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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는 자 마귀(02)-II
말씀: 계12:9.
마귀의 속임수에서 가장 강렬하고 치열한 속임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것들입니다. 마귀의 속임수가 얼마나 치열한지 한 예를 보십시오. [우리가 기도하러 가다가 점치는 영에게 사로잡힌 어떤 소녀를 만났는데 이 소녀는 점으로 자기 주인들에게 많은 이득을 가져다주더라. 바로 그 소녀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오며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으로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보여 주는 사람들이라, 하며](행16:16-17).
기도하러 가는 사도 바울 일행에게 이 말은 놀라운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도 자신들을 알아주지 않는데 자신들을 알아보는 소녀가 있었습니다. 소녀의 말은 정확합니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보통 여자 애가 아니구먼. 예언의 은사를 받았음에 틀림없어!”라고 할 만 한 상황입니다. 영분별의 은사를 받았다거나, 투시의 은사를 받았다고 할 만 합니다. 그러나 바울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여러 날을 이같이 하므로 바울이 근심하여 돌아서서 그 영(靈)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령하노니 그녀에게서 나오라, 하매 그가 그 즉시 나오니라.] (행16:18).
바울은 이 여자가 하는 말이 아니라 여자 안에서 말하는 영이 어떤 영인지를 정확히 알아보았습니다. 마귀도 옳은 소리를 할 수 있습니다. 마귀도 바른 말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쉽게 속습니다. 우리가 진리를 정확히 분별하여 마귀를 대적하려면 주님께서 주시는 영적 통찰력과 말씀을 사용하는 영적 감각이 있어야만 합니다.
마귀는 육체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함으로써 속입니다. 마귀의 속임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만 속일 수 있다면 마귀는 결코 패할 일이 없습니다. 인류 역사상 마귀의 속임수에 당하지 않고, 그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신 유일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뿐이시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단 한 차례도 예수님을 속이는데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단 한 번도 이겨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마귀를 이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귀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를 계속해서 가리고, 속입니다. [이는 속이는 자들이 세상에 많이 들어왔기 때문인데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 안에 오신 것을 시인하지 아니하느니라. 이런 자가 속이는 자요, 적그리스도니라.](요이1:7). 오늘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것은 마귀의 혁혁한 전과요, 승리입니다. 마귀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을 방해하지 않습니다. 종교를 갖는 것에 대해 방해하지 않습니다.
마귀의 속임수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의 정체성에 대해 집중되고 있습니다. “처녀가 어떻게 아이를 낳을 수 있는가? 분명히 사생아일 것이다.”에서 시작한 속임수는 그럴듯한 이론과 철학, 과학, 신화, 전설, 역사학, 고고학을 모두 동원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게 합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짧은 생물학 지식, 과학 이론과 가설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공격합니다. 하나님을 믿되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하나님이심을 믿지 않는다면 그는 마귀의 속임수에 속은 것입니다. 마귀는 경건의 신비(딤전3:16)를 부정하도록 속입니다. 마귀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부정하도록 속입니다. 마귀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불신하도록 속입니다. [그들 속에서 이 세상의 신(神)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복음의 빛이 그들에게 비치지 못하게 하였느니라.](고후4:4).
마귀는 사람들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빛이 비추지 못하도록 커튼을 치고 있습니다. 그의 속임수는 얼마나 놀라운지 불신자들은 물론이요, 성경을 읽고,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조차 속여 버릴 정도입니다. 여호와의 증인, 몰몬교, 유대교, 이슬람교, 제 칠일 안식일교, 크리스찬 싸이언스 등은 모두 마귀의 속임수에 그대로 당한 대표적인 교단들입니다.
마귀는 자신을 변장함으로써 사람들을 속입니다. 마귀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 사역과 능력을 흉내 냄으로써 속입니다. [그러한 자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며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변형하는 자들이니라. 그것은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니 사탄도 자기를 빛의 천사로 변형하느니라.](고후11:13-14).
마귀는 자신을 완벽하게 그리스도를 모방하고 흉내 냄으로써 자신이 그리스도인 것처럼 속입니다. [아무도 어떤 방법으로든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먼저 떨어져나가는 일이 일어나고 저 죄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드러나지 아니하면 그 날이 오지 아니하리라. 그는 대적하는 자요, 또 하나님이라 불리거나 혹은 경배를 받는 모든 것 위로 자기를 높이는 자로서 하나님처럼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가 하나님인 것을 스스로 보이느니라.](살후2:3~4).
마귀는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속입니다. 이 세상에는 이런 마귀의 속임수에 속임을 당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이 아닌 거짓 하나님을 얼마나 많이 섬기는지 모릅니다. [월간 현대 종교]에서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한국에 자칭 하나님을 선언한 교주가 20명이 넘고, 자신이 재림 메시야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5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몇 년 전에 감옥에서 죽은 역곡의 승리제단[영생교 교주 조희성]이라는 사람은 자기가 이긴 자 예수라는 이름으로 교주가 되어 수년간 많은 사람들을 현혹하고 가정을 파괴하고 재산을 몰수하고 자기에게 순종하지 않는 자들을 죽여 암매장한 것이 발각되어 1심에서 사형, 2심에서 징역 2년을 받고 대법원에 상고를 하였다가 2004년 6월 18일 감옥에서 죽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영생을 주는 자요, 하나님이라고 주장함으로 그가 죽을 때 영생교 신도들은 ‘하나님이 죽었다’는 말도 되지 않는 심리적 공황에 빠져 들었습니다.
박태선이란 사람은 자신이 천부 즉 하늘 아버지라 하고 신앙촌, 장막 성전이라고 해서 교세를 확장하여 수십 년간 속였지만 1990년 2월에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지금도 그의 무덤 곁에서 그의 부활을 기다리고 떠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문선명이라는 사람은 몇 년 전 미국의 워싱턴포스트지 강단에서 자칭 참메시야 왕에 등극하는 제관식을 가졌습니다. 그 자리에는 내로라는 정치계의 거물들과 경제계의 거물들이 그를 왕으로 떠받들고 알현하는 장면들이 뉴스를 탔었습니다. 그러나 그도 나이가 들어 결국 2년 전에 죽었습니다.
