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찰은 넉넉하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따스한 밥과 국을 내어준다.
고기 대신 쫄깃한 식감의 버섯이, 향이 강한 마늘 대신 나팔꽃 나물이 제맛을 낸다. 공기가 맑고 물이 좋아 나물 맛이 살아나는 것.
철마다 캐먹던 이름 모를 산채, 말간 공기를 한 밥상에 차려내는 발우는 그 자체가 보약이다. '스님을 모시는 자가 봄철에 머위나물을
세 번 식탁에 올리지 않으면 쫓겨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나물은 사찰 음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먹을거리.
사찰마다 유명한 특징 음식이 있는 것은 지역마다 특산물이 다르기 때문이다.
명이나물은 울릉도, 곤드레나물은 강원도, 두릅나물은 포천이 유명하고 화엄사는 갓김치와 죽순나물, 해인사는 나물무침이 그러하다.
곧 있으면 강원도 정선과 경북 영양에서 산나물 축제가 열린다. 그러나 훌쩍 떠나기엔 먼 거리. 이번 주말에는 도심에 있는 사찰을 따라
나물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세븐 스타 출신 김한송 셰프가 봄나물 가득한 절을 찾아 음식을 만들었다.
불자도 아닌데, 그냥 밥만 먹고 가도 될까?' 낯선 산사에 가서 공양간에 들어서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런 걱정은 기우. 남기지 않고 다 먹은 후 보살, 스님들께 감사 합장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런 곳에 절이 있나' 싶을 때 불쑥 나타나는 진관사는 한양 근교의 4대 사찰로 일컬어지는 천 년 역사의 절이다.
조선시대에는 고려 왕실의 영혼을 기리기 위한 국가 수륙재의 근본 도량으로, 세종 때에는 성삼문, 신숙주, 박팽년 등의
선비들이 머무르던 집현전 독서당으로 쓰였다. 일주문을 거쳐 홍제루를 지나면 중정이 펼쳐진다.
한 잔의 보이차를 앞두고 스님과 선문답을 나누다 보니 여기가 정말 서울이 맞나 싶다.
북한산의 자궁에 터를 세운 진관사는 일제시대 독립운동 본부와 세종대왕의 한글 비밀 연구소로 쓰였다.
2009년 이곳 칠성각을 해체 복원하다가 발견된 태극기는 이곳이 불교 독립운동의 본거지였음을 드러낸다.
불단과 기둥 사이 공간에서 발견된 90년 전 태극기와 항일독립신문은 3·1운동 당시 비밀결사를 조직, 한용운의 뒤를 이어
군자금을 모으는 등 독립운동을 펼치다 순국한 진관사 백초월(1878~1944) 스님이 숨겨둔 것으로 여겨진다.
※수륙재는 물과 육지에서 헤매는 외로운 영혼,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지만 제사조차 받지 못하는 아귀를 달래기 위해
국가에서 지내는 제사다.
공양간(절 부엌) 요리를 담당하고 있는 만덕행 보살은 40년간 주지스님의 밥상을 책임지고 있다.
진관사를 찾은 G20 지도자들이 극찬했던 음식 맛이 모두 그녀의 손끝에서 나왔다.
뒷산의 산나물과 직접 담근 장아찌로 만든 음식은 무명 삼베와 같은 겸손하고 은은한 맛을 내고, 직접 담근 장독 아래에는
가마솥에서 5~6시간 삶은 콩을 발로 밟아 틀에서 굳힌 메주가 둥둥 떠다닌다. 봄에는 명이나물로 장아찌를 담는다.
"언 땅을 뚫고 나온 새싹에는 땅의 기운이 가득 담겨 있지요. 겨우내 활동이 적고 음식을 골고루 먹지 못해 움츠러든 몸을 일깨워줍니다.
자극적인 양념이나 육류가 없어도 허한 몸을 채워주죠." 유채나물과 취나물, 씀바귀를 올린 구절판에다 세발나물과 팽이버섯 겉절이를
올린 깻잎전이 차려졌다. 컬러풀한 밀전병 두릅말이도 싱그럽다.
즐길거리 : 궁중 음식과 종묘 제례, 사찰 음식이 어우러진 사찰이다. 삼각산 달오름 음악회, 전통차 카페, 사찰 음식 쿠킹 클래스는
언제나 인기다. 태극기가 발견된 칠성각을 탐방하고 근처 북한산 국립공원을 산책하는 코스를 추천한다.
가는 길 :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 3번 출구에서 진관사행 7724번 시내버스(40분 간격)를 타거나 지하철 3·5호선 연신내역 3번 출구
에서 진관사행 셔틀버스를 타면 된다. 평일에는 오전 9시, 9시 40분, 10시 20분에 운행한다.)
