정원 '천리포수목원'
밀러 혹은 민병갈이 40년 가꾼 꿈결 같은 숲
오른쪽으로 휜 자갈길을 따라 걷다가 갑자기 "와" 하는 탄성이 입에서 새 나왔다. 커다란 호수. 호수 주변으로 색도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인 나무와 풀과 꽃이 만발하다. 오래전부터 이곳에 있었고,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듯 자연스러운 풍광. 신(神)이 숨겨둔 정원에 실수로 걸어 들어간 기분이다. 미국인 칼 밀러(Miller)로 태어났지만 한국인 민병갈(閔丙 )로 죽은 사내. 민병갈(1921~2002)은 24세에 미군 장교로 한국땅을 밟았다가 순박한 인심과 수려한 산천에 반해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2002년까지 57년을 살았다. 1962년 한국은행 동료를 따라 만리포해수욕장에 왔다가 딸 혼수비용 걱정하는 노인을 돕는 셈치고 사들인 6000평 땅이란 '씨앗'이 18만평 수목원이란 '거목'으로 자랐다. 국제수목학회가 2000년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인증했다. 1970년부터 심기 시작한 국내외 나무·풀·꽃이 1만5000여종. 목련류 400여종과 호랑가시나무류 370여종, 동백나무류 380여종, 단풍류 200여종 등은 국제적인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천리포수목원 수생식물원. 설립자 민병갈씨가 물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만든 인공호수다.
천리포수목원 해안전망대. 나란히 앉아 서해 낙조를 감상하기 알맞은 자리다.
후원회원에게만 관람이 허용됐던 천리포수목원이 지난 3월, 40여년 만에 일반인에게 공개됐다. 평일 평균 1000여명, 주말과 휴일 2000여명이 찾을 만큼 폭발적 인기다. 바닷바람으로부터 수목원을 보호하기 위해 심은 곰솔숲을 지나면 탐방코스가 셋 나온다. 일반적으로 A코스는 50분, B코스 1시간, C코스 1시간20분쯤 걸린다. 가장 긴 C코스를 골랐다. 각종 동백나무를 모은 동백원이 왼쪽, 연못이 오른쪽으로 펼쳐진다. 우산살처럼 아래로 퍼진 나뭇가지에 잎이 달리면 안에 사람이 들어가도 바깥에서 보이지 않는다. 나무 앞 안내판은 '젊은 연인들이 이따금 나무의 안쪽으로 헤집고 들어가 사랑의 밀어를 나누는 곳'이라고 설명한다.
천리포수목원 우드랜드(위). 청설모(아래).
하지만 천리포수목원의 대표 수종은 목련이다. 목련이라고 하면 흔히 4월에 꽃을 피운다고 알지만, 수목원에는 세계 각지에서 가져다 심은 목련 400여종이 일년 내내 돌아가며 꽃을 피운다. 천리포수목원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것도 목련 때문이다. 민병갈은 한국 재래종인 산목련을 특히 좋아했다. 천리포수목원의 심벌도 산목련이다. 물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조성한 인공연못이다. 수련으로 뒤덮인 연못 주변으로 꽃창포와 수선화 따위의 다양한 습지 식물이 보인다. 오솔길을 걸어 매표소가 있는 출입구로 나가려는데, 연못 어딘가에서 "텀벙" 소리가 났다. 개구리일까. 민병갈은 개구리를 무척 좋아했다. "나는 죽어서 개구리가 될 거야"라고 자주 말했다고 한다. 그가 개구리로 환생해 그토록 아꼈던 이곳에 돌아온 걸까. 연못에서 다시 "텀벙" 소리가 났다.
곰들이 뛰어노는 수목원… 이것은 동화다
수목원을 가다 ― 베어트리 파크
'이걸 왜 남들한테 개방했을까?' 주인이 엄청나게 애정을 쏟아 부은 흔적이 역력했다. 드넓은 수목원 어디를 가도 사람 손이 닿지 않아 보이는 구석이 없다. 이곳은 LG그룹 고문을 지낸 이재연씨 부부가 지난 45년 동안 가꿔온 수목원이다. 이재연 베어트리파크 회장은 "45년 동안 주말마다 찾아와 나무가 아프다면 약 주고, 목마르다면 물 주다 보니 아름다운 자연이 됐다"고 했다. "부부가 즐기기엔 규모가 너무 커졌죠. 일반에 공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놀이공원 수준은 아니지만 베어트리파크에는 다른 수목원과 달리 나무와 풀과 꽃 외에 동물이 많다. 아이를 동반한 가족이라면 오히려 나을 것 같기도 하다.
