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어젯밤에 동해에서 태풍이 숨을 죽였다 하는데 제가 수도권에 살기 시작한지 한 20년쯤 됐는데 서울이라는 곳이 참 좋은 곳입니다. 왜냐 하면 자연재해가 없어요. 크게 자연 재해를 갖지 않는 곳이 서울권입니다. 그래서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그냥 사는 것이 아닙니다. 전생에 복을 많이 지어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 장산 스님이 부산에서 만나면 항상 그래요. 서울이라는 곳이 묘하다. 서울은 건물도 반짝 반짝 빛나고, 차도 반짝 반짝 빛나고 그렇다고 했었는데 서울 올라와서는 어떻다고 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서울이라는 곳이 지방에서 보면 희안한 곳이거든요 살다보면 자연재해도 없지, 다른데 물난리 나도 서울에서 물난리 난 적 없어요. 내가 알기로는 한 10여년전에 저 송파 풍납동에 물난리가 났었지요. 태풍도 안오고, 무학대사가 서울하나는 참 잘 잡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자연재해가 없는 이런 곳에 살게 된 우리 대각사 신도님들에게 찬탄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들은 백중을 맞이하기 위해서 49일간 기도를 하는데 오늘 3번째 재를 모시는 그런 날입니다.
우리말에 옛날부터 70고려장이라는 말이 있지요? 다 들어봤지요? 부모가 나이가 들어 70이 되면 그 늙으신 부모를 지게에 지고 가서 버려버린다. 그런 불효막심한 말입니다.
이 고려장이라는 것이 고구려시대에 있었다하고 이렇게 전해지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우리가 어릴 적에 배운 것처럼 우리나라를 동방예의지국이라 그랬어요. 동양에서 가장 예의가 바른 나라다 그렇게 불렀어요. 동양에서 가장 예의가 바른 그런 나라에 고려던, 백제던, 신라던 고려장 같은 그런 불효막심한 천인공노할 그런 제도가 있었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말의 기원이 어디서 나왔느냐? 하면 고구려 시대에 불교가 전래가 되지요. 삼국사기에 보면 소수림왕 372년도에 불교가 진나라로 해서 들어왔다. 지금부터 한 1600여년 되었는데 그 때 불교가 들어오면서 중국을 통해서 경들도 같이 들어옵니다.
그러다 보니까 그 경전에 나타나 있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 부처님의 말씀들이 참 특이한 것들이 많아요.
그야말로 8만사천 법문이라고 하는 법문 속에는 인간 세상에서 살아가는 온갖 이야기다 다 들어 있어요. 다시 말 드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연애소설 같은 이야기, 살인강도 이야기, 음식 이야기, 음식 할 줄은 모르지만 인간을 살아가는 온갖 사실적은 이야기다 다 있어요. 패륜아들, 불효막심한 이야기, 연애 이야기 다 있어요. 그런 많은 이야기 경전 가운데 잡보장경이라는 경이 있습니다. 잡보장경에 보면 기로국연(棄老國緣)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기로국연에 나오는 이야기가 뭐가 나오냐 하면 말 그대로 늙은 어른을 버리는 나라 이야기다 이 말입니다.
옛날 어느 나라에 나이 70이 되면 무조건 죽여라 하는 그런 나라가 있었어요. 안 버리면 국법을 어기는 것이 되어 사형을 다해요. 무조건 자기 부모를 버려야 돼.
그런데 이 나라에 아주 효자인 대신이 살고 있었어요. 지금 우리나라로 치면 장관급 되는 효심이 지극한 신하가 살았어요. 이 신하는 자기 아버지가 나이 70이 되었는데도 도저히 버릴 수가 없어. 이것은 인간의 도리는 할 수가 없어. 그래서 자기 방 밑으로 굴을 파서 모시고, 낮에는 다른 사람이 전혀 못 보게 굴속에서 사시게 하고 밤이 되는 방에 들어와서 주무시게 하고 그렇게 살게 됩니다..
그럴 즈음에 이웃나라에서 그 나를 침략하기 위해서 빌미를 잡습니다. 잡아서 우리나라가 너희 나라에게 어떤 문제를 낼텐데 그 문제를 만약 맞추면 너희들을 그냥 살게 할 것이고 만약 문제를 못 맞추면 너희 나라를 쳐서 멸망해서 우리의 속국을 만들겠다 그랬어요.