“안상홍 증인회”라는 참 예수교라는 교회가 있는데 그가 죽은지 수 십 년이 되었으나 그의 추종자들은 그가 재림 예수이며 지금 영으로 재림하여 와 계시다고 주장하는데 얼마나 열심히 전도하는지 놀랍기만 합니다.
정명석이라는 이단의 괴수는 많은 젊은 여대생들을 농락하고 사기 쳐서 재산을 불렸는데 그는 지금 가정파괴와 성 폭력 죄로 감옥에 갇혔습니다. 좁은 대한민국에 메시야가 얼마나 많은지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마지막 때에 등장할 거짓 하나님은 자신이 모든 것 위에 경배를 받으려 할 것이며, 경배를 강요할 것입니다. 마귀는 자신을 그리스도요, 하나님이라고 가장하고 교묘하게 변장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판검사나 의사나 정계나 재계의 명성 있는 사람들이나 지식인들이 그렇게 속는가? 하지만 마귀에게 속는 자들은 지식이나 재산이나 권력 등은 아무런 방패가 되지 못합니다.
마귀는 진리가 없기 때문에 모든 일이 다 속임수입니다. [그가 오는 것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권능과 표적들과 거짓 이적들과 불의의 모든 속임수와 함께 멸망하는 자들에게 오는 것이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여 구원받지 못하였기 때문이라.](살후2:9~10).
어떤 사람들은 초자연적인 현상이라도 일어나면 모두 성령의 은사나 표적인 줄로 속습니다. 방언이나 병 고침, 예언 등의 은사가 다 주님이 주신 성령의 은사라고 어떻게 단정할 수 있습니까? 마귀는 모든 권능과 표적과 거짓 이적을 행할 수 있습니다. 하늘에서 불을 내릴 수도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이적과 표적보다 우리는 그 원천이 누구인지, 누구로부터 오는 것인지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귀에게 속임을 당하면 평생을 주의 이름으로 대언하고, 마귀들을 내 쫓고, 많은 놀라운 일을 한 사람들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결국 주님으로부터 쫓겨납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내게 이르기를,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대언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주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지 아니하였나이까? 주의 이름으로 많은 놀라운 일들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결코 알지 못하였노라,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너희는 내게서 떠나라, 하리라.](마7:22~23).
이들은 마귀에게 철저하게 속은 자들입니다. 이들은 평생 동안 마귀에게 속아서 마귀의 일만 한 것입니다. 마귀에게 속고 있으면서 자신은 주의 이름으로 대언하고, 주의 이름으로 놀라운 일들을 행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주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았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마귀들을 내쫓는 능력을 주는데 이는 완벽한 속임수를 위한 것입니다.
저는 매주 집회 때마다 마귀를 내쫓는 축사(逐邪) 집회를 본 적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 마귀의 역사 같은데, 그들은 마귀가 어떻게 마귀를 내 쫓는가? 하며 강력하게 반발했습니다. 자기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마귀를 내좇았다면서 “성령을 모독하는 죄를 짓지 말라”고 엄히 경고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태복음 7장을 펴서 이 말씀을 읽어 주었습니다. 이들은 분명히 “주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았습니다.”라고 했더니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가만히 있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속임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교인들이 속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교인들의 모든 간증을 다 주님의 사역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영적으로 놀라운 일들이 많이 있지만 그 속에는 거짓 이적들, 능력도 많이 있습니다. 사탄의 속임수는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놀랍습니다. 이들이 궁극적으로 누구를 속이려는 것입니까?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대언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들과 이적(異蹟)들을 보여 할 수만 있으면 바로 그 선택받은 자들을 속이리라.](마24:24).
큰 표적, 큰 이적은 큰 속임수를 행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많은 사람들을 속일 수 있습니다. 이들의 목표는 신자들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 목표입니다. 용한 점쟁이는 잘 맞춥니다. 병도 낫게 합니다. [그가 큰 이적들을 행하여 사람들의 눈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 위로 내려오게 하고](계13:13). 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성경을 조금 아는 사람들이라면 하늘에서 불을 내린 사람이 엘리야임을 알 것입니다. 그것만 알고 있다면 하늘에서 불을 내리는 자가 하나님의 대언자라고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욥기에 보면 사탄도 하늘에서 불을 내려 욥의 아들들의 재산을 다 태워 버린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온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내렸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주님이 마귀를 통해 이런 속임수를 허락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너희 가운데서 대언자나 꿈꾸는 자가 일어나 표적이나 이적을 네게 주며 그가 네게 말한 그 표적이나 이적이 이루어질 때에 이르기를, 네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따라가서 그들을 섬기자, 할지라도 너는 그 대언자나 그 꿈꾸는 자의 말들에 귀를 기울이지 말라. [주] 너희 하나님께서 너희가 너희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알기 위해 너희를 시험하시느니라.](신13:1~3). 우리 마음을 시험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진리의 말씀대신 사람들의 꿈이나, 초자연적인 현상, 이적, 표적, 기적들을 더 신봉하고 믿는 것을 싫어하시며, 그런 것들을 시험하십니다.
마귀는 거짓말로 속입니다. 마귀는 속이는 자입니다. 마귀는 사람을 속이고, 온 세상을 속이는 자입니다. 주님은 마귀가 거짓의 아비라고 증거 하셨습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므로 너희 아비의 욕망들을 행하려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였고 자기 안에 진리가 없으므로 진리 안에 거하지 아니하였으며 거짓말을 할 때에 자기의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이기 때문이라.](요8:44). 하나님은 빛들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은 영들의 아버지시오, 모든 것들의 아버지이지만 결코 거짓의 아버지는 아니십니다. 마귀는 진리가 그 안에 없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며, 거짓의 아비입니다. 거짓은 모두 거짓의 아비 마귀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속지 말라.” 이것은 주님의 엄중한 명령입니다. 마귀에게 속는 것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마귀의 속임수를 알아채고, 대적해야 합니다. [그분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속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기를, 내가 그리스도라 하며, 때가 가까이 왔다. 하리라.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을 따라가지 말라.](눅21:8).