베어트리 파크 ‘향나무동산’. 45년 전 심을 때는 유치원 아이들보다 훨씬 작았을 향나무들이 이제 아이들을 굽어본다.
게스트하우스를 통과하면 가장 먼저 '오색연못'과 만난다. 연못은 비단잉어 500여 마리로 '물 반 고기 반'. 비단잉어는 빨강·노랑·검정 그리고 이 모든 색이 섞여 어떤 빛깔과 무늬를 띠느냐로 미추(美醜)를 가린다. 비단잉어는 금붕어나 열대어와 달리 옆이 아니라 위에서 감상한다. 그래서 연못을 가능한 한 낮게 만들고 그 위로 구름다리를 봉긋하게 만들었다. 주황·빨강·노랑·진분홍 꽃들이 기하학적 패턴으로 심겨 있다. 정원을 가로질러 언덕길을 오르면 반달곰과 공작새, 꽃닭, 원앙새 등이 있는 애완동물원이다. 태어난 지 3개월 된 아기 반달가슴곰 '용이' '강이' '산이'가 엄청나게 인기다. 지난 22일 이곳을 찾은 유치원 아이들이 사육사가 안고 나온 아기곰들을 보자 까무러칠 듯 좋아하며 쓰다듬고 또 쓰다듬는다. 이 곰들의 머릿속에는 '사람=음식'이란 등식이 들어 있는 모양이다. 사람이 난간에 다가가면 아래쪽으로 몰려온다. 베어트리파크 관계자는 "사육사가 다가올 때마다 먹이를 주니까 사람을 보면 식사한다는 반복학습이 된 것 같다"고 했다. 한 통에 1000원 하는 당근을 던져주면 받아먹지는 못하지만 땅에 떨어지면 얼른 집어 먹는다. 언덕을 내려와 반달곰동산을 오른쪽에 두고 직진하면 '곰조각공원'과 '송파정(松坡亭)'을 지나 1000여 평 규모 '열대식물원', 연꽃이 가득한 '수련원', 보랏빛 꽃이 이제 막 피기 시작한 꽃창포 사이로 산책할 수 있는 '아이리스원' '분재원'을 지나 '만경비원'에 닿는다. 핑크·보라·노랑·하얀색 화려한 양란 수백개가 문을 들어선 관람객을 360도 둘러싼다. 자동문이 양옆 반원형 벽을 따라 층층으로 놓인 양란 화분 수백개가 맞은편 거울에 반사돼 연출하는 광경이다. 왼쪽 출입구를 따라 올라가면서 로즈마리·세이지·라벤더 따위의 허브를 손으로 만지며 냄새를 맡다가 오른쪽으로 몸을 돌린다. 분재와 이끼와 돌과 나무화석을 이용해 한국의 부드러우면서도 아늑한 산천을 미니어처로 재현했다. 마치 소인국에 들어선 기분으로 한국의 자연을 내려다보는 기분이다.
◆개장시간 5~8월 오전 9시~오후 8시. 입장은 폐장 2시간 전까지 가능. 매월 첫째·셋째 월요일, 설·추석 연휴 휴관. 관람료(4~10월) 어른 평일 9000원·주말 1만원, 중고생 평일 7000원·주말 8000원, 어린이 6000원. 만경비원 관람료 2000원 별도.
坊坊'綠綠'… 전국 수목원 베스트8
수도권 한택식물원_ 자생·외국식물 8300여종 730만 개체로 국내 최대 수준인 사립 식물원. 33개 주제원 중 자연생태원이 가장 볼만하다. 자생식물 1000여종을 자생지 환경과 비슷한 곳에 심어놨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옥산리 153-1, (031)333-3558, www.hantaek.com |
출처: 내 마음, 머무는 그곳은.... 원문보기 글쓴이: 孤雲(고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