문 의 ; 은평구 진관동 354 02 - 359 -8410
절에는 일주문이 있지만 말만 '문'일 뿐 출입을 막는 그 무엇도 없다. 조계사도 그렇다.
한국 불교의 중심지로, 도심 포교의 발원지로 조계사는 늘 사람들 사이에 있었다. 빌딩숲 바로 옆에 이런 압도적인 규모의 대웅전이
있다는 것도, 그 특이한 문살도,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대웅전 앞 회화나무도, 천연기념물로 선정된 백송도 신기하다.
석가모니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8각 10층 석탑 주변을 사람들은 시계 방향으로 돌며 기도를 한다.
만해 한용운이 창건한 절이 이곳으로 옮겨온 지도 100년이 넘었지만 낮은 담장 너머로 보이는 2층짜리 극락전과 대웅전 앞
해태상은 여전하다. 세상 사람들의 근심 걱정에서 사람들을 지켜주는 도심 속의 방주, 오늘은 조계사로 한번 떠나보자.
<농가월령가> '정월령'에는 '엄파와 미나리를 두엄에 곁들이면, 보기에 신선하여 오신채를 부러워하랴'라는 부분이 나온다.
사찰 음식은 비록 오신채(자극이 강하고 냄새가 심해 불교에서 금하는 다섯 가지 음식물. 마늘·파·부추·달래·흥거)를 쓰지 않지만
봄나물의 향긋한 풍미와 맛, 아삭한 식감이 잘 살아 있다. 절에서는 봄에 나물 싹이 돋기 시작하면 쌀 위에 얹어 밥을 해 먹고
그 다음에는 국을, 지천에 널리면 떡을 해 먹는다. 철 따라 나오는 나물을 갈무리하는 것은 쉽지 않다.
먹을 만큼만 덜어먹는 발우 공양은 지천에 널린 산나물 하나도 허투루 버리지 않는다. 사찰 음식의 대가 대안스님의 손맛을 느낄 수 있는
'발우 공양'은 조계사 바로 건너편에 위치한 조계종 공식 사찰 음식 전문점으로 바라밀상, 법륜지상, 깨달음상 등을 주 메뉴로 하고 있다.
발우공양은 대안스님이 불교 문화를 중생의 생활 속에 넣어주기 위해 오랜 실험 끝에 만들어낸 전형적인 절밥 음식점.
취나물과 산나물들깨찜, 방풍나물과 연잎밥은 겨우내 쌓인 독을 풀어주고 입맛을 돌게 한다. 곁반찬으로 나오는 간장에 절인
곰취나물 또한 맛이 일품. 씁쓰름한 맛이 도는 취나물을 한입 베어 무니 쓴맛과 독특한 향이 입 안에 머물면서 이내 침이 고인다.
즐길거리 : 조계사 옆에 위치한 불교중앙박물관, 광화문 수문장 교대식, 조계사 수송, 세계적으로 유명한 조계사 연등축제 구경 가기,
천연기념물 9호인 백송과 회화나무, 경복궁과 경희궁 등 각종 궁궐과 북촌 한옥마을과 청계천, 인사동 나들이.
가는 길 : 종로구 견지동 71 템플스테이 통합센터 5층. 지하철 3호선 안국역 6번 출구 130m 안국동사거리에서 좌회전 150m 왼쪽
문 의 : 서울 종로구 견지동 02 -2031 - 2081 , www.baru.or.kr
언덕을 오르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쯤 자그마한 절이 나타난다. 일주문도, 불경 외는 소리도 없다.
현판과 대웅전이 아니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서울의 1970~80년대 풍경을 간직한 낡고 좁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정각사 뒤로 성곽길이 펼쳐진다. 정각사는 비구니계를 대표하는 어른인 광우스님이 주지로 계시는 절로 1958년 지어졌다.
70여 년간 도심 포교의 길을 걸어온 스님이 여전히 꽂꽂하게 정좌한 채로 지나는 이를 맞는 곳.
절의 살림을 맡은 현산스님과 함께 마음 수련을 하는 불탑회 회원들이 공양간에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까르르' '하하호호' 웃음소리가 떠나지 않는다. 매일 이렇게 목청 보이도록 웃으며 음식을 만들다 보니 마음의 어둠이 자연스레 걷혔다.
"스님 손에 들어가면 안 되는 게 없어요." 보살의 말에 현산스님이 손사랫짓한다. "아이가 집에 돌아오면 밥부터 먹이죠. 스님도 똑같아요.