우리는 속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데 성경을 가지고 영들을 시험해 보고, 그들의 교리를 시험해 보아야 합니다. [모든 것을 시험해 보고 선한 것을 굳게 붙들라.](살전5:21). 사람들이 겉모습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들의 말만 들어서도 안 됩니다. 열매를 살펴보고, 무슨 성경을 사용하는지, 성경에 대한 태도가 어떠한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마귀들은 마귀의 교리로 속입니다. 마귀들은 매우 그럴듯한 교리로 사람들을 속입니다. 성경을 사용해서 예수님을 시험했던 마귀는 동일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속입니다. 주님은 속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마귀들은 마귀들의 교리가 있습니다. 신학교 강단에서 기독교 교리를 가르치는 많은 사람들이 사실은 건전한 교리가 아니라 마귀의 교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마귀의 교리를 선호합니다.
[한편 성령께서 마지막 때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유혹하는 영들과 마귀들의 교리들에 주의를 기울일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시는데](딤전4:1). 오늘날 마귀의 교리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남녀평등(男女平等)입니다. 마귀는 여자들을 자유와 해방을 준다는 명분으로 성경의 가르침을 공격합니다. 아내는 남편을 존경하고 복종해야 한다는 성경적 진리 대신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마귀들의 교리입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신학자로 칭송받는 김 세윤 교수(미국 풀러신학교 신약학 교수)는 7월 5일 강남교회(송태근 목사)에서 총신대 신대원 여동문회(동문회장 채옥희 전도사)가 주최한 '성경에 나타난 여성의 역할'이라는 주제의 세미나에서 '고린도전서 14장 편집론'을 제기했습니다. "'여자는 교회 안에서 잠잠할지니'라는 구절은 고린도전서 14장 34, 35절을 사본학적으로, 또 바울의 남녀관계에 대한 가르침의 전체적 맥락에서 살펴봤을 때, 바울이 쓴 말이 아니고 후대에 쓰여 현재의 성경에 불안하게 삽입된 것이 확실하다". 그는 남녀평등의 교리를 주장하기 위해서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부인할 수 밖에 없었고, 후대에 편집되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김 세윤 교수는 "현재 우리 사회 곳곳에서 여성의 리더십이 약진하고 있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교회 안에서만 여성 리더십이 거부되고 있다. 여성 해방의 복음을 가지고 있는 교회 안에서만, 한 때 이 땅에서 여성 해방을 주도한 교회 안에서만, 여자들이 잠잠하라고 억눌림을 받고 있는 겁니다. 이 또한 얼마나 씁쓸한 역설입니까?"라는 말로 강의를 끝냈다.
이 강의를 듣는 사람들의 반응을 신문은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강남교회 본당 1층을 가득 메운 600여 명의 참석자들은 김 교수의 강의에 대해 '속이 시원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세미나를 기획한 채 옥희 전도사(총신대 신대원 여동문회 회장)는 "강의가 끝나기 전에 자리를 뜨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며 "대부분 참석자들이 속이 정말 시원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했다. 그는 강의 내내 "성경에 쓰여 있는 문자보다는 정신이 중요하다"는 말을 수차례 강조했다. 문자에 쓰여진 그대로를 믿기보다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배경을 따져보고 이해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마귀들의 교리를 따릅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복음주의 강단, 교회, 신학교라는 곳마저 마귀들의 일꾼이 완전히 점령하고 있음을 우리는 분명히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절대 학위와 직책에 credit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속는 것입니다. [참으로 지위가 낮은 자들은 헛되며 지위가 높은 자들은 거짓되니 저울에 달면 그들을 다 더해도 허무보다 가볍도다.] (시62:9). men of high degree(높은 학위)의 소유자들은 속이는 자들인데, 마귀들의 교리를 열심히 전파합니다.
마귀들의 교리는 말씀의 절대성, 권위를 낮추는 대신 인간의 가치는 계속해서 부추기고 높입니다. 인본주의는 마귀가 만들어낸 대표적인 교리입니다. 오늘날 현대 역본들이 끊임없이 인간의 자화상을 높이는 것을 우리는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마귀들의 교리는 기복 신앙입니다. 마귀들의 영에 사로잡힌 목회자들은 성경 속에서 유대인들에게 약속된 땅에 관련된 축복들을 우리들의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하늘에 있는 영적인 복을 추구하기보다, 땅에 속한 육신적인 복을 추구합니다. 이것은 마귀들의 교리입니다. 누가 말하기를, “가난은 죄다.”라고 말한다면 그는 마귀의 교리를 교회에서 전파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몸이 아픈 것은 죄다. 병은 불법이다.”란 설교는 마귀의 교리를 전파하는 것입니다. 바울도 아팠고, 디모데도 아팠습니다. 요한이 사랑하던 가이오도 아팠습니다. [장로는 극진히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내가 진리 안에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 사랑하는 자여, 무엇보다도 네 혼이 잘됨 같이 네 일이 잘되고 건강하기를 내가 바라노라.](요삼1:1~2). 이 말은 가정법으로써 현재 가이오가 병들었음을 전제로 하는 말입니다. 사도 요한은 자신이 극진히 사랑하는 가이오가 믿음으로 속사람이 강건한 것처럼 육신의 아픈 병도 낫기를 기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절친한 동역자 에바브로디도를 보십시오. [그럼에도 나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는 자요 동료 군사요, 또한 너희의 사자(使者)로서 내게 부족한 것들을 공급한 자인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였노라. 그가 너희 모두를 사모하고 있으며 자기가 병든 것을 너희가 들었으므로 심히 근심 하였느니라, 참으로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긍휼을 베푸셨으며 그에게 뿐만 아니라 내게도 긍휼을 베푸사 내가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빌2:25~27).
