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이고 있는 장작더미
장작 무더기
장작을 패기 위해 잘라 둔 통나무
어느새 12월입니다.
10월 중순의 된서리가 내리는 이변을 보여주기도 했던 올가을, 12월에 들어서며 날씨가 제법 추워졌습니다. 가을 한파가 몰아쳤던 올해는 첫눈 소식도 무척 빨랐습니다. 11월 10일 아주 작은 양이지만 첫눈이 내렸다는 기상청 관측이 있었고, 어제인 12월 1일에도 중부와 제주 산간지방에 눈발이 날렸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올가을에는 뜻밖의 10월 추위에 허둥거리며 일찍부터 가을걷이를 서둘렀습니다. 덕분에 올해의 가을걷이는 비교적 일찍 끝낼 수 있었습니다. 또 그만큼 겨울 채비를 일찍 시작할 수도 있었습니다. 조금 이르게 씨앗을 모두 받았고, 알뿌리도 캤습니다. 이어서 텃밭 정리도 바로 할 수가 있었고, 넓은 면적은 아니더라도 밭에 퇴비를 넣고 가을갈이 추경(秋耕)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올해는 10월 된서리를 맞고 안간힘을 쓰고 있던 배추를 일찍 거두어들여서 예년보다는 2주일쯤 일찍 김장도 했습니다.
지난 주말에는 겨울 동안 땅속에서 겨울을 나며 새봄을 준비하는 구근 식물의 알뿌리를 심었습니다. 수선화와 노랑상사화, 그리고 무스카리, 크로커스, 튤립 따위의 알뿌리들을 심었습니다. 파랑 꽃의 무스카리와 보랏빛 크로커스, 분홍과 빨강 튤립을 포함하여 노랑 크로커스, 노랑 튤립도 심었습니다. 모두 200여 개의 알뿌리를 묻고 땅이 너무 깊게 얼지 않도록 낙엽을 덮어 주었습니다. 이는 겨울 채비라기보다는 내년의 새봄을 준비하는 일이라고 해야겠지만요.
올해는 겨울이 오기 전에 풀꽃의 마른 줄기를 잘라내고 떨기나무를 칭칭 감고 늘어져 있는 덩굴의 잔해를 거둬내는 일도 좀 했습니다. 범부채, 구절초, 참취와 곰취, 벌개미취와 개미취, 섬쑥부쟁이, 익모초, 마타하리, 달맞이꽃, 부처꽃, 꽃범의꼬리, 코스모스, 백일홍, 플록스 따위의 풀꽃 줄기... 새콩과 새팥, 꼭두서니, 박주가리, 쥐방울덩굴, 사위질빵, 환삼덩굴 따위의 마른 덩굴... 이 역시 겨울 채비는 아니지만, 여러해살이 풀들이 홀가분하게 겨울을 나고 새봄을 맞을 수 있도록 돕는 일입니다.
하기야 김장을 마치면 산골 겨울 살림의 가장 큰 준비는 마친 셈입니다. 하지만 산촌에서의 겨울나기를 위해서는 채비를 좀 더 해야 합니다. 늦어도 12월에 들어서면서는 동파 예방을 위하여 수도 펌프와 보일러실의 파이프 보온을 해주어야만 합니다. 보온재로 파이프를 감싸주고 취약한 부분에는 전기가 열을 발산해 주는 열선을 감아줍니다. 또 보일러실 창문과 문짝 틈새에는 문풍지를 대신하는 스폰지를 끼워 바람을 막아 줍니다.
또 겨울을 따뜻하게 나기 위해서 해야만 하는 필수적인 일이 있습니다. 난방을 준비하는 일입니다. 우선 난방 보일러실의 기름 탱크를 채웁니다.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600리터 용량의 기름통을 가득 채워야 합니다. 또 거실의 화목 난로를 준비하고 이 난로를 피울 장작을 마련해야 합니다. 겨울을 나면서 난방을 기름보일러에만 의존할 수 없습니다. 석유를 때는 보일러는 기름값의 부담도 만만치 않을뿐더러 보일러만으로는 충분히 따뜻한 실내 온도를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 장작 난로의 불을 피우면 기름보일러를 계속해서 가동하지 않으면서도 따뜻한 온도의 유지가 수월합니다. 더구나 장작불 난로는 불을 때는 낭만과 호사를 누릴 수 있게도 해줍니다.
11월 초부터는 난로의 장작불을 때기 시작하는 때문에 난로는 미리 연통을 청소해서 이미 설치를 했습니다. 이제 큰일 중의 하나는 통나무 장작을 패는 일입니다. 내년 4월 초까지는 난롯불을 때야하기 때문에 꽤 많은 장작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래서 김장 다음으로 큰 겨울 채비가 바로 장작을 패는 일입니다. 뒷산에서 마련해온 통나무와 농원에서 잘라낸 나무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큰 눈이 오기 전까지 꾸준히 장작을 팹니다. 팬 장작은 햇빛이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서 충분히 말립니다. 그리고 베란다 안의 장작 보관대에 옮겨서 쌓아두었다가 바짝 마른 상태로 난로에 넣습니다. 그래야만 불길도 좋고 연기가 적어 그을음과 연기 냄새를 줄일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지난해에 패서 말려둔 장작을 먼저 때고, 올해 새로 패는 장작은 충분히 말린 뒤에 씁니다.