그래서 제일 먼저 문제를 가지고 온 것이 뭐냐 하면 똑같은 뱀를 두 마리 가지고 왔어요 이 중에서 어느 것이 암놈이고 어느 것이 수놈이고 가려라. 그러니 그 나라에서 누구라도 암놈 수놈을 가리면 큰 상을 내리겠다 하고 아무리해도 나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그것을 못 맞추면 나라가 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근심 걱정을 하는데 어느 날 자기 아버지가 굴속에서 아들을 보니까 힘이 하나도 없고 얼굴에 근심 걱정이 태산 같이 보여요.
그래서 얘야 아범아 무슨 일이 있느냐 하니까? 사실은 나라가 지금 아주 위태롭게 되었습니다. 이웃나라 임금이 문제를 냈는데 그 문제를 못 맞추면 나라가 망하게 생겼습니다. 도대체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이 무슨 문제이냐 하니까 이웃나라 임금이 똑같이 생긴, 크기도 같고, 모양도 같고, 무게도 같은 뱀을 두 마리 보냈는데 어느 것이 암놈이고 어느 것이 수놈인가를 가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것을 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 아버지가 그것이 뭐가 어려우냐? 어떻게 하면 됩니까
아주 보드라운 비단 같은 천 좌복 위에 두 마리를 놓아봐라 그곳에서 이리저리 딩굴고 하는 것은 암놈이고 가만히 있으면 수놈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지요. 방석이 있으면 앉아서 딩굴면 여자이고 그냥 덤덤하면 남자 아녀요. 그래서 정말 그렇게 해 보니까 정말 한 마리는 마구 이리저리 딩구는데 한 마리는 가만히 있어. 딩굴고 까부는 것을 암놈이고 가만히 있는 놈을 수놈이라고 알려줬어요.
이웃나라 임금이 보니까 아이구 이것을 맞췄어요. 아하 저 나라에 지혜로운 사람이 있구나 그렇게 생각했어요.
또 문제를 가지고 왔어요. 무슨 문제인고 하면 어마어마하게 큰 코끼리의 무게를 달아라 한다 이 말입니다. 이것은 무게 어떻게 다는지 아시지요? 큰 코끼리를 무게 다는 방법이 없어요. 저울에 달수도 없고, 그러니까 그 대신의 아버지가 그것 간단하다. 그럼 어떻게 간단합니까? 그 코끼리를 배에 태우는 것입니다. 배가 물에 가라앉으면 그 만큼 금을 긋고 코끼리를 내려놓은 뒤에 돌을 배가 가라앉았던 만큼 쌓았다가 그 돌을 하나하나 달아서 합치면 되면 코끼리의 무게가 된다 이 말입니다.
그렇게 풀었는데 문제가 또 왔어요. 똑같이 생긴 전나무를 가지고 왔어요. 똑같은 전나무 막대기를 가지고 와서 어느 것이 위쪽이고 어느 것이 아래쪽인지 맞춰라 이 말입니다. 그래서 그 노인이 또 말을 합니다. 물에 던져보면 한쪽이 더 가라앉고 한쪽이 위로 올라간다. 밑으로 조금 가라앉는 것이 밑둥이고 위로 뜨는 것이 위쪽이다 가르쳤어요.
또 문제가 왔어요. 어떤 문제냐 하면 똑 같이 생긴 말 두 마리를 보내 왔어요. 크기도 똑같고 모양새로 똑같고 똑같이 생겼어요. 똑같이 생긴 이 것들 중에 어느 것이 어미이고 어느 것이 새끼인 줄을 가려내라 이런 문제입니다. 이 문제도 다른 사람들은 몰라요. 그래서 또 그 대신이 자기 아버지께 말씀을 드리니 그것도 간단하다. 아주 간단한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 말 두 마리를 두고 콩대을 주면(말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 콩이지요?) 덥썩 먼저 가서 먹는 것이 새끼이고 뒤에 먹는 것이 어미다 그런 말씀입니다. 동물이나 사람이나 다 똑같아요. 예전에는 어른부터 먼저 먹어야 했는데 요즈음은 애들이 먼저 잡숴야 하잖아요. 짐승도 먼저 덥썩 먹는 것이 새끼라..