그는 병들어 죽게 되었다가 겨우 살아났습니다. 역시 바울의 동역자였던 드로비모를 보십시오. [에라스도는 고린도에 머물러 있으나 드로비모는 병들어서 내가 밀레도에 남겨 두었노라.](딤후4:20).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도요, 병 고침의 능력을 가졌던 바울과 같이 있었지만 그는 병이 들어 밀레도에 남아야 했습니다. 바울이 못 고치는 병이 있을까 싶지만 그의 동역자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병이 있었고, 병으로 인해 선교 사역을 중단하기도 했습니다.
선교사역 초기에 바울은 그의 앞치마만 가져다가 병든 자들에게 대기만 해도 질병들이 떠나갔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의 손으로 특별한 기적들을 행하셨으므로 사람들이 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자들에게 대기만 해도 질병들이 그들에게서 떠나고 악한 영들도 그들에게서 나가더라.”(행19:11-12) 이 일을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며 다만 바울을 도구로 쓰신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자들이 모든 질병을 다 고침 받지는 않았으며 바울의 동역 자들도 바울 자신도 질병을 안고 살았습니다.
“계시들이 넘침으로 말미암아 내가 분량 이상으로 높여지지 않게 하시려고 주께서 내게 육체 안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사 나를 치게 하셨으니 이것은 내가 분량 이상으로 높여지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후12:7) 하셨으며 신유는 초대교회에 사도들에게 표적으로 주신 것입니다.
오늘날 소위 치유 사역, 신유 은사를 가졌다는 사람들이 성경의 내용과 얼마나 다른 주장을 하고 있는지 우리는 기록된 성경을 통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마귀들의 교리를 따르는 기복주의 신앙이 얼마나 그릇되고 비성경적이며, 많은 신자들이 마귀에게 속고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마귀들의 교리는 배금주의입니다. 돈을 사랑합니다. 오늘날 교회가 영적인 능력, 경건의 능력을 잃어버린 주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들이 돈을 사랑하고 돈에 매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귀는 성도들이 생명의 길 되신 주님 대신 발람의 길을 따르게 합니다. 발람의 탐욕의 화신입니다. [그들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그들이 가인의 길로 갔고 대가를 위해 발람의 잘못을 따라 탐욕스럽게 달려갔으며 고라의 반역 가운데서 멸망하였도다.](유1:11).
교회는 돈으로 일하는 business 조직이 아닙니다. 교회는 금과 은 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하는 주님의 몸입니다. [그들이 옳은 길을 저버리고 보솔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라가며 길을 잃었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였으나](벧후2:15).
잘 살아 보세! 는 성도들의 표어가 아닙니다. 성도들은 바르게 살아 보세! 라고 해야 합니다. 끝없이 부를 동경하는 신앙, 부를 추구하는 신앙은 마귀의 교리입니다. 성경의 가르침은 이렇습니다. [너희 행실을 탐욕이 없게 하고 너희가 가진 것들로 만족하라. 그분께서 이르시되, 내가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고 너를 버리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13:5).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주님이 나를 도와주시지만 언제까지 도와주실지 알 수 없다. 주님이 안 계신 그 날을 위해 모으자, 저축하자, 벌어 두자. 주님이 나를 안 도우시면 쓸 수 있는 돈을 마련해 두자.” 이런 자세를 보입니다. 성경은 현재 가진 것에 만족을 명합니다. [그러나 만족하면서 하나님을 따르는 것은 큰 이득이니 이는 우리가 이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아니하였으므로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음이 확실하기 때문이라.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우리가 그것으로 만족할 것이니라.](딤전6:6~8). 만족은 경건의 첩경입니다.
성도들이 마귀들에게 속임을 당하는 구체적인 예를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속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뿐만 아니라 [아무도 어떤 방법으로든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살후2:3)고 말씀합니다. “아무도 어떤 방법으로든지”- 이는 마귀가 사람을 속이는데 다양한 방법이 있고, 어떤 사람이라도 사용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아무도 너희를 속이지 못하도록 주의하라.](마24:4). 하셨습니다. 마귀는 인류 6,000년 역사에서 사람을 속이는데 단 한 명(예수 그리스도)을 제외하고 실패해 본 적이 없습니다. 마귀는 사람을 속이는 데는 고도의 전문가입니다.
- 마귀는 거짓 대언자들, 점쟁이들을 통해 속입니다. [군대들의 [주]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의 한 가운데 있는 너희의 대언자들과 너희의 점쟁이들이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고 너희가 꾸려고 하여 꾼 너희의 꿈들에 귀를 기울이지 말라.](렘29:8).
오늘날 자칭 대언자니 사도니 주의 종이니 하는 사기꾼들이 교회 내에 넘쳐 나고 있습니다.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는 점쟁이들이 얼마나 많은지(특히 기도원에 넘침), 성경에 약한 형제자매들을 말로 속입니다. 이들이 가끔 맞추는 점괘로 인해 사람들은 그를 신령한 사람, 예언의 은사가 있는 사람으로 높여 주고, 계속해서 그 사람의 말에 주목하게 되는데 후에는 성경 말씀이나 설교 말씀보다 그 사람의 입을 더 쳐다보게 만듭니다. 완벽히 속은 것입니다. 기도원에 잘못 출입하다가 속는 성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 헛된 말로 속입니다. [아무도 헛된 말들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자녀들에게 닥치나니](엡5:6). 성경이 말하는 헛된 말은 주로 철학이나 과학입니다. 성경은 철학을 헛된 속임수라고 말합니다(골2:8). 과학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오 디모데야, 속되고 헛된 말장난과 거짓되게 과학이라 불리는 것의 반론들을 피하며 네게 맡겨진 것을 지키라.](딤전6:20).