그런데 난로에 넣는 장작을 준비하는 일은 그리 수월하지가 않습니다. 뒷산에서 간벌한 나무나 쓰러진 통나무 따위를 잘라서 집으로 옮겨오는 일부터 이를 토막 내서 일일이 패는 일 또한 제법 힘이 듭니다. 하지만 장작을 패는 일은 그 무엇보다도 즐거운 일입니다. 장작패기는 실외 활동이 크게 줄어드는 겨울철 동안의 바깥 활동이자 좋은 운동입니다. 온몸을 써서 도끼를 휘두르는 일은 유산소 전신 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금세 숨이 차고 이마에 땀방울이 맺힙니다. 더구나 자신의 힘으로 장작을 패고 난로를 피워서 따뜻한 집안을 만들 수 있다는 기대는 장작을 패는 내내 나 자신을 행복하게 합니다. 장작 난롯불을 피우고 난로 주위에 앉아 시간을 보내며 이야기를 나누는 등의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유쾌해집니다.
장작을 패면서 느끼는 즐거움은 이뿐이 아닙니다. 장작을 패는 것은 내게 묘한 쾌감과 적지 않은 성취감을 안겨 줍니다. 둥근 통나무의 모서리 결을 잘 겨냥하여 도끼날을 힘껏 내리치면 나무는 모진 충격을 머금으며 묵직한 쪼개짐의 신음을 토해냅니다. 유연한 휘두름으로 다시 한번 정확한 타격을 가하면 나무는 경쾌한 비명을 지르며 두 조각으로 갈라집니다. 골프와 같이 통나무 장작에도 이른바 스위트 스팟(Sweet Spot)이 있습니다. 골프 클럽의 스위트 스팟에 강하고 정확하게 맞은 공이 맑은 타격음을 내며 공중으로 기분 좋게 솟구치듯, 힘찬 도끼날에 묵직한 정타를 맞은 통나무 역시 경쾌한 파열음과 함께 보기 좋게 쪼개집니다. 순간 쌓였던 스트레스가 모두 날아가 버리고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기분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수북하게 쌓여가는 장작더미를 보기만 해도 몸은 따뜻해지고 마음은 넉넉해집니다.
엊그제 제법 많은 비가 내린 뒤 하늘이 개며 갑자기 추워졌습니다. 오늘은 아침 기온이 무려 영하 10도까지 뚝 떨어졌습니다. 올해는 겨울 추위도 좀 빨리 찾아오는가 봅니다. 더 추워지기 전에 서둘러 겨울 채비를 마쳐야겠습니다. (2021.12.2.)
첫댓글 쪼개진 나무가 가지런히 쌓여진 사진이 너무 따뜻해 보이고 아름답게 보입니다. 하도 얻어 맞아서 그런가요? 장작을 한자로 이렇게 표기하더군요(長斫 긴 것을 쪼개다, split firewood). 그런데 왜 "장작을 패다"로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깐 이마 더 까!" 같은 심정 때문일까요. 보통 사람이 도끼질을 하면 잘 안되기 때문에 더 때리듯이 패야만 직성이 풀리기 때문일까요. "장작을 하다"라는 표현은 좀 순한 이미지가 있기 때문일까. 예로부터 도끼는 아무나 다루지 못했습니다. 힘 좋은 돌쇠(?) 몫이지요....ㅋㅋㅋ. 장작 패는 장면을 상상하니 옛날 전방 관사에서 화목 때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그땐 왜 그렇게 추웠던지....순우의 글을 읽으니 방이 따뜻해졌어요....
종종티비에서 본 자연인의 생활모습이네요. 장작을 가지런히 정리하는 것도 무척 힘든 일일텐데 특히 도끼자루를 휘두르는 일 역시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름조차 생소한 여러 식물들의 이름을 대하면서 그들과 더불어 자연을 노래하며 유유자적하게 사는 모습이 부럽기도 합니다. 더구나 벌써 눈이 내렸다니 한 겨울이 성큼 다가옴에 따라 건강하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순우친구의 글에 무한한 情感을 맛보네요.가지런히 쌓여놓은 장작더미사진이 순우의 깔끔한 성격을 말해 주는 것 같네요.
씨받이.알뿌리 준비와 김장을 하시곤 각종 꽃뿌리를 심어 내년준비를 마치고,스폰지로 문 틈새를 바르고,장작 패기를 하셨군요.
Sweet Spot를 골프에 비유한 부분이 재미있네요.장작을 패는 일에서 행복감.쾌감.성취감을 느낀다니,피와 땀과 눈물을 흘린 자
만이 시련과 역경의 세월을 이겨내고 느낄 수 있는 심정이 아닐까 유추도 해봅니다.
인간이 어떤 일이 주어지고 그 것을 완성 했을 때,그 과정이 힘들고 아프고 고통스러웠을 때,그 성취감은 더 긍지와 보람으로
다가오지않나 생각도 해봅니다. 성찰과반성을 느끼게 하는 글,고마워요.
** '로버트 레드포드' 같은 미남배우가 장작난롯불을 피우고 사랑하는 여인과 레드포도주 마시는 멋진 장면이 그러지네요.
강원도라 겨울 준비가 좀 이르군요. 김장은 다끝나고 장작을 준비하니 혹여 다칠까봐 걱정도 됩니다만, 순우의 남다른 부지런함이 엿보입니다. 어릴적 가리나무 한 망테 해오면 어머니가 따순 밥을 챙겨주셨죠. 아버지가 새벽에 쇠죽 쑨다며 새 군불을 떼면서 저를 깨우면 아침밥상까지 공부를 했죠. 따순 방에서 ㅡ 모두가 옛 추억이 되며 부모님 생각이 뭉클합니다.
부지런한 사람만 산골생활은 혜택인
것 같아요. 장작을 보니 옛 시골생각
납니다.
시골 추억을 느낄수 있어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