그러고 나니까 이렇게 어려운 문제도 푸는 것을 보니까 저 나라에는 틀림없이 성인군자가 있다. 아주 지혜로운 사람이 있다. 그래서 도저히 침략할 수 없다하여 침략을 포기했어요. 그러니까 이 대신이 나라를 구했어요. 그러니 임금이 큰 벼슬을 내리고 해야 되니까 임금이 묻습니다. 도대체 그 지혜는 어디서 나왔느냐? 나라를 구했다. 큰 상을 내리겠다고 임금이 제의를 하니까 효자는 “전하! 제가 죽을죄를 졌습니다. 저는 국법을 어겼습니다. 절을 벌하여 주소서“ 이렇게 이야기 하거든요. 그것이 무슨 말이냐 하니 사실은 저는 국법을 어기고 제 아버지를 버리지 않고 제 방 속에 굴을 만들어 놓고 숨기고 모시고 살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제가 죽을죄를 졌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씀드린 모든 지혜는 모두가 다 아버지가 제가 알려준 지혜입니다. 노인이라서 쓸데없는 것이 아니라 노인의 경험과 경륜이 그 모든 것을 알게 했습니다. 그러니 저를 상주기 보다는 이런 법을 없애야 되겠습니다 하니까 그 때 임금이 결정을 내립니다. 그래. 노인이라고 해서, 즉 힘이 없다해서 아무 쓸모없는 것이 아니라 노인의 지혜야말로 삶에서 터득한(지혜라는 것이 젊은애들이 잘한다 해도 나이 먹은 사람의 지혜를 따라갈 수가 없어요) 지혜입니다.
그것이 바로 나라를 구하고 사회를 지향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해서 그 때부터는 이 고려장 제도를 없앴다 해서 그 효자아들이 노인을 버리는 몹쓸 제도를 없앴다, 고려장이라는 제도를 없앴다하는 기록이 이 잡보장경에 기록이 있습니다. 이 풍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나라가 고구려였기에 고구려에서 생긴 고려장인 것처럼 그렇게 후대에 내려오게 되었어요. 그러나 사실은 잡보장경에 있는 부처님 말씀이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경전에는 불효법을 없애는 것과 많은 효에 관한 것들이 나옵니다. 심지관경이라던가 이런 곳에 많이 나오는데 여기서 효라는 것, 부모님께 은혜를 갚는다는 것, 이것이 왜 그러냐하면 경에서는 예를 들어서 심지관경 부모은송경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합장하시고 들으십시오.) “자비하신 부모님이 키워주신 은덕으로 온 세상 자식된이 모두가 안락하네. 아버지의 사랑은혜 산보다 더 높으고 어머니의 슬픈은덕 바다보다 더 깊으니, 만약 내가 이 세상에 일겁동안 머물면서 부모은혜 말하여도 그 모두는 말못하네“ (합장 내리시고)
부모 이렇다 하는 것을 심지관경의 부모은송경등 많이 있어요. 부모의 은혜가 태산같다.. 조상의 은혜가 태산 같다. 평생을 말해도 다 못한다. 이것이 부모의 은혜를 갚은데 근본설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우리는 부모의 은혜를 지고 있느냐 하면 어떤 사람은 나는 아무것도 받은 것이 없으니 은혜 갚을 것이 없다 말하지만 그러나 우리는 부모로부터 한량없는 은혜를 받고 있어요. 그것이 무엇이냐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이 뭐입니까? 가장 소중한 것이 생명입니다. 이 세상에 나의 생명보다 더 나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돈을 벌고, 일을 하고 지위를 올리고 하는 것도 사실은 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이유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냥 사는 것이 목숨입니다.
만약 사람이 금방 죽고 내일모레 다시 태어나는 것 같으면 무엇 하러 살려고 하겠어요. 죽어도 금방 다시 살아나는데, 그러나 사람의 목숨이라는 것은 한번 죽고 나면 다시는 못 살아납니다. 그러니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그럼 사람만 소중하냐?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중생들은 자기 목숨이 가장 소중합니다. 나는 내 목숨이 가장 소중하고 소는 소의 목숨이 가장 소중하고 물고기는 물고기 목숨이 가장 소중합니다.
소한테 물어보십시오. 사람 목숨이 소중하냐? 네 목숨이 소중하냐 하면 소는 당연히 자기 목숨이 소중하다고 하지요. 이렇게 살아 있는 모든 중생은 자기목숨이 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합니다.