이런 것들로 사람을 속이는데 교육이 신이요, 우상이 된 오늘날 사람들에게 이 둘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파괴하는 제일 큰 속임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진화론은 과학이 아님에도 과학이란 이름으로 몇 백 년 동안 사람들을 속여 오고 있습니다. 이런 예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유식하다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사람들이 주장하는 과학으로 증명하려합니다.
- 세상의 전통으로 사람을 속입니다. [어떤 사람이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하지 못하도록 조심하라. 그것들은 사람들의 전통과 세상의 초보 원리들을 따르는 것들이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들이 아니니라.](골2:8). 각 나라마다 민족마다 고유 전통이 있습니다. 이런 전통들은 성경적 전통이 아닙니다. 크리스마스나 부활절이 성경적 전통입니까? 전혀 아닙니다. 추수 감사절이 성경적 전통입니까? 전혀 아닙니다. 이런 것들은 성경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종교적 전통이며, 바빌론의 풍습입니다.
묵주를 돌리는 것, 십자가를 세우는 것, 종탑을 세우는 것 등은 교회의 전통이 아닙니다. 우리 조상들은 제사를 지내는 전통이 있습니다. 제사는 고려 시대에만 해도 없었습니다. 조선 시대에 정립된 전통인데 이 전통으로 인해 신앙이 흔들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사 상 앞에서 절하고, 무덤 앞에서 절하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죽은 사람 앞에서 절하는 것은 우상 숭배와 같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을 예절의 문제로 언급하며 기독교를 공격하고, 신자들을 핍박합니다. 이런 것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분명 마귀들의 속임수입니다.
- 유혹하는 말로 속입니다. [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유혹하는 말들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골2:4). 유혹하는 말이란 사람들이 듣기 좋은 말입니다. 성공, 축복, 건강, 부자가 되는 길 등이 오늘날 설교의 주요 테마가 된 것은 이것들이 바로 듣기 좋은 말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진리냐? 비 진리냐의 기준보다 듣기 좋은 말인가? 듣기 싫은 말인가에 더 관심을 표명합니다. [그들이 건전한 교리를 견디지 못하는 때가 오리니 그들이 귀가 가려워 자기 욕심대로 자기를 위해 선생들을 쌓아 두고 또 진리에서 귀를 돌려 꾸며 낸 이야기들로 돌아서리라.] (딤후4:3~4). 이것이 말세의 현상입니다.
마귀들의 가르침이 교단을 장악하고, 각 성도들의 영적 가치관을 지배합니다. 사람들은 가난이 죄인 줄 알고, 질병이 저주인 줄 압니다. 그렇다면 머리 둘 곳도 없으셨던 주님은 어떡합니까? 사도들이나 바울은 어떡합니까? 오늘날 은사주의 자들은 가난하면 믿음이 없다. 저주받았다고 일종의 복채를 놓고 푸닥거리를 하도록 만듭니다. 주님의 연단이나 징계, 심판 등에 대해서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복주시기 위해서 불같은 시련을 보내시는 주님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하고 성공과 축복, 긍정적 사고방식, 적극적 사고방식 등의 이상한 신학이 설교의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오순절 신학이 성령 운동, 성시화 운동이란 이름으로 전파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마귀의 신학입니다. 아합이 속은 것은 그의 대언자들이 유혹하는 말로 인한 것입니다. 유다의 왕들은 예레미야의 듣기 싫은 소리보다는 거짓 대언자들의 거짓말이 훨씬 듣기 좋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모두 망했습니다. 건전한 교리를 견디지 못하는 신자들이 너무 많은 시대입니다.
- 종말론으로 속입니다. [아무도 어떤 방법으로든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먼저 떨어져 나가는 일이 일어나고 저 죄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드러나지 아니하면 그 날이 오지 아니하리라.](살후2:3). 오늘날 가장 많이 속이는 분야 가운데 하나는 종말론입니다. 휴거 파동을 비롯해서 지금도 종말론에 빠져서 가정도 버리고 단체 생활을 하는 교회들이 엄청 많습니다. 주님의 재림 날짜를 계산하는 사람들도 모두 같은 부류입니다.
-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속입니다. 마귀는 매우 종교적인 존재입니다. 모든 종교는 같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어느 종교에나 구원이 있다. 기독교는 너무 배타적이고 편협하다. 종교 통합 운동이란 하나님이 유일하심을 배제하고 하나 되자는 운동입니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종교를 가진 사람은 이미 마귀에게 속은 사람입니다. 생명의 말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내 안에 가져야지 종교는 아무리 많이 가져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기독교란 종교를 가지고 있고, 기독교에 심취해서 오랫동안 교회 생활을 했기 때문에 구원받았다고 믿는다면 크게 오해한 것입니다. [그러나 너희 안에 하나님의 영께서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 안에 있지 아니하고 성령 안에 있나니 이제 어떤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는 그분의 사람이 아니니라.](롬8:9). 내 안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이 거하시느냐? 아니냐가 핵심입니다.
- 자기에게 죄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다 속은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에게 죄가 없다고 말하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속이며 진리가 우리 안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1:8). 구원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는다(구원파)고 말하는 사람들은 모두 속은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내가 죄인 중의 괴수니라”(현재)고 했지 “괴수였느니라” 과거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육신의 몸을 입고 있는 동안 죄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게 되지 않습니다. 주님이 오시면 우리는 죄 자체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집니다.
- 죄를 지어도 자백하면 깨끗하게 되기 때문에 죄를 지어도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속은 것입니다(갈6:7).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죄를 향해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서 더 살겠느냐?](롬6:2), [그러면 무슨 말을 하겠느냐? 우리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므로 죄를 짓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롬6:15). 물론 자백하면 용서를 받고 깨끗하게 되겠지만 이 세상에서나 오는 세상에서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다윗, 삼손, 바울...). 죄를 짓고 나서 회개하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마귀의 속임수에 놀아나고 있다고 생각하면 틀림없습니다.