인생이 힘들어 절을 찾은 이들에게 밥부터 주는 거죠. 사찰 음식이라고 거창한 것은 없어요. 춥고 외롭고 배고플 때 언제든지 오세요."
"나물은 살살 무쳐야 되는 것이 있고, 팍팍 무쳐야 하는 것이 있지요. 취나물도 산에서 나는 것이 제일 맛있어요.
제주에서 나오는 취는 향이 옅지요." 현산스님이 된장에 버무린 원추리나물무침에 김한송 셰프가 비트를 곁들여 색을 냈다.
보살들이 봄동을 담은 접시 위에는 땅콩 조림 소스로 멋을 냈다. 셰프의 손길 하나에 스님들이 환호한다.
장난기 가득한 정각사 스님들, 하트를 날리는 보살들과 있다보니 우울한 기분은 어디론가 날아가버린다.
즐길거리 : 정각사 뒤편으로 이어진 서울 성곽길 2~3구간 걷기, 문학의 골짜기 가득한 성북동 골목길에서 소설가 이태준의 수연산방,
최순우옛집, 성곡미술관, 길상사, 심우장 둘러보기. 심우장은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이었던 만해 한용운 선생이 10년 동안
살던 집으로 다섯 켠 한옥의 마당 한편에는 그가 직접 심은 향나무가 서 있다.
가는 길 : 한성대입구역 3번 출구로 나와서 낙산공원 방면으로 직진, 윤미용실 끼고 우회전 후 골목 사거리에서 직진하면 정각사가 보인다.
한성대입구역에서 성북동으로 들어가는 1111, 2112 버스를 타고 성북초등학교 앞에서 하차하면 심우장으로 오르는 길이 좌측에
나타난다.
문 의 : 서울 성북구 삼선동 1가 277-6, 02-742-1231
노스님이 담가놓은 50년 된 장독 위로 향긋한 당귀차 내음이 번진다. 연화사 마당에는 절 이름 그대로 수상 연꽃이 가득하다.
디딤돌을 건너자 운아스님의 공양간이 나온다. 자그마한 키의 스님이 줄기가 다치지 않게 나물을 버무려내는 모습이 야무지다.
양념 대신 나물 향을 살리는 방법은 나물을 씻을 때부터 시작된다. 멍이 들거나 상하지 않도록 흐르는 수돗물 대신 그릇에 물을 받아
씻고 삶은 나물을 꺼내서 바로 찬물에 넣는 것. 그래야 나물 향이 살아난다. 금방 뜯은 나물을 사발에 넣어 고추장에 비벼내도 기막힌
맛을 만드는 운아스님의 맛의 비결은 손맛도 손맛이거니와 자연의 흙과 공기를 듬뿍 마시고 자란 제철 재료 때문일 것이다.
절에서는 국을 끓이는 갱두, 반찬을 만드는 채공, 밥을 짓는 공양주를 3년 동안 두루 거쳐야 비로소 정식 스님이 된다.
"절 음식은 약리 작용이 많은 제철 재료를 사용하고, 인스턴트 물질도 없죠. 참깨나 들깨도 방앗간에서 직접 빻아요.
하지만 이런 건 2차적인 문제입니다." 먹는 이의 몸과 마음을 배려하는 것, 그것이 절의 안살림을 도맡은 스님의 일이다.
운아스님의 곰취쌈밥 상차림은 '황, 청, 백, 적, 흑'의 오방색을 고루 갖춘 컬러 밥상이다.
주먹밥을 곰취나물로 싼 곰취쌈밥에 잣과 치자, 흑임자로 무친 삼색 더덕무침, 껍질을 벗긴 산마 깍두기를 더했다.
여기에 토마토, 구운 가지, 호박 등 화려한 색깔의 구운 가지 구기자샐러드를 놓으니 먹기 전에 눈부터 즐거워진다.
운아스님은 밥상 위 겹친 영양과 색을 빼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조리 시간을 짧게 가지고 재료가 가진 성격을 잘 파악하는 것도 손맛의 비결.
몸이 원하는 것은 산해진미가 아니라 방큼 캐온 산나물에 된장과 고추장을 넣어 쓱쓱 비벼 먹는 것인지도 모른다.
즐길거리 : 북한산 국립공원 산책로 탐방하기, 연화사에서 북한산 바라보기, 만경대 인수봉 백운대 등 삼각산 절경 감상하기,
운아스님의 1식 3찬 맛보기, 연화사 중정에서 연꽃 배경으로 사진 찍기 등.
가는 길 : 지하철 6호선 독바위역 또는 불광역에서 북한산 구기계곡으로 올라가는 길
자료제공 ㅣ 삼성화재!
|
첫댓글 조은 정보...즐감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