그러니 가장 중요한 자기의 생명을 준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부모입니다. 하느님이 줬다 그것은 천만에 말씀입니다. 그런 법은 없어요. 부모님이 준 것입니다. 부모님이 가장 소중한 나의 생명을 줬기 때문에 그 은혜는 어디에 비교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그 은혜를 갚아야 하고 또 나의 생명을 줬기 때문에 나의 뿌리입니다. 나는 부모님의 뿌리에서 내가 피어났어요. 잎이 나고 줄기가 되어 꽃이 피어났지 잎이나 줄기 꽃이라는 것이 뿌리가 없으면 시들어 버리지요. 내가 부모님께 은혜를 갚는다는 것은 나의 뿌리인 부모님께 물을 주는 것입니다.
나의 뿌리에 거름을 주는 것은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부모을 위한 것입니까? 나를 위한 것입니다. 사실은,
저기 3재를 맞이해서 과일을 잔뜩 올려놓고 위패를 써 붙여 놓고 잠시 후면 3재를 지낼터인데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조상님을 위해서.... 솔직히 말하세요. 우리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이쁘게 하면 잘 봐 주실까 싶어서, 백중 잘 지내면 큰 이익이 온다 이렇게 생각하고 하는 것이지, 나는 아무 상관없고 오직 부모님 좋으라고? 조상을 위해서? 그것은 천만에 말씀이지요.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나를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실질적으로 그렇습니다.
뿌리에 물을 주고 거름을 주는 것은 뿌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좋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 밖으로 들어나 잎과 줄기와 열매를 위해서 거름을 주는 것이지요. 자연의 이치가 그래요.
그렇다면 이렇게 부모라는 존재, 조상이라는 존재, 이런 존재가 바로 나의 생명을 주고 했으니 우리는 그것을 감사해야 해요.
그럼 조상이라는 존재가 우리들에게 생명만 주었느냐? 나를 살게만 한 것이냐? 그것은 아닙니다. 우리들은 조상들의 음덕이라는 말을 하지요, 조상의 보이지 않는 가피력, 음덕, 이 말은 무슨 말인가 하면 부모님일 살아계실 때만 나를 돌보고 길러주고 키워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죽어서도 마찬가지로 부모님이 나를 돌보고 있다고 하는데 이것을 음덕이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음덕이라는 말을 가장 잘 표현 된 말이 뭐냐 하면. 결초보은(結草報恩) 이라는 말이 있어요. 많이 들어 본 말이지요. 결초보은. 자기에게 은혜를 입힌 어떤 사람에게 은혜를 꼭 갚겠다고 다짐을 할 때 결초보은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말 그대로 하면 풀을 엮어서 은혜를 갚는다 이 말인데 결초보은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가 하면 중국 좌전선공(左傳宣公)이라는 역사책이 나오는 이야기인데 옛날 중국에 위나라와 진나라가 같이 있을 때 이야기입니다. 위나라에 무왕이라는 임금이 있었는데. 그야말로 아리따운 애첩이 있었습니다. 이 무왕이 이 애첩보다 세상에 더 사랑스러운 사람이 없습니다. 아무리 속이 상한 일이 있어도 그 애첩만 보면 얼굴에 환한 미소가 나옵니다. 그런 사랑스러운 애첩입니다. 그 무왕에게는 과라는 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 나중에 태자가 됩니다. 세월이 흘러 무왕이 병이 들기 전에 아들을 불러 놓고 내가 만약에 나이 들어서 죽게 되면 내가 사랑하는 저 애첩을 그냥 두지 말고 개가를 시켜라. 그 당시에는 개가라는 말을 듣도 보도 못했던 말입니다. 다른 사람과 개가를 못하게.... 그런데 다른 사람에게 개가를 시켜라 하고 유언을 했어요. 그러니 아들과는 아버지 분부대로 틀림없이 저 후비를 개가 시키겠습니다 염려하시지 마십시오. 이렇게 다짐을 했습니다.
그런 다음 무왕이 심한 병이 들어서 정신이 혼미해졌어요. 혼미해져서 다시 아들을 불러 놓고 유언을 다시 한 것입니다. 내가 만약 죽거든 저 첩을 개가 시키지 말고 나하고 같이 순장을 해라. 같이 묻으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렇게 유언을 하니 유언이 두개입니다. 그러다 정말 무왕이 죽어 버렸어요 그러니까 유언이 두개이니까 의견이 분분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첫째 유언을 따라야 한다. 어떤 사람은 마지막 유언을 따라야 된다. 분분합니다. 그렇겠지요? 대체적으로 보면 어떻게 합니까? 마지막 유언을 따르겠지요.