- 자신이 뭔가 된 줄로 아는 교만한 사람은 속은 것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아무것도 아니면서 스스로 무엇이나 되는 것으로 생각하면 그는 자기를 속이느니라.](갈6:3). 교만은 스스로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이 세상에서 지혜로운 줄로 여기거든 그는 어리석은 자가 될지니 그래야 그가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고전3:18).
세상에서 지혜로운 것처럼 보이지 마십시오.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요5:30a) 고백하신 주님처럼 우리는 스스로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 점을 매우 강조하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고 내가 그 안에 거하면 바로 그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나니 나 없이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요15:5).
그리스도를 통해, 믿음으로 행하지 않은 일은 주님 앞에서 계산되지 않는 일들이요, 가치 없는 일들입니다. 세상 지혜로 인해 속을 수 있습니다(고전3:18). 철학, 과학, 전통, 문학, 고고학, 역사학, 천문학 등의 학문이나 히브리어, 헬라어, 고대 아람어, 라틴어 등에서 박사 학위를 몇 개씩 땄다고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에도 지혜롭다고 생각하면 속은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하나님 앞에 어리석은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 우리가 영적 성장을 멈추면 속습니다. 자신의 현재 신앙 수준에 만족하고 말씀을 읽고 공부하고 진리의 지식의 보화를 캐는 일을 멈추면 속게 됩니다(엡4:14). 어린 아이들은 순수하지만 쉽게 속습니다. 믿음에서 장성한 분량의 어른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현재 우리를 속이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교리의 풍조는 수없이 많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제부터 더 이상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들의 속임수와 몰래 숨어서 속이려 하는 자들이 사용하는 간교한 술수에 의해 교리의 모든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려 밀려다니지 아니하고](엡4:14).
-뿌리지 않는데서 거둘 수 있다고 믿으면 그는 속은 것입니다. [속지 말라. 하나님은 조롱당하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또한 그것을 거두리라.](갈6:7). 일확천금을 꿈꾸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신데렐라 콤플렉스는 자매들에게 늘 숨겨져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비상하는 그런 꿈을 꾸어보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종교는 어느 정도 그런 욕구를 충족시켜 줍니다.
그러나 주님은 심은 대로 거두는 영적 법칙을 말씀해 주십니다. 우리는 기도로 심고, 말씀의 씨앗을 심고, 물질로 심고, 무엇인가를 심고 뿌려야 합니다. 주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진정한 비상(飛上)은 주님께서 내가 심은 것들에 복을 주실 때에 맛볼 수 있습니다. 오병이어를 드렸는데 5천명을 먹이시고, 내가 드린 작은 헌신을 받으시고 몇 백배 복을 주시는데 그것이 바로 진정한 일확천금인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4대째 120년을 내려온 유명한 외국인 선교사 가문이 있는데, 바로 “언더우드 가문”입니다. 몇 년 전에 그 후손들이 한국에서 완전히 철수하게 되어서 신문과 방송마다 언더우드 가문이 한국 사회에 봉사한 일대기를 소개했습니다. 백두산 천지 못을 측량했고, 연세대를 만들었으며, 새문안 교회를 비롯한 많은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언더우드가 하나님 앞에 드린 헌금 이야기중의 하나입니다. “미국의 어느 주일학교 예배 시간에 있었던 일입니다. 헌금 시간이 되었습니다. 모든 아이가 헌금을 하는데 한 아이만 헌금은 하지 않고 눈을 감고 앉아 있었습니다. 주일학교 담임선생님이 아이를 따로 불러 사정을 물어보았더니 아이는 집이 너무 가난하여 헌금할 돈이 없어 대신 그 시간에 기도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무슨 기도를 하느냐고 다시 물었습니다.
그 아이는 "하나님께 내 몸과 생명과 내 일생을 바치겠다고 기도드려요." 했습니다. 그 말에 감동한 선생님은 아이를 격려하고 나서 약간의 돈을 주고는 잔돈으로 바꿔 매주일 1달러씩 헌금하라고 말했습니다. 몇 주일이 지나자 매주 꼬박 꼬박 헌금을 하던 소년이 더 이상 헌금을 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다시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잔돈으로 바꿔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헌금을 했는데 사먹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어요. 사먹으면 죄를 지을 것 같고... 그래서 지난 주일에 몽땅 바치고 이제는 다시 기도만 하기로 했어요." 했답니다.
우리는 얼마나 헌금을 놓고 흥정합니까? 부끄럽습니다.
어려서부터 이렇게 성실하게 기도하던 소년이 바로 1884년 봄에 우리나라에 온 최초의 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 목사님입니다. 그는 자손 대대로 우리나라에 있으며 우리나라 아이들을 입양해서 아들로 삼으면서 한국을 위해 봉사했습니다. 지금 4대째 이 나라에 있으며 우리나라를 위해 봉사했습니다. 1885년 처음 한국에서 지은 시가 바로 “메마르고 가난한 땅,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였습니다. 주님께 자신을 드린 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얼마나 큰일을 행하셨는지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으면 그는 속은 것입니다. [더욱이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약1:22). 마귀는 사람들의 마음을 속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 은혜를 받은 듯하고, 기분이 좋아지고, 성령이 충만해 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가 아무런 실행을 하지 않는다면 그는 마귀에게 속은 것입니다. 생명과 삶은 영어로는 같은 단어인 life입니다. 주님께서 새 생명을 주신 것은 새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믿음에는 반드시 믿음에 합당한 삶이 뒤따릅니다. 복음에는 복음에 합당한 삶이 있음으로 우리가 믿는 복음의 진실성이 확증됩니다. 마귀는 신앙과 삶을 분리함으로써 우리를 기만합니다.
- 경건한 것처럼 보이지만 혀를 재갈 물리지 못한 사람이라면 그는 마귀에게 속은 것입니다.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신앙심이 있어 보이되 자기 혀를 제어하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신앙 행위는 헛것이니라.](약1:26). 입은 마음속에 가득한 것을 냅니다. 혀를 제어하지 않는다면 그는 마음속에 들어 있는 모든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혀는 불법의 세계입니다. [혀는 불이요, 불법의 세계니라. 혀는 우리 지체들 가운데서 그러하여 온 몸을 더럽히고 본성의 행로에 불을 붙이며 지옥 불 위에 놓여있느니라.](약3:6). 그래서 혀에서 실수가 없으면 그는 완전한 자라고 합니다(약3:2). “저 사람이 말은 저렇게 해도, 속마음은 착한 사람이예요.”, “말은 저래도 사람은 좋아요.” 등은 모두마귀에게 속임을 당한 상태임을 보여 줍니다.
사람이 생각으로 짓는 죄 다음으로 많이 짓는 죄는 단연 말로 짓는 죄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결심하기를, [내가 말하기를, 내가 내 길들을 조심하여 내 혀로 죄를 짓지 아니하리니 사악한 자가 내 앞에 있을 때에 내가 재갈을 물려 내 입을 지키리라, 하였도다.](시39:1)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또 [오 [주]여, 내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시141:3)라고 기도했습니다.
헛된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헛된 사람이요, 거짓된 말을 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요, 쓸데없는 말을 하는 사람은 쓸모없는 사람입니다. 비속 되고 허황된 말을 하는 사람은 허황된 사람입니다. 생각이 말로 나오고, 말이 곧 그 사람의 사람됨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들이 무슨 쓸데없는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그것에 대하여 회계 보고를 하리라.](마12:36).
주님은 우리가 거짓말을 할 때나 헛된 말을 할 때나 부정적이고 불신의 말을 할 때나 다 지켜보십니다. 우리가 말한 것을 다 들으십니다. 사람들도 헛소리를 하면 짜증을 내고, 쓸데없는 말을 하면 성질을 냅니다. 하물며 하나님 앞에서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고 무시하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말이 많은 곳에는 죄가 부족하지 아니하나 자기 입술을 금하는 자는 지혜로우니라. 의인의 혀는 최상의 은 같고 사악한 자들의 마음은 가치가 적으니라. 의로운 자의 입술은 많은 사람을 먹이나 어리석은 자들은 지혜가 부족하여 죽느니라.] (잠10:19~21). 우리는 말로써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늘 감사하는 말, 찬양의 입술을 통해 주님을 영화롭게 해드려야 합니다.
일단 말 수를 줄이는 것이 최선입니다. [말이 많은 곳에는 죄가 부족하지 아니하나 자기 입술을 금하는 자는 지혜로우니라.](잠10:19). [많은 말에 대해 대답해야 하지 아니하겠느냐? 말로 가득한 사람이 의롭다고 인정받겠느냐?](욥11:2). 말이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실수가 나오고 죄가 많아집니다.
말을 급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네 입을 경솔히 열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급하게 어떤 것도 말하지 못하게 할지니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나니 그러므로 네 말 수를 적게 할지니라. 꿈은 일이 많아 생기고 어리석은 자의 목소리는 말이 많아 알려지느니라.] (전5:2~3). 급한 마음에 쏟아 낸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가 없습니다.
-악한 사귐을 하면서도 자신은 아무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그는 속은 사람입니다. [속지 말라. 악한 사귐은 선한 습성을 부패시키느니라.](고전15:33).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고사성어로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고 합니다. 먹을 가까이 하는 자는 검어진다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악한 사귐을 하게 되면 선한 습성이 부패해집니다. 교회를 나오는 친구가 불신자들을 가까운 친구로 두면 그 불신자 친구가 교회로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교회를 빠지게 됩니다. 불신자와 결혼하면 불신자 배우자를 믿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교회와 멀어지게 되고, 믿음에서 실족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물이 거꾸로 흐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만큼 이미 마귀에게 마음이 속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 믿는 자는 아무나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는 속은 것입니다. [불의한 자들이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할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속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자나 간음하는 자나 여성화된 남자나 남자와 더불어 자신을 욕되게 하는 남자나](고전6:9). 불의한자, 음행하는 자, 우상 숭배자, 음행하는 자, 여성화된 남자, 동성애자 등이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완전히 속은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연예인교회가 있듯이 미국에는 동성애자들의 교회도 생기고 있습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은혜로 값없이 주어지는 것이지만 상속은 주님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를 믿은 후에 평생 동안 자기 십자가를 져 본적도 없고, 자기를 부인해 본 적도 없고, 주를 위해 고난을 받아 본 적도 없고, 믿음으로 살아 본적도 없다면 그는 유업의 상속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 이 세상에 완전 무오한 성경은 없다고 생각하면 이미 속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의 보존을 약속하셨습니다.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 (시12:6~7).
하나님의 분명한 약속의 말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초의 원본은 사라지고 없으니까..., 번역본에는 사람들이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 등으로 말씀의 무오성을 부인하고, 아무 성경이나 입맛에 따라 선택하는 자들은 마귀에게 완전히 속은 것입니다.
NIV, NASV 등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속은 줄도 모른 채 그것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교회는 130 년 동안이나 성경 문제에 관한 한 마귀에게 완전히 속임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이단들이 다름 아닌 잘못된 성경에서 튀어나왔습니다. 성경 해석은 바른 성경 본문의 바탕에서 나와야 합니다. 틀린 본문을 두고 바른 해석을 할 수 없습니다.
- 이득을 경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마귀에게 속은 사람들입니다. [마음이 부패하고 진리가 없어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이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비뚤어진 언쟁이 생기나니 너는 그러한 자들로부터 떠나라.](딤전6:5). 기복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소유가 늘어나고, 집이 커지고, 차가 좋아지면 자신의 믿음이 좋아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망한 사람들은 믿음이 없어서 망했다고 여깁니다. 이들은 눈에 보이는 이득을 경건을 평가하는 척도로 생각합니다.