그래서 많은 대신들은 마지막 유언을 따라서 저 애첩을 순장을 해야 된다 하고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키는 누가 쥐고 있느냐 하면 다음 왕을 맡을 과가 가지고 있어요. 태자가 고민을 합니다. 과연 어떤 유언을 따를 것인가? 고민 고민하다가 역시 처음 유언을 따라야 되겠다. 결심을 했어요. 왜냐 하면 첫째 죽이지 말고 재가 시키라는 유언은 자기 아버지가 정신이 성성하고 사리가 바를 때 유언을 한 것이고 두 번째 유언은 정신이 혼미해지고 몸이 쇠약해지고 사리판단이 모자랄 때 한 유언입니다.
온갖 시기질투심이 꽉 차 있을 때, 나는 죽지 않겠다고 몸부림칠 때, 어떤 사람들 보면 나는 죽지 않겠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 있어요. 내가 왜 죽느냐고, 죽을 때 잘 죽어야 해요. 나는 못 죽겠다고 몸부림치면 보통일 아니어요. 같이 죽겠다고 하면 보통일이 아니어요. 그리 안 되기 위해서 정신 있을 때 수행해야 되는데 하여튼 무왕이 몸부림 칠 때이기 때문에 역시 아들은 살려 줘야 되겠다고 생각을 하고 첫 번째 유언을 따르기로 했어요.
모든 대신들이 반대했으나 이 아들 과는 과감하게 아버지의 첫째 유언대로 아버지 돌아가신 뒤에 애첩을 다른 데로 개가를 시켜 줍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데 이웃나라 진나라에서 위나라를 침공을 했어요. 침공을 하니까 과가 임금이 되어서 군사를 이끌고 나갑니다. 큰 벌판에서 전쟁을 하고 있는 세가 자꾸 밀립니다. 밀리니까 위나라 군사들이 자꾸만 도망갑니다. 저쪽의 진나라 군사는 막 밀려오고 위나라 군사는 도망을 갑니다.
가다보니 중간 큰 벌판에 한 1km 사이를 두고 가는데 그 중간에 어느 백발노인이 나타나서 풀밭에서 풀을 이리 저리 묶고 있어요. 진나라 군사와 위나라 군사가 건너지 못하게 풀을 묶고 있다는 말입니다. 풀을 잔뜩 묶어 놓은 뒤에 노인은 없어졌어요. 그래서 참 이상하다 하고 있는데 진나라 군사들이 말을 막 몰아서 위나라 군사들을 향해서 쳐들어옵니다.
노인이 묶은 풀밭에 오더니 말들이 풀에 걸려서 전부 넘어지는 것입니다. 사람도 거기만 오면 전부 풀에 걸려서 넘어져 버리고, 한 발짝도 나갈 수가 없어요.
그렇게 기마병도 넘어지고 보병도 넘어지고 다 넘어지고 할 때 다시 위나라 군사가 반격을 합니다. 반격을 해서 (전부 넘어졌으니) 격퇴를 하고 마침내 위나라를 구합니다.
나라를 구한 뒤에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과의 임금이 생각하니까 참 이상하거든요. 어째 갑자기 노인이 나타나서 자기 나라를 구해 줬을까? 나라를 준 사람이 누구일까 하고 있는데 며칠 뒤에 꿈에 그 노인이 나타났어요. 크게 절을 하면서 말하기를 저는 사실은 임금님께서 살려 준 무왕의 애첩의 애비되는 사람입니다. 저는 오래전에 죽었지만 저승에서도 항상 내 여식이 잘되기를 바라고 있었는데 정말 무왕이 풀어주라 하더니 순장을 하라 해서 가슴이 조마조마했습니다. 걱정이 태산 같았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왕이신 태자께서 현명한 판단을 잘 하셔서 제 여식을 개가를 해서 잘 살게 해 준 이 은혜를 정말 잊을 수 없어서 저승에서 와서 풀을 묶어서 임금님을 도왔습니다. 그것이 결초보은입니다. 풀을 묶어서 은혜를 갚은 것, 은혜를 왜 갚습니까? 자기 딸을 살려 줬다고. 그래서 결초보은이라 했습니다.
결초보은이라는 말은 무슨 말인가 하면 우리 부모님이 살아 있을 때만 자식을 위해서 그렇게 보살피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신 부모님들도 마찬가지로 자식이 잘 되기를 항상 보살피고 있다하는 것이 이 결초보은이라는 말에는 실제로 나타나 있습니다.
이렇게 부모라는 존재는 살아서도 은혜를 주고 죽어 저승 세계에 가서도 한시도 걱정 근심을 하고 살아가게 하려는 부모님인데 그러면 살아있는 자식으로써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나의 뿌리고 지금도 나를 돕고 있는 조상에 대해서 우리가 짐승이 아닌 이상 은혜를 갚아야 됩니다.
그래서 은혜를 갚은 것이 효인데 그런 효를 부처님께서는 근본설이라 했어요 가장 근본되는 설이 뭐냐? 바로 부모의 은혜를 갚은 것이다 그랬어요.
그러니 부모의 은혜를 갚는다는 것이 무엇으로 갚는 것이냐? 옛날에 우리 어릴 때 보면 단발령이 있을 때 부모의 효가 뭡니까? 그냥 상투를 자르지 않는 것이 효자인양 그랬지요?
그래서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 신체는 모든 것을 부모님한테서 받은 것인데 신체를 자르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 그랬어요. 그러나 지금은 안 통하잖아요. 지금 현재 누가 신체발부수지부모라 그러면 바로 미친놈이라 해요. 이렇게 부모님께 효를 다 해야 된다는 관습에 대해서는 누구나 인정을 하면서도 효가 뭐냐는 하는 것은 시대 따라 달라져요. 이것을 정확히 대변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부모님께 효를 다 하는데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모든 사람들이 다 하는 부모님께 봉양을 잘하고 의식에 불편하지 않게 하고, 말을 잘 듣고 잘 모시는 것, 요즈음 같으면 용돈도 잘 드리고 자주 찾아 뵙고, 또 같이 살아야 되겠다. 같이 살아야 된다. 그러면 안되어요. 세대가 변했습니다. 용돈이나 받고 그렇게 살아야지 같이 자꾸 같이 살라고 하면 푸대접 받아요. 아무튼 첫째 효는 뭐냐? 부모님께 봉양 잘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월이 아무리 변해도 변함이 없어요. 인간이 살아 있는 한 이 효의 개념은 변할 수가 없어요.
두 번째가 뭐냐? 종교적인데 이것은 부모님으로 하여금 부처님의 법을 믿게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법을 믿게 해서 부처님 법으로 안심하고 믿게 도와드리는 것입니다. 수계식이 있으면 수계를 받게 하고, 계를 지키게 하고, 탈계하지 않게 하고 진리가 뭔지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불교만 이런 것은 아닙니다. 종교를 믿게 한다는 것은 우리가 보면 불교를 믿게 하는 것이지만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종교들도 보면 모두가 개종을 시키려고 갖은 노력을 하잖아요. 모든 종교에서 똑같이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일반인한테 첫 번째 부모 봉양을 잘한다, 두 번째 자기 종교로 인도한다. 불교에서 보면 노인을 기독교로 인도한다는 것은 불효하는 것이지요. 죽어가는 사람을 기독교로 보낸다는 것은 내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하지요. 그렇지만 종교마다 자세는 다릅니다. 객관적으로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두 번째까지도 인정하나 불교만이 가지고 있는 마지막 방법이 있습니다 천도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미 유명을 달리한 선망조사님을 좋은 곳으로 태어난다. 악도에 떨어진 영혼 조상님들을 좋은 곳으로 안내해 드린다는 것입니다.
왜 좋은 곳으로 안내해야 하느냐 만약 지옥에 떨어졌다면 그 고통이 엄청날 것이고 축생에 떨어졌다 해도 그 고통이 이루 말 할 것이 없을 것이고 아귀라도 떨어져 있어도 그 고통이 이루 말 할 수가 없습니다. 구해내서 아귀도를 벗어나서 인간이던 천상에 태어나던 극락에 떨어지던 그렇게 구해야 되어요. 이것은 윤회를 끊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알 수가 없어요. 지금 우리들의 아버지가, 어머니가, 조상들이 아귀 보호를 받던지 사람으로 태어났는지 아니면 지옥에 가 있는지 아니면 소 돼지로 태어났는지 알 수 없잖아요.