이는 큰 오해입니다. 이득을 경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마음이 부패하고 진리가 없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부(副)는 결코 경건의 척도가 아닙니다. 은사(恩賜)역시 경건의 척도가 아닙니다. 고난 가운데 참고 인내로 견디는 사람이 경건한 사람입니까? 고난이 없이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이 경건한 사람입니까? 대부분의 우리나라의 그리스도인들은 병들고, 가난하고, 고난 가운데 신음하는 성도들은 믿음이 없어서, 죄 가운데 있는 줄로 압니다.
전에 어떤 목사님은 목회를 하는 중에 뇌성마비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친구 목사에게 전화해서, “나는 이제 목사 다 해 먹었다!”며 울더란 것입니다. 그는 아이가 불구나 장애인이 된 것이 하나님의 저주라고 생각했고, 자신의 믿음과 경건이 형편없다고 판단 받을 것을 두려워 한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가련한 일입니까?
저와 잘 아는 한 목사님은 자신의 사비를 다 털고 융자를 받아 크게 교회를 시작했지만 I.M.F 때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면서 교회는 경매에 넘어가고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자기 집까지 다 날렸습니다. 그때 그분은 절망했습니다. 빚쟁이들에게 매일 전화가 오고, 사기죄로 검찰에 고발을 당했습니다. 한 평생 주님 한 분만 섬겼는데,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기는가? 절망했습니다. 주님의 연단과 단련의 손길이라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믿음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님께 저주를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득을 경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Gain is godliness! 이것이 오늘날 현대 교인들의 마음을 휘잡는 마귀의 속임수인 것입니다. 주님은 이런 사고를 가진 자들로부터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 홀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는 마귀에게 속은 것입니다. 공동체 신앙은 상승효과가 있습니다. 기러기를 보십시오. 기러기 한 마리가 혼자 날라 가는 외기러기는 없지 않습니까? 일직선으로 날아가든지 브이자형을 만들어서 날아갑니다. 그것은 앞에 있는 기러기가 날개를 치면 그가 바람을 일으켜서 뒤에 있는 기러기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 상승효과를 가지고 날라 올라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러기 앞에선 기러기가 날아 가다가 나중에 피곤해 지면 또 자리를 바꾸고 다른 기러기가 앞에 서고 그 뒤로 옵니다. 그리고 기러기가 날아 갈 때 그냥 날아갑니까? 꽥, 꽥 소리를 지릅니다. 이것은 앞에서 날아가는 기러기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 “힘내라! 힘내라!”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공동체로써 그들은 혼자 날아 갈 때보다 71%나 더 멀리 날아 갈 수 있습니다. 기러기가 병이 들거나 총에 맞아 떨어지면 여러분 2, 3마리의 기러기가 대열에서 벗어나서 반드시 병든 기러기와 총에 맞아 떨어진 기러기하고 같이 합니다. 함께 붙들어 주고 함께 도와주어서 나중에 같이 날아가기 위해서입니다. 이와 같이 기러기도 공동체를 형성하는데 사람들이 공동체를 떠나서 나 혼자, 나 홀로 예수를 믿을 수 있다. 나는 가정 예배를 드린다. 나는 기도원에서 그냥 예수 믿는다.
그들에게는 결코 믿음의 성장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세운 공동체는 교회입니다. 지역 교회를 떠나서는 신앙은 상실되고 마귀의 밥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주님을 머리로 한 각 지체들은 한 몸으로 주님의 몸에 붙어 있어야 바른 교제를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우리의 함께 모이는 일을 폐(廢)하지 말고 서로 권면하되 그 날이 다가옴을 너희가 볼수록 더욱더 그리하자.](히10:25). 사자는 적을 칠 때 반드시 무리에서 떨어진 놈을 공격합니다. 아니면 갑자기 공격해서 무리들을 쫓습니다. 그 중에 무리 가운데 낙오하는 녀석을 잡습니다. 울부짖는 사자인 마귀 역시 공동체에서 떨어진 성도를 목표로 잡습니다.
외부에 드러나는 승리나 패배는 판단의 진정한 척도가 아닙니다. 우리의 현재 생활은 결과가 난 삶이 아니라 결과로 나아가는 과정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폭넓게 장기적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단편을 보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승리자로 빚어가는 과정 중에 있으며, 연단 가운데 놓아두실 수 있고, 징계 가운데 두실 수 있습니다. 이 때가 인생의 전부는 아닙니다. 이것은 분명히 과정입니다. 죽음을 통하여 생명으로, 패배를 통하여 승리로, 고난을 통하여 기쁨으로 이것이 바로 주님이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사람들은 두 개를 연속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잘못 판단하게 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깨어 있으라, 속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마귀의 속임수를 알기 위해서는 진리의 지식이 필수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의하도록 경고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진리의 지식을 배우지 않고, 마귀의 속임수를 시험하고 분별하는 법을 배우지 않고 맹목적인 주님의 보호만을 외칠 때 마귀의 덫에 걸리고 말 것입니다. [이것은 사탄이 우리를 이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의 계략들에 대해 무지하지 아니하노라.] (고후2:11). 바울과 그 일행은 사탄이 자신들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했는데, 이는 그들이 사탄의 계략들을 잘 알고 대처했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계략들을 모르면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거부하였으므로 나도 너를 거부하여 네가 나를 위한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므로 나도 네 자녀들을 잊으리라.](호4:6).
[그러므로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 포로로 잡혀갔고 그들의 존귀한 자들은 굶주리며 그들의 무리는 갈증으로 목마르게 되었도다.](사5:13). 우리 모두는 부지런히 주의 말씀을 공부하여 마귀의 계략을 꿰뚫어 볼 수 있고,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속이는 자에게 가장 큰 위협은 언제나 진리와 진실입니다. 진리의 지식은 사기꾼들의 무기를 무용지물로 만듭니다. 우리 모두 성경을 통해 마귀의 간계와 속임수를 환히 들여다 볼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빕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엡4:27). 깨어 있지 않으면 우리는 마귀에게 틈을 주게 되고, 마귀에게 공격을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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