그러면 그 부모님 어떤 곳에 있던지 거기서 나쁘다고 한다면 거기에서 건져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최소한 복락, 즐거움을 즐길 수 있는 더 좋은 것은 천당에 태어나게끔 더 좋은 것은 극락에 태어나게끔 하는 것이 마지막 효도가 되는 것이고 가장 절박한 수순한 것이고 이것은 불자만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왜 다른 사람들은 이런 진리를 안 믿으니까? 안 믿으니 할 수 없지요. 우리는 그것을 믿으니 불자만이 가지고 있는 진리입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천도재가 많이 유행했지요. 일산에 뭐야 등등 천도재니 구병시식이니 하는데 천도재가 사기성 비슷하게 많이 가고 있어요. 천도를 꼭 해야 될 때가 있고 안할 때가 있어요. 절에가서 천도에 속으면 안 되어요. 장산 스님을 그럴 리가 없지만. 어떤 절에 가면 무조건 천도하라고 무조건 사기를 쳐요. 속으면 안 됩니다.
천도를 할 때가 있고 안 할 때가 있어요 천도를 할 때는 어떤 때인가 하면 자기 조상이 나쁜 곳에 떨어졌다는 확신이 들 때이지요. 이것은 자기가 살아가면서 알게 되어 있습니다. 다 돌이켜 보면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천도재를 했지만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어떻게 했느냐? 적어도 일년에 한번은 조상님의 은혜를 갚기 위해서, 조상님께 공양을 올리고 만약 악도에 떨어졌다면 구해내라고 했습니다.
자기 조상이 지옥에 있던, 아귀에 있던, 천당에 있던, 사람으로 태어났던 일년에 한번은 반드시 이 마지막 효도인 공양을 올려라 그렇게 말했다 이 말입니다. 그것이 언제입니까? 7월 15일 백중입니다.
백중에 천도를 올린다는 것은 이 지구상에 있는 불자들만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천도이고 최고의 효인 것입니다.
그 칠월 백중을 앞두고 한국 불교에서는 대각사에서도 49일 동안 기도를 하자 해서 오늘이 세 번째입니다. 49일 동안 7재를 재를 지내는데 오늘이 3번째인데 저는 사람이 좀 게을러서 저는 일동안 밖에 기도를 안 합니다. 7월 9일날 입재해서 보름날 회향하고 말아버립니다. 저는 게을러서 그렇고 부지런한 스님들은 전부 49일 동안 합니다.
49일 하는 동안에 오늘 3번째 재를 공양을 올리고 재를 지내는데 이것을 왜 하느냐? 지금 말씀드린 것과 같이 부모 선망 조상님을 향한 마지막 효행입니다.
이렇게 공양 드시고 모든 집착을 놓으시고 모든 부모선망들은 모두 이고득락(離苦得樂) 하소서 하는 것입니다. 내 혼자 안 되니까 부처님의 위신력을 등에 업고 이것을 행해 가는 것이지요.
이런 의식을 하고 천도를 하고 제사를 지낸다고 하는 것은 나한테 어떤 이익이 있느냐? 실질적으로 조상님들이 멀리 안 갔어요. 다 내 주변에 있어요. 그 할아버지가 내 아들로 태어나고 내 딸로 태어나고 내 손자로 태어나지요. 멀리 안가요. 그러면 조상님들을 잘 공경하고 잘 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자기애한테 잘하는 것입니다. 나한테 잘하는 것입니다.
조상님들한테 공양을 잘 올리는 것이 내 뿌리에 요소비료를 잘 주는 것이어요. 그러면 그것이 뭐냐 나를 위하는 길입니다. 조상을 위하는 것이 나를 위하는 것입니다. 조상이 잘되는 것이 내가 잘 되는 것이고 이 점을 우리가 우란분절 기도를 하면서 늘 염두에 두고 일주일에 한번씩 이 재식에 잘 참여를 잘해서 열심히 염불하고 조상님이 정말 이고득락 할 수 있도록 도와 드리는 것이 1년에 한번 맞이하는 우란분절을 맞이하는 그런 불자들의 자세이고 또한 우리 스스로가 가장 잘 사는 길이다라는 것을 항상 염두 해 두고 나머지 시간 동안 열심히 기도하셔서 모두가 성취하는 정말 기쁘게 우란분절을 맞는 그런 우리 불자님들이 되어 주십사 발원하면서 오늘 